정신병소고
분류없음 2015/07/13 01:39
한국에 있을 때 정신질환에 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라 한국의 보건의료 분야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는지, 당사자들-가족/친구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 (편견 포함) 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운운할 때 그 단어가 쓰이는 컨텍스트를 헤아려보면 지독한 편견이 횡행하며 당사자를 얕잡고 하찮은 것으로 대상화하여 당사자 개인(들)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은 알 수 있겠다. 박귾혜 식으로 말하면 "개인의 일탈"이다.
우울증, 조현증, 경계성 인격장애, 소시오패스 등 우리 입과 귀에 익숙한 정신질환 명칭들은 모두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에 따른 것이다. 조선시대에 그런 명칭들이 이미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떠오르는 일로는 정신질환 (정신장애) 을 뭔가 신이 내린 일 내지 귀신이 작용하는 일 - 천형 - 로 여긴 "문화"다. 아주 어릴 때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이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날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큰 굿이 열렸다. 지금 생각으로는 '간질병'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어른의 병이 나았는지 기억엔 없고 무척 큰 규모의 굿이었다는 점, 굿을 한참 구경하고 떡을 먹은 기억 정도만 남아있다.
이런 한국의 고전적인 샤머니즘 문화를 천박하다거나 무지몽매하여 형편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아가 정신질환을 잘 다룰 수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당사자의 장애가 당사자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탁월한 접근이었다. 따라서 사람의 힘이 아닌 것을 빌어 그 치료 (treatments) 를 시도한 것은 진단과 처방이 한 박자로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아울러 굿판을 벌여 온 동네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아우르고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오늘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공동체적 치료 방식 (community treatment) 이다. 이런 접근과 관점은 비단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책을 보면 서구제국주의가 침략하기 이전 아프리카와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는 "조현증 (정신분열증)" 이라는 병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 + 미국/유럽 주도의 제약자본이 침투하면서 DSM에 따른 정신질환 카테고리가 세분화되었고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정신의 혼란이 서구식 이름을 얻었다. 북미나 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유러피안 백인들이 침략하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도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처방과 치료 방법을 갖고 있었다. 북미의 어떤 원주민 종족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온갖 향료와 야생허브로 치료하면서 부족이 함께 모여 굿을 하고 당사자에게 사색할 시간을 주었다고 한다. 당사자는 며칠동안 혼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 + 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공동체로 복귀할 준비를 한다. 그가 "건강하게" 돌아오면 온 공동체는 축제를 벌이고 그가 죽거나 "회복하지 못해도" 역시 공동체는 축제를 벌인다. 그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의 전통을 읽은 리퍼런스를 지금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얼마전 이런 글을 읽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질환에 관한 보건의료계의 현황, 사회의 대응 등은 앞에서 말했듯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 여전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등에서 투사하는 방식으로 정신질환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심한 우려가 든다. 1968년을 경과하며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폐기된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하지만 서구의료기준의 관점으로 정신장애에 접근한다면 오히려 이것은 "굿을 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모두 "이윤/이문을 남기는 것"이 정상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에 더해 더 좋고 품질이 뛰어난 약물을 있는데도 그것을 처방할 수도/받을 수도 없는 사회라면 답은 뻔하지 않나.
덧 1.
"처음 만나는 자유"는 1999년-2000년 사이에 서울 시내 영화관에 걸렸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이효리+수지" 급이었던 위노나 라이더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안젤리라 졸리가 주조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입소문을 탔지만 막상 들여다본 영화는 뜨악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자유"라니? 갸우뚱스러운 제목이지만 또 당시에 유행했던 모 통신회사 카피를 떠올리면 그닥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영화수입상과 마케터들의 솜씨가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자, 그 광고를 보자. 한겨레신문 1999년 7월 15일자 12면 전면광고. 므흐ㅛ.
덧2.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는 모두 훌륭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그렇다. 첫째로 두 영화는 모두 언젠가 책에서 읽은 환자 (대안) 공동체를 떠올리게 했다.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자료를 충분히 접한 것도 아니지만 존재한다면 당사자들의 저항과 권력이 저렇게 용솟음쳤으면 좋겠다, 하고 바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영화 속에서 당사자들의 저항은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물론 보기에 따라 "보기좋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꽃개 눈엔 그렇지 않았다는 거. 울림이 강했다. 둘째, "처음 만나는 자유"는 실화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대안과 자아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노나 라이더와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하고 어여쁜 이상을 기대했던 뭇남성 플러스 어렸던 꽃개를 포함 일부 비남성 관객들에겐 멘붕을 초래했지만...) 두 영화 모두 꽃개에겐 인생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