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동안 같이 산 90대의 두 할매가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있었던 작년 9월의 이야기. 이 기사를 갑자기 왜 링크했나 했더니 일요일에 교회에서 뭔 이벤트가 있는 모양이다. 이 할매들을 직접 모실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할매들의 사진을 벽에 거는 이벤트 같은 걸 할 모양. 두 할매의 연세로 보아 각각 18, 19 살 때부터 함께 파트너쉽을 이룬 듯한데 징하디 징하다. 72년을 함께 하다니.
1962년에 만난 이디와 ㄷ시아는 밤맞도록 춤을 같이 추고 서로를 알아가던 중 커플이 된다. 스톤월 투쟁을 포함해 42년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두 할매. ㄷ시아가 병에 걸리고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둘은 결혼을 결심. 이 영화를 찍던 당시 뉴욕 주에서 동성결혼은 불법이었다. 2007년, 둘은 캐나다 토론토로 날아가 시청에서 소박하게 결혼. 영화는 이 할매들이 함께 한 "삶"을 보여준다. 그들이 함께 찍었던 과거의 사진들과 할매들, 할매 친구들의 나레이션. 그 둘이 처음 만난 1960년대 뉴욕의 풍경과 당시 성소수자들의 생활이 어땠는지... 그리고 마침내 휠체어에 의지해 토론토로 날아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까지.
이 도시에서 열린 2010년 LGBT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곤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GV에 나타난 감독은 ㄷ시아 할매가 돌아가셨고 이디 할매는 미 전역을 돌며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 뒤 이디 할매가 어떤 투쟁을 했는지는 위키 참고.
한국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무망한 것일까. 내 생에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곧 올 미래에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도 무망한 것일까. 아니야. 희망만은 바람만은 품어볼 수 있지 않나. 결혼이란 제도 그 자체를 동의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결혼이라는 것을 (이혼을 포함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 적어도 할 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디 할매가 ㄷ시아 사후 어떤 투쟁을 했어야만 했는지 복기하고는 이성애-교회-자본가 집단이 동성결합을 반대하는 그 이유를 다시 되새긴다. 어쨌든 그래도 남들이 하는 건 적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천양지차. 물론 니덜이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우리들은 아니지. 저 할매들처럼 말야.
별로 어려운 영어도 아닌데 쩔쩔쩔 질퍽거리고 있다. 아마도 요 몇년의 상념과 과거가 --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기억과 또 그들이 나를 기억할 것들과 우리들이 기억하는 역사와 사건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저 컴컴한 하늘처럼 불확실한 미래 때문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사소한 것들, 가령 앞의 포스팅에서 김치냄새와 아저씨의 트름과 친할머니로 향하는 나의 섭섭한 마음과 같은 것들이 현재의 질곡이 되는 것 같아서 더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나는 집에서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꺽꺽대며 트름을 하는 사람이긴 했었다만은 적어도 버스에선 그러지 않았어, 라는 식으로 나를 귀하게 (?) 여기는 그런 태도 말이다. -- 나의 에고는 절대화하되 나 아닌 타인(과 그들의 에고들)을 상대화하는 것 말이다.
요 며칠 상간에 -- 귀 근처에 흰머리가 무지막지하게 늘었다. 대체 귀 근처 뇌 속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그 부위만 집중적으로 변하는 걸까. 예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밤을 지새우고 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는 내용에 에이 설마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도 아닌데... 했던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의 머리속엔 대체 무엇이 들어있었길래 단 하루의 밤 동안 머리가 하얗게 변했을까. 그 번민의 내막을 자세히 알 순 없지만 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요 며칠 동안 위경련과 장트러블과 또 오늘은 숨쉬기 어려운 그런 순간들을 계속 꿋꿋이 버티며 이겨내고 있다. 이겨내고 있다고 또 나를 귀이 여기련다.
낮에 R과 길을 걸으며 -- 굴려도 굴려도 계속 또르륵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 메이데이 행진엔 가지 못했고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타전된 메이데이 투쟁 소식을 읽고 보며 오늘 하루를 마감하는 이 밤이 참 외롭구나.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김치를 산다. 북쪽 말고 다운타운 근처 코리아타운에 정통 김치의 맛을 거의 90퍼센트 재현하는 가게가 있다. 다른 곳들은 김치의 맛이 영 아니(올시)다. 직접 담그면 좋겠지만 물김치 정도 말고는 직접 하지 않는다. 왜? 절차가 복잡하고 노동시간이 많이 든다. 한국 음식은 대부분 노동집약도가 높다. 다른 이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한식 조리를 권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차게 착취하는 음식, 한식. 특히 김치. 이럴 땐 한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못내 웃프지만 어쩔 수 없다. 국적과 민족적 특징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나.
정통 김치라서 그런가. 냄새도 정통이다. 특히 깍두기, 총각김치 등 무우로 만든 김치 냄새는 익으면 익을수록 "가관"이다. 김치 냄새가 주는 정겨움과 입맛을 북돋우는 독특한 향은 논외로 치고 이 무우나, 배추가 발효하며 익을 때 나는 냄새는 너무나 강력하다. 냉장고 안의 모든 냄새를 평정한다. 누구는 중국인들이 먹는 취두부가 갑이라는데 내 경험으론 여전히 한국 정통 김치, 답 없는 냄새의 왕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아침에 김치를 먹지 않는다. 아니, 출근하기 전에 학교가기 전에 김치를 먹지 않았고 지금도 아침 나절엔 김치를 먹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주 어릴 적에,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 일곱 살 정도? 친할머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이면 출근길 버스를 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그 버스 안에서 할머니 무릎에 앉아 있었다. 양복을 빼어입은 어떤 아저씨가 내 옆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로 트름을 했다. 꽉 꽉 들어찬 사람들이 내뿜는 온갖 냄새에 그 아저씨의 트름 냄새가 범벅이 되어 안 그래도 멀미에 시달리던 나의 마지막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그 아저씨의 양복 바지에 토했다. 아저씨가 욕을 했나 싶은 찰나에 할머니가 "아이가 깍두기 냄새가 너무 역해 토했나 보오. 미안하오" 라며 손수건을 줬다. 아마 지금쯤이었으면 단박에 개저씨로 불리웠을 그 아저씨는 계속 궁시렁 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 뒤로 나는 아침 나절에 깍두기 혹은 김치를 먹으면 그 아저씨처럼 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트라우마.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강력한 김치 냄새를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있을까. 옷에 스며들어도 "어머 내 코트에 스며든 이 냄새 너무 좋아, 고향의 냄새, 우리 클라이언트와 함께 나누고 싶어. 비즈니스의 냄새론 김치가 짱이지", 이럴 한국인이 있을까. 김치를 그 냄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한국인들에게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러면서 억지를 부릴 한국인들이 있을까. 아마 없겠지.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꽃개의 인생에서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 대학교 전공 교수님들을 빼고 영어선생님들은 전부 "백인"이었다. 예외로 될 두 명의 아시안이 있긴 한데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되어 스물이 넘어 자신의 뿌리 (?) 를 찾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이. 그이는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또 하나는 홍콩에서 밴쿠버로 이민온 2세대. 그 역시 캔토니즈를 잘 못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트렌드는 어떤지 모르겠다. 흑인이나 남아시안 같은 비백인들을 영어선생님으로 고용하는지. 꽃개가 한국의 영어사교육 시장에서 소비자로 존재하던 시절엔 비백인 영어강사가 드물었다. 이 나라에서도 영어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저 위의 홍콩 이민 2세대가 유일한 비백인이었고 흑인은 아예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 다닌 컬리지에서도 영어선생님은 "백인"이었다. 영어가 영국에서 유래했고 그 옛날 영국엔 백인만 살았다고 해도 이건 뭔가 심각한 불균형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항해를 시작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지 않은가.
이 도시에서 만난 이십 대의 젊은 한 친구가 자신이 한국에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러 가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네가 좋아한다면 뭐. 일이 년 정도 투자해서 돈을 벌어오면 다시 대학에 다니든 그 돈으로 사업을 하든 쏠쏠한 목돈이 될테니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물었다. 한국에 사우스아시안 많이 살아? 인종차별은 어때, 심해?
뭐라고 답하는 게 옳은 걸까. 응, 한국인들은 대부분 백인을 선호해. 특히 영어시장에서는 아무리 배운 게 많고 훌륭해도 반기문처럼 발음하면 딱 싫어하고 생긴 게 "이주노동자" 같으면 더 질색해,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서 인종차별 같은 거 경험한 적 있어? 라고 물었더니 응, 물론이지. 라고 답한다. 한국도 사람사는 데니까 여기랑 비슷할거야. [백인을 선호하는] 인종차별은 백인들이 세상을 지배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온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거잖아. 안 그런 곳이 지구상에 있을까.
한 번은 일터에서 만난 흑인 동료가 한국에도 흑인이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이제 갓 컬리지를 졸업한 그 친구도 외국에 나가 영어선생님으로 돈을 벌어올 심산에 물었던 것. 그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Where're you from?" "Okay,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투덜댔다. "응, 한국에도 흑인들이 있어" 라고 대답했지만 뭔가 많이 찜찜했다.
인생의 방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내가 먼저 걸었던 혹은 경험한 것, 알고 있는 것을 물을 때엔 조심스럽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은 넓디넓은 한 길의 부분일 뿐이고 내가 겪은 일들은 72억 넘는 인류가--72억의 세계가 각자 담지하는 맥락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이들에게 닥칠 평지풍파를 알면서도 일부러 눈감아야 할 땐 정말 난감하다. 가령 똑똑하고 열정적인 여인네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여인네들이 한국 남정네와 결혼하여 "시집"이라는 사자아가리에 자진해서 걸어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축하한다"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야했던 그런 기분. -- 이 말도 나중에는 잘 하지 않게 되더라.
물론 지금 나는 남의 일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걱정도 하지 않는다. "오지랖"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기 전, 혹은 대화를 나누며 이 사람과 나의 거리는 얼마나 가깝거나 먼 것이 적당한가. 그것을 따지는 것이 더 힘들다. 여전히 훈련 중.
“네가 좋아한다면야; 뭐 그리 크게 다를까 싶어. 사람들이 사는 덴데 뭘; 한국엔 아프리칸도 있고 (흑인도 있고) 사우스아시안도 있어. “
긍정도 부정도 아닌 평범한 조언. 상대에게 조언하기에 앞서 일단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기. 이것이 참말 어렵다. 특히 누가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면 더 어렵다. 던져두고 온 것과 관계맺기가 아직도 힘든 까닭이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모 것도,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아모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ㄹ썩, 처..........ㄹ썩, 척,쏴......... 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던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룰 이 있건 오나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고만 산(山)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손벽 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난 자,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덥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이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是非(시비),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도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膽(담) 크고 純精(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1908년 <소년>
눈을 감으면 태양에 저편에서 들려 오는 멜로디 내게 속삭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니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거야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마 힘이 들 땐
*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Now We are flying to the universe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광주 트라우마 센터가 준비한 김조광수 씨의 성소수자 인권 강연이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링크해주신 분께 감사 말씀, 꽃개의 블로그를 보시진 않겠지만... 흠흠..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강연은 어찌되었는지.
덕분에 일주일 묵혀두었던 무가지 신문의 뉴스 하나가 떠올랐다. 짝꿍과 함께 토론하기 위해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던 메트로 기사. 15일인지 14일인지 가물가물. 하도 황당해서 사진도 찍어뒀지.
배경 설명을 하자면,
꽃개가 살고 있는 머물고 있는 이 나라의 한 주(州)인 온타리오에서는 오는 9월부터 새로운 버전의 성교육을 일제히 도입한다.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한 게 1998년이니까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기 전이고 스마트폰도 나오기 전이다. 한참 전이다. 새로운 성교육 아래에서는:
- 초등학교 3학년 과정에서 두 명의 아빠, 두 명의 엄마 같은 Same Sex Relationships 을 배운다. (궂이 영어로 쓴 것은 "동성애" 랄지 "동성관계" 랄지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 Same Sex Relationships 에 포지티브한 분들은 알아서 읽어주실 것이고 박원순 씨처럼 Same Sex Relationships 에 네가티브하거나 아예 무지한 분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동성연애" 라든지 "항문성교" 로 읽으실 게 뻔하지만 그깟 위험이야 감수하련다) Same Sex Relationships 이 좋다 나쁘다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Relationships 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목적이 커 보인다.
- 초등학교 4학년 과정에서 온라인 불링, 온라인 상에서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상대를 폄하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가르친다. (한국 상황에 맞게 설명하면 이른바 "어묵" 이 얼마나 반인권적 표현인지, 그런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면 얼마나 위험한 일을 겪게 되는지 가르치는 셈이다.)
- 초등학교 6학년 과정에서 자위 (masturbation) 와 젠더익스프레션 (Gender Expression)에 대해 가르친다. 자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잘 할지 그런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위의 정의와 건강한 자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젠더익스프레션 또한 마찬가지. 세상엔 남, 여 두 개의 젠더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가르친다. 다양성의 이해, 소수자들의 존재와 이해를 가르치는 것이다.
- 그리고 사춘기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은 1998년 버전에서 5학년에 수행했다면, 새로운 버전에서는 4학년에 수행한다. 현격한 신체적 변화가 따르는 사춘기가 한 인간의 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축복'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변화들에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아.... 너무 좋다. 저렇게만 잘 되면 너무너무 좋다. 선생님들의 가르치는 수준이 걱정이지 아이들은 정말 잘 생각하고 잘 해낼 것이다.
그런데
극렬 종교분자들이 떨쳐 일어났다. 이슬람교, 개신교, 카톨릭이 삼위일체가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새로 도입된 성교육이 보수적인 자신들과 충분히 토론하지 않은 결정이었고, 무엇보다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들에게 Same Sex Relationships /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혼란해한다는 거다. (나는 지금 내가 막 혼란스럽다. 이슬람교와 개신교, 카톨릭이 똘똘 뭉친 저 상황이 막 혼란스럽다.)
그리고 인터뷰에 나선 몇 몇 인사들은 "[...] particularly mentions of same-sex marriage, conflicts with Muslim faith" "it goes against Catholicism"이라고 반대의 이유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꽃개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슬림 국가도 아니고 카톨릭 국가도 아니다. 신정일치 국가가 아니라곳! 네 종교신념에 반하면 네 종교를 바꾸렴, 누가 이렇게 말하면 참 좋으시겠습니다그려.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은, 캐나다 크리스천 컬리지의 학장이라는 분이 (The president of Canada Christian College, Charles McVety) 이 새로운 성교육을 받으면 종전에 2개였던 젠더가 6개 (male, female, transgender, transexual, two-spirited and intersex) 로 늘어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 젠더의 틀에 저 6개를 묶은 것은 캐나다 크리스천 컬리지 학장이라는 찰스 멕비티라는 사람이 자기 맘대로 정리한 거다. 아마 새로 도입할 성교육 교안을 읽고 잘못 정리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아니면 구글링이라도 하든가. "젠더"라는 틀에 저렇게 6개의 정체성을 묶는 것은 마치 "신약 성경"이라는 틀에 "창세기"를 넣은 것에 다름 없다. 구별을 못한다, 는 거다. 똥인지 된장인지 잘 모른다, 는 거다.
꽃개님의 [오늘의말씀] 에 관련된 글 로컬 타임으로 월요일 (5월 4일). 주 의사당 건물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천여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 가운데 거개가 아이들이다.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어린이들이 왜 거기에. 9월에 시작하는 새로운 성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목이 터져라 "반대"를 외치는 아이들.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 아, 이 도시는, 이 나라는 복합문화 (mu...
지난 주에 새로 온 클라이언트 하나. 온 스탭들이 이 사람의 방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난다고 불평. 냄새가 나긴 나는데 실제로 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웠는지는 알 수 없다. 우선 증거가 없고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퇴근 무렵, 비상문 밖 사이드워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 사람을 발견.
- 안녕. 뭐해.
= 응. 마리화나 피워. (smoking pot)
- 그렇구나. 근데 너 여기서는 곤란해.
= 실내에서만 안 피면 되잖아.
- 음... 근데 실내든 실외든 이 빌딩 근처에선 곤란해. 일단 걸어나가서 피워. 그건 상관 안 해.
= 다른 사람들 다 여기에서 피우는데, 진짜야. (everyone smokes here seriously)
- 그래? 그럼 모두에게 얘기할께. 여기에서 피우면 안된다고.
= ... ...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마.
- 글쎄...
= 알았어. 네 말에 따를 테니까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마.
"왜 나만 갖고 그래". 전두환이 진짜 저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흔한 리액션, "why always me!"
캐나다에서 마리화나를 사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이는 합법이고 어떤 이는 비범죄화이고 어떤 이는 불법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 목적으로 허가를 받고 허가를 받은 업체(?)로부터 구매하여 소비하는 것 외에는 불법이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데 경찰이 지나가면? 경찰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간다. 만약 파티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에게 이봐 그건 불법이야, 라고 말하다면? 친구들이 대번 따돌리거나 다음번 파티에 안 부를 가능성이 높다.
꽃개는? 꽃개는 마리화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개인적으로 체질상 맞지 않아서 마리화나를 피우진 못하고 그냥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아직도 믿는다; 여전히 철이 없어서.
그런데 이 나라에서 마리화나가 거의 담배처럼 다뤄지니까 간혹 마리화나 문제가 불거지면 곤혹스럽다. 모두 다 피우는 걸. 어맛. 나도 피장파장의 오류?
갸웃갸웃할 땐 원칙대로 하는 게 낫다. 불상사도 오해도 줄일 수 있고 그게 바로 가장 안전하게 클라이언트를 (타인과 나를) 옹호하는 길이다. 누구에겐 이렇게 누구에겐 저렇게 다른 잣대로 사람을 대해선 곤란하다. 특히 그 사람의 다른 행동으로 지금 방금 일어난 일을 평가해선 더더욱 곤란하다. 가령 네 방에서 계속 마리화나 냄새가 났어, 이런 식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판단은 날카롭고 평등하게. 행동은 단호하고 짧게.
2.
아침에 일찍 눈을 떴는데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잠깐 꿈을 꿨다:
장소는 서울인 것 같았다. 상가 건물 삼층에 있는 집을 보러 갔다. 둘러본 집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시간을 내어준 집주인의 성의를 생각해 집주인이 이끄는대로 따랐다. 갑자기 집주인이 나의 최종학력을 물었다. "어쩌지, 우리 건물엔 석사 이상의 사람들만 사는데. 꽃개 씨는 안되겠어." 나는 교육수준으로 세입자를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인권헌장에서 보장한 나의 권리대로 행동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인이 "한국엔 인권헌장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꽃개는 봐줄께. 석사과정에 진학한다고 약속을 해. 자, 계약서에 서명을..." 순간, 나는 집이 다소 어둡다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살폈다. 침실의 창문은 북쪽, 부엌의 창문은 서쪽으로 나 있었다. 으아악. 제일 싫은 서향 부엌.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세입자를 선별해서 받는 것은 네 자유겠지만 그렇다면 재주껏 예비세입자를 고르라고, 사람을 무례하지 않게 골라낼 재주가 없으면 차라리 공손히 양해를 구하라고 얘기했다. 이어 그 집을 소개해준 사람이 기다리고 있던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집주인에게 전화를 받았는지 그 양반의 심경이 무척 불편해 보였다. "꽃개, 네가 그렇게 나오면 같이 일하기로 한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그 사람은 아마도 서울에서 나를 고용하기로 한 고용주였던 모양이다. 알았다고 하고선 둘이 술을 사백만 원어치 먹었다. 텐프로 단란주점이었나. 사백만원이라니. 노래부르는 언니도 오빠도 없었는데 뭔 술을 그리 마셨나. 개꿈.
3.
대학에 입학한 그 해 뒤로 해마다 4월은 나에게 진창이었다. 정서적으로도, 외부 환경도.
작년 4월, 세월호 참사. 그리고 올해 일주기. 이 진창의 반복엔 변곡점이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 좋아하지만 딱 하나, 들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 기피하는 곡.
어제 (금요일, 04-17) 잠깐 은행에 들를 요량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운타운에 있는 졸업한 컬리지. 짝꿍과 함께 나선 길에 우왕좌왕 하다보니 거기까지 함께 갔다. 졸업하고 그 곳에서 일을 하다가 그 일마저 마친 뒤 들른 적이 거의 없다. 다시 다운타운에 있는 다른 유니버시티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전차를 탔다. 요즘 들어 유독 길어진 햇살과 리버데일 공원을 왼편에 두고 오르막길을 천천히 달리는 전차. 그러니까 나는 북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마침 듣고 있던 96.3 FM 라디오에서 이 곡이 나왔다. 이어폰을 뺄까 하다가 그냥 들었다.
목적하지 않고 가는 길, 계획에 없던 길을 재촉하면 급히 피곤을 느낀다. 특히 혼자 있을 때엔 상관없는데 누가 옆에 있으면 혈당이 떨어지고 체력마저 바닥난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왼쪽 이어폰을 빼서 짝꿍의 왼쪽 귀에 꽂아주었다. 들어보세요.
잠시 말이 없던 짝꿍이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종종 들으시던 곡이네요" 라고 말씀하셨다.
어제는 희한하게도 눈물도 흐르지 않고 차분해졌다. 피곤함도 한결 가시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 퇴근길에 다시 들어보았다. 역시 눈물이 흐르지 않고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좋다. 피곤해도 뭔가 업데이트된 것 같아 좋다.
"좋아한다" "사랑한다"에는 참 많은 의미가 있다. 목적어로 무엇을 놓느냐에 따라 다양한 맥락을 상상할 수 있다. 가령 "강아지를 사랑한다"라고 진술하면 애견인이 될 수도 있고 "강아지"로 불리우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어든 주어든 다 빼고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참 좋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려고 애쓰는 말 가운데 하나.
그런데 꼭 말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 있고 꼭 말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는 상황이 있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미지근한 물에 잠긴 한덩이 소금처럼 녹아버릴 것 같은 상황이 있고 차라리 말하지 않고 꼭꼭 밟아놓는 게 나은 그런 상황이 있다.
말이란 건 그런 거다. 그렇게 좋은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나면 시답지 않은 말이 될 수도 있는데 하물며 "싫어한다" "증오한다"처럼 극을 이루는 말들은 어떻겠는가. 되도록 이런 말은, "싫어한다" "증오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말이란 게 마음에서 혹은 배운 데에서 나오는 것이니 애시당초 그런 마음이나 배움은 품지 않거나 담아두지 않는 게 나을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이 하고 싶을 땐 솜사탕, 낙타, 매니큐어, 삼겹살 같은 말을 하는 게 좋겠다. 이런 솜사탕 같으니라구, 낙타를 탔다, 매니큐어를 발랐다, 삼겹살이 쪼그라들었다...
언어는 중요하지만, 표현은 의미있지만, 마음에 잘 담아 변하지 않게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사랑이든 증오든 간직하는 그 순간 더 클 수 있다. 사랑은 곱절로 크고 증오도 두 배가 된다.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탓에 연정은 성숙하고 증오도 자란 탓에 성숙한다. 무르익은 사랑과 증오. 둘 다 무럭무럭 어른처럼 자라나면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알 수 없다. 제로섬. 성장의 전략이다.
* 결론은 -- 꽃개가 뒤끝이 없는, 굉장히 뒤끝이 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란 말. 힘세고 오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