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잡담
분류없음 2015/04/21 06:461.
지난 주에 새로 온 클라이언트 하나. 온 스탭들이 이 사람의 방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난다고 불평. 냄새가 나긴 나는데 실제로 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웠는지는 알 수 없다. 우선 증거가 없고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퇴근 무렵, 비상문 밖 사이드워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 사람을 발견.
- 안녕. 뭐해.
= 응. 마리화나 피워. (smoking pot)
- 그렇구나. 근데 너 여기서는 곤란해.
= 실내에서만 안 피면 되잖아.
- 음... 근데 실내든 실외든 이 빌딩 근처에선 곤란해. 일단 걸어나가서 피워. 그건 상관 안 해.
= 다른 사람들 다 여기에서 피우는데, 진짜야. (everyone smokes here seriously)
- 그래? 그럼 모두에게 얘기할께. 여기에서 피우면 안된다고.
= ... ...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마.
- 글쎄...
= 알았어. 네 말에 따를 테니까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마.
"왜 나만 갖고 그래". 전두환이 진짜 저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흔한 리액션, "why always me!"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하나. 어릴 때 배운 논리학에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영어로는 뭐지... "you, too" 로 배웠던 "Tu quoque" 더 찾아보니 이런 게 있다. 비슷한 상황적 오류 "two wrongs don't make a right"
캐나다에서 마리화나를 사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이는 합법이고 어떤 이는 비범죄화이고 어떤 이는 불법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 목적으로 허가를 받고 허가를 받은 업체(?)로부터 구매하여 소비하는 것 외에는 불법이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데 경찰이 지나가면? 경찰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간다. 만약 파티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에게 이봐 그건 불법이야, 라고 말하다면? 친구들이 대번 따돌리거나 다음번 파티에 안 부를 가능성이 높다.
꽃개는? 꽃개는 마리화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개인적으로 체질상 맞지 않아서 마리화나를 피우진 못하고 그냥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아직도 믿는다; 여전히 철이 없어서.
그런데 이 나라에서 마리화나가 거의 담배처럼 다뤄지니까 간혹 마리화나 문제가 불거지면 곤혹스럽다. 모두 다 피우는 걸. 어맛. 나도 피장파장의 오류?
갸웃갸웃할 땐 원칙대로 하는 게 낫다. 불상사도 오해도 줄일 수 있고 그게 바로 가장 안전하게 클라이언트를 (타인과 나를) 옹호하는 길이다. 누구에겐 이렇게 누구에겐 저렇게 다른 잣대로 사람을 대해선 곤란하다. 특히 그 사람의 다른 행동으로 지금 방금 일어난 일을 평가해선 더더욱 곤란하다. 가령 네 방에서 계속 마리화나 냄새가 났어, 이런 식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판단은 날카롭고 평등하게. 행동은 단호하고 짧게.
2.
아침에 일찍 눈을 떴는데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잠깐 꿈을 꿨다:
장소는 서울인 것 같았다. 상가 건물 삼층에 있는 집을 보러 갔다. 둘러본 집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시간을 내어준 집주인의 성의를 생각해 집주인이 이끄는대로 따랐다. 갑자기 집주인이 나의 최종학력을 물었다. "어쩌지, 우리 건물엔 석사 이상의 사람들만 사는데. 꽃개 씨는 안되겠어." 나는 교육수준으로 세입자를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인권헌장에서 보장한 나의 권리대로 행동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인이 "한국엔 인권헌장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꽃개는 봐줄께. 석사과정에 진학한다고 약속을 해. 자, 계약서에 서명을..." 순간, 나는 집이 다소 어둡다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살폈다. 침실의 창문은 북쪽, 부엌의 창문은 서쪽으로 나 있었다. 으아악. 제일 싫은 서향 부엌.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세입자를 선별해서 받는 것은 네 자유겠지만 그렇다면 재주껏 예비세입자를 고르라고, 사람을 무례하지 않게 골라낼 재주가 없으면 차라리 공손히 양해를 구하라고 얘기했다. 이어 그 집을 소개해준 사람이 기다리고 있던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집주인에게 전화를 받았는지 그 양반의 심경이 무척 불편해 보였다. "꽃개, 네가 그렇게 나오면 같이 일하기로 한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그 사람은 아마도 서울에서 나를 고용하기로 한 고용주였던 모양이다. 알았다고 하고선 둘이 술을 사백만 원어치 먹었다. 텐프로 단란주점이었나. 사백만원이라니. 노래부르는 언니도 오빠도 없었는데 뭔 술을 그리 마셨나. 개꿈.
3.
대학에 입학한 그 해 뒤로 해마다 4월은 나에게 진창이었다. 정서적으로도, 외부 환경도.
작년 4월, 세월호 참사. 그리고 올해 일주기. 이 진창의 반복엔 변곡점이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