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일들

분류없음 2015/11/28 01:59

 

신비한 메갈리안

 

 

소라넷을 없애달라는 아바즈 청원을 주도한 메갈리안의 행동이 성과를 보였는지 드디어 이 주제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됐다. 현재까지 이 청원에 팔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국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직접 이 일을 거론한 새정치연합 진선미 국회의원은 하루만에 천만 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모았다. 한두 사람이 목돈을 쾌척한 것도 아니고 삼백여 명 정도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진선미라는 정치인, 국회의원을 후원했다. 이틀이 채 되기도 전에 천만 원을 후원받은 진선미 국회의원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 일을 도모한 그리고 언급한대로 이루어낸 메갈리안이라는 데가 진실로 진실로 신비하게 느껴진다.

 

 

한편, 그간 (메갈리안을 위시로) 여성들이 느낀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여성혐오라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상에서 퍼져있었는지 절감하는 순간이다. 나 또한 가해자로, 피해자로, 중첩적인 아이덴터티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저글링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혹자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은 옳지 않다, 메갈리안의 방식은 곧 그 역치에 도달할 것이다, 출발부터 한계가 있는 방식이다, 여성판 일베다 등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켜봐야 한다는 차이 혹은 공통점 정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공부나 관련 분야를 정치-사회학 계통 내에서 학습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 많이 커졌다. 이게 어디까지 어떻게 갈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이 신비한 메갈리안의 운동, 상처받았으되 쓰러지지 않고 혹은 쓰러졌다가도 일어나서 분노하는 사람의 마음,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메갈리안의 운동에서 배울 것이 버릴 것보다는 많아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어떤 침묵

 

 

지난 번에도 잠깐 생각하다가 말았는데 소라넷이 음란사이트여서 혹은 포르노를 유통하기 때문에 혹은 이상성애를 확산하기 때문에 폐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소라넷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소라넷을 매개로 범죄에 동조하고 확산한 사람들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생각엔 띠끌만큼의 변화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소라넷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들의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채우기 위해 인간을 얼마나 끔찍한 방식으로 도구화하는지, 즉 여성 개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 개인정보를 그들의 동의없이 얼마나 흉악한 방식으로 훼손하는지 그런 토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참 요원해보이긴 하다만.

 

 

한편으론 서버가 미국에 있어서 운영자를 처벌하기 곤란하다, 는 말이 얼마나 허황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런 개소리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고 앉아있나.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 아닌 굳이 공부까지 할 것도 없고, 인간의 자율의지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훼손하는 게 무엇인지 감이라도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라넷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령 여자친구에게 의식을 잃게 만드는 약물을 몰래 먹인 뒤 의식불명의 그녀를 강간할 남자들을 공개모집한 뒤 그 행위를 도둑촬영하여 파일을 공유하는 행위, 혹은 공중화장실, 공공장소, 심지어 집에서까지 여성들을 도둑촬영하고 이 이미지를 파일로 공유하는 행위 등) 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내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도 괜찮은 일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왜 그 많은 전문가들, 지식인들,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 정도는 나같은 사람도 알고 있는데.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조작된 정보를 수용한 것인가.

 

 

회원이 백만 명이라는 데에서는 기함을 토했지만 (범죄행위에 연루했을 수도 있는 사람이 백만 명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회원 수에 기초해서 한국인 남성 열여섯 명 가운데 하나는 소라넷을 한다는 추론엔 사실 별 감흥이 없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소라넷을 그들만의 은어로 언급하고 "야동"을 끼죽거리며 거론한 게 바로 어제까지의 일상이었다. 알다시피 소라넷은 성인인증 없이도 가입할 수 있고 따라서 소라넷이 포르노그라피 입문을 위한 "게이트웨이"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눈을 감고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야동" "포르노그라피"를 소비한다는 팩트에 사실 나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그들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왜 여자친구를, 누이를, 엄마를 혹은 나완 대체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타인 (여성) 을 그들 의사와 무관하게 그들의 육체를 이미지화하여 소비하려 하는가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이다. 그리고 "동의" "컨센트" 가 왜 중요한지 이것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그것을 얘기하고 싶은 게 나의 관심이다. 침묵은, 현재의 침묵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위험해 보인다.

 

 

11월 26일 일기 가운데 일부 

 

 

2015/11/28 01:59 2015/11/2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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