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초절임
분류없음 2015/11/18 10:41
김치가 똑 떨어졌다. 이미 진작 떨어졌고 스키야키를 해먹을 때 샀던 남은 배추로 급히 만든 비상김치마저 다 먹어치웠다. 원래부터 식성이 이랬나 싶게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이러다가 진정한 K-저씨의 식성으로 귀환하는 건가... 라는 착잡함과 아련함과 아무래도 이건 향수병의 한 조짐이겠지. 뭐 그런 식으로 위안하기엔 그 갈망 craving 이 너무 크다.
그리스-남/동유럽 출신 사람들이 주로 사는 우리 동네에 조선은커녕 중국 배추도 있을 리 없고 구할 수도 없다. 버스를 타고 차이나타운을 가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한국인마트에 가는 게 낫다. 어쩌지.
잠깐 궁리.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일전에 먹었던 사우어크라우트를 사올까 싶었지만 별로였다. 덴마크 사람들이 먹는다는 그 노오란 것을 먹을까 했지만 정체를 모르겠는 것을 이 상황에 먹기엔 좀... 그냥 오이피클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집 앞 컨비니언스에 갔는데 뙇... 오늘의 발견.
그리스 바로 위에 있는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온 "페페로니 고추 피클" 되시겠다. 할리피뇨 고추 절임 맛을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한국산 청양고추에 가까운 맛이 난다. 식감도 비슷하다. 이럴 수가.
가끔 그리스 사람들, 남/동유럽 사람들과 그들의 섭생과 생활 같은 걸 관찰해보면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필요 이상으로 챙기거나 간섭하는 모습 (어쩌면 오지랍), 먹는 것을 나누고 먹는 것 자체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모습, 매운 음식/돼지 고기를 즐기는 모습, 누구도 못 말릴 것 같은 허세, 타인을 의식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의식을 안하는 것 같은 모습... 이젠 먹는 식재료에서까지 비슷한 점을 찾아내다니, 이 정도 간절한 집착이면 거의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이다.
어쨌든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마케도니아 나라를 다시 한번 검색해봤다. 슬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축구 제법하는 나라. 고추절임도 우리와 아주 비슷하게 먹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