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다는것

분류없음 2015/11/11 07:23

 

 

간장게장, 간장새우장을 담갔다. 살아있는 서해 꽃개가 이 나라에 있을 리 만무하므로 블루크랩 (청게?) 2.24파운드를 $8.04에 샀다. 1킬로그램이 약간 넘지만 서해 꽃개에 비하면 덩치가 하염없이 작아 열두 마리. 타이산 꽁꽁 얼어있는 블랙타이거는 18두에 $9.99. 블루크랩은 대서양에서 온 국내산이고 블랙타이거는 수입산인 셈이다. 그저께 일요일 오후에 차이나타운에 나가 장을 본 뒤 바로 냉동실에 넣어 기절하시도록 기다렸다가 꺼내 씻는데 여전히 살아계시다. 질긴 생명력. 경외감. 새로 꺼낸 치솔로 박박 닦는데 미안함+무서움+귀찮음. 새우는 찬물을 틀어 삼십 분 정도 방치했더니 생물새우처럼 되살아났다. 이 분들은 이미 돌아가신 탓에 덜 미안. 이틀이 지난 오늘 간장을 새로 끓여 넣어야 하는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먹어봤다. 작은 청게께서 알을 소중히 꼭꼭 간직하고 계셔서 맛이 아주 그만. 각종 채소와 양념거리는 파트너가 담당했었는데 역시나 이 분의 손길이 닿아야 마지막 2%가 살아나는구나. 나 혼자 만들었다면 이런 맛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간장게장은 참으로 익숙한 음식이다. 어릴 때엔 꽃게철에 거의 매일 먹었다. 외가쪽은 조기, 굴비, 꽃게, 조개, 새우(젓), 김, 굴과 같은 서해에서 주로 나는 해산물을 넉넉히 소비하던 집안이라 어머니께서도 어릴 때부터 종종 잡수셨고 그 취향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아주 어린 꼬마시절엔 외할머니 명의의 논에서 서식하던 작은 게로 민물게장을 담그셨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박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셨고 따라서 음식에 관해 ‘취향’이란 게 없거나 무척 제한적이었다. 가령 죽을 너무 많이 드셔서 밥이 진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든지, 수제비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은 음식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다든지. 반면 어머니는 국수를 좋아하셨고 밥도 질척질척한 느낌을 선호하셨다. 나중에야 아버지도 어머니 음식에 딴지를 거시는 일이 없어졌지만 아버지가 왜 저런 음식에 종종 거의 광기어린 반응을 보이는지 – 가령 상을 엎는다든지 - 어머니께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언젠가 밥상에 집게다리만 잔뜩 있는 간장게장 사발이 올라왔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는데 이번에 게살이 빨리 물러서 몸통은 다 먹었고 집게다리만 남았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사과, 배, 양파, 레몬, 매실, 마늘, 고추 등의 갖은 채소와 과일로 간장의 풍미를 더하지만 옛날에는 그냥 막간장과 신선한 약수만 넣고 끓였던 것 같다. 먹기 진전에 청양고추만 송송 썰어 넣는다. 아무래도 간장맛이 – 혹은 간장의 주원료인 메주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집게다리도 나름대로 훌륭했고 맛있었다. 상 옆에 앉으셔서 혹여나 치아가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시기도 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돌을 씹어도 상관없는 나이였다. 두그릇, 세그릇 뚝딱 밥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쓸쓸하고 허전했다.

 

 

나이가 들어 식당에서 간장꽃게장을 먹으려면 기만 원 이상을 치러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꽃게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올랐고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질좋은 메주로 담그는 간장도 이젠 없는지 장독대의 독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진작 배워뒀어야 했는데. 혹여나 꽃게를 구해도 어떻게 담그는지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기억 뒤편으로 사라진 어머니의 추억의 간장게장.

 

 

담근 지 이틀만에 꺼내어 먹으며 집게다리가 몸통에 비해 상당히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트너에게 말해 집게다리만 뜯어서 간장에 넣어둘까요.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어머니는 아마도 몸통만 따로 아버지 밥상에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친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다 지난 일이다. 집게다리를 씹었던 이가 아플 뿐이다.

 

 

2015/11/11 07:23 2015/11/11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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