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의출처
분류없음 2015/11/04 09:40제목: 번뇌의 출처
보름 전에 셀폰을 바꿨다. 전에 쓰던 것은 윈도우즈폰인데 오래 전에 단종됐다. 새로 장만한 것은 안드로이드 구글폰이다. 직원이 전화번호부를 새로운 폰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서 구글이메일에 저장된 사람들을 폰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옛날 폰에 있는 전화번호들이 새로운 폰에는 없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다. 작은 키패드를 붙잡고 작은 글씨를 입력하느라 쩔쩔매다가 아! 구글이메일로 입력하면 편하겠구나! (깨달음의 순간) 랩탑으로 구글이메일의 컨택트 리스트에 접속했다. 어머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구나. 구글플러스라는 것을 비롯해서 거의 페이스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구글이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아티클은 가끔 봤지만 이 정도였는지 차마 몰랐던 것이다.
기능을 하나하나 살피며 한사람 한사람을 리뷰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교회에서 자원활동 팀장을 할 때에 팀원들 연락처를 모두 저장했었고 대부분 LGBT 그라운드로 레퓨지를 신청한 사람들이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류신분을 획득한 뒤로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나를 블럭한 것을 알게 됐다. 마우스를 여기저기 움직이는 도중 갑자기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가 뜬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나는 그 사람을 팔로잉한 적이 없다. 그런 기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 다른 사람도 나를 블럭했을까 찾아봤다. 하지만 그 기능으로 나를 차단한 사람은 Abc Defg 라는 그 사람이 유일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불쾌하게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다. 그럴 수도 있겠다.
소셜미디어를 하다보면 온라인에서 친구가 되었음에도 소통하고 싶지 않은 특정 개인이 있기 마련이다. 일 년 내내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도 있고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은 괜찮은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언프렌드 (unfriending) 를 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친구신청 (friending) 을 하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산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일들이다. 그런 일들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정작 마음을 많이 쏟아 정성을 다해 고민해야 할 일이 닥칠 때 번아웃 (burn-out) 하기 쉽다. 그래서일까. 일찍이 퍼거슨 경은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with your life other than that. Go to a library and read a book. 인생에는 (소셜미디어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라" 라고 일갈하셨다.
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나. 하지만 Abc Defg 라는 사람이 설정한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이것 또한 그가 그의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나를 그냥 싫어할 수도 있겠다. 부딪힐 일이 별로 없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저 귀찮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시안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미래에 부딪힐 일이 있을 때 보다 넓은 거리를 유지해달라는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다. 어쩌면 페이스북에서 언프렌드를 하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수많은 가정과 추측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일 같으면 시간을 두고 생각한 뒤에 당사자와 소통할 방법을 찾겠지만 이번엔 그런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아마 평소에 그 사람을 높게, 훌륭하게 평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중에 늙어서라도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옆집에 살면 정말 좋은 이웃일 사람인데,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하고 싶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가령 나는 100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상대는 3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 100 이라는 나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면 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모든 상처와 번뇌는 나에게서 나온다. 잊어버리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