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분류없음 2016/10/27 10:31
1.
새로 일하게 될 회사에서 열린 스탭 미팅에 다녀왔다. 회사 내 전체 프로그램의 풀타이머들이 참여하는 격월간 미팅. 아직 공식적인 시프트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월요일부터 트레이닝과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고 고용레터도 그 날짜로 시작했으니 당연히 미팅에 참여하라는 분부. 평사원 중에 아시안은 꽃개 딱 한 명. 당연히 백인 수가 많지만 그래도 흑인이 제법 있다. 매니저 급에서도 중국인 한 명, 흑인 한 명 외에 나머지는 다 백인이다. 수직화해서 들여다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백인이 많은 건 모든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독특한 것은 디렉터 급에 흑인 남성, 백인 남성 각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 (백인) 이라는 점. 아침에 도착해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묻는다. 이틀. 말하는 나도 물어본 그 양반도 머쓱.
이그제큐티브 디렉터 (Executive Director, ED; 한국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가 새로운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프리젠테이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식겁했다. "여러분은 우리 커뮤니티의 변화를 불러올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우리 커뮤니티의 주인입니다. 여러분 손에 우리 커뮤니티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따위의 말씀을 하시는데 뭔가 좋지 않은 기시감, 데자뷰. 한국에 있을 때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족같이 일할 분을 찾습니다." 느낌 탓이겠지? 설마.
2.
작년부터 일년 동안 일한 한 프로그램의 매니저에게 완곡하게 전한 사임은 반려되었고 오히려 붙잡혔다. 붙잡혔다기보다는 사임을 전한 것이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 되려 꽃개 네가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알려줘. 우리는 대환영이야. 이거 뭐지. 나쁜 일은 아닌데 꼭 좋은 일만도 아니다. 어기적어기적 뭉개는 걸 딱 싫어하는데 이런 경우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모르는 척하는 게 좋은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꽃개 너 다 좋은데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다. 한국인 어른이 이런 말씀 하셨으면 눼눼 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렸겠지만 비한국인 어른이 하신 말씀이니 마음에 새겨 듣는다.
3.
내년 여름에 원더랜드에 동물원에 같이 놀러가자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한 명의 클라이언트가 돌아가셨다. 벌써 며칠 째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된 스탭들이 매니저의 허락을 받아 유닛을 뜯고 들어갔더니 이미 돌아가신 것. 아직 46살밖에 되지 않아 약물중독이나 여타 파울플레이가 있었는지 염려되어 부검을 했지만 심장마비 돌연사. 주말 밤근무 도중 이메일을 받았는데 머리털이 정말이지 몽창 쭈뼛 섰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구 이야기로 수다를 떨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안녕,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주던 스윗가이였는데. 한참을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원더랜드와 동물원은 나중에 이 다음 세상에서 같이 가자.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