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L단상

분류없음 2016/10/21 00:01

 

독립적인 생활 (independent living) 이 가능한지 아닌지,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척도로 된다. 그런데 꽃개의 일터에서, 정신건강 필드에서 말하는 이 독립적인 생활은 직장/ 학교생활을 하고 이웃/ 친구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한 사람이 스스로 세수하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세탁하고 밥을 해먹고 설겆이를 하는 그런 것을 말한다. 스스로를 케어 (Self Care) 하는 일이다. 보통 ADL (activities of daily living) 이라고 불리는 이 척도에 스스로 돈을 관리할 수 있는지의 여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이 추가된다.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과 은행계좌 등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으면 정부에서 별도로 보호자를 선정한다.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가 있으면 조금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어쨌든 정신질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ADL 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따라 하우징도 그에 맞춰 지정하고 신청할 수 있다.

 

 

한국에서 ADL 은 "일상생활능력" 이라고 번역하여 쓰이는 것 같고 대개 노인들이나 뇌병변 등 뇌질환 장애인들의 장애를 구별하는 척도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 인간이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이 기본적인 역할을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사람들이 많이들 간과하는 것이 있다. 씻고 닦고 요리하고 치우고 청소하는 이런 역할들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거다. 사실은 굉장한 주의와 정리정돈 능력 (organized skill), 시간 관리 (time management skill) 등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으면 혹은 주변에 이 노동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밀림의 야수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잘 할 줄 알고 충분히 배웠는데도 알츠하이머 등 노환에 따른 뇌질환이나 여타 다른 정신질환 탓에 배운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짐승처럼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와 가족, 국가의 보조, 간섭이 필요한 국면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부에서 보조하고 간섭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인간" 이므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무력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을 더 존중하고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보조와 간섭이 뒤따라야한다.

 

 

최근까지 꽃개는 ADL 장애가 노인들이나 뇌질환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들이 스스로 씻는 것조차 할 줄 모르고, 자신이 잠드는 침대의 침대커버조차 씌울 줄 모르는 것을 보면서 기함을 토했다가 이들이 이 정도로 아픈 건가. 한참을 관찰했더니 그것은 또 아니었다. 컴퓨터도 쓸 줄 알고 학교도 다니고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를 전문가처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워커 (Youth Worker) 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 청소년 그룹에서 ADL 이슈가 일어나는 일이 보편적인 현상인지 물었더니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라면서 별도의 관찰과 지도 (supervision) 가 필요하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씻는 것조차 못할 정도라면 심하지 않나. 이를 닦고 세수는 해야하지 않겠니. 네 몸에서 냄새 나. 사람들이 그럼 안 좋아해. 몰랐단다.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전혀 몰랐단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꼭 씻어야하냐고 되묻는다. 자기는 컴퓨터를 계속 하고 싶단다. 나중에 씻는단다. 그러나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개입이 필요한 지점이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방으로 따로 불러서 토론을 시작한다. 공동생활 공간이므로 공동의 약속은 지켜야한다. 그것이 싫으면 호텔로 가라.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여기에 머물러야 하고 여기에 머물기 위해선 공동의 약속을 지켜라. 싫다. 그러면 여기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떠나라. 대부분 이 지점에서 협상이 끝나는데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느냐 이 악마들아, 냄새나는 차이니즈 니 나라로 돌아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떠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성애자-이민자 가족의 아들-남자인 경우가 많다. 게이/트랜스젠더들은 상대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높고 유달리 청결도가 높아 (사실은 이것도 조금 슬픈 일이다. 바디이미지 body image 에 집착하는 그 이유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유러피안 문화 가족의 경우 프로테스탄티즘과 근면-성실 같은 자본의 윤리를 내면화한 탓인지 기본적인 ADL 을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이제 막 어른이 된 청년세대, 혹은 엄마와 누나, 할머니들 주변 여성들이 모든 일을 대신 해주었던 문화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온 청년세대/ 남자어른에게서 발생한다. 비율이 얼척없이 높다. 그 까짓거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너네들이 하면 되잖아. 내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사람을 이래라저래라 해. 오히려 호통을 친다. 뭥미?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노환이나 여타 다른 뇌질환이 없는데도 기본적인 셀프케어가 불가능한 이런 상태, ADL 이 불가능한 상태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사지가 멀쩡하고 여타 다른 생활을 하는 데엔 지장이 없어보이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만 ADL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로 정신질환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반반의 의견이다. 동의하는 그룹은 아마도 곧 이런 질환을 규정하는 터미놀로지가 나올 것이라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반대하는 그룹은 젊은 세대의 특질이므로 세대적 현상일 뿐 정신질환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꽃개의 일터에 들어온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ADL 불능이 원인으로 되어 가족과 단절되거나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별통보를 받거나 등등 일종의 격리 (isolation) 현상을 겪고 뒤따른 고통으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을 학문적으로 밝힌 자료가 반드시 있을테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든 아저씨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다. 사지멀쩡하고 기백만 원의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아내나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양말도 못 찾아신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밥을 차려먹는 일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씻는 게 용할 정도다. 이들은 말할 것이다. 에이, 내가 할 줄 몰라서 안하는 줄 알아?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래.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별 거다. 스킬이 필요하고 숙련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집안의 여성들이 이 모든 노동을 조용히 감당하고 남자사람을 사람구실하도록 묵묵히 조력하는 일이 기본값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문제적인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단위에서 - 도메스틱 림에서 - 이 문제들이 감춰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사회에도 캐나다 사회처럼 ADL 불능 남자어른들이 쏟아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면 전문가를 고용해 아웃소싱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감당하지 못할 차원이 도달하면 사회문제로 곧장 부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해결방안은 있다. 여성들에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예전에 너네들이 조용히 하던 일이나 하라고, 낙태도 안되고 애나 낳고 키우라고 하면 된다. 여성들이 그리고 일부 남성들이 동의하지 않는 게 문제지. 뭐, 이도저도 안되면 전쟁이나 일으키지. 전쟁은 모든 것을 과거로, 문명 이전의 생활로 되돌리고도 돈있는 사람의 배를 두둑히 불리는 신기한 마법의 힘을 갖고 있으니. "여성은 전쟁을 반대한다" 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2016/10/21 00:01 2016/10/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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