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볼레로

분류없음 2016/11/11 07:14

 

어제 저녁에는 짝꿍과 함께 다운타운 음악당 (Roy Thompson Hall) 콘서트에 다녀왔다. 올해 벌써 세번째 방문이고 모두 시립오케스트라 (TSO) 가 연주하는 행사였다. 첫번째와 어제는 짝꿍이 그동안 자원활동 (volunteering) 한 곳에서 자원활동가 감사 행사 (volunteers appreciation event) 의 일환으로 기획한 행사에 초대받아 무료 티켓을 받았다. 두번째 방문은 짝꿍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다녀왔다. 어제 좌석은 발코니였는데 가격이 최소한 60달러짜리였다. 두 사람이 표를 샀으면 세금붙여서 최소한 140달러 안팎을 지불했어야 했고 따라서 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기회였다. 짝꿍에게 감사하고 감사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짝꿍을 만난 것도 감사하고 평소에 부지런히 커뮤니티 활동을 해두어 이렇게 이벤트 기회를 맞이한 짝꿍이 대견스럽다. 늦은 저녁에 피곤을 무릅쓰고 길을 나서준 것에도 고맙다.

 

 

어제 테마는 "1920년대" 였다. 시작곡은 "종달새의 비상 (The Lark Ascending, Ralph Vaughan Williams)" 이었는데 바이올린 콘서트 곡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따로 일부러 찾아 들어본 곡은 아닌데 역시 테마에 맞게 근대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두번째 곡은 알콜중독자 시벨리우스의 7번 교향곡.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올해로만 벌써 두개째다. 연주 내내 7번 교향곡을 끝으로 긴 침묵에 들어간 이이가 그동안 과연 술을 끊었을까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을 좀 하다보니 금새 끝났다. 세번째 곡은 비올라 콘서트 곡이었는데 잘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 나는 아마도 비올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마지막 곡은 대망의 "볼레로 (Boléro)". 라벨은 그이의 피아노협주곡 G, 특히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 때문에 꽃개가 엄청 좋아하는 작곡가. 라벨은 뭔가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강하고 정통에서 한참 떨어진 것 같은 아웃사이더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아마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그이의 "볼레로" 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이는 마음을 간신히 다스렸다. 

 

 

역시 아웃사이더인 작은북과 플루트로 시작한다. 현악기인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이 주류라면 타악기, 관악기 등은 어쩐지 아웃사이더 같다. 비유를 굳이 하자면 현악기는 백인주류집단 같고 타악기와 관악기는 비백인들, 때로는 흑인, 때로는 황인 같다고 할까. 작은북을 치는 것도 아니고 안치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그 특유의 가락을 이어가는 동안 관악기인 플루트, 클라리넷 등이 교대로 같은 가락을 연주하고 특이한 것은 섹소폰까지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재미난 것은 그동안 주류사회를 주름잡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은 피치카토 (pizzicato, 활이 아닌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것) 를 계속하면서 머쓱하게 무대를 지킨다. 볼륨은 점점 커지고 숨어서 연주하는 것 같던 작은북의 연주자는 드디어 북채를 완전한 형태로 잡아들었다. 같은 가락이 계속 반복되므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데 참여하는 악기, 강도와 세기 등 완급을 조절하여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든다. 원래는 무용가의 제안으로 스페인 민속음악에 착안하여 작곡했다는데 아, 그래서 그렇게 플라맹고 같은 느낌이 나기도 했구나 싶었다. 12분간의 연주가 끝나고 일부러 일찍 일어나 나오면서 사람들의 갈채박수 소리를 밖에서 들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투럼푸 등이 심경을 곤란하게 하는 이 마당에 아웃사이더 스스로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런 연대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던 늦은 밤의 콘서트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차 안에서 시립오케스트라 (TSO) 도 바로크오케스트라 (TAFELMUSIK) 도 헨델의 메시야 (Messiah) 를 프로모션하고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크리스마스 시즌에 메시아가 유행이긴 하다. 짝꿍은 세월이 하 수상하니까 더더욱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릴 것 같다는, 간절히 원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허할 것이다. 그동안 사느라 너무 지쳐서 거의 도박하는 심정으로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메시아는 절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어쩌랴. 작은북으로 끝까지 무대를 지킨 볼레로의 오늘밤 연주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로 현악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되고 싶지도 않다. 아마도 어쩌다가 한 가락 연주하는 타악기, 트라이앵글 정도가 될 성 싶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냥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 현악기들이 지랄만 안하면 좋겠는데. 참 좋겠는데.

 

 

2016/11/11 07:14 2016/11/1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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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득명 2016/11/11 12:18 Modify/Delete Reply

    현악기는 빈부격차?가 많이 나는 악기같아요. 비싼 현악기를 연주하면.. 조금 못해도 악기서 먹고 들어가는게 있어요. 예를 들자면.. 보헤미안랩소디 기타연주자 같이요. 연주를 못한다는게 아니고 독특한? 기타로인해 자기만의 전달을 하는 듯 싶습니다.

    그래서 현악하는 사람들은.. 거울아거울아 누가 젤루 이쁘냐.. 하듯이 악기에 집착합니다. 물론 소리에 대한 길이 얼마나 잘 드느냐도.. 현악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러시아 연주가들처럼 얼마나 인류 보편의 혼을 담아내느냐가 좋은 연주라 생각합니다.

  2. deslivres.net 2016/11/16 03:53 Modify/Delete Reply

    Тhanks foг fonally talking aƅօut >꽃을물고뛰는개 ::
    라벨볼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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