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잔재
분류없음 2016/12/14 03:44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만나는 한 클라이언트. F라고 해두자. F는 동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이민왔다. F보다 먼저 이민온 친척 아저씨는 본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캐나다에서 그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F의 아저씨는 온타리오에 있는 대학도시 Kitchener 에 정착했고 그 도시에 있는 한 대학에서 야간 시큐리티 (수위) 로 일하면서 그 대학의 Social Work 과정을 8년만에 졸업했다. 졸업 뒤 근사한 직업을 갖게 된 F의 아저씨는 본국에 있는 조카들을 한 명씩 초청 (sponsorship) 하기 시작했다. F는 그렇게 해서 캐나다 이민자가 되었다. F는 그이의 아저씨처럼 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이윽고 시작된 내전 탓에 대학 졸업장을 얻지는 못했다. 캐나다에 와서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F는 "공부머리" 가 아니라며 웃었고 여차저하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에서 산다.
F는 여느 클라이언트들처럼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김없이 만나는 그이의 일상에 한 가지 특이점은 매주 금요일마다 매우 늦은 시간에 피곤한 행색으로 돌아온다는 것. 지난 주 금요일 역시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에 돌아온 F의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이거 우리 나라 스타일로 만든 케이크야. 반은 네가 먹고 반은 나에게 돌려줘." 간혹 클라이언트들이 작은 선물을 주기는 하는데 밖에서 직접 케잌을 사들고 들어와 이렇게 구체적으로 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봉지를 뜯어보니 치즈케잌 + 아이스크림케잌처럼 생겼다. 케잌나이프로 살짝 반을 갈라 플레이트에 옮기려는데 자기 것은 그냥 원래 있던 컨테이너에 담아서 달란다. 응, 알았어. 포크로 한 입 먹어보니 굉장히 크리미하고 부드럽다. "와, 이렇게 소프트하고 부드러운 케잌은 처음 먹어봐. 너네 나라에서 이렇게 맛있는 걸 먹는다니 무척 부러운 걸." 솔직히 케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짐짓 치켜세우며 말했다.
"우리 나라는 옛날에 이탈리아 식민지였어. 전통 음식 말고 유럽식 음식은 모두 이탈리아 스타일이야. 금요일마다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디저트야. 죄다 이탈리아 스타일 디저트밖에 없어."
아, 그랬구나. 금요일마다 식당에서 일하느라 그렇게 피곤해보였구나. 그래서 그렇게 금요일마다 늦게 돌아왔구나.
"너네 나라는 어떠니. 우리 나라는 옛날에 이탈리아 식민지여서 우리 나라에서 공부한 건 캐나다에서 인정해주지 않아. 옆나라 케냐는 영국 식민지여서 그랬는지 케냐에서 메디컬닥터 학위를 받아 캐나다에오면 2년만 공부하면 자격을 인정해주는데 우리 나라에서 의사자격증을 따도 캐나다에 오면 아예 소용이 없어.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야 해. 너네 나라는 어때? 사우스코리아는 잘 사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사우스코리아에서 메디컬닥터를 받으면 캐나다에서 자격증 따는 건 어렵지 않겠지?"
오오. 몰랐다. 케냐가 1960년대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것은 알았지만 학제와 시스템이 여전히 영국식이어서 케냐에서 공부한 것을 캐나다에서도 손쉽게 (상대적으로 손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차라리 우리 나라가 옛날에 영국 식민지였으면 우리 친척 아저씨도 8년동안이나 대학을 다니고 야간에 수위로 일하고 그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나도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하는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쓰잘데기 없이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식민지였을까. 웃기지 않아? 이탈리아 식민지여서 좋은 건 하나도 없어. 아, 하나 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케잌을 먹을 수 있다는 거."
식민지를 겪은 조선-대한민국의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엔 다소 씁쓸한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친구들과 농담식으로 차라리 미국 식민지였으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거나 더 손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을텐데 쓰잘데기 없이 일본 같은 나라의 지배를 받아서 빠께쓰, 쓰봉, 쓰메끼리, 벤토, 와리바시 따위의 올드패션드한 일본식 잔재만 남아있다는 식의 자조와 푸념을 늘어놓은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말고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으면 수학능력 영어듣기 평가도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토플 공부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텐데, 셰익스피어가 구사했던 영어도 그냥 고문법 정도로 간단히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조선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형편없이 쓸데없는 것들만 남겨줬을까... 모든 것이 농담 아닌 농담처럼 그러나 제국의 식민지 이후 태어난 탈근대 세대의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반역사적이고 반주체적인 그런 수다들...
호기심이 많고 자립심이 강한 편인 F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질문하고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F는 캐나다에서 취득한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지만 그 졸업장만으로는 F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아프리카 무슬림 백그라운드를 지닌 F는 캐나다로 이민온 뒤 비아프리카 비무슬림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편견과 차별에 지쳤다. F가 본국에서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을 캐나다에서 동일한 조건과 수준으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무수한 도전과 패배, 열패감을 겪으면서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고 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야. 우리는 기껏 백만 원도 안되는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거나 탈세를 하는 건 아니잖아. 억만장자들이 어떻게 그 돈을 벌었는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범죄자야. 우리를 뭐 대단한 범죄집단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이젠 얘기하는 것도 지쳤어. 그냥 나는 여기서 살래. 밖은 지옥이야."
제국의 잔재는, 식민의 잔재는 오늘도 지구상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식민의 잔재, 억압의 잔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저항하는 법을 잊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F와 전혀 무관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F는 무력한 것도 저항을 포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몸을 낮추고 기다리고 있다.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