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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재판 중’ 이재용 방북 비판한 언론사 9개 중 1개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사실상 정치적 사면복권”… 경향, ‘종부세 폭탄론’에 “혹세무민 바탕 둔 허상” 작심 비판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2018년 09월 17일 월요일
 

9개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방북을 비판한 언론사는 한겨레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은 전 대통령 박근혜씨 및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현재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오는 18일 시작되는 ‘2018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52명 중 기업인은 17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도 대거 포함됐다.  

 

▲ 17일 한겨레 2면
▲ 17일 한겨레 2면
 

한겨레는 17일 “이재용 재판 끝나지 않았는데…원칙 무시한 청와대”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부회장 방북에 대해 “사업 연관성이 있더라도 탈법·불법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 배제한다는 원칙을 제시해 온 것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롯데 신동빈 회장, 포스코 권오준 회장, KT 황창규 회장 등은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때 경제사절단을 신청했다가 정경유착, 총수 배임‧횡령 혐의 등을 산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청와대는 논란에 대해 “이 부회장 재판은 재판대로 엄격히 진행될 것이고 일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성인 경제학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약속했는데 이재용 부회장 수행단에 포함시키는 건 사실상 정치적 사면복권 해주는 것”이라며 “참여정부가 재벌 관료에 매달리다가 개혁을 실패한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수백조 매출 올리는 경영하려 분‧초 쪼개쓰는 대기업 총수”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실무 협상 과정에서 대기업 총수의 참석을 원한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재계 반응 또한 “대북(對北) 제재가 없었던 1·2차 평양 정상회담과 달리 현재는 대북 제재로 인해 기업들의 경협 사업 추진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고 보도했다.  

 

▲ 17일 동아일보
▲ 17일 동아일보
 
▲ 17일 한국일보 1면
▲ 17일 한국일보 1면
 
▲ 17일 조선일보 3면
▲ 17일 조선일보 3면
 

조선은 더 나아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 등 국제 제재 흐름을 거슬러 북한의 경협 구상에 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이 때문에 수십~수백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며 분·초를 쪼개 쓰는 대기업 총수들이 2박3일간 평양에서 남북 정상의 '병풍' 역할만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적었다.

오는 18~20일 간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언론 분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경제협력 진전에 쏠렸다.  

세계일보는 △판문점선언 이행 성과 점검 및 향후 추진방향 △한반도 비핵화 실천적 방안 △남북 군사 긴장 완화 및 무력 충돌 방지 구체적 방안을 이번 회담 3가지 주요 의제로 꼽았다. 세계일보는 “최대 관전 포인트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을 다시 지시하고 전면적인 비핵화 협상을 재가동할 만큼 만족스러운 북측 입장 변화가 나오는지”라 분석했다.  

국민일보는 이번 회담을 “한반도의 65년 정전(停戰) 체제를 종식시키고 전쟁 공포를 몰아내기 위한 결정적 관문”으로 규정했다. 국민일보는 또한 “이번 회담은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위한 중대 고비로 평가된다. 북·미 간 실무협상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핵시설 리스트 신고 약속과 종전선언을 동시에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체제 안전 우려를 감안해 종전선언과 핵시설 리스트 신고 약속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동시에 주고받는 방안”이라고 관측했다.

경향신문 “사실 왜곡에 바탕을 둔 혹세무민의 ‘종부세 폭탄론’”

경향신문은 1면 및 4면 분량의 기획기사로 경제지‧보수언론이 제기해 온 ‘종부세 폭탄론’은 허구라고 비판했다.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집값 상승분과 비교해 종부세·재산세는 미미하게 늘어나는 사례가 많은 상황에서 ‘종부세 폭탄론’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취지다.  

 

▲ 17일 경향신문 1면
▲ 17일 경향신문 1면
 
▲ 17일 경향신문 3면
▲ 17일 경향신문 3면
 

경제지‧보수언론은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이 과세표준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3.2%까지 올려 세부담을 대폭 늘렸다는 ‘폭탄론’을 지적해왔다.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 강남권 한 아파트 보유자는 1년9개월 새 6억5천만원 자산을 증식했으나 종부세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아파트 84.88㎡ 공시가격이 1주택자 기준 종부세 납부 기준 9억원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집값 상승분에 비해 종부세와 재산세를 합친 보유세 증가분이 미미한 경우는 더 많다”고 분석했다. 160.28㎡ 면적의 강남구 아파트는 1년 간 매물 가격이 30억원에서 34억원으로 올랐으나 이번 개정안에 따른 보유세 증가 예상분은 1371만원에서 357만원 증가한 1728만원이다.  

경향은 “서울 용산구 아파트(59.88㎡)와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50.67㎡) 두 채가 있는 주택 보유자도 합산 시세가 올해 초 22억원에서 현재 30억원까지 올랐다. 8억원 규모의 불로소득을 얻었지만 내년도 보유세 증가 예상분은 717만원(1260만원→1977만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17일 동아일보 5면
▲ 17일 동아일보 5면
 
▲ 17일 조선일보 사설
▲ 17일 조선일보 사설
 

반면 동아‧조선은 ‘중산층 1주택자’나 고령 은퇴자들의 세부담을 강조했다. 정부가 1주택 보유자까지 9‧13 대책의 대상으로 삼으며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등 각종 대출이 막히면서 청약시장에서도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조선은 사설 “1주택자 보유세도 2~3배 상승, 은퇴자는 어쩌라는 건가”에서 “공시가 6억4400만원인 서울의 한 아파트의 경우 보유세(종부세+재산세)가 올해 174만원에서 2022년 561만원으로 3배 이상 뛰게 된다”며 “투기 의도가 전혀 없이 수십년간 같은 집에서 살아온 노년층, 특히 별도의 현금소득이 없는 연금 생활자들은 가슴이 턱턱 막힐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경향신문은 이와 관련 “종부세 인상이 1주택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종부세는 현재 인별 합산과세가 되고 있다”며 “부부가 공시가격 12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어도 공동명의로 50%씩 소유하면 각각 최대 6억원씩 공제받아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공시가격 12억원이면 시세는 18억~20억원 정도”라고 지적했다.  

동아는 중대형 아파트는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기로 한 개정안에 대해 “(1주택자의) 새집 갈아타기 꿈이 희박해졌다”며 “‘왜 실수요자인 1주택자까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린 1주택자 시민의 말을 전했다. 동아는 부부 합산 연소득 1억 원을 초과하는 1주택자는 10월부터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점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공시가격이 오르면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늘어나거나 재산세액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문제의 초점은 공시가격의 형평성”이라며 “고가 단독주택이나 가격이 급등한 지역의 아파트는 시세의 60% 이하에서 공시가격이 형성돼 있다. 일반 아파트와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시세 대비 70% 수준인 것과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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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마을공동체 고수들과 만나요

19일 마을공동체 고수들과 만나요

조현 2018. 09. 16
조회수 117 추천수 0
 

 

<마을공동체 고수들이 함께 한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대담-.jpg» 12일 서울시청 3분기 직원 조례에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주제로 강연한 조현기자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 대담하고 있다.

 

 제가 지난 12일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주제로 서울시청 3분기 직원 조례에서 강연을 했지만, 실제 정말 강연을 해야 할 분들은 따로 있습니다. 
 책표지-.jpg 제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서울 수유동과 강원도 홍천에 있는 밝은누리공동체 설립자 최철호 대표, 서울 도봉동 은혜공동체 설립자 박민수 대표,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 아래 논골마을 윤수진 논골작은도서관 관장, 파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한귀영님입니다.
 
 밝은누리는 1990년대부터 공동체에 뜻을 두고 몇명이 모여서 시작을 했는데요. 그들이 돈이 전부인 듯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다른 삶을 선택해 가치 있게 살면서도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혼삶 시대인데도 인수동밝은누리엔 싱글들도 30~40명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정말 행복하려면 서로 돕고 의지하고 보듬고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려 결혼을 하고, 출산까지 하는 것은 보통의 한국사회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지요. 공동체에 태반이 아이들이지만, 독박육아에 대한 부담 없이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스트레스보다는 마음이 정화되고, 행복이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밝은누리는 희망이 아닐 수 없지요. 그 중심에 최철호 대표가 있습니다.

 

1밝은누리-.JPG»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공동체에서 함께 한 마을공동체 사람들. 윗쪽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최철호 대표

 
 도봉동 은혜공동체는 집값 아우성으로 신음하는 서울에서 1인당 1억원도 안되는 비용을 들여, 집안에 카페와 바와 천문대와 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 세미나실, 공동식당, 댄스실, 운동실, 옥상정원까지 갖춘 특급호텔같은 곳에서 사는 신비를 창조한 것에 놀라게 됩니다. 은혜공동체 건물은 최근 서울시 건축대상 최우수상과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불가능해보이는 이 모든 것이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은혜공동체는 50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유주택입니다. 저녁마다 공동식당에서 화려한 파티가 펼쳐지는데, 한달 1인당 식비가 10만원입니다. 여성들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살림에서 해방되어서 저녁에서 수영 등 취미생활을 할 수 있지요. 아이가 있더라도 말이지요. 함께 사는 집에 이모 삼촌이 너무 많아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 귀찮이즘이 보편화한 시대에 그들은 시간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공간적으로 더 가까이 보내고 싶어하니, 조직의 단맛, 함께 하는 맛을 알아버린 때문입니다. 박민수 대표는 부인과 함께 심리상담가여서 치유를 시켜 훨씬 더 관계와 소통을 잘 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2빠-.JPG» 직장에서 퇴근한 뒤 은혜공동체 공유주택 안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은혜공동체 사람들. 윗쪽 맨 왼쪽이 박민수 대표

 
 밝은누리나 은혜공동체 처럼 만들어진 공동체만이 아닙니다. 논골마을같은 보통의 마을들도 공동체적 어우러짐으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지주고 있습니다. 논골마을은 서울에서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해 10평 정도의 작은 빌라 6천세대가 빼곡하게 들어선 곳입니다. 10년 전까지만해도 마지못해 사는 곳, 누구나 떠나고 싶어하는 곳이었지요. 그런데 윤수진 관장이 들어가 마을을 살리면서 놀랍게 변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 사람들이 스스로 마을활동가가 되어 스스로 그런 달동네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면, 인간의 힘이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만든 논골작은도서관만큼 작은 공간이 엄청난 구실을 하는 곳을 저는 지금까지 본적이 없습니다. 그곳은 마을 사람들의 도서관이자 놀이터이자, 문화센터이자 게스트하우스이자 아이들의 방과후 학교이자 파티장소이자 뭔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만들어내는 희한한 곳입니다. 이 마을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하는 다양한 축제들은 신바람납니다. 가난하기에 돈이 드는 여행을 선뜻 갈 수 없던 던 사람들이 남한산성에 하룻밤 캠프나 영화캠프 등을 열어 즐기고, 온갖 재밌는 축제를 통해 신나게 놉니다. 예전엔 아래를 내려보며 시끄럽다고 민원이나 넣던 고층아파트 주민들도 이제는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었지요.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프레임 속에 갇힌 세상에서, 부자 동네에 살지 않아도, 더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논골은 이 시대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수진관장이 들어간 뒤 가장 살고싶지않은 마을이 살고싶은 마을로 변했습니다. 논골 빌라들은 워낙 오래되고 낡고 비좁아 지하는 대부분이 비어갔는데, 요즘은 이 재밌는 마을에서 함께 살려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지하층까지 채워지고 있습니다.

 

3논골-.JPG» 경기도 성남시 남한산성 아래 논골마을작은도서관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놀고있다. 윗쪽 맨오른쪽이 윤수진 관장

 
 경기도 파주는 신도시 가운데서도 변방이지요. 문발동 공방골목도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그냥 살기 위해 한집 두집 이사오거나 집을 지어 생긴 동네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제 저도 가장 살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한 분이 자기집 1층 공간에 헌탁구대를 주어와서 놓고, 누구나 칠수 있게 했지요. 그 탁구대에 사람들이 모여들여 우리동네탁구모임(우동탁), 금요일인 불금탁, 부부들끼리 부부탁, 아이들은 아동탁 모임을 만들었지요. 그렇게 신나게 놀면서 언제부터인지 밴드에 누군가 공지하면 요리 하나씩을 가지고 와서 포트럭 파티를 엽니다. 탁구대를 중심으로 남성혼성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도 불러요.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리는 재미에 맛을 들린 사람들은 두셋만 모이면 동아리를 만듭니다. 지금은 50여개 정도 모임이 있는데요. 
 이곳에 함께하는 이 중에서 한겨레신문 한귀영 여론데이터센터장도 있습니다. 한 센터장은 산부인과질환으로 몇년전 병원에서 자궁을 도려내라는 권유를 받았는데요. 그는 8개월간 휴직을 하고, 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그런 모임을 함께 하고, 8개월 뒤 병원에 가보니 병이 싹 낳았다고 했답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재밌게 놀았을 뿐인데 말이지요. 사람들과 노는데 재미를 붙인 그는 자기 집에 사비로 빔프로젝트를 설치해 토요일밤이면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영씨네마의 밤을 갖습니다. 영화를 본 뒤 포도주를 한잔씩 하면서 영화 얘기를 통해 자기의 삶들을 얘기하며 웃고 우는 밤을 보낸답니다. 또 천불퀸이라는 여자들끼리 모임도 있는데요. 늦은 밤 여자들끼리만 모여 ‘천불퀸’모임을 합니다. 그날 생일인 사람을 퀸으로 모셔, 그가 살면서 속에서 천불이 난 애기를 터놓게 하고, 모두 응원하고 지지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보듬어줍니다. 이웃들끼리 그렇게 지내면, 그간 살면서 생긴 상처들이 치유 되지않을 수 없습니다.
 

4한귀영미토-.JPG» 경기도 파주시 논골마을 공방골목을 중심으로 온갖 동아리를 만들이 공동체적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마라톤모임에서 왼쪽에서 두번째가 한귀영씨


 이렇게 귀한 4분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있으신분, 인간관계를 좀 더 잘하고 싶으신 분, 관계를 통해 치유하고 싶은 분, 몇명이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분들. 기존 공동체에 합류하고 싶으신 분들. 어떤 분들이라도 이 분들을 만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모시기 어려운 이분들을 모시고, 저와 함께 토크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셔서 궁금한 걸 물을 소중한 기회입니다. 한분 한분 따로 뵙기가 쉽지않은 이들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이 분들을 모셨으니, 실기하지않고, 한꺼번에 만나는 혜택을 놓치지않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않도록 공유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에 들어가 신청하면 됩니다. 30초도 걸리지않습니다. 19일(수) 오후 7시에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마을공동체 촌장님들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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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트럼프 대북 접근 지지… 평화협정으로 비핵화 이끌어야”

“북이 원하는 건 미국과 평화협정… 그들은 한국전쟁의 종전을 보고자 한다”
▲ 지난 12일 미국 에모리대학교 ‘신입생들과 대화’에 참석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사진 : 뉴시스]

재임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조선)과 직접 대화를 통해 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하곤 “북한(조선)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비핵화를 이끄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 에모리대학교의 ‘신입생들과 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을 질문 받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조선)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면서 이같이 답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15일 보도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공개 지지한 건 카터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어 “북한(조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구두 합의’를 이룬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두 정상이 상호 이해의 문을 열었고 추후 합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과장해서 말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세 차례 방북 경험을 언급하면서 “북한(조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미국과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을 맺는 것”이라며 “그들은 한국전쟁의 종전을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휴전협정으로만 끝난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했지만 북한(조선)은 ‘봉쇄정책’으로 압박했다”며 “북한(조선)은 자신들도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조선)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봉쇄정책은 실수(mistake)”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때문에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북한(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할 기회를 주는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면서 “내가 만났던 북한(조선) 최고위급 지도자들은 그런 의지를 밝혀왔다. 그것이 진심이기를 바라고, 또 트럼프 대통령이 그럴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93세인 카터 전 대통령은 북미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위기 해결을 위해 트럼프 정부를 대신해 방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물론 방북은 성사되지 않았다.

앞서 카터 전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 시절 한반도 핵위기가 고도되던 1994년 북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 등에 합의하는 등 협상의 중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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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교회가 자본주의 부스러기 먹고 살고 있다”

등록 :2018-09-16 09:50수정 :2018-09-16 11:24

 

'정의의 길’로 50년 함세웅 신부

 

▶올해로 사제가 된 지 50년을 맞은 함세웅 신부가 최근 자신의 시대를 증언하는 대담집(<이 땅에 정의를>)을 냈다. 그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1970~80년대 격동의 역사 현장에 늘 서 있었다. 약자와 민중 편에 서왔던 정의구현사제단도 마침 창립 44주년을 앞두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인 함 신부를 지난 12일 오전 서울 원효로 성심수녀원 기념관에서 만났다.

 

“자본주의를 정화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자본주의의 하수인, 노예로 전락했다.” 함세웅 신부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교회를 질타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본주의를 정화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자본주의의 하수인, 노예로 전락했다.” 함세웅 신부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교회를 질타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은퇴 뒤에도 꼿꼿한 태도 유지 
“자본주의 정화시켜야 할 교회가
맘몬 논리 따라 기업처럼 행동”
“김수환 삶과 가르침 외면한 채
무조건 떠받들며 상품화만 관심”

 

 

해방신학 이어 여성신학도 수용
“가부장 말고 모성 신관 수용하면
세상에 평화와 사랑 더 넘칠 것”
“여성사제 허용…미사용어 바꿔야”
길거리 미사는 예수 체험 현장”

 

 

1974년 지학순 주교 수감 계기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앞장서고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폭로 조율 
87년 6월항쟁 도화선에 불붙여

 

 

“약자 편이었던 예수와 부처 정신
종교 지도자들이 놓치고 있어”
깨어있는 소수가 변화의 원동력
예언자적 소명 초심 잃지 말아야”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의 통치가 이어지던 시절,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집단 중 하나는 한국 천주교다. 전국의 주요 성당은 군과 경찰의 군홧발에 쫓기는 청년 학생과 갈 곳 없는 노동자, 농민을 품어주는 둥지였으며, 때로는 민주화투쟁의 진지였다. 일반 시민들과 천주교의 이러한 따뜻한 연대는 순전히 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87년 6월항쟁 등 역사적 주요 고비마다 사제단이 함께 했다. 사제단의 중심에는 함세웅(76·이하 호칭 생략) 신부가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막후 조율사였던 김정남(76·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이런 함세웅을 가리켜 평소 “민주화운동에서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원효로 성심수녀원 기념관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함세웅은 거물연하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존댓말이 아닌 말로는 한번도 답하지 않았다. 인터뷰 전에 마실 것을 묻는 수녀회 성도에게 기자는 커피를 주문했지만, 그는 집에서 들고온 반쯤 남은 물병을 내보이며 사양했다. 최근 나온 한인섭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집 <이 땅에 정의를>(창비)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함세웅 신부가 지난 12일 서울 원효로 성심수녀원 기념관에서 최근 자신이 펴낸 회고 대담집인 <이 땅에 정의를>에 손을 얹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함세웅 신부가 지난 12일 서울 원효로 성심수녀원 기념관에서 최근 자신이 펴낸 회고 대담집인 <이 땅에 정의를>에 손을 얹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사제들의 결단 촉구한 김정남의 편지

 

┕천주교의 여러 사제들과 얽힌 일화나 비화도 실명으로 책에 많이 나오더라. 좋은 역사 자료가 될 것 같다.

 

“한 교수와의 대화가 편해서 깊이 있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솔직한 기록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기억나는 대로 얘기했다.”

 

┕6년 전인 2012년에 주임신부직을 은퇴했는데 요즘은 어디서 지내나.

 

“교구에서 마련해준 집(상도동)에서 내적인 평화 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짧은 기도를 한 뒤에 한시간 정도 동네를 산책하고 집에 와서는 요가를 한다. 아침 미사와 간단한 식사를 마치면 오전에는 개인 시간을 보내고, 사람 만나는 일 등은 주로 오후에 한다.”

 

함세웅은 이탈리아 로마에 유학 중이던 1968년 6월에 신부가 됐다. 우르바노 대학에서 신학 석사,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3년 6월 귀국했다. 귀국 직후 서울 연희동 성당 보좌신부를 잠시 지낸 뒤 응암동 성당과 한강 성당, 청구동 성당 등에서 주임신부를 역임했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천주교 서울교구청의 홍보국장으로 일했다. 홍보국장 시절인 1987년 함세웅은 6월항쟁의 불길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그해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대공분실(남영동)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숨지자, 경찰은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양심적인 의사(오연상)와 부검의(황적준), 직업정신에 투철했던 검사(최환)에 의해, 고문치사임이 드러났음에도 경찰은 고문 하수인 2명만 구속하고 사건을 덮었다. 하지만, 그해 5월18일 정의구현사제단이 박군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 조작됐음을 폭로했다. 이는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박종철군 고문에 가담했던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은 당시 고문 경관들과 같은 감옥(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전 국회의원)씨가 알아내 바깥의 김정남씨에게 몰래 전해줌으로써 드러났다. 처음에는 사제들이 안 나서는 것으로 얘기가 되기도 했었는데.

 

“박종철 사건에 대한 문건을 그해 3월부터 김정남 선생한테 받아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좀 버겁고, 핑계이긴 하지만 당시 교구에서 일하고 있어서 교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김정남 선생이 ‘면책특권이 있는 야당, 김영삼씨의 통일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잘 됐다고 안도하고 있는데 어느날 김정남 선생이 ‘야당의원이 못 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사제단이 맡아줘야겠다’고 다시 연락해왔다. 김수환 추기경한테 얘기했더니 ‘1975년 인혁당 사건 때 8명이 사형당하지 않았느냐, 잘못하면 이번에도 정권에서 그 경찰관들을 죽이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면서 선뜻 받지 못하시더라. 유현석, 황인철 변호사와 함께 최종 발표문을 준비해 놓았지만, 최종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5월17일 주일을 맞았다.

 

당시 저는 주일마다 구파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고 황숙자)이 김정남 선생 편지를 거기로 가져왔다. 그걸 보니까 이게 구약성서의 요나더라. 우리에게 돌아온 십자가를 피할 수가 없더라. 편지를 없애버려서 원본은 없지만, 지금도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전두환의 불의한 정권이 망하느냐 않느냐가 여러분 사제의 손에 달렸다. 이것을 공개하면 이 정권은 틀림없이 망한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앗시리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의 예언자다. 하느님이 요나에게 ‘앗시리아 도성 니네베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쳐라’고 했지만, 요나는 엄두가 안 나서 바다로 도망갔고, 그는 결국 고래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하느님께 ‘약속대로 하겠다’고 기도한 뒤 생환했다.

 

┕그래서 당시 사제단 단장이던 김승훈 신부한테 바로 갔었나?

 

“미사가 끝나자마자 당시 홍제동 성당으로 김 신부님을 찾아갔다. 편지를 같이 읽고 기도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제가 ‘이번에는 신부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 제 얘기는 일체 하지 마시라, 이번에는 신부님이 감옥가셔야 한다’고 했더니 ‘알아, 알아’라고 하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감옥행을 떠민 셈인데.(웃음)

 

“우리 사제들은 서로 끈끈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대 명령을 따르느라 고난받는 것은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게다가 3·1민주구국선언 사건(1976년) 때 나는 구속됐고, 당신은 불구속된 데 대해 부채감을 늘 갖고 계셨다.”

 

┕재야에서 활동하던 김정남씨와는 언제부터 알았나.

 

“1974년 원주의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속됐을 때쯤이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원주의 신현봉 신부가 시대를 종합할 수 있는 좋은 분이 있다면서 소개해줬다. 그는 항상 뒤에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을 도왔는데 매우 헌신적이었다. 한번은 헌 내복을 많이 구해달라고 해서 모아줬더니 민청학련으로 옥살이 하는 학생들에게 다 들여보내더라. 동년배여서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그에게 우리 역사와 사회에 대해 많이 배웠다.”

 

 

“김수환 추기경께 발길 끊은 것 반성”

 

6월항쟁 때 명동성당은 시위대의 피난처이자 야전본부였다.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통령(간접선거) 후보에 노태우가 뽑혔던 6월10일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과 시민들은 경찰에 쫓기자, 이날 밤 명동성당에 몰려갔다. 이때부터 학생·시민들이 자진 해산한 6월15일까지 명동성당은 정국 흐름의 핵이었다. 함세웅은 추기경(김수환)과 함께 경찰의 강제 진압을 포기시키는 한편 시위대의 화염병 제조와 투척을 막음으로써 유혈 충돌을 방지했다.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했는데 두렵지 않았나?

 

“그때는 시민 대표와 정부 사이에서 일종의 중재역을 했기에 두려울 일이 없었다. 동료 사제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잘했다. 서울 교구 소속 사제 200여명이 다 왔는데, 젊은 사제 50~60명은 사복을 입고 왔더라. 왜 사복차림이냐고 물었더니 광주의 비극을 얘기하면서 이번에 만약 당국에서 강제 진압하면 자기들도 잡혀가서 똑같이 고통받겠다, 그래서 시대의 증언자가 되겠다고 하더라. 수녀님들도 수백명이 정복(수녀복)을 입고 시민들의 맨 앞에 서서 방패막이가 됐다. 정말 아름답고 고맙더라.”

 

함세웅 신부가 1968년 6월 로마에서 아가지니안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함세웅 신부가 1968년 6월 로마에서 아가지니안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로마에 유학 중이던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 김수환 추기경(왼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로마에 유학 중이던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 김수환 추기경(왼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명동성당 농성 이틀째인 6월11일 밤에 안기부 차장(이상연)이 사실상 진압 통보를 하러 왔었다. 그때 김수환 추기경께서 단호히 거부하지 않았나.

 

“그렇다. 안기부 차장 면담 자리에 추기경이 저랑 당시 교구 사무처장이던 김병도 신부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추기경은 ‘어떤 이유로든 명동성당에 공권력이 투입되어선 안 된다. 공권력이 강압적으로 투입되면 제가 맨 앞에 나가서 드러눕겠다. 나를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 뒤에는 사제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뒤에는 수도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당신을 보낸 통치권자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추기경이 원래 그렇게 세게 말씀을 하지 않는데 그날은 강하게 말하셨다. 나는 속으로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훌륭하셨는데, 이번에 낸 책을 보면 김수환 추기경의 다른 모습도 적지 않게 있더라.

 

“신앙인으로서 저는 한 인물을 평가할 때 신화적 해석보다는 객관적 해석을 하려고 했다. 전체적으로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분 삶의 그늘도 남기고 싶었다. 그분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가장 아팠던 것은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 때였다. 우리가 지 주교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농성하고 있는 중에 여름휴가를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 친구가 감옥에 있는데 어떻게 휴가를 가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10주년(1984년) 행사를 못하게 했다. 로마 바티칸과 우리 정부한테 압력을 받았다고 하지만,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더라. 또 1988년 오랫동안 갈등하던 서울교구 총대리(김옥균)에 대한 개인적 고민을 20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서 드렸는데, 그것을 당사자에게 줬더라. 일종의 고백인데, 사제가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말년에는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만 보면서 그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그분이 왜 그렇게 변했나?

 

“그분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제 불찰도 있다. 서면 문제로 실망한 뒤에 발길을 끊었었는데 그래선 안 됐다. 후배로서 교구 사제로서 건강한 정보를 자주 들려드렸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 않는 바람에 그분이 듣는 정보가 편향되고 말았다. 그 점을 요즘 반성하고 있다.”

 

‘천사’처럼 살고자 했던 신학생

 

함세웅은 1942년 서울 원효로에서 목재상을 하는 집에서 3남 중 막내(형 2명은 6·25 때 사망)로 태어났다. 유교 집안이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따라 집 근처의 교회와 성당에 가서 놀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당에서 복사(미사 때 사제를 시중드는 사람)를 하기도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1957년 혜화동에 있는 신학교(성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어 1960년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하느님 아들이 되고픈 그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다투거나 욕하고, 담배 피우는 신학교 친구들을 보면서 ‘왜 저러는 걸까, 천사처럼 살아야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학업 도중에 군에 갔다온 그는 1965년 교회에서 보내주는 로마 유학생 5명에 선발돼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가 유학을 간 때는 2천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가톨릭 교회가 가장 큰 변혁을 마무리할 즈음이었다. 요한 23세 교황이 1962년에 시작해 1965년 12월에 끝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만이 유일한 교회’라던 기존의 주장을 접고, ‘타종교인, 심지어 무신론자일지라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개방적인 구원론을 선언했다. 또, 인간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할 것도 촉구했다. 이로써 그동안 성당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던 교회는 사회정의와 평화, 자유 등을 위해 나서는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했다. 함세웅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뜨거운 숨결을 현장에서 직접 느꼈다.

 

┕1974년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된 것은 되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계기가 뭐였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도 현장, 역사, 민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신학적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체제에서 고난받는 청년 학생과 장준하, 백기완 등 민주화운동 선구자들을 보면서 교회도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청학련 사건 때도 가슴은 아픈데 막상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는 못했다. 문화적 이질감도 있는 데다가 우리에게는 큰 모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서울 서대문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함세웅 신부. 함세웅 신부 제공
1979년 12월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서울 서대문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함세웅 신부. 함세웅 신부 제공
1986년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 중인 민가협 어머니들 앞에 문익환 목사(왼쪽)와 함께 서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1986년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 중인 민가협 어머니들 앞에 문익환 목사(왼쪽)와 함께 서 있다. 함세웅 신부 제공
그러던 중에 1974년 7월초에 원주의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배후 혐의로 김포공항에서 납치돼 연행됐다. 우리의 스승이자 동료 사제, 교구장, 주교인 분이 불법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는 여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생각들이 팽배했다. 원주교구 신부님들이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신앙적 양심에도 맞지 않았다. 7월9일 주일 저녁에 수도권의 신부 30명 가량이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방에 찾아갔다. 대화 중 추기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젊은 사제들이 찾아오니 한가닥 힘을 얻은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순조로웠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 다음날 지 주교 석방을 위한 첫번째 미사를 주교들이 중심이 돼서 명동성당에서 열었다. 그날 저녁 김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에 갔다. 미사가 끝나고 철야기도에 들어갔는데 지 주교가 9시반쯤 석방됐다. 그러면서 맥이 빠지고 사람들도 많이 귀가했다. 그러나,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학순 주교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아직도 수백명이 감옥에 있으니 계속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밤새 대화와 토론을 했는데 ‘교회가 변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냐, 이런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냐’는 반성이 쏟아져 나오더라. 다들 놀라면서 ‘이게 시대의 명령이구나’ 깨달았다. 그 때부터 매주 월요일에 각 지역을 다니면서 자발적인 미사를 올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이것을 체계화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내가 참석하지 못한 모임에서 사제모임 대표는 박상래 신부, 총무는 나한테 맡겼더라. 박 신부님과 제가 로마에 유학갔다 왔다고 그런 것 같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그해 9월26일 명동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올린 뒤 공식 발족했다. 사흘 전 원주에서 예행연습 격으로 첫 가두시위를 하긴 했지만, 사제들은 이날 ‘유신헌법 철폐하라’ ‘구속자 석방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명동성당 밖으로 처음으로 행진했다. 사제들이 시위할 줄을 예상하지 못한 경찰들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저녁 8시쯤 십자가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섰는데 겁이 나서 막 떨렸다. 그런데 우리가 유신헌법 철폐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자 주변의 시민들이 박수를 쳤다. 그 때 전율을 느꼈다. 아, 이게 불의와 싸워가는 신앙인의 자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세웅이 처음으로 세상 속으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한인섭 교수와 대화하면서 ‘74년은 은총의 해’라고 했던데.

 

“제가 그해 3월에 한 잡지에 성서를 단지 과거 얘기가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시대의 명령으로 읽어야 한다고 썼다. 지 주교의 구속으로 그런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며, 그런 의미에서 지 주교의 구속은 하느님의 묘한 섭리였던 것 같다. 지 주교가 구속이 안 됐으면 정의구현사제단이 안 생겼을 것이다.”

 

김인국 신부(앞줄 왼쪽)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2007년 10월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폭로하고 있따. 함세웅 신부(뒷줄 오른쪽 둘째)도 참석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인국 신부(앞줄 왼쪽)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2007년 10월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폭로하고 있따. 함세웅 신부(뒷줄 오른쪽 둘째)도 참석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가톨릭이 마르크스를 껴안았더라면”

 

함세웅은 사제단 활동을 하면서 1976년 3·1절 기념 명동성당 미사 때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국성명(3·1민주구국선언문)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2년형 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는 등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때를 비롯해 중앙정보부에도 여러차례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화 등 우리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약자보다는 강자, 소외받고 못 가진 사람보다는 많이 가진 기득권층의 편에 훨씬 가까이 가 있다.

 

“그게 우리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1994년 사제단 창립 20주년 때 마크 엘리스라는 미국의 신학자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들이 이른바 인권과 민주화, 민생을 위해 투신해 일했는데 정말 당신들이 뛰어서 교회가 변했느냐고 묻더라.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당시 정통 종교인 유대교에 맞서 싸우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여러분이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사제라면 문제 많은 이 가톨릭 교회를 떠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당신들이 없으면 미성숙한 교회는 빨리 망할텐데 당신들이 자꾸 수혈해주니까 안 망한다고 질타했다. 또, 예수님은 브로커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그동안 생겨난 것은 온통 브로커뿐이라고 하더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런 신학적 발상을 저를 포함해 각 종교인들이 깊이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큰 도전 앞에 우리가 서 있다.”

 

┕어떤 도전인가.

 

“우리 시대 교회는 자본주의와 손잡고 있지 않나. 조금 과한 표현으로 하자면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나 노예가 됐다. 교회가 자본주의를 정화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로 먹고 살고 있다.”

 

┕교회의 상업화를 뜻하나.

 

“그렇다. 예를 들면 지금 한국 가톨릭이 김수환 추기경을 높이 받드는데, 그러면 그분 삶과 가르침을 재현해야 한다. 어려운 시절에 그분이 어떻게 살고 대처했나를 배우면서 그분처럼 살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온통 그분을 상품화시키는데만 열심이다.”

 

보충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위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서 다시 만났을 때 함세웅은 마르크스주의와 가톨릭의 연대를 말했다.

 

“가톨릭이 19세기 말의 사상가였던 카를 마르크스와 껴안았더라면 아름다워졌을텐데 안타깝다. 가톨릭이 마르크스를 배척했던 이유로 내세웠던 것은 그가 무신론자라는 거였는데 명분만 그랬고 실제로는 공유사상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의 공유사상을 가톨릭이 껴안았더라면 세상은 많이 바뀌었을 거다. 이것은 여러 신학자들이 한 얘기이기도 하고, 나도 그런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의구현사제단도 지금은 교회 안에서 소수 아닌가.

 

“예전에는 아무도 얘기 못할 때여서 사제단이 빛났지만, 지금은 다양한 시대여서 사제단도 여러 목소리 중 하나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회가 진전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름답게 살아온 사제들의 삶을 교회가 수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본의 논리, 맘몬(부유와 탐욕의 상징)의 논리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늘 살아남은 소수가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긍지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예언자적 소명이다. 게다가 지금은 교황이 새로 오셔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교회가 물신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나 이슬람, 여성 등 약자를 구박하고 혐오하는데 앞장서기까지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나 불교 등 종교의 신앙 수준이 아직도 좀 미숙한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 약자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인데 오늘의 종교 책임자들은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신 종교 자체를 기업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교회세습까지 하고 있다. 공동체 원리를 망각하고, 상업적 논리를 따라간다. 돌아가신 안병무 교수는 문제 정치인을 ‘정상배’라고 부르는 것을 따라 개신교의 분파를 ‘종상배’라고 했다. 우리가 종상배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 언론인들의 책임도 큰 것 같다. 종교의 불의와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해야 하는데 종교 담당 기자들이 무슨 까닭인지 그런 보도를 잘 안하더라. 각성해야 한다.”

 

함세웅은 새로운 신학적 사조를 수용하는데도 늘 열려 있다. 1970년대 남미에서 탄생한 민중 중심의 해방신학에 관한 서적을 두 차례 감옥에 갔을 때 접하고는 바로 수용했다. 여성신학은 1991년 미국의 메리놀신학교에 공부하러 갔다가 접했다.

 

“처음에는 ‘여성신학은 또 뭐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고 나서는 여성의 시각에서 성경도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가부장적 신관이 아니라 모성적 신관이었다면 아마 사랑과 평화가 훨씬 많이 깃들었을 것이라는 내용에 공감이 갔다.”

 

그 후 그는 가톨릭이 아직 수용하지 않는 여성 사제를 허용할 것을 촉구해 왔으며, 하느님에 대한 호칭도 ‘아버지 하느님’ 대신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신 하느님’으로 바꿔부를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그는 미사 때 그런 호칭을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신부님, 축성을 부탁드립니다.” 한 가톨릭 신도가 지난 13일 오후 명동성당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함세웅 신부를 알아보고 다가와 축성을 부탁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신부님, 축성을 부탁드립니다.” 한 가톨릭 신도가 지난 13일 오후 명동성당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함세웅 신부를 알아보고 다가와 축성을 부탁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본주의 때 묻은 명동성당 보면 화나”

 

은퇴한 뒤에는 길거리 미사도 자주 집전하고 참석했다. “3, 4년 전 성탄 때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을 위해 성탄절에 대한문 앞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했는데 추위 속에 떨면서 깨달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사형장이야말로 바로 교회의 원자리이며, 기도의 원형, 첫번째 미사라는 뜻이 다가왔다. 빼앗긴 분들과 함께 하는 길거리 미사야말로 다 빼앗기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아름다운 현장이 아닐까 싶다.”

 

┕고위 사제가 되는 등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었지 않았나.

 

“그런 가능성은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관료체제에 찌들고 어용화된, 지금의 저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시대의 부름에 응답해서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동료들과 뜻깊게 보낸 것이 기쁘다.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자는 신학교 때의 초심을 늘 간직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지킨 것 같아서 감사하다.”

 

┕후회되거나 아쉬운 것은 없나?

 

“제 강점이 빨리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어서 후회되는 것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부끄럽고 아픈 일은 있다. 1988~89년에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만들 때 노조와 부딪친 일이다. 당시 그런 경륜이 적은 데다가 이론적으로만 접근해서 그랬는데 지금 같으면 다르게 다가갔을 것 같다. 그때 고민하다가 대표직에서 물러났는데 그건 잘 한 것 같다. 그대로 책임자로 버텼더라면 아마 체제 내부의 한 사람으로 굳어져서 다른 영역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평화방송과 평화신문이 세상을 바꾸려던 원래의 설립정신을 잊어버린 채 교구의 관영매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가슴 아프다.”

 

1988년 5월에 출범한 <평화신문>(당시 초대 이사장 김수환, 사장 함세웅, 편집국장 김정남)은 초기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편지를 연재하는 등 참신한 기획과 진보적 기사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3월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거부감을 보인 사쪽이 노조 간부 4명을 해고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함세웅은 89년 후반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은 이후 보수적 성향의 종교매체로 바뀌었다.

 

함세웅의 가장 빛나던 시절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 13일 보충 인터뷰 때 장소를 명동성당으로 정했다. 옛사랑을 만난 표정을 기대했지만, 정반대였다.

 

“여기 오면 솔직히 화가 난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 성지가 더 이상 아니다. 원형을 지키기는커녕 시위를 막으려고 넓은 길을 좁혀서 꾸불꾸불하게 만들고, 화단을 조성한 게 보기 싫다. 게다가 성당을 둘러보면 자본주의의 때가 너무 많이 끼었다.”

 

그는 성당 들머리에서 서둘러 인터뷰를 끝낸 뒤 성당 구내는 들어가지도 않고 명동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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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유라시아...러시아를 주목하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9/16 13:31
  • 수정일
    2018/09/16 13: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교수의 발제에 대해
2018.09.15 15:05:50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새로 상상하는 것 또한 함께 간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구상하기 위해서 최 교수는 "한반도,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의 발제와 관련해 역사학자인 이병한 원광대학교 교수가 토론문을 제시했다.
 
 
1. 동아시아의 ‘몸’ - 원/근(遠/近)의 구조조정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일대 회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세계를 몸으로 직접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멀고/가까움의 감각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매개를 통하지 않는 맨몸의 부딪힘/부닥침이 소중하다. ‘러시아 월드컵에 동아시아는 없었다.’의 반면으로 동아시아(론)에 러시아는 있는가? 라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한국은 좀체 실감이 덜하지만 한반도의 장래를 ‘남북연합’으로 상상한다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이(有二)한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이다. 즉 러시아는 ‘이웃나라’이다. 미국은 멀지만 친숙하고, 러시아는 가깝지만 소원하다. 탈냉전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냉전의 후과는 (남한에서) 오래다.   
 
그러나 실상 19-20세기 동아시아의 천하대란에도 러시아는 깊숙했다. 아편전쟁과 ‘서구의 충격’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관 또한 편향이고 편벽된 것이다. 홍콩(영국)은 1997년, 마카오(포르투갈)는 1999년 모두 중국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새 천년을 맞이하고도 유독 변함없이 러시아의 강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 연해주이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대청제국에서 러시아제국으로 이양된 땅으로,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광대한 영역이다. 이곳이 크림반도에서 발족한 러시아(동방정교 국가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후예)의 영토가 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신시대’가 열린 것이다. 1860년 조선과 러시아의 접촉은 병인양요(1866)나 신미양요(1871)보다도 이른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되지못한 1948년 북조선의 최고지도자가 키릴문자로 스탈린에서 손 편지를 쓸 수 있는 김일성이었다는 점 또한 범상치가 않다. 
 
그러함에도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맞춤하여 발진한 ‘동아시아론’은 러시아/소련이 1860년 이래 줄곧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몸통’이었다는 사실에 소홀하다. (혹은 안다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했다.) 아세안에서 가장 가까운 베트남의 하노이만 해도 비행기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시간, 하바롭스크는 2시간 30분이다. 도쿄보다도 더 가깝다. 서구주의와 아시아주의의 길항 속에 ‘동구’(東歐)에서 동진해온 러시아를 망각하는 것은 혹 식민(일본)과 냉전(미국)으로 조련된 인식의 왜곡, 굴절된 몸 감각의 소산이 아닐까? 유라시아의 북방경로를 통한 ‘동구와 동아의 상호진화’는 남한 지식인의 눈에 좀체 들어오지 않는다.  
 
2.  
 
동남아/아세안의 강조에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인도차이나) 경험을 통해서 기왕의 동아시아(론)를 졸업했다.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베트남조차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지적하는 바,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서아시아로 연결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동북아와의 가장 큰 차이는 유럽의 유산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서구와 직결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와는 2000년, 이슬람과는 천년, 유럽과는 반 천년의 유산이 켜켜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 동남아/아세안이다. 하기에 베트남 일국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도 중국(동아시아)과 인도(남아시아)와 프랑스(서구)와 소련(동구)을 몽땅 아울러야 했다. 박사논문의 후속작업으로 베트남현대사를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쓰고자 하다가 그만두고 ‘유라시아적 시각’으로 회향했던 까닭이다. 동남아/아세안의 모든 나라가 그러할 것이다. 즉 동남아와의 조우가 소중한 것은 동북아+동남아=동아시아, 라는 구도의 한계를 체감(體感)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센토사선언의 싱가포르 또한 서구(영국)의 유산 없이는 세계적인 허브도시가 되지 못했을 터이다. 즉 동남아에서 서구는 무척 가깝다. (역으로 동북아는 서구보다 러시아/소련 연결망을 통하여 ‘동구’가 더 가깝다.) 
 
3.  
 
동아시아의 ‘몸’ 감각의 쇄신을 강조하는 까닭은 남/북 연합을 도야하는 훈련으로서도 제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1948년 이후 북조선의 공간감각, 역사 감각이 ‘동아시아’로 한정될 수 있을까? 그러하지 않을 것 같다. 북조선이 열성으로 참여했던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기구는 도리어 동아시아(남한, 일본, 대만)를 척지는 것이었다. 최원식 선생도 익숙할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열렸던 주요 도시 또한 방문해 보았다. 아시아 본부가 있었던 콜롬보(스리랑카)와 아프리카 본부가 있었던 카이로(이집트)와 가장 큰 회의가 열렸던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까지. 곳곳에 북조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동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작동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결망 속에 깊이 참여했던 북조선의 감각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냉전기 반세기 동안 북조선과 긴밀했고, 탈냉전기 사반세기 동안 남한과 친밀해진 경우가 많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가 그러하고, 몽골 및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며 동유럽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최종 낙착지로는 싱가포르가 선정되었으되, 북미정상회담의 유력 개최지로 몽골이 거론되고, 카자흐스탄은 장소 제공을 자청했던 사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미동에서 격동으로 진입했다면, 그 뜻은 분단체제를 주조했던 세계체제가 근본적인 이행기에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 또한 세계체제적 지평에서 조망해야 한다. 작금 세계체제의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거시적 안목에 바탕한 대전략을 수립해야 단기적-국지적 전술 구사가 가능하다. 나는 ‘흔들리는 유라시아’라고 표현하고 싶다. 1945년 이후 신대륙 미국이 구대륙 유라시아를 분할 지배했던 세계질서가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냉전체제, 서아시아의 대분열체제, 남아시아의 대분할체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이삼성)가 죄다 동요한다.  
 
당장 유럽부터 서방(The WEST)이 갈라선다. 대서양을 마주한 구/미가 분열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유럽이 자주성을 획득해간다. EU에서 미국의 뜻을 대변했던 영국은 이탈했다(브렉시트). 그 반면으로 서유럽과 러시아/동유럽이 근접해 간다. 군사적으로도 NATO에서 자유로운 유럽통합방위군을 창설하고, 달러와 연동되지 않는 유럽 독자의 금융결제시스템을 모색하고 있으며, 에너지 연결망은 미국(트럼프)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가동되고 있다. 동서유럽 냉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독일/프랑스와 러시아의 합작으로 해결해간다. 서유라시아만도 아니다. 남유라시아의 이란 핵합의에서도 신대륙 미국만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독일/프랑스 및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가 이란과 손발을 맞춘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의 재건 또한 러시아와 중국, 인도의 합작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러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이 모두 19세기 이전의 지역질서 재건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연합/연대/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대통합/재통합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신대륙이 구대륙에서 독립했던 18세기(1776) 이래 작금은 구대륙이 신대륙에서 독립하며 신/구 대륙 간 재균형을 달성해가는 대반전의 형세에 들어선 것이다. 구대륙의 재활/재건/재생 운동과 신대륙의 이탈 선언(America First = 트럼프 독트린 = 21세기 판 먼로 독트린)이 오묘하게 합세하는 모습이다. 한반도의 (소)분단체제 해소 또한 이러한 신/구 대륙간 지구적 권력 변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구미(歐<->美)와 아태(亞<->太)의 멀어짐 속에서 구아(歐-亞)의 다시 가까워짐(New Silk Roads)과 연동하는 남북연합론 및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다른 미래와 다른 역사는 직결된다. 19세기 서구 패권 이전 유라시아의 초기 근대에서 작동했던 세계질서에 대한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중국-인도-페르시아-오스만-유럽-러시아 네트워크)가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갈수록 동아시아보다는 동유라시아라는 개념/관점이 한국/한반도의 체감(몸 감각)에도 더 적합해지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5.  
 
동아시아론의 후학/후속세대이자 역사학자로서 기여할 방법으로 <동구의 충격 : 대항하 시대>라는 발상을 키우고 있다. 중국과 가장 넓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이다. 2030년이면 신칸센이 일본 본토와 홋카이도를 잇고, 홋카이도는 다시 사할린과 다리로 이어지고 사할린은 연해주로 터널로 연결된다. 즉 일본이 섬나라가 아니게 되는 바, 그 핵심 연결망 또한 러시아이다. 백 년 전 ‘만주의 모스크바’ 하얼빈은 프라하(체코)와 소피아(불가리아)까지 연결되는 동방정교회 네트워크가 활달했다. 아무르 강을 비롯해 세계 10대 강의 4대 강이 시베리아를 흐른다. 서구가 인도양을 통하여 아시아로 진출했다면, 동구는 이 강을 통하여 천년동안 동진해 온 것이다.  
 
서구에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있었다면, 동구에는 대항하(大航河) 시대가 있었다. ‘동구와 동아의 만남’은 150년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축이었다. 실로 러시아의 아시아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부터 울란우데, 치타, 블라디보스토크 등 굉장하다. 러시아의 신문과 잡지를 펼치면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동양주의에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를 포갤 수 있는 안목이 활짝 트인다. 중국의 한학과 일본의 동양학과 미국의 지역학을 러시아의 동방학에 견주는 학문의 도야 속에서 한반도의 동아시아론 2.0도 만개할 수 있지 싶다. 
 
그런 지적/사상적/문명적 재균형이 달성되어야 ‘주변 4대 강국’이라는 상투어 또한 실질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업에서도 일찍이 키릴 문자권과 긴밀했던 북조선 학계와의 ‘남북연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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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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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오후 3시 남북정상회담 공식수행원 명단 발표

주요 그룹 총수들도 방북 명단에 이름 올릴까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8-09-16 11:31:55
수정 2018-09-16 1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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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자료사진).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청와대는 2018 평양남북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평양 방문에 함께 할 공식 수행원을 발표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오후 2018 평양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비서실장이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의 명단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할 전체 수행원은 200명을 넘은 수준으로, 경호·의전·보도 등 실무 인력이 대략 100명 안팎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측의 공식수행원은 임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6명이었다.

수행단은 통상 공식수행원과 일반수행원, 특별수행원으로 구성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공식수행원은 주로 정부 관계자들로, 일반수행원은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관계자들로 구성됐다. 특별수행원은 정당・국회나 일반 사회 분야의 관계자들이었다.  

특히 이번에 관심을 모으는 것은 특별 수행원의 명단이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10일 문 대통령의 방북 동행 인사 규모를 밝히며, 정치 분야와 경제 분야에서도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초 청와대는 정치분야의 특별수행단으로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의 동행을 요청한 바 있지만, 의장단과 보수야당의 거부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만 동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재계 인사의 방북 동행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앞서 임 실장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인들도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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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서평] 진천규 지음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18.09.14 19:55l최종 업데이트 18.09.14 19:55l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함께 흐른다> 책표지.
▲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함께 흐른다> 책표지.
ⓒ 타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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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려 개국 1100년 해다. 이를 기념, 남북은 2007년부터 고려 대표 유적인 만월대를 공동 발굴해왔다고 한다.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은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6·15 공동선언(2000년) 이후 남북이 10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유일한 협력사업이라고 한다.

지난 8월 30일과 9월 1일, <고려 개국 1100년 KBS 특별기획 2부작-One Korea>란 제목으로 발굴 현장 일부가 공개됐다. 화면을 통해서나마 북한에 있는 고려의 흔적을 볼 수 있음과 남북이 '고려'라는 공동 숙제로 협력하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내가 본 것은 2부, 20여 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좀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분단 이후 긴장이 가장 고조된 시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2011~2015년의 발굴 현장. 와중에, 오로지 전쟁 준비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들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실상 우리와 고려 발굴이란 끈을 붙잡고 있었음에 대한 감회 때문이었다.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는 동시에 '우리는 과연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삼 혼란스러웠다. 방송이 끝나고도 복잡한 심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최근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 펴냄)를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 도드라져 떠올랐다. 북한에 대해 훨씬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촬영한 평양시내 야경. 주체사상탑 전망대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겨울철에는 오후 5시). 따라서 일몰 이후에 이곳에 들어갈수 없기 때문에 '야경'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외지인 최초로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평양 시내 야경을 촬영했다.-(사진 설명 따옴)
▲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촬영한 평양시내 야경. 주체사상탑 전망대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겨울철에는 오후 5시). 따라서 일몰 이후에 이곳에 들어갈수 없기 때문에 "야경"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외지인 최초로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평양 시내 야경을 촬영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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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사상탑에서 본서평양 지역 창전거리의 초고층아파트. 2012년에 완공되었다.-(사진 설명 따옴) 려명거리에는 최근 73층초고층 아파트가 완공, 철거민에게 우선 입주권이 주어진다고 한다.
▲  주체사상탑에서 본서평양 지역 창전거리의 초고층아파트. 2012년에 완공되었다.-(사진 설명 따옴) 려명거리에는 최근 73층초고층 아파트가 완공, 철거민에게 우선 입주권이 주어진다고 한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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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천구역 미래동 미래과학자거리 양측에 건설된 아파트 모습-(사진 설명 따옴)
▲  평천구역 미래동 미래과학자거리 양측에 건설된 아파트 모습-(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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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서양인은 괜찮고 같은 피가 흐르는 남한 기자는 자기들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미향 씨는 "우리 조선(북한)에서는 남조선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다"며 그 이유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했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으면 벽에 금이 갈수도 있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제때 수리하지 않으면 허술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남쪽 기자들은 북녘의 그런 허술한 모습만 찍어 낡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마치 북쪽의 전체 이미지가 그런 것처럼 왜곡해서 보도한다. 그래서 무척 억울하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 기자에 대해 적대적인 이유라고 했다. 김미향 씨는 대뜸 내게 "기자의 본분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쏟아냈다. 기자라면 당연히 사람들이 억울해하는 것을 풀어줘야 하는데 남쪽 언론에서는 오히려 북녘을 왜곡해서 억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정 종편의 어느 프로그램은 특히 북녘을 더 악의적으로 모욕하는 보도를 한다고, 김미향 씨는 대놓고 적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진 선생에게 우리의 체제를 무턱대고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 기자로서 양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보도해 달라는 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110~111쪽) 


저자 진천규씨는 '2000년 평양 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북한을 2차례 방문했다. 통제와 정해진 규칙에 따른 취재였다. 아쉬움은 당연했다. 

 

그런데 더욱 아쉽고 씁쓸한 현실은 그동안, 말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나 역사를 모르는 외국 기자들이나 외국 사진작가들에 의해서만 북한 취재가 이뤄졌으며 여전히 그렇다는 것, 말이 통하지 않아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데다가 누군가의 안내로 그동안 잘 알려진 곳들만 한정적으로 되풀이 취재되고 있어서 북한이 제대로 알려지기는커녕 의도와 달리 포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는 것, 이는 남북(관계)에 도움은커녕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럼에도 우리의 취재는 절대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여곡절 끝에 북한 단독 취재에 성공한다. 공동취재단 한 사람으로 북한을 취재한 이후 17년만인 2017년 10월이었다. 한국 언론인들의 북한 취재가 아예 불가한 상황에 이뤄진,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취재였다.

저자가 북한을 단독 취재한 것은 2017년 10월을 시작으로 올해 7월까지 4차례,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한다. 
 
 152쪽 사진 한장이다. 옥류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이다.이곳에는 언제나 10대 가량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  152쪽 사진 한장이다. 옥류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이다.이곳에는 언제나 10대 가량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 진천규 / 타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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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관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북한 주민들은 옥류관 냉면은 물론 피자,파스타, 맥주 등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고 한다. 책에 관련 사진들이 다수 실려 있다.
▲  "옥류관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북한 주민들은 옥류관 냉면은 물론 피자,파스타, 맥주 등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고 한다. 책에 관련 사진들이 다수 실려 있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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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주로 누가 이용하나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운전원에게 물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이 없는 뒷골목까지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허무할 정도로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보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 택시를 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는 편리함. 평양에서도 특수한 신분의 당 간부들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북녘에는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으니 대중교통 중에서도 택시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148~149쪽

나는 지금 평양 중구역 대동강 앞에 위치한 평양호텔 2층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에필로그를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보내면 그동안 진행해 오던 책이 마감된다. 이 책은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와 이메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마무리됐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 290쪽

17년 만에 북한을 다시 찾은 저자는 평양의 첫인상을 '놀라움'으로 표현한다. 그동안 알려진 북한과 전혀 다른 모습들 때문이었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는가하면 북한 곳곳이 눈에 띄게 밝아졌으며,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나 의식 역시 그간 많이 바뀌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은 평양 곳곳을 비롯한 북한의 대표적인 명소들과 문화생활, 먹(을)거리, 주택, 쇼핑 등 8개 주제로 나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2010년)로 우리와는 모든 교류나 지원이 끊겼지만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온 북한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북한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들은 '통제'와 '감시'였다. 그래서인지 북한 관련 사진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지정된 장소를 찍었거나, 연출된 것이란 전제로 대하곤 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북한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북한 주민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거나, 인터뷰 하는 등, 어떤 통제나 감시 없이 북한을 취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창전거리에 위치한 '해맞이식당' 1층 슈퍼마켓에서 젊은 부부가 장을 보고 있다.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줄 과일과 간식거리를 고른다고 했다.-(사진 설명 따옴)
▲  창전거리에 위치한 "해맞이식당" 1층 슈퍼마켓에서 젊은 부부가 장을 보고 있다.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줄 과일과 간식거리를 고른다고 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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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교통 수단 중 하나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책에는 지하철부흥역의 플랫폼 모습을 비롯하여 지하철내부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주민들 모습을 담은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  평양의 교통 수단 중 하나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책에는 지하철부흥역의 플랫폼 모습을 비롯하여 지하철내부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주민들 모습을 담은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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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공원 을밀대 근처에서 은퇴한 시민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즐기고 있다.-(사진 설명 따옴)
▲  모란봉공원 을밀대 근처에서 은퇴한 시민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즐기고 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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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근 모습(2018년 7월)은 물론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모습들이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겼음은 물론이다. 이런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진이 풍성하다는 것. 그리고 뭣보다 북한 주민들, 즉 일반인들의 삶의 현장을 위주로 취재해 담았다는 것이다.

한창 추수 중인 평안도 농촌의 소슬한 풍경부터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선 평양 려명거리의 화려한 야경까지, 출퇴근 시간의 분주한 모습이나, 공원에서 운동을 하거나, 애견의 털을 골라주는 등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 73층 아파트의 살림집 내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6천여 대의 택시가 운행 중이라는 평양 시내 모습, 옥류관을 비롯한 청려관 등 북한의 대표 음식점들, 우리처럼 차로 이동할 때는 물론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등, 다양하며 급속한 변화가 진행 중인 평양의 최근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옥류관 주방장이 들려주는 옥류관 냉면 맛과 대동강 맥주 맛의 비밀, 피자와 파스타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기는 사람들, 퇴근 후 가족과 쇼핑하거나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사람들, 자신의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한 여학생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에피소드, 철거민에게 우선 입주 자격이 주어진다는 73층 아파트에서의 삶 등, 북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인터뷰하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 몇 달, 북한은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들이 혹시 일시적이거나, 계산된 것이거나, 제한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런데 지난 70년, 경계와 갈등을 되풀이한 결과 우리는 서로 무엇을 얻었는가? 남북이 경계와 갈등을 함께 걷어내고 역사를 함께 쓰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서로를 잘 모를 때 오해와 갈등은 깊어진다. 북한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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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에 공개질의서 보내

민중당,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에 공개질의서 보내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9/14 [19: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민중당이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에 공개질의서 발송했다.

 

민중당은 남북철도연결 관련 사업을 차단한 유엔사의 행위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내정을 간섭한 것이며 남북교류협력을 방해한 것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고 이에 민중당은 빈센트 브룩스(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와 해리 해리스(주한미국대사)에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민중당은 지난 10, ‘공개질의서에서는 빈센트 브룩스사령관에게는 유엔사가 남북교류를 불허한 근거와 2000, 2002년 조선인민군과의 합의서에 대한 입장향후 유엔사의 월권행위 계속 여부에 대해서 그리고 해리 해리스대사에게는 남북교류사업의 대북제재 예외적용 의사가 있는지대북제재를 해제할 용의가 있는지종전선언을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지난 13일 물었다.

 

민중당은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에게 발송한 공개질의서가 각각 수령되었다고 14일 발표했다.

 

아래는 공개질의서 한글본 전문이다.(질의서는 한글본영문본으로 각각 작성되었다.)

 

-----------------------아래-------------------------------------

 

[공개질의서]

 

수신 빈센트 브룩스(주한유엔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발신 민중당(상임대표 이상규)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긴장과 대립이 완화되고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 관련 당사자들의 책임있는 언행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최근 남북철도연결 점검사업을 위한 방북을 불허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조치는 한국민들의 의사에 배치되며 남북대화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민중당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를 받들어 주한유엔군사령부가 취한 조치와 입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공개 질의합니다.

귀측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1. 주한유엔군사령부는 지난 8월 22일 추진되었던 남북철도연결구간 점검 사업을 위한 군사분계선 통과를 불허했습니다주한유엔군사령부의 불허 근거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2.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간 철도도로연결사업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군사적 합의가 있었습니다.

 

1)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간 합의서(2000.11.17)

2)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간 합의서(2002.9.12)

3)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2002.9.17)

 

2-1. 브룩스 사령관을 포함하여 유엔군사령부 측은 이 합의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2-2. 위 합의서는 남북간 철도도로연결 사업이 완료되면 폐기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귀측은 위 합의가 아직 유효하다고 판단합니까무효라고 판단합니까?

 

2-3. 이 합의를 실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포함하여 이 합의서에 대한 귀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3. 우리는 남북철도조사 사업에 대한 미 국무부의 입장을 볼 때 주한유엔군사령부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를 불허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가장 최근에 채택발표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의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및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상황의 평화적외교적정치적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며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을 증진하기 위한 안보리 이사국들과 여타 국가들의 노력을 환영하며한반도 및 지역 긴장 완화를 위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엔 대북제재의 목적은 제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달성에 있는 것으로 이를 위한 유엔회원국들을 노력을 중시하며 권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간 경제협력을 포함한 교류협력사업은 유엔 결의의 목적에 충분히 부합되는 것으로 유엔군사령부가 이를 방해불허할 이유가 없습니다.

 

3-1. 유엔군사령부의 불허조치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의 기본목적에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까?

3-2. 유엔군사령부는 판문점선언에 따라 남북이 추진하는 교류협력사업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3-3. 유엔군사령부는 남북간 교류협력사업에 대해서 앞으로도 승인권을 행사할 것입니까?

 

2018년 9월 10

 

 

 

[공개질의서]

 

수신 해리 해리스(주한미국대사)

발신 민중당(상임대표 이상규)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긴장과 대립이 완화되고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 관련 당사자들의 책임 있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북미합의를 실천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으며 남북협력사업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민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우려와 실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에 민중당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를 받들어 미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냅니다.

 

귀측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1. 미국정부는 지난 4월 27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정부는 판문점선언을 실행하기 위한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지지합니까?

 

 

2. 미국정부는 남북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유엔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1. 미국정부는 유엔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가 남북합의북미합의를 실행하는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2-2. 미국정부는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를 제안하고 미국의 독자제재를 해제할 용의가 있습니까?

 

2-3. 미국정부는 남북간의 교류협력사업을 유엔 대북제재의 예외사항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습니까?

 

3. 매티스 국방장관은 8월 28일 "우리는 현재 추가로 훈련을 중단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미국정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곧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미국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4-1.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약속했습니까?

 

4-2. 미국정부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이행할 의향이 있습니까?

 

 

2018년 9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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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 합의서’ 서명


리선권, “판문점선언의 정당성.생활력에 대한 뚜렷한 증시”
개성=공동취재단/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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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4  12: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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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문을 열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는 판문점선언 발표 이후 꼭 140일만이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14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이하 합의서)’에 서명했다. 

서명은 이날 오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직후에 이뤄졌다. 

총 6조로 된 합의서에 따르면, 연락사무소의 기능은 △남북 당국 사이의 연락과 실무적 협의, 여러 분야의 대화와 접촉, 교류협력, 공동행사 등에 대한 지원사업, △민간단체들의 교류협력사업에 필요한 소개와 연락, 자문, 자료교환, 접촉지원, △육로 통한 상대측 지역 왕래 쌍방 인원들에 대한 편의 보장 등이다.

합의서는 또한 “쌍방에서 소장을 포함하여 15~20명 정도로 구성하고 쌍방이 합의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늘릴 수 있으며, 사무소 운영을 위한 보조인원을 별도로 둘 수 있다”고 규정했다. 

연락사무소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쌍방 합의에 따라 근무날짜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매주 1회 남북 소장 회의를 진행한다. 남측 소장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북측 소장은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이 맡는다.

“쌍방은 필요한 직통전화와 팩스를 설치.운영하며 남측 연락사무소와 남측 지역사이의 통신은 ‘개성공업지구 통신에 관한 합의서’에 준하여 보장”했으며, “북측은 남측 연락사무소 인원들의 개성공업지구 통행과 편의를 당국회담대표단과 동일하게 보장하며 연락사무소 운영과 관련된 설비, 물자들에 대해 세금과 부과금을 면제한다”고 규정했다.

   
▲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4일 개소식에 이어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 합의서'에 서명했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합의서를 교환한 뒤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개소식은 오전 10시 50분 사회자인 이영아 UNITV 아나운서의 개식선언으로 시작됐다. 경과 영상상영, 리선권 위원장의 축하연설과 조명균 장관의 기념사, 현판 제막식, 기념촬영, 폐식선언까지 약 30분간 진행됐다. 

축하연설에 나선 리선권 북측 조평통 위원장은 “력사적인 판문점상봉과 회담을 통하여 북남수뇌분들께서 안아오신 따뜻한 봄날은 풍요한 가을로 이어졌으며 공동련락사무소의 개소는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의 자양분으로 거두어들인 알찬 열매라고 말할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북남공동련락사무소가 개설됨으로써 쌍방은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빠른 시간내에서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해나갈수 있게 되었으며 관계개선과 발전을 적극 추동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하여 큰 보폭을 내짚을수 있게 되었다”면서 “이것은 북남관계문제를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갈데 대한 력사적인 판문점선언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한 뚜렷한 증시로 된다”고 밝혔다.

   
▲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개소식에서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리 위원장은 “북남공동련락사무소의 명칭은 비록 아홉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는 북남관계발전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바라는 온 민족의 절절한 념원이 응축되여있다”며 “북남수뇌분들의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회담을 앞두고 이번에 공동련락사무소를 개설하게 된 것은 더욱 뜻깊고 의의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아주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남과 북이 정상적 국가(관계)라고 하면 사실상 국가 간 연락사무소가 세워진 것”이라며 “여기서 24시간 상주하니까 민간교류가 엄청나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봤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인영 의원은 “평화의 길을 더 다져서 통일로 가는 꿈을 키워나가는 시작”이라며 “연락사무소를 넘어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고 개성공단도 재개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소속 박주선 의원은 “상시적인 남북 접촉을 통해서는 그동안에 쌓인 불신이 해소되고 신뢰관계가 구축되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큰 교두보를 확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박명철 북측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은 “수고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연락사무소가 앞으로 잘 되게 해야죠. 북과 남이 다 노력하면 잘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연 뒤, 남북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이 북측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개성 사진공동취재단]

가동 중단된 개성공단을 다시 찾은 입주기업 인사들은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행사장에 개성공단 정상회가 돼 다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면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경우 연내 개성공단 정상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도 “올해 넘어가면 이제 도산하는 기업들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입주기업들을 생각해본다면 올해 안에는 재개된다라고 하는 합의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동오찬 이후 남측 인사들은 경의선 육로를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천해성 차관을 비롯한 남측 상주직원 19명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첫날 근무를 실시한다. 

(추가, 14:06)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과 북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에 따라 당국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라고 함)를 다음과 같이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제1조 명칭과 위치

  1. 연락사무소 명칭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로 한다.

  2. 연락사무소는 개성공업지구 내에 설치한다.

제2조 기능

  1. 연락사무소는 남북 당국 사이의 연락과 실무적 협의, 여러 분야의 대화와 접촉, 교류협력, 공동행사 등에 대한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2. 연락사무소는 민간단체들의 교류협력사업에 필요한 소개와 연락, 자문, 자료교환, 접촉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3. 연락사무소는 육로를 통하여 상대측 지역을 왕래하는 쌍방 인원들에 대한 편의를 보장한다.

제3조 구성

  1. 연락사무소는 쌍방에서 소장을 포함하여 15~20명 정도로 구성하고 쌍방이 합의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늘릴 수 있으며, 사무소 운영을 위한 보조인원을 별도로 둘 수 있다. 

  2. 연락사무소 쌍방 소장과 인원들의 직급은 각기 편리한대로 하며 사무소 인원을 교체하는 경우 7일 전에 상대측에 통보한다. 

  3. 쌍방은 연락사무소에 각기 필요한 부서들을 둘 수 있다.

제4조 운영 및 관리

  1. 연락사무소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쌍방이 합의하여 근무날짜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2. 연락사무소에서 쌍방 인원들은 접촉 또는 전화, 팩스를 통하여 필요한 사업들을 진행하며 정상근무 시간 외에 제기될 수 있는 긴급한 문제처리를 위해 비상연락수단을 설치․운영한다.

  3. 쌍방은 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매주 1회 진행하며 필요한 경우 더 할 수 있다. 

  4. 연락사무소 사무실과 비품들의 관리는 사용하는 측이 한다.

  5. 기타 연락사무소 운영, 관리와 관련한 세부적인 문제들은 쌍방이 협의하여 정한다.

제5조 활동 및 편의보장

  1. 연락사무소 인원들은 개성공업지구 출입과 체류시 쌍방 연락사무소에서 발급한 출입증을 착용한다.

  2. 쌍방은 필요한 직통전화와 팩스를 설치․운영하며 남측 연락사무소와 남측 지역사이의 통신은 「개성공업지구 통신에 관한 합의서」에 준하여 보장한다.

  3. 북측은 남측 연락사무소 인원들의 개성공업지구 통행과 편의를 당국회담대표단과 동일하게 보장하며 연락사무소 운영과 관련된 설비, 물자들에 대해 세금과 부과금을 면제한다. 

제6조 합의서의 수정 보충 및 효력 발생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여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며 상호 합의에 따라 수정, 보충할 수 있다. 

2018년 9월 14일

남북고위급회담 남측수석대표  조명균
북남고위급회담 북측단장  리선권

(자료제공-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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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빠진 9.13 대책…공시가격부터 건드려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9/15 05:20
  • 수정일
    2018/09/15 05: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경실련, 신도시 계획 철회, 분양원가 공개, 주택공시가 산정 개선 등 요구
2018.09.14 17:56:37
 

 

 

 

문재인 정부의 9.13 '주택시장 안정 대책' 발표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알맹이 빠진 생색내기용"이라며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4일 낸 입장문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스스로도 '이번 대책으로 투기와 집값을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일부 언론도 예상보다 강한 대책이 나왔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그러나 종합부동산세 인상은 개인 아파트 중심에 국한한 채 공급 확대, 규제 완화를 고수하고 있어 집값 거품을 제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종부세 인상이라는 방향은 맞지만, 개인 아파트에 대한 과세는 부분적 대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종부세 완화에도 집값이 하락했다"며 "최근의 집값 상승은 세제 완화가 아닌 도시재생 뉴딜, 여의도·용산 개발, 그린벨트 신도시 개발 등 공급 확대책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투기를 조장하는 신도시 개발 철회, △분양원가 공개 등의 공급 방식 전면개선,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보유세 및 임대소득 과세 정상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들은 촉구했다.  

경실련은 "평범한 직장인 1년 월급이 1주일 만에 오르는 '미친 집값'을 잡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막대한 불로소득을 낳는 지금의 집값을 유지하는 정책이 아니라, 집값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이라고 지적, 부동산 정책 전면 전환을 요구했다. 

경실련은 "세제 강화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기존 집값을 낮추기 위한 대책도 함께 시행돼야 한다. 그래야 주택 가격 하락과 세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기 때문"이라며 "분양원가 공개와 공공택지 민간 매각 중단, 값싸고 질 좋은 공공주택 공급 등 근본적으로 집값을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투기를 조장하는 판교식 신도시 개발은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정부가 공공 택지의 전매 제한을 강화해 이를 막겠다고 하지만 이는 매우 안일한 인식이다. 참여정부 당시 집값 폭등 기폭제 역할을 했던 판교신도시의 전매 제한은 이번 정부 대책보다 긴 10년이었음에도 판교는 투기판으로 변질됐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공공주택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전매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또 이들은 보유세 강화에 앞서, 과세 대상과 기준을 정하는 '과세표준(과표)' 문제를 먼저 건드려야 함을 지적했다. 이들은 "보유세 강화의 최우선 과제는, 시세 반영도 못하고 아파트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불공평한 공시가격·공시지가 개선"이라며 "특히 재벌 기업이나 고급 단독주택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들은 2005년 도입 이후 10년 넘게 지방의 서민아파트 보유자들보다 보유세를 덜 내왔다. 이런 문제를 정부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공시가격 점진적 현실화'만 언급하고 있어 공시가격 개선 의지도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의 종부세 강화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며 종부세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쉽게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정부가 진정 보유세 강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법 개정 없이 개선이 가능한 공시가격 정상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조세 정의 구현이라며 부동산 자산 과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업이 소유한 업무용 빌딩과 토지,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과세 강화는 빠져있고 주택에 국한된 종부세 인상"이라며 "기업들은 지금도 시세 40% 내외의 공시가격으로 보유세를 부담하고 있고, 건물에 대해서는 종부세 자체가 부과되지 않는다. 조세 정의를 외친다면 이런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는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값싸지도 않고 8년 거주에 불과한 민간 임대주택을 위해 다주택자에게 종부세 비과세, 양도세 중과 배제 등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페지가 마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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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독립시민행동, '방송의 정치적 독립 보장' 촉구

정치권 개입 속 KBS·MBC·EBS 이사진 구성 마무리…"정치권 배제하고 국민참여 보장해야"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9.14 13:46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과정이 마무리 된 가운데 전국 241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이사진 구성에도 정치권 추천 관행이 이뤄졌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시민행동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정은 끝이 아니다"라며 정치권 개입 배제와 국민참여가 보장되는 방송법 개정 쟁취를 위해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행동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과정을 비판했다. 시민행동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및 선임과정에서 보여준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은 한 마디로 실망스러웠다"며 "이번 선임과정은 문재인정부의 방통위가 과연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언론적폐 청산'을 중요한 과제로 포함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과정"이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전국 241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과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이사선임 과정에 정치권 개입을 배제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방송법'쟁취를 위해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미디어스)

시민행동이 이 같은 비판을 내세운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에 있어 관행으로 이뤄져왔던 '정치권 추천'문제가 이번 선임과정에서도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사 선임 및 추천권한을 가진 방통위는 이번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정에서 국민의견 수렴 절차를 새로 도입하고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선임과정에서 노골적인 정치권 개입 정황이 포착되고, 실제로 정당 추천을 받은 후보들이 이사로 선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사 후보들의 지원서는 시민들에게 공개됐지만 추천인은 명시되지 않았으며,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회의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시민행동은 "방통위가 실시한 '국민의견 수렴'은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방송법상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및 추천 권한은 주무부처인 방통위에 있다. 그러나 이번 선임과정에서도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정치권 개입 논란이 발생하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법 개정'이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정이 마무리 된 최근 방통위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위원장 고삼석, 이하 미발위)는 이른바 '중립지대 이사'가 골자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정책제안서'를 방통위에 제출했다. 공영방송 이사는 방통위 또는 국회가 추천·임명하되, 정파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중 일부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후보자가 개방형으로 추천되도록 하는 이른바 '중립지대 이사'로 두자는 내용이다.

국회에서는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으로 불리는 방송법 개정안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꼽힌다.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여·야 추천 비율을 비등하게 조정하는 안으로 사장 선임에 있어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반면 시민행동은 미발위 안과 언론장악방지법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현 방송법상에 명시되어있지도 않은 정치권 추천 관행을 법적으로 명문화 할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민행동은 공영방송 이사선임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국민참여방송법'을 주장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정연우 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이번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정에서도 정치권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나눴다. 이제는 관행이 아니라 법적으로 이를 명문화 하려는 시도까지 이뤄지고 있다"며 "이 관행을 더는 우기지 못하게 법으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방송법을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BS·MBC 등 공영방송 사업장 노동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문제를 가지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 청와대와 언론 간 거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나, 그럼에도 온 이유는 청와대에서 이 일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방통위에 독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정작 해야할 관여, 주문은 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제라도 방통위에 확실하게 향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라고 주문하라"고 촉구했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청와대와 정당 추천으로 구성되는 방통위가 방송 독립을 위해 이사 선임과정에서 정치권 개입을 배제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라며 "방통위 자체가 개혁대상"이라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방문진에서는 새 이사들 출범 후 MBC 업무보고가 있었다. 공영방송 MBC를 망치고 국정원의 명령에 따랐던 최기화·김도인이 이사로 앉아 최승호 사장을 앉혀놓고 호통을 쳤다"며 "이는 촛불에 대한 모독이다. 방문진과 KBS 이사회 이사 뽑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은 현 방통위를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당추천, 대통령의 이름으로 앉은 이들이 방송의 독립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차제에 방송독립에 대한 법 개선 과정에서 방통위 구성에 대한 대폭적인 개혁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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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띄웠다, 생명을 구했다

[사회혁신 길찾기⑩ - 마지막회] 짚라인 & 피크, 사람 살리는 기술은 어떻게 탄생하나

18.09.14 12:07l최종 업데이트 18.09.14 12:07l

 

시민이 만드는 혁신적 사회 변화, 우리는 그것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고 부릅니다. 시민의 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아프게 경험한 우리에게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지금부터 그 쉽지 않은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회입니다. - 기자 말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찔할 정도다. 쫓기듯 어딘가로 정신없이 내달리는 대한민국의 풍경도 어지럽긴 마찬가지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호랑이 말이다. 그런데 이 호랑이는 정말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까.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기계와 벌인 수 싸움에서 인간이 내리 세 판을 밀린 뒤부터였으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2016년 벽두에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을 선포한 지 두 달 만이었다. 다시 몇 달 뒤, 혁명의 주창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한국을 찾아 "4차 산업혁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패자의 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라며 겁을 주기도 했다.
 

 2016년 3월 15일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  2016년 3월 15일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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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거스르는 목소리도 있다. 세계 최고의 로봇 연구소로 꼽히는 로멜라(RoMeLa)의 소장 데니스 홍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고, 페이스북의 인공지능(AI) 연구 책임자 얀 르쿤(Yann LeCun)은 "특별한 영역에서 기계는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지만,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 측면에선 아직 쥐(의 지능)에도 못 미친다"고도 했다.

가파른 기술 발전이 산업혁명에 버금갈 만한 사회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에 거리를 두는 태도이자,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디스토피아)가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 것이라는 섣부른 낙관(비관)을 경계하는 시각으로 읽힌다.

어느 쪽이 맞을까. 더 두고 볼 일이지만, '4차 산업혁명'이란 호랑이가 (유령이든 아니든) 기술을 둘러싼 모든 논의를 집어삼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안타깝다.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아서다. 지금부터 기술이 조금 다르게 쓰인 사례들을 살펴보려 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생명을 실어 나르는 드론

르완다(Rwanda)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다. 경상도 너비만한 땅에 인구도 1200만 명으로 엇비슷하다. 1인당 GDP는 2017년 754달러, 인구밀도로는 아프리카에서 첫손에 꼽힌다. 35개의 지역 병원과 478개의 건강센터가 있지만, 대개는 크고 작은 언덕들이 이어진 험난한 길을 지나야 한다. 1년에 두 번씩 찾아오는 우기엔 그마저도 막히기 일쑤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자그마한 땅에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으니 날개만 있다면 한 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짚라인(Zipline)'은 이런 점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드론으로 이 나라 곳곳에 혈액을 실어 나르는 '무인 항공 공급 체계'를 구축했다.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아프리카 르완다의 혈액 공급센터에서 짚라인 엔지니어가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  아프리카 르완다의 혈액 공급센터에서 짚라인 엔지니어가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 z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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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액팩은 종이 낙하산이 달린 상자에 담겨 병원 앞마당에 투하된다.
▲  혈액팩은 종이 낙하산이 달린 상자에 담겨 병원 앞마당에 투하된다.
ⓒ z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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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짚라인은 르완다 정부와 계약을 맺고 무항가(Muhanga) 지역의 옥수수밭에 첫 혈액 공급센터를 건설했다. 13개의 드론으로 시작했고, 직원도 대부분 르완다인을 채용했다. 한 번에 150km를 비행하는 드론이면 이 나라의 서쪽 절반에, 그것도 30분 안에 혈액을 실어 나를 수 있다.

 

2년 전인 2016년 10월 처음 날아오른 드론은 1년이 조금 넘는 동안 약 4000회, 거리로는 약 30만km를 비행하면서 7000개의 혈액팩을 12곳의 의료기관에 꾸준히 공급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환자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응급상황이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필수적인 약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때에, 낭비와 비용, 재고를 줄이면서 접근성을 높이고 생명을 구하고 있다."

짚라인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켈러 리나우도(Keller Rinaudo)의 말이다. 혈액은 냉장상태로 42일간만 저장할 수 있다. 그 이후엔 버려진다. 그러니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하려면 버려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병원마다 어느 정도의 혈액을 보관해야 한다. 병원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버려지는 혈액도 늘어나는 셈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마찬가지다.

르완다 정부도 수도 키갈리(Kigali)의 국립 센터와 네 개의 보급소에 많은 양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가 수십 곳의 의료기관에 지속적으로 혈액을 공급해왔다. 그러다보니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키갈리에서 30km 떨어진 르완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캅가이(Kabgayi)의 병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병원 스탭들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혈액을 얻기 위해 키갈리를 다녀와야 했다. 대개 서너 시간이 걸리니 응급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차라리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편이 더 나았다.

지금은 어떨까. 스마트폰으로 공급센터에 혈액을 요청하면 드론이 15분 만에 5km를 날아와 낙하산이 달린 종이상자를 병원 앞마당에 떨어뜨려준다. 다른 곳도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짚라인 직원들도 대부분 현지인들이다.
▲  짚라인 직원들도 대부분 현지인들이다.
ⓒ z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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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어느 날, 24살의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다가 합병증이 생겨 많은 양의 피를 쏟기 시작한 일이 있었다. 병원이 가지고 있던 혈액을 모두 투여했으나 10분 만에 그 만큼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산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병원은 곧바로 공급센터에 피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드론이 센터와 병원을 여러 차례 오가며 적혈구 일곱 팩, 혈장 네 팩, 그리고 혈소판 두 팩을 실어 날랐다. 우리 몸의 혈액보다도 더 많은 양이었다. 그렇게 산모와 아이 모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결과다. 전 세계 어떠한 의료 돌봄 체계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우리가 혈액을 공급하는 병원들에선 혈액 사용량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지난 아홉 달 동안 어느 곳에서도 단 하나의 혈액팩조차 버려지지 않았다."

짚라인은 르완다에 두 번째 공급센터를 세우고 있다. 머지않아 짚라인의 드론이 르완다의 모든 의료 기관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2017년 8월에는 아프리카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탄자니아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의약품 공급 체계를 세우기로 했다. 탄자니아는 5500만 명 인구 가운데 68%가 농촌에 산다. 이들에게 혈액과 의약품(비상 백신, HIV 약품, 항말라리아제, 항생제, 실험용 시약 및 기본 외과 용품 등)을 공급하려 수도 도도마(Dodoma)를 비롯해 모두 4곳에 공급센터를 짓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1000개가 넘는 의료기관에서 하루에도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살상 무기가 아프리카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기술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미국 교통부가 캘리포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10개 주와 도시에서 드론으로 의약품 등을 공급하는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장거리 및 야간 비행을 허가했다. 이제 짚라인은 의약품을 싣고 노스캐롤라이나의 하늘 위를 날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빛을 선물하다
  
 바스토로소 박사가 피크로 진단하고 있는 모습
▲  바스토로소 박사가 피크로 진단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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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약 3900만 명(2014년)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안타까운 건 이들 가운데 무려 80%가 제 때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만 받았어도 이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단 사실이다.

케냐의 어느 시골 마을에선 안과의사 1명이 100만 명을 돌봐야 한다. 미국에는 평균 1만 5800명 당 1명의 안과의사가 있는데 말이다. 안경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수 있지만 케냐나 방글라데시의 시골 아이에겐 그런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영국의 안과의사 앤드류 바스토로스(Andrew Bastawrous) 박사도 어린 시절 비슷한 처지였다. 그는 밤하늘 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12살이 돼서야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교사들은 그를 게으른 학생으로 여겼다. 그는 안과에서 처음으로 시험용 렌즈를 끼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삶은 달라졌고 그는 안과의사가 되었다.

2011년 바스토로스는 연구팀을 꾸려 아프리카 케냐로 갔다. 100개 마을을 돌며 5000명의 주민을 만나 시각장애가 생기는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였다. 영국에서 가져온 1억 원이 넘는 첨단 의료 장비들을 차에 싣고 험한 길도 마다 않았지만, 정작 어렵게 닿은 마을에선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쓸 수 없었다. 값비싼 장비들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그때 그의 눈에 주민들의 손마다 들려있는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케냐에선 물보다 스마트폰을 구하기가 쉽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흔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검안 장비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3년간의 연구 끝에 '피크(Peek, the Portable Eye Examination Kit)'가 세상에 나왔다. 피크는 스마트폰으로 시력을 측정하고, 망막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앱과 기기로 이뤄져있다. 무엇보다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고, 값도 싸다.
 
 피크 어큐티로 시력을 측정하는 모습. 간단한 교육으로 누구나 시력을 측정할 수 있다.
▲  피크 어큐티로 시력을 측정하는 모습. 간단한 교육으로 누구나 시력을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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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어큐티(Peek Acuity)'라는 시력 검사용 앱을 설치하면 어디에서든 간단히 시력 검사를 할 수 있다. 피검안자가 2m 떨어진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알파벳 'E'자 모양의 도형을 보고 열린 방향을 가리키면 검안자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그 방향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알파벳이나 숫자를 몰라도 검사를 받을 수 있고, 검안자는 화면을 밀어 방향만 차곡차곡 입력하면 저절로 결과가 기록되니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어렵지 않게 시력을 측정하고 또 기록할 수 있다.
    
'피크 레티나(Peek Retina)'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끼워 망막을 찍을 수 있는 작은 기기다. 3D 프린터로 5달러면 만들 수 있는 이 작은 기기로 전문 의료 지식이 없어도 망막 사진을 찍어 의사에게 보낼 수 있다(가장 비싼 검안 장비는 10억 원에 달한다). 녹내장, 백내장, 당뇨성 망막증 및 황반변성 그리고 노화에 따른 시력감퇴 등을 진단할 수 있다.

2014년 시제품을 만든 뒤 2000개 이상의 사진을 찍어 첨단 장비로 찍은 것과 비교함으로써 가능성을 입증해보였다. 또 위치정보를 저장하는 기능도 있어 이상이 발견되면 적절한 조치가 뒤따르도록 돕고, 태양열로도 충전할 수 있어 따로 전기를 끌어올 필요도 없다.

작은 흙집에서 20년 넘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건너편에 사는 아들을 소리쳐 부르곤 했다. 피크 레티나로 망막을 찍어보니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것으로 보였고, 다행히 시력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었다. 얼마 뒤 병원 버스가 위성항법장치(GPS)로 그녀를 찾아와 큰 병원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한쪽 눈의 시력을 되찾았다.
 
 피크 레티나를 스마트폰에 끼운 모습과 실제 촬영한 사진
▲  피크 레티나를 스마트폰에 끼운 모습과 실제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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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 레티나로 찍은 망막 사진을 찍는 모습
▲  피크 레티나로 찍은 망막 사진을 찍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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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전 세계에 약 1200만 명이 있다. 게다가 검사를 받는다 해도 부모와 학교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피크팀은 시력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학생의 눈으로 본 이상 시야와 정상 시야를 한 화면 안에 비교해서 보여주는 앱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이 어떤지를 부모들이 눈으로 직접 보도록 한 것이다. 또 가까운 안과에 아이의 정보를 보내고, 부모에게 아이를 병원에 데려오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도록 했다. 이렇게 여러 모로 애를 쓴 결과, 전보다 3배나 더 많은 아이들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기기와 시스템을 공동체에 맞춰 통합했고, 이것을 디자인하는 데 더 오래 걸렸지만, 그냥 하나의 기기나 앱보다 더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바스토로스는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피크를 다듬어 가고 있다.

2017년 4월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Botswana)에서 49개 학교 1만 2877명이 피크로 검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848명은 보츠와나 건강부로부터 안경을 받았고, 93명은 약물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63명은 도시의 큰 병원들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2018년 6월부터 피크는 케냐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30만 명의 아이들이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고, 안경을 기부 받아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탄자니아와 인도에서도 피크를 사용하고 있다. 또 영국의 동네 의원들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의사(GP)들이 피크를 쓰고 있다. 스마트폰에 작은 기술이 더해져 수십, 수백만 명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기술의 쓰임새를 위해

기술의 값어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투여된 자본이나 벌어들일 수익의 크기, 또는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의 양에 따라 매기는 게 옳을까. 그렇지 않다.

"(사회혁신) 프로젝트들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자원(전통적 수공예 기술에서부터 최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들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점이다."(이탈리아 밀라노 공대 에치오 만치니 명예교수)

한 사회에서 기술의 쓰임새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또 그래야 한다. 몇몇 첨단 기술만이 기술로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란 뜻이다. 국가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앞세워 과학과 기술을 줄 세우고 쥐어짜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라 믿는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방향 그리고 쓰임새를 결정하는 건 마땅히 사회 전체의 몫이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치인과 관료와 학계,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는 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을 자기편으로 하려는 신성한 제식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고 걱정하는 '반(反) 4차 산업혁명 매니페스토'도 그렇게 외치고 있다.

어떤 기술이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또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 하나, 스마트폰을 부국(富國)의 수단으로만, 드론을 강병(强兵)의 무기로만 여기는 인식이야말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가장 거리가 멀다.

우리도 이제 그만 호랑이 등에서 내려와 호랑이를 길들여야 할 때다. 우리 모두가 정말 바라는 곳으로 데려다주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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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혁신 길 찾기①] 이탈리아 '프로젝트 퀴드'와 프랑스 '휠즈'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이 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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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UN 회람용 판문점선언에 ‘연내 종전선언’ 명시

남북 공동으로 영문본 제출… 종전선언 담은 판문점선언 3-③항 해석 논란 마침표

남과 북 정부가 공동으로 유엔(UN)에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회람용으로 제출하면서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하기로 했다고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종전선언은 판문점선언의 3-③항에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 3-③항 자체가 복문이고 쉼표도 없어 해석에 차이가 생길 소지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남과 북이 올해 종전을 선언한 다음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시기와 상관없이’ 추진키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올해 안에 반드시 하고, 평화협정(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차 회담은 시한에 얽매지 않고 추진한다는 뜻인 셈이다.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남과 북이 종전선언부터 평화협정(평화체제 구축)까지를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올해 안에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성사 여부를 떠나 올해 안에 3자 또는 4자 회담 추진을 강조한 해석이다.

그뿐 아니다. 올해 안에 평화협정 전환까지를 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시한 없이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듯 여러 해석이 가능해 초래될 혼선을 남북 정부가 유엔 회람용으로 단일한 영문본 문안을 작성, 제출해 차단한 것이다. 판문점선언의 3-③항의 종전선언은 올해 안에 하는 것으로 남북 정부가 의견 일치를 본 셈이다.

남북 정부가 공동 작성한 이런 내용의 판문점선언 영문본은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 대사와 김인룡 북한 대사대리의 공동서명을 거쳐 지난 6일 유엔에 제출돼 총회와 안보리에 동시 회람됐다. 일반엔 11일 공개됐다.

[유엔 제출 판문점선언 3-③항 영문본]

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greement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1. 연내 종전선언 하기로 합의
2.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4자회담 개최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

그런데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지난 4월 판문점선언 직후 한국 정부가 공개한 영문본과 이번에 유엔에 제출한 영문본이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청와대쪽은 VOA의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현지시각) VOA와 전화통화에서 “지난주 유엔에 제출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이 유일한 공식 번역본이고 수 개월간 배포된 영문은 비공식 번역”이라며 “종합적으로 영어전문가들이 국문을 번역해 유엔에 제출해 (이번 문건은)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비공식 번역이라는 말이 누락된 건 담당 부서의 실수였다. 주의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도 이날 VOA가 ‘공식 번역본이 5개월 뒤인 유엔 제출 시점에서야 나오게 된 배경’을 묻자 “이번 문서 회람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유엔 차원의 후속조치로서 남북간 협의 하에 추진됐다”고만 설명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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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 지나”…CCTV서 드러난 삼성전자 가스누출 사고 대응의 ‘허술함’

김병욱 의원, 사고 당일 CCTV 공개 “삼성이 말하는 실시간 병원 이송은 이런 건가”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8-09-14 10:45:35
수정 2018-09-14 10: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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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가스누출 사고 당일 1층 로비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소방대원들의 도착 시점이라고 밝힌 2시 1분에는 안전모만 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진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삼성전자 가스누출 사고 당일 1층 로비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소방대원들의 도착 시점이라고 밝힌 2시 1분에는 안전모만 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진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근무하던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이산화탄소 유출 사고 당일 CCTV 영상이 공개됐다. 이 영상에서는 삼성전자 자체 소방대들원들이 안전복이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현장에 최초 투입하는 등 허술했던 삼성전자 측의 대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사고로 현장에서 외주업체 직원 2명이 숨지고, 1명은 크게 다쳤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로부터 제출받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소의 이산화탄소 유출사고 구조 영상을 공개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영상은 사고 당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1층 로비 모습을 찍은 CCTV 영상이다. 삼성전자 측에서 자체 소방대원들의 도착 시점으로 주장한 2시 1분에는 2명의 안전모를 착용한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이들은 안전복은 물론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자체 소방대원들은 현장 내부에 출입할 때마다 번번이 출입증을 갖다대야 했다. 김 의원은 "이 분들은 위급한 사고 현장에 긴급하게 투입되는 소방대원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10분 뒤인 오후 2시 11분, 장비를 착용한 대원들이 추가로 투입된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이 대원들이 맨 처음 출동한 이들과 같은 소속의 구급요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더욱이 화학물질 누출사고 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직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건물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삼성전자 가스누출 사고 당일 1층 로비 모습이다. 환자들의 이송은 2시 32분에서야 시작됐다.
삼성전자 가스누출 사고 당일 1층 로비 모습이다. 환자들의 이송은 2시 32분에서야 시작됐다.ⓒ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또한 삼성전자 측은 오후 2시 8분 구조가 필요한 3명을 발견하고 구조활동을 실시해 오후 2시 20분에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상에서는 오후 2시 24분 1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구조요원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포착됐고, 뒤이어 의식을 잃은 피해 작업자들이 자체 소방대원들에 의해 끌려 나오는 모습이 찍혔다. 환자용 들것은 오후 2시 27분에서야 들어왔고, 환자 이송은 32분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시작됐다.  

김 의원은 "사고 현장이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나 구조요원이 바로 쓰러질 정도였는데 과연 심폐소생술이 제대로 이뤄졌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삼성이 사고를 인지했다고 주장한 때로부터 28분이 지난 오후 2시 27분에야 사고 현장에 들 것이 투입됐다"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삼성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이산화탄소 유출 사고시 자체소방대에서 즉시 출동을 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으나 삼성이 말하는 거의 실시간 병원 이송은 이런 것인가"라며 "앞으로도 이렇게 자체소방대 출동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소방당국의 협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는 사고 발생 당시 소방당국에 곧바로 신고하지 않아 늑장 대응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삼성전자 측에서는 "자체 소방대에서 즉시 출동해 거의 실시간으로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고 난 뒤 30분여분이 지나서야 환자 이송이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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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 만에 돌아온 ‘세금폭탄’ 프레임

[아침신문 솎아보기] 정부 부동산 종합대책에 ‘세금폭탄’ 프레임, ‘선의의 피해자’ 과도한 조명, 기승전 ‘공급확대’ 논리도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9월 14일 금요일

“유권자 한 분이 나를 붙잡고 힐난을 했다. 지난 정권이 세금을 너무 올려놔서 힘들어 죽겠다는 것이다.” 2009년 발간된 유시민 작가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유권자는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종합부동산세 징수 대상이 아니었다. 유 작가는 ‘세금폭탄’ 프레임의 효과라며 “선출되지도 않았고 교체될 일도 없는 최강 권력 보수언론. 그들이 퍼뜨린 세금폭탄론의 위력은 이렇게 컸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13일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목적은 ‘투기’를 막고 집값을 안정화하는 데 있다. 정책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종부세’를 강화했다. 과세표준 3억 원 초과 6억 원 구간을 새로 만들고 과세율을 높였다. 또한 추가과세대상에 조정지역 2주택자를 포함했고, 초고가 주택에 세율을 높였다. 참여정부 때보다 강한 종부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 14일 중앙일보 기사.
▲ 14일 중앙일보 기사.

둘째, 주택담보대출이 깐깐해진다. 집이 한 채라도 있으면 규제지역에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지금까지는 ‘투기지역’이라도 집값의 40%까지는 새 집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셋째, ‘임대사업자’ 혜택을 대폭 축소한다. 임대사업자에게 쉽게 대출을 해주는 기존의 정책이 투기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대출 한도를 절반으로 낮추고, 세금도 이전처럼 깎아주지 않는다. 

넷째, ‘양도세’ 면제 기간을 줄였다. 지금까지는 조정대상 지역에 집을 새로 사는 경우 원래 집을 3년 안에 팔면 양도세를 면제했는데 이 기간을 2년으로 줄인다. 2주택자에게 집을 빨리 팔도록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발표 다음날인 14일 보수언론은 반발했다. 2006년 참여정부 부동산 대책 때 나왔던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모양새다. 

우선, 마치 많은 시민들이 당장이라도 세금을 내야 할 것 같은 ‘세금폭탄’ 프레임이 부활했다. 중앙일보는 “세금폭탄 내세운 반쪽 부동산 대책 성공할까” 사설에서 “징벌적 세금폭탄만으로는 집값을 잡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조정 대상지역 내 2주택자와 3주택 이상인 자는 세금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조선일보) “고가 다주택 22만명에 종부세 폭탄”(매일경제) “메가톤급 대출 규제와 세금폭탄을 동시에 쏟아내면”(한국경제) 등 ‘세금폭탄’이라는 용어가 이어졌다.  

누구에게 세금이 폭탄이 된 걸까. 보수신문은 이번 정책의 핵심 대상을 빗겨가 평범한 사람들의 피해를 부각했다.   

대표적인 게 ‘1주택자’의 피해다. 중앙일보의 1면 머리기사는 “1주택자도 집 더 살땐 대출 못 받는다”이고 지면을 넘기면 “집한채 40대 ‘투기꾼도 아닌데 왜 세금 많이 내야하나’”는 반발이 나온다.  이 기사에서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1가구1주택자 이모씨는 “이젠 빚 내서 세금을 내야 할 판”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아크로리버파크 한 채만 있어도... 보유세 40% 늘어 1138만원”(매일경제)도 비슷한 기사다.

 

▲ 14일 보수신문 사설.
▲ 14일 보수신문 사설.

이 같은 반발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 1주택자라 해도 시가 18억 원 미만이면 변함 없다. 시가 18억 원인 ‘똘똘한 한 채’에는 현행보다 0.2%~0.7%포인트 높은 세율이 매겨지는데 세부담은 현재보다 10만원 가량 늘어나는 수준이다. 한겨레는 “과표가 12억원인 경우 1주택자의 세부담은 357만원, 다주택자는 717만원 늘어나지만 지난해 종부세 과표가 12억원 이상인 사람은 모두 합쳐 전국에 8895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종부세 자체가 다주택자 징수 세금이 아니라 ‘불로소득’ 환수에 목적이 있고, 강남 등 특정지역에서 누리는 온갖 혜택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는 취지를 감안하면 1주택자의 종부세 징수를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이밖에도 다양한 ‘선의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매일경제는 “전문가들은 세 부담이 전세나 월세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고 전세자금대출 규제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우려한다”며 세입자를 내세웠다. 한국경제는 “거래 급감으로 인해 집을 처분하지 못하는 선의의 피해자”를 걱정했다. 물론, 일부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전면에 내세울만한 피해라고 보기는 힘들다. 

기승전 ‘공급확대’ 보도도 다시 쏟아졌다. 정부는 ‘공급확대’ 방안도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밝혔을 뿐 이날 구체적인 내용은 뺐다. “수요만 억누르는 대책은 반짝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매일경제를 비롯해 “하루 빨리 재건축, 재개발 같은 공급 확대책과 거래세 조정안”(중앙일보) “추후 공급대책이 관건”(한국경제) 좋은 주택이 계속 공급된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면 시장은 안정세로 바뀔 것”(조선일보) 등 대동소이한 주장이 이어졌다.

한 마디로 신도시 만들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면 시장이 안정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투기 위험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급’중심의 부동산 정책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 때 선보였으나 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프레임 싸움은 지금부터다. 종부세 강화 등 이번 정책의 골자는 정부 발표만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다. 14일을 기점으로 보수언론의 반발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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