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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메르스 교훈을 적용하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9/18 13:44
  • 수정일
    2019/09/18 13: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확한 역학조사가 관건이다.
 

 

 

경기도 파주와 연천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 잇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처음으로 발생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직접 나서 총력 대응을 주문했다. 가축방역 당국은 밤새도록, 그리고 한낮에도 수천마리의 돼지들을 살처분하느라 바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경기 북부가 아니라 전국으로 퍼지면 양돈농가는 물론 돼지고기 가격 급상승 등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구제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치명적이고도 전파 속도가 빠른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사회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난은 국가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대형 산불이든, 태풍이나 홍수든, 대형화재든 두말 할 나위 없이 조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총력을 다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는 재난안전 관리 당국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 모두가 잘 아는 상식이다. 
 
메르스 창궐 등에서 얻은 교훈을 적용하라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 전략은 인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대응 전략과 다를 바 없다. 2015년 우리 사회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을 겪었다. 그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리고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다. 또 몇 차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대유행을 통해서도 가축 전염병과 인체 감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정확한 전파 경로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 방역을 하려면 최우선으로 정확한 전파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 초기 역학조사가 중요하다. 1차 저지선은 뚫렸지만 2차 저지선이 뚫리면 낭패다. 위기다. 재난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최초 발생의 원인을 제때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사한 전파 경로로 다른 양돈농가에서 다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아프리카,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북한 등지에서 이미 대유행을 겪으면서 어떻게 전파되는지가 완벽하게 파악돼 있다. 따라서 발생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가축방역 당국의 능력을 의심케 할 수 있다.  
 
1차로 북한, 2차로 국외 관련성 캐야 
 
감염 바이러스는 분명 국외 어디선가에서 왔다. 국내 최초 발생지가 북한과의 접경지대이어서 일단 북한쪽을 의심할 수 있다. 북한 유행 지역의 강물을 타고 바이러스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었고 이 물을 돼지들에게 주었을 가능성과 북한 쪽에서 넘어온 바이러스 감염 멧돼지와 양돈농가의 농장주나 일꾼, 사육 돼지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 째는 이 가축전염병이 유행하는 국외 지역에서 바이러스를 몸에 묻히고 들어온 누군가가 양돈돼지나 양돈농가의 누군가와 접촉을 해 국내 전파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사람이나 돼지와의 직접 접촉뿐만 아니라 외국 유행 지역을 다녀온 이들이 가져온 오염 소시지 등 축산물 찌꺼기(잔반)가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가축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포천과 연천에서 각각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서로 연관이 있는지와 이 두 농장에서 2주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낱낱이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최초 발생원인 파악과 함께 다른 지역 전파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효과적 방역 대책을 세워 실행할 수 있다. 만약에 하나 이에 실패한다면 2차 저지선도 뚫리게 되고 마침내 전국으로 확산되는 3차 저지선도 뚫리게 된다.
 
파주 등에서 이 가축전염병이 확진되기 전에 농장에서 기르던 1백여 마리의 일부 돼지들이 도축 등을 위해 차량을 통해 인천 도축장 등 다른 지역으로 실려 갔다고 한다. 만약에 이들 돼지 가운데 감염된 것이 있고 감염 정도가 다른 돼지나 환경 중에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는 정도였다면 파주와 연천 이외 지역에서도 이 전염병이 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축전염병 유행 때는 위험(위기) 소통도 중요 
 
메르스 창궐 당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지역사회에서 메르스가 유행하는 것이었다. 가정과 일부 병원에서만 메르스가 전파되는 양상이라면 이는 우리의 방역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들 사이에 퍼져나간다면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다행히도 그런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 뒤에는 생명을 내걸고 집에도 가지 못한 채 한 달 이상 병원과 지역 사회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한 보건의료인과 방역 당국, 공무원들이 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전염병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데다 백신도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 전파 차단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메르스 대응처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잉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양돈농가와 주민들이 불편하더라도 이를 참아내고 협조하는 것이 맞다. 
 
발생 농장과 2차 전파 우려 지역의 도축장 등 관련 기관과 관계자들은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아주 세세한 것까지 빠짐없이 가축전염병 역학조사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조사관들은 이들이 하는 말 하나 하나를 놓치지 말고 귀담아 들어 정확한 원인 조사와 함께 효과적 방역을 위한 기초자료로 삼아야 한다. 
 
가축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기 위해 또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위험(위기) 소통이다. 막연하고 비이성적 공포로 돼지고기를 소비하지 않거나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방서비스 등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시민들은 정확하지 않은 관련 정보 유통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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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동해에도 영향... 복원 불가"

[서면인터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록한 그린피스 일본사무소

19.09.18 07:15l최종 업데이트 19.09.18 07:15l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해 촬영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모습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해 촬영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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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후쿠시마 원전)에는 매일 방사능 오염수가 쌓인다. 원자로 내 핵연료봉을 식히고 난 냉각수다.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흔히들 '방사능 오염수'라고 부른다. 도쿄전력 자료에 따르면, 이런 방사능 오염수가 일주일에 약 2000~4000톤가량 만들어져 후쿠시마 원전(1~4호기)에 약 111만 톤(2018년 12월 31일 기준)이 보관돼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숀 버니(Shaun Burnie) 독일사무소 수석 원자력 전문가는 지난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청간담회에서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111만 톤을 방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였다.

우리 정부는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방사능 오염수 계획을 물으며 항의했다. 지난 1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도 기조연설을 통해 일본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방류 심각성을 알리고 국제적으로 공론화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그동안 후쿠시마 원전 내 방사능 오염수 처리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아직 계획된 바가 없다'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후케다 도요시 원자력규제위원장과 하라다 요시아키 환경상은 잇따라 해양 방류 계획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그린피스 일본사무소에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한 일본 내 움직임에 관해 물었다. 그린피스 일본사무소는 지난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흔적을 꾸준히 기록해 왔으며,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서도 세상에 알린 곳이다.

그린피스 일본사무소와의 인터뷰는 8~9월에 걸쳐 세 차례 서면으로 진행됐으며, 번역은 박철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 111만 톤을 바다에 방류하려는 이유
 
 지난 2016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5년을 맞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다이버들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해상 시위하고 있는 모습
▲  2016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5년을 맞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다이버들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해상 시위하고 있다.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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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 111톤을 방류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인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일본 정부 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담당 기관들은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가장 저렴하고 신속한 오염수 처리 방법이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삼중수소수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가 지난 2016년 6월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3~2016년 기간에 방출 폐기 방식에 대한 기술적 평가를 했고 여기서 다섯 가지 방식이 제기됐다.

1) 지구 주입 : 사전 처리, 사후 희석, 사후 분리 모두 불필요
2) 해상 배출 : 사후 희석, 사후 분리
3) 증기 배출 : 사전 처리, 사후 희석, 사후 분리 모두 불필요
4) 수소 배출 : 사전 처리 및 사후 분리 불필요
5) 지하 매장 : 사전 처리 불필요

이 방식 중에서 선호된 것은 태평양으로 직접 퍼다 버리는 것이었다. 대책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바다로 배출하는 방식을 완료하는 데에는 34억 엔(약 373억 원)과 7년 4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다섯 가지 방식 중에서 가장 저렴하고 신속한 방식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방식 이외에 또 다른 대안적 방출·배출 방식을 검토에 포함해 설명하지 않았다. 오염수를 처리하여 삼중수소를 분리하는 방식과 같은 대안적 방안들은 2011년 사고 이후 첫해에 검토된 바 있다.

대책위원회 보고서에도 '삼중수소 분리 기술과 관련한 많은 제안이 있지만,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볼 때 가장 유망한 시스템인 복합 전기분해 촉매 교환(CECE)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혁신적인 제안은 없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과 대책위원회는 대안 방식들이 있고, 이를 인지했으나 배제해버렸다. 즉, 후쿠시마 제1 원전에 적용할 삼중수소 제거 기술은 (대안 방식이 제시됐음에도) 어느 것도 채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후 대부분의 절차가 태평양 방류를 공식화하려는 절차로 이행됐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에 있었던 시민 공청회다. 지난해 8월경, 도쿄전력과 대책위원회는 도쿄 및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오염수 처리 방안에 관해 설명하며 태평양 방류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다 공분을 샀다. 이런 논의 절차도 모두 오염수 방류 계획을 추진하려는 논의 과정이라고 본다."
  
-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항의에 '아직 계획된 바가 없다'라고 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장과 환경상도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최선이며, 이는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되어 온 바로 최인접국인 한국의 우려에도 이전의 생각에서 달라진 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현재 저장 중인 약 115만 톤(7월 말 기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오염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특히 원자로 노심의 용융(meltdown,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어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하여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으로 발생하는 오염수의 방사성 준위도 지금보다 높아질지 모른다.

오염수의 증가와 여기 포함된 고농도 방사성 물질들은 처음부터 일본 정부가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저장공간과 처리 기술 적용, 관리 등 천문학적 비용이 될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처음부터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태평양 방류가 가장 저렴하고 신속한 방법으로 고려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왜 위험하냐면
 
 지난 2011년 5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후쿠시마 원전 앞 해상에서 해수의 방사능 오염을 확인하기 위해 이를 채취하는 모습
▲  2011년 5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후쿠시마 원전 앞 해상에서 방사능 오염을 확인하기 위해 바닷물을 채취하고 있다.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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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일본 환경상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과감히 바다로 방출해 희석하는 방법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밝혔다.
"태평양 방류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일본 환경상의 발언은 과학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사실이 아니다. 방사능 오염수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못한 지금 상태에서 유일한 효과적 해법은 방사능 오염수를 탱크에 중·장기적으로 저장하고 그 사이에 처리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 방사능 오염수에는 어떤 방사성 물질이 있으며 왜 위험한 것인가?
"우선 가장 우려되는 방사성 핵종들은 스트론튬과 세슘, 삼중수소이다. 핵사고로 최소 2백여 가지 이상의 방사성 물질들이 방출됐는데, 이중 약 60여 가지 이상의 핵종들이 방사능 오염수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쿄전력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이다. 이들의 반감기(어떤 특정 방사성 핵종의 원자수가 방사성 붕괴에 의해서, 원래의 수의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는 적게는 십수 년에서 수만 년에 달하기도 한다. 일부는 물에 의해 쉽게 희석되고 처리 기술로 정화되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핵종은 사람을 포함한 자연환경 내 많은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한 물질들이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를 활용해 방사능 농도를 낮추려 시도했다. 하지만 오염 정도를 해양 방출에 적합한 규제치 이하로 떨어뜨리는 데 실패했다. 이런 사실을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7년 이상 지난 2018년 9월이 되어서야 인정했다. 또, 2018년 9월 28일 ALPS 처리 후 철제 탱크에 저장한 물 89만 톤 중 약 75만 톤이 해양 배출 허용 규제치보다 높은 방사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도쿄전력의 평가에 따르면, 스트론튬은 안전 기준치의 2만 배 이상 보인 적이 있는데, 오염수의 80% 이상 스트론튬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스트론튬과 세슘, 삼중수소는 ALPS 처리 이후에도 좀처럼 안전 기준치 이하로 준위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도쿄전력 방사능 오염수 관련 자료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방사능 오염수가 (ALPS) 처리 후 태평양 방류되어 희석된다고 할지라도 안전하다는 근거는 없고, 일본 정부도 이를 쉽게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 후쿠시마 원전에 얼마나 많은 방사능 오염수가 있으며 하루에 얼마씩 증가한다고 추정하는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11만 톤, 한국의 63빌딩 지상·하층을 모두 채우는 부피라고 한다. 올해 7월말 기준으로 115만 톤이 쌓여 있고, 현재 기준으론 더 늘었을 것이다. 하루에 최소 170톤의 오염수가 유입되며 일주일 기준으로 2~4천 톤, 2030년까지는 200만 톤 이상 늘 것으로 예측한다."

-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린다면 예상되는 피해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일본 정부는 약 111만 톤의 오염수를 기준으로 7년간 7억 톤 이상의 물을 부어 희석하고 처리하면 태평양 방류 가능한 안전한 수치로 농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수가 환경에 방출되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오염은 불가피하다.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지역은 후쿠시마 연안 일대이고, 그래서 주민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이후 북태평양, 한국의 동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방사성 핵종은 해류를 따라 돌면서 지속해서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오염시킬 것이다. 방사성 핵종이 많은 양의 물에 노출된다고 하여도 일시적 방류가 아니라 앞으로 백 년이 지난 이후에도 방류가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오염 이전의 상태로 생태계 복원은 불가하다.

한번 방류를 공론화하고 정책적으로 결정하면 오염수 방류는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생태계에 축적된 방사성 물질이 음식 섭취 등으로 사람의 인체에 투입, 흡수되면 건강상의 여러 위협이 될 수 있다. 저준위여도 사람 역시 지속 피폭될 가능성이 있다."

"내일의 세대 위해 지금 내려야 하는 결단은 탈원전뿐"

- 일본 국민들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어떤 의견인가?
"일본 국민들 대다수가 오염수 방류에 어떤 입장에 있는지 설명할 근거는 없다. 다만, 후쿠시마현의 사람들은 사고 이후 방사능 피해를 여전히 입고 있으며, 방사성 물질의 오염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본 정부의 설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일 것이다."

- 한국의 환경단체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통제하고 있지 못하며 방사능 오염수가 이미 유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됐던 이력에 대해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직접 확인한 바 있고 한국과 일본에도 보도된 바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해양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홈페이지에 공표한다. 이 자료에서도 방사능 오염수 일부가 해양에 유출되고 있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녹아내린 원자로의 방사성 물질들이 지층과 지하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오염된 지하수의 유입 혹은 바다나 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 최근 한국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서한을 보내 방사능 오염수 처리는 인접국 국민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구적 관심사라며 심각한 우려를 전했다.
"한국 정부는 IAEA 총회라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의지를 잘 피력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향후 유엔 인권회의, 국제해사기구 회의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기회를 활용해야 할 것이며, 지속해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공론화해 더 많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원전은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규모 참사 위험성을 잠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원전의 용납할 수 없는 위험과 사용후 핵폐기물 관리 등 환경 문제, 이로 인한 경제성 하락을 이유로 원전 사업의 신규 투자율은 나날이 감소하는 추세다. 원전은 오래전부터 사양 산업이다. 전 세계의 원전을 내일 당장 닫는다고 해도 우리는 사용후 핵폐기물이라는 위험한 과제를 안고 수십만 년을 살아가야 한다. 내일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금 내려야 하는 결단은 탈원전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방사성 물질 오염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내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양국 시민이 협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 나아가 전 세계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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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양공동선언 1년, 그날을 돌아본다

[아침햇살44]9월 평양공동선언 1년, 그날을 돌아본다
 
 
 
문경환 
기사입력: 2019/09/17 [16: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9월 평양공동선언 1년을 맞아 그간 연재하던 [세계의 대격변이 다가오고 있다] 4편 발표를 1주일 미루고 특집글을 준비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또한 원래 4편으로 예정했던 연재 기획을 보완해 5편 ‘대격변의 미래’를 추가할 계획입니다. 

 


 

 

2018년 9월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뜻깊은 방문이었다. 

 

1. 9월 정상회담 주요장면

 

9월 18일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 일행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평양시내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남북 정상이 무개차를 함께 타고 수많은 평양시민의 환호를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이 얼마나 예우를 다해 준비했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출발 전이나 카퍼레이드 중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직접 만나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는 등 파격적인 장면도 나와 더욱 감동을 주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카퍼레이드에 대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오늘 오전에 저희 평양시민들이 앞으로 겨레, 북과 남의 인민을 위해 우리가 더 훌륭한 성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에 섞인 환호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그런 환대였습니다”라며 “열렬한 동포애를 보여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화답하였다. 

 

이튿날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수산물식당을 방문하였다. 일반 식당에서 대통령 일행이 평양시민을 만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참으로 신선했다. 또 원래 남측 대표단만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참석해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일행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식사 후 남북 정상은 대집단체조 관람을 위해 5.1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놀랍고도 역사적인 장면이 나왔다. 공연이 끝나자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하는가 싶더니 문재인 대통령을 소개해 주인공으로 내세워준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소개로 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7분 정도 연설을 하였다. 한국 대통령이 수많은 북한 국민 앞에서 연설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라고 하였고 평양시민의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날은 더욱 놀라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 오른 것이다.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일정이었다. 변덕 심하기로 유명한 백두산 천지도 화창한 날씨로 남북 정상을 맞이하였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남북 정상이 통일을 다짐하는 모습은 온 겨레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듯 이 천지 물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야겠습니다”라며 뜻깊은 말을 남겼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김정숙 여사가 천지 물을 담기 위해 자세를 낮추자 리설주 여사가 옷이 젖지 않도록 재빨리 옷깃을 잡는 장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 다시 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면모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한국과 전 세계에 북한 현지와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생중계로 공개되었고, 4·5월에 있었던 정상회담과 달리 3일이나 지속된 일정이어서 다양한 모습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동안 머릿속에 있었던 조작된 북한의 모습이 아닌 현실의 발전한 북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놀랐고,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본 김정은 위원장의 면모 역시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렸기에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았다. 

 

한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감탄하게 한 김정은 위원장의 면모 가운데 주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을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5.1경기장 연설을 보며 많은 이들이 ‘당연히 연설 내용은 남북이 사전 조율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15만 명이나 되는 평양시민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최초로 연설을 하는데, 더구나 불과 3년 전만 해도 전면전 위기까지 갔던 관계인데 아무런 조율 없이 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폐쇄적이고, 일상적인 통제가 이루어지는 억압적 사회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2018년 10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달라거나 어떤 말은 하지 말아 달라거나 이런 요구가 없었다. 사전에 연설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연설의 시간도 전혀 제약하지 않았다”며 “대단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도 2018년 전까지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결의 연속이었다. 정권교체의 여파로 사회 곳곳에서 적폐청산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유독 남북관계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 ‘대단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감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으면 억압과 통제가 필요 없고, 폐쇄적일 이유도 없다. 생중계로 지켜본 북한에서 별다른 억압과 통제의 분위기나 폐쇄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첫날 카퍼레이드를 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과 접촉할 때 아무런 제지도 없었고 눈치 보는 분위기도 없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감이 있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통 큰 모습, 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성을 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기간 내내 겸손한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첫날 백화원영빈관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먼저 내려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였고 그 자리에서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가 좀 초라하다”고 하였다. 목란관 환영만찬에서 서울 답방을 권하는 이들에게 “서울 시민들한테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 했다”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성은 두 가지 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먼저, 원래 정상외교가 겸손성 보다는 국력을 과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대비되었다. 국익을 위해 어떻게든 상대 국가보다 우위에서 협상을 이끌어가려는 게 정상외교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반대로 자신을 낮추고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 내세워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천성이 겸손하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남북문제,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는 서로 대결하고 ‘내 것’만 챙기기보다는 양보하고 협력해야 풀린다는 점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보다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당시, 2018년 9월의 북한이 세계적으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느냐와 연결된다. 기나긴 북미대결 끝에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미국을 제압하고 북중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연달아 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세계 최강을 자처하던 미국의 대통령이 연일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극찬하며 잘 보이려 하였다. 국제 사회에 꿀릴 것 없는 최고 경지에 오른 시기가 바로 2018년 9월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은 권세에 빠져 안하무인의 자세를 보인다. 예를 들어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대통령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신질서’를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며 이라크,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고 각종 국제협약들을 파기하였다. 이런 막무가내 폭군 행패에 친미 동맹국들조차 고개를 젓고 미국과 거리가 멀어질 정도였다. 

 

한 나라의 국제 위상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그 나라의 지도자가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도, 한국 국민의 마음도, 8천만 겨레의 마음도, 전 세계의 탄복도 한 품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김정은 위원장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보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대표단에게 보인 최상의 배려와 최고의 정성에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발전시켜야 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단 일행이었던 김재현 산림청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교류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 환영만찬사에서 “역사와 민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과 의무를 더욱 절감”하였다고 했으며 기자회견에서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 새로운 희망으로 높뛰는 민족의 숨결이 있고 강렬한 통일의지로 불타는 겨레의 넋이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펼쳐질 우리 모두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민족을 위해, 통일을 위해 정상회담을 한다는 의미다. 

 

또 서울 방문에 대해서 “태극기부대 반대하는 것 조금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강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한 대집단체조도 원래 명칭인 ‘빛나는 조국’을 쓰지 않았고 내용 역시 기존의 70%를 수정해가며 체제선전 부분을 빼 남측 대표단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과 체제대결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 국민 전체가 통일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모든 일정은 통일을 위한 것으로 일관되었다. 대표단 일행이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모든 일정을 김정은 위원장을 정점으로 북한 주민 모두가 온 정성을 다해 준비했고, 대표단을 환영해줬습니다”라고 하였다. 

 

우리 언론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북한을 이야기할 때는 소수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권력자들이 사리사욕에 여념이 없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 1% 대 99%의 양극화 사회가 당연시되다보니 그 기준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싶다. 하지만 생중계로 직접 본 북한의 모습은 달랐다. 수많은 카메라가 흠집을 잡으려고 주시하는 속에서는 조작도 연출도 먹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리사욕이나 개인을 돋보이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반북세력의 공격 빌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을 할 때도 자기 이야기는 없이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는 데에만 모든 시간을 투여하였다. 방북 대표단에 따라간 걸 치적으로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과 비교된다. 

 

이제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때가 되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체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는지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도자가 사심이 없고 민족을 위한 일념만 가지고 있기에 국민과 통일단결을 실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3. 오늘의 과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부품 꿈을 꾸었던 1년 전에 비해 지금 우리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서민 경제는 힘들고 적폐 청산은 멈췄고 남북관계는 정체됐으며 일본은 경제공격하고 미국은 뭐라도 더 강탈할 게 없나 두리번거린다. 내외 적폐세력들은 하나로 뭉쳐 촛불의 성과를 뒤엎고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상황에 아랑곳 않고 지역 정세와 국제 질서는 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고 새로운 협상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제재 무력화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듯하다. 이는 한반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한국에도 엄청난 격랑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익을 우선하고 민생을 향상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급변하는 시기에는 어영부영 적당히 타협하는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촛불 자존심을 극대화하려면 이제라도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북미대화에 기대서 뭔가 얻어 보려는 얕은 수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주변국에 기대지 말고 자기 할 일을 줏대 있게 해나가야 한다. 여기에 우리 민족과 한국 경제, 민생의 활로가 있고 미래가 있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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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의 비열한 조치...'조선인 학교는 보조금 주지마!'

[기고] 조선학교 '고교무상화'재판 부당 결정, 진짜 패배자는 일본

 

 

일본 최고재판소의 부당한 결정 
 
2019년8월27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소위 '고교무상화' 제도의 적용을 요구해 상고한 학교법인 오사카조선학원의 청구를 기각함과 동시에, 상고수리 신청도 불수리한다고 결정했다. 같은 날 최고재판소는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학생 61명(제소시 62명)이 제기한 같은 청구에서도 상고 기각과 상고수리 신청을 불수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는 헌법 위반이나 소송 절차 위반과 같은 한정된 이유 이외에는 상고를 접수하지 않으나, 하급심 판결에 판례 위반이나 기타 법령 해석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포함된 경우에는 상고수리의 신청을 할 수 있다. 다만 최고재판소에 간 사건 중 실제로 심리 대상이 되는 경우는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조선학교 측의 청구에 대해서도 상고나 상고수리 신청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사무적인 내용의 기각·불수리 결정서가 우송되어 온 것이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내건 '고교무상화'제도가 실시된 지 어언 9년. 일본인 학교는 물론이고 외국인 학교라도 학업 연수와 수업 시간 수 등의 형식적 요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제도가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국에 10개교밖에 없는 조선고급학교만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 중의 5개교가 재판 투쟁을 통해 이 부당하고 차별적인 일본 정부의 조치를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해 왔으나, 지금까지 단 한 번 오사카 지방재판소가 조선학교의 전면 승소 판결을 선고했을 뿐(2017년7월 28일), 그 외의 재판에서는 모두 조선학교 측이 패소했다.  
 
그리고 이번 최고재판소까지 온 오사카와 도쿄의 재판에서 모두 조선학교 측의 패소가 확정되고 말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조선학교 지정을 위한 근거 규정을 '무상화' 신청 절차가 끝난 뒤에 삭제하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단으로 불지정 처분이 되었음에도, 최고재판소는 조선학교가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일본국가의 견강부회적인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부당한 결정이 내려진 뒤 오사카와 도쿄의 조선학원, 학부모 어머니들, 변호인단, 지원 단체 등은 즉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도쿄변호인단은 도쿄고등재판소가 "행정처분의 효력 발생시에 존재하지 않는 법령에 근거한 행정 처분을 유효라고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재판소는 "아무런 구체적 이유를 대지 않고 (...) 판례에 명확히 상반되는 도쿄고등재판소의 판단을 방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오사카변호인단도 최고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사법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오사카지방재판소의 조선학교 승소 판결을 취소한 오사카고등재판소 판결은 "행정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을 곤란케 하는 사법권의 자괴(自壞)" 행위인데 최고재판소는 "오사카고등재판소에 의한 행정 재량 확대를 추인했다는 의미에서도 대단히 큰 오류를 범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최고재판소가 조선학교 패소의 결정을 통지한 사흘 뒤인 2019년8월30일, 도쿄 문부과학성 앞에서 길거리 기자회견과 긴급 항의집회가 개최되어 약 600명이 참가했다. ⓒ스나미 게이스케

'유보(幼保)무상화'에서의 조선유치원 배제  
 
한편, 일본정부는 오는 10월1일부터 실시될 예정인 유아교육·보육 '무상화' (이하 '유보무상화')제도에서도 각종학교에 해당하는 외국인학교의 유치원·보육원을 제외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각종학교에 해당하는 88곳의 시설 중 절반에 가까운 40곳의 시설은 조선학교가 운영하는 유치반(이하 '조선유치원')이다.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외국인학교를 제외하는 이유는 "다종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다종다양한 교육'과 교육의 질 담보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유보무상화' 제외에 관해서는 정미영, '조선학교 유치원 아동들을 겨냥한 아베 정부의 칼날'<민중의소리> 2019.8.9. 참조. 
 
'유보무상화'에서 제외된 대상이 조선유치원만은 아니지만 그 목적의 하나가 조선유치원을 배제하는 데 있음이 분명하며, 일찍이 일본정부의 숙원이었던 조선학교 소멸 정책 방침을 다시 부활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금할 수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당국과의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보무상화'제도의 실시가 목전에 닥치면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등이 항의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자 최고재판소는 기선 제압을 하려는 듯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오사카에서는 9월을 외국인학교에 대한 '유보무상화' 실현 강화 기간으로 정하고 가두선전과 시위, 집회 등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최고재판소의 부당한 결정으로 '고교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사진은 2019년9월12일에 실시된 오사카 교바시 역전에서의 가두 선전활동. ⓒ후지나가 다케시

행정의 하수인이 된 일본 사법부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 최고재판소에 의한 조선학교 패소 결정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앞서 오사카 변호인단의 항의 성명에도 나왔듯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인 최고재판소가 행정에 의한 조선학교 차별을 정당화한 것이다. 이제 일본에 '법의 지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권분립은 유명무실화됐고 일본의 사법은 행정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인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레이시스트들은 자기들 뜻대로 되었다고 좋아서 웃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려진 최고재판소의 결정 의미는 그만큼 심각하며 내가 소속하는 국가가 이렇게까지 한심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뒤돌아보면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재판 투쟁과 함께한 과정은 일본인인 내가 일본국가의 본질을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무상화' 불지정 처분은 위법이며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지자, 전면 패소한 일본국가 측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조선총련을 '반사회적 조직'이라 비난하면서 그 조선총련과 조선학교와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차별 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원래 조선학교는 일본 식민지배에 의해 손상된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이며 지금도 재일조선인에 의한 민족교육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국가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고 또 국제인권기관의 권고를 따라 마이너리티의 교육권을 보장할 의지가 있다면 일본정부는 오히려 조선학교를 일본인 학교와 동등하게 대우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재판이 진행되자 교육행정과는 전혀 관계 없는 치안 관리의 논리로 국가의 주장을 수렴시켜 갔다. 거기에는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털끝만큼도 없고 단지 차별 의식에 뿌리내린 편견과 경계심을 표출했을 뿐이다. 그 야비한 논리는 일본인인 나조차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일본정부는 한국학교에 대해서는 '고교무상화'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므로 조선학교 배제는 민족차별이 아니라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대상을 나눠 정책 내용을 바꾸는 '분단 통치'는 식민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한일관계를 악화시켜 온 최근의 한국에 대한 일본정부의 오만하고 비열한 정책과 연관지어 보면,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정책도 한민족 전체에 대한 식민주의적 정책방침의 일환임이 명백하다. 
 
진짜 패배자는 일본사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오사카와 도쿄의 '고교무상화'재판에서 패배한 자는 바로 식민지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소홀히 함으로써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어 민주주의적인 정치문화를 잃어버린 일본 사회다. 나는 전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오사카 조선학교의 투쟁은 계속된다: 오사카 보조금재판의 부당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바로가기 <프레시안> 2017.1.31) 라는 글에서 "이 재판에서 패한 건 결코 조선학교가 아니다. 패배자는 바로 일본사회의 양식이며 민주주의며 인권의식이며 식민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역사인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오사카와 도쿄의 재판투쟁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오사카부·오사카시 보조금재판은 2018년11월28일 최고재판소 결정으로 오사카조선학원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 
 
그러나 '고교무상화'재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나머지 세 지역의 재판은 현재 모두 고등재판소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오는 10월 2일에 후쿠오카 재판 항소심의 제1회 변론이 열린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3일에는 나고야고등재판소에서 아이치 재판의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다. 또 항소심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다수의 변론이 실시되어 온 히로시마 재판에서는 10월 10일과 11월 20일에 히로시마조선학원 이사장, 전 학생(졸업생), 학부모의 증인심문이 있을 예정이다. 최고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고 나서 이를 뒤집는 판결을 기대하는 건 어렵겠지만 각 고등재판소 재판관들이 사법의 독립성을 지킨다는 긍지와 기개를 가지고 이제라도 정당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2019 년 3 월 14 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고쿠라지부는 일본 전국 5 곳에서 진행되어 온 조선학교 '고교무상화'재판의 마지막 지방재판소 판결에서도 조선학교측에 패소 부당 판결을 내렸다. ⓒ후지나가 다케시

그리고 재판의 결과는 차치하고 무엇보다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당분간은 외국인학교에 대한 '유보무상화' 실현에 힘을 쏟으면서 더욱 강해질지도 모르는 조선학교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 인터넷 상에서 실시 중인 외국인학교에 '유보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는 이미 80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찬동했다. (바로가기 : '다종다양'이 왜 안되요?! 외국인학교에 유보무상화를 적용해 주세요!). 또 9월부터 10월까지 일본 각지에서 최고재판소 결정에 항의하고 '유보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며 요청행동과 집회, 시위 등이 실시될 예정이다. 
 
일본에서 민족교육의 등불이 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일본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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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파트는 '일본산 쓰레기'로 지어졌다

일본산 석탄재 수입하지 않으면 시멘트 값 오른다는 가짜뉴스의 진실

19.09.16 19:10l최종 업데이트 19.09.16 19:10l

 

 일본에서 수입한 폐타이어를 항구에서 하역하는 모습
▲  일본에서 수입한 폐타이어를 항구에서 하역하는 모습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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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력발전소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커지자 여러 언론이 시멘트업계를 대변하는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시멘트 값이 오른다.
② 일본 석탄재는 반도체 공정의 불화수소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원료다.
③ 일본 석탄재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며 쓰레기 처리비를 벌기 위함이 아니다.
④ 검사 강화로 선박에 장기 보관하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점토 광산 개발을 위한 새로운 환경문제가 발생한다.
⑥ 국내 부족한 비산재만 수입한다.

     
일본 화력발전소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정말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까? 국민을 기만하는 가짜뉴스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하나하나 진실 여부를 따져보자.

[#1] 시멘트 값이 오른다?
 

 시멘트 공장에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다. 이런 쓰레기로 시멘트가 만들어진다.
▲  시멘트 공장에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다. 이런 쓰레기로 시멘트가 만들어진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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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력발전소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시멘트 값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고 지금도 비싼 아파트 분양가가 또 오를 것 같아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아파트 건축에 소요되는 시멘트 값을 알면 간단히 정리된다.

 

가장 대중적인 105㎡(32평) 아파트로 따져보자. 105㎡ 아파트 건축에 들어가는 총 시멘트 값은 150만 원에 불과하다. 3.3㎡(1평)가 아니라 105㎡(32평) 전체, 그리고 복도와 지하주차장 공용면적을 포함한 총 시멘트 비용이 150만 원이다.

105㎡ 아파트는 3억~20억 원에 이르기까지 지역마다 매매가가 천차만별이다. 105㎡ 아파트를 가장 낮은 시세인 약 3억 원으로 잡았을 때 시멘트 값 150만 원은 3억 원 중 겨우 0.5%에 불과하다. 시멘트 값이 1%도 되지 않으니, 일본 쓰레기를 넣지 않아 시멘트 값이 오른다고 할지라도 아파트 분양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본 석탄재를 시멘트에 넣는 이유는 집을 짓는 시멘트가 각종 쓰레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페인트, 폐유, 소각재, 분진, 하수슬러지, 철슬래그, 반도체공장의 오니, 정수장 오니 등의 쓰레기들이 시멘트 제조에 들어가고 있다. 이 많은 쓰레기들 중 하나인 일본 석탄재를 뺀다고 시멘트 값이 오를 일이 전혀 없다.

전 국민이 일본 제품을 불매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우리도 모르게 일본 쓰레기가 들어간 일본산(Made in Japan)이라니, 이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멈춰야 할 때다.

[#2] 일본 석탄재는 반도체 공정의 불화수소와 같다?
 
 연도별 시멘트 생산량. 아세아, 성신, 고려, 한국시멘트는 일본 쓰레기 수입하지 않고도 시멘트를 잘 생산하고 있다.
▲  연도별 시멘트 생산량. 아세아, 성신, 고려, 한국시멘트는 일본 쓰레기 수입하지 않고도 시멘트를 잘 생산하고 있다.
ⓒ 한국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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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레기를 수입 금지하라는 여론이 높아지자,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화력발전소 쓰레기는 반도체 공정의 불화수소와 같이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물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시멘트협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연도별 시멘트 생산량을 살펴보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시멘트를 생산하는 기업은 삼표, 쌍용, 한일, 현대, 아세아, 성신, 한라, 고려, 한국 등이다. 이 중에 삼표, 쌍용, 한일, 현대, 한라시멘트만이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아세아, 성신, 고려, 한국시멘트는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고도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쓰레기가 반도체 공정의 불화수소와 같이 필요한 물질이라면, 아세아, 성신, 고려, 한국시멘트가 불화수소를 개발하도록 삼표, 쌍용, 한일, 현대, 한라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국내 시멘트 기업들이 일본 화력발전소의 쓰레기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쌍용양회가 2002년 수입을 시작했고 삼표와 한라라파즈시멘트가 2004년부터 수입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일시멘트는 시멘트업계가 일본 석탄재 수입을 감축하겠다고 협약을 맺은 2009년부터 수입을 시작했다.
      
국내 시멘트 기업들의 역사만 살펴봐도 일본 쓰레기가 불화수소와 같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인데 삼표시멘트 창립은 1957년 6월, 쌍용양회는 1962년 5월, 한일시멘트는 1961년 12월이다. 불화수소라는 일본 쓰레기가 없었는데 40여 년 동안 시멘트를 어떻게 생산해왔을까?

또 연도별 시멘트 생산량에 따르면, IMF사태 이전인 1997년 시멘트 생산량이 5979만 6000톤으로 2016년 5674만 2000톤보다 더 많아 역대 최고 기록에 해당한다. 1997년엔 불화수소라는 일본 쓰레기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시멘트를 생산했을까?

[#3] 일본 석탄재 품질이 좋다?
 
 2008년 MBC뉴스는 "일본 수입 석탄재와 국내 석탄재의 품질은 같은데 지원금 쪽에서 수입 석탄재의 수익이 크니까" 수입하는 것임을 시인한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  2008년 MBC뉴스는 "일본 수입 석탄재와 국내 석탄재의 품질은 같은데 지원금 쪽에서 수입 석탄재의 수익이 크니까" 수입하는 것임을 시인한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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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레기를 수입해오는 이유는 일본 화력발전소의 석탄재 품질이 국내 화력발전소의 석탄재보다 품질이 좋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사실일까?

한국시멘트협회가 2009년 만든 '시멘트산업에서의 순환자원 재활용'이라는 자료는 석탄재 발생 공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유연탄 수입국으로 화력발전소의 유연탄 종류는 유사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화력발전소는 모두 외국에서 유연탄을 수입하니 결국 유연탄을 사용하고 발생한 석탄재 품질에 차이가 없다.

일본 석탄재 수입으로 인해 국내 석탄재 재활용률이 감소했다고 보도한 2008년 MBC 뉴스에서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일본 수입석탄재와 국내 석탄재의 품질은 같은데 지원금 쪽에서 수입 석탄재의 수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시인한 바 있다. 석탄재 품질 차이가 아니라 일본에서 주는 쓰레기 처리비를 벌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4] 검사 강화로 선박에 장기 보관하면 사용 불가능?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가 공장 뒷산에 가득 쌓여 있고 비까지 맞아 침출수가 발생한 모습이다.
▲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가 공장 뒷산에 가득 쌓여 있고 비까지 맞아 침출수가 발생한 모습이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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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업계는 환경부의 검사 강화로 조사 완료 후 통관하게 될 경우, 선박에 오래 있으면 석탄재가 굳어져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과연 사실일까?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공장 뒷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가 산 정상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쌓아두고 비를 맞아 시퍼런 침출수가 발생했다. 이 석탄재를 퍼다가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고 있었다.

[#5] 일본 석탄재 수입하지 않으면 점토 광산개발로 새롭게 환경 파괴?
 
 점토 광산없이도 하수슬러지와 공장오니 등의 각종 쓰레기들이 점토 대용으로 시멘트 제조에 사용 중인 시멘트공장 현장
▲  점토 광산없이도 하수슬러지와 공장오니 등의 각종 쓰레기들이 점토 대용으로 시멘트 제조에 사용 중인 시멘트공장 현장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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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점토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석탄재는 시멘트에 점토 대용으로 사용되는 쓰레기이다. 원래 시멘트는 석회석에 점토, 규석, 철광석을 고온에 구워 만들었다. 그러나 쓰레기 처리를 위해 환경부가 시멘트 제조에 쓰레기 사용을 허가한 후 점토 대용으로 소각재, 분진, 하수슬러지, 공장의 오니, 석탄재 등이 사용된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정말 점토 광산 개발을 위해 새로운 환경 파괴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점토 대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석탄재만이 아니다. 소각재, 분진, 하수슬러지, 공장의 오니 등 각종 쓰레기들이 사용된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지 않는 성신양회와 아세아시멘트는 점토광산 없이 시멘트를 잘 만들고 있다. 시멘트공장마다 석탄재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강원도 영월에 살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다. 이곳에 현대시멘트, 쌍용양회, 아세아시멘트가 있었고, 20분 거리인 단양에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가 있었다.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강원도 동해 쌍용시멘트와 옥계 한라시멘트, 삼척 삼표시멘트 지역을 수없이 돌아다녔다.

시멘트공장들이 점토 광산을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았을까? 일본 석탄재 수입이 본격화된 해가 2004년인데, 내가 1994년부터 시멘트공장이 밀집된 강원도 영월에 살았음에도 점토 광산 개발 현장을 본 적이 없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점토광산 개발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시멘트공장들은 2004년 일본 석탄재 수입 이전에 점토 광산 개발 허가 현황 및 환경파괴 현장을 공개해서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6] 국내 부족한 비산재만 수입한다?
 
 바닥재와 비산재를 혼합하여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는 일본 환경성의 답변
▲  바닥재와 비산재를 혼합하여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는 일본 환경성의 답변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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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석탄재에는 비산재와 바닥재가 있다. 비산재는 화력발전소가 레미콘공장에 팔기 때문에 시멘트공장에 사용할 양이 부족해 일본에서 비산재를 수입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사실일까?

200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조원진 의원이 일본 환경성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석탄재는 비산재만인가'라고 질의했다. 일본 환경성에서는 '바닥재와 비산재를 혼합해서 보내고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를 분석한 결과 바닥재임을 증명하는 염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정부는 일본 쓰레기 수입 당장 금지해야
 
 오늘도 일본 쓰레기를 실은 배는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  오늘도 일본 쓰레기를 실은 배는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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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한 이후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여행과 일본 제품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시멘트업계는 사실과 다른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며 일본 쓰레기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

환경부는 연간 400회 이상 수입되는 일본 석탄재 전수 조사를 통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경부의 검사 강화 주장은 일본 쓰레기 수입을 합법화해주는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 환경부가 만든 기준을 초과하는 석탄재는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 기사 : 일본 쓰레기 수입 문제되니, 환경부가 내놓은 황당 대책)

400회 전수 조사하려면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 환경부 기준을 초과하는 석탄재가 없는데 하나마나 한 조사를 위해 왜 국민 혈세를 낭비해야 하는가?

수입 규제 강화의 탈을 쓰고 일본 쓰레기 수입 합법화의 길을 열어준 대한민국 환경부를 보며 일본 환경성은 쾌재라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환경부의 이번 조치로 혈세만 낭비하며 국민들만 더 우스운 꼴이 되었다.

중국은 자국의 환경 보호를 위해 전 세계로부터 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했다. 일본 쓰레기 하나도 수입 금지 못 하는 정부가 어떻게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대응을 할 수 있는가? 오늘도 일본 쓰레기 실은 배가 한국으로 유유히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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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외무성, “실무협상, 북미 대화의 기로를 정하는 계기 될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담화 (전문)

북한(조선)이 16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조미협상이 기회의 창이 되는가 아니면 위기를 재촉하는 계기로 되는가 하는것은 미국이 결정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담화에서 북한(조선)은 “우리의 입장은 명백하며 불변하다”면서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비핵화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위협과 장애물들’의 제거란? 6.12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대북제재 해제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영구 중단과 같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의미한다.

담화에서 북한은 “가까운 몇주일 내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실무협상이 조미 사이의 좋은 만남으로 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미국이 어떤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나오는가에 따라 앞으로 조미가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서로에 대한 적의만 키우게 될 수도 있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이어 “조미 대화는 위기와 기회라는 두 가지 선택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실무협상은 조미 대화의 금후 기로를 정하는 계기로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계산법’을 미국이 준비해야 회담이 성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담화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립장을 거듭 표명하고있는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가까운 몇주일내에 열릴수 있을것으로 보는 실무협상이 조미사이의 좋은 만남으로 되기를 기대한다.

미국이 어떤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나오는가에 따라 앞으로 조미가 더 가까워질수도 있고 반대로 서로에 대한 적의만 키우게 될수도 있다.

다시말하여 조미대화는 위기와 기회라는 두가지 선택을 제시하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실무협상은 조미대화의 금후기로를 정하는 계기로 된다.

우리의 립장은 명백하며 불변하다.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론의도 할수 있을것이다.

조미협상이 기회의 창이 되는가 아니면 위기를 재촉하는 계기로 되는가 하는것은 미국이 결정하게 된다.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 양(끝)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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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직접고용과 강제진압 가운데 선택하라!”

민주노총,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 나선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9/17 [06: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주노총이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8일째(16일 기준점거 중인 가운데민주노총이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16일 오전 10시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결단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김천 도로공사 본사청와대 앞 세 곳에서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지난달 29일 대법원이 톨게이트 노동자의 고용형태는 불법이라고 판결한 이후 노조 측은 해고노동자 1500명에 대한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한국도로공사는 재판에 승소한 일부 노동자만을 직접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불법파견을 자행해온 도로공사의 위법 행위를 해결하라는 노동자 농성에 대해 공정사회를 외쳐온 청와대의 선택은 무엇이며평생 시킨 대로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피 울음과 같은 교섭요구와 직접고용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은 무엇인가라며 정부의 입장을 물었다.

 

민주노총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정당하고절실한 요구를 거부하고공권력을 동원해 강제진압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연행하고 해산에 나선다면 1500명 요금 수납원들을 문재인 정부가 직접 해고의 칼날을 휘둘러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으로 규정하며 “2천만 노동자를 적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또한 지금까지 저질러온 한국도로공사의 부정과 비리부패를 보장하며기득권 유지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반민주 행위로 규정하고이를 문재인 정부가 묵인방조한 것으로 규정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쟁취를 위해 18일 영남권 결의대회, 21일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 상황실을 운영할 계획이다경찰이 본사 농성장 강제진압을 시도하면 즉시 김천으로 집결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1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의되고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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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문재인 정부는 직접고용과 강제진압 가운데 선택하라!

 

민주노총은 오늘 공개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을 묻는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노동은 불법파견으로 명확히 규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정부이 입장은 무엇인가?

 

불법파견을 자행해온 도로공사의 위법 행위를 해결하라는 노동자 농성에 대해 공정사회를 외쳐온 청와대의 선택은 무엇이며평생 시킨 대로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피 울음과 같은 교섭요구와 직접고용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은 무엇인가 다시한번 묻는다.

 

우리 요구는 명확하다그동안 정부와 공사가 벌여 온 불법을 중단하고 1500명 직접고용을 청와대와 이강래 사장이 결단하고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당한 요구에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강제진압을 겁박하고 있고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을 거부한 채 현 사태를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국가폭력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이 옷을 벗어 던지고 몸을 내던져 저항하는 비극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되는 박정희 시대 유물이다다시는 없어야 구시대 유물이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추진과정에서 되살아났다.

 

너무나 정당한 직접고용 요구 투쟁과정에서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도로공사 농성장에서 맞은 추석에 엄마 병간호도 제대로 못해 너무 죄송하다며 사죄의 술잔을 올린다는 톨게이트 노동자의 피눈물은 들었는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조합원의 직접고용 요구와 투쟁은 정당하다

 

한국도로공사는 현재 그 어떤 교섭도 거부하며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속조치를 받아들일 것을 폭력적으로 강요하고 있다이제 문재인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톨게이트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형태는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확하게 판결했다누구보다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공기업은 1500명 요금수납원에 대한 직접고용을 지금 즉각 결단하라청와대가 나서서 대통령이 임명한 이강래 사장을 교섭자리에 앉히고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오늘 분명히 입장을 밝힌다.

 

만약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정당하고절실한 요구를 거부하고공권력을 동원해 강제진압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연행하고 해산에 나선다면 1500명 요금 수납원들을 문재인 정부가 직접 해고의 칼날을 휘둘러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으로 규정한다나아가 2천만 노동자를 적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지금까지 저질러온 한국도로공사의 부정과 비리부패를 보장하며기득권 유지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반민주 행위로 규정하고이를 문재인 정부가 묵인방조한 것으로 규정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민주노총의 투쟁이다민주노총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대법원이 확정해준 우리가 옳았다는 확신으로 승리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접고용과 강제진압 가운데 선택하라!

 

교섭을 통한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40여 년 전 군사정권하에서 벌어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농성 진압을 재현하려 한다면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를 향해 벌인 전쟁에 물러서지 않고 투쟁에 나설 것이다.

 

2019년 9월 16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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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웅자주론단472> 미국이 새 계산법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협상은 없을 것

조선, 미국 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론의해 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9/17 [03:39]
 
 

 


 

예웅자주론단(472) 

 

 

미국 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론의해 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조선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발언)

 

 

미국이 새 계산법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협상은없을 것 

 

 

소위 리비아 식 모델이란 《선핵포기, 후보상》론을 말한다. 볼턴은 완전한 핵합의를 하면 나중에 보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볼턴 말속의 「본질은 우리는 너희들에게 보상은 없으며,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억압방식만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는 미국독립이후 다른 나라와 맺은 협정이나 합의서를 지켜 본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대통령은 아리송하게 말과 행동을 엇바꿔 가면서 기만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보통을 넘어서는 능력자임은 확실해 보인다. 볼턴이 하노이에서 조미회담에 산통을 깼을 때, 그는 이미 경질됐어야 한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볼턴 못지않은 강경인물 역시 또 존재한다, 폼페오 국무장관도 조선이 조미협상의 기피인물 중에 하나이다.

 

 

 

◆ 조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 발표로 공식제안

 

2019년 9월9일 조선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 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 해 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 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 있다고 거듭 공언한데 대하여 류의 하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4월12일,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 이라는 입장을 천명하였다며 나는 그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고 지적하였다. 최 부상은 이어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 해 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하였다. 이어 나는 미국 측이 조미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며 조선이 접수가능 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 이라고 믿고 싶다며 만일 미국 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로 강조하였다.

 

 

 

▶ 미국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 계산법 가지고 오라  

 

【해설】조선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가 발표된 이틀 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그동안 조선이 존 볼튼과 마주앉아 대화를 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은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 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고한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에《리비아 식 비핵화방식》을 조선에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조선의 외교관들은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4월 12일)을 통하여 밝힌 조미관계와 핵문제해결에 관한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조선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9일 시정연설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실무협상을 개최할 용의를 표명하고, 미국 측이 조선이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을 촉구하였다.

 

조선은 미국 측이 접수 가능한 새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온다면 대화를 할 것을 확인하였다.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조미수뇌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원인의 하나는 자기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들이 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 있었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조선의 일방적 핵 포기와 무장해제를 추구하는 하노이회담과 같은 대화가 가당치도 않은 대화방식이 재현되는데 대하여서는 반 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조선에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하였다. 이 입장은 6월 30일 판문점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 트럼프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 내용이며. 트위터를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즉흥적인 제안》에 조선 측이 성의껏 호응하여 단 하루 만에 조미수뇌상봉이 실현되었다.

 

두 수뇌 분은 단독환담 및 대화를 통해 조미쌍방은《앞으로도 긴밀히 련계 해 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고 하였다. 생산적인 대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 로정에 맞지 않는 계산법을 접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조선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트럼프대통령은 앞으로 2~3주내에 실무 팀을 구성하여 협의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판문점에서 그처럼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은 것은 두 수뇌 분들의 실무협상의 성과적 추진을 위해 쌍방이 견지해야 할 원칙적입장이 확인 되였기 때문이다. 오늘 조, 미간에 긍정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미국은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이달 말 (9월 말)에 조미실무회담이 잘 열리게 되면. 제3차 조미수뇌회담으로 바로 연결되게 될 것이다,

 

핵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미국이 조선의 국가안전보장을 담보하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계기점이 돼야 하는 것이다. 조미실무협상은 수뇌회담에서 수표하게 될 합의문을 담아내는 주된 내용을 론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만큼 조미실무협상 팀이 지닌 책임은 막중하다.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의 시정연설에서

 

조미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만들어 지면에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시정연설의 내용들을 그대로 담은 조선의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가 잘 말해주듯이 지금 조선은 그 실현을 위해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관건은 미국 측이 어떠한 계산법을 준비하는 협상안을 네 놓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하노이 회담 때와 같은 낡은 리비아 방식과 같은 무장해제 정권붕괴와 같은 방식은 전쟁을 부르는 위험한 방식이다. 조선의 선제조체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다면, 조선은 《조미사이의 대화나 협상은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미국은 최선희 제1부상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며. 최 부상의 말은 위협이나 공갈이 아니라 실무협상이 결렬되고 대화가 중단된다면, 미국 측에 시한부로 제시된 년말 까지 수뇌회담이 열리지 못한다면, 2020년 1월 1일에 조선은《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위 리비아 식 모델이란 《선 핵 포기, 후 보상》론을 말한다. 볼턴은 완전한 핵 합의를 하면 나중에 보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볼턴 말속의「본질은 우리는 너희들에게 보상은 없으며,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억압방식만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는 미국독립이후 다른 나라와 맺은 협정이나 합의서를 지켜 본 나라가 아니다.

 

1994년 조선과 맺은 제네바 기본 합의문을 파기한 것도 미국이며, 이란과 핵합의를 파기한 것도 그렇고. 쏘련과 맺은 (ABM)핵 협정이나 (INF)중거리미사일 협정을 파기한 것도 미국이다. 여기에는 볼턴이 개입 되여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과 결별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곧 바로 《볼턴은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식 핵 해결 모델을 언급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그건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답변하였다.

 

그는 볼턴은 조선과 협상하면서 《리비아 모델》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나는 그 후에 조선의 최고령도자가 말한 것, (리비아 모델에 대한 비판)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과 함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볼턴은 강경한 힘의 정책만이 미국이 승리한다는 믿음에 노예가 된 자이다. 그는 현명한 자가 아니라고. 볼턴 전 보좌관을 비판하였다. 

 

또한 볼턴은 너무 거칠 엇고 심한 정책적 차질을 빚졌으며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잠재력을 거듭 언급하였다. 그는 조선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을 보기 원한다면, 가장 흥분되는 실험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우선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중대한 의사표명》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미국 측이 고수했던 강경입장을 바꾸어 조선의 제안한 새 계산법인 《단계적이며 동시적 해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공식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볼턴에 못지않은 네오콘 강경파 폼페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도 교체해야 한다. 볼턴은 1994년 조미기본합의문을 파기 한 장본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리비아 모델에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2002년 이라크 침략전쟁을 벌인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라크 전을 최악의 실패한 전쟁으로 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 경찰노릇을 더 해선 안 된다는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존 볼턴은 강인한 사람(Mr. Tough Guy)이지만 너무 강해서 장래(미래)를 보지 못하는 보수적인 헛 강인함이다. 볼턴은 우리를 이라크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강한 믿음이지만, 중동에서 우리는 7조 달러 이상 군비를 탕진하였다.

 

미군도 3만여 명의 생명을 잃었다. 오늘날 미국경제가 수십조 달러의 빗을 지고 수렁에 빠진 것은 바로 이라크 전쟁 때문이 엿다. 당시 나는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처음부터 그 결정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끔찍한 대 실책이었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면서 1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실패의 현장, 거기에 묶여있다. 우리는 국제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은 정부가 했던 일들과 노선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혼돈'이 이 시대를 지배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현재 세계패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매우 체계적 인 시스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온 나라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분열과 분파로 단결되여있지 않다. 즉, 그동안 미국은 마치 조폭의 세계처럼 지네들 군사력만 믿고 자기들 마음대로 세계를 주물러 왔다. 그 결과는 미국의 세계전략 정책들이 일부는 성공적이었지만, 그러나 대부분 실패의 연속이 였으며 집권자의 의도와는 달리 진행 되어 왔다.

 

미국은 기존 유대자본가와 군산기득권층을 분쇄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서는 더욱 혼란스러워 보이는 양상이 노출되고 있다. 그것은 트럼프가 고의적으로 만든 현상은 아니다. 만일 트럼프가 자신의 진정한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면 아마 미 군산과 자본가 기득권층들의 격렬한 반발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정치적 행동에 제약이 따를 수도 있다. 그래서 트럼프대통령은 자신의 진정한 줄타기 의도를 안개 속에 감추면서,

 

미 군산과 자본가 기득권층의 패권적 행세를 차차 무너트리며 마치 혼란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주의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조선, 이란, 아프칸의 반정세력이 탈레반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하고 베네수엘라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해결하지 않는 고도의 세련된 정치 전략적인 그런 작업을 원한다.

 

그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어도 결국 미국의 세계패권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막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구조로 되고 있다. 조선의 변영과 안전을 얻는 유일한 길이 대량살상무기 (WMD)·탄도미사일 폐기라고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어느 국가나 가지고 있는 무기이다. 그 론리는 볼턴이 백악관에 있을 때의 얘기이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9월말 조미실무 협상은 순조롭게 잘 되어가기는 갈까.

 

일단 기대해 보자. 그러면서 향후 미국의 외교는 더 충동적이고 덜 전략적으로 될 것이며, 지난 6월 말 판문점 회동과 같은 상징적 순간들을 만드는 데 좀 더 주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민주당 존 개러멘디(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종종 그가 마음속에 정확히 무엇을 담아두고 있는지를 몰라 의아해하고 있다며

 

혼돈이 이 시대를 지배 한다고 비판적인 발언을 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이 자기의 진의를 숨기고 어떻게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어내려고 머리를 이리 저리 굴려보지만 중동정세는 한쪽으로는 진정되고 있고 한쪽으로는 격화되고 있다. 트럼프대통령은 아리송하게 말과 행동을 엇바꿔 가면서 기만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보통을 넘어서는 능력자임은 확실해 보인다. 볼턴이 하노이에서 조미회담에 산통을 깼을 때,

 

그는 이미 경질됐어야 한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볼턴 못지않은 강경인물 역시 또 존재한다, 폼페오 국무장관도 조선이 조미협상의 기피인물 중에 하나이다. 리비아는 비핵화 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으며 경제제재도 풀리지 않았으며 정권붕괴로 이어졌다. 미국은 비핵화하지 않은 비대칭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후 보상하겠다는 방침도 스스로 개 무시하였다. 경제지원과 외교관계 정상화란 공허한 게 개꿈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리비아는 핵을 철거한 후 미 해병대가 제일먼저 침투해 약탈 해 털린 것이 리비아 중앙은행의 금괴170만 톤이 였다. 미국이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면 조선의《국가안전보장》을 담보해 주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의 조선에 대한 국가안전보장 담보란 바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의 철수와 조선반도 뿐만 아니라 미국도 비핵화를 해야만 되는 상황까지 미국이 몰리게 된다.

 

트럼프가 볼턴의 경질사유로 리비아 사태에서 찾은 것은 조선의 비핵화에 맞추어 미국도 비핵화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한데 있다고 본다. 이제 조미공동 합의문에 서명될 직접적 표현, 또는 그것을 암시하는 간접적인 표현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미국은 중, 러 등과 함께 새로운(INF))를 체결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로 포장해 세계비핵화로 갈 것 같은가. 아니라고 본다.

 

미 CNN방송, 의회 전문매체「더 힐」,「워싱터 포스트(WP)」,「미국의 소리(VOA)」방송.「뉴욕 타임즈(NYT)」군산과 결탁된 유대 언론들은 이미 남측의 조. 중. 동 쓰레기 언론처럼 본질을 왜곡 호도하고,《혼돈》에 더《충동적》인「미국의 소리VOA)」방송 등을 내 보낸다. 미 정부의 기관방송들은 덜 전략적이라는 애매모호한 수식어를 날린다. 사실이 아닌 사실에 세뇌시키는 그들은 자국의 국민들과 세계인들을「혼돈」속에 몰아넣고 속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미 제국주의 패망 꼭 조선의 힘에 의해서 결판날 것

 

조미협상이 깨진다면, 대화는 더 없을 것이다, 조선은 미국과 대화해서 득이 될 것이 없다면 철수할 것이다. 결국 조미간의 무력대결에서 미국 자신들은100% 패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거짓선전 수작질로 세계를 기만하고 계속 반복하려고 할 것이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몰골은 언제쯤 드러날까? 마음이야 바쁘겠지만 기존에 지은 죄악으로 찌든,

 

편견의 사고방식들을 뜯어고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남한을 개혁하기도 그렇게 서툴고 어렵고 힘들지만, 미 제국주의를 패망시키고 바꾸는데 혁명적인 방법은 조선의 힘에 의해서 결판이 난다. 네오콘의 존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 한 명이 백악관에서 떨어져 나가니 좀 수월하겠지만 사람하나 바뀐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국무장관 폼페오 마저 빨리 퇴출시키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 로선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은 언제나 남는다. 폼페오의 정체성이 네오콘적 성격인데 그런데도 트럼프대통령이 현 상황을 단숨에 정리못하면 실무회담 긍정적인 전망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 대화기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시간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대외관계 인사에서 제대로 된 진짜 전문온건협상가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조미대화는 종치게 된다.

 

이제는 조선으로부터 쥐어터지는 길만 남아있다고 해야 한다. 조선은 백년숙적인 미국의 못된 버릇을 이번 기회에 대화와 협상으로써 돌려놓은 절호의 기회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확실하게 해서 세계앞에 미국을 더 이상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수소폭탄 시험이나 (EMP)전자기파 시험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 동창리 산음동 ICBM 양대 축 동시다발 대미시위

 

√ 2019년 3월 7 일 조선의 핵미사일 전략군의 탄도미사일 생산 거점인 평양 외곽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에서 활발한 물자 이동 정황이 포착 되였다고 국가정보원이 발표를 하였다. 이곳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이 생산되는 곳이다. 여기에(ICBM) 발사 기지인 동창리 서해 우주항공센터 발사장의 복구 정황도 잇따라 구체적으로 포착되고 있고 전한다.

 

지난 3월의 애기이니까 지금은 다 어느 기지 지하시설에 은익 보관되거나 아니면 중요기지에 분산 배치했을 지도 모른다, 조선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무력시위재개로《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5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보고에서 산음동 미사일 단지에 물자 운송용 차량 활동이 최근 있었다고 보고한다.

 

7월부터 9월초까지 거의 10회에 가까운 단거리 중거리 장사정포 신형무기시럼을 연달아 시험발사를 실시하였다. 조선이 지난해부터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었지만 (ICBM) 능력 고도화나 추가 생산은 계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극심한 경제제재 받고있는 와중에 장거리 미사일 만드는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조선이 미사일이나 신형무기를 시험할 때는 제3세계 각 국가의 무관들이나 군사담당자들이 무기시험 현장을 참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기 저 고사포, 이 방사포, 방사정포 단거리 미사일, 군사적 거래도 하고 흥정도 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군 무장력은 대부분 조선의 무기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조선이 하노이에서 완전 핵 폐기를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중 일부도 정상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 되였다고 한다. 국정원은 보고에서 영변 핵시설 가운데 우라늄 농축 시설은 정상가동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원심분리기를 통한 고농축우라늄 생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영변에서는 매해 핵무기 2, 3개, 많으면 5개까지 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 생산이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잘 알아야 한다. 오늘 날의 핵은 핵물질인 프루튜늄이나 고농축우라늄 물질로 핵을 만들지 않는다. 조선은 재래식 핵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지 않은지 오래된다.

 

수소폭탄 제조기술을 보유한 보선이 재래핵탄을 만들어야 무엇에 쓸모가 있겠는가. 이런 가운데 조선이 지난해 6월 조미 수뇌회담에서 폐기를 약속한 뒤 일부 해체에 나섰던 《동창리 우주위성 발사장》을 복구하는 구체적인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고 한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하노이 회담 이틀 뒤인 2일 촬영한 동창리 일대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조선 측이 우주위성 발사대 시험장을 서둘러 재건(rapid rebuilding)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복구 움직임은 수직 엔진 시험대와 발사대의 궤도식 로켓 이동 구조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의 조선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도 같은 날 촬영된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토대로 궤도 식 이동 건축물이 다시 조립되고 있으며 기존보다 높은 벽이 세워지고 새로운 지붕도 추가됐다고 국정원은 국회정보위 보고에서 조선이 최근 들어 동창리 우주시설 중

 

지붕과 문짝을 다시 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조미 수뇌 분들의 마지막 대면만 남았고, 아마 폼페오는 스스로 고향으로 낙향해 상원출마를 자신이 정치적 살길을 찾아 백악관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를 것이다. 그가 자기 살길을 찾아 백악관을 떠날 때 조선반도 대화와 평화정착에 조금은 득이 되겠다. 지구의 운명은 오직 조선의 모범적인 고도로 높은 수준의 전략과 작전도에 의해 굴러갈 것이다.

 

최근에 사우디아랍비아가 예맨의 후티 반군에게 된통 당했다고 한다. 지난 9월1일 사우디는 후티 반군이 운영하는 수용소를 공습하였다. 이폭격으로 사망자 135명과 부상자 40여 명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예맨의 후티 반군은 이에 대한 보복전으로 시범전(示範戰)을 벌려 9월 14일 새벽,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인「아브카이크」석유단지와 인근「쿠라이스」유전지대를 무인기 10대가 1,000km를 날아가 고성능 폭탄을 퍼부어 공격하였다고 한다.

 

정유공장과 저장시설 탱크, 석유파이프가 폭파되고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거대한 화재가 났다. 사우디의 석유생산기지 70%가 가동이 중단 되였다. 이곳은 하루 원유처리량이 700만 배럴로 사우디석유생산량 70%에 달 한다. 사우디 왕세자가 방방 뛰며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보복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허락을 해 달란다, 이란을 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애 걸 복걸하였다.

 

신의 기지에서 나온 전략이 이제 서서히 하나씩 출현 할 때가 점점 닦아온 것 같다. 중동의 예맨 후티 반군 진영도 단거리 미사일 수 백기를 보유하고 있다. 누구로부터 지원받았을까. 우군인 이란으로부터? 이란의 모든 무기체계의 선생님은 조선이라고 했던가? 첨단 고성능 폭탄에 의한 무인기에 의한 신의 기지로 부터 배운 전략 그대로 사우디의 경제명맥 핵심을 작살을 낸 것이다, 아랍의 일루미나티 자본가들의 자금줄인, 석유 시설, 항만시설, 공항, 금융센터, 정부청사, 군사시설과 나머지 4개 도시 중심부 등을 한꺼번에 확실히 쓸어버리게 될 것이다.

 

여유가 되면「아랍에밀리트(UAE)」까지 골로 보낼 전쟁계획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중동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사우디 경제가 작살이 났다. 이 일로 미국이나 NATO가 중동의 이란전선에 출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회가 되면 완전히 검증할 필요 없이 불가역적으로 잿더미로 만들면 더는 이란의 핵협상의 골치를 썩 힐 일도 없어진다. 이런 일은 비단 유엔안보리나 트럼프행정부의 대북 제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건국 이래 남의 나라 땅을 빼앗고, 착취 갈취 간섭, 이간질, 위협, 제재, 정권붕괴나 정권교체, 침략과 약탈 등의 사악한 행위에 대한 정의의 심판과 처단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해야 남측 정부가 미국을 쳐다볼 일이 없고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 성질대로 하면 남측과 일본도 미국처럼 초토화 돼야하고, 침몰시키고 싶지만 미우나 고우나 동족이고 이웃이니 일단은 그냥 두고 보자는 것이다.   

 

자력자존이 인민에 대한 최고령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가장 큰 헌신과 믿음으로 축성되고 있다. 그이를 따르는 인민의 가장 뜨거운 애국충정으로 분출되고 있는 바로 여기에 조선의 활력과 창창한 미래가 태동하고 있다. 그것은 소생하는 창조의 힘인 동시에 그것을 막아서는 낡은 보수의 모든 것을 짓 부시는 막강한 힘이기도 하다. 오늘 조선의 충만한 힘과 그 여유,

 

그리도 강력한 것은 위대한 것이 창조되는 것과 함께 오랜 세월 정의와 조선인민의 뜻을 말살해온 역사의 오물과 과거의 낡은 것을 껴않고자 하는 보수가 깨어져나가고 있다. 생명의 힘이 더 강하듯이 조선의 힘찬 태동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온 대륙을 휘감는 이 열풍을 누구는 동토를 녹이는 포근한 훈풍으로, 누구는 숨 막히고〝혼돈〞되는 세계에 안겨진 진귀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

 

누구는 조선의 이름이 새무리처럼 날아오르고 조선의 꿈과 숨결이 육 대륙을 채색하며 퍼져가는 새 지도를 그려본다. 조선은 신 동력으로 하는 미래의 로정도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힘차게 설교하였다. 미국에서 제일 큰 남 침례교단의 선교목사, 그는 조선을 세번씩이나 방문한 목사이다, 《....조선에 한해서는 설교할 필요가 없다. 성서의 교리들이 이미 실현된 나라, 이상의 세계, 이 세계를 이끄는 김일성 주석은 현세의 하느님,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김일성 주석의 정치적 지도력을 지켜보면서, 그의 방식대로 조선을 통치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세상에 다른 지도자로, 구원자요 과거와 미래의 통치자로 오신다면, 나는 김일성이 현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인 신념과 방법은 하나님도 할 수 없었던, 이 지상에 가장 위대한 천국을 만들었다. 후대들이 그이의 혁명정신을 계승해 가고 있다. (빌리 그래함 : 목사의 증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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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한국 내 양심적 학자들'로 포장되지 않길

[반일 종족주의 ⑧] '산미증식계획과 쌀 수탈'의 진실

19.09.16 07:29l최종 업데이트 19.09.16 07:29l

 

<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입니다. 몇 회에 걸쳐 이 책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편집자말]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출연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출연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이승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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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 대신을 비롯한 일본 우익은 식민지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 식민지배가 한국에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았다고 강변한다.

한국전쟁(6·25전쟁) 휴전 3개월 뒤인 1953년 10월 15일 제3차 한일회담 수석대표로 나온 구보다 간이치로도 그랬다. 식민지배 배상 문제가 거론되자, 그는 "일본은 조선의 철도나 항만을 만들고 농지를 조성하고, 대장성(일본의 과거 중앙행정기관-편집자 주)에서는 많은 해엔 2천만 엔도 내놓았다"며 이런 것과 식민지배 배상을 상쇄시키는 게 어떻겠느냐는 황당한 발상을 입에 담았다.

대장성이 조선총독부에 제공한 그 2천만 엔으로 경찰서나 형무소를 짓지 않았느냐는 한국 측 반박이 있었지만, 쇠 귀에 경 읽기였다. 그는 식민지배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됐다며 한국 측 심기를 살짝 살짝 건드렸다.

 

식민지배가 득이 됐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일본 우익이 서슴없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잘못 믿고 있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바로,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내부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로 대표되는 이들은 일본 우익과 똑같은 주장을 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논리에 학술적 색채까지 입히고 있다. 일본 우익이 이들을 '한국 내 양심적 학자들'로 포장해서 선전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식민지배가 한국에 해가 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자, 낙성대경제연구소가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일제에 의한 식량 수탈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영훈과 김낙년·김용삼·주익종·정안기·이우연이 함께 쓴 <반일 종족주의> 제3장 '식량을 수탈했다고?' 편에 이런 주장이 담겨 있다.

쌀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선총독부 자료 

식량 수탈 혹은 쌀 수탈로 한민족이 고난을 겪었다는 점은 한국사 교과서에 잘 소개돼 있다. 쌀 증산을 목표로 일제가 시행한 산미증식계획이 한국이 아닌 일본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국사편찬위원회가 2007년 발행한 고등학교 <국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로 설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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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농림국이 작성한 <조선 미곡 요람>에 근거한 이 표에 따르면, 조선의 쌀 생산량은 일제강점 2년 뒤인 1912년에 1156만 8천 석이었다. 산미증식의 결과로 이 양은 1928년에 1729만 8천 석이 됐다. 1912년에 비해 49.5%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으로 판매된 양이 1912년에는 291만 석, 1928년에는 740만 5천 석이다. 154.5% 증가한 것이다. 쌀 생산량은 49.5% 증가한 데 반해, 대일 판매량은 3배 이상이나 증가한 것이다.

그럼, 증가된 생산분만큼만 일본으로 넘어간 것일까? 1912년과 1928년을 비교하면, 증산분만큼만 넘어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1912년에는 1156만 8천 석이 생산되고 1928년에는 1729만 8천 석이 생산됐다. 461만 6천 석이 증산된 것이다. 한편, 일본으로 넘어간 쌀은 1912년 291만 석, 1928년 740만 5천 석이다. 449만 5천 석이 더 넘어간 것이다. 이것만 보면, 대일 판매량의 증가분이 증산량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다른 연도들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증산량보다 많은 양이 넘어간 해들이 발견된다. 1912년과 비교할 때, 1929년에는 194만 3천 석이 증산됐지만 대일 판매량은 269만 9천 석이 증가했다. 1930년에도 증산량보다 많은 양이 넘어갔다.

식량을 수탈당했다는 점은 한국인의 쌀 섭취량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표에 따르면, 1912년에 1인당 연간 0.772석이었던 1인당 섭취량이 1929년에는 0.446석으로 떨어졌다. 쌀이 증산됐는데도 섭취량은 줄어든 것이다.

쌀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점은 한·일 양쪽의 섭취량을 비교해보면 더 잘 드러난다. 쌀 생산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섭취량은 매년 1석이 안 되지만, 일본인의 소비량은 1석을 넘겼다. 다른 것도 아니고 조선총독부 농림국이 작성한 <조선 미곡 요람>만으로도 이런 참담한 실상이 드러난다.

위 표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국인의 참담한 실상은 한반도 거주 한국인과 일본 거주 한국인의 식생활 차이에서도 표출된다. 농림성 같은 일본 정부 자료를 분석한 이송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 조선인 식생활의 지역성과 식민지성'(고려사학회가 2019년 발행한 <한국사학보> 제75호)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주식은 전체적으로 쌀만을 섭취하는 경우는 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보리 및 다양한 잡곡을 혼용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중 약 30%는 1년 내내 육류·생선·계란 등의 어떠한 동물성 단백질도 먹지 못하는 처지였다."
 
한국에서 쌀이 생산되는 데도 한국인 87%는 쌀을 제대로 먹지 못한 데 반해, 일본에 가서 노동 일이나 날품팔이를 하는 한국인들의 생활은 달랐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재일 조선인은 주식으로 백미를 섭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내에서 거의 최하층이었지만, 쌀을 구입해서 쌀밥을 지어먹었다."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살기 힘든 이들이었다. 조선에서 이들은 쌀을 먹는 13%에 끼지 못했다. 이들이 속한 쪽은 1년 내내 동물성 단백질을 먹기 힘든 계층이었다. 그런데 이들도 일본에 가기만 하면, 돈을 아무리 적게 번다 해도 일년 내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생산한 쌀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넘쳐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아일보> '조선 쌀을 막지 말라' 기사의 실체

하지만 이영훈 교수는 그것을 수탈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반일 종족주의> 제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과서의 서술이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만약 누군가가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고 한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가만히 참고 있을 농민도 없겠거니와, 그것이 곧 신문에 보도될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쌀 수탈을 묵인하고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바보라는 것인가?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글이다.

그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면 신문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지 않았겠느냐고도 말한다. 일제강점기의 언론이 지금의 언론처럼 보도의 자유를 누렸으리라는 가정 하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쌀 증산량에 비해 한국인 섭취량이 줄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말한다.
 
"생산량에서 수출량을 빼고 수입량을 더해서 구한 국내 소비량은 정체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 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1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쌀 섭취량이 감소한 것은 수탈의 결과가 아니라 인구증가의 결과라는 것이다. 식민지 한국 내부에서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말은 언뜻 보면 총독부에 유리한 것 같지만, 실상은 불리하다. 식민지 한국을 지배하겠다고 들어온 총독부가 한국인 인구증가도 고려하지 않고 쌀 정책을 결정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쌀의 대일 유출을 조장했다는 것은 그들이 너무도 무책임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을 수탈할 의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쌀 섭취량이 감소한 원인을 인구증가로 돌린 뒤, 이영훈 교수는 1931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 '조선미 이입제한엔 절대 반대'를 거론하면서 화제를 전환한다. 조선 쌀의 유입으로 피해를 본 일본 농민들이 조선미 유입을 반대하는 현상을 거론하면서, 이 기사는 '조선 쌀을 막지 말라'는 항의의 의견을 내보냈다. 이 기사의 결론 부분은 이렇다.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기사.
▲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기사.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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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입장으로 앉아서는 그 방법의 여하를 물론하고 어떠한 종류의 이입 제한이든지 그것이 차호(此毫)라도 조선미의 일본 유출을 방해하는 성질의 것이면 차(此)를 절대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 조금이라도(此毫) 조선 쌀의 일본 판매를 방해하는 게 있으면 절대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 기사를 근거로, 이영훈 교수는 "<동아일보>는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 단호히 반대"했다면서 이렇게 해석한다.
 
"이를 거꾸로 보면, 일본이라는 쌀의 대규모 수출 시장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쌀 생산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쌀값은 불리해지지 않았고, 그것이 조선 농민의 소득 증가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미증식으로 쌀 유통량이 늘어났는데도 한국 쌀값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일본인들이 한국 쌀을 구매해줬기 때문이고 이 덕분에 한국 농민들의 소득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쌀 유입을 반대하는 일본 농민들에 맞서 <동아일보>가 '한국 쌀을 막지 말라'는 경고성 기사를 실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쌀의 대일 판매를 싫어했다면 <동아일보>가 이런 기사를 내보냈겠냐는 게 이영훈 교수의 생각이다.

그런 뒤 그는 1인당 쌀 섭취량이 감소한 문제를 재차 거론한다. "쌀을 수출한 것이 생활수준의 하락을 가져온 원인은 아닙니다"라고 강조한 뒤 송이버섯 비유를 꺼낸다.
 
"요즘 송이버섯은 귀하고 하도 비싸서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먹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송이버섯 사랑은 유별나서 일본에서도 가격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의 송이버섯 채취 농가가 생산량을 늘렸다고 해도, 더 많이 수출하고 나면 송이버섯의 한국 내 소비가 줄어들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생활수준이 떨어졌다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송이버섯을 수출하기 위해 자체 소비를 줄인다고 해서 생활수준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일제하 한국인들이 일본에 쌀을 수출하느라 쌀을 못 먹었다 하여 생활수준이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쌀은 핵심 식량이고 송이버섯은 그렇지 않다는 이치를 도외시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농민'과 '지주'... 착각을 유도하는 고약한 장치

이 대목에서 해결해야 할 의문이 있다. 위 <동아일보>에 따르면, 1931년 당시의 한국인들이 쌀의 대일 판매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이영훈 교수는 일제의 쌀 정책이 식민지에 도움이 됐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말을 듣다 보면, 일제 식민지배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수도 있다.

그런 느낌이 생길 여지가 있는 것은 이영훈 교수가 글 속에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농민'이란 표현을 강조해서 사용했다. 한국인들이 쌀의 대일 판매를 희망했으며 그런 판매가 한국에 이익이 됐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약 그가 '조선 농민' 대신 '조선 지주'란 표현을 썼다면, <동아일보>가 쌀의 대일 판매를 지원한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일제의 쌀 정책으로 대다수 한국인이 수탈을 당하는 가운데 소수의 지주계급만큼은 총독부와의 협력 하에 이익을 봤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을 것이다. 이영훈 교수가 '지주'를 '농민'으로 바꾸는 바람에 그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유통회사 대리점을 경영하는 사람은 상인으로 불릴 수 있어도, 유통회사 본사의 사장은 상인으로 불리지 않는다. 유통회사를 경영하므로 상인인 것은 맞지만, 그 표현으로는 그가 하는 일과 그가 차지한 사회적 지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지주도 농민이기는 하지만, 농민이란 표현으로는 지주의 기능과 지위를 정확히 표시하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농민'이란 표현은 지주보다는 소작농을 먼저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이영훈 교수가 '조선 지주들이 쌀의 대일 판매를 찬성했다'고 하지 않고, '조선 농민들이 쌀의 대일 판매를 찬성했다'고 하는 바람에 독자들이 착오를 일으킬 소지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쌀의 대일 판매로 이익을 본 것이 소수의 지주계급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영훈 교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제3장 본문의 후반부에서 그 점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전체 농가 중에서 지주의 비중은 3.6%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소작료 수입을 통해 전체 쌀 생산량의 37%를 취득하고 있었습니다. 자가 소비를 제하고 상품화되는 쌀을 기준으로 하면 지주의 몫은 50%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앞에서 쌀이 수출 상품이 되어 조선의 농민들이 유리해졌음을 언급했지만, 그 혜택은 쌀 판매량이 많은 지주나 자작농에게 집중되었고, 소작농에게 돌아간 것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쌀의 대일 판매로 득을 본 것은 3.6%에 불과한 지주계급이나 그들에 필적하는 소수의 부유 자작농뿐이었다는 점을 이영훈 교수도 인정했다. 일반 농민인 소작농한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음을 그도 인정한 것이다. 소작농들은 쌀 섭취량 감소로 생활고만 입었을 뿐이었다. 이처럼 쌀의 대일 판매가 총독부 지지 계층인 지주계급한테만 유리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 농민들이 대일 판매를 찬성했다'며 착오를 유도했던 것이다.

그가 쌀의 대일 판매로 소수 지주들만 이익을 봤다는, 자기 주장에 해가 되는 말을 한 이유가 있다. 한국 소작농들이 가난을 면치 못한 것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 지주계급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말을 하다 보니 쌀의 대일 판매로 이익을 본 게 지주계급뿐이었음을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이처럼 낙성대경제연구소에 포진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고약하다. 한국인들의 착각을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논리는 허술하다. 일제의 쌀 수탈을 부정하는 그들의 논리는 다름아닌 그들 자신의 논리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도 일본 우익한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양심적인 한국 지식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선전을 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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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수필> 정 이월 다 가고 … - 그리운 강남 아리랑 -

음률에 남과 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아리랑 노랫 말을 뇌이다 보니 목이 메였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9/16 [06:33]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
 

‘그리운 강남’, 이 얼마 만에 듣는 노래인가.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통일 축구경기 TV중계화면에 한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달랑 북 하나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옛날에 귀에 익었던 이 노래, 그러나 아주 다른 소리 빛깔과 낯 설은 가락으로 부르고 있다.

가슴 속 깊이 묻혀있던 한을 끄집어 내어 우리 고유의 창 같은 음률로 토해내듯 불러대는 이

소리에 나는 그만,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모국의 소리꾼 장사익 이었다.
 

어렸을 때 동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제서야 다시 듣게 되었는가? 그 내력을 찾아보니 일제강점기 언론인 김형원의 시 '그리운 강남'에 작곡가 안기영이 1928년에 곡을 붙였다. 그렇다, 이 노래는 그냥 철 없는 아이들만의 노래는 아니다.


매몰찬 일제의 억압에서 독립의 봄을 그리워하던 우리 겨레의 한과 소망이 담긴 노래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 당국에 의해 금지 되었던 또 하나의 울 밑에 선 '봉선화' 같은 노래다. 해방

뒤 남과 북의 음악교과서에도 실려 마을마다 골목마다 메아리 쳤던 노래였다.


안기영이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의 길을 모색하고 있던 때 일어난 1919년 3.1독립항쟁에 참가한 이유로 그는 퇴학당했다. 그가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다니던 중 여운형 선생을 만나 그의 권유로 남경 금릉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1924년 귀국해서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조교를 하던 그는 또 1925년, 미국 오레곤 주 엘리슨 화이트 음악대학 유학 길에 올랐다. 3년뒤 귀국하고 이화여전 음악교수로 재직 중 지금의 교가도 작곡했다. 작곡가며 성악가였던 그는 조선의 설화 '콩쥐팥쥐'와 '견우직녀'같은 향토가극을 1940년대 초에 작곡하고 공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극(오페라)들이다.
 

그는 해방뒤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1947년 암살 당한 여운형 선생의 추모곡을 작곡하고 장례식에서 연주지휘도 했다. 좌우이념의 대립이 한창이던 그 때 좌익으로 몰려 그는 이승만정부에서 음악활동마저 중지당했다. 그리고 남북전쟁 중 1950년 그는 북으로 갔고 그의 노래들은 남녘에서 금지되었다. 거의 40년이 되어 남녘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온1980년대 말에야 그의 창작품들이 풀려났다. 그동안 땅 속에 묻혔던 안기영 음악의 뿌리가 뒤늦게나마 소리꾼 장사익에 의해 되살아나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로스앤젤레스 챈들러음악당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 공연에서 열광하는 3,000명 청중 속에 나도 있었다. “사람이 그리워서”라는1부 공연에서는 ‘희망 한 단’, ‘찔레꽃’ 등 국악에 바탕을 둔 풋풋한 황토 빛 노래들을 그는 절규하듯 불러댔다. 북과 장고, 기타와 피아노가 받쳐주는 반주의 화음이 감동을 더 해 주었다. 2부에서는 친근한 가요, ‘님은 먼 곳에’, ’동백아가씨’등을 탁하지만 가슴 시린 서정을 담아 온 몸으로 노래했다. 구슬픈 듯 아득한 해금의 음색도 가슴을 파고 들었다. 전통 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진 반주로 우리 겨레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와 정이 끈끈한 노래들을 그만의 독특한 소리판으로 이어 갔다.

 

한 판, 한 판 더해 가며 무대와 청중은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노래를 마친 그가 ”용의 눈에

점을 찍은 이 소리판에 와주신 여러분….”하며 미국 순회 마지막 공연에 성황을 이뤄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감동에 벅찬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일어섰다. 기어이 “한 번 더!

한 곡 더!”의 열화 같은 재청에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이 안기영의 곡을 엮은 ‘강남 아리랑

(그리운 강남)’을 선창하자 객석의 모두가 일어나 함께 불렀다.
 

“ …… 또 다~ 시 보오~옴이 오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이 노래를 부르며 문득 일화 하나가 생각났다. 남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1년, 북미주와 유럽의 선우학원, 이영빈, 김동수 등 학자와 종교인 30여명이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북의 려연구(여운형 따님), 안경호 박사 등 15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의 대화] 모임을 가졌다.

분단 36년만에 처음인 두렵고 떨리는, 그러나 결의에 찬 
만남이었다. 회의뒤 저녁 식사자리에서 북과 해외동포들은 축하의 술잔을 마주치고 난 뒤에도 서로 어색하고 서먹서먹한게 긴장이 안 풀려 말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한 여인이 조용히 ‘정 이월 다 가고…’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입이 열려 따라 부르다 손에 손잡고 부르고 또 부르다 끝내 모두는 눈물을 머금고 껴안았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음률에 남과 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아리랑 노랫 말을 뇌이다 보니 목이 메였다고 한다. 그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이 노래의 감동으로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일제강점 시절 창가수준의 창작계를 한 차원 높여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는 안기영의 기여가 뒤 늦게 남녘에서도 조명되었다고 한다.

북에서 그는 김원균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1980년 
세상을 떠났다. 이 소박하고 더 없이 고운 시 '그리운 강남'을 지은 김형원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였다. 그는 신경향파문학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저항적 참여 시도 많이 썼다. 허나 일제강점 말기에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에 적극 협력했다. 뒷날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청춘을 산 우리 선대들의 삶이 파란만장하지

않았던 분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반목과 대결을 계속하고 있는 분단조국의 동포들이 똑 같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아리랑’ 가락은 어찌 그리 아픈 굴곡의 역사를 겪어야 했나.

우리 겨레의 영혼에 들어와 어린아이들마저 즐겨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렇게 끊었다 이었다가,
 

버렸다 주었다 해야만 했는지! 겨레의 애틋한 소망을 담은 이 한 노래의 역사가 이렇게 우리

가슴을 에이니, 떠나간 자와 남은 자, 남았으면서도 갈라져 사는 가족의 아픈 수난들을 그 어찌 말로 표현하랴. 4계절이 분명치 않은 이곳 미국의 남캘리포니아이지만 매해 3월이면 공기 맑은 해안도시 산후안 카피스트라노에서 제비축제가 열린다. 우리 겨레에게도 평화와 통일의

감람나무 잎새를 물고 올 제비가 기다려진다. 그 언제 남과 북의 동포들이 한 자리에 만나 손에 손 맞잡고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를 함께 부를 날이 올까!

오 인 동/재미동포의사, 본사상임고문  
 

 

 미주 중앙일보 2007년 6월28일

 한국의 문예월간 '한국산문' 2008년 6월호

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동인지 '너 의사 맞아?' 2009년

 

장사익 그리운 강남, 아리랑: https://www.youtube.com/watch?v=9HRQ6FYBQ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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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문제를 검찰에 맡기면 검찰개혁도 민주주의도 어렵다”

[만사법통에 기댄 사회](2)금태섭 “모든 사회문제를 검찰에 맡기면 검찰개혁도 민주주의도 어렵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19.09.16 06:00 수정 : 2019.09.16 08:18

 

민간분쟁을 파헤치는 검찰 - 금태섭 국회의원

금태섭 의원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금 의원은 1995년 검사로 임관해 2007년 검찰을 떠났다. 당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라는 글을 일간지에 실어 내부에서 문제가 됐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금태섭 의원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금 의원은 1995년 검사로 임관해 2007년 검찰을 떠났다. 당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라는 글을 일간지에 실어 내부에서 문제가 됐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금태섭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인사청문회에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언행이 불일치한다고 말했지만, 검사 출신 의원이 드는 부적격 사유로는 어색했다. 진짜 이유는 조 후보자의 검찰개혁 방안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고 법조계는 추측한다. 서울대 박사과정 사제지간인 두 사람은 민사분쟁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문제에 똑같이 비판적이다. 조 장관은 도덕에 형법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절제의 형법학>을 2015년 냈다. 금 의원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 검찰의 권한을 손봐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 어디에서 두 사람이 갈리는 걸까. 금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 9일 오전 만났다. 인터뷰하는 동안 조국 법무장관 임명이 발표됐다.

 사인(私人) 사이의 분쟁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채무불이행이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사기로 고소한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채무자를 불러 겁도 주고 기소해서 돈을 받아준다. 부동산을 팔기로 하고 중도금까지 받으면 더 좋은 조건이 나타나도 포기해야 한다. 위약금을 물고 새로 계약을 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검사가 배임죄로 기소하고 법원에서 유죄가 나오기 때문이다. 부동산 이중매매 처벌이라는 대법원 판례 때문인데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처벌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질구레한 빚까지 대신 받아주는 일을 검사들이 기꺼워할까. “반반이라고 본다. 채무불이행 같은 민사사건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과거에는 민사재판에서 이겨도 돈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 채무자가 재산 숨기는 것을 막는 장치가 부실했다. 가족 이름으로만 돌려놔도 강제집행이 안됐다. 선진국처럼 신용에 불이익을 줘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형사절차를 통해 채권을 해소했다. 아주 예전에는 선진국도 비슷했다. 채무자 감옥도 있었다. 이런 해결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채무자 감옥은 1800년대 중반에 사라졌다.

 신용제도가 부실한 사회에서는 수사기관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물었다. “2002년 신용카드 대란 때 카드대금 갚지 못한 사람들을 검찰이 기소했다. 그런데 신용카드 회사는 전문 금융기관이고 자신들이 가입자의 신용도를 평가해서 카드를 내준 것이다. 이런 부실까지 검찰이 해결해주면 카드사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 된다. 내가 몇몇 사건에서 불기소 결정문을 써서 사안을 다르게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신용거래가 정착되지 못한다’고 하더라. 오히려 그 반대다. 검찰이 다 해결해주니 금융기관이 체력을 기르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투자은행이 없지 않나.”

 검찰이 경영판단과 노조활동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금 의원은 지적한다.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배임으로 처벌한다. 담보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니 사업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담보가 없으면 대출을 못 받는다. 성공한 벤처기업이 드문 이유다. 경영판단도 수사 대상이다. 일부 악덕기업도 있지만 실패한 경영판단도 기소한다. 무죄율이 다른 범죄의 2배다. 기업들이 안전한 사업에만 투자하다가 영세 자영업자들 분야까지 진출한다. 노동자 파업을 업무방해로 기소하면서 사용자와 노동자를 합의시킨다. 이렇게 검찰이 처벌을 하고 다니니 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다.”

 수사기관의 민간영역 개입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검찰은 자기 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법원은 동대문 흥인시장 상가 분양 사기범이라고 검찰이 기소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상대방에게 민사소송을 당했다가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람이다. 보통 민사에서 잘못이 인정되어도 형사처벌까지 받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나라에서든 형사처벌은 마지막 수단이다. 이 사건에서는 민사에서 잘못이 없다고 대법원이 확정한 사람을 검찰이 기소해 형사법정에 세우고 징역 14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수사력을 동원해 민사법원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셈이다.

 “외국에서는 민사 문제에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것은 민사 문제여서 경찰이 다루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내용이 만화에도 나온다(민사불개입 원칙으로 불리며 불편부당을 규정한 일본 경찰법 2조 2항에서 유추된다). 최근 검찰에서 공정거래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 없어도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바꾸자고 한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시작되는 현행 제도는 수사권 발동을 공정위가 결정해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스스로 수사 개시를 결정하면 너무나 많은 사적 분쟁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

 혼인빙자간음죄나 간통죄는 민사 문제를 형사범죄로 만든다고 오랫동안 비판받았지만 폐지는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했다. 처벌 대상을 늘리고 법정형을 높여야 여론이 지지하니 국회가 나서지 못한 것이다.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권이 처벌조항을 줄이지는 못해도 이용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금 의원은 말했다. “2016년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통과되지 못했다. 참 어렵다. 게다가 법도 법이지만 사회의 분위기, 문화의 문제도 있다. 일본에도 명예훼손죄가 있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다. 우리는 고위공직자가 나서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이 대목의 고위공직자가 조 법무장관이다. 금 의원은 청문회에서 이렇게 질의했다. “민정수석 당시 악의적인 뉴스이긴 하지만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을 다루는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인 민정수석이 본인에 대한 이의제기에 고소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해명하는 방향을 보여줬으면 어떨까. 공무원들이 자기에 대한 허위 뉴스를 고소·고발하기 시작하면 인터넷에서 댓글 다는 사람들,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처벌된다. 아무리 현행법상 처벌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싶다.”

 금 의원과 조 법무장관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 의원은 윤석열 검찰이 조 후보자를 수사해 정치에 개입한 배경에 특수부를 그대로 살려둔 조 민정수석의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물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휘하의 거의 모든 요직을 특수통 검사로 채운 것은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다.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만든 수사권 조정 정부안을 보면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 검란이라고까지 부르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후보자가 검찰개혁에 대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조 후보자는 “이론적으로나 원론적으로 금 위원 말에 크게 동의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조국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장관이 재임하는 동안 특수부는 커지기만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규모가 대검 중앙수사부 시절의 3배를 넘는다. 이는 전임 정권의 국정농단을 처벌하려는 청와대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사람들 추측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도 조 법무장관은 찬성하고, 금 의원은 반대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수사 경쟁을 통해 사건 덮기를 막겠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이들의 논거는 안 그래도 비대한 수사기관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조 장관은 취임 이틀 뒤인 지난 11일 특수부 축소를 지시했다).

 지금과 같은 검찰을 개혁하려면 기소권과 수사권을 나눠야 한다고, 즉 특수부를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고 금 의원은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이 정치에 계속 관여한다고 본다. “인구가 한국의 2.5배인 일본에도 특수부가 전국에 3곳밖에 없고 그나마 뇌물과 전통적인 범죄만 수사한다. 공무원 직권남용이나 경영상 배임 같은 애매한 영역은 손대지 않는다. 우리는 특수부가 이렇게 크니 고등학생 자기소개서까지 검증한다. 최종적으로 혐의가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 자체로 정치에 영향을 준다. 수사로 논쟁이 끝나지도 않는다. 반대편은 엉터리 수사라면서 특별검사든 뭐든 다시 하라고 한다.” 금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특수부를 당장 3개로 줄이라고 했다.

 특수부가 수색하고 압수하면 범죄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어찌 막느냐고 물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위에서 원하면 착착 해낸다. 재벌 범죄도 공직자 잘못도 전광석화로 도려낸다. 그러한 조직은 선출도 되지 않았으면서 반드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다른 나라는 왜 이렇게 안 하겠냐. 미국에서 하버드 로스쿨 나온 사람들 다 모아서 파헤치지도 않고, 독일에서 전국의 우수한 인재를 모아 털어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만 초대형 특수부가 필요한 유난히 썩은 사회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검찰에게 모든 것을 맡기니 다른 해결 메커니즘이 생기지 않는다.”

 “국회에서 증인으로 불러도 사람들이 안 나온다. 하지만 국회조차 별달리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 검찰의 출석요구를 거부하면 정당에서 목소리를 높여 비판한다. 국회 스스로가 국회의 권능보다 검찰의 수사에 의미를 둔다. 이렇게 정치권이 검찰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탄핵이 있었고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렇게 들어선 새 정부는 과거를 청산하면서 정답뿐 아니라 과정도 새롭게 했어야 했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검찰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 적폐청산을 검찰에 맡긴 것은 잘못이다.”

 지금과 같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금 의원은 말했다. “조직에는 조직의 논리가 있다. 검찰이 보수의 편만 들거나 진보의 편만 들지는 않는다. 조직의 생존과 영향력 확장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란 말을 외국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범죄를 처벌하는 기관이 무슨 문제냐고 한다. 우리나라 검찰이 손대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몰라서다.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주의가 힘을 쓰지 못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 절차에는 독립성을 상당히 부여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검찰을 부르고 검찰이 수사해서 해결한다.” 그래서 지금 패스트트랙 문제가 수사로 번진 일에도 부정적이다.

 “검찰 힘이 세진 배경은 해방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에 협력한 경찰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엘리트를 전국에 내려보내 시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젊은 영감(令監)에게 친일 경찰들이 쩔쩔맸다. 6공화국을 거치면서 권력 중심부로 들어갔고 권력의 위로 올라가 이렇게 세졌다. 진보 정부가 검찰을 다루면서 잘못 판단한 것이 강한 검찰을 그대로 두고 좋은 검찰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정의롭고 착한 검찰을 꿈꾸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 민주주의는 신뢰가 아니라 제도에 바탕한다. 지금 특수부나 아니면 공수처가 정의로운 권력기관이 되지 못한다. 힘을 쫙 빼는 것이 방법이다. 사회 문제들을 검찰을 이용해서 해결하려 하면 검찰개혁도 민주주의도 어려워진다.”

■ 글 싣는 순서

1 현대예술을 재단하는 법정 -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

2 민간분쟁을 파헤치는 검찰 - 금태섭 국회의원

3 정치외교를 좌우하는 사법 -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160600015&code=940301#csidx2d87d04ad8ba2f78b44b7c96a943f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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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아니다

[특별기고] '조국사태'에 대한 두가지 교육적 성찰
2019.09.16 09:00:54
 

 

 

조국 사태가 일단락이 되었다.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여진은 아마 상당히 오래갈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사태가 일단락된 지금, 이번 사태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정치란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쟁투(爭鬪)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여야 간, 보수 대 진보 간, 좌파와 우파 간에 쟁투, 정치경제적 자원의 배분이거나 혹은 국가적 의사결정을 둘러싼 쟁투의 과정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치열해지면, 대체로 우리 편은 천사가 되고 상대방은 악마가 된다. 자기 편은 ‘과잉’ 천사화하고, 반대편은 ‘과잉’ 악마화하는 관성이 작동한다. 더 넓혀서 이야기하면, 20세기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도 그랬다. 종교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면서 정치는 천사와 악마의 싸움으로 신념화된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런 과잉인식을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여기서 나는 정치라고 할 때 ‘여의도정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여성주의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삶 속에 정치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광의의 생활정치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정치적·사회적 갈등이라고 치환해도 좋겠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 편이라고 해도 천사가 아닐 수 있다”, “우리 편도 70%만 옳다”, “나도 70%이상 옳을 수 없다”, “적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30%는 동지에게 적용하자”는 인식을 가지고 우리가 정치를 바라보면 좋겠다(조국 사태에 대해서 나는 상대방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비판들의 30%는 경청하게 된다. 현 정부 집권 이후 낙마한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현재의 여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의 비판 기준을 적용할 때도 그러하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쟁투로서의 정치는 ‘70%의 천사 대 70%의 악마’의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악마적 천사 대 천사적 악마’의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나도 70% 이상 옳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치열한 쟁투의 과정에서 그래야 상대방을 100% 미워하지 않고 70%정도로 미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나머지 30%로 상대방과 공존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점을 아래에서 조금 자세하게 서술해보자. 먼저 나는 사회학적 측면에서 정치를 광의로 해석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말해두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할 때, 협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 혹은 우리들의 사회적 삶의 전 과정에 정치가 내재되어 있다. ‘교육정치학회’라는 학회도 존재한다. 교육의 과정이 -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 정치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판단 위에서 이런 명칭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정치, 의회정치와 같은 협의의 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정치, 삶의 정치, 사회적 정치 등 광의의 정치 개념이 존재하고 나는 그런 개념을 선호한다. 
 
얼마 전 서대문구의 청소년의회에서는 교육감을 불러서 ‘교육감사’하듯이 질문을 하고 교육감이 응답하는 행사가 있었다. 감사 전에 잠깐 서울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나는 학생인권은 ‘안중에도 없던’ 시대를 지나, 학생을 배움과 학교생활, 개인 삶의 독립적 주체로 대우하고 교육하는 학생인권시대, 그리고 민주시민교육 시대로 이행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 민주시민으로서의 학생, 나의 표현을 빌린다면 ‘교복입은 시민’이 세계(민주)시민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 나아가 ‘다원성의 사회’에서 다양한 차이를 차별로 접근하지 않고 존중하는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의 배려와 존중, 공존의 시민미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사회는 87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권위주의시대에서 선거민주주의시대로 이행한 이후 30여년 간, 과거의 권위주의 유산을 극복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를 지자체 수준 및 생활세계 수준의 민주주의로 심화시키기 위한 쟁투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해가 부당하게 침해받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부당한 침해상황에서는 바로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행동하는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의 적극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휘되어야 하고, 또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가 일궈놓은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어떻게 다원성이 인정되는 공존형 정치의 기반을 확대할 것인가하는 과제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 조국 법무부장관이 후보자 시절 기자회견을 열고 각종 논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로 구성된다 
 
민주주의에는 2개의 정치가 내포되어 있다.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정치가 필요하다. 87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역동적인 민주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30% 공존의 정치를 확대해가야 한다. 물론 정치는 쟁투의 과정이기 때문에 투쟁의 정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가 문제다. 나는 투쟁의 정치 대 공존의 정치가 ‘7대 3’정도로 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이런 과제가 주어졌으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공존의 정치를 실현해내는 것 자체도 정치적 역량이다). 적폐청산의 강렬한 국민적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공존의 정치를 시도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또한 보수가 과거의 프레임을 충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때로는 촛불시민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도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차피 승자를 정하는 쟁투는 전개된다 
 
종종 이런 예를 든다. 어차피 정치라는 것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쟁투는 불가피하다. 쟁투가 무찌르기 식이나 사생결단식이 아니더라도 승자는 결정된다. 예컨대 87년 대선을 돌이켜 보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각각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기 위한 쟁투를 펼쳤다. 사실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정치는 얼마나 많은 정치자금이 들었겠는가. 그런데 그 이후 TV토론 등이 활성화되면서, 그리고 정치적 쟁투의 형식의 변화하면서, 지금은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을 동원하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이 진행된다(그러면 지금의 정치는 87년 보다 덜 치열한가?).
 
이런 견지에서 천사 대 악마의 싸움으로 정치를 규정하지 않아도 선거민주주의의 특성 상 쟁투가 있고 쟁투의 결과 승자를 결정하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된다. 단지 그 방식을 현대화해야 하고 더욱 합리화해가야 한다.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를 배합해 가야 한다. 
 
쟁투의 상대방을 존재론적으로 긍정하는 사고 
 
이를 위해서는 쟁투의 상대방을 존재론적으로 수긍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국 사태'에서 내가 주목하는 점이 이것이다. 쟁투의 과정에서 우리는 100% 옳은 존재로, 그리고 우리 동지는 천사로, 우리의 대표적인 인사는 100% 도덕적 존재로 상정하고 쟁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국은 사법개혁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앙가주망’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해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여연대의 사법개혁센터의 초기 주역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헌신성을 가까이 지켜볼 기회도 있었다. 당시 초기 시민운동의 과정에서 이른바 일류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시간과 돈을 내서 참여하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헌신적으로 초기 사법개혁운동의 중심인물로서 활동했다. 
 
조국이 진보적 사법개혁의 아이콘이지만, 그를 100% 도덕적 존재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났다. 그렇지만 100% 완전한 존재로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사실 9월 6일 치열했던 조국 청문회에서 ‘목소리를 높힌’ 의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 운전자 바꿔치기, 돈으로 합의 시도 등을 동반하는 사건에 휘말린 걸 청문회 다음 날 목도하였다. 조국 장관 딸의 논문에서 '제1저자'로 등재한 것에 분노하여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이 역시 제1 저자로 등재된 것이 드러났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는 조금은 정치적·사회적 쟁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박정희는 ‘공3과7’ 혹은 ‘공7과3’? 
 
민주화 세대가 ‘악마화’한 박정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시대에 대해 ‘공7 과3’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공(功)을 7로, 과(過)를 3으로 평가하자는 말이다. 나는 이에 반대한다. 굳이 한다면, 박정희 시대의 정책에 대해 공(功)을 3으로, 과(過)를 7로 평가하고 싶다. 7:3이라는 언어 자체가 한 시대를 평가하는데 7:3이라는 비율적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겠지만, 그런 공존의 기반을 갖자는 취지이다. 나는 자사고 폐지를 주도하면서, 이것이 ‘제2의 고교평준화’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박정희 시대였던 70년대 고교평준화를 시도했다면, 지금 하는 자사고 폐지 정책은 그런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가 취했던 정책 중에서 그린벨트 정책, 의료보험 제도 도입,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취했던) 한글 사용 확대 정책에 대해 계승하는 입장을 갖는다. 
 
끝없는 악순환을 넘어 일반적 규칙을 만들면 
 
우리 편에 대한 과잉천사화와 상대편에 대한 과잉악마화는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공존의 정치라는 견지에서, 일반적 규칙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같은 것도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현재의 야당이 여당이었을 때 현 여당이 된 당시의 야당도 동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역사가 되어버렸는데, 박근혜정부는 직권 남용, 공적 권력의 사적 이해를 위한 활용, 사인에 의한 공적 권력의 무력화, 정경유착 등으로 탄핵되었다. 탄핵의 사유들의 향후 운용에 대해서도, 일반적 규칙을 만드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낀다. 즉 박근혜 정부의 그러한 극단화된 적폐적 행태를 단죄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그 극단성에 내포된 행위 중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 탄핵 이후의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감안해서 - 새로운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그것 보아라’하면서 박근혜의 탄핵 이전의 행태 모두를 정당화하는 식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여당은 이를 도외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직권남용’이라는 것을 광의로 적용하기로 하면, 정권 교체 이후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반영하는 방향에서의 정부의 인적 구성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권 교체 이후의 고위직의 교체 범위를 정의하는 식의 여야간의 합의된 규칙을 만들 수도 있다. 정권 교체 이후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맞는 인적 구성을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든지 상대방에 의해서 직권남용이 되고, 그것이 정권의 주체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방지해야 한다.  
 
또한, 조국이 페이스북 상에서 던진 강렬한 메시지는 이번 사태에서는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한일무역갈등 국면에서의 페이스북 글에서도 큰 기조는 동의하지만 미묘한 국가 간 갈등의 복잡성을 과도하게 단순화 한 점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국을 둘러싼 폴리페서 논란도 그러하다. 나는 천사와 악마의 대립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교수의 현실 참여에 대한 여야,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는 ‘일반적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어떤 참여가 폴리페서이고 어떤 참여는 앙가주망이 되는가. 사실 폴리페서와 앙가주망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서울 법대 정종섭(자유한국당 의원)의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직 수락과 조국의 장관직 참여는 동일한 것이다. 단지 맥락과 참여의 정치적 성격이 다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나에 대한 ‘내로남불’ 비판을 생각하면서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자사고-외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녀들이 외고에 다녔다며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나는 한편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 속으로 항변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주장을 상대방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인정한다. 바로 그러한 도덕적 결함을 갖는 존재로서의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의 선봉에 서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2014년 선거 과정에서 내 아들이 쓴 편지와 고승덕 후보 딸이 쓴 편지가 대비되어 선거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사실 이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원래 내 아들이 나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쓴 편지를 선거본부 실무자들이 가지고 왔을 때, 나는 ‘낯 뜨거워서’ 안 냈으면 내지 말라고 했다. 내가 반대해서, 2-3일간 발표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본부의 강력한 주장을 존중해서 발표를 허용했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고승덕 후보 딸의 편지와 대비되는 반응이 나왔던 것 같다. 선거 이후에 나는 여러 차례 이런 이야기를 공식적·비공식적으로 했다. 고승덕 후보에게도 했다. “사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선거국면이 치열한 쟁투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저는 ‘도덕적 아버지’로 과잉 표상되고, 고 후보는 부덕한 아버지로 과잉표상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 
현대 철학에서의 다수자와 소수자 
 
내가 철학에 대해 과문하지만, 이런 인식과 사고가 근대 ‘이후’ 철학의 핵심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철학과 정치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양분법적 사고 양식이 존재했다. 예컨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자본가와 노동자,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양분법적 구분 말이다. 이 때 후자는 인간과 사회 해방의 천사로서 인식되고, 상대방은 악마로 인식된다. 20세기의 1차, 2차 전쟁을 포함하여, 에릭 홈스봄이 말한 ‘극단의 시대’가 20세기에 펼쳐진 것도 이런 사고 위에서였다. 그러나 이 양분법적 인식의 강을 횡단하는 것이 근대 이후 철학의 한 특징이다. 영화 <색계(色戒)>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민족해방을 위해 성을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자본가와 노동자는 하나의 순수일체적 존재로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일범주로의 인식은 역으로 피억압민족 내의 모순과 균열을 숨기는 것이 된다. 다수자와 소수자가 있다고 할 때, 소수자 역시 자신 속에 다수자적 속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 여성과 레즈비언의 관계가 다를 수 있다. 현실에서 악마와 천사는 없다. 악마적 천사와 천사적 악마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시각을 제기하는 이유가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 みんな  どろぼうです)’ 식의 냉소주의를 부추기거나, 근대 이후 철학이 갖는 상대주의로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주의를 취하려 해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적과 동지’의 구분은 너무도 확연하게 된다(그래서 칼 쉬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기술’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단지 적과 동지의 싸움이 ‘무찌르기’ 식의 극단적 절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공존의 바탕 위에서 싸움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계급’의 문제를 본다? 
 
둘째로, 이렇게 다원적 시선을 갖는다고 할 때, 그냥 공존하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국 사태'의 고민 지점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된다. 조국은 분명히 87년 이후 '민주개혁 대 반개혁'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개혁의 선도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국 사태'를 통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교육 자원의 격차, 교육의 영역을 통해서 드러나는 불평등의 문제가 투명하게 드러났다(서민들의 자녀와 조국의 자녀들이 어떻게 다른 ’생애의 기회‘를 갖는지도 드러났다). 명문대생들은 명문대생대로 불공정을 성토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피땀으로 이룬 성취를 조국과 같은 기득권의 자녀들이 부모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라는 지름길을 이용해 손상했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이런 비판마저 배부른 소리라고 지적한다. ‘구의역 김군’과 함께 일했던 동료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와 엘리트 인생 사이에 어찌 출발선이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여기서, 향후 쟁투의 내용을 새롭게 재정식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를 ‘계급적 문제’로 보고자 했다. 사실, 조국은 대표적인 ‘강남좌파’라고 불리웠는데, 이때의 강남성(性) 혹은 강남적 성격은 현존하는 질서 내에서도 일정한 ‘혜택받은 집단’이나 ‘기득권적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의미에서 조국의 강남성(性)은 그가 서울대 교수라는 점과 '사학 오너'의 자녀라는 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강북이나 지방의 좌파와 달리 기존의 질서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역량이 현저하게 다르고 다양한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 상의 일’들에 연루될 가능성이나, 현재의 달라진 공직자의 기준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과거의 관행적 일들에 연루될 가능성도 클 것이라고 판단된다. 강남 좌파는 그런 점에서 그러한 계급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만큼 그가 참여한 개혁적 운동의 저변이 넓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많은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불평등 접근권의 문제를 단지 ‘조국 특수'적 문제로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로 포착하고 다음 단계의 쟁투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 개혁주의자로 살아온 ‘강남좌파’ 위에, 더욱 심대한 불평등 접근권의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새로운 사회와 정치(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쟁투라 해도 좋다)를 생각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조국 너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만들어낸 ‘민주사회’에서 민주화를 주도했던 386세대는 -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 우리 사회의 주류, 특별히 정치적 주류로 진입하였다. 이 점은 유럽의 68혁명세대도 마찬가지이며, 미국의 60-70년대 저항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87년 이후 체제, 97년 체제에 의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으로 구조화된 새로운 체제 내에서 주류가 된 셈이다. 
 
조국을 통해서 우리가 본 것은 강남좌파의 두 측면이다. ‘강남이면서도 좌파’인 그의 인간적 헌신과 87년 체제 하에서의 개혁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87년 체제 하에서 강남적 존재가 갖는 불평등한 접근권의 모습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인식하면서 우리는 조국을 넘어가야 한다. 조국에서 느끼는 실망으로 87년 6월 민주항쟁과 촛불시민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강남좌파의 강남성에서 발생하는 특권적 모습을 도덕적 비판하면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와는 달리 우리는 미래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바라봄에 있어 ‘세대갈등’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또한 나는 이런 미래를 개척함에 있어 ‘세대갈등’으로 가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중도층이나 젊은 세대가 좌절과 분노에 공감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이야기하는 ‘기회의 공정성’을 넘어서서, ‘결과의 평등성’까지 실현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386세대나 586세대 전체와 젊은 세대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것은 올바른 시선이 아니다. 민주개혁의 선도에 섰던 386세대, 아니 586세대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함께 가야 한다. 386세대나 586세대를 정치 영역에서의 국회의원이나 주류화된 중상층만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에도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불평등과 격차,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 중에는 386세대 혹은 586세대가 다수 존재한다. 이런 연대 위에서, 386이나 586의 세대적 한계까지도 당연히 쟁점화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 중의 강남좌파가 된 존재들의 강남성에 의해서 주어지는 구조적 접근권의 격차까지도 개혁하는 새로운 쟁투로 가야 한다. 예컨대 이번 - 지금은 일정하게 개혁되고 한 단계 높은 개선을 목적에 둔 - 과거의 ‘학생부 종합전형’ 제도에서의 계급계층적 접근권의 차이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서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적했지만 서열화된 고교 체제와 대학 입시 개혁으로도 가야 한다. 당연히 사회경제적 개혁의 더 높은 단계를 상상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여성, 다문화, 비정규직 등 386이냐 586이냐를 넘어서 험악해진 우리 사회의 균열을 치유하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와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는 무한 입시경쟁의 불평등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당연히 사회경제적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대입과 고입을 준비하는 교육 현장은 사회경제적 격차를 교육 격차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약육강식 무한경쟁의 장(場)이다. 따라서 당연히 제도 내에서의 도덕성에 분노함과 동시에, 서열화된 고교체제과 대학체제, 그 관문으로서의 입시제도를 한 단계 높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 그것이 - '조국 사태'를 보면서 '조국 너머'의 -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새로운 쟁투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당연히 386세대 그리고 586세대는 바로 이러한 변화된 구조적 현실을 성찰적으로 대면해야 한다. 이미 주류화된 존재로 그 구조 내에서 비루하게 자신의 자식의 문제로 고군분투하지만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은 교육제도’를 만들기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강남좌파는 그 강남성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하여 젊은 세대의 분노와 만나야 한다. 교육에서는 강남성이 특권으로 작용하지 않는 제도개혁, 더 나아가 더 큰 틀에서의 학벌-학력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젊은세대를 노동시장에의 진입 조차 못하게 하는 현재의 ‘의도하지 않은’ 배제의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에서의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더욱 대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나야 한다(현재 계류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그것이 미래세대에게 대의 공간을 열어주는 식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여). 386세대와 586세대는 자신이 투쟁했던 체제에 스스로가 주류로 진입하는 동안 그 구조는 여전한 불평등구조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직시하고 새로운 개혁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예컨대 대학등록금을 신입생에게 적용하던 과거의 대학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학당국의 정책을 생각해보자. 최초의 민주노조를 가능하게 한 386세대는 그들이 비지니스 영역에서 성공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그들이 97년 체제의 도전 속에서 민주노조의 조직력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힘겹게 방어하는 사이, 기업주들은 신규진입자에게 새로운 불이익 조건을 강제하는 식으로 대처하였다. 그 결과 이중노동시장이 아니라 아예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글을 마치면서, '조국 사태'는 이제 법무장관 임명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후 상황은 나는 지켜보는 입장이다. 이 글은 단지 임명 이전까지의 사태 전개를 보면서 이 '조국 사태'를 교육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토론할 때 내가 참여자라면 어떻게 토론할 것인가를 고민해온 작은 생각들이다. 한달 동안 '조국 사태'에 매달려온 많은 분들의 사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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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내쫓고 새로운 계산법 검토하는 트럼프

[개벽예감 364] 볼턴 내쫓고 새로운 계산법 검토하는 트럼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9/16 [07: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의 협상청원 수락한 조선의 특별담화

2. 새로운 대안 가져오라는 조선의 요구

3. 조미실무협상에 포괄적 의제 오른다

4.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담긴 뜻

5. 트럼프, 조미협상 가로막은 큰 걸림돌 치웠다 

 

 

1. 미국의 협상청원 수락한 조선의 특별담화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하여 류의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나는 그 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 나는 미국측이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의 전문이다. 여섯 문장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담화이지만, 거기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그 담화를 특별담화라고 불러야 할 만큼 매우 중대하다. 조미실무협상 담당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에서 건국 71주년을 맞이한 날에 조미협상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은 중대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하여 류의하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공언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동안 미국 국무부는 조미실무협상이 속히 개최되기를 바라는 청원을 여러 차례 조선 외무성에 보냈다. 청원련락을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고, 따라서 몇 차례나 청원련락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보낸 것이 분명하다. 전형적인 청원외교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 때로부터 약 반년이 지나 조선에서 건국 71주년을 맞이한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특별담화에서 그는 2019년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여 포괄적인 의제를 토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으로부터 무시와 질책을 받으면서도 거듭 청원해온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할 수 있다는 조선의 청원수락이다.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포괄적인 의제는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할 새로운 비핵화방안, 그리고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새로운 평화실현방안을 모두 포괄하는 의제라는 뜻이다.     

 

굳이 청원외교라는 말을 쓰는 까닭이 있다. 만일 미국이 대등한 조건에서 조선에게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구했다면, 협상제의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부등한 조건에서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청했으니 협상제의가 아니라 협상청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무릇 청원이란 낮은 지위에 있는 행위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상대자에게 자기 소원을 아뢰는 행동이다. 오늘날 조미관계에서 조선은 미국으로부터 거듭되는 청원을 받을 만큼 우세한 지위에 있고, 그와는 반대로 미국은 조선에게 청원을 거듭해야 할 만큼 열세한 지위에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 외무성이 미국 국무부의 거듭되는 청원을 받고서도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고 무시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거만하고 도도하기로 소문난 미국이건만, 조선으로부터 그처럼 거듭 무시를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다. 비공개 청원을 거듭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의 응답을 받지 못해 고심하던 미국 국무부는 공개 청원으로 돌아섰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27일 마익 팜페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팀을 현장에 보내 나의 팀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훌륭하고 확실한 결과를 이끌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하기 나흘 전인 2019년 8월 23일 이례적인 일이 생겼다. 리용호 외무상이 담화를 통해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한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그를 질책한 까닭은, 2019년 8월 21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국 언론매체와 대담하는 중에 “만일 북조선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비핵화가 옳은 길임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시건방진 말투로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을 들은 리용호 외무상은 8월 23일 담화를 발표하여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했던 것이다. 질책담화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떻게 그가 이런 망발을 함부로 뇌까리는지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고, 이런 사람과 마주앉아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지 실망감만 더해줄 뿐”이라고 하면서, 그는 “미국 외교의 독초”이고, “조미협상의 앞길에 어두운 그늘만 던지는 훼방군”이라고 책망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런 질책을 받고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나흘 뒤에 조미협상이 하루빨리 재개되기 바란다는 청원의사를 언론대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청원해온 미국 국무부의 다급한 사정은 2019년 9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대표의 연설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는 미시건대학에서 연설하면서 “현재 조미 쌍방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협상탁에 마주 앉아 타협점을 찾고 협상의 운률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조선도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행동을 그만두고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청원하다가 질책까지 받고서도 내색하지 못하는 미국의 쪼그라든 몰골, 그리고 그들의 거듭되는 청원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질책까지 주저하지 않는 조선의 위풍당당한 태도, 바로 이것이 오늘 조미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 새로운 대안 가져오라는 조선의 요구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3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2019년 2월 27일과 28일에 진행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단된 조미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선결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조미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조미공동성명을 리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리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략)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여져야 나는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였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적으로 거부한 미국의 계산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며,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작성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람이 바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나는 2019년 4월 1일 <자주시보>에 실린 ‘핵협상 결렬시킨 트럼프, 텔리미트리 점검하는 전략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2019년 3월 29일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 소속 백악관 특파원이 직접 읽어보았다는 백악관 외교문서, 다시 말해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 관한 보도내용을 검토하면서, 그 외교문서에 담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6월 7일 마익 팜페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 장미원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직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의견충돌로 사이가 벌어졌다. 볼턴은 적대국들과 협상하는 외교는 시간랑비일 뿐이며, 제재압박과 정권교체와 무력사용으로 적대국들을 굴복시키는 폭압이 효과적이라고 믿는 극우전쟁광이다. 뭐가 뭔지 모르고 분별없이 날뛰는 그런 극우전쟁광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 다른 각료들로부터 소외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우익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는 생각에서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지만, 그의 극우광기가 너무 심하여 그의 발언과 행동을 제지해야 하였고, 그러는 과정에 그와 수없이 의견충돌을 벌였으며, 종당에는 그를 백악관에서 쫓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키고, 조미협상을 지난 7개월 동안 정체시킨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은 볼턴이 입안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이다.     

 

(1) 핵동결 - 조선은 현존하는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고, 새로운 핵시설 건설도 중단한다.

(2) 핵신고 - 조선은 자기의 핵프로그램에 관한 포괄적 선언을 한다.  

(3) 핵반출 - 조선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한다.

(4) 핵폐기 - 조선은 핵기반시설, 탄도미사일, 미사일발사차량, 관련시설들, 생화학무기프로그램을 해체한다.

(5) 핵사찰 - 조선은 미국인 전문가들과 국제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찰단에게 핵폐기현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한다.

(6) 핵기술집단해체 - 조선은 모든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을 비군사직종으로 전직시킨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나는 그 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고 하면서, “미국측이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조미실무협상에 나오라는 뜻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3. 조미실무협상에 포괄적 의제 오른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으로부터 무시와 질책을 받으면서도 거듭 청원해온 조미실무협상을 오는 9월 하순에 개최할 수 있다는 조선의 청원수락이다. 조선의 청원수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은 조미실무협상이 열리면 포괄적인 의제를 토의하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할 비핵화방안만 토의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도 토의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안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평화협정, 불가침선언, 보장협약의 3중구조 위에 수립하려는 조선의 평화실현방안에 대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선이 미국에게 조미실무협상 개최시점으로 제시한 2019년 9월 하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게 제시한 시한(2019년 12월 말)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이것은 조선이 2019년이 가기 전에, 다시 말해서 앞으로 석 달 안에 조미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해놓은 대미협상시간표에 따라 앞으로 3개월 동안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변화의 급류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올해 언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려는가?”고 물은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을 받고 “올해 어느 때 그렇게 된다. 틀림없이 그들은 만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켜보자. 나는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도,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는 “그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엉뚱하게 답변하였다. 이 엉뚱한 답변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정원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은 올해 언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려는가?"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면서 올해 안에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2019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조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 올해 안에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에 맞춰 올해 안에 반드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생뚱맞은 답변이지만, 거기에는 올해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그의 생각이 녹아있다.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조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 올해 안에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에 맞춰 올해 안에 반드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은 올해 안에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이 비핵화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로 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과 미국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각자 외교력량을 집중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9월 4일 유엔주재조선대표부는 오는 9월 하순 뉴욕에서 진행되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리용호 외무상이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발표하였다. 2019년 7월 10일 유엔사무국이 발표한 유엔총회 연설자 명단에는 조선의 상급(장관급) 인사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로 되었었는데, 지난 8월 30일에 수정된 연설자 명단에는 상급이 대사급으로 바뀌었다. 리용호 외무상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므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계획을 그만둔 것이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외교력량을 집중해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조치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조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담긴 뜻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앞으로 열리게 될 조미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조선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분별없이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또 다시 꺼내놓으면, 조미협상은 그것으로 완전히 파탄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한 것이다.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였음을 알려주는 속보가 <연합뉴스> 웹싸이트에 실린 시각은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속보가 실린 시점을 보면, 최선희 제1부상은 오후 11시 30분경에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간으로 오후 11시 30분을 워싱턴 시간으로 환산하면,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이다. 정오가 가까운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이 영어로 번역한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의 2019년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미국 통신사 <블룸벅 뉴스>는 2019년 9월 11일 보도기사에서 지난 9월 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가 제재완화를 반대하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격론을 벌였다고 하였지만, 긴급회의에서는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와 함께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도 논의되었다.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강하게 반대하였다. 대이란제재완화문제와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격론을 벌였다. 

 

미국 언론매체들에 실린 동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3시 10분경 백악관 집무실을 나선 모습이 나타난다. 오후 7시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엇빌에서 열리는 공화당 대통령선거유세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으므로, 그는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가기 위해 긴급회의를 마치고 백악관 정원으로 나갔던 것이다. 

 

백악관 정원에서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들 가운데는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발표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북조선에서 방금 나온 성명(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을 보았다. 그것(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은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지만, 언제나 나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쁜 것이 아니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답변을 읽어보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조미협상개최문제에 기대를 건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한 긴급회의에서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반대한 볼턴에게서 느낀 불편한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엇빌을 향해 이륙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페이엇빌 선거유세장으로 가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뜻밖의 긴급보고가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도착하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5시 53분(평양시간으로는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조선이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또 다시 진행하였다는 긴급보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리둥절하였다. 그의 천박한 정치적 식견으로는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9월 10일 이른 아침 평안남도 개천비행장 활주로에 임시로 설치된 지휘소에서 제2차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지도하는 장면이다.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휘소 밖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은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특별담화가 발표된 때로부터 약 7시간 30분 뒤에 진행되었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므로, 시험사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한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7시간 30분만에 시험사격을 단행하였다. 특별담화발표와 시험사격단행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양면조치였다. 만일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면, 조미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될 수 있으므로, 조선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압도적인 위력을 시위할 필요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7시 9분이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등장에 환호하였지만,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선거유세 중에 조미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세계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동맹관계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약 7시간 30분이 지난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평안남도 개천비행장 활주로 공터에서 거대한 불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제2차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므로, 시험사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7시간 30분 만에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단행하였다. 

 

7시간 30분 시차를 두고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가 발표되고,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양면조치였다. 만일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면, 조미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될 수 있으므로, 조선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압도적인 무력을 시위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실상을 정확히 보도하지 않아서 독자들이 모르고 있지만, 이번에 조선이 시험사격한 초대형 방사포는 압도적인 위력을 지닌 타격수단이다.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줄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 초대형 방사포의 시험사격은 백악관에 보내는 조선의 강력한 경고메시지였다.  

 

 

5. 트럼프, 조미협상 가로막은 큰 걸림돌 치웠다 

 

페이엇빌에서 선거유세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그가 움직인 동선을 시간대별로 추적해보면,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간 시각은 오후 10시쯤이다. 창가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초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 내려앉고 있었던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전화통화는 볼턴에게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오늘 밤에 그만두라는 해임통보였다.  

 

그날 밤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한 통으로 볼턴을 전격 해임할 줄은 각료들과 백악관 고위보좌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튿날 오전 8시 58분에 트위터로 발표한 볼턴 해임소식을 듣고서야 간밤에 볼턴이 해임되었음을 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해임을 단행한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언론매체들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놓고 볼턴과 격론을 벌인 것이 볼턴을 해임한 이유라고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국가안보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까닭은, 오는 9월 하순에 조미실무협상이 실패하면, 조미협상이 파탄될 것이라는 최선희 제1부상의 서릿발 같은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2019년 9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볼턴 해임과 관련하여 언급한 발언에서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존(존 볼턴을 지칭-옮긴이)은 나와 아주 잘 어울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 리비아 모델은 꺼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뒤로 밀어냈다. 솔직히 그는 나보다 더 강경하지 않지만, 강경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알다시피, 그는 강경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우리를 이라크(전쟁터)로 끌어갈 만큼 강경했다. 그는 나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행정부의 다른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그가 리비아 모델에 대해 언급하자 재앙이 일어났다. 가다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보라. 나는 그 이후(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꺼내놓아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선이 대미협상을 중지한 이후라는 뜻-옮긴이), 김정은(위원장)의 발언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는 존 볼턴과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을 뜻함-옮긴이)은 강경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해 말을 삼갈 줄 아는 명석함의 문제다. 존은 우리와 같은 길에 있지 않았다. 때로 그는 우리가 너무 강경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9월 11일 미국 국방부 청사 앞 광장에서 진행된 9.11사태 18주년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을 출발하기에 앞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볼턴 해임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주었다. 그는 볼턴이 제안해서는 안 되는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조선에게 제안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킨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발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제안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킨 재앙의 책임을 볼턴에게 떠넘겼고,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조미협상이 7개월 동안 지체된 재앙의 책임까지 그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백악관에서 내쫒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볼턴을 전격 해임한 것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함으로써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제기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재앙’의 책임을 볼턴에게 떠넘겼고,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조미협상이 7개월 동안 지체된 ‘재앙’의 책임까지 볼턴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백악관에서 내쫓아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볼턴을 전격 해임한 것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함으로써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조치에 의해 조미협상을 가로막았던 큰 걸림돌이 치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는 것은 핵동결,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기술집단해체를 요구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 중에서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를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는 것이다.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에서 핵심내용은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인데, 그런 핵심내용을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면, 그것은 더 이상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 아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있는,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계산법에 기초한 비핵화방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최선희 제1부상이 지난 9월 9일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바 있고, 2007년 2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5차 6자회담 제3단계 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이행을 위한 2.13합의’에 따라 조선은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신고를 실행하고 핵사찰을 허용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면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을 합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일단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이 등가적 상응조치를 실행하면,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도 합의될 수 있다. 2018년 9월 19일에 채택,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바로 이것이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이다. 

 

오는 9월 하순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되면, 미국은 조선이 제시하는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석 달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원이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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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바꾼 풍경] 자유롭고 처우 좋은 IT 대기업에 웬 노조? 편견은 그만

네 번째 이야기 :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9-15 09:27:50
수정 2019-09-15 09: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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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결사체지만 이기적이고 불온한 듯 비칠 때가 많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청계시장에서 몸에 불을 붙였지만 오랫동안 우리나라 전역은 노조의 동토지대였다.

노조가 널리(?) 확산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부터다. 이전부터 일부 열성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있긴 했지만, 군사독재를 정치적으로 패퇴시킨 6월항쟁의 에너지가 ‘이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열망으로 분출됐다. 그해 여름 구로공단부터 울산과 거제까지 노조 깃발이 휘날렸다. 헌법에서 잠들어있던 노동3권이 부활했다.  

그로부터 3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조 조직률 즉, 전체 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의 비율은 10% 남짓이다.(2017년 말 현재 10.7%) 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모두 합친 숫자다. 최근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가 맞는지, 사용자가 누군지 등이 사회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파업한다고 비난받고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을 먹어도 노조는 꾸준히 성장했다. 비정규직이 대거 노조를 결성했고 정규직과 함께 노조를 구성해 힘을 키우거나 아예 정규직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지켜지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해,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조건을 줄였다. 라이더라 불리는 배달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 작지만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사나 IT업종 같은 그간 불모지였던 고임금 또는 신산업 업종에도 새로운 유형의 노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여성, 비정규직 등 이전에 상대적으로 노동의 주변부였던 이들도 빠르게 단결을 확장하며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노조의 확산은 노동자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직장문화도 바꿨다.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단지 ‘꼰대’라 불리는 상사나 선배의 일탈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 침해, 나아가 위법행위라는 인식이 분명해진 것도 변화의 증거다. 노조는 현장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산업계의 체질도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법규도 바뀌고, 사회전반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노조가 바꾼 풍경’에서 이를 짚어본다.  

*이 기획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개최한 2019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홈페이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홈페이지ⓒ사진 = 네이버지회 홈페이지 갈무리
 

2018년 4월 2일, 국내 1위 인터넷업체 네이버에 창립 19년 만에 최초로 노동조합이 생겼다.

사람들은 의아하고 신기해했다. 평균연봉이 7천만 원이 넘는다는데, 출퇴근 시간도 없고 맡은 일만 하면 퇴근해도 한다던데, ‘부장님’, ‘차장님’ 직급 없이 직원들끼리 서로 ‘님’이라고 편하게 부른다던데, 복장도 자유롭다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노동조합을 만든 거지? 하는 궁금증들이 꼬리를 이었다.

더구나 이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소속 ‘네이버지회’로 만들어진다고 하자 의구심은 더 커졌다. 40~50대 생산직 노동자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외치는 모습이 떠오르는 ‘강성’ 이미지 민주노총과 최첨단 판교 테크노밸리를 오가는 20~30대 IT개발자들의 모습이 쉬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회사 노조가 왜 화학섬유식품노조 밑에?’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네이버지회를 ‘귀족노조’로 매도하며 “배부른 투쟁”을 한다고 힐난했다. 또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격차를 심화시키려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신생노조에 적잖은 눈총이 쏟아졌다.

이런 온갖 의구심에도 네이버지회는 15개월 남짓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다. 차근차근 조합 활동을 하며 몸집도 키웠다. 네이버 본사의 노동자들은 물론 자회사와 계열사 내 다양한 직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지회 측에 따르면, 2019년 7월 현재 조합원수가 2000여 명을 훌쩍 넘었고, 이는 8000여 명 정도 되는 네이버와 관련사 전체 직원 수의 25~30%에 달하는 숫자라고 한다.

오세윤 전국민조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 지회장이 23일 성남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
오세윤 전국민조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 지회장이 23일 성남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김철수 기자

‘네이버지회’는 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노조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업계 대표기업 네이버라면 처우도 좋을 거 같은데 노조를 왜 만들었냐’는 삐딱한 질문에 오세윤 네이버지회 지회장은 이렇게 반문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상관없지 않나요? 노동자라면 당연히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서 “노동자가 있는 곳엔 다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에 자본과 노동이 동등하게 있게 된다”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니까, 그 안에서 좀 더 사람답게 지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직장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오 지회장은 회사와 노동자 간의 ‘투명한 소통’에 대한 요구 때문에 노조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직원들끼리는 수평적이다. 호칭도 ‘님’을 붙여 부르고 자유롭게 대하고 복장도 그렇다. 그렇지만 회사 내 의사결정 구조는 수직적인 게 있었다. 회사가 경영상에 큰 변화가 있거나 하면 직원들과 같이 상의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설명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해 노조를 만들게 됐다”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민중의소리

‘노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네이버 노동자들이 모인 익명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예전부터 심심찮게 올라왔다고 한다. 그러다 실제로 노조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오픈채팅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2018년 1월 오프라인서 첫 모임을 했다. 처음 모인 사람은 4명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사람씩 구성원이 늘어, 노조 출범 시점쯤엔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활동을 함께 했다고 한다. 

모인 이들 모두 ‘노조’, ‘노동운동’엔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노조를 만들겠다고 모였지만 기존 ‘노조’에 대해 가진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는 점도 비슷했다.  

오 지회장은 만화 ‘송곳’을 보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노조를 만들기로 하면서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파리바게뜨 청년 노동자들이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 노동 상담 창구)를 찾아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를 소개 받고 노조를 만든 이야기였다.  

오 지회장의 기억이 씨앗이 되어 네이버 노동자들 역시 ‘비상구’를 찾았고 화섬식품노조를 소개받았다. 이후 화섬식품노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조 출범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3개월여 만인 2018년 4월 2일 드디어 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오 지회장은 “앞서 파리바게트 노조와 일하면서 잘해온 것 같았다. 또 만나서 저희 현장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의견은 존중해줬다. 적극적으로 노력해 줘서 함께 하게 됐다”고 밝혔다.  

네이버지회가 별칭 ‘공동성명’을 인쇄해 조합원들과 함께 나눠 입은 티셔츠
네이버지회가 별칭 ‘공동성명’을 인쇄해 조합원들과 함께 나눠 입은 티셔츠ⓒ사진 제공 =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네이버지회의 등장이 물꼬 튼 ‘노조 문화’의 변화  

네이버지회 구성원들은 새로 만든 노조가 ‘노조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갇히지 않길 바라며, 활동과 투쟁에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다.  

오 지회장은 “노조가 워낙 이미지가 안 좋다. 언론에서 자꾸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보통 노조에 대해 교육받는 적도 없지 않냐”면서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다 보니, 노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리-브랜딩(re-branding)’이란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네이버지회 사람들은 제일 먼저 노조에 ‘별칭’을 붙여 친근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이들의 별칭 ‘공동성명’(共動成明)은 “함께 행동해서 네이버를 깨끗하게 성장시킨다”는 뜻으로 박상희 사무장이 직접 지은 것이다. 지회에서는 별칭을 티셔츠, 후드점퍼, 목걸이 줄에 인쇄해 굿즈(GOODS)로 만들고 쟁의행위 때 조합원들과 함께 착용하며 공동체성을 높였다.

노조 간부들은 누구나 다가오기 편하도록 ‘쟁의국장’, ‘교육선전국장’ 이란 호칭 대신 ‘staff(스태프)’로 일괄해 부르기로 했다. 현수막, 피켓, 노동조합 유인물 등 홍보물 제작엔 순화된 용어를 쓰고 딱딱하지 않게 디자인과 색깔에도 신경을 썼다. 지난 2월 20일 첫 점심시간 쟁의행위 때는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로비에 녹색의 현수막이 등장했다.  

(왼쪽)네이버지회가 지난 4월 24일 부분파업 당시, 영화 단체 관람을 하기위해 오리 CGV 영화관 내에 붙인 안내문
(왼쪽)네이버지회가 지난 4월 24일 부분파업 당시, 영화 단체 관람을 하기위해 오리 CGV 영화관 내에 붙인 안내문ⓒ사진 제공 =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또 보통의 집회 현장처럼 크게 민중가요를 트는 대신, 익숙한 동요 ‘둥글게 둥글게’를 틀었다. 조합원들은 손에 풍선을 들고 동요에 맞춰 8박자 구호를 외쳤다. 꿀벌캐릭터 ‘네이-비(NA-BEE)가 등장해 깜찍한 모습으로 현장을 오고 가며 분위기를 친근하게 만들었다.

지난 4월 24일 첫 부분 파업 때는 기나긴 집회를 하지 않고, 영화관을 대관해 조합원들이 좋아하는 최신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단체로 보기도 했다.  

오 지회장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노조 활동의 큰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디테일을 가다듬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기 위해 디테일을 보완해 나간다고 보시면 된다. 기존의 노조들이 좋은 것들을 많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것들을 보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급 단체 화섬식품노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IT분야엔 워낙 노조가 없다 보니, 네이버지회의 현장 경험과 설명을 화섬식품노조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귀담아듣고 있다고 한다. 오 지회장은 “저희가 홍보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피력한 부분들을 화섬식품노조에서 많이 수용해주셨다. 그런 부분은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네이버지회는 달라진 스타일로 활동을 이어가며 여러 가지를 이뤄냈다. 작년엔 노사협의회에 노동자대표로 참여해 IT업계 고질적 병폐인 포괄임금제를 폐지했고, 올해는 단체 협상을 맺으며 노사 간 ‘소통의 투명성’도 상당 부분 확보했다. 앞으로 회사는 경영상 주요 부분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동안 직원들에게 제각기 지급되던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객관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게 됐다. 그 외에도 업무 시간 외 SNS로 업무 지시 금지, 유급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확대, 노조 활동 보장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도 이뤄진다.  

네이버지회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층 로비에서 점심시간 동안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손에 풍선을 든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네이버지회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층 로비에서 점심시간 동안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손에 풍선을 든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사진 제공 사진 제공 = 네이버지회

변화는 이제 시작, 앞으로 남겨진 것들  

네이버지회는 오랫동안 노조의 불모지였던 IT업계에 새로 깃발을 꽂고 영역을 개척해, 더 많은 IT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게 물꼬를 텄다. 네이버 지회를 본 인터넷·게임 업체 노동자들도 스스로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회가 출범한 지 5개월만인 지난해 9월, 게임 회사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 노조가 생겼고, 그해 10월엔 카카오에도 노조가 만들어졌다. 2019년 7월 현재, 4개 노조는 각각 본사와의 단체협상 체결을 완료한 상태다.  

오 지회장은 “저희는 업계에서 괜찮은 편이고,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었다. 저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저희를 보고 용기를 내서 노조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저희도 연대해서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판교 인근 IT회사에 지회가 4개 생긴 것이다. 더 많은 노조가 생겨야 한다. 노조를 통해 노동권이 보장 되고 노동자들이 더 존중받게 되어야, 한국 IT산업도 성장하지 않겠나. 이게 네이버지회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민중의소리

네이버지회는 또 다른 측면으로도 연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네이버지회는 ‘계열사 노조’다. 네이버 본사 뿐 아니라 그에 딸린 자회사, 손자회사 등 40여 개 기업에 속한 노동자를 포괄하는 것이다. 실제로 20개 자회사, 손자회사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지회는 이 중 16개 회사와의 교섭권을 확보한 상태다.  

지회 측에 따르면, 본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제일 나은 상태이고, 자회사나 계열사로 갈수록 열악해진다고 한다. 또 각 회사들이 본사에 재무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종속된 상태라, 인사·처우 문제 등에 있어 본사의 입김이 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회는 계열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각 사측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처우의 노동자들끼리도 ‘노조’라는 한울타리 내에서 연대가 가능함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지분 100%를 보유한 손자회사 ‘컴파트너스’의 노동자들도 네이버지회 조합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회사는 네이버 검색광고 상담, 네이버 및 자회사 직원 업무 지원 등의 일을 한다. 소속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므로, 관련한 노동자 보호 조치와 휴식권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지회는 지난해 8월부터 컴파트너스 사측과 15회 넘는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회는 노조활동 보장, 리프레시 휴가 3년 근속에 3일 보장 등으로 요구사항을 축소했지만 지난 7월 교섭은 결렬됐다. 이 때문에 컴파트너스 소속 네이버지회 조합원들은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8월 19~21일 간 부분 파업을 진행했다. 향후에도 투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네이버지회 컴파트너스 스태프 한용우 씨는 “저는 손자회사 직원이지만 네이버지회 안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다. 지회 안에서 각 자회사, 손자회사 법인 별로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 나간다. 파업 때도 그랬고, 현재 진행 중인 컴파트너스 노동자 17인의 초과수당 미지급에 따른 체불임금 소송도 지회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지회장은 “계열사 노조이니, 자회사·손자회사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는 건 당연하다. 앞으로도 ‘우리 노조는 하나’라는 연대감, 끈끈함을 다 같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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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최강자 미국, '빨갱이 공포'를 내면화하다

[전쟁국가 미국·3강-⑨] 현존위험위원회(CPD)와 반공군사주의
2019.09.14 10:36:31
 

 

 

 

공화당의 반격과 CPD의 대응

1951년 1월 5일 아이젠하워는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현지 실태 조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같은 날 공화당 출신의 전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미군의 유럽 추가 파병은 "또 다른 한국전쟁을 초래"할 것이라며 나토 결성을 강력 반대한다.

후버는 공군과 해군력만으로 미국을 지킬 수 있다면서 유럽이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이후에 군사원조와 미군 파병을 단행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유럽을 잃는다 해서 우리 안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고 히스테리에 빠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도 이날 2시간 30분에 걸친 의회 연설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의회 승인 없이 미군의 해외파병이 가능한가? 둘째,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할 의도가 있다"는 증거가 있는가? 셋째, 유럽에 미군을 파병하면 오히려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 아닌가? 등이다.  

사실 해외 파병은 의회 승인 사항이다. 그런데 트루먼 행정부는 북한의 남침을 막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경찰 행동(police action)이라는 이유로 의회 승인 없이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그런 전례가 반복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미군의 유럽 파병은 오히려 소련을 자극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그는 "평화에 대한 최대의 현존하는 위험은 트루먼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의 행동, 특히 미국인 장군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통합 유럽군대의 창설"이라면서 대규모 미군의 유럽 파병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인플레, 미국의 병영국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양심으로 불리는 태프트 의원의 경고는 대중들의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다음 날인 1월 6일 부어리스는 워싱턴에서 CPD 회의를 소집해 "유럽에 대한 미 군사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후버 전 대통령의 제안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제안을 지지하는 편지가 의회에 쇄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월 7일 CPD는 유럽은 "소련이 노리는 다음 먹잇감"이라고 맞받아쳤다. 소련이 유럽을 먹는다면 이는 "2억 명, 그것도 대부분 고도로 산업화된 주민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공산 제국에 흡수되는 꼴"이라는 것이다. CPD는 "미국의 성공적 방어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를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트루먼의 유럽 파병을 적극 옹호했다.

1월 8일 트루먼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그는 "남한 침략은 세계를 단계적으로 접수하려는 소련 공산 독재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서유럽이 소련 침공에 무너지면 소련의 석탄 생산량은 2배, 철강 생산량은 3배로 늘어날 것"이며 "미국이 유럽을 외면하면 소련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의 자유국가들을 집어삼키면 미국으로서는 감당조차 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며 "그런 상황이 되면 소련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서는 제한전을 수행하는 한편 지구적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전쟁의 승리보다는 핵심 산업지역인 서유럽과 일본의 재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우리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그 원조는 이제 그들의 국방 건설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2월 7일 코난트는 전국 라디오 연설을 통해 "미국이 위험에 처해 있다. 분명히 군사적 위협이다. 우리는 즉각 국가적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은 의회와 행정부에 대해 현 위기 상황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을 청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상원 외교위와 군사위는 유럽 파병에 관한 합동 청문회를 개최한다. 2월 20일 청문회에서 마셜 국방장관은 미군의 유럽 파병은 이미 1950년 9월 트루먼 대통령이 군부의 조언을 받아 결정한 사항이라면서 4개 사단 증파 방침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에 대해 후버 전 대통령은 2월 27일 증언에서 "미군의 유럽 파병은 러시아와의 승산 없는 지상전, 그리고 미국 청년들의 학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의회에서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CPD는 3월 4일부터 매주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국민 직접 설득에 나선다. 국민들의 의식을 바꿔 의회 반대파들을 압도한다는 전략이다. 3개월간 지속된 방송 캠페인의 첫 번째 연사는 과학계의 거물인 바네바 부시였다.

부시는 이제 소련과의 대결에서는 "모든 군사력에서의 우위"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소련의 핵개발 이전까지는 미국의 핵 독점으로 소련의 군사행동을 억지할 수 있었으나 핵 독점이 무너진 이후에는 핵무기 및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NSC-68의 핵심 요지로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 독트린이 된다. 즉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다. 1996년 클린턴 행정부가 천명한 '전방위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는 바로 이러한 정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어 3월 11일에는 로버트 패터슨 전 전쟁부 장관이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책은 전면적이고 신속한 대외 군사 원조"라면서 아이젠하워가 주도하는 나토 결성을 전폭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18일에는 윌리엄 도노번 전 OSS 국장이 심리전 등 비밀공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PD는 라디오 연설 내용을 소책자로 발간하는 한편 '쫄면 죽는다(The Danger of Hiding Our Head)'라는 제목의 만화 10만부를 배포하고 '현대 무기와 자유인(Modern Arms and Free Men)'이라는 선전영화를 제작했다. 기업계는 이러한 선전 책자를 확대 보급했다.

CPD의 대국민 선전 작업은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 덕택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어리스 부의장은 자체 평가를 통해 전국 라디오 연설은 "CPD의 활동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국민들에게 우리가 처한 위험을 일깨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1951년 4월 5일 의회는 10만 미국 병사의 유럽 파병을 승인하는 한편 대통령에게 대외 및 군사정책에 대한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CPD의 대국민 선전이 이뤄낸 개입주의의 승리였다. 

맥아더 해임 

그런데 바로 이날 또 하나의 폭탄이 의회에서 터진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조셉 마틴 의원이 중국 본토 공격을 주장하는 맥아더의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중국 국민당 병사 80만을 동원해 중국 대륙에 대한 제2전선을 열자는 것이었다. 즉 한국전쟁을 중국대륙으로 확대해 중국 공산정권까지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그는 유럽의 운명은 아시아의 반공전쟁에서 결정된다면서 "공산주의 음모가들은 아시아를 세계 정복의 주전장으로 택했다. 우리 군인들은 이곳에서 유럽을 대신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곳의 외교관들은 여전히 말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극동에서의 전쟁에서 패한다면 유럽의 상실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맥아더는 1월 중순경 중국군을 저지하고 반격하기 위해 만주에 원폭 공격을 가하는 한편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를 동원해 중국 본토를 공격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제한전 방침을 굳힌 트루먼 행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유엔 결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단독으로 확전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유엔 결의에 참여한 유럽 국가들이 3차 세계 대전을 의미하는 확전에 동의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승리를 포기한 정부 방침에 분노한 맥아더는 자신의 복안을 야당에 알리면서 사실상 항명 행위를 한 셈이다. 4월 11일 트루먼은 맥아더 해임을 발표한다. 이로써 미국의 대외정책 논쟁은 개입주의 대 불개입주의에서 유럽우선주의 대 아시아우선주의로 바뀐다.  

전쟁 도중 지휘관을 교체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인데 유럽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군사원조를 한다? 대중들은 분노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트루먼은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애치슨 국무장관과 마셜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지금은 전면전을 치를 수 없다.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제한전 방침을 고수했다. 미국과 서유럽의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51년 당시 미군 지휘관들은 소련과의 전면전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맥아더 서한이 공개되면서 공화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태프트 상원의원은 한반도에서 유화정책을 버리고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선택은 "애치슨인가 맥아더인가...애치슨을 해임하고 국무부 내의 공산주의 동조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단합은 없다"고 역설했다. 

윌리엄 제너 상원의원은 "오늘날 우리나라는 소련의 지령을 받는 비밀요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우리는 즉각 우리 정부 내의 암적 음모 집단을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트루먼 대통령을 탄핵하고 우리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색출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닉슨은 트루먼 대통령을 견책해야 한다면서 '맥아더 해임은 세계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책'이라고 주장했다. 매카시는 트루먼에 대해 '개새끼(son of bitch)'라고 막말을 퍼부으면서 이제 온 나라가 붉게 물들 것이라고 개탄했다. 4월 12일 공화당 하원 정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뮌헨을 능가하는 거대한 유화책이 트루먼-애치슨-마셜에 의해 준비되고 있는가?"라고 공격했다. 

5월 3일, 이른바 맥아더 청문회가 시작된다. 트루먼의 맥아더 해임이 정당한가를 따지는 청문회였다. CPD는 교묘한 여론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부어리스는 맥아더 해임 논쟁으로 공산주의의 위험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라면서 여론전을 지휘했다.

우선 4월말 <뉴욕타임스>를 통해 무엇보다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다면서 유럽 우선이냐, 아시아 우선이냐는 부차적 문제라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특히 미국이 한국전쟁을 우선시 할 경우 유엔과 나토의 단합이 무너져 자칫 미국 혼자 반공 성전에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5월 14일부터 세 차례에 걸친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주장을 무력화시킨다. 첫 번째 방송에서 부어리스는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의 2인자인 클라크 아이첼버거 장군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의 대응은 적절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유럽 방위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리고 5월 20일의 두 번째 방송에서 결정적 한 방을 이끌어낸다. 이날 출연자는 맥아더의 절대적 지지자인 두 명의 반공 신부였고 그중 한 명은 매카시에게 빨갱이 사냥에 나서도록 권유한 에드먼드 월시 신부였다. 그는 맥아더와 장시간 대화를 나눴으며 맥아더가 "자신의 극동 전략이 아이젠하워의 유럽 동맹 결성을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이의 증언을 통해 맥아더의 본심을 뒤바꿔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사실상 논쟁은 끝이 났다. 맥아더는 내심 유럽보다는 아시아를 우선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나토 결성보다 한국전쟁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공을 위해 단합해야 하며 아시아 우선이냐, 유럽 우선이냐는 부차적 문제라는 CPD의 원론적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결국 의회는 "맥아더 해임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며 트루먼의 해임 조치를 추인했다. 

이로써 1951년 1월 시작된 미 대외정책의 대논쟁은 유럽에서의 반공을 우선하는 개입주의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또한 1951년 10월 10일 유럽에 대한 경제 원조를 군사 원조로 대체하는 내용의 상호안보법이 통과되면서 CPD는 자신의 모든 임무를 완수한다. 이 법은 사실상 CPD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군사 원조 위주의 상호안보법이 제정됨에 따라 1952년 미국의 대외원조는 73억 달러로 늘어난다. 1948-51년 마셜 플랜에 따른 연간 원조액 40억 달러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즉 서유럽에 대한 원조 확대로 이들 국가들을 미국 진영에 묶어둘 수 있게 된 것이다.  

1951년 말 CPD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으나 실제 해산은 1953년에 이루어진다. 첫째 이유는 너무 일찍 해산할 경우 소련 공산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CPD가 주창한 반공군사주의를 실천할 지도자로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을 돕기 위해서였다. 결국 1차 CPD는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해체된다.

그리고 CPD 의장 제임스 코난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독일 고등판무관으로, 부의장 트레이시 부어리스는 나토 국방보좌관 겸 해외조달(Offshore Procurement) 책임자로 발탁된다. 즉 NSC-68의 반공군사주의를 홍보했던 사람들이 이의 집행에도 참여한 것이다.

고등판무관은 미국의 독일 점령에서 민간 부문 최고 책임자로 재무장과 경제 통합에 관한 정책들을 담당한다. 해외조달 책임자란 나토 병력을 위해 유럽에서 생산된 군수물자를 미국 돈으로 구매하는 역할을 한다. 즉 유럽 기업에 일감과 함께 달러 수입을 제공함으로써 대서양동맹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또한 미 의회와 국민들의 퍼주기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1954년 유럽에서의 해외 조달 액수는 23억 달러에 이른다.

반공군사주의의 확립 

1947년 냉전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에서는 두 가지 빨갱이 공포가 성행했다. 하나는 공화당 우파가 유포한 것으로 '공산주의 일반'의 위협을 앞세워 국내의 반대파 척결에 나섰다. 아시아, 유럽 등 해외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은 그 다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권 민주당에 의한 것으로 '소련 공산주의'의 서유럽에 대한 위협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매카시 등의 빨갱이 사냥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나 NSC-68을 관철해냄으로써 반공군사주의 체제를 확립한다. 요컨대 미국의 두 정치세력 모두가 '빨갱이 공포'를 정책 수행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역사가 멜빈 레플러는 2차 대전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은 반공을 매개로 냉전 합의를 이룬다고 말한다. 즉 트루먼은 공화당이 자신의 대외정책을 지지해준다면 공화당 요구대로 국내의 이른바 '체제 전복 세력'과 맞서 싸울 용의가 있었다. 반면 공화당은 (국내에서의) 반공을 위해 마셜 플랜과 나토 창립, 독일 및 일본의 재건과 미군 해외 주둔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반공군사주의는 미 대외정책의 초당적 합의로 굳어지고 이 합의는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때까지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빨갱이 공포가 내면화됐다는 점이다. 1950년대는 미국의 국력이 역사상 최강, 세계에서 절대적 우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내면에서는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는 민방위훈련이 실시됐고 1957년에는 폭격기 갭, 1960년에는 미사일 갭 등 미국의 군사력이 소련에 뒤진다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환기됐다. 바로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미국의 군사주의를 유지, 확대하는 자양분이 됐다.  

미국은 나토 창설 당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그 이유로 들었다. 또한 독일이 통일될 당시 소련에게 나토가 단 1인치라도 동쪽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동유럽 거의 모든 나라를 나토에 가입시켜 러시아를 포위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해체에 나토를 동원했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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