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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변창흠 “서울 보편적 주택 공급 우선”…‘공공자가’는 속도조절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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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익 중 일부 환수 등 통해
많은 양의 추가 주택 공급 가능”
공공 주도 정비 사업 확대 의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사진)가 “서울에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자가주택 도입 및 임대주택 확대와 관련해선 “공급 방법 중 하나로 실행하더라도 일부가 될 것”이라며 “보편적인 주택 공급안 마련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변 후보자는 14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공급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관으로 취임할 경우 공급 확대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변 후보자는 개발이익 중 일부를 공공이 환수하는 방식으로 서울에 추가적인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용적률을 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면 많은 개발이익 내지는 특혜가 발생하게 된다”며 “이를 공공이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면 서울에 많은 양의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변 후보자는 “이를 위해선 개발이익 환수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를 공론화한 뒤 구체적인 공급 방안을 제시하겠다. 연구도 많이 해왔고, 방법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자가주택·임대주택 확대엔
“일부 도입될 공급 방식 유형일 뿐
서울보다 수도권 신도시에 적합”
 

변 후보자의 발언은 정부가 ‘8·4 공급대책’을 통해 제시한 공공재건축·공공재개발 등 공공이 주도하는 정비사업을 서울에서 더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8·4 대책에서 공공재건축·공공재개발에 용적률의 큰 폭 상향 및 각종 금융·제도적 특혜를 부여하되, 이를 통해 추가되는 개발이익 일부를 환수해 공공주택 등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변 후보자는 이날 오전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퇴임식에서 “집값 안정을 위해선 결국 서울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지론이 8·4 대책을 통해 실제 정책화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변 후보자가 서울에 추가적인 주택 공급 방침을 명확히 하면서 공공재건축·재개발의 규모가 현재 계획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재건축으로 5만가구, 공공재개발로 2만가구의 주택을 서울에 공급한다는 게 현재 정부 계획이다. 공공재개발의 경우 정부에 사업 희망 의사를 밝힌 후보지만 70곳이라 사업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공공재건축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규제완화를 통해 사업 활성화를 유도하는 게 가능하고, 역세권 고밀개발 역시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보다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공공자가주택 등 변 후보자가 평소 소신으로 밝혀온 사업들의 경우 당장 도입을 추진하기보단 일정 부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변 후보자는 “공공자가주택 역시 공급 방식의 한 유형일 뿐이고, 도입하더라도 전체 중 일부가 될 것”이라며 “서울보다는 수도권의 신도시에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보편적인 주택 공급안이 먼저 마련된 뒤에 공공자가주택 도입이나 임대주택 확대 등의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인사청문회 전이라도 이 같은 계획들을 국민들께 말씀드릴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방배동 아파트 구매 당시 대출 문제나 세종대학교 재직 시절 문제와 관련해 그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충분히 설명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012150600015&code=920202#csidxfefd02b61db8b339cf34763d4fe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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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벌금, 기업한테는 껌값...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인터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국회 농성 강은미·김미숙·이용관

20.12.15 07:35l최종 업데이트 20.12.15 07:35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나흘째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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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2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인터뷰 시간에 맞춰 텐트에서 나왔다. 검은색 털모자에 연보라색 목도리를 매고 두툼한 바지와 겉옷을 껴입은 그는 살짝 지친 얼굴이었다. 

이날로 단식 나흘째. 김 이사장은 "머리가 아프거나 그런 건 없는데 그냥 힘이 없다,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도 "아직 심하진 않은데 기운이 없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뒤늦게 온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씨익 웃으며 "저는 괜찮다"고 했다.

김미숙 이사장의 다른 이름은 '김용균 어머니', 이용관 이사장은 '이한빛 아버지'다. 김용균은 비정규직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고, 이한빛은 정규직 PD였음에도 극심한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하다 세상을 등졌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두 사람은 지난 11일부터 강은미 의원,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국회 본청 현관 쪽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곡기도 끊었다. 물에 효소를 타서 수시로 마시고, 약간의 소금만 섭취하고 있다.


전날 서울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인터넷에는 모처럼 펑펑 내린 눈을 반기는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김미숙 이사장은 "사고 이후부터는 그런 게 별로 감흥이 안 온다"며 "그냥... 제 자식이 죽고 나니까...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아프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용관 이사장도 "어제 셋이 15분 정도 함박눈을 맞으며 걸었다"며 "옛날 같았으면 참 설렐 텐데... 저희는 이제 날이 너무 좋으면 쓰라리고, 명절이나 좋은 날에 더 아프다"며 울먹였다. 김미숙 이사장이 고개를 떨궜다. 강은미 의원도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반갑고, 가장 설레는 소식은 중대재해법 이야기다. 이용관 이사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국회 내 처리'를 약속한 것을 두고 "힘들지만 뭔가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강은미 의원 역시 "이 대표가 처음으로 (법안 처리) 시기를 얘기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봤다"며 "국민의힘도 임이자 의원이 오늘 이종배 정책위의장을 만나 논의한다더라"고 말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 방문한 이낙연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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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오마이뉴스>와 약 1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끝낼 무렵, 이낙연 대표가 예고 없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민주당 우원식·오영환·이탄희 의원도 연달아 찾아왔다. 모두들 세 사람을 바라보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관련 기사 : 이낙연 이어 주호영도 농성장행... 중대재해법 탄력받을까). 

그때마다 강은미 의원은 "김용균 어머니, 이한빛 아버지가 연말은 가족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용관 이사장이 직접 얘기할 때도 있었다. 이들의 소원이 이뤄질까. 

"다들 말렸지만...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 김미숙·이용관 두 분 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가족들이 단식을 반대하진 않았나.

김미숙 : "저는 워낙 주장이 강해서 그냥 말 안 하고 왔다. 어차피 알면 속상해할 것 같아서... 그런데 단식을 하려니까 아예 TV에 다 나오더라. 그래서 금요일(11일) 기자회견 하고 저녁에 옷 같은 것 챙기러 집에 갔을 때 '단식하러 간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냥 방문 닫고 들어가더라. 속상하죠. 자기가 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그냥 하니까."

이용관 : "10일에 잠깐 외출했을 때 (부인에게) 얘기했다. '다른 어머님이나 아버님들은 지방에 계시고, 김미숙님 혼자 들어갈 수 없지 않냐'고 했더니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는데, 왜 나이 든 당신이냐'고 조금... 나중에는 결국 (단식) 들어간다는 내 의지가 강하니까(이해했다)."
 
▲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 촉구하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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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결심했나.

이용관 : "정기국회가 끝난 9일이었다. 임시국회 안에라도 처리하게 하려면 뭔가 투쟁이 필요한데, 단식을 해서 동력을 높여야겠다는 판단을 저랑 김미숙님이 한 거다. 제일 문제된 건 저였다. 나이가 많다고. 우리 내부에서도, 산재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도 그렇고, 중대재해법 제정운동본부에서도 그렇고. 제가 56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예순 다섯 살이다. 저는 우리 아들 죽고 나서 간 농양으로 중환자실까지 갔다. 그 상황을 아는 지인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렸다(눈물). 누군가 하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 만류를) 그냥 뿌리치고 제가 들어왔다."

김미숙 : "저 안(국회 본청)에서도 시위했는데, 아예 성사될 가능성이 안 보였다. 내년에 선거도 있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 만드는 건 아예 물 건너갈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다."

- 정치인들이 그래도 좀 찾아오는 것 같던데.

김미숙 : "(중대재해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사는 되게 많이 표명했는데, '언제까지'라는 게 안 정해지니까 '말뿐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서도 '하겠다'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야 하는 거니까, 우리는 더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거죠."

이용관 : "법안 발의할 때부터 금방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길 희망했는데... 이대로는 (논의가) 실종될 것 같아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두 분 다 아들이 사망한 후 계속 싸워왔고, 2년 전 김용균법 때도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다시 중대재해법 때문에 농성하는 상황이 속상할 것 같다. 그런데도 이 법을 만들기 위해 단식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미숙 :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위험의 외주화' 막겠다고 법을 통과시켰는데, 죽음을 거의 막지 못하고 있다. 산안법은 원청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안은 원청 책임도 묻고, 공무원 책임도 묻고, 일반 사회에서 사고 났을 때(시민재해) 책임도 물으니까. 또 (산안법상) 벌금이 너무 적으니까 계속 (노동자들이) 죽어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수위를 많이 높여서 법을 만들자는 거다."

이용관 :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면, 한국 기업의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산재가 획기적으로 금방 줄진 않겠죠. 하지만 최고책임자까지도 처벌을 받으니까 이제는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기업의 가치, 철학 등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건 산안법만으로는 할 수 없다."

"기업 문화가 변해야... 산안법만으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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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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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 현재 강은미 의원안말고도 박주민 의원안, 임이자 의원안에 오늘 박범계 의원안까지 나왔다. 큰 틀에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데, 꼭 빠져선 안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김미숙 : "원청 처벌과 벌금이나 징역형 수위를 높여서 (책임자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돈 몇 푼 수준이었고, 징역도 3년 이하라 다 빠져나갔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사고 나면 (산재 여부를) 그동안 유족이 밝혔잖아요? 회사가 입증하도록 한 부분도 꼭 있어야 한다."

이용관 : "통계에 따르면, 산재 관련 벌금이 평균 450만 원 정도다. 기업한테는 껌값이다. 안전장치 설치비용보다 훨씬 적다. 또 산안법은 안전관리 책임자, 즉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만 처벌하는데 사실 그 사람도 기업의 구조 속에선 희생자다. 예를 들면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안전관리소장만의 책임이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용균이만 해도, 2인 1조로 일했으면 안 죽었다. 사고가 난 후에도 몇 시간씩 방치됐다. 이런 구조에서 무엇이 변할까." 

강은미 : "산재(예방에)는 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경영자와 원청의 책임을 묻는 부분은 후퇴할 수 없다. 또 가습기 살균제처럼 인체에 유해하다는 실험결과가 나왔음에도 기업이 그 결과를 속이고 사용해서 수백 명이 죽고, 수만 명이 평생 장애를 갖고 사는 경우가 있다. 과연 해외 사례처럼 해당 기업에 전년도 매출액의 10% 정도를 벌금으로 부과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제가 발의한 법안 6조 2항 내용인데) 정말 필요하다."

- 다른 쟁점 중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강은미 의원안은 손해액의 3~10배)'다. 임이자 의원안은 아예 이 부분을 뺐다. 

김미숙 :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이용관 : "'이렇게 제대로 안전장치 안 하고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기업은 망한다'고 해야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면 안 바뀐다. 벌금 몇 푼으로 손해 봤다 수준이 아니라 '잘못하다간 문 닫겠다' 할 지경까지 가야 바뀐다."

- 민주당 쪽에선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 소상공인·자영업자 제외' 얘기도 나온다. 

강은미 : "접근방식이 아쉽다. 지금까지 어떤 법도 원안대로 통과된 적 없다. '이 법 만들자'고 논의하면서 조정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으니 제정하면 안 된다'? 왜 이렇게 다루는 건가. 가령 박주민 의원안에는 제 법안에 없는 인과 추정 부분이 있다. 또 임이자 의원안은 사망사고 발생시 사업주를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수위가 가장 세다. 이런 것들을 조정하면서 가면 된다."

이용관 : "50인 미만 사업장 문제 같은 경우, 거기서 사망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그래도 50인 미만이든, 30인 미만이든 사업장에 준비기간을 주기 위해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시행을 유행한다면 양보할 수 있다. 수십 년도 참았는데 6개월을 못 참겠나."

김미숙 : "하지만 (시행 유예기간을) 4년까지 간다는 건, 안 하는 것과 똑같다. 그 부분에서 박주민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세월호도 산재도 우리 일... 바꿔보려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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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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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성향 정부에서 오히려 시민운동이 주목받기 힘들다고도 한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서 농성이 외롭진 않은가.

강은미 : "그래도 김용균 어머님이 잘 싸워 주셨고,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라 '과연 지금 노동자들은 어떤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또 언론이 계속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맙다. 시민들도 정말 많이 응원해준다."

이용관 : "저희가 국회에서 농성도 하고, 단식까지 하니 (정치권에서 법 제정을) '안 하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심지어 국민의힘도 하겠다고 했다. 다만 국민들은 정기국회에선 될 줄 알았는데, (미뤄져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계속 투쟁하면서 상황을 알리니까 연이어 지지 성명들이 나오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촛불도 든다고 한다. 이렇게 열심히 지원해주니 고맙고 힘이 된다."

- 아들이 죽고 난 뒤, 힘들게 싸워왔는데 다시 또 단식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싸워나간다면 바뀔 수 있다고 믿는가.

김미숙 : "바꿔내려고 하는 거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고. 매년 11만 명이 (산재로) 다치고 죽는다. 집계된 게 이 정도인데, 안 된 건 (몇) 배가 되지 않을까. 20년 넘게 산재공화국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해온 걸 정치인들이 바꿀까? 나라가 방치해왔는데 (이제 와서) 할까? 절대 안 한다. 국민들이 나서야만,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야만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생각에 나섰다. 저도 우리 가족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제 가족을 지키지도 못했다. 주변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기 것만, 자기 가족만 살피지 말고 우리나라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마나 안전한지를 보고, 언제라도 죽거나 다칠 수 있으니 이런 것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용관 : "제가 죄책감을 느끼는 게 세월호 참사가 우리 아이보다 2년 전 일이다. 그때 한빛이 첫 월급의 절반가량을 416연대 후원금으로 냈다. 아이가 죽기 전까지는, 세월호는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니까 우리 일이더라. 

김미숙 : "우리 일이에요."

이용관 : "제가 살아보니까 우리 같은 일이 남의 일 같다가 나의 일이 되더라. 국민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같이 해주셔야 한다고 부탁드리고 싶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대오각성해서 (법 제정을) 해주진 않을 거다." 

강은미 : "사람한테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 저야 몇 끼 좀 굶는 거지만, 노동자들이 한 명이라도 죽지 않도록 빨리 이 법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다. 여러 차례 양당에서도 입장을 표명했으니 이제 그 논의를 좀더 구체적으로, 앞당겨서 하자고 얘기하고 싶고, 결국 이 사회를 바꾸는 건 국민들의 마음이다.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는 만큼 하루라도 (법 제정을) 더 앞당길 수 있다. 댓글, SNS 등으로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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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산 넘은 ‘문재인표 권력기관 개혁’, 어디까지 실현됐나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2-14 23:14:40
수정 2020-12-14 23: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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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권력기관 개혁 공약, 어디까지 실현됐나
문재인 대통령 권력기관 개혁 공약, 어디까지 실현됐나ⓒ민중의소리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큰 진통 끝에 조만간 출범한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였던 ‘권력기관 개혁’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과거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였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에 맞게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3대 권력기관의 개혁이 큰 틀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견제 장치 미흡 등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미완의 권력기관 개혁 과제도 남아있다.

■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완성
법무부의 탈검찰화도 속속 이뤄져

문 대통령의 숙원이자 검찰개혁이 상징으로 꼽히던 공수처는 우여곡절 끝에 이르면 내년 초 출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공수처법 개정안이 처리되면서 야당의 비토권 남용을 막을 수 있게 되면서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약 7천3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까지 해당되며,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판·검사, 장성급 장교와 3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와 가족 등이 수사대상에 오른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공수처에 이양해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막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내 식구 감싸기’ 수사로 늘 논란이었던 검사가 독립된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게 된 점이 주목된다.

공수처 설치와 함께 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이 주어지고 검사의 직접수사권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부패범죄 등 일부에 국한된다. 법무부는 2019년 사건 기준으로 이들 대통령령이 시행되면 검사 직접수사 사건이 5만여 건에서 8천여 건으로 84% 이상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 개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적극 이행되고 있다. 일단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 3명 모두 검찰 출신이 아니었다. 검사만 보임하던 범죄예방정책국장에 일반 공무원 출신을 임명하는 등 문재인 정부는 법무부 실·국·본부장에서 검사 수를 대폭 줄여나가기도 했다.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 억제’ 공약도 이행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0개 기관 64명에서 35개 기관 51명(올해 2월 기준)으로 5개 기관 13명을 감축했다.

나아가 검사인사위원회 심의·의결 사항으로만 존재하던 검사 인사에 관한 기본 원칙을 2018년 법제화함으로써 검찰인사위원회 심사를 내실화하고, 2019년 검사징계법 개정으로 검사 징계 실효성을 확보했다. 대검 고위간부 감찰을 위해 꾸려진 특별감찰단도 직제화되면서 올해 감찰부에 추가된 것도 주목된다. 최근에는 검사징계의 ‘공정성’을 위해 법무부 장관의 징계위원 임명권을 제한하는 대신, 외부 인사들에게 징계위원 추천권을 나눠주는 검사징계법 개정안도 통과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모두 검찰 인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연결된다.

반면 문 대통령이 검찰 인사 중립성·독립성 강화의 일환으로 독립된 검찰총장후보위원회를 구성해 검찰총장 임명에 권력개입을 차단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법무부에 두고 법무부 장관이 위원과 위원장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어, 9명 가운데 과반수인 5명이 장관의 의중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입법은 이뤄지지 못했다.

문 대통령의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 의무화’ 공약은 추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올해 7월 발간한 ‘2020~2024년 성과관리 전략계획’ 보고서에서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 법제화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 사무 전반을 감독하면서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한 정부조직법, 검찰청법의 취지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검찰의 외부 견제기능 강화는 미완
검찰 수사에 대한 권력기관 방해는 견제

검찰의 외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공약들도 있지만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재정신청 대상을 현행 고소사건뿐만 아니라 고발사건까지 확대 적용하고, 공소유지변호사 제도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인데, 국회에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정신청 제도는 고소인이나 형사소송법이 정한 일부 범죄의 고발인이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심사를 요청하는 제도로써 기소독점권을 지닌 검찰을 견제하는 장치다. 지난해 법원의 재정신청 인용률은 단 0.32%에 불과했는데, 재정신청을 인용해도 재정신청 사건 공소유지검사가 구형의견을 제출하지 않거나 무죄를 구형하는 경우가 많아 제도 개선이 요구됐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공소유지변호사 제도의 부활이다. 공소유지변호사 제도는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인 1954년부터 도입됐으나,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재정신청 대상을 일부 확대하며 검사가 공소유지를 하도록 변경돼 사라진 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하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불기소를 통제하기 위해 검찰시민위원회를 법제화한다는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소법정주의란 법률에 규정한 일정조건을 충족하면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검사에게 기소·불기소의 재량을 허용하는 기소편의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입법이 필요한 건데 아직 안 된 것으로 안다”며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담당하도록 한다든지, 검찰의 기소 기간을 규정한다든지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나 기소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제도로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검찰시민위원회는 현재 대검찰청 예규를 근거로 5개 고등검찰청에 설치돼 있다. 하지만 검찰시민위원회가 검찰 소속에 있어 위원들의 판단이 검사의 입장에 귀속돼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검찰시민위원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위원회 결정에 대한 구속력 부여 등을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된 적도 있었지만, 이 역시 처리되지 못했다.

검찰 개혁의 마지막 공약은 권력기관의 수사방해 행위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등 국가비밀 보유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부당 거부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때에는 청와대 압수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2월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청와대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와 공무상 비밀이 있는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 거부 규정이 명시된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불승인한다는 내용의 사유서를 특검에 제출하면서다. 법원도 청와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협조를 잘 하는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14일 옵티머스·라임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의 엄정한 수사에 어느 것도 성역이 될 수 없다”며 “빠른 의혹 해소를 위해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다만 법적 제재 등은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정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의 통과를 위해 윤호중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 등이 항의하고 있다. 2020.12.08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의 통과를 위해 윤호중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 등이 항의하고 있다. 2020.12.08ⓒ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 경찰 개혁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전국 확대 입법화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는 미흡

내년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뤄지면서 경찰 개혁의 핵심 공약도 달성됐다.

자치경찰제는 검찰로부터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게 되면서 강화·집중된 국가경찰 권력을 지역적으로 분산하는 경찰 개혁 방안으로 제시돼왔다. 국가경찰은 경찰청장, 자치경찰은 각 지자체에 소속된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하지만 경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 민주적 통제 장치 강화와는 거리가 멀어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시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일단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한 지붕 아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치경찰 조직을 따로 신설하지 않고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조직을 일원화한 것이다.

게다가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의 수사’의 경우 경찰청장이 국가수사본부의 수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게 한 것도 경찰수사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천여 명에 달하는 정보경찰을 그대로 뒀을 뿐만 아니라, 정보경찰의 권한 역시 축소되지 않아 권력분산이라는 개혁 취지와는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 역시 미흡하다.

앞서 경찰개혁위원회는 2017년 경찰위원회를 총리 소속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으로 설치해 인사권 및 감찰요구권 등을 부여해 실질화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현재 국가경찰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존 경찰위원회에 ‘국가’란 명칭만 추가됐을 뿐 현재의 자문기구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그외 문 대통령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실질수사권을 강화해 사실상 ‘노동경찰’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근로감독관은 노동 관련 문제를 다루는 특별사법경찰로, 형사소송법 및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16개 노동 관련법령을 위반한 범죄에 대해 수사권한을 가진 공무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근로감독관 수가 빠르게 증가하긴 했지만 근로감독청 등 전담부서 신설이나 근로감독관의 현장 불시점검 의무화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근로감독관과 사용자 간 유착관계 근절과 법에 포함돼있지 않은 노동 사각지대에 대한 수사권 등도 요구된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0.11.27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0.11.27ⓒ정의철 기자

■ 국가정보원 개혁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 전면 폐지와
국정원의 수사기능 폐지 및 대공수사권 경찰에 이관 입법화
반쪽 개혁에 그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해 권력을 분산하는 국정원법 개정안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 정보’, ‘대공’, ‘대정부전복’ 등 불명확한 개념을 삭제하면서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폐지한 것도 특징이다. 그 대신 ▲국외·북한에 관한 정보 ▲방첩(산업경제정보 유출, 해외연계 경제질서 교란 및 방위산업침해 등 포함), 대테러, 국제범죄조직 정보 ▲내란·외환죄 정보 ▲사이버 안보와 위성자산 정보 등으로 직무 범위를 재규정했다.

이를 두고 ‘반쪽 개혁’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권의 원만한 이관과 안보 공백 방지를 위해 대공수사권 이관에 3년의 유예기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대공수사권이 남아있는 가운데 국외 및 북한에 관한 정보 등을 수집하도록 하면서, 정치개입이나 민간인 사찰의 명분이 되어온 ‘국내정보 수집 근절’이라는 중대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보안법과 테러방지법 적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여지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만 정치개입 등을 할 경우 받을 수 있는 형사처벌을 강화한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에 부합한다. 문 대통령은 ‘불법 민간인사찰, 정치와 선거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4대 공안 범죄에 연루·가담한 조직과 인력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 및 처벌 형량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이번에 개정된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하기 위해 정치 관여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을 수집·분석하기 위한 조직 설치를 금지하도록 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단체, 정치인을 위한 기업의 자금 이용 행위를 금지하는 등 정치개입 금지 유형도 7가지로 확대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형사처벌 규정이 없는 검찰과 비교하면 국정원의 경우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국정원의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해 국정원 직원의 불법 감청 및 불법 위치추적 등 행위를 금지토록 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근거도 신설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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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투쟁, 단일화된 투쟁체 만들어 가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2/15 09:51
  • 수정일
    2020/12/15 09: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범민련 30돌 기념행사 마친 이규재 의장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0.12.14 15:29
  •  
  •  수정 2020.12.14 23:36
  •  
  •  댓글 0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를 마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10일 오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조천현]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를 마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10일 오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조천현]

“미국놈들 서울 한복판에 놔두고 평택에다 놔두고 통일할 수 있나? 그러니까 미군철수투쟁은 제 일차적인 과제다. 이제는 더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거다. 시기적으로는 이제는 해야 된다.”

백발의 원로가 된 이규재(84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충무로 인근 사무실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반미투쟁’을 강조했다.

지난달 21일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를 치르며 내놓은 세 가지 사업제안, △반미투쟁의 전국화, 대중화, 상설화 △8월 14,15일 4차 조국통일촉진대 개회 개최 △(가칭)민족자주와 민족단합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 역시 모두 반미투쟁으로 귀결된다.

이적단체 굴레를 쓰고 있는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을 2005년부터 맡고 있는 그는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대감을 갖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기대를 안 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민주정부 좀 들어선다고 해 가지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리 없고, 한미동맹이 파기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미국놈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다”라는 논지다.

나아가 “그동안에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게 무슨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악화, 강화됐다. 그래서 일제 때 치안유지법에 비교도 안 되게 더 악법이 됐”다며 “그게 온전하게 미국놈들의 국가 이익을 보전해주는 거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여러 단체와 공동으로 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월례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 남측본부는 여러 단체와 공동으로 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월례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그는 ‘반미투쟁을 전국화, 대중화, 상설화’하고 ‘전국적, 상설적 반미공동투쟁체 건설’을 주창한데 대해 “우리가 하고 있는 미대사관 앞에서의 반미자주투쟁도 34개 단체가 모여서 공동으로 하고 있는 거고, 또 부산이나 광주, 창원 거기서도 다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반미자주행동이라고 이름 붙여서 한 달에 한 번씩 투쟁들을 이미 하고 있다”며 “이제 전국화, 대중화, 일상화 하고 그것을 모아서 단일화된 투쟁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내년 8월 14,15일에 ‘4차 조국통일촉진대회’를 개최하는데 대해 “지금 여러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진행되는 반미자주화운동을 모아내고 총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거”라며 “정세라는 게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것이니까 그때그때 정세에 맞는 반미자주화 운동을 개발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종합적인 목적이 있는 거”라고 설명했다.

이번 세 가지 제안의 핵심인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대해서는 “지금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존재하는 조건에서 그게 실현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라며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자는 의미도 있다”고 현실을 직시했다.

그러면서도 “연석회의를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제 단체들에 대한 어떤 하나의 각성제 같은 역할도 있다”거나 “민족의 동질성 같은 것도 회복해 나가고 하는 아주 다목적인 행사가 될 것”이라는 등 여러 포석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딱 ‘요거다’ 라고 우리가 지금 내놓을 건 마땅치 않다”며 “지금 구체적인 경로 같은 것은 계속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인터뷰에 배석한 원진욱 사무처장에 따르면, 이규재 의장은 민족진영 대표들을 만나 연석회의 개최 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줄 것을 설득 중이다. “연석회의 제안을 범민련이 직접 나서서 하기 보다는 종교나 시민사회단체, 특히 민족운동단체가 주축이 돼서 제안하고 나올 수 있도록, 지금 약속잡고 만나고 계신 중”이라는 전언이다.

이규재 의장은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후임을 물색 중이라며 “지금 몇 사람을 물색해서 교섭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어쨌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젊어져야겠다는 거고, 그 다음에는 대중운동, 노동운동에서 검증된 그런 사람”을 꼽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딱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한 건 전부 남북이 합의한 것을 이행하자는 수준 이상도 아니다”며 “갈라진 민족이 다시 통일하자고 하는 통일운동인데, 범민련 운동 30년사에서 범민련 운동한다고 하면서 감옥살이 살고 그런 게 수 백년 될 거다”고 돌아보고 “우리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사실 가정사 같은 것, 아이들 교육문제 같은 것 제쳐놔 가면서 통일운동하고 감옥살고 했으니까 참 헌신적으로 한 거다”라고 회고했다.

또한 “의사결정기구인 공동의장단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목숨 걸고 사수한다면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희생을 치르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실로 옮긴다. 그걸 실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동의장단회의는 지난 30년간 빠짐 없이 진행했지만 올해는 연기된 상태로 처음으로 열리지 못했다.

눈이 나빠진 것 외에는 건강하다는 이규재 의장은 ‘남기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고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서 발표한 세 가지 제안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별도의 답변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과 서면답변 일부이다.

“통일운동하고 감옥살고 했으니까 참 헌신적으로 한 거다”

이규재 의장과의 인터뷰는 10일 오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원진욱 사무처장이 배석했다. [사진- 조천현]
이규재 의장과의 인터뷰는 10일 오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원진욱 사무처장이 배석했다. [사진- 조천현]

□ 통일뉴스 : 지난달 21일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생각대로 잘 됐는지? 큰 행사를 치른 소감은 어떤지?

■ 이규재 의장 : 행사 치르고 나서 코로나 거리두기가 격상됐다. 그래서 “운이 좋다” 그렇게 이야기들 한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다.

이게 그냥 보통 해가 아니라 30주년이다. 그러니까 사람도 좀 많이 모여서 축하하는 잔칫집 같은 분위기, 범민련을 널리 알리는 계기, 여러 가지로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는 거 100명이라고 한정돼 있어서 사람도 못 모였지, 식사대접도 못 해서 그냥 떡 한덩어리씩 드렸다. 우리가 떡 한덩어리씩 나눠준 것은 통일뉴스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배운 대로 한 거다.

식사라도 같이하고 술이라도 한잔하고 하면서 잔칫집 분위기도 띄우고 여러분들한테 우리가 해온 것에 대해서 잘 했다든, 어디가 잘못됐다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든 조언도 듣고 하는 참 좋은 계기였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지 않나. 그래서 아주 불만스럽다. 그러나 뭐 어쩔 수 없는 거다.

□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회사를 하면서 ‘희생과 헌신의 역사’이자 ‘간고한 투쟁의 역사’라고 요약했는데, 30년을 돌아본다면?

■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갈라진 민족이 다시 통일하자고 하는 통일운동인데, 범민련 운동 30년사에서 범민련 운동한다고 하면서 감옥살이 살고 그런 게 수 백년 될 거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할 때 56개 단체 695명의 민족대표가 모였는데 김두봉 선생이 사회 보면서 여기 모인 대표들 감옥산 걸 모두 보태면 746년 9개월에 달한다. 그래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헌신성이라고 하는 건 남들이 해줘야 하는 얘기고 우리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사실 가정사 같은 것, 아이들 교육문제 같은 것 제쳐놔 가면서 통일운동하고 감옥살고 했으니까 참 헌신적으로 한 거다.

아마 90년 범민련 결성된 이후에 95년 대탄압, 중간중간 탄압, 2009년 전국적 탄압 이런 것 저런 것 다 보태 보면 보통사람 상식 가지고는 이해가 안 된다.

5천년 같이 살아온 민족이 외세에 의해서 갈라진 건데, 그거 다시 통일하자고 하는데 그게 뭐 잘못됐나. 우리가 한 건 전부 남북이 합의한 것을 이행하자는 수준 이상도 아니다.

“나는 기대를 안 했다”

이규재 의장은 이른바 민주정부 하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나 범민련 남측본부 합법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진 - 조천현]
이규재 의장은 이른바 민주정부 하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나 범민련 남측본부 합법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진 - 조천현]

□ 범민련 입장에서는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이적단체의 굴레를 벗는다든지, 국가보안법이 완화 내지는 폐지된다든지 뭔가 환경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을 텐데, 잘 안 됐던 것 같다.

■ 나는 기대를 안 했다. 왜 그런가 하면, 민주정부 좀 들어선다고 해 가지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리 없고, 한미동맹이 파기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미국놈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다.

지금 “국가보안법 제정된 지가 72년 됐다. 48년 12월 1일 만들어졌다” 모두들 이렇게 이야기들 하지만 사실 국가보안법의 연원을 따지고 보자면 1925년 치안유지법부터 시작된다.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놓은 게, 국가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왜놈들의 식민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조선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그 다음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공산주의자들, 그걸 탄압하기 위해서 만든 거다.

그래서 치안유지법으로 조선 독립운동하던 애국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이 엄청난 탄압을 받았는데 45년 해방되고 미국놈 들어 와서 미국놈들이 그대로 물려받은 거 아닌가? 통치하는 행태만 좀 달라진 거다. 왜놈들이 총칼을 들고 채찍을 들고 직접 통치했다면 미국놈들은 교묘하게 간접통치한 것뿐이다.

그동안에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게 무슨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악화, 강화됐다. 그래서 일제 때 치안유지법에 비교도 안 되게 더 악법이 됐는데, 그게 온전하게 미국놈들의 국가 이익을 보전해주는 거다. 나는 기대 안했다.

□ 지금 현재 활동하는데 제약이나 어려움은 없나?

■ 글쎄 지금은 크게 어려움은 없다. 보이지 않게 무슨 뭐가 있겠지만 눈에 보이게 그런 건 없다.

“미군철수투쟁은 제 일차적인 과제다”

지난달 21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서 이규재 의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조천현]
지난달 21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서 이규재 의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조천현]

□ 30주년 기념식에서 세 가지 사업제안을 제출했다. 30주년이라면 잔치 분위기도 있고,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잘 해보겠다고 제시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제안 세 가지를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같은 세 가지 사업제안을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제안한 배경이 있다면?

■ 미국놈들 서울 한복판에 놔두고 평택에다 놔두고 통일할 수 있나? 그러니까 미군철수투쟁은 제 일차적인 과제다. 이제는 더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거다. 시기적으로는 이제는 해야 된다.

더군다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도시빈민, 기층대중들을 일떠세우고 깨우고 해서 함께 “미국놈들 나가라”고 할 때가 되었다는 거다. 더 미뤄서도 안 된다.

□ 세 가지 사업제안 중 첫 번째가 반미투쟁을 전국화, 대중화, 상설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전국적, 상설적 반미공동투쟁체 건설’을 제안했다. 반미투쟁을 꾸준히 해왔는데 투쟁체 건설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설명해 달라.  

■ 투쟁이 전국화, 일상화 되다 보면 자연히 그 질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와야 한다. 같은 조직 안에서 똑같은 목소리를 내 가면서 투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니까.

이제 전국화, 대중화, 일상화 하고 그것을 모아서 단일화된 투쟁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은 지금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진보진영 전체에서 논의가 되고 있나?

■ 진보진영 전체라고 보기에는 그렇지만 예를 들면, 우리가 하고 있는 미대사관 앞에서의 반미자주투쟁도 34개 단체가 모여서 공동으로 하고 있는 거고, 또 부산이나 광주, 창원 거기서도 다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반미자주행동이라고 이름 붙여서 한 달에 한 번씩 투쟁들을 이미 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경남 창원 진해에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자 통일선봉대를 비롯한 경남 도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워킹그룹 해체! 주한미군 세균전부대 추방! 경남대회'에서 이규재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7월 25일, 경남 창원 진해에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자 통일선봉대를 비롯한 경남 도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워킹그룹 해체! 주한미군 세균전부대 추방! 경남대회'에서 이규재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두 번째는 8월 14일, 15일 4차 조국통일촉진대회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난 세 차례를 평가해주고 내년 방향을 설명해 달라.

■ 우리가 조국통일촉진대회를 좀 늦기는 했지만 잘 시작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잘 해 왔고, 내년 8월 14일, 15일 우리가 촉진대회를 하는데 거기서 중요하게는 지금 여러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진행되는 반미자주화운동을 모아내고 총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거다.

예를 들면 부산 같은 데서는 주한미군의 세균전을 중심으로 투쟁을 하고 지금 창원 같은 경우는 민주노총 중심으로 미군부대까지 행진하면서 역시 세균부대 관련해서 반대시위를 하고, 광주에서도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반미자주화 투쟁을 하고 있다. 그 외에 1인시위니 이런 것 저런 것 여러 형태로의 반미자주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정세라는 게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것이니까 그때그때 정세에 맞는 반미자주화 운동을 개발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종합적인 목적이 있는 거다.

□ 8.15을 앞두고 노동자 통일선봉대(통선대), 청년학생 통일선봉대 등이 활동해 왔는데, 범민련도 내년에 통선대를 진행하나?

■ 올해 자체로 하지 않았고, 내년은 아직 계획은 없다. 올해 3차 조국통일촉진대회 때도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노총 통선대, 민주노총 통선대 등 통일선봉대 전체가 모이는 통일선봉대 환영행사를 했다.

“연석회의, 실현 굉장히 어려워...구체적 경로 고민중”

이규재 의장은 연석회의 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다목적으로 추진을 고민 중이다. [사진 - 조천현]
이규재 의장은 연석회의 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다목적으로 추진을 고민 중이다. [사진 - 조천현]

□ 세 가지 제안 중에서 가장 특색 있었던 것은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제안한 거다. 사실 이것은 몇 해 전에 북측에서도 제안했다가 잘 안 됐던 사안으로 안다. 내년 8.15 이후로 제안했는데, 상세히 설명해 달라.

■ 지금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존재하는 조건에서 그게 실현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다. 그러니까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자는 의미도 있다. 또한 연석회의를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제 단체들에 대한 어떤 하나의 각성제 같은 역할도 있다.

엄격히 말해서 통일운동은 국가권력이 해야 될 일이 있고 우리 민간통일운동이 해야 될 역할이 있다.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는 거기서 여러 가지 논의되고 결정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민족의 동질성 같은 것도 회복해 나가고 하는 아주 다목적인 행사가 될 것이다.

□ 사실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는 3자연대체라고 한다면 범민련이 됐든 6.15공동위원회가 됐든 제안할만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인데, 문제는 현실성인 것 같다. 이걸 제안하면서 구체적인 경로나 방도를 생각한 것이 있나?

■ 지금 구체적인 경로 같은 것은 계속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거다. 딱 ‘요거다’ 라고 우리가 지금 내놓을 건 마땅치 않다.

□ 2016년 6.15북측위원회 측에서 강력하게 연석회의를 제안한 뒤 ‘전민족대회’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지만 진행이 잘 되지 않았다. 제안하는 건 좋은데 그것을 현실화 시켜내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 그게 남쪽에서의 준비정도가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6.15시대, 4.27시대라고 하고, 6.15남측위원회, 6.15공동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5공동위원회도 실제적으로 남북관계가 잘 안 돼서 제 기능을 거의 못 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자연대를 내건 범민련이 남측 내부에서 활동은 큰 제약이 없다 하더라도 원래 생각했던 3자연대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다고 보나?

■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3자연대운동 차원에서 매년 공동의장단회의를 한다. 범민련의 최고 의결기구는 범민족회의지만 열리기 어려운 조건이다.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공동의장단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목숨 걸고 사수한다면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희생을 치르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실로 옮긴다. 그걸 실천한다. 그게 우리 사업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 올해도 의장단 회의 했나? 지금 북측 의장은 누가 맡고 있나?

■ 최진수 의장이 맡고 있었는데 그 사이 변동이 있었는지는 내년 초에 회의 준비하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 원진욱 사무처장 : 우리가 30년동안 의장단 회의를 한 번도 안 해본 역사가 없는데 올해는 열지를 못하고 연기된 상태로 지금 거의 1년을 보내고 있다. 잘 알다시피 6.15공동위원회뿐만 아니라 당국 간의 모든 대화가 멈춰있는 상태에서 민간까지 중단시켜 놓고 있다.

“의장 후임자, 지금 좋은 사람 물색 중이다”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후임자를 물색 중이 이규재 의장은 노동운동 출신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사진 - 조천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후임자를 물색 중이 이규재 의장은 노동운동 출신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눈이 안 좋다고 했는데, 건강은 눈 외에는 괜찮나?

■ 눈 빼놓고는 다 좋다. 그런데 눈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안과 의사들은 절대로 녹내장은 나아질 수가 없다고 그런데, 주변에서 좋다는 걸 자꾸들 갖다 줘서 뭘 먹어서 나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조금씩 나아진다.

□ 오랫동안 의장을 맡아왔고 연세도 있는데, 아무래도 차기 의장 문제가 논의되고 있을 것 같다. 어떤 계획이 있나?

■ 지금 좋은 사람 물색 중이다. 지금 몇 사람을 물색해서 교섭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젊어져야겠다는 거고, 그 다음에는 대중운동, 노동운동에서 검증된 그런 사람, 몇 가지 요건을 가지고 지금 물색하고 교섭하고 있는 중이다.

□ 대중운동에 노동운동만 있나, 농민운동도 있지 않나?

■ 농민운동도 마찬가지다. 농민운동 지도자들도 많이 만나 봤다. 그래도 욕심에는 투쟁력 있는 노동운동 쪽에서 맡아가지고 그쪽에서 나오는 게 제일 낫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 의장직을 오래 수행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나 개인적인 소회가 있다면?

■ 내가 2005년에 의장을 맡았으니까 15년이 됐다. 해오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의장감은 아니다. 못된다.’ 그렇지만 내 임의대로 하고 싶어도 마땅치 않다.

(2014년) 교도소에서 나오면서도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교도소에서 나오면서 안 하고 나면 “저 자식, 교도소 갔다 오더니 멍들어서 나왔나?” 이럴 것 같아서. 그 다음부터 계속 딱 마땅한 사람이 없다.

■ 원진욱 : 구체적으로 말씀 안 하지만, 최근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을 포함한 전농 전직 의장님들 안 만나 보신 분이 없다. 좀더 나아가면 도연맹 의장, 산별 위원장까지.

일차적인 목표는 범민련운동에 참여 이런 것도 있지만 지금 노동운동, 농민운동, 기층대중운동 했던 분 중에 전선운동으로 나온 분이 없다. 그게 걱정이다. 꼭 범민련이 아니더라도 그냥 은퇴해서 뒤에 나앉아 있지 말고 전선운동, 통일운동에 나서 달라는 얘기를 지금 수년째 시간 날 때마다 만나서 대포도 한잔 하면서 하고 계신다.

■ 전농 의장, 민주노총 위원장 하고 나면 더 안 하려고들 그런다. 정계진출을 하거나 그런 거 아니면 안 하려고 한다. 참 이상하다. 운동이 어디 끝이 있다고. 계속 변화되는 정세에 맞게 변화발전해 가는 게 운동인데 그걸 안 하려고 그런다.

□ 남기고 싶은 말은?

■ 원진욱 : 이건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서 말씀 안 하신 것 같은데, 최근 30돌 기념대회 끝나고, 민족진영 대표들을 만나 30돌 때 우리가 연석회의 제안한 내용을 설명했다. 민족, 통일단체 대표들, 종교계 인사들과 두루두루 면담 약속들이 잡혀있다.

연석회의 제안을 범민련이 직접 나서서 하기 보다는 종교나 시민사회단체, 특히 민족운동단체가 주축이 돼서 제안하고 나올 수 있도록, 지금 약속잡고 만나고 계신 중이다.

■ 왜 그러냐면, 광복회에서 ‘국립묘지 친일 인사’ 얘기했을 때 발끈하고 난리들 치지 않았나? 그걸 보면서 가만 있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 자식들이 언필칭 문제가 생기면 무슨 문제거나 간에 좌우대립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을 좌우대립이 아니라 ‘민족 대 반민족’으로 몰아가야 된다. 

우리가 저 사람들을 태극기부대라고 하는데, 알기로는 미국무성에서 돈 받아 가지고 하는 거다. 저놈들은 저 난리를 치고 그러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그냥 당할 수 있냐?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저놈들이 틀림없이 좌우대립으로 몰려고 그럴 텐데, 우리는 민족 대 반민족으로 몰아야 된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서면 인터뷰
지난달 21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서 원진욱 사무처장이 세 가지 사업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달 21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서 원진욱 사무처장이 세 가지 사업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먼저, ‘반미투쟁 전국화, 대중화, 상설화’를 제시하고 ‘전국적, 상설적 반미투쟁체 건설’을 언급했다. 취지와 현실적 방안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이규재 의장 : 지금 시기는 반미투쟁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반미운동을 일상적이고 전국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반미투쟁에 함께 하고자 한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연대해나갈 것이다.

우선, 전국 방방곡곡에서 반미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 열리던 시기 우리는 미대사관 앞에 모여 1차 미국규탄대회를 시작으로 3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달 반미월례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생각만큼 인원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반미투쟁을 상시화해냈다는 점에서 결코 의미가 작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서울에서 시작한 반미투쟁이 이제는 부산으로 경남으로 광주로 퍼져나가고 차츰 상시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 부산지역에서는 <미군철수부산공동행동>이 광주에서는 <반미자주연대>가 경남에서는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매달 반미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반미투쟁이 전국화되고 지역마다 상시적 반미연대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 역시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지역마다 반미투쟁연대기구를 지향해나간다면 이것을 전국적으로 묶어낼 필요성과 요구성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반미투쟁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앞장서야 한다. 100만 조합원들과 2,000만 노동자들이 반미투쟁에 앞장선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이라도 미국놈들 쫓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조직된 기층민중들이 통일운동과 반미운동의 주인으로 나서는 것이 반미운동 대중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이다. 대중적 반미투쟁을 확산하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 민주노총 후보들이 와서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반미투쟁을 적극 벌여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으니 빈말이 아니라 꼭 지켜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노동자들의 각성과 민주노총의 분발을 기대한다.

전국적 상설적 반미투쟁체는 경로와 상을 따로 정해놓은 것은 없다. 현재 정세적 요구와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내년 반미자주의식의 고양과 확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전국적이고 일상적인 반미운동이 전개되고 반미투쟁역량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강화되는 속도에 따라 반미투쟁체 건설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로지 정세에 기여하고 단결에 복무하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주체들이 모여서 의논하면 된다. 전국적이고 일상적인 반미투쟁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반미투쟁기구의 결성은 필연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불법적이고 부당한 방위비 인상강요, 사드배치, 세균전부대, 해운대 미군난동, 미군에 의한 코로나 확산, 근거없는 유엔사 월권행위, 유엔의 대북제재, 남북관계 훼방과 내정간섭 등 미국에 대한 비판과 반대여론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여러 사안별 투쟁을 통해 미국반대 여론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완강하고도 지속적인 반미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다양한 이슈 파이팅과 미군철수와 평화협정과 같은 전략적 반미투쟁을 결합하는 것, 이것이 당면해서 민족자주역량, 자주통일세력이 복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둘째, 내년 8월 14-15일 4차 조국통일촉진대회를 예고했다.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 실현’에 있어서 이 대회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 2018년부터 3회째 개최하고 있는 조국통일촉진대회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투쟁을 모아내고 반미투쟁의 전선화,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조국통일촉진대회는 전국의 반미투쟁을 모아내고 반미투쟁세력의 단결을 실현하는 투쟁의 장, 단결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년에도 조국통일촉진대회를 1)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들이 중심이 되는 대중적 행사로 만드는 것이 1차 목표다. 2) 또한 각계층과 각 부문,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과 노력들을 모아내는 다양한 통일문화예술축전을 함께 준비할 것이다. 3) 그리고 조국통일촉진대회 대표자회의에서는 △당면 정치정세를 토의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 △향후 통일운동과 반미투쟁의 방향과 과제 등을 결정하고 본대회에서 이것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4차 조국통일촉진대회의 성과적 개최는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을 실현하고, 반미전선 구축의 실질적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초 조국통일촉진대회의 목표는 ‘반미자주를 위한 8.15 남북해외 3자연대 대회’로 제안됐다. 실제로 지난 2018년 1차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는 남북해외 공동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고, 북측의 조선직총과 농근맹, 범청학련 등 각계각층에서 연대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것은 남측의 반미투쟁체 건설과 나아가 남북해외 공동의 반미투쟁기구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2004년 ‘미군철수남북공동대책위원회’를 북측에서 제안한 바 있으나 당시 남측의 준비 부족으로 성사시키지 못한 적이 있다. 지금의 정세는 그와 같은 남북공동의 미군철수 투쟁기구를 결성해야 하는 정세라고 보고 있다.

□ 셋째, 내년 8.15 이후 남북해외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몇 년전 북측에서 먼저 제안했던 적이 있는데 다시 제기한 배경과 이유는?

■ 지난 2016년 6월 9일, 북측은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 명의로 <전제 조선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온 겨레가 힘을 합쳐 분열의 장벽을 허물고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며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제안하였다. 그 뒤 6월 27일, 북측이 남측의 약 240여명의 정부,정당,사회단체,개별인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공개제안한 바 있다. 그 해 12월, 남북해외 실무접촉을 통해 <조국의 평화와 통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민족대회>로 명칭을 확정하고 추진하였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2016년 연석회의가 제안됐던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간 역대합의가 무시되고, 남북관계가 대결로 돌아섰으며 미국의 대북적대와 민족문제 간섭이 노골화되고, 특히 한반도 전쟁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당국을 포함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통해 현 정세를 타개하고 자주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1948년 연석회의가 통일정부를 수립할 민족적 토대와 정치적 과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2016년 제안된 연석회의는 북미대결 정세의 힘과 속도에 기초하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전민족적 합의와 공동실천을 통해 통일을 대세로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연석회의가 제기되는 지금의 정세는 북미대결 정세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통일의 걸림돌인 한미동맹의 근간을 허물고 미국의 개입과 간섭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조건 속에서 우리민족끼리의 지향과 힘으로 민족의 나아갈 바를 내외에 천명하자는 것이다.

범민련 남측본부가 30돌 기념대회를 통해 (가칭)<민족자주 민족단합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제안한 것은 당면한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에서 문재인 정부에게 남북대화를 조속히 열라고 하든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라는 등의 청원이나 촉구운동을 벌이기 위해 제안한 것이 아니다. 남측 정부가 남북관계의 본질적 문제해결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압박하는 의미가 더 크다. 또한 내외 반통일세력을 물리치고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실질적으로 여는 전민족적인 공동투쟁을 만들어나가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것이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연석회의를 제안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진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바라는 각계각층이 모두 민족대단결운동, 조직적 연합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 위한 뜻도 담겨있다. 지금 시대가 정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민족의 단합과 3자연대 운동을 새로운 높이에서 실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석회의는 지금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통일운동은 탄압의 표적이 되어 왔고, 정부와 공안기관은 선별통제 선별허용을 통해 통일운동을 집요하게 무력화시켜 왔다.

통일지향적 민주개혁정부라고 생각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당연히 정상회담, 당국간 회담, 남북의회회담 등을 축으로 사회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단계적으로 통일논의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남북해외 연석회의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금의 정세하에서 남북해외 연석회의를 개최하자는 운동은 이 자체가 통일과 반통일의 치열한 이념적 계선을 갖게 되고 반통일세력과의 투쟁을 동반하게 된다. 때문에 연석회의 소집을 위한 대중적, 전국적 운동을 통해 지역과 부문의 토대를 힘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석회의 소집운동 그 자체가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는 민족공동행사를 넘어서야 한다. 민족의 운명을 여는 반미투쟁 없이 민족공동행사를 한들 뭐가 남겠나. 정세가 어려우니 교류협력 물꼬라도 열자고 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다.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 연석회의 성사는 우리 모두가 시대와 민족 앞에 지닌 본분이며 더없이 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모두가 한사람같이 일어서서 시대와 민족 앞에 제기된 획기적인 구국방안인 남북해외 연석회의를 성사하여 남북관계가 파괴되고, 북미대결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상황에서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힘 있게 열어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더없이 소중한 역할을 다해나갈 것을 다시 한번 정중히 제안한다.

□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구체적인 경로와 준비과정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민족끼리 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는 각계각층의 강력한 의지를 모아내는 것이다. 미국의 내정간섭을 용인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있는 한 공동선언 이행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어제의 교훈을 잘 되새겨야 한다.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 미군철수, 한미동맹 해체 등 이제는 미국의 대한반도지배전략을 송두리째 전환시킬 수 있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대중적 반미투쟁과 미국의 내정간섭 반대 투쟁이 강력하게 형성될 때 연석회의 성사도 출로가 열릴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있지만 현재 단절된 남북관계의 출로를 열어내기 위한 남북해외의 적극적인 공동행동 공동투쟁이 절실한 정세인 것은 틀림없다.

연석회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실천기조를 합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실천기조로는 △대중적 기세를 모으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반통일세력과의 투쟁을 통해 연석회의를 성사시키는 것 △연석회의 성사를 위해 남북해외가 함께 힘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여론사업을 적극화해야 한다. 연석회의 의제에 대한 대중적 토론과 대표자 선출운동 등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대중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난 범민련 30돌 기념대회에서 연석회의 의제로서 △평화를 수호하고, 미국의 전쟁위협을 근원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대책 △미국의 내정간섭을 거부하고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 △각계각층의 단합을 더욱 확대강화하기 위한 대책 △우리 민족의 통일과 공동번영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대책 등을 제안한바 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결성된 각 지역과 부문의 전민족대회 준비위원회를 재정비하고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여론사업, 대중적 의제토론운동과 대표자 선출운동과 같은 대중운동,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각 지역과 부문의 준비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전국 각지에서 군중적 운동방식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2021년 내년 정세에서 반미투쟁이 거세지고 이 과정에서 민족의 장래를 남과 북, 해외가 함께 논의하자는 여론화가 중요하다. 이후에 연석회의 추진경로와 활동방향, 성사방안 등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편, 기간 민족공동행사에 남측에서 300여명 이상 참여해왔는데, 노동자 농민은 소수였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들의 참여를 점차 높여나가야 한다. 전체 대표자 중 적어도 노동자 농민이 30%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참고로 지난 48년 4월,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연석회의에서는 남북의 56개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695명이 참석했다. 이들 대표자 695명 가운데 노동자가 154명, 농민 111명이었고 도시빈민이 37명이었다. 이 외에도 정치인 195명, 기업가 9명, 상업가 39명, 공공기관 간부 86명, 목사·장로·승려 14명, 문학예술 28명, 학생 22명으로 구성됐다. 모든 계급계층이 망라된 거다. 이 때에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약 43%가 넘는다.

남측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민중의 대표자가 민족의 총의를 모으는 연석회의에 남측대표로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주요 대중조직들에서 연석회의 대표자 선출운동, 대중적 의제토론운동 등과 같은 대중적 소집운동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

또한 연석회의는 이전의 민족공동행사처럼 행사위주의 남북교류사업이 아닌 민족자주 실현과, 공동선언 이행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는 정치대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연석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반드시 집행하겠다는 드높은 결의와 신심이 넘치는 8천만 겨레의 민족단합의 장, 결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과거 48년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가 해방직후 남과 북의 거의 모든 정당, 단체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분열을 막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구국대책을 협의한 민족적 대회합으로서 조국통일운동사에 빛나는 자욱으로 아로새겨져 있듯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민족번영과 자주통일을 앞당겨 오기 위한 구국의 결단을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석회의 성사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심하는 자가 역사를 바꾼다고 했듯이 범민련 남측본부는 굳은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어떠한 난관과 역경도 마다하지 않고 각계각층과 손을 잡고 힘껏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특별히 주목하고 당부할 것은 통일에 뜻을 같이 하는 정치권과 각계 인사, 6.15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의 참여와 관심이 중요하다.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서한과 다양한 협의를 만들어 갈 것이다.

1948년 분단과 전쟁을 막고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정세가 지금과 다른게 뭐가 있나.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민족은 핵전쟁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사선을 넘나들며 남과 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던 선배열사 애국자들의 숭고한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면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가

□ 6.15공동위원회가 있고, 남북 민간교류가 막혀있는 상태다. 범민련의 3자연대에 대한 전망과 실현 방도가 있다면?

■ 통일운동은 고도화된 정세적 요구에 부응하고 남북해외 3자연대를 병행하면서 대중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당면해서 남측에서 통일운동의 기본과제는 첫째> 반미자주의식, 연북민족대단결 의식의 고양과 확산, 둘째> 자주통일운동역량의 지속적인 강화확대, 셋째> 3자연대에 기초한 민족대단결운동을 폭넓고 지속적으로 벌이는 것, 넷째> 통일운동을 일상적이고 전국적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갖는 민간통일운동진영의 대표성을 부정하고 정부 주도로 반관반민기구를 따로 만들어 새로운 남북창구를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의 원칙에서 남북합의를 이행할 것인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취임이후 보여준 여러 모습에서도 현 정부에게 대북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단히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6.15남측위는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연대조직이라는 그 위상에 맞게 보다 남북해외 민족적 단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 비록 이전처럼 민족공동행사나 남북해외 대표자회의 같은 것이 열리지 않고 있지만 이미 지난 시기 남북해외가 합의한 내용과 정신대로 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해나가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민련의 3자연대는 생명선과도 같은 것이다. 지난시기 독재정권과 반통일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해외가 뜻과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가로막아 왔다. 범민련의 투쟁은 바로 이러한 남북해외의 합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범민련은 결성 이후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 결정사항은 온 겨레가 들고 나갈 전 민족적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로서 자리매김해왔다. 범민련은 당국의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를 사수하고 공동의장단회의 결정사항에 대한 관철을 1차적 목표로 활동해왔다. 이것은 범민련 탄생 시기부터 부여받은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으로서 자기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범민련 운동의 특성이다.

우리는 내년도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의 성사를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도 실질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남북해외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결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활동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앞서 제안한 제4차 조국통일촉진대회가 실질적인 남북해외 3자연대대회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남북해외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대중적 소집운동을 통해 3자연대에 기초한 민족대단결운동을 폭넓고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지금은 민족의 단합과 3자연대가 새로운 높이에서 실현되어야 할 시기라고 본다. 여기서 우리민족끼리 고난도 기쁨도 단합도 투쟁도 함께하겠다는 관점과 입장이 중요하다.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과 지혜를 합쳐나가기 위한 노력을 잠시도 중단해서는 안된다. 조국통일의 주체도 우리 민족이며 그 힘은 민족대단결에서 나온다. 따라서 남북해외의 굳건한 연대와 단합을 실현하면서 통일운동에서 공동보조, 공동행동을 실현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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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나와 ‘코로나 종식’?…무증상 감염자, 백신 맞고 활보 땐?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입력 : 2020.12.14 06:00 수정 : 2020.12.14 09:48

 

과학계, ‘마스크 세상’과의 섣부른 결별 경계하는 이유 

백신 나와 ‘코로나 종식’?…무증상 감염자, 백신 맞고 활보 땐?
 

지난주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영국에서 세계 첫 접종에 들어갔다. 각국 정부가 백신 사용 승인을 서두르고 있고, 다양한 제약사에서 잇따라 제품을 내놓고 있어 전 세계에서도 의료진과 건강 취약계층,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접종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올겨울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마지막 고비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과학계에선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돼도 ‘마스크 세상’과 이별하는 일이 생각보다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 ‘감염 확산 엔진’ 무증상 감염 

감염자의 40~45%가 무증상
백신 맞았다고 마스크 벗으면
감염 확산 고리 끊기 어려워
 

지난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현지 과학계의 분석을 인용해 화이자와 모더나의 약효가 놀랍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을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두 회사가 개발한 백신의 예방 효과는 95% 수준에 이른다.

뛰어난 백신에도 이런 시각이 나오는 이유는 ‘무증상 감염자’ 때문이다. 무증상 감염자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지만 발열이나 기침 등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증상자도 말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침방울을 공중에 뿌리며 얼마든지 코로나19를 옮길 수 있다. 무증상 감염자가 바이러스의 조용한 전파자가 되는 이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스크립스연구소, 한국 질병관리청의 자료를 종합하면 코로나19 감염자의 40~45%가 무증상이다.

■ 백신만으로 대응 어려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무증상자
감염력 최대 59% 떨어지기도
화이자·모더나에선 확인 안 돼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전체 감염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무증상 감염자가 백신 주사를 맞은 뒤 바이러스 차단막 구실을 했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직장생활이나 취미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위험은 더욱 커진다. 감염 확산 고리를 신속히 끊는 일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유행이 단기간에 극적으로 소멸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돌파구를 열려는 시도도 있다. 지난주 국제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을 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무증상 감염자가 맞았을 경우 감염력을 최대 59% 떨어뜨렸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에선 확인되지 않은 장점이다.

하지만 일부 긍정적인 결과를 놓고 봐도 결국 현존하는 백신으로는 무증상 감염자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일을 확실히 차단하는 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능력을 완전히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고, 나머지 백신들에선 이런 효능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는 선구매 계약을 했고, 화이자와 모더나와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

■ “섣불리 마스크 벗지 마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본궤도에 오른 뒤에도 마스크를 벗는 건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자신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믿는 무증상 감염자가 백신 접종 뒤 안심하고 마스크를 벗고 다니며 바이러스를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실제 어느 정도 문제가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무증상 감염자의 비율 추이, 무증상 감염자 체내의 바이러스 감염력과 백신 접종의 상관관계를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런 분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시점까지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 개발 중인 백신으로 완전히 제압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로선 백신 접종 뒤 항체가 얼마나 유지될지, 바이러스가 변이돼도 항체가 계속 효과를 보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마스크를 벗어도 안전한 시점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자신이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140600015&code=610100#csidx8d4d72e71de0ab5b653673c45e8b6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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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은 덕수궁 미술관 불상 도난 사건

[한국의 유물유적] 마을 도로공사 중에 발견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20.12.14 08:07l최종 업데이트 20.12.14 08:07l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 도로공사장 자갈밭에서 발견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 도로공사장 자갈밭에서 발견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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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건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일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각각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건국 초기에는 공인된 국교가 없었다. 하늘신과 조상신, 자연신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삼국의 국가 체제가 점차 중앙 집권 국가 형태로 발전하게 되면서 백성들을 통합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종교와 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여 국가 이념으로 삼았지만, 신라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들의 반발에 부딪쳐 이들 국가들보다 150여 년 늦은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되었다.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이다
▲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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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소수림왕 2년 전진(前秦. 351~394)의 왕 부견(符堅)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 아울러 전도승 순도(順道)와 불상·경문을 함께 파견해 불교를 전했다."
 
이후 한반도의 삼국과 중국은 서로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받아들였지만, 불교가 수용의 단계를 넘어 우리 땅에 정착하여 독자적 발전을 이룰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 특히, 숭배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불상(佛像)'은 중국에서 직수입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졌다.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 임을 설명하고 있다
▲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 임을 설명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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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고구려 금동불상이 신라 땅에서?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불상이 필요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7년이 지난 연가 7년, 서기 539년.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는 절 동사(東寺)에 사도 40여 명이 모였다.
 
동사에 모인 승연(僧演)을 비롯한 불자들은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평온함을 발원하고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천 개의 불상 '현겁천불(賢劫千佛)'을 만들어 전국에 유포하기로 결의한다. 이때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因現義佛)'은 법영(法穎)이라는 비구 스님이 모시고 공양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인지 모르게 소실되고 말았다.
   
그렇게 인현의불은 까맣게 잊혔다. 그로부터 14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에서는 마을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일당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에 나온 마을 주민 강갑순 아주머니는 산비탈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얼마쯤 파내려 가자 넓적한 돌덩이 하나가 나왔다. 돌덩이를 제치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네모 반듯한 공간에 금빛 찬란한 불상이 누워 있었다.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이 누워 있는 모습
▲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이 누워 있는 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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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의불이 고구려 수도 평양에서 만들어진 지 1424년 만에 신라 땅에서 빛을 보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불상을 처음 감정한 전문가들은 신라 땅에서 발견된 터라 당연히 신라시대 불상으로 알았다. 하지만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 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희대의 국보 도난사건'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으로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잘 반영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위에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자비를 베푸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불꽃 무늬가 새겨진 배 모양의 광배(光背)가 부처님의 아우라를 더해준다.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을 위로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자비를 베푸는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을 위로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자비를 베푸는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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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중 돌무더기 자갈밭에서 찾아낸 금동불상은 광배 뒤에 새겨진 명문 덕분에 별다른 이견 없이 곧바로 8개월 뒤 1964년 3월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으로 지정 명명됐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400여 년만에 드라마틱하게 세상에 나온 인현의불은 국보로 지정된 지 3년 만에 또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 덕수궁 미술관 2층 제3 전시실 진열장에 전시 중이던 불상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사라진 불상의 자리에는 범인이 남긴 메모가 있었다.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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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기록을 남기기 위해 불상을 훔쳐 갔으니 경찰에게 알리지 마시오. 알리지 않는다면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소."

그럼에도 경비원은 경찰에 신고했다. 덕수궁의 모든 문들은 닫히고 관람객들은 검문검색을 받아야 했다. 김포공항을 비롯한 모든 공항과 항만이 즉각 폐쇄됐다.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순간, 범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불상은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과 17번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라..."

전화를 받은 미술관 국장은 급한 나머지 경찰도 대동하지 않은 채 한강으로 달려가 모래밭을 뒤졌다. 천우신조. 부처님의 보살핌이었을까. 다행히 불상은 비닐봉지에 쌓인 채 훼손되지 않고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금동불입상의 옆모습
▲  금동불입상의 옆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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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지 1400년 만에 옛 신라 땅에 묻혀 있던 국보가 또다시 한강변 모래밭에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우리나라 문화재 도난 사건 중 가장 엽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 122호(2021년 1, 2월)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연가 7년명 금동불입상, #고구려 금동불상, #국보 제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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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방문에 얽힌 해괴하고 복잡한 사연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2/14 09:36
  • 수정일
    2020/12/14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423] 고별방문에 얽힌 해괴하고 복잡한 사연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2/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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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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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스티븐 비건(Stephen E. Biegun)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가 서울을 방문하기 직전인 2020년 12월 6일 미국 국무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인도-태평양의 안전, 안정, 번영을 위한 공동노력을 논의하고, 북조선에 대한 지속적이고 긴밀한 공조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 정부 관리들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중대현안을 논의하려고 서울을 방문했었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의미를 너무 크게 부풀려놓았다. 그가 서울을 방문한 목적은 퇴임을 앞둔 때에 서울에 가서 그 동안 알고 지낸 고위관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때는 그가 퇴임하기 약 40일 전이다. 그의 부장관 임기는 2021년 1월 19일에 끝난다. 퇴임을 앞둔 그가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에 업무를 인계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에 서울에 가서 무슨 중대현안을 논의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그가 서울방문 중에 꺼내놓은 것은 알맹이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퇴임을 앞둔 관리에게서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2) 비건 부장관은 즉흥적인 초청발언을 즉석에서 수락하고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1월 17일과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한미재계회의 제32차 총회를 대면회의 및 화상회의로 진행했는데, 회의참석자들 중에는 비건 부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있었다. 그런데 최종건 제1차관은 화상회의에 참석한 비건 부장관에게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를 초청했고, 비건 부장관은 “닭한마리라면 언제든지 좋다”고 말하면서 즉석에서 초청을 수락했다. (인삼, 대추, 밤, 당귀, 찹쌀을 닭 뱃속에 넣고 푹 끓이는 삼계탕과 달리, 닭한마리는 전골처럼 끓이는 요리인데, 그 담백한 맛에 매료된 비건 부장관은 서울에 갈 때마다 광화문에 있는 닭한마리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다.) 

 

최종건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수락한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4박5일 동안 서울을 방문했다. 그런데 자기 혼자 가지 않고, 다른 관리들을 데리고 갔다. 알렉스 웡(Alex N. Wong)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와 앨리슨 후커(Alliosn M. Hooker) 백안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비건 부장관과 함께 서울에 나타났다. 원래 최종건 제1차관은 비건 부장관에게 서울에 오면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의사를 전했는데, 외교부는 비건 부장관의 서울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동료들까지 초청했다. 그렇게 되어 비건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나타났던 것이다. 퇴임을 앞둔 미국 고위관리들이 고별방문단으로 서울에 나타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20년 12월 8일 고별방문단이 탑승한 전용기가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오산미공군기지는 한국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미국통치구역이므로, 고별방문단은 출입국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 그들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제공한 헬기를 타고 오산기지를 이륙해 서울 용산기지에 내렸다. 서울에서 4박5일 일정을 마친 고별방문단은 12월 12일 이른 아침 오산미공군기지에서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장관공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의 고별방문을위해 차린 성대한 사은만찬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비건 부장관,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얼굴이보인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외교부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했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느라 법석을 떨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들은 앞을 다투어 비건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대등한 지위에서 외국 관리를 상대하는 외교활동의 기본원칙을 내던지고, 아부하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퇴임을 앞둔 비건에게 왜 아부하고 굴종했을까?  

 

2020년 12월 1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무엇을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건 부장관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사례행위로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였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9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2020년 12월 10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조찬을 차렸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그를 위해 사은오찬을 차렸다. 같은 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사은환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2월 9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첫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12월 10일에는 최종권 외교부 1차관이 비건 부장관을 위해 두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그리고 12월 11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장관공관에서 성대한 사은만찬을 대접했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퇴임을 앞둔 비건 부장관에게 사은환대를 베풀며 아부하고 굴종한 것은,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하였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조선왕조실록’에는 굴욕적인 보은환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역사기록이 있다.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와서 칙서를 받으라고 고하니 임금이 절하고 나서 서쪽 층계로 올라가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을 받들지 않겠나이까 하고 아뢰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아부, 굴종한 임금은 1400년부터 1418년까지 조선왕조 제3대 국왕으로 재임한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에게 겉으로만 아부하고 굴종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407년에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라는 뜻을 지닌 모화루(慕華樓)라는 건축물을 세운 것만 봐도, 명제국 황제를 향한 그의 아부와 굴종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을 방문할 때 지나가는 돈의문(서대문의 원래 명칭) 밖에 모화루를 세웠는데, 그 누각 앞에는 명제국 황제의 은덕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닌 영은문(迎恩門)을 세웠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조선을 방문하면,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원접사(遠接使)가 한양을 떠나 압록강 국경에 있는 의주까지 올라가서 극진히 영접했고,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선위사(宣慰使)가 의주에서 한양에 이르는 먼 행로에 있는 5개소를 지날 때마다 성대한 환영연회를 차렸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모화루에 당도하면, 왕세자가 고위관리들을 거느리고 그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배례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의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는 고위관리들이 영은문 왼쪽 도로변에 길게 늘어섰다가 일시에 배례하면서 그를 전송했다. <사진 2>

 

▲ <사진 2>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했을 때, 세종은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는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  

 

그런데 태종보다 한 술 더 떠서 명제국 황제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부하고 굴종한 조선 국왕이 있었다. 그는 1429년에 모화루를 모화관으로 개칭했고, 1433년에는 모화관을 확장, 개축하면서 모화관 남쪽에 연꽃이 만발하는 연못을 만들어놓았고, 연못 주위에 버드나무도 심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한 1424년, 그는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임금과 신하의 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 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했다. 27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곡을 하는 바람에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빠졌다. 이처럼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 중독자라고 부를 만한 그가 바로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이다. 세종은 27명에 이르는 조선 국왕들 가운데 가장 심한 모화사상 중독증에 걸린 왕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가 실은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를 더 이상 세종대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위에 서술한 역사적 사실은 조선왕조 통치계급이 모화사상에 얼마나 중독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모화사상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조선왕조 통치계급의 사상정신에 파고들어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19세기 말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청제국이 일본제국과 싸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한 이후, 중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은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으로 변천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미제국과 싸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미제국이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한 이후,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은 미국을 숭모하는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었다. 

 

조선왕조 518년 동안 모화사상에 중독되었고, 일제식민지시기 36년 동안 모일사상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8.15해방 후 지금까지 75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한미동맹’을 떠받드는 모미사상에 중독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의 장관급 인사들과 고위관리들이 서울을 고별방문한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환대의식을 진행한 사건은, 모화사상에서 모일사상을 거쳐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어온 아부와 굴종의 추악한 역사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을 쓰고 자행되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미사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고별방문단은 4박5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사은환대만 받고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미국의 고위관리인데, 어찌 얻어먹기만 할 수 있었겠는가. 비건 부장관은 회담도 했고, 강연도 했다. 2020년 12월 9일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최종건 제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각각 만나 진행한 회담과 관련하여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재확인했고,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하여 한국이 지속적으로 협조해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또한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것(U.S. support for inter-Korean cooperation)을 재확인했고,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한 조선과의 의미 있는 대화에 관여하기 위해 계속 준비해왔음을 재확인했다. 부장관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지역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권고했다.”

 

위의 인용문에 들어있는 초점은 한미동맹,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 그리고 한일안보협력으로 요약되는데, 지면이 제약된 이 글에서는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에 관한 비건 부장관의 견해만 선별적으로 검토한다. 

 

1)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을 오도하는 허위발언이다. 미국은 남북협력을 지지하기는커녕 대조선경제제재를 가중시켜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지금 남과 북이 상호협력을 하려고 해도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경제제재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런데도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으니, 참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2017년 조미적대관계가 폭발 직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조선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광분하던 미국은 조선에 대한 무력위협과 경제제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런 광란 속에서도 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끌어냈다. 2018년 6월 1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전날에 진행된 회담준비접촉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당시 직책)은 조선이 핵시험과 미사일발사시험을 중지하고, 미국인 억류자 3명을 석방하고, 지하핵시험장을 폐쇄하는 성의 있는 행동을 취했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조선제재를 해제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지만, 미국측은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은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기 위해 2018년 11월 20일 한미실무단(Working Group)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았다. 한미실무단의 미국측 대표가 바로 비건 부장관이다. 한미실무단을 통해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는 장본인의 입에서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그처럼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2019년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남북교류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남측 취재기자들이 휴대용 컴퓨터와 카메라 같은 취재장비를 가지고 금강산에 가려고 했지만, 미국은 그런 취재장비들이 제재품목에 속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미국의 대조선제재는 취재장비는 물론이고 작은 나사못 한 개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남북협력을 완전 봉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다. 그런 극단적인 제재만행으로 남북협력사업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미국은 더욱 광란적으로 대조선제재를 가중시켰다. 미국은 2019년 3월 21일 조선 선박 49척과 조선과 거래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외국 선박 46척을 무더기로 제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그런 횡포가 거듭되면서 미국의 대조선제재대상은 개별인사 177명과 주요기관 313개소로 늘어났다. 

 

2020년 1월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붕>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백악관을 방문한 2020년 1월 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협력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거부의사를 밝혔고, 그 전날 로벗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을 때도 금강산관광재개, 개성공단재개, 북측 철도 및 도로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브라이언은 제재를 무시하고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2)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조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조선과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년 반 동안(비건이 부장관으로 재임한 기간을 뜻함-옮긴이) 우리는 미국이 70년 묵은 갈등관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음을 북조선에 언명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동안 북조선측 협상상대는 참여의 기회를 잡는 것 대신에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일에 자주 몰두함으로써 많은 기회를 허비하고 말았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우리가 비록 합의사항을 진척시키지는 못했어도, 싱가폴 정상회담은 아직 온전히 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서울에 머물던 비건 부장관이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을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고 주장했고,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조선은 협상을 재개하려는 미국의 거듭되는 제의에 대해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조미협상이 파탄된 책임을 부당하게 조선에 돌리면서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이 재개되는 경우, 조선이 제시했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강연에서 그는 만일 조미협상이 재개되면, “우리는 행동계획(roadmap for action)을 수립하는 것을 합의해야 하며, 그 행동계획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목표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이 그런 말을 꺼내놓기 전에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은 2020년 7월 9일 취재기자들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북조선이 제기하는 전략적 위협에 관한 진지한 대화에 참여하는 접근법을 취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비건 부장관이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날강도 같은 요구”를 꺼내놓아 회담을 결렬시켰을 뿐 아니라, 회담결렬 이후 대조선제재를 더욱 광란적으로 가중시키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형태와 방식만 바꿔 계속했는데, 이런 일련의 도발행동들을 본 조선은 조미협상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비건 부장관이 이번 고별방문 중에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훨씬 전부터 백악관과 국무부가 조선에 협상재개를 거듭 제의했건만,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2020년 1월 10일 로벗 오브라이언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와 대담하면서 “우리는 2019년 10월에 진행된 스톡홀름 조미실무회담을 다시 이어가기 바란다는 의사를 조선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조선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2020년 7월 16일 미국의 언론매체 <어메리컨 컨서버티브>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에 그 동안 오랜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에 돌파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희망을 품은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월과 3월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2020년 9월 17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 조선의 수해복구와 코로나방역을 위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비건 부장관의 기대야말로 허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제의에 응답하지 않는데도, 팜페오 장관과 비건 부장관이 조선에 협상재개의사를 거듭 밝힌 것은 그들이 2019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망각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명한 중대한 문제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담화에 따르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조선 경제의 밝은 전망과 경제적 지원을 설교하며 전제조건으로 추가적 비핵화조치를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화려한 변신과 급속한 경제번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제도와 인민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도 없는 제재해제 따위와 결코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서와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고통이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로 변했으며 우리는 그 증오를 가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집요한 제재봉쇄를 뚫고 우리 식대로, 우리 힘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시였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녕변핵시설과 다른 핵시설들을 폐쇄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조건을 즉석에서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거부의사를 밝힌, 말이 되지 않는 협상조건을 다시 꺼내놓고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2)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8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을 면담한 자료를 가지고 집필한 책 ‘격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나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게 될 우리 두 나라의 실무협상에 앞서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연합군사훈련은 취소도 연기도 되지 않았다. (중략) 조선반도 남반부에서 벌어지는 연합군사훈련은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이며, 누구를 억지하려는 것이며,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것인가? 개념적으로나 가설적으로, 전쟁준비훈련의 대상은 우리 군대이다. 이것은 우리의 오해가 아니다. (중략) 나는 이런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매우 불쾌하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판은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밥 우드워드가 집필한 책 ‘격노’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당시 국방장관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작은 단위의 군사훈련은 필요하다. 장병들이 훈련하지 않고 막사에 앉아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몰가치하다”고 말한 뒤에 국방부 청사로 돌아가서 사단급 대조선전쟁연습을 하지 않는 대신 연대급, 여단급, 대대급, 중대급, 소대급 대조선전쟁연습을 지상과 공중과 해상에서 중단 없이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매티스가 억지주장을 늘어놓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전쟁연습 중단공약을 반대했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매티스의 반대를 제지했다면,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의 억지주장을 용납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묵인하는 최악의 실책을 저질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하여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이 중단되지 않는 한 조미협상을 재개하지 않을 것임을 친서에서 언명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조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립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미국이 협상재개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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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야영 기지’에 서서 역사를 읽다!

[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 기자명 김상일 
  •  
  •  입력 2020.12.13 23:11
  •  
  •  댓글 0
 

비 내리는 북야영 기지의 밤

평소 머릿속에 늘 가지고 있던 현대사에 대한 의문 가운데 하나가 일본이 원자폭탄 두 번이나 세례를 받고도 왜 저렇게 미국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오히려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가 전 세계에서 반미감정이 가장 높다는 통계도 있는 마당에 말이다. 백주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 대사의 얼굴에 칼자국을 낸 곳이 일본일 것 같은 데 그 반대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새삼 알아야 할 사실은 일본은 연합군에 대해서도 항복한 것이 아니고, 조선에 대해서도 항복한 것도 아니다. 일본 천황은 당연히 항복문에서 조선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숙제로 남겨져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은 ‘미국에만’ 항복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은 당시 밀려 내려오는 구 소련군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었고, 그 때문에 일본은 항복은 하지만 푸들로 잘 길러 줄 것을 미국한테 항복과 함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지켜졌고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패자인 동시에 승자의 위치에 엄연히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도 기적적으로 성장했고, 한미일 동맹 구실로 한반도 재진출의 길도 탄탄대로이다.

이렇게 일본이 ‘애지중지’ 미국의 푸들로 된 것은 항복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에 잡혀갔던 한국 사람들이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고 만세를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일본형사에 의해 사살 당한 예들이 다반사로 있었다. 그러면 일본 안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 안에서 사정은 어떠했던가?

미국이 8월 15일 일본 관동군 사령관에게 내린 ‘대륙령 제1381호’에 의하면,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각각 임무를 계속할 것, 군기를 엄격히 세우고 단결을 공고히 하여 한결 같은 행동을 취할 것...”과 같다. 미군이 우리 상해임시정부에 내릴 법한 내용이 아닌가?

이에 맞장구나 치듯이 8월 18일 조선군 관구 보도국장이란 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와 조선군은 엄연히 건재해 있다”고 방송했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군’이란 일제 침략군을 지칭하는 것이다. 미국에 항복은 해도 조선 지배는 계속될 것이란 약속을 미국은 해 주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조선군’이라 엄연히 호칭한 것이다. 해방 후 3일이 지난 다음에 나온 방송이다.

8월 20일에는 일본군 경성사관구 사령관이란 자를 ‘경성 경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드디어 8월 30일에는 “조선은 황국의 영토이며 조선 인민은 황국의 신민이다. ...독립운동은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 국기 게양은 엄금한다. 치안 유지를 위한 단체 결성을 허락하지 않는다”(‘조선 종전의 기록’ 중에서) 모두 일본 천황 항복문서 이면에 적힌 내용 그대로이다.

그러면 1945년의 대륙령 제1381호가 지금은 무효가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 대륙령은 미국의 지시 하에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대로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지금 우리 역사의 현주소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설령 미국에는 항복을 했어도 조선 지배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을 내 세워 그대로 조선 지배만은 허용하려고 했었다. 그러면 왜 미국은 그런 착각 아닌 착각을 했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조선은 자주적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는 나라이고 누군가가 대신 다스려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전 세계에 선전해 놓고, 이를 자신들의 조선 식민 통치에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은 사대주의 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자주 독립할 수 없다는 이 논리가 전 세계에 만연돼 있었고 미국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은 물론이다.

191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던 밀사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준 열사의 비분강개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밀사’에서 3인의 대표들이 근방을 돌아다니며 각국 지도자들에게 줄 뇌물을 사는 장면들, 그러나 가져다 바칠수록 ‘너희는 사대근성에 망하도록 돼있는 존재’라는 것이 답이었다.

그러면 미국과 일본의 이 밀애密愛를 순간에 좌절시켜 그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자각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소 국경지역 북야영 기지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패망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할 곳이 소련의 남하였다. 생각보다 쓰나미같이 파죽지세로 소련군이 밀려 내려오는 것을 본 미국은 상상 밖이었다. 당시 소련은 혁명이후 사람들이 신질서에 도취돼 행복에 젖어 있을 때이다.

김일성 회고록 7-8권은 김일성 부대가 산에서 내려와 하바롭스크 시가지를 지나가면서 본 기록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가지를 남녀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 김일성 부대원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산에서 갓 내려와 망국노의 신세의 참담한 모습을 그려 놓은 기록은 가장 눈물겨운 회고록의 한 장면이다.

혁명 직후 자기 나라 안도 아직 허술한 틈에 참가한 소련군이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떠밀려 전쟁에 참가한 마당에, 소련이 무슨 애착을 가지고 일본 정예군과 목숨 바쳐가며 싸워줄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일본은 패망은 해도 조선은 놓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이를 안 소련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할 의지를 담보할 수는 없었다.

일본이 항복은 해도 조선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대륙 진출의 교두보가 조선이기 때문인 것은 오랜 역사가 그대로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조소 국경지대에 첨예 정예부대를 배치, 참호를 수천 개 설치한 후, 대포까지 배치해 놓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철옹성’이었다. 이를 본 소련이 어떻게 이 방어선을 뚫고 남하할 엄두조차 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날 밤 비마저 내리는 백아영 기지에서 출정한 조선인민혁명군은 돌격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그 단서는 김일성 조선인민해방군(‘혁명군’)이 그 동안 쌓은 사기와 강한 의지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은 국내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1937년 보천보 전투는 그 신호탄일 뿐이었다.

이어 1939년 ‘고난의 행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 진출을 위한 계획된 작전이었다. 흰 눈 덮인 백두산을 이정표 삼아 이동하기 시작한 혁명군은 백두산 삼지연에 집결, 각 곳에 밀영을 꾸린다. 고난의 행군은 일본군을 100여 일 동안 눈구덩이 속을 끌고 돌아다니며 일본군을 탈진시키기 위한 전투 아닌 전투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강철 같은 정신력을 배양했으며, 이 정신력은 주체사상의 원동력이 되었다. 모세의 40년 광야 행군이 유대교를 탄생케 했듯이 위대한 종교와 사상은 고난의 씨앗이다. 누가 주체사상을 한 개인 숭배를 위한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가?

그 이전, 간산봉 전투 등에서 자신 감을 얻은 조선인민혁명군은 항공 낙하산 훈련과 도하를 위한 부교 설치 훈련 때문에 잠시 소련에 들른 다음, 국내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드디어 1945년 8월 9일 혁명군 사령관은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하여’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리 민족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결정적 시각이 목전에 도래했다”로 시작되는 명령은 즉각 실천에 옮겨져 파죽지세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작전회의에서 소련군은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요새’는 난공불락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요새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지만, 김일성 사령관은 요새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는 승기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 두만강 유역의 토리 요새부터 급습해 대성공을 한다.

이 장면을 본 한 소련군 장교는 ‘나진해방전투를 보고서’란 수기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전투일 것이라고 판단한 전투에서 “우리는 조선 빨치산들이 일본군의 통로를 막고 그들이 도시를 빠져 나갈 수 없도록 만들게 된 것을 알았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무기를 내 던지고 포로로 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이 나바론을 점령하는 만큼이나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첫 번째 전투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혁혁한 용맹스러움을 소련군들과 장교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고 혁명군은 추종세력일 줄 알았는데, 그 반대 장면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소련군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용맹스러움에 오히려 역으로 사기가 진작될 정도였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소련 장교들은 일기와 수기에서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은 마치 소련군이 주도권을 가졌고 김일성은 소련군의 한 장교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할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조선인민혁명군이 주동적으로 추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은 해도 결코 조선만은 전초기지로 삼아야 하겠기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허망한 꿈은 이렇게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하여 여실히 콩가루가 되고 말았다. 만약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없었더라면 해방된 후에도 조선은 여전이 일본의 통치하에 지금까지 있었을 것이고, 미국은 당연히 이를 허용했을 것이다.

조선은 수천 년 사대주의 하던 나라라 결코 자주적으로 한 나라를 경영할 수 없는 국민성 소유자들, 그래서 누군가는 대신 통치해 주어야 하는데, 미국이 볼 때에 누구이겠는가? 자기가 아니면 일본. 자기들이 하는 것보단 일본이 해 주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너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신탁통치 23년 운운이 그들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 것이다.

패자이면서 승자 노릇하는 일본의 코스프레

일본은 패자이면서 승자 노릇을 코스프레 하려고 했다. 이런 만용적 기세를 꺾은 것이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일본의 천년 야망은 대륙 진출이고, 그 전초기지가 두만강 유역의 국경 요새였다. 망해도 이 요새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일본의 속셈을 늦게나마 읽어야 북조선과 우리 현대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소위 자기들이 자랑하는 ‘난공불락 방어선’을 두만강 일대, 중소국경 일대에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 개 요새에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영구 화점’과, 기관총이나 포를 사격할 수 있는 ‘토목 화점’을 평균 500여개나 구축하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게 화점들을 만들었다. 여기에 탱크 차단벽까지 포함하면 수천 개의 방호벽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다 정예 관동군까지 배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민혁명군의 강철 같은 정신력 앞에 철옹성이 모래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련군은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판단, 우회를 강조했지만 김일성 사령관은 이곳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국내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승패를 좌우하는 바로 이곳을 혁파해야 한다고 실천에 옮겼다. 그 첫 번째 타격 요새지가 토리 요새였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일성 사령관은 오백룡 소부대에게 토리 요새 습격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 명령을 내렸다. 마침 “비가 내리는 야심한 밤에 작은 배로 두만강을 건너 경찰관 주재소를 불시에 습격, 적들은 미쳐 반격을 가할 틈도 없이 혼비백산 쓰러지고 흩어지고 말았다.”

일시에 토리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난 다음, 웅기-나선 요새를 습격했다. 이렇게 요새들은 도미노 같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훈춘현 남별리 요새-경흥 요새-훈융 요새-웅기-나진지구-청진지구-무산-단천-신의주-평양-안주-개천-황주-철원-경성 일대로 연결되는 혁명의 도미노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 올랐다.

나라가 없던 마당에 조선인민혁명군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주체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전공은 소련의 몫이 되었다. 일본 대본영은 “만주는 버려도 좋으나 조선은 최후의 1선으로 절대적으로 틀어쥐고 있을 필요가 있다”며, 군사적인 재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의 항복 목소리에 우리는 또 한 번 속고 말았다. 우리 세상이 온 줄로 착각했었다.

소련이 모든 작전을 틀어쥐고 있었고 김일성은 일개 소련군 장교에 불과했고 소련의 꼭두각시로 평양에 등장했다고? 그러면 꼭두각시가 어떻게 소련을 북조선 땅에서 내 보낼 수 있었던가?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가 지금 미군을 한반도에서 내 보낼 수 있는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해방을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미국의 입에서 미군이 한국에 영구 주둔하자는 결의안까지 내자고 한다고 한다. 갑오전쟁 이후 청과 일 두 나라 군대가 나라 안에 주둔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땐 잠시였다. 한미일 동맹 19조 같은 것은 일본의 재진주를 합리화, 합법화 한 것이 아닌가? 역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이 새 정부 수립에 급급하지 말고 외세부터 추방하려 했다면 왜 이런 결과가 생겼겠는가? 단독정부를 세워서라도 권력부터 잡고 보자는 그 이승만의 심보, 아직도 역사는 심판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바보 천치 같은 마지막 사무라이의 반값도 못한 미국 하버드 대학 박사의 행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 역사를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지 모른다.

만약 토리 요새 습격 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련의 말을 듣고 우회 작전을 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북조선이 소련을 혁명 후 나가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 밤, 한순간 사령관의 판단하나 때문이다. 단호히 정면돌파로 마지노선을 넘은 결단 말이다.

그러나 남한 일각에서는 모든 것이 소련의 사주에 의한, 소련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방관자적 자세로 참가했지 적극적인 참가 자세가 아닌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단적인 예로 1945년 8월 9일은 소련군이 대일전 개시일인데,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실현되지 못했다.

그날 조선인민혁명군은 북야영 기지에서 만반의 전투 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작전에는 그 동안 국내 진공을 위해 낙하 훈련과 도강 훈련을 해온 부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취소된다. 그 이유는 스탈린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자국 군인들의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한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군 지도부에서 볼 때에 국내 진공은 소련이 생각하듯이 타산지석이 아니었다. 우리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저 부산과 제주도까지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가 일제를 한반도에서 우리 힘으로 몰아낼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이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철옹성 요새 돌파를 통한 일제와의 정면대결로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소련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선인민혁명군에 있었다는 역사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8월 9일 공격은 낙하와 도하라는 소련의 지원과 도움이 없이는 될 수 없었던 만큼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만주벌에서 중공당과 관계에서나 1940년대 소련군과의 관계에서나 조선이 양국에 대하여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이것을 뒤바꾸어 가르치고 있다.

8월 9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우리에게 행이고 불행이다. 불행이라 함은 우리 힘으로 조국을 완전히 광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일본 천황의 항복은 조국 광복의 상에 재를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불과 며칠만 더 있었어도 우리 힘으로 충분히 광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상상 밖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미국은 ‘한반도 분할 점령’이란 꾀를 부려 한 나라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와 장래는 아랑곳도 없이 미국의 대중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 지도를 내놓고 멋대로 선을 그었다. 그것이 원한의 38선이다. 일개 대령 본스틸과 중령 딘 러스크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그래서 조선인민혁명군은 38선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이 38선 안은 ‘일반 명령 1호’로 맥아더 사령관에 보고돼,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자 보자. 맥아더는 1945년 9월 7일 ‘조선인민에 고함’에서 “본관은 본관에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총 6조 가운데 제3조에 의하면 “주민은 본관 및 본관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 행위 또는 공공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와 같다. 이틀 후에 발표된 포고 2호는 “조선인으로서 포고령을 위반하는 자는 사형 등 엄벌에 처한다.”이다.

청천벽력 같은 이 포고령을 들은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고 인천에서는 인명 희생까지 있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말 그대로 해방은 ‘한순간’이었다. 일본놈들한테 35년간 시달리다 기사회생 하는 듯하더니, 아니 봄이 온 줄 알고 밖으로 나왔다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미국은 너무나도 황당하게도 그 일본놈들의 주구들 모두에게 한 자리씩 되돌려 주었고, 그 자리를 지금까지도 수구 보수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옆에는 권총 찬 미군들이 지켜 보호하고 있다,

한번 이 맥아더의 포고령을 위에서 말한 8월 15일 패망한 일본 관동군 사령관에 내린 ‘대륙령 1381호’와 ‘1385’ 그리고 8월 16일 악명 높은 ‘정치운동 단속명령’과 비교할 때에 무엇 하나 다른가? 항복한 일제는 ‘관내 일반 민중에게 고함’에서 민심교란 행위를 엄벌에 처한다고 했으며, 8월 18일 방송에서는 ‘조선군은 엄연히 건재한다’고까지 했다. 여기서 조선군이란 일본군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독일이 패망한 후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지하에서 권총 자살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

아베란 자가 저렇게 고압 자세로 나오는 데는 이미 해방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던 일이다.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는 조건으로 일본군은 조선군으로 그대로 주둔하게 할 것을 담보 받은 것이다. 1381호와 1385호 그리고 맥아더의 포고 2호는 ‘일란성 쌍둥이’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의 엄호를 받으며 건재하고 있다.

안타까운 이러한 현실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은 38선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련마저 이 원한의 선을 인정하는 꼴을 보았을 때에 이들이 왜 소극적으로 전쟁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38선 철창 너머 고개를 남쪽으로 돌려 보았을 때에 거기에는 아직도 그들이 향해 싸우던 일제들이 그대로 남아 오히려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을 하나 하나 죽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 6.25를 두고 남침이다, 북침이다 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군 이래 유래 없던 민족상잔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왜놈들이고, 그 일본놈들과 그 앞잡이들이 38이남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저 북야영 기지에서부터 걸어내려 온 발걸음을 예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들에게 ‘적화통일 운운’ 하는 것은 넋두리이다. 북야영 기지에서 내려온 일군一群의 해방군일 뿐이었지 한 나라의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방의 종은 누구를 위해서 울렸나? 민들레 핀 임진강 강변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익힌 도하 훈련과 낙하 훈련은 저 일제를 이 땅에서 영원히 몰아 쫓아내자는 것이었다. 반만년 우리 역사는 이 엄연한 현실을 어떻게 보고 판단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남북 모두가 북야영 기지 그날 비 내리던 날 밤으로 되돌아 가 한번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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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거리두기 상향 검토 착수 “지금이 3단계 막을 마지막 기회”

문 대통령, 직접 현황 점검 및 대응 지휘...“3단계 불가피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결단”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2-13 19:22:00
수정 2020-12-14 09: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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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2020.12.13.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2020.12.13.ⓒ뉴스1  
 
정부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체계 붕괴가 우려된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수도권은 2.5단계, 비수도권은 2단계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13일 오후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에서 "지금 확산세가 계속 이어지면 한계에 달한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3단계 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3단계로의 상향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앞서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높이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중대본에서는 그 경우까지 대비하여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결단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3단계 격상 기준 임박할 정도로 확진자 폭증세
"지금 이 순간이 3단계로의 상향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는 전국적 대유행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정부가 사회활동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3단계 격상 기준은 전국 주 평균 확진 환자 800~1천 명 이상이거나, 2.5단계 상황에서 환자가 배로 증가하는 등 급증해야 한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전날 950명에서 이날 1천30명으로 이틀 연속 최대 기록을 경신하며 폭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3단계로 격상할 기준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지금 추세가 이어진다면 3단계 격상 기준에 곧 도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금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도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이라고 보고 있는 '비상' 상황이다.

박 1차장은 "최근 1주일간 국내발생 신규 확진자는 일평균 662명으로 지난주에 비해 174.3명 늘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에도 국민들의 이동량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언제, 어디서 감염됐는지 알지 못하는 '감염경로 불명' 사례 비율 역시 20%대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3단계가 시행될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큰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할 수도 없다.

박 1차장은 "거리두기 3단계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민생경제에 광범위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수많은 시설의 영업중단과 제한이 더는 권고가 아니며 강제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미 장기간 상업의 피해를 감수하신 자영업자, 영세 소상공인분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은 3단계로 격상되는 것을 막으려면 코로나19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이제 K-방역의 성패를 걸고 총력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박 1차장 역시 "지금 이 순간이 거리두기 3단계로의 상향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여러분의 일상과 생업이 중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뉴스1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
우리가 가진 방역 역량을 최대한 가동"

우선 정부는 방역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비상하고 신속한 대응을 거듭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로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감염자를 최대한 신속하게 찾아내고 확산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확산을 빠르게 억제하는 근원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며 역학조사 지원 인력 긴급 투입, 임시선별진료소 설치, 검사량 확대와 신속항원조사 등 특단의 대응 조치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진단검사, 역학조사, 확진자 격리와 치료 등에서 우리가 가진 방역 역량을 최대한 가동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코로나 전파 속도를 능가하는 빠른 검사, 선제적인 방역으로 코로나를 단기간에 제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수도권 긴급의료 대응도 이날 회의에서 집중 논의됐다. 현재 수도권을 집중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는 앞으로 20일간 매일 1천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환자가 신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3주간 1만 병상 이상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생활치료센터 7천 병상, 감염병 전담 병상 2천700병상, 중증환자 치료 병상 300병상이 추가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합심하여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에도 더욱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민간 의료기관과 기업 등도 병상과 의료진, 생활치료센터 등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별히 감사드리며, 더 많은 참여를 요청드린다"며 "정부는 그에 대해 충분히 보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민들을 향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백신과 치료제가 사용되기 전까지 마지막 고비"라며 "그때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가장 강한 백신과 치료제이다.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비상한 상황인 만큼 특히 만남과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켜주시고, 일상적인 만남과 활동을 잠시 멈춰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 1차장도 "국민 여러분의 실천이 필요한 순간으로 안전한 집에 머물며 이동을 최소화해 주시길 바란다"며 "사람이 밀집하고 밀폐된 시설, 밀접한 접촉이 발생하는 시설은 이용하지 말고, 모든 모임과 약속은 취소해 달라"고 촉구했다.

또 "외출을 할 때는 마스크를 정확히 착용해달라"며 "실내에서는 항상 착용하고 증상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시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박 1차장은 "오늘 외출과 모임을 한 번이라도 줄일수록, 개인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킬수록, 또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으실수록 우리의 일상이 강제로 멈출 가능성이 줄어든다"며 "국민 여러분의 실천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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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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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암입니다’…두려움과 희망 사이에 서다

등록 :2020-12-12 16:47수정 :2020-12-12 19:14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1) 암 진단

집에 오면 실신하듯 잠자고 출근
전투적으로 일하다가 받은 진단

침착하자 되뇌며 서점으로 직행
거리 두고 차분히 공부할 결심

내 잘못 아닌 걸 알긴 하지만
분노했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유병자(1999년 1월1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전국민의 3.6%인 187만명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0%로 나타났다. 국민 다수가 자신이 암환자가 되거나 암환자의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한다. 지난해 12월12일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부 양선아 기자가 투병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안타깝게도 암입니다.”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12월12일이라는 날짜를. 그날 진료실에서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동행한 친정어머니는 얘기를 듣자마자 휘청거렸고, 남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의사는 “유방암이고 암 크기는 약 2.5㎝이며 전이는 안 된 것으로 보이니 빨리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인생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암과 나를 한 번도 연결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2017년 기준, 기대수명(83살)까지 살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암에 걸릴 확률은 35.5%이다.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고 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암 환자는 거의 없었다. 회사 동료 가운데 암 환자가 몇 명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암은 나와는 동떨어진, 아주 먼 세상 일일 뿐이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맞닥뜨린 사람의 그 황망하고 어이없고 이해 불가였던 심정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른 수건 쥐어짜듯 일하다
“왼쪽 가슴에 혹이 만져져요. 2㎝ 정도 되네요. 가슴 마사지해보면 혹 잡히는 분들 많아요.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수술 간단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병원 빨리 가보세요.”일은 많고 좀처럼 쉴 틈이 없는 나날이었다. 곰 세 마리, 아니 열 마리가 내 어깨에 앉아 시위하고 있는 것 같아 하루 월차를 내고 집 근처 마사지숍을 찾았다. 어깨 근육을 풀려면 뭉친 가슴 근육도 함께 풀어야 한다며 가슴을 구석구석 마사지해주던 마사지사는 자신 역시 수년 전 유방에 있던 종양을 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노라고 했다. 목욕탕 세신사나 피부관리 마사지사가 유방 쪽 종양을 자주 발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2019년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내게 역동적인 한 해였다. 교육 분야를 취재하다 사회정책팀 데스크로 발령이 났고, 또 몇 달 안 돼 사회정책팀 팀장이 됐다. 사립유치원, 자사고, 대입 정책 등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아 전투적으로 일했다. 그러다 교육, 복지, 노동, 젠더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정책팀 팀장이 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였고, 집에 오면 ‘떡실신’해 잠만 자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월차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 연말에 몰아 쉬겠다며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일하다 쉬는 첫날 집 근처 유방외과에 갔다.30대 후반부터 건강검진할 때 유방 엑스선 촬영은 물론 초음파 검사까지 꼬박꼬박 했다. 2018년 말 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기에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방 엑스선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표정이 어두웠다. 의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문을 열었다.“혼자 오셨어요?”“네…. 결과는 어떤가요?”“왼쪽 가슴에 혹이 있는데 모양이 안 좋아요. 암일 수 있어요. 양성 종양이면 표면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워요. 그런데 환자분의 종양 주변은 울퉁불퉁하지요? 조직검사를 진행하면 3일 뒤 정확한 결과가 나옵니다. 확률은 반반이에요. 일단 조직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보죠.”‘암이라고? 암? 설마~ 아닐 거야~ 내 건강이 얼마나 좋은데….’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머리가 ‘띵’했다. 누군가 뒤통수를 호되게 내려친 것만 같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 멍울이 있는 자리에 굵은 바늘을 총처럼 발사했다. 조직검사라는 것이 그렇게 금방 끝날 줄이야. 암에 대해 몰랐을 땐, 조직검사라는 말만 들어도 큰 수술처럼 느껴졌다. 검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한쪽 가슴이 뻐근했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슬픈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없는 서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에이, 아닐 거야. 하늘이 나한테 그럴 리 없어.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두 아이 키우랴 일하랴 고생고생하다 이제 조금 살 만하니까 암이라고? 운동도 나름 열심히 했고, 나쁜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잖아. 아닐 거야. 의사가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으니 아닐 거야.’‘그럴 리가 없다’는 신념과 ‘그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을 헤집어놨다. 날마다 마음은 쑥대밭이 됐다. 3일이란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불면의 밤은 계속됐다. 가족들에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불안감은 똬리를 틀고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특히 두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암 진단을 받은 날,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수술 날짜를 빨리 잡는 것이 좋겠다며 어느 병원으로 갈지 결정하라고 했다. 아무 준비도 못한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부랴부랴 같은 팀에서 일하는 김양중 의학전문기자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김 기자가 추천해준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왔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책들을 구매해 관련 정보를 먼저 섭렵하는 습관이 있던 나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는데 무릎이 탁 꺾이면서 넘어졌다. 넋이 나간 상태였나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차려, 양선아! 침착해, 양선아!’라는 말을 수백 번 되뇌었다.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도착해 ‘유방암’을 검색어로 넣어 책을 찾고 암 관련 코너도 한참 둘러봤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에서 펴낸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 안내서>를 비롯해 유방암 관련 책 4권과 생존율 5%라는 말기 간암 진단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낸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박사가 쓴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가 눈에 들어왔다.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날 내가 서점으로 달려간 건 신의 한 수였다. 암 선고를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면, 그 끔찍한 날에 가만히 앉아 신만 저주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먼저 질식돼 병이 더 악화됐을지도 모르겠다.“왜 벌써 절망하는가? 암에 걸렸다고 다 죽지 않는다.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 뒤표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밑엔 ‘암, 여기에 답이 있다’는 말과 함께 1. 먼저 암 박사가 되자 2. 수치는 숫자일 뿐이다.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3.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자 4. 암은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여기자 5. 어설픈 대체의학을 믿지 말자 6. 항암 식품에 현혹되지 말자 등이 쓰여 있었다. 프롤로그와 책 목차, 뒤표지만 읽어도 뿌옇고 안개 가득한 내 삶의 터널 속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 박사는 항암치료 기술이 덜 발달했던 1998년, 간에서 발견된 암덩이를 잘라낸 뒤 불과 두 달 만에 암이 폐로 전이돼 생존율 5% 미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고 항암치료를 받은 뒤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 일상을 지켜나갔다. 그 결과, 그는 2017년 84살의 나이에 자신의 책 개정판 서문을 썼고, 2019년 암 진단을 받은 나는 그를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암 진단을 받으니 잠시 시한부 환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런데 선배 암 환우이자 전문가인 의사가 들려주는 암 극복법을 살펴보니 나 역시 암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제야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방법도 많고 치료 효과가 뛰어나며 5년 생존율도 90%가 넘는다는 정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유방암에 대해 공부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한 박사가 권한 대로 ‘암 박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책을 고른 뒤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직에 빨리 이 소식을 알려야 대체 팀장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선배…. 제가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요…. 검사 결과가 안 좋아요. 제가 암이래요. 유방암.”“뭐라고?”“오늘 조직검사 결과 들었고, 수술할 병원 정했어요. 수술 날짜는 아직 안 잡혔고요. 아무래도 제가 빨리 복귀하지 못할 것 같아 우선 선배께 연락드렸어요.”놀란 선배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통화하다 보니 가슴 한구석에 잠잠하게 고여 있던 눈물이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참고 또 참고 참았지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흐… 흐… 흐흑흑흑… 선배… 죄송해요…. 이런 일로 걱정시켜 드리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아니야… 선아야, 진정해…. 너무 걱정 마…. 지금은 너만 생각해. 회사 걱정하지 말고. 일단 치료에 집중하자. 수술 날짜 잡히면 다시 연락줘.”집에 돌아와 유방암 관련 책을 보니 가슴이 절제된 사진들이 수록돼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고, 사진을 보니 무섭게만 느껴졌다. 잠시 느꼈던 희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에서는 유방암 발생의 위험 인자로 ①성과 나이 ②가족력과 유전인자 ③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 ④유방치밀도 ⑤동물성 지방과 비만, 과다한 음주 등 생활환경 요인을 꼽았다.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40대 여성에게 가장 많다는데 나는 40대다. 가족력은 없었고, 두 번의 출산과 함께 두 아이 모두 1년 넘게 모유수유를 했다. 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었다. 유방치밀도는 높은 편이었고, 동물성 지방 섭취나 과로, 비만 등은 해당되는 듯했다. 그러나 치밀유방이면서 나보다 동물성 지방을 더 섭취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만 그들이 모두 암에 걸리진 않는다. 더구나 한 개의 유방암 세포가 자라서 손으로 느껴지려면 적어도 1㎝는 되어야 하고, 이론적으로는 평균 4~7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 내 암의 크기는 2.5㎝라고 했으니 상당한 시간 동안 암이 자라왔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전 건강검진에서 어떠한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왜 내가 암에 걸렸는지, 왜 이제야 암이 발견됐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2019년의 마지막 달, 그렇게 나는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을 받았고 울고 또 울었다.사회정책팀 기자 anmadang@hani.co.kr
양선아 기자
양선아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3922.html?_fr=mt1#csidx8500a136e4d5c798c4e304cf99c83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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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확진 1000명 육박, 문대통령 "매우 심각한 상황"

12일 0시 기준 950명, 역대 최대 확진자... 정총리 "확산세 못 꺾으면 3단계"

20.12.12 15:30l최종 업데이트 20.12.12 15:36l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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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내 유입 뒤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2일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잇따라 메시지를 내놓고 긴급방역대책회의를 여는 등 강한 조치를 예고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2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지역 발생 928명, 해외 유입 22명) 누적 확진자수 4만 1736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6명 늘어 총 578명(치명률 1.38%)이 코로나 19로 사망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하루 신규 확진자수 최대치를 기록한 때는 지난 2월 29일(909명)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세가 퍼지던 때였다. 이후 8월 말 2차 유행(최대 400명 대), 최근 3차 유행의 추이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면목 없어", 정세균 "최고 수준 대응"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에서 11일 하루 동안 6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누적 화진자가 91명으로 집계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12일 0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 누적 4만1천7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
▲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에서 11일 하루 동안 6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누적 화진자가 91명으로 집계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12일 0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 누적 4만1천7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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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며 "마지막 고비"임을 강조했고, 정 총리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시사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실로 방역 비상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정부가 국민들의 큰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방역강화 조치를 거듭하고서도 코로나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불안과 걱정이 크실 국민들을 생각하니 면목 없는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마지막 고비이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과 함께 국민들의 경각심과 협조가 지금의 비상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라며 "철저한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확산의 고리를 일상에서 차단하는 노력을 함께 해 주시기 바란다. 지금의 고비도 반드시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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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방역대책회의를 열어 "지금의 확산세를 꺾지 못한다면 거리두가 3단계 격상도 불가피하다"라며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대의 위기다. 경제적·사회적 타격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지금 단계에서 확산세를 반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SNS 올린 글을 통해서도 "지금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 관리와 방역 대응을 최고 수준으로 가동한다"라며 "정부와 전국의 지자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위기 대응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모든 공공병원의 가용 병상과 민간병원 협력을 이끌어 내어 의료자원을 총동원하겠다"라며 "치료받지 못하거나 무작정 대기하는 확진자가 없도록 현장 중심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문 대통령과 정 총리의 메시지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코로나가 국내에 유입된 이후 하루 확진자 수가 최대인 950명을 기록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하며 코로나 확산세를 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전국 곳곳 일상의 공간에서 코로나 감염과 전파가 늘어나고, 특히 수도권은 어제 하루 669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실로 방역 비상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큰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방역강화 조치를 거듭하고서도 코로나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불안과 걱정이 크실 국민들을 생각하니 면목 없는 심정입니다.

정부는 심기일전하여 더한 각오와 특단의 대책으로 코로나 확산 저지에 나서겠습니다. 비상상황으로 인식하고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총력대응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감염자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 신속한 극복의 길입니다. 군과 경찰, 공무원, 공중보건의를 긴급 투입하여 역학 조사 역량을 강화하겠습니다. 이미 검사를 많이 늘렸지만, 타액 검사 방법을 확대하고 신속항원검사를 활용하여 진단검사의 속도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서울역, 대학가 등 이동량이 많은 지역 150곳에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여 조금이라도 염려되는 분은 누구나 검사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드라이브 스루와 워크 스루 검사방식도 대대적으로 늘려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검사 수를 대폭 늘리게 되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욱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집중적으로 감염자를 찾아내어 전파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입니다. 일시적으로 확진자가 늘게 되더라도 상황을 조속히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국민들께서도 확실한 방역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이해하며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확진자가 대폭 늘고 중환자도 늘어남에 따라 병상확보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정부는 치료할 곳이 없어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결코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코로나 전담 병원을 긴급하게 지정하여 1,000개 이상의 병상을 확보하도록 하는 조치를 우선 취했습니다. 당장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추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생활치료센터도 확보하여 환자들의 대기시간을 대폭 단축하도록 했습니다.

부족한 의료인력도 문제입니다. 다행스럽게 민간의료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고, 의대생까지 코로나 진료 지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마지막 고비입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과 함께 국민들의 경각심과 협조가 지금의 비상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철저한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확산의 고리를 일상에서 차단하는 노력을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국민을 믿고 특단의 조치를 집중적으로 시행하여 지금의 중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의 고비도 반드시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금일 코로나19 발생 이후 역대 최고치인 95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 관리와 방역 대응 체제를 최고 수준으로 가동합니다. 정부와 전국의 지자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위기 대응에 집중하겠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고 최우선적인 일은 충분한 병상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모든 공공병원의 가용 병상과 민간병원 협력을 이끌어 내어 의료자원을 총동원하겠습니다. 치료받지 못하거나 무작정 대기하는 확진자가 없도록 현장 중심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방역이 무너지면 민생도 함께 위협받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위중하고 비상한 상황입니다. "나부터 나서서 코로나와 싸운다"는 생각으로 모임과 만남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정부는 초유의 감염병 위기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일에 모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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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에 맞고 계란·밀가루 범벅된 전두환

김영란 | 기사입력 2020/12/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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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5·18 광주학살 전두환은 사죄하라!”

“학살자, 살인마 전두환을 심판하자!”

“5·18 특별법 통과되었다. 5·18 망언자 강력 처벌하라!”

“망월동 쇼 기만이다. 국힘당은 사죄하라!”

 

▲ 전두환을 골프채로 때리는 상징의식  © 김영란 기자

 

▲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전두환  © 김영란 기자

 

▲ 감옥에 갇힌 전두환  © 하인철 통신원

 

▲ 전두환에게 주먹을 날리는 촛불시민  © 김영란 기자

 

▲ 김태현 21C조선의열단 단장이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기자회견 후 전두환 집 앞으로 가는 시민  © 김영란 기자

 

전두환이 골프채에 맞고, 계란과 밀가루 범벅을 당하고 결국 감옥에 갇혔다.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41년에 즈음해 12일 오후 2시 시민단체들이 연희동 전두환 집 근처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처단 상징의식’을 위처럼 다양하게 했다. 

 

‘12.12 전두환 심판 연희동 동시다발 기자회견’에는 (사)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5.18민주화운동구속부상자회 서울지부, 보훈개혁연대, 주권자전국회의, 민청학련동지회, 긴급조치사람들,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서울대민주동문회, 경희총민주동문회, 성대민주동문회, 청년건대, 촛불혁명완성연대, 광화문촛불연대, 서울의소리, 21C조선의열단, 국민주권연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이 참여했다.

 

이날 동시다발 기자회견은 전두환 집 근처를 비롯해 네 군데에서 진행되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 취지를 “전두환을 반드시 심판하고 단죄하자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다. 국민들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12.12 군사반란은 그 뒤 5·18 광주집단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어서 전두환 일당의 집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 속에 살게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10여 년이나 지체하게 만든 대역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전두환과 그 일당을) 역사의 법정에 세워서 이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용만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은 “얼마 전 국회에서 5·18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5·18을 부정하는 것은 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전두환은 아직도 5·18 학살에 대해 부정하고 있으며 사죄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과 그 일당은 12.12 군사반란과 5·18 학살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다. 전두환은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이고 5·18 민주영령을 속이고 민주 국민을 속이는 짓을 멈춰야 한다. 전두환은 죽기 전에 모든 것을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와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해철 보훈개혁연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전두환과 같이 반성하지 않는 세력 때문에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준의 광화문 촛불연대 팀장은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있어서 전두환을 심판하는 것은 무엇보다 상징적이면서 핵심이다. 우리 국민은 전두환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12.12 전두환 심판 연희동 동시다발 기자회견'은 전두환 집 근처 네군데에서 진행되었다.     ©김영란 기자

 

© 박대윤 통신원

 

  © 하인철 통신원

 

전두환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인선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국민의힘 행태에 대해 “지난 9일 5·18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보인 행동은 가관이었다. 5·18 학살 주범 전두환의 후예, 똘마니처럼 온갖 망언을 내뱉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5·18 영령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은 보여주기식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국회 표결에서 여실히 그 가증스러운 가면을 던져버리고 수구꼴통, 국민 기만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5·18 광주민중항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해온 모든 이들을 당장이고 처벌해야만 한다. 바로잡을 때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한 뒤에는 연희동 일대에서 ‘전두환 심판’의 내용으로 1인 시위를 했으며, 대표단은 전두환 집 바로 앞에서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을 쳤다.  

 

김태현 21C조선의열단 단장은 전두환이 법적으로 사면 받았지만, 국민은 사면한 적 없기에 다시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들은 전두환에게 다음과 같이 호통쳤다.

 

“이제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이름으로 처단받으라.”-김용만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

 

“전두환이 끝까지 저항하고 반성하지 않을 때는 전두환을 처형하라!”-송해철 보훈개혁연대 대표

 

“희대의 살인마, 희대의 학살자 전두환은 역사와 민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21C조선의열단 단원 

 

“권력욕의 화신,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 군인들을 살인한 살인자, 광주에서 국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국민 학살자가 바로 전두환이다. 전두환을 처형하자.”-정영훈 촛불혁명완성연대 대표 

 

▲ 전두환 집 앞으로 가는 대표들  © 김영란 기자

 

▲ 대표들은 전두환을 다시 구속해야 한다며,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쳤다.   © 김영란 기자

 

▲ 대표들이 전두환 집 앞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최수동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장이 ‘12.12 군사반란 제 41주년, 전두환 집 앞 5‧18 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를 낭독한 뒤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아래는 공동기자회견 전문과 5‧18 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 전문이다. 

 

-----------아래------------------

 

[공동성명서] 

 

12.12 군사반란의 진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과 그 일당을 심판하자!!!

 

우리는 오늘 12.12 군사반란 41주년을 맞아 반란의 수괴 전두환의 집 앞에 왔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 추운 날씨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반란 수괴 전두환을 꾸짖는 것은, 비록 반란의 주모자와 핵심 가담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이 대단히 미약한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의 행태가 정확하게 단죄되지 않은 까닭에 우리 사회에 군사반란의 독버섯이 은연중에 자라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12.12 군사반란을 확실하게 진압하여, 다시는 이러한 망동을 본받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12.12 군사반란은 그 뒤 5.18 광주집단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어서 전두환 일당의 집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 속에 살게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10여 년이나 지체하게 만든 대역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죄과에 대해 전두환과 그 일당은 일말의 반성도 없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무슨 자랑이나 되는 듯한 언행을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철저하게 하되, 그것이 마땅치 않으면 새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또 역사의 법정에 세워서 이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둘째, 그 주모자와 핵심 가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으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으며, 그들은 정치적 권세에서만 배제되었을 뿐 여전히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고, 그들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의 후손은 3대가 가난하게 살고, 친일을 한 자들의 후손은 3대가 잘 산다는 속설이 오늘날에도 통용되어서, 역적의 무리들이 잘 살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불법적인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국민을 학살한 자들의 호의호식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정의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셋째, 12.12 군사반란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그 수괴와 일당들이 아직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자신의 죄과를 사죄하지 않는 까닭에 공공연하게 혹은 숨을 죽이며 그들의 반역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본받아 유사한 짓을 벌이는 자들도 있다. 12.12 군사반란은 공적인 국가권력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사조직을 위하여 폭력도 불사하는 만행이었고, 공식체계를 무력화하는 하극상의 난동이었다. 오늘날 윤석열 검찰이 저지르는,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 또한 이와 너무나 유사한 망동이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완전한 진압만이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할 것임을 우리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천 지침을 제안한다.

 

하나, 12.12 군사반란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여 그 죄과를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내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부당성과 이에 대한 항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헌법 전문에 기록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죄과, 그 주동자와 핵심 가담자들의 만행을 교과서에 싣고 후대에 경각심을 갖게 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을 옹호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키고, 그에 대해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 핵심 가담자 본인과 그 직계 가족의 재산을, 그 형성에서부터 축재과정을 철저히 조사하여 부정부패와 관련된 일체를 몰수하자. 


 

 

[12.12 군사반란 제 41주년, 전두환 집 앞 5‧18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

 

5·18 학살자 전두환은 역사와 국민 앞에 단죄 받으라

 

민주주의를 짓밟고 두 번째 군사독재로 인권을 탄압시대를 연 12.12 군사반란이 4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오늘, 당신 전두환은 군사반란 40주년을 맞이해 신군부 일당을 모아 강남 중국집에서 1인당 20만원을 호가하는 호화판 오찬을 벌여 국민적 분노를 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미 5·18민중항쟁은 대법원 확정판결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국내외의 평가가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당신 등 광주학살 책임자들은 5‧18의 진실을 왜곡해왔다. 이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5·18의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었다. 우리 5·18 서울기념사업회는 전두환에게 역사와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5.21 전남도청앞 집단사살 명령자가 당신 전두환이었음을 자백하라

전두환 당신은 항쟁기간 내내 광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오원기, 김용장, 문광식 씨는 5.21~22 당신이 헬기로 광주에 왔음을 증언했다. 지난해 4월 MBC는 보안사 기록에서 당신이 부마항쟁 진압을 지휘한 사실을 찾아내 보도했다. 이 모든 정황이 당시 신군부의 최고권력자였던 당신이 사살명령을 내렸음을 가리키고 있다. 반인륜적 양민학살의 주범이 자신이었음을 자백하라!

 

둘째, 5·18 당시 행방불명자와 사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히 자백하라   

5·18 기간 내내 사체들을 가매장했다는 당시 계엄군의 양심고백이 있었다. 허장환 씨는 당시 특전사 사체처리반이 광주에 파견되어 가매장 시체를 지문 확인후 처리했고, 국군 광주통합병원에서 소각로를 밤낮없이 가동했다고 증언했다. 육군본부의 기밀문서 ‘소요진압과 그 교훈’에는 5·18 기간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시체’를 옮긴 기록이 나온다. 계엄군이 죽인 사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히 자백하라!

 

셋째, 12.12와 5·18집단학살 후 쌓은 부정한 치부내역을 상세히 자백하라

전두환 당신은 집권후 자신은 물론 일가와 측근들 모두 수천억대 부자가 되었다. 1997년 선고받은 2,205억의 추징금 중 아직 체납액이 1,005억원에 이르는 당신은 29만원밖에 없다면서도 추종자를 수십 명씩 몰고 해외골프를 즐겼다. 연천 일대는 전재국 제국, 서울 서소문 일대는 전재용 타운이라 불리며, 전재만은 술집여자에게 4,600만원까지 초호화 시계를 턱턱 안겼다. 시중에는 전두환 당신의 숨겨진 비자금이 계속 불어나 10조가 넘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5공 이후 지금까지 엄청나게 불어난 당신의 부정한 치부내역을 낱낱이 밝혀라!

 

넷째, 불법적인 경호를 중지하고 단죄를 받으라

전두환 당신은 유죄판결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모두 상실했으나, 법적 경호기간을 17년이나 넘겨 불법적인 경호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CBS는 1997년 사면 이후 지난해까지 전두환의 경호비용으로 최소 100억 이상의 혈세가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올해에도 2억의 비용, 5명의 경호인력과 3채나 되는 경호용 건물을 쓰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후안무치함에 분노한 한 시민은 청남대에 세워진 당신 동상의 목을 자르려다 구속되었다. 역사의 죄인 전두환은 경호를 중지하고 단죄를 받으라!

 

5‧18 서울기념사업회는 5·18의 조작되고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고 역사왜곡 처벌법이 제정되어 숭고한 희생을 욕보이는 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그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2020.12.12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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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특별부문 공로상 정수근

 
20.12.11 17:03l최종 업데이트 20.12.11 17:31l
 

묵묵히 힘든 길 가던 환경운동가를 위한 헌사낙동강 지킴이 정수근이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가 제정한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특별부문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정수근은 지난 20여년 환경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수상은 현안에 매진하는 모든 활동가를 위한 헌사이기도 합니다.

정수근 개인의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전국 각지 수 많은 환경쟁점의 한 가운데서 묵묵히 공익을 실천하고 있을 이름 모를 분들을 위해 쓴 이 글을 공개합니다. <필자 주>  

 

 낙동강의 강바닥은 시커먼 펄이다. 정수근 시민기자는 이 펄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찾아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생명체다.
▲  낙동강의 강바닥은 시커먼 펄이다. 정수근 시민기자는 이 펄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찾아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생명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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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10여년간 근무하며 대한민국 전역에 자연과 인간이 따로 있지 않음을 알리는 일에 일조했고, 대구의 대표적인 명산 앞산(정식명칭은 대덕산이지만 대구에서는 앞산으로 더 많이 불림)을 뚫고 터널 공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풍찬노숙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긴 시간 앞산터널반대를 위해 싸웠으나 결국 터널은 개통되었고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비록 터널을 막는데는 실패했지만 정수근의 활동은 앞산터널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수근은 앞산꼭지 활동을 계기로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그에게 유산 상속한 까닭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앞산터널건설에 반대하며 지은 나무위의 집을 방문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앞산터널건설에 반대하며 지은 나무위의 집을 방문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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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은 대운하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인 4대강 사업을 막아내기 위해 평일과 주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낙동강을 돌아보고 사진, 영상, 글로 기록을 했습니다. 힘과 권력을 앞세운 토건세력들은 전국의 강바닥을 파헤치고 모래와 자갈을 퍼내며 본인들의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 사이 한 분의 스님이 분신을 하셨고 공사 중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습니다. 개발독재시대 이후 최대의 토목사업이었던 4대강 파괴현장을 다니며 그가 쓴 기록들은 469건의 오마이뉴스 기사로 남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실린 정수근의 글은 한 스님은 유산기증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입적하시면서 당신의 남은 재산을 강 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희사하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대구환경운동연합은 정수근의 활동에 힘입어 30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창립 이래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 없을 너무도 소중한 기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수근은 밀양 송전탑과 청도 삼평리 송전탑 사건에도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주민들과 연대하고 거대자본과 공권력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연대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밀양과 청도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가서 연대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송전탑 활동 당시 전 국민의 안정적 전기사용을 위해 희생당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송전탑 투쟁
▲ 송전탑 활동 당시 전 국민의 안정적 전기사용을 위해 희생당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송전탑 투쟁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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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활동으로는 영풍제련소의 오염행위에 맞선 것입니다. 정수근이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봉화지역 주민들이 꾸린 대책위를 중심으로만 알음알음 알려졌던 이 문제는 정수근이 연대하면서 전국 사안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낙동강 최상류에서 중금속 물질을 배출하며 영남의 식수원을 오염시킨 영풍제련소의 행위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낙동강탐방을 진행하고 유관단체에 항의했습니다.

정수근의 이러한 노력은 MBC PD수첩과 KBS 추척 60분 등 지상파의 대표적인 탐사보도팀의 현장취재를 이끌어냈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는 정수근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그가 속한 단체인 대구환경운동연합에 민주시민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에서, 특히 환경쟁점의 현장에서 승리한 역사는 동강댐 반대운동 백지화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개발사업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겁니다. 하지만 정수근은 묵묵히 그 길을 걸었습니다. 1998년 녹색평론사에서부터 2018년 영풍제련소까지 20여년간 숱한 좌절을 견디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힘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쉽고 빠른 길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던 사람
 
환경운동연합 대의원대회 환경운동연합 전국대의원 100여 명이 영풍제련소 제1공장 앞 낙동강변에서 영풍제련소 폐쇄촉구 현장 액션을 벌이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대의원대회 환경운동연합 전국대의원 100여 명이 영풍제련소 제1공장 앞 낙동강변에서 영풍제련소 폐쇄촉구 현장 액션을 벌이고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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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정수근의 방식은 옛날 방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거버넌스로 가야한다고, 이제는 투쟁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반대만 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거버넌스도 중요하고 교육도 중요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소모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정수근의 활동은 환경부를 움직이고 수자원공사를 움직여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각종 협의체를 발족시켰습니다. 거버넌스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시민교육에 쓸 수 있는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수자원공사 대구경북 지역본부가 운영하는 보현산댐협의회가 그렇고 낙동강사람들이 그렇고 낙동강 상류(영풍제련소~안동댐) 환경관리 협의회가 그렇습니다. 그의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 거버넌스 테이블에 초대되었고 부족하나마 민관 협의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수근은 우리 곁에 없습니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심신이 피로해서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50년 평생의 절반 가까이를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이 활동을 접고 2년째 칩거에 들어간 것은 어쩌면 사망선고에 가깝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여전히 정수근을 아끼는 이들은 그를 세상밖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추천서도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가 제정한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은 정수근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고, 양쪽 무릎과 팔꿈치와 이마를 땅에 대며 절하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행하기가 어렵고 지속하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고소고발의 위험이 상존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 번듯한 직위 한번 탐내지 않고 폼도 안 나는 현장에서 약자들과 연대하며 개인에게 돌아오는 직간접적 불이익을 감내하는 일은 어쩌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행하는 길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이해관계가 복잡한 환경쟁점의 한 가운데에서 늘 묵묵히 약자들과 뭇 생명들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현실은 팍팍하더라도 더 큰 것을 보고 가다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 믿으며 꿋꿋하던 사람입니다. 쉽고 빠른 길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던 사람입니다. 그가 지난 20년 간 환경파괴와 오염의 현장을 꾸준히 기록하였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를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이름으로 기록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걸어온 길이 실패의 역사로 남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낙동강 상수원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4대강에 건설된 일부 보에서 상시 수문 개방이 시작된지 이틀째인 2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낙동강 강정보 상류 상수원보호구역 강바닥에 쌓인 뻘에서 붉은깔따구가 발견되었다. 붉은깔따구는 수질 최하등급인 4급수 지표종이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낙동강 상수원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2017년 6월 2일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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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열린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공로상 시상식
▲  11일 열린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공로상 시상식
ⓒ 오마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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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이력 >
2015년 제3회 임길진환경상 수상
2019년 환경부장관상 수상

<출간저작물>
2016년 녹조라떼 드실래요? 주목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공저 (필진 참여)
2018년 내성천의 마지막 가을, 눈물이 흐릅니다. 도서출판참 정수근 저

<기사 및 블로그 기록>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정수근 페이지
http://www.ohmynews.com/NWS_Web/iRoom/index.aspx?MEM_CD=00536714

앞산꼭지의 초록희망
https://aps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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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역사왜곡처벌법, 국가보안법을 소환하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규탄한다

그런데 공수처법 외에도 문제적인 법안이 처리되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5.18 특별법'에 역사왜곡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 즉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가가 역사적 사실을 정의하고 이를 부인할 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차원의 포괄적인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올해 처음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도 출범하는 지금,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은 국가폭력의 역사를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피해자 회복에 노력할 것인지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국가보안법을 소환하다


 

민주당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의 이유로 '잘못된 역사인식의 전파와 국론분열의 방지'를 들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유들이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 '다른 역사인식'을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회해악적인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법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보수세력은 천안함 사건이나 6.25 왜곡에 대해서도 처벌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법률이 이미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과거사나 역사인식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은 아니지만, 북한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에 '다른 인식'을 퍼뜨릴 시에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처벌해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5.18의 역사적 진실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알리는 과정 자체가 국가보안법과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를 처벌'하겠다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정치사상의 자유,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을 위한 투쟁이 5.18 운동이었다. 그런데 5.18에 대해 부인, 비방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국가보안법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지닌 법이 5.18의 이름으로 제정되려는 것이다. “역사왜곡이 아이들 역사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정신적 내란죄”라며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옹호하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의 발언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혐오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명예훼손죄 고소?


 

그럼에도 5.18 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한 비판을 찾기 쉽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5.18 망언과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과의 결탁이 준 충격과 함께, 5.18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던 5.18에 대한 왜곡과 혐오가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을 통해 공언되고 학살 책임자 전두환이 회고록을 출간해 이를 반복하는 상황은 5.18 피해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폭력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총선과 겹친 세월호 추모 시기가 되면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한 주된 대응은 해당 발언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 고소였다. 세월호의 경우 형사입건되어 수사로 이어진 것만 200여 건이 넘는다. 지난 주 전두환 유죄 판결도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이었고, 올 초에 있었던 지만원 유죄 선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거짓 사실을 드러내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어떤 명예인지를 사회적, 공적 차원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소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 일체에 대해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는 전통적으로 권력집단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성폭력 가해자, 국가기관, 기업, 법인, 선거 시기 정치인들이 입막음을 위해 민형사상 명예훼손죄 고소를 남발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사회가 국가폭력 피해자 혐오행위에 대해 적절한 규제와 대응방법을 찾지 못한 사이, 피해당사자들은 명예훼손죄 고소를 통해 개별 사건, 특정인을 상대로 한 대응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는 5.18,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 공통의 인식지평 속에서 나온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 어떤 '명예'든 상관없이 보호하려는 명예훼손죄에 따른 판결일 뿐이며, 이러한 판례가 쌓이는 것은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정의의 실현이 아닌 명예훼손죄 처벌 활성화로 귀결될 뿐이다. 명예훼손죄는 고소인에 대한 객관적 사회적 평가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는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며 등장한 5.18 역사왜곡처벌법 역시 기본권 침해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상규명의 목적은 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아니다


 

5.18,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인과 왜곡,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행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은 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법률'부터 시작해 전두환, 노태우 처벌, 국가유공자 예우, 국가기념일 지정까지 이루어졌지만, 법률에 근거해 조사권한을 부여받은 진상규명 조사위는 2020년에야 겨우 출범했다. 5.18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진상규명보고서조차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주의와 결합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 결과 5.18에 대한 부인과 왜곡이 정치적 자산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규명조사위를 꾸리는 과정 자체가 투쟁이었고, 이제야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다.


 

국가폭력 및 국가범죄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규명을 남긴다는 건, 한 사회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을 시작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폭력인지, 어떤 행위가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인지, 피해자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지속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어떤 행위가 차별인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고용, 교육, 재화서비스, 행정서비스와 같은 '공적-시민권 영역'에서 차별 금지와 예방, 피해 구제를 분명히 규정해 차별과 혐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을 세우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국가기관-정치인-언론과 같은 공적 기관과 인물들에 의해 국가폭력이 부인되거나 왜곡될 때 가장 큰 충격을 받고 공적 부인과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지만원의 국회 강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총선 후보들의 세월호 혐오 발언이 그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막고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충실한 진상규명을 통해 혐오표현이 국가폭력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만드는 것. 이를 통해 '공적-시민권 영역'에서부터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예훼손죄의 확대, 역사왜곡처벌법에 의한 형사처벌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 상임위에서 40년 만에 구성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을 연장하고, 조사범위도 확대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20대 국회 때 개정된 과거사법에 따라 '2기 과거사위'도 새롭게 출범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너무나 오래 지연되고 지체되어왔다. 그 시간만큼 피해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아왔다. 이번 진상규명은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준거점을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 되어야 하며, 진상규명의 목적이 형사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보다 형사처벌을 앞세우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11525226433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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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까지…” 아들 2주기 다음 날 ‘단식농성’ 시작한 김용균 어머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2/12 09:44
  • 수정일
    2020/12/12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당, 중대재해법 또 미루나 “임시국회 내 ‘상임위’서 통과”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20-12-11 14:00:24
수정 2020-12-11 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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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매일같이 용균이처럼 끼어서 죽고, 태규처럼 떨어져서 죽고, 불에 타서 수십 명이 죽고, 질식해서 죽고, 감전돼서 죽고, 과로로 죽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화학약품에 중독돼서 죽습니다. 너무나 많이 죽고 있습니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

면 좋겠습니다."

 

2년 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11일 국회에서 이같이 말한 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아들의 참혹한 죽음 이후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됐음에도 여전히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다며 "세상은 변한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 반드시 중대재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김 이사장의 절실한 요구다.

김 이사장을 비롯해 일터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이날 정의당과 함께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이사장은 중대재해법 촉구를 위한 국회 농성을 이어가기 위해 전날 태안에서 열린 2주기 추모제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중대재해법을 좀 만들어 달라고, 정부와 국회가 안전을 책임져서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국회에서 7일부터 노숙 농성을 했다. 국회의원들에게 법 좀 만들어달라고 허리 숙여 얘기도 했다. 그러다가 때로는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소리 높여 답답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아직 논의도 안 되고 있다고 하니 너무도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래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며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이 없어 무섭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투쟁 방식인 단식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뜯어말리고 싶었는데 이제 저 스스로 택한다"고 단식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 이사장은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법이 제대로 만들어질 때까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단식을 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잘 버텨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열악한 방송제작 환경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도 김 이사장과 함께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

이 이사장도 지지부진한 중대재해법 논의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차오르는 눈물을 꾹 삼켜가며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어나갔다.

이 이사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저희 가족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저 모든 삶이 부서져 버린 저희와 같은 가족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나라, 일하러 갔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위해, 계속되는 죽음을 보며 계속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며 "오늘부터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 투쟁을 할 것이다. 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국회는 조속히 중대재해법을 제정해달라"며 "제발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전날 단식농성 시작을 알렸던 강은미 원내대표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약속했던 거대 양당 지도부를 향해 "더는 미루지 말자"며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강 원내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뒤로 밀려나는 동안 지난 정기국회 막바지의 모습은 어떠했나. 174석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나"라며 "중대재해법보다 12일 늦게 발의된 공정거래법은 절차와 논의를 무시하고 사활을 걸면서 왜 국민들 생명 지키고 안전 지키는 일에는 사활을 안 거는지 엄중히 따져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강 원내대표는 "말뿐인 중대재해법으로는 노동자들을 살릴 수 없다"며 "중대재해법의 제정으로 안전한 일터, 생명존중 대한민국이라는 결과로 보여달라. 반드시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중대재해법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중대재해법의 운명은 사실상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정의당과 시민사회계에서는 늦어도 올해 안에는 중대재해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이 원칙이라는 말만 할 뿐 정확한 입법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최대한 이번 임시국회 내 상임위에서 통과시킨다는 목적으로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정책 의원총회가 소집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본회의 처리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인 것이다.

최 수석대변인은 '이번 임시국회 때 통과 가능성은 상임위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중대재해법은 제정법이라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많다"며 "법과 관련된 범위가 워낙 넓고 관계되는 법률이 이미 있고, 법안끼리의 충돌이나 여러 부분에 있어서 검토해야 할 사항이 상당히 많은 법"이라고만 답했다.

이번 임시국회는 해를 넘겨 오는 1월 8일까지 이어진다. 물론 임시국회를 추가로 소집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면 곧바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제대로 법안을 논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앞줄 왼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2020.12.11. (공동취재사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앞줄 왼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2020.12.11. (공동취재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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