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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이재명 면전에서 이스라엘 총칼 대변...누구의 안보실장인가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5.21 07:31
  •  
  •  댓글 0
 
   
 

우리 국민이 외국 군대에 체포·구금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장은 국민을 지키는 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논리를 먼저 대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거기가 이스라엘 영해냐.”

“제3국 선박을 나포해도 되느냐.”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는 정세 분석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떤 원칙으로 대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사안의 본질은 단순하다. 우리 국민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 구호선단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무장 세력도, 교전 참여자도 아니다. 정부의 첫 번째 원칙은 자국민 보호와 신병 확보, 그리고 이스라엘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항의여야 했다.

그러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답변은 이스라엘의 해명과 닮아 있었다.

 

“이스라엘이 교전중이라 군사 통제를 하고 있다”

“가자 사태는 하마스의 공격에서 촉발됐다”

상대국의 군사 논리를 그대로 읊은 셈이다. 외교안보 책임자가 먼저 흘린 말은 “여행금지구역에 왜 갔느냐”는 국민 탓이었다.

위기에 처한 국민 앞에서 국가가 가장 먼저 “왜 거길 갔느냐”부터 묻는다면, 그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여행금지구역 위반 여부는 국민을 구출한 뒤 국내법에 따라 따지면 될 일이다. 국민 보호라는 기본 책무가 흔들리는 순간 국가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는 맹목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우리 국민의 안녕은 부차적으로 여기는 외교안보라인의 사대적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교전 중이라 통제한다”는 안보실장의 강변은 이스라엘의 공해상 나포와 불법 체포를 사실상 용인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가자지구 봉쇄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국제법 위반 지적을 받는 범죄적 군사 행동이다.

대한민국 안보실장이 우리 국민보다 이스라엘의 총칼을 먼저 변호하는 현실 앞에서 대중은 묻는다. 위성락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안보실장인가.

"우리 국민을 잡아갔으니 하는 말!" 분노한 이재명 대통령에 진땀 흘리는 위성락 안보실장 "네타냐후는 전쟁범죄자!" 직격 ㅣ 출처 : 안동M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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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미국의 은혜를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되는 국가인가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  
  •  승인 2026.05.20 07:44
  •  
  •  댓글 0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남만주철도 선로 폭파 사건을 빌미로 중국군을 공격해 만주를 점령한다. 일본이 조작한 사건이었다. 당시 만주작전은 현지 관동군이 먼저 일을 벌이고 도쿄 정부가 뒤따라 승인하는 식이었다. 1932년 3월 1일 창춘(長春)을 수도로 만주국이 출범한다. 겉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괴뢰국가였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처음에는 집정, 1934년부터는 황제로 세워졌지만 명색뿐이었다. 1945년 8월 소련군의 만주 침공으로 일본은 패했고 만주국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만주국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일본 제국의 은혜와 보호”에 두었다. 겉으로는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내세웠지만, 일본의 대륙 침략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만주국의 친일 엘리트에게 일본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자기 국가의 창조자였다. 그들은 일본 덕분에 국가가 태어났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친일 엘리트 지배층은 건국신묘(建國神廟)와 건국충령묘(建國忠靈廟)와 각 도시의 충령탑, 전적기념비, 일본군 전몰자 기념물을 건축해 일본의 희생을 기렸다.
 

건국신묘는 만주국을 세운 신으로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셨다. 건국신묘와 나란히 놓여 있는 건국충령묘는 만주국판 야스쿠니 신사다. 만주국 수립과 일본의 만주 정복 과정에서 죽은 일본군을 ‘건국의 영령’으로 모신 곳이다. 각 도시의 기념물 역시 일본의 희생을 추모한다. 이런 시설들이 만주국 주민에게 준 메시지는 일본군이 피를 흘려 이 땅에 새 질서를 세웠으니 경배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느닷없이 식민의 굴레에 사로잡힌 대다수 주민들의 내적 저항과는 별도로 숭일 체제는 만주국 존립 기간 내내 견고했다.

일제 말기 조선에서 벌어진 황국신민화도 친일 엘리트들에게는 출세의 길이요 보은의 길이었다. 일반 민중들이 식민의 멍에를 벗으려 발버둥치고 있을 때 숭일 세력들은 조선의 독립적 존재보다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을 근대화의 길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자기 정체성이란 바로 일본이었고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그들은 일본을 구원과 문명화와 존립의 기반으로 생각했고 그에 대한 감사를 자기 의무로 내면화했다.

1945년 한국의 해방은 일제의 식민을 미제의 식민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했다. 반민족적 이승만과 미국의 야합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간섭을 항상 흔쾌히 여기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군사 작전통제권 이양과 한미 동맹조약 체결은 대한민국을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는 견고한 숭미체제로 업그레이드했다. 지금 전국에는 미군과 유엔군을 기리는 파주 임진각의 미국군 참전 기념비와 부산 유엔 기념공원과 같은 기념물들이 수백 개가 널려 있다. 우리의 생존과 존재의 기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인공물들이다.

대한민국의 성격 규정, 한국전쟁의 기원과 책임론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국가관에 대해서는 좌우의 논쟁이 있고 당장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예컨대 “애초에 분단체제와 미군정의 산물인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였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은 ‘구원’이 아니라 ‘민족 분열 영구화’의 비극이다. 그들이 지금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들도 이를 가능케 한 미국과 유엔에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는 억지다. 특정한 역사관의 강요다.

 

유엔군 참전은 “무조건적 선행”이 아니라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정치 행위였다. 이해관계가 있는 행위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감격하고 복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유엔군 참전은 남한의 붕괴는 막았지만,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으며 분단은 더 굳어졌다. 어떤 역사적 개입이 장기적 비극을 낳았다면 그 개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감사로 끝날 수 없다. 그리고 감사는 개인의 윤리이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국민이라면 반드시 유엔과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충성 요구는 숭미의 가치관이다.

후대에게 세습 채무를 부과하려는 것도 불합리하다. 1950년에 어떤 외국 군대가 남한을 도왔다는 사실이 2026년의 한국 시민에게 “미국에 계속 고마워하라”는 정치적 빚으로 자동 승계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기억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외교적 종속이나 비판 금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유엔군 참전이 남한을 도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감사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는 숭미세력들이 미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한미동맹의 ‘굴레’에 묶으려 별의별 일을 다 벌인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조성해 5월 12일 공개한 광화문 광장의 ‘감사의 정원’은 “받들어 총” 모양 조형물로 한국과 22개 참전국을 기리고 있다. 외국 군대에 대한 충성과 감사의 자세를 조형물로 세운 셈이다. 한국 외무부 건물 바로 앞이면서 미 대사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조형물은 대한민국의 기원을 유엔군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진영의 구원 서사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국을 기억하자”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은 자유진영의 희생으로 보존되었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영구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압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형물이 미국만을 바라보고 가지 않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외교 행보에 대해 국힘과 극우세력이 극렬히 저항하고 있는 시점에 공개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이해를 앞장서 대변했던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승인된 계획이다. 광화문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의 정원’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생존을 내부의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역량보다 미국 주도 질서의 공헌임을 강조한다. 숭미적 국가기원론이다. 만주국과 일제 식민지 하의 숭일세력이 가졌던 자기의식의 본질이다.

6·25 참전국을 기억하는 사업은 이미 차고 넘친다. 우리 해방이후 역사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작업은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과거 숭미정권들이 앞 다투어 벌여온 감사와 보은의 행정을 언제까지 용인할 생각인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에서까지 외국 군대에 충성하는 몸짓을 보이려는 세력을 얼마나 더 인내할 생각인가.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란 결국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구원이라고 무의식에라도 인정할 것인가. 나라를 주권독립국으로 우뚝 서지 못하게 할 불순한 저의로 조성된 광화문 ‘숭미의 정원’은 당장 폐기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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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탄'에 죽어가는 도시…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탈(脫) 석탄의 딜레마] ① 폐쇄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허환주 기자 | 기사입력 2026.05.20. 08:52:44

태안 시내에서 25km 떨어진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길을 40분 정도 차로 달리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커다란 굴뚝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볼 수 있다. 말이 수증기지 석탄을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먼지 등이 섞여 있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는 10기의 발전 호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인적도, 이렇다 할 가게도 없다. 그나마 발전소 정문에서 상당 거리에 식당과 편의점 하나가 있을 뿐이다. 발전소 변압기에서 나오는 '웅웅'거리는 저주파 소음과 전자파가 뿜어져 나오는 송전탑은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다.

▲ 태안 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는 송전탑. ⓒ프레시안(허환주)

2037년까지 총 10호기 중 1~8호기가 폐쇄

태안 화력발전소를 찾은 이유는 한 통의 전화였다. 충청도에서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노무사였다. 태안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가 2025년 12월 1호기, 2026년 2호기를 시작으로 2037년까지 총 10호기 중 1~8호기가 순차적으로 폐쇄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렇게 폐쇄될 경우,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폐쇄된 1호기는 LNG 발전소로 대체되나, 태안이 아닌 구미에 지어진다. 올해 폐쇄되는 2호기의 대체 발전소도 공주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2028년 폐쇄되는 태안 3호기(여수), 2029년 폐쇄 예정인 태안 4호기(아산), 2032년 폐쇄되는 태안 5호기(용인), 6호기(용인)도 마찬가지다. 2037년에 폐쇄되는 7호기와 8호기만 대체 발전소가 어디에 지어질지 미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다른 지역에 지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석탄발전소가 LNG 발전소로 대체된다 해도 태안에서는 일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결국 우리는 죽거나 다쳐서 사라지거나, 잘려서 사라져요. 그래도 아무런 말도 못해요."

노무사 이야기를 들으며 15년 전 대량 해고 바람이 불던 조선소를 취재할 때, 그곳 하청 노동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신들을 찍소리도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는 조선소든 발전소든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2018년 김용균, 2025년 김충현,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둘 다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프레시안(허환주)

대형마트도,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는 태안

취재를 위해 찾은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태안 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흔한 콜택시도 없었다. 발전소 정문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나, 하루 6번 운행되는 이 버스는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근처 편의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1시간 20분 후에나 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터벅터벅 인도도 없는 왕복 2차선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발전소에서 시내로 향하던 SUV 차 한 대가 기자 앞에 섰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이었다. 버스도 택시도 없는 길 한쪽을 걸어가는 게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태안 시내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여성분은 이곳 발전소에서 일한 지 3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서인천에 있는 발전소에서 근무했다. 태안 발전소는 서로 가지 않으려 하는 곳이기에 의무 순환직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이 자기 차례였다.

'뭐가 없는 곳.' 태안 화력발전소가 주는 이미지라고 했다. 그래도 없으면 뭐가 얼마나 없겠냐며 이사를 왔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태안에는 대형마트도,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다. 충청남도에서 고속도로가 없는 유일한 군이다. 그나마 관광지로 안면도가 유명하기에 거기만 사람들이 붐빈다.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될 당시 8만4000여명이던 태안군 인구는 올해 처음으로 6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태안군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태안 화력발전소 폐지로 2040년까지 발전소 직원·가족 등 4500여명이 태안을 떠난다. 동시에 지역 경제에는 12조7644억80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사실상 죽어가는 도시인 셈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해왔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발전소에서 일하게 됐을까. 폐쇄를 앞두고 세운 계획은 무엇일까. 40대 여성이 태워준 SUV 차량에서 내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이어졌다. 태안 화력발전소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허환주 기자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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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국토부와 12번 현장 회의하고도 ‘GTX 삼성역 철근 누락’ 보고 안 했다

수정 2026.05.20 07:59

1~4월 넉달간 국토부와 현장점검서도 보고 안해

서울시 ‘철근 누락 인지’ 지난해 11월, 은폐 의혹

서울 강남구 GTX-A 노선 구간인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현장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삼성역 구간 공사에서 국토교통부와 10번 넘게 현장 회의를 했으면서도 현대건설의 철근 누락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면접촉까지 수차례 하면서도 국토부에 철근 누락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울시가 이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이 19일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5년 11월10일 이후 서울시, 국가철도공단, 국토부 현장 방문 기록’ 문서를 보면, 삼성역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와 공사 위탁자인 국가철도공단은 국토부와 함께 지난 1월29일부터 4월25일까지 삼성역 공사현장에서 열두 차례 점검 회의를 열었다.

기록을 보면, 서울시는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이후 국토부 관계자, 외부 전문가와 함께 지난 1월29일 ‘균열점검’을 했다. 이때에도 국토부에선 실무 책임자인 광역급행철도건설과장 등이, 서울시에서는 영동대로복합개발사업총괄과장 등이 참석했지만 철근 누락 사실은 보고되지 않았다.

특히 3월31일에는 서울시와 국토부의 ‘합동점검’이 진행됐다. 철도국장, 광역급행철도과장 등 국토부 실무 책임자들과 서울시 영동대로복합개발추진단장, 영동대로복합개발사업총괄과장 등 서울시 실무 책임자들을 모두 포함해 1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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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서울시로부터 철근 누락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철도공단 측도 “그동안 서울시, 국토부와 현장 점검을 했지만 (서울시는) 중대 결함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4월25일에는 ‘열차 투입 전 최종 점검’을 했지만 서울시는 이때도 철근 누락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지난해 10월23일 처음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현대건설은 그해 11월10일 서울시에 철근 누락 사실을 이메일로 보고했고, 서울시는 6개월이 지난 지난달 29일 국토부에 철근누락 사실을 보고했다.

서울시는 현대건설에서 보강 공사계획을 보고받은 뒤 국토부에 알리려고 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건설로부터 보강 대책을 보고받은 다음 국토부에 통보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것일 뿐, 사고에 대한 대책도 안 세우고 통보하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보 시기의 문제일 뿐 이걸 숨기고 은폐하려던 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시점을 두고 서울시 관계자의 발언도 엇갈리며 의혹을 키우고 있다. 삼성역 공사의 실무를 총괄하는 임춘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철근 누락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시점을 “제 기억으로는 3월 언저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입수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현장방문 계획’ 문건에 따르면, 임 본부장은 지난 1월16월 현장 관계자 격려차 삼성역 공사현장에 방문해 현장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의원은 “삼성역 공사의 총괄 책임자인 본부장이 철근 누락 같은 중대한 공사 결함을 보고받고도 오세훈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라며 “오세훈 후보의 입지를 위해 시민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사건을 은폐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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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3년 전 죽은 동생, 한국 '5·18 테이프'에 살아 있다니

[내 이름은 원덕기: 누나 록산, 미네소타 인터뷰①] 죽기 전 그날의 '목소리' 찾던 팀 원버그..."동생에게 광주는 공동체"

26.05.20 06:48최종 업데이트 26.05.20 07:11

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편집자말]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다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한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미네소타에서의 인터뷰 도중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미공개 테이프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희훈

33년 전 지병으로 죽은 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노트북 화면 속 동생은 떨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2분 30초 동안 머나먼 나라의 학살을 증언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광주" 한복판에서 동생은 못 보던 선글라스를 쓰고 "군인들이 잔혹하게 때려 사람들의 머리가 찢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고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가 촬영·편집한 총 30여 분의 이 영상은 동생의 모습 외에도 그의 말을 증명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동생은 죽기 전까지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했다.

다만 동생이 목격한 참상을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50년 넘게 간호사로 일했고 인간의 신체에 익숙했지만, 잔혹한 폭력의 잔상은 누나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왜 그토록 동생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했는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촬영한 인터뷰 영상의 화면을 갈무리한 것. 영상 속 인물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Tim Warnberg, 한국 이름 원덕기)다.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그의 미소 닮은 누나

미국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8년부터 광주에 머물다 5·18민주화운동을 한복판에서 경험한 고 팀 원버그(Tim Warnberg, 5·18 당시 25세). <오마이뉴스>는 5·18기념재단이 보관한 힌츠페터의 미공개 테이프에서 46년 전 팀의 인터뷰를 발견했고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Roxanne Warnberg Wilson, 72)을 만나러 지난 겨울 끝자락에 미국 미네소타로 향했다. 5·18 당시 촬영된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은 그동안 볼 수 없는 기록물이었다.

열흘 간의 항쟁을 목격한 팀은 시민들을 구타하는 계엄군을 말리다 곤봉에 얻어맞기도 하고, 총칼을 찬 군인들 사이로 부상자들을 병원에 이송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라는 주한 미대사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유창한 한국어로 외신기자들의 통역을 도왔으며, "5월 18일에 광주에 있었다"며 힌츠페터가 제안한 인터뷰에도 기꺼이 응한 그였다. 1987년 외국인 최초로 5·18을 폭도의 소행이 아닌 시민의 항쟁으로 정의한 논문을 발표한 팀은 6년 뒤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말 처음 힌츠페터 테이프에서 팀의 인터뷰 영상을 발견했을 때, 취재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팀과 함께 5·18을 목격한 다른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돌린저, 폴 코트라이트에게 그의 누나 록산이 미네소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처를 받았다.

영상통화로 만난 록산은 팀과 같은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도 비슷했다. 의사를 꿈꾸며 광주에서 의료 봉사를 했던 팀처럼, 록산도 5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매년 동생의 기일이면 록산은 소셜미디어에 그가 46년 전 광주에서 들것을 든 모습을 올린다고 했다. 팀을 더 알고 싶다는 취재진의 목표는 그때부터 바뀌었다. 스물다섯 청년 팀의 육성을 팀을 꼭 닮은 그의 가족에게 뒤늦게라도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지난 2월 28일, 12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미네소타는 영하 15도에 육박했다. 도로 곳곳에는 직전 내린 눈이 얼음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고, 지난 1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를 동원한 국가폭력과 이에 대응한 대규모 저항의 여파도 남아 있었다.

우리는 3월 1일과 4일 두 차례 록산을 인터뷰했다. 두 번째 만남은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사이 달라진 점은, 록산이 힌츠페터 영상 속 동생의 모습과 광주의 참상을 눈으로 봤다는 것뿐이었다.

첫날 인터뷰 중 영상을 본 록산은 "정말 끔찍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취재진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영상을 "선물이자 무거운 과제"라고 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잔혹한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니, 정말 충격적입니다. 피해자들, 목격자들, 심지어 군인들에게도 참혹한 마음이 듭니다. 영상을 직접 보니, 동생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나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마치 선물이자 무거운 과제(a gift and a burden to carry)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우리가 맞서야 할 일들이 있고, 함께 지켜야 할 가치들도 있으니까요."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체크무늬 셔츠)와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나경택 제공

따뜻함에서 나온 팀의 용기

록산은 "사람들이 동생의 용감함과 담대함에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그의 따뜻함"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보여준 팀의 용기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던 그의 성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뜻하다(kind)고 할지,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compassionate)고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팀은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뒤에서 묵묵히 챙기던 사람이었어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팀의 친구를 몇 년 후 만났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도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을 때, 팀은 우리 집에 놀러 와 나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팀은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걱정했죠. 그때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팀이 정말 좋은 친구가 돼줬어요'."

록산은 팀의 이런 면모를 두고 "부모님의 좋은 점을 고루 물려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 조용히 알아차리고 챙겼다"며 "어디에 있든 사람들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능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우리 지역 치안의 총책임자(한국의 지방경찰서장과 비슷한 개념인데 차이점은 선출직 - 기자 주)였는데 다양한 계층과 친구가 되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다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팀 원버그의 어린 시절 모습. 뒷줄 가장 키가 큰 두 사람이 팀과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다.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이러한 맥락에서 록산은, 팀의 용기가 5·18 전 2년 간 광주에 살며 광주를 "자신의 마을"이자 "공동체"로 여겼기 때문에 발휘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광주는 팀에게 자신의 마을이자 스스로 속해 있다고 느끼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한국은 내가 아끼는 나라고, 광주 시민들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다. 침묵할 수 없다.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팀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항쟁에 나서기도 했고 다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미국인인 자신이 현장에 몸을 던져서 '멈추라'고 외치고, 외신기자들에게 이 상황을 알린다면 뭔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아끼는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록산을 통해 제공받은 대학원생 팀의 글에도 한국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사실 나는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라 미국 정부에 의해 평화봉사단원(1960년대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 - 기자 주)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 내가 만난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인내심에 매료됐다. 몇 달이 지나자 나는 한국에서 꽤 편안함을 느끼게 됐고,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은 나의 집이 됐다(Korea was to be my home)."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팀 원버그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중 한국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 오른쪽은 함께 5·18을 목격한 데이비드 돌린저.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동생의 삶 뒤흔든 광주

특히 록산은 "광주가 동생의 삶을 뒤흔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팀은 한국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까지 5·18에 연루됐다고 생각했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잔혹함과 폭력이 용인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팀에게 충격이었죠. 다른 면에서는 그 경험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을지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도와 식사를 준비하는 것과 실제로 누군가를 위해 총 앞에 서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죠."

정말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애초 의대 진학을 위해 평화봉사단원이 됐던 팀은 의대에 가지 않았다. 5·18 이후 5년을 더 한국에 머무른 뒤, 1986년 미국 하와이대학 한국학 석·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원 첫 학기 수업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5·18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결심하고, 1년 뒤 이를 발표했다.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록산은 그 논문이 실린 하와이대학 한국학 학술지를 지금도 갖고 있었다.

"당시 팀은 저에게 그 논문이 담긴 책을 보여줬어요. 제 기억으로 팀은 자신이 5·18에 관한 글을 쓴 최초의 외국인이라고도 했어요. 팀은 광주에서의 일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미네소타서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쓴 5·18민주화운동 관련 논문의 원본을 내보이고 있다.이희훈

록산은 팀이 박사과정 중 집필한 여러 글 또한 내보였다. 팀은 5·18 논문을 쓴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의 정치상황, 특히 직접 겪은 5·18이 학생운동과 한국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었다. 팀이 1991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운동의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 for the student movement)>라는 제목의 글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광주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군 내부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의 시민을 학살하는 일까지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전두환과 그의 측근들은 이후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지만, (...) 그에 대한 국민적 수용은 기껏해야 냉담한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국민은 민주화를 원하고 있었고, 광주의 참상 또한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 특히 1987년, 한국이 이른바 '프라하의 봄'과 같은 시기를 맞으며, (...) 정부가 자국민에게 무력을 행사할 리 없다고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조차 참혹한 학살을 담은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사진·TV 프로그램·생생한 증언을 접했고 결국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록산은 팀이 죽음을 앞두고도, "광주가 잊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은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 5·18 중 팀을 인터뷰한 AP통신 소속 미국 기자)에게 연락해 당시 자신이 한 인터뷰의 녹음 테이프가 있는지 물었다"며 "또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광주항쟁' 논문의 존재를 알렸다. 필요할 때 우리가 그 논문을 찾을 수 있도록 굉장히 신경 썼다"라고 설명했다.

록산은 팀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병이 점점 자신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테리 앤더슨 기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회상하며 "팀은 자신만이 간직했던 광주의 기억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것이 광주를 계속 드러내고 널리 기억되게끔 하려는 팀의 노력이었다"며 "테리가 그 테이프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팀은 결국 광주를 증언하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고 떠났다"라고 설명했다.

아래 팀이 테리 앤더슨 기자에게 쓴 편지를 요약했다.

팀 원버그가 숨지기 1년 전인 1992년 3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을 취재한 테리 앤더슨(당시 AP통신 기자)에게 쓴 편지. "제 삶에서 저를 깊이 변화시킨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그 혼란스러웠던 광주의 날들을 떠올리게 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친애하는 테리에게

제 이름은 팀 원버그입니다. 12년 전, 제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광주에 있고, 당신이 그 도시의 학살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을 때,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당신은 저를 인터뷰했으며, 녹음도 했습니다.

상태가 다소 호전되기는 했지만, 병은 서서히 저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 저를 깊이 뒤흔든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혼란스럽고 참혹했던 광주의 날들(chaotic days in Kwangju)을 떠올리게 됩니다. 학살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고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경악했습니다.

지금 가족과 함께 보내고 계신 소중한 시간을 더 방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 상황이 저를 조금은 대담하게 만듭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를 인터뷰하며 녹음하셨던 테이프가 아직 남아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사본을 받아 당시 제가 직접 겪은 학살에 대한 제 증언(my first-hand account of the massacre)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진심을 담아, 팀 원버그 드림

1992년 3월 20일

이 편지를 설명하며 록산은 취재진을 통해 본 팀의 인터뷰 영상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팀이 인터뷰 영상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에게 큰 위로가 됐을 것"이라며 "그가 테리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도 바로 그 당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자 한 것" 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지만, 이 영상을 봤다면 기쁨(joy)도 느꼈을 것 같아요.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팀은 자신의 말이 여전히 남아 있고, 자신이 본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모습에 안도했을 거예요."

<내 이름은 원덕기> 제작을 위한 펀딩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바로가기 https://omn.kr/2i36q

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제작 지원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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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에너지·공급망엔 '의기투합'…북·중 대응엔 '온도차'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5/20 08:28
  • 수정일
    2026/05/20 08: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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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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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국방

  • 입력 2026.05.20 07:25

  • 수정 2026.05.20 07:45

  • 댓글 0

다카이치 '중국 저지' vs 이재명 '중국과 동행'

"한·미·일 협력도, 한·중·일 협력도 중요"

다카이치 "북핵 문제 대응 한·미·일 공조"

이재명 "싸울 필요 없는 평화의 한반도"

LNG·원유 스와프, 공급망 협력 본격화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 착수 '환영'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이 대통령의 고향 안동에서 마주 앉았다. 올해 1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 나라현에서 만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양국의 셔틀 정상외교가 완전히 자리 잡은 모양새다.

두 정상은 소인수 회담과 확대회담을 합해 총 105분간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직후 양국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를 진행했고, 만찬 행사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선유줄불놀이를 보고 있다. 2026.5.19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이재명·다카이치 셔틀 외교 4개월 만 재개

한일 두 정상의 고향 나라현과 안동 오가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먼저 소인수 회담에선 중동 정세와 공급망·에너지 안보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양국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확대회담에선 한반도 정세와 함께 한일 간 실질 협력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소인수 회담에서 두 정상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한일 양국의 대응과 협력 진전 방안도 논의했다.

또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원 공급망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양국은 지난 3월 체결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의 성과를 평가하고,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고, 다카이치 총리도 "최근의 국제정세를 봤을 때 핵심 광물을 포함한 일한 간 공급망 협력은 중요하다"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5.19 연합뉴스

LNG·원유 스와프, 공급망 협력 본격화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 착수 '환영'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원유와 LNG 등 핵심 에너지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양국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유와 석유 제품의 스와프 및 상호공급과 관련된 민관 대화를 장려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체결된 'LNG 수급 협력 협약서'를 바탕으로 양국 간 LNG 협력을 확대하고, 원유 수급 및 비축과 관련한 정보공유와 소통 채널도 심화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다카이치는 "원유·석유 제품과 LNG 상호 융통, 스와프 거래를 포함한 에너지 안보 강화 협력을 시작하기로 뜻을 같이했다"고 소개했다.

두 정상은 또한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맞아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 평가와 미국과의 소통 내용을 포함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일,・한미일 협력을 지속해서 발전시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은 또한 경제협력의 새 동력을 창출하고, AI 등 미래 분야에서 신뢰 기반의 협력을 강화해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또한 우주·바이오·지방 활성화·초국가 스캠 범죄 공동 대응 등 실질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양 정상은 1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DNA 감정과 관련해 양국 외교당국 간 실무협의가 마무리되고 감정 절차에 착수하게 된 것을 환영했다. 앞으로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일본 경찰이 DNA 감정을 실시하고, 양국이 협력해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양국의 유관 당국은 관련 절차가 조속히 진행되도록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2026.5.19 연합뉴스

다카이치 '중국 저지' vs 이재명 '중국 동행'

"한·미·일 협력도, 한·중·일 협력도 중요해"

그러나, 중국과 북한을 놓고는 두 정상의 발언에 '온도 차'가 드러났다.

다카이치는 공동언론 발표 곳곳에서 중국을 겨냥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란 표현을 썼다. 특히 "현재 국제 상황을 감안하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 위해 일미동맹, 한미동맹 그리고 그 전략적 연대를 통한 억지력, 대처 능력의 유지·강화를 포함해 일한 양국이 능동적으로 노력해 나가는 게 중요하며, 대통령님과 저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달랐다. '인도·태평양'이란 표현을 전혀 쓰지 않고 중국과의 협력 중요성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도 재확인했다"고 한 뒤 "아울러 저는 동북아 지역이 경제·안보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있는 만큼, 역내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공통의 이익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강 수석대변인은 특히 한·중·일 협력 활성화를 위해 민간 중심의 3국 간 협력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전군 사·여단 지휘관 회합을 소집하고 연합부대장들과 함께 당중앙 뜨락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2026.5.18 연합뉴스

다카이치 "북한 핵·문제 대응 한·미·일 공조"

이재명 "싸울 필요 없는 평화의 한반도 구축"

북한 관련 기조도 사뭇 달랐다. 다카이치는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북한 대응에 대해 논의했으며 일·한, 일·한·미가 긴밀히 연계해서 대응해 나갈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한·미·일 북핵 공조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구축하겠다는 우리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종합해보면, 이번 안동 정상회담은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 공동 대응과 경제분야 협력, 한미일 전략적 협력 강화 등에는 의기투합했지만, 한·미·일의 군사동맹화를 통해 중국을 저지하려는 다카이치와, 한·미·일 결속을 강화하되 동시에 한·중·일 틀도 활성화해 중국과도 함께 하려는 이 대통령 간의 전략적 시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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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국힘당 장동혁 광주 방문 규탄” 거리 연설

 

구본기 “국힘당 장동혁 광주 방문 규탄” 거리 연설

 

김신영 통신원 | 기사입력 2026/05/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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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광주 광산구을 국회의원 후보(무소속)가 5.18광주민중항쟁 46주년인 18일 장동혁 국힘당 대표의 5.18기념식 참석을 강력히 비판하며, 5.18민주광장 인근에서 ‘국힘당 해산 촉구’ 1인 시위와 육성 연설을 진행했다.

 

▲ 구본기 후보가 5.18민주광장 인근에서 육성 연설을 하고 있다  © 김신영 통신원

 

 

구 후보는 “국힘당이 시대적·국민적 요구인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무산시킨 것은 광주 학살을 옹호하고 내란을 지지한다는 선언”이라며 “전두환 독재정권의 후예이자 내란의 장본인인 내란 정당 국힘당은 해산이 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내란범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며 선거에 출마하는 이 사태 자체가 비상 사건이자 내란”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힘당을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괴멸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장동혁 대표는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로부터 “자격 없는 사람이 여길 왜 오느냐”라는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구본기 후보의 발언 전문이다.

 

「윤 어게인 내란 정당 국힘당 장동혁의 광주 방문을 규탄한다」

 

학살자 전두환의 후예, 내란 수괴 윤석열의 당, 국힘당 대표 장동혁의 광주 방문을 규탄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참배 쇼로 국민을 기만하고 광주를 모욕해왔던 국힘당의 대표 장동혁이 5.18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광주 학살범의 후예 윤석열을 배출하고,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한 자들이 어떻게 광주에 온다는 것입니까?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고도 정작 개헌안을 무산시킨 자들이 어떻게 광주 땅을 밟는다는 것입니까?

 

1. 내란 정당 국힘당은 해산이 답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불법 계엄, 내란을 완성하기 위해 계엄 해제를 방해하고 탄핵을 반대했던 국힘당, 윤석열 체포를 막기 위해 인간 방패를 자처한 국힘당, 끊임없이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고 내란 재판을 방해한 국힘당, 정부와 국회의 내란청산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국힘당. 국힘당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후예들이자 내란의 장본인, 내란 정당일 뿐입니다. 내란 정당은 국민이 아니라 독재를 대변하고 영원한 독재를 추구하는 범죄집단일 뿐입니다. 내란 정당 국힘당은 강제 해산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학살하려 했던 국힘당을 해산시켜야 합니다. 이자들이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파괴입니다. 국힘당을 해산시키고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2.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무산시킨 국힘당은 해산하라.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적 요구입니다. 광주항쟁 정신을 전국가적, 전국민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국힘당은 이것을 무산시켰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광주 학살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을 찬양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의 후예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이자들은 여차하면 또 내란을 일으켜 대국민 학살을 시도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해왔고 무슨 짓이든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국힘당이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거부한 것은 광주 학살을 옹호하고 내란을 지지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광주 학살 전두환을 찬양하고 광주 학살을 범죄로 기록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3. 장동혁의 광주 방문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윤 어게인 집단, 국힘당 장동혁의 광주 방문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내란 집단, 범죄 집단, 패륜 집단, 반민주·반헌법 집단에게 광주정신이 공격받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국힘당은 정당의 탈을 쓴 내란 집단일 뿐입니다. 이자들을 완전히 해산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내란을 영원히 방지하는 길은 국힘당을 해산시키는 것입니다. 내란에 철저한 법적, 역사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다시는 정계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합니다.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내란범들 주제에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이 사태가 비상 사건이자 내란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힘당을 완전히, 철저히 괴멸시켜야 합니다. 총칼로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쟁했던 광주 5월영령들의 정신과 염원을 받들어 국힘당을 우리 손으로, 우리 시대에 완전히 해산시킵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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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긴급조정권 왜 언급?…경제 타격·지선 변수 고려한 듯

서영지,박다해기자

  • 수정 2026-05-19 00:49

18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헌법상의 기본권 제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삼성전자 파업이 국내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업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증시에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삼성전자 노조 파업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소년공 출신임을 강조하며 ‘노동 존중 사회’를 강조해왔다. 이 대통령이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파업 자제를 당부하는 글을 엑스(X)에 쓴 것은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약 23%,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26%를 차지한다. 한국은행은 최근 청와대에 삼성전자의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전달했다. 총파업이 18일간 진행되고,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이 파업 뒤 복구될 때까지 3주가량이 소요된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다.

이런 삼성전자의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주주 460만명과 협력업체 1700여개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는 것은 물론, 정부가 공들여온 주식시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6·3 지방선거가 10여일 남은 시점에서 주식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정부·여당에 악재다.

청와대는 특히 기업 영업이익은 세금과 각종 공적 부담이 반영되기 전 단계의 수익이라 노조의 배분 요구가 국민 전체의 몫보다 특정 집단의 이해를 우선한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다. 이런 요구가 관철될 경우 결과적으로 기업 부담을 높여 기업 투자와 외국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 영업이익 배분은 시장 원칙에 따라 투자 위험을 감수한 주주들의 권리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다. 이 대통령이 “노동자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주주는 위험 부담에 따른 이윤의 몫을 가진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노사 합의를 촉구하는 데 있다고 했다.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되어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노사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 긴급조정권이 제한 요건을 넓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늘 신중하게 발동해왔다”며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면 정부의 정책이 친기업 정책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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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법 위반과 폐기물업의 기묘한 결합... 기가 막히는 현실

폐기물 소각 목적으로 농지 취득한 사례 적지 않아... 환경청이 사업 허가 단계서 부적절 사례 걸러내야

26.05.18 19:30최종 업데이트 26.05.18 19:30

▲정부, 사상 첫 '농지 전수조사' 추진…수도권 투기 위험군 중점정부가 전국 농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전수조사를 벌이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2일 수도권 내 한 농지 너머로 아파트 단지 등 재개발 구역이 들어서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이 문제로 농지도 투기 대상이 돼 가격이 비싸다면서 농지 전수조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농지 전수조사의 핵심이 '농사지을 의사 없이' 농지를 취득한 사례들부터 적발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농민이 고령이 되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지, 농민이 돌아가시면서 자녀들이 상속받은 농지, 임대차를 하고 있는데도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않고 있는 관행 등을 해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농사와는 무관한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것이 농지법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태이다.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해서 투기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다든지 하는 행태는 여러 번 문제되어 왔다. 그런 사례들을 적발해야 한다.

의료폐기물 소각업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실정

또한 산업폐기물을 매립하거나 의료폐기물을 소각할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경우는 명백하게 농지법을 위반한 것이다. 정부가 이런 사례를 찾아내서 처분명령을 내리고 고발조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번 기회에 산업·의료 폐기물 처리업을 하려고 농지를 불법으로 취득하는 사례들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하다.

아래에서 언급하는 상황은 모두 실제 사례들이다.

예를 들면 의료폐기물 소각업을 하려는 A업체의 대표가 농지를 취득한 사례가 있다. 해당 업체 대표는 농지를 취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경청에 '의료폐기물소각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으니, 그 의도가 명백하다. 농사를 지을 목적이 아니라 의료폐기물 소각업을 할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농지를 취득할 때에는 '농업경영'을 하겠다고 허위로 서류를 꾸며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은 것이다. 농지법 제6조 제1항에서는 명백하게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한 것이다.

의료폐기물소각업을 하려는 업체 대표가 농지 7필지를 취득한 사례하승수

농지법 위반, 사실상 방관하는 환경청

기가 막힌 것은 환경청이 이런 사례에 대해 '사업계획서 적합 통보'를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목이 농지로 되어 있는 땅이 포함되어 있으면, 취득 경위에 대해 확인을 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환경청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농지 문제는 환경청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농지법은 농림축산식품부 관할), 환경청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기관이 아닌가?

농지법 위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음에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환경청이 해당 사례들에 대해 적합 통보를 내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는 농지법을 위반해서 농지를 취득한 이후에 '농업경영'과 무관한 영리 목적 사업을 하려는 업체들의 위법을 환경부가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이로 인해 업체들과 지방자치단체 간에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 많다. 의료폐기물은 유해성이 강한 지정폐기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인·허가권이 지방환경청에 있지만, 도시계획과 관련된 권한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영리업체들이 운영하는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계획에 반영하는 것을 거부하면, 업체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현재 그런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환경청 단계에서 농지법을 위반한 사례가 걸러진다면, 이런 소송전이 벌어질 이유도 없다. 게다가 업체들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 과정에서 '환경청으로부터 적합 통보를 받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으니, 환경청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농지법을 위반한 폐기물업체들에 대한 전수조사 필요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는 또 다른 지역의 B업체도 업체 관련자들이 매립장 부지 내의 농지를 대거 취득한 사례가 있다. 이것 역시 농사지을 목적이 아니라 폐기물 매립업을 하려고 농지를 취득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이 한둘이 아니다.

만약 농지가 폐기물처리업 부지로 바뀌면 그 자체로 엄청난 지가 상승이 일어난다. 인·허가만 받으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제대로 할 마음이 있다면, 이런 사례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한다. 정부가 조금만 의지를 가지면 전수조사가 어렵지 않다.

농지를 불법으로 취득해서 영리 목적의 산업·의료 폐기물 처리업을 하겠다는 것은 농지법도 어지럽히는 것이고, 국토계획법도 어지럽히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농협개혁추진단 위원입니다.

#의료폐기물 #산업폐기물 #농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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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가구 대단지 전세 1개···전세는 없고 월세는 튀고 ‘위·아래’ 할 것 없이 오를 일만 남았나

수도권 전세 품귀현상

월세가격지수 109로 최고치 경신

전월세 상승→매매가도 올려

전세대출 규제·광범위한 토허제

“정부관리 소홀, 단기간 경직” 지적

30대 A씨는 2022년 말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에 전세로 신혼집을 구했다. 한차례 갱신한 전세 계약은 오는 12월 만료를 앞둔 가운데 최근 들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약 700세대 단지에 전세 매물이 단 하나도 없었다. 첫 계약 당시 3억5000만원 안팎이었던 전세가는 6억원대로 치솟았다.

이참에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며 점찍어뒀던 강서구 아파트를 뒤져봤다. 지난해만 해도 8억원대였던 아파트는 13억원대 신고가를 기록했다. A씨는 18일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이 아닌 경기에서 집을 찾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말했다.

최근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전세 매물이 단 1개일 정도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세가가 뛰는 사이 월세가는 날아올랐다. 서울에서 경기로 확대된 전월세난에 수요자들이 갈 곳을 잃고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부메랑처럼 다시 매매가가 상승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임대차 시장 부담을 고려한 정책 속도 조절과 아파트 수요를 대신 소화할 비아파트 등의 조기 공급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전세 매물 감소는 여러 공식적인 통계로도 확인이 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전세수급지수는 5월11일 기준 113.7로, 2021년 3월8일 116.8 이후 약 5년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세수급지수가 100보다 크면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날 네이버 부동산을 기준으로 1000가구 이상 대단지를 살펴본 결과, 강북·노원·중랑·금천·강서구 등에서 전세 매물은 단지당 1~4개꼴이었다. 가령 강북구는 9개 단지의 총 매물이 19개뿐이었고, 소위 ‘대장주’인 3830가구 단지 SK북한산시티의 매물은 2개에 그쳤다. 경기 의정부·구리·하남·광명·부천시 등 인접 도시에서도 단지당 1~2개에 불과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구는 단지당 60~70개로 사정이 훨씬 나았다. 다만 개포주공 6·7단지 등 재건축단지의 주변 이주가 시작되면 전세 매물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면서 전세가는 튀어오르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공인중개사 B씨는 근처 약 1000가구 대단지를 두고 “원래는 전세 물건이 한 10개 정도 나와야 정상인데 하나도 없다”며 “2~3년 전 8억원에도 거래가 안 됐는데 최근 전세 계약 건이 11억9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전세는 점점 월세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에서 월세 비중은 올해 처음 과반(50.8%)을 넘어섰다.

문제는 월세가 오르는 속도다. 국토연구원이 부동산원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전월세가격지수를 산출한 결과, 월세가격지수는 2022~2023년 103.1로 정점을 찍고 하락했다가 도로 상승해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며 최근 109.0에 이르렀다. 전세가격지수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만 2022~2023년 당시 정점을 넘어서진 못했다. 전세가격이 뛰는 사이 월세가는 날아오른 셈이다.

수도권 전체적으로 전세가 부족하고, 전월세 가격 상승은 다시 매매가 상승 고리를 형성했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전셋값이 오른 이후 3~9개월까지 매매가도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엔 전세에서 아예 매매로 눈을 돌리는 수요도 커지는 분위기다.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 남편과 함께 사는 30대 C씨는 “전세 재계약 하려면 5000만원 정도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집값이 아무래도 내릴 것 같지는 않아 지금이라도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상승세는 수도권과 서울 외곽에서 중심부로 점차 파고드는 형국이다. 지난 1월 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예고로 일시적으로 가라앉았던 시장은 3월부터 경기 구리·하남, 서울 노원·성북·강서 등에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줄줄이 하락했던 서울 성동·강동·용산·송파·서초·강남구도 하나둘씩 상승으로 돌아섰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말대로 ‘아랫목(강남권)’부터 식었지만, ‘윗목’의 열기가 다시 ‘아랫목’으로 유입되며 도로 달궈지는 중이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무주택자들이 매수하면서 가격을 높이고, 무주택자에게 집을 판 1주택자들이 더 비싼 주택으로 옮겨가다 보면 한강벨트 등의 수요도 자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 가격 상승폭이 매매 가격을 뛰어넘으며 전세 품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18일 전세 매물이 적어진 서울 종로구 무악현대아파트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26.05.18 한수빈 기자

전세 감소를 부른 ‘전세의 월세화’는 10여년 전 진행된 오래된 흐름이지만, 정부가 그 속도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주택 소유자 전세대출 금지, 전세대출 보증비율 축소 등 전세 유동성 억제책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토지거래허가제 시행, 다주택자 매물 출회 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전세시장을 단기간에 경직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전세 매물 회전율이 떨어지고 대출은 어려운데 신축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보니 월세화를 가속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공급 문제를 풀 단기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R114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4만7000가구에서 올해 2만7000가구, 내년 1만7000가구로 줄어든다.

아파트 수요를 받아줄 비아파트는 거의 ‘절벽’ 수준이다. 올해 서울 오피스텔 입주 물량은 1700실로, 2021년 2만1100실에서 90% 이상 뚝 떨어졌다. 원자재 상승 등으로 착공·인허가 실적이 저조해 중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전성제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정책연구센터장은 “금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답을 찾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다”며 “다세대·다가구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 공급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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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선 무투표 당선 513명 중 188명, 전과·체납자



무투표 당선 513명·307곳... 전과·체납 신고 188명, 광역의원은 절반 넘어

무투표 의원 513명 중 188명, 전과 또는 체납 신고

 

가장 많은 죄목은 도로교통법 88명, 사기·횡령·배임·뇌물도 10명

 

광역의원은 절반 넘게 전과·체납자, 4년 세금 1000억원이 본투표 없이 흘러가

2026-05-18 23:48:29

 

 

【250518】[박대용의 2시에 데이터] 무투표 당선 512명 중 사기 횡령 배임 뇌물 전과는 누구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본투표 없이 당선이 결정된 후보가 513명이다. 그 가운데 188명이 전과 또는 최근 5년 체납 이력을 선관위에 신고한 채 의원이 된다. 전과 정보가 시민에게 처음 공개되는 그 시점에 당선도 함께 확정됐다. 검증 시간이 사실상 0초로 압축됐다.

 

선관위 후보자 공개정보와 선거구별 의원정수 자료를 17일 기준으로 대조해 산출한 수치다. 무투표 당선은 의원정수와 등록 후보 수가 같거나 등록 후보가 더 적은 경우 발생한다.

 

무투표 의원 513명, 8년 사이 6배 늘었다

 

직책별로 보면 지역구 기초의원이 305명으로 가장 많다. 광역의원 108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97명, 기초단체장 3명이 뒤를 잇는다. 광역단체장은 무투표 당선이 없다.

AI 활용 설정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7·8회 지방선거 당선자 데이터 / 제9회는 2026.5.17 후보등록 결과 데이터

 

추이로는 2018년 89명, 2022년 490명, 2026년 513명이다. 8년 사이 6배 가까이 늘었다.

 

무투표가 발생할 수 있는 선거 유형 후보는 7669명이다. 그 가운데 513명이 본투표 없이 의원이 된다. 약 6.7%, 15명 중 1명꼴이다.

 

전과 신고 138명, 도로교통법이 88명으로 최다

 

선관위에 전과를 1건 이상 신고한 무투표 당선 후보는 138명이다. 죄목별 후보 수로 보면 도로교통법이 88명으로 가장 많다. 사기·횡령·배임·뇌물을 합친 10명의 8.8배다. 음주운전·무면허·교통사고가 포함된다.

 

다음은 폭행·상해 19명, 공직선거법 12명, 사기·횡령·배임·뇌물 10명, 국가보안법·집회시위 시국 관련 4명, 근로기준법 3명 순이다.

 

공직선거법 신고 12명이 두드러진다. 선거 관련 범죄로 벌금형 등을 받은 사람이 본투표 없이 다시 의원이 되는 구조다. 정치자금법으로 신고한 후보는 없었다.

 

사기·횡령·배임·뇌물 전과 10명, 5명은 단독 출마

 

후보 두 명이 두 분류에 동시에 들어가 있다. 도희재 국민의힘 경상북도 성주군 도의원 단독 후보는 사기·뇌물 두 분류에 모두 들어간다. 2002년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사기로 벌금 200만원, 2011년 뇌물공여로 벌금 300만원, 2016년 사기로 벌금 150만원을 신고했다.

 

서재원 국민의힘 경상북도 포항시 제6 도의원 단독 후보는 횡령·배임 두 분류에 들어간다. 2022년 같은 지역 도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4년 뒤 단독 등록으로 의원이 된다.

 

10명 가운데 5명이 단독 출마다. 도희재·서재원에 더해 이우청 국민의힘 경북 김천 제2 도의원, 임승식 더불어민주당 전북 정읍 제1 도의원, 이정운 더불어민주당 전남 무안 제2 도의원이 단독 등록했다.

 

임승식 후보는 2022년 같은 선거구에서 이미 무투표로 당선됐다. 2026년에도 같은 선거구에 단독으로 등록했다. 이대로라면 같은 사람이 8년 동안 본투표 한 번 없이 도의원직을 이어가게 된다. 임 후보는 2004년 사기로 벌금 150만원, 최근 5년 체납 약 895만원도 함께 신고했다. 사기·횡령·배임·뇌물 분류와 체납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묶인 유일한 후보다.

 

체납 정점 3억2573만원, 등록 시점에도 그대로

 

최근 5년 체납 이력이 있는 무투표 당선 후보는 74명이다. 무투표 당선 513명의 14.4%다. 현재 체납이 있는 후보 3명과 비교하면 약 25배 차이가 난다.

 

체납 정점은 조용수 더불어민주당 전북 남원시의회 가선거구 후보다. 최근 5년 체납액이 3억2573만원이다. 그런데 현재 체납액도 3억2573만원이다. 두 칸이 천원 단위까지 일치한다. 등록 시점에도 같은 금액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광역의원 절반 넘게 전과·체납 신고

 

직책별 격차가 크다. 광역의원 108명 중 56명(51.9%)이 전과 또는 체납을 신고했다. 절반을 넘는다. 지역구 기초의원은 35.4%, 기초의원 비례대표는 24.7%다. 기초단체장 3명은 전과·체납 신고가 없었다.

직책별 무투표 당선 후보 중 전과·체납 신고 비율

바깥 막대: 전체 후보 수 · 색칠 막대: 전과 또는 최근 5년 체납 신고자 수

광역의원 (108명 중 56명)

0%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 등록정보(2026년 5월 17일) · 막대 길이는 지역구 기초의원 305명을 기준(100%)으로 정규화

 

광역의원 자리는 시·도의회를 구성하는 자리다. 의정비 평균이 다른 직책보다 높고, 영향력도 크다. 그런 자리에 본투표 없이 들어가는 후보 절반 이상이 전과 또는 체납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97명은 정당 명부로만 결정되는 자리다. 시민이 인물을 직접 평가할 절차가 가장 약하다. 그 명부 안에 전과·체납 신고 후보 24명이 들어 있다.

 

무투표 당선... 민주당 314명 vs 국민의힘 198명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무투표 당선 후보를 가장 많이 냈다. 314명이다. 국민의힘이 198명, 진보당이 1명이다.

 

정당 전체 공천 후보 중 무투표 당선 비율, 즉 무투표 의존도는 민주당이 9.8%, 국민의힘이 7.2%다. 민주당이 공천한 후보 100명 중 약 10명이 본투표 없이 의원이 된다.

 

반대로 무투표 당선 후보 안에서 전과 또는 체납 신고 비율은 국민의힘이 더 높다. 국민의힘은 198명 중 81명(40.9%)이 전과·체납을 신고했다. 민주당은 314명 중 106명(33.8%)이다. 국민의힘이 7.1%포인트 높다. 양 정당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로도 갈렸다. 국민의힘의 전과·체납 81명 중 31명이 경상북도다. 단일 시도 최다다. 민주당의 전과·체납 106명 중 호남에는 45명이 몰렸다. 전남 23명, 전북 17명, 광주 5명이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 구도가 정당별 양상으로 갈렸다.

 

수도권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경기·인천에 양당 합쳐 71명이 있다. 민주당 43명, 국민의힘 28명이다. 무투표 당선이 농어촌·소도시 현상으로만 보기 어려운 규모다.

전과·체납 신고 188명, 시도·정당별 분포

단위: 명 / 무투표 당선 후보 중 전과 또는 최근 5년 체납 신고자 합계 기준 내림차순

시도

민주당

국민의힘

진보당

합계

경상북도

-

31

-

31

경기도

19

12

-

31

서울특별시

17

11

-

28

전라남도

23

-

-

23

전북특별자치도

17

-

-

17

부산광역시

6

8

-

14

인천광역시

7

5

-

12

광주광역시

5

-

1

6

경상남도

2

4

-

6

대전광역시

2

3

-

5

제주특별자치도

4

-

-

4

충청북도

2

2

-

4

충청남도

1

2

-

3

강원특별자치도

1

1

-

2

대구광역시

-

2

-

2

합계

106

81

1

188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 등록정보(2026년 5월 17일) / 무투표 당선 후보 513명 중 전과 또는 최근 5년 체납 신고자 188명 / 강조 표시(주황): 단일 정당-시도 조합 20명 이상

 

전과 공개와 당선 확정이 같은 날, 검증 시간 0초

 

정상 선거에서는 후보 등록 마감 시점에 전과·체납·재산 같은 공개정보가 시민에게 처음 공개된다. 시민은 약 3주 동안 그 정보를 검토한다. 그리고 투표일에 표를 던진다. 보고, 따져, 거를 사람을 거를 수 있는 절차다.

 

무투표 당선 구조에서는 이 순서가 무너진다. 5월 16일 후보 등록 마감 시점에 공개정보가 발표됨과 동시에, 후보 수가 의원정수 이하인 선거구는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다. 시민이 후보의 전과·체납을 처음 알게 된 그 순간, 그 후보가 이미 의원이 됐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된다.

 

본투표가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 시민이 직접 후보를 판단할 기회가 작동을 멈춘다.

 

세금 1000억원이 본투표 없이 흘러간다

 

행정안전부 공시 평균으로 단순 추산하면 광역의원 108명의 4년 임기 의정비는 약 281억원이다. 기초의원 402명은 약 724억원, 기초단체장 3명은 약 12억원이다. 합치면 약 1000억원에 이른다.

 

지역별 편차는 크다. 서울·경기 광역의원은 연 7400만원 수준이고, 군 단위 기초의원은 연 3500만원 수준이라 폭이 넓다. 그래도 어떤 기준으로 잡아도 무투표 당선 513명의 4년 임기 보수 총액이 천억 단위라는 점은 같다.

 

시민이 본투표 한 번 한 적 없이, 약 1000억원의 세금이 이 513명에게 4년 동안 흘러간다. 그 안에 188명, 전과 또는 체납을 신고한 후보가 함께 들어 있다.

 

무투표 당선을 막거나 완화하기 위한 입법은 4년째 멈춰 있다. 2022년 8회 지방선거 직후 찬반투표 도입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26년 9회를 앞두고 같은 취지의 법안이 재발의됐다.

 

후보의 전과·체납이 처음 시민에게 공개되는 그 순간에, 그 후보의 당선과 4년 임기 세금 흐름이 함께 확정됐다. 검증의 마지막 관문이 유권자 앞이 아니라 정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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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학생자치회 아이들과 함께 교정에 '오월길'을 냈다. 당일 등교하는 전교생이 518m를 함께 걸은 뒤 교실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서부원

"무장한 시민들의 집단 저항으로 복수의 군인들이 사망한 뒤 계엄군의 시위대 진압이 폭력적으로 돌변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이쯤 되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은 끝이 없다고 해야 할 성싶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 같은 게 돼버렸다.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젠 계엄군을 향한 무장한 시민들의 저항을 '선제공격'인 양 진실을 비틀고 있다. SNS에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인식 공략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단 짚고 넘어가자. 5·18 당시 사망한 계엄군은 대부분 진압 부대 간 오인 사격으로 인한 희생이었다. 군용 차량 조작 미숙으로 숨진 군인도 있고, 시민군과의 직접적 교전 중에 사망한 경우가 더러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분명한 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과 집단 발포 이후 시민들이 자위를 위해 무장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역사 인식 파고드는 '가짜뉴스'

'형해화(形骸化).' 빈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뜻으로, 5·18 계기 교육을 준비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단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교육하고 있지만 늘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애면글면하며 목이 터질 듯 가르쳐 봐야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전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교육적 효과로 치면,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은 SNS의 적수가 못 된다.

과거엔 5월 18일 당일 학생자치회 주관으로 종이학을 접어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참배했고, 몇 해 전부턴 아침 등굣길 주먹밥 나눔 행사를 해오고 있다. 해마다 학교 현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다채로운 추모 행사를 연다. 5·18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오월길은 야외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민주광장을 거치도록 동선을 꾸몄다. 이곳에서 20일에 5.18 작은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 서부원

우리 학교가 5·18을 유독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5·18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윤상원 열사의 모교라서다. 또한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뒤 대검에 무참히 찔려 사망한 김평용(당시 고2) 희생자의 모교이기도 하다.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유해가 암매장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었다.

'5.18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윤상원 열사의 흉상이 교정에 서 있다. 오월길의 '중심'이자 '반환점'에 해당하는 위치다. 당일 흉상 앞에는 하얀 국화꽃이 놓이게 될 것이다. ⓒ 서부원

10여 년 전 교정 뒤뜰에 윤상원 열사의 흉상을 세웠고, 학교 도서관 내엔 김평용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동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즐겨 찾는 홈베이스에도 그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벽을 조성해 두고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학교는 그 자체로 역사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그러나 이토록 오랜 노력에도 아이들의 5·18에 대한 기억은 시나브로 흐릿해져만 간다. 그 틈을 비집고 SNS를 통한 온갖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현실이다. 아예 5·18에 대해 무지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면 될 일이지만, 그들의 관심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교묘하게 왜곡하고 폄훼한 역사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 놓고 있다가는 윤상원 열사와 김평용 희생자조차 대한민국 군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가해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있다. 아무리 극악한 계엄군이라 해도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을 리 없지 않냐는 '전두환의 발언'을 그대로 내뱉는 아이가 있다. 계엄군의 총칼에 학살당한 시민들은 '무고하지 않았다'는, 곧 '계엄군의 폭력 진압을 자극했다'는 뜻이다.

46주년 맞아 시작한 오월길 프로젝트

46주년을 맞는 올해는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행사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오월길 조성 프로젝트'다. 광주 시내 곳곳에 조성된 오월길이라는 이름을 빌려와 학교의 교정에 5·18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새길을 낸다는 취지다. 5월 18일 아침 등굣길에 전교생이 그 길을 따라 걸은 뒤 교실로 들어가도록 하는 행사다.

도서관 입구 벽에 설치한 김평용 희생자 추모 동판. 도서관을 오가며 아이들이 늘 접할 수 있도록 했다. ⓒ 서부원

교문을 기점으로 윤상원 열사의 흉상과 김평용 희생자의 추모 동판이 설치된 도서관, 야외 학습장으로 쓰이는 민주 광장을 둘러보도록 오월길 동선을 꾸몄다.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총 길이도 518m로 한정했다. 교정이 워낙 넓은 까닭에 지름길을 찾아야 하는 나름의 고충도 있었다. 여느 학교에선 상상하지 못할 '행복한 고민'이다.

오월길을 곳곳엔 5·18의 전개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카드 뉴스 형태의 학습 자료를 게시할 예정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선 간단한 역사 퀴즈를 풀게 한 뒤 기념품을 제공할 것이다. 각자 손에 쥔 스마트폰을 활용해 QR코드를 찍게 하는 방식이다. 길의 안내는 학생자치회 임원들의 몫이다.

길을 따라 군데군데 표식을 부착했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두 리본을 포개 매달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두꺼운 비닐 리본은 제주 올레길의 주황색과 파란색 리본 표식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리본 위에는 '살레시오 오월길'이라는 이름과 '역사는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는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의 문장을 적었다. 5·18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서다.

오월길 곳곳에 리본 표식을 매달아놓았다. 리본을 보며 함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 서부원

리본의 색깔을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정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검은색은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고, 빨간색은 희생과 열정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췄다. 표식의 용도로 사용되는 만큼 멀리서도 눈에 띄어야 하는 점도 고려했다. 신록의 계절이니만큼 초록색의 보색으로서 빨간색은 여러모로 효과 만점이었다.

더욱이 두 색깔의 조합은 1980년대 광주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인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모기업도 바뀌고 당시의 유니폼도 사라졌지만, 광주 시민들에게는 그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당시 프로야구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소외당하고 차별받았던 호남 사람들의 한풀이 대상이었다.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할 때마다 관중들이 감격해하며 얼싸안고 떼창으로 불렀던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목포 출신의 명가수 이난영의 노래였지만, 정작 해태 타이거즈의 공식 응원가로 자리매김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노랫말 속의 눈물은 5·18 당시 희생된 이웃들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자, 살아남은 자로서 흘리는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가짜뉴스 시대, 결국 기억은 발로 걷는 것

요즘엔 아이들조차 광주와 전남 시민들의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 행태를 두고 '공산당 같다'고 비아냥댄다. 이곳 광주의 아이들도 투표 결과를 문제 삼아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건 영호남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독재정권의 악의적인 호남 차별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간과한 강퍅한 인식에 아이들마저 물든 모양새다.

온 정성을 쏟은 프로젝트지만, 일부에선 그런다고 아이들의 '세뇌된 머리'가 달라질 것 같으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 말마따나 역사 왜곡과 폄훼를 일삼는 SNS의 공세 앞에서 며칠짜리 오프라인 추모 행사가 '언 발에 오줌 누기'일지도 모른다. SNS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반격이 더 실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눈에는 눈'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SNS로 인해 생겨난 문제를 SNS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단언컨대, SNS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존 그레셤의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공간이다. AI가 머지않아 인간의 뇌까지 지배하게 될 거라는 세상에 '아날로그적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을 읽힌다는 심정으로, 등교하는 아이들과 손잡고 교정의 518m 오월길을 함께 걷겠다. 5·18 46주년을 되뇌며 리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면역력이 생기리라 믿는다. 걸을 때 교정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518민주화운동46주년#오월길#윤상원열사#김평용희생자#살레시오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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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관저 이전비 다 내라”는 윤석열 대통령실에 반기 든 행안부 공무원···종합특검, ‘보복성 인사’도 살펴본다

종합특검 “21그램과 계약 후 늘어난 공사 비용 전액 부담” 증거 확보

추경안 통해 배정받는 게 정상…‘반려동물 수영장’ 등 은폐하려 한 듯

“인사 조처를” 항의한 행안부 공무원에 보복 인사도 있었는지 확인 중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당시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실(현 청와대)에 ‘관저 이전 추가 비용을 분담하자’고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이 ‘행안부가 전부 부담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파악했다.

종합특검은 “차라리 인사 조치를 해달라”며 예산 전용 지시에 항의한 행안부 공무원들이 보복성 인사를 당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1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종합특검은 2022년 행안부가 대통령실에 관저 이전 추가 비용을 분담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실이 회의를 거친 뒤 행안부에 비용을 전부 부담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담긴 증거를 확보했다. 종합특검은 행안부가 향후 예산 남용 논란이 불거질 경우 책임 부담을 덜기 위해 대통령실에 비용 분담안을 제시했다고 본다.

대통령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던 인테리어 업체 21그램이 종합건설업 면허가 없는데도 관저 이전 공사를 맡는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전인 2022년 3월 기자회견에서 관저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는 새 대통령실의 조직·예산 편성 전이었기 때문에 관저 이전 비용은 국가청사를 관리하는 행안부 정부청사관리본부 예비비로 14억원이 배정됐다. 종합특검은 이후 공사업체가 21그램으로 바뀌면서 공사 견적으로 41억원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이 행안부에 예산을 전용해 추가 비용을 메꾸라고 압박했다고 본다.

종합특검은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대통령실이 예산을 배정받는 것이 정상이고 행안부 예산을 원래 목적과 달리 전용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종합특검은 대통령실이 예산 전용을 무리하게 지시한 이유는 21그램과의 부실 계약과 반려동물 수영장, 다다미(일본 전통 바닥재)방, 히노키(편백나무) 욕조 등의 부적절한 시설 공사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대통령실 예산을 사용하면 비리가 들통날 수 있어서 행안부 예산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종합특검은 대통령실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은 행안부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인사 발령이 내려졌는지를 두고도 수사에 착수했다. 종합특검은 지난 3월 행안부를 압수수색하면서 관저 이전 업무 담당 공무원이 윗선에 “지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차라리 인사 조치를 해달라”는 취지로 요청한 문서를 확보했다. 종합특검은 당시 인사의 시점·대상·내용을 살펴보며 정당한 인사권한 범위와 규정을 벗어났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특검은 예산 전용 외압의 정점에 김 여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결재라인을 아래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조사했다. 지난 13일 김오진 전 국토교통부 1차관(당시 관리비서관), 14일 윤재순 전 총무비서관, 15일 김대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종합특검에 출석했다. 종합특검은 이들을 모두 출국금지 조치한 상태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인사들이 관저 이전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김 여사가 직접 개입한 사실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해 12월 김 전 차관과 황모 전 행정관, 김태영 21그램 대표를 초과된 관저 공사 비용을 메꾸려고 다른 건설업체 명의로 허위 공사 계약을 체결해 행안부 예산 16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지난 11일 이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행안부 공무원은 면허가 없는 21그램이 어떻게 관저 공사를 계약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V0(김 여사)의 의중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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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4100억 챙긴 '보통사람'… 6·29 선언은 생존기술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5/18 08:20
  • 수정일
    2026/05/18 08: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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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노태우 편

군사반란·내란·비자금으로 집권한 대통령

12·12 때 9사단장으로 중앙청에 탱크 배치

5·17계엄 확대와 광주 진압에 핵심 공모자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 선고 받아

2년 만에 사면 , 추징금 완납에 16년 걸려

'야권 분열땐 대권 승산있다'계산, 6·29선언

민주화 기여 했어도 반헌법 행위 면죄 안돼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1권을 펼쳐 읽는다. 노태우(盧泰愚, 1932~2021) 항목을 읽으며 한 가지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참으로 '묘한' 인물이다. 전두환(1931~2021)이라는 강렬한 빛 옆에서 언제나 반쯤 그림자 속에 있었다. 쿠데타의 공모자였지만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받는다. 비자금 4100억 원을 챙겼지만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 묘한 이중성이야말로 노태우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1989년의 노태우(위키피디아)

'관성(冠星)'의 꿈, 5성회에서 하나회까지

노태우는 1932년 8월 17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서기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철도 건널목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팔공산 사찰을 오가며 참선을 익혔고, 축음기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이 조용하고 사색적인 소년이 훗날 군사반란의 핵심 공모자가 된다.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들이 저마다 별명을 지었을 때, 전두환은 '용성(勇星)', 노태우는 '관성(冠星)'이었다. 으뜸가는 별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 별들이 1963년 비밀 군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했다. 경상도 출신 정규육사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 조직은 이후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는 사조직이 됐다.

 

1987년의 노태우(Roh Tae-woo: First freely elected South Korea leader with a complex legacy | The Independent)

12·12의 공모자, 탱크를 몰고 서울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1917~1979)가 피살됐다. 기회가 왔다. 1979년 12월 12일, 노태우는 9사단장으로서 예하 29연대를 서울 중앙청으로 진주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맡았다. 최전방 병력을 서울로 끌어들이는 것은 명백한 군형법 위반이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해 미리 박철언 등에게 부인과 가족을 부탁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탱크를 몰았다. 그것이 12·12 군사반란에서 노태우의 역할이었다.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전국 비상계엄 확대와 광주에서의 학살에도 하나회의 일원으로서 깊이 연루돼 있었다. 1997년 대법원은 노태우에게 반란중요임무종사죄, 내란중요임무종사죄, 뇌물죄 등을 적용해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다.

 

1995년 노태우와 전두환.(Ex-South Korean President Roh Tae-woo dies at 88 | AP News)

세계사 속의 동류, 2인자로 살다 1인자가 된 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인물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에두아르도 비올라(Eduardo Viola, 1924~1994)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2013)의 2인자로서 더러운 전쟁에 가담했다가 비델라에 이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비올라는 집권 9개월 만에 또 다른 군부에 의해 축출됐고, 훗날 인권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브라질의 에르네스투 가이제우(Ernesto Geisel, 1907~1996)는 군사독재 체제의 2인자에서 대통령이 된 뒤 스스로 민주화 이행을 선택한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의 공모자였지만 권력의 자리에서 제도적 민주화를 추진했다. 노태우의 6·29선언이 종종 이 사례와 비교된다. 차이는 브라질의 민주화 이행이 훨씬 더 치밀하게 설계된 데 반해, 노태우의 6·29선언은 폭발 직전의 민심 앞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1981년의 에두아르도 비올라(위키피디아)

6·29선언, 양보인가 생존전략인가

1987년 6월,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으로 불붙은 민주화 요구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전두환은 군 투입을 검토했다. 그 분기점에서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가 1987년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6·29선언'이다.

이 선언이 진정한 민주주의적 결단이었는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계산이었는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질문에 냉정하다. 당시 노태우는 직선제가 실시되면 야권이 분열할 경우 자신이 당선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1927~2015)과 김대중(1924~2009)이 분열하는 바람에 노태우는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화의 과실은 군사반란의 공모자가 가져갔다.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당선인 김영삼(왼쪽)이 퇴임하는 노태우(오른쪽)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South Korean generals 'considered' cheating in 1987 election - Asia Times)

'보통사람'의 비자금 4100억

"저는 보통사람입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의 슬로건이었다.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그의 이미지는 전두환의 살벌함과 달리 유순해 보였다. 그러나 퇴임 후 드러난 진실은 달랐다. 1995년 민주당 의원 박계동(1954~)의 폭로로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 결과 기업 총수 40여 명으로부터 무려 41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 확인됐다. "보통사람"의 금고에 4100억 원이 있었다. 이 보통사람은 참으로 보통이 아니었다.

1995년 11월 구속됐고, 이로써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이 확정됐다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추징금은 2013년에야 완납했다. 사면에서 완납까지 16년이 걸렸다.

 

1996년의 노태우와 전두환(Roh Tae-woo: First freely elected South Korea leader with a complex legacy | The Independent)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도 부패한 정치인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대통령이나 수상이 재임 중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사면된 뒤 추징금을 16년에 걸쳐 납부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더구나 그 비자금 가운데 일부는 사위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 측에 흘러갔다는 의혹이 2024년에 새롭게 제기됐다. 노태우 부인 김옥숙 여사의 이른바 '904억 메모'가 소송 과정에서 공개됐고, 추징금 완납 후에도 숨겨진 비자금이 더 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며 1979년 12월 12일 밤을 떠올렸다. 계엄군이 국회로 향하던 그 밤의 문법은 노태우가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진주시키던 그 밤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노태우를 "군사반란·내란·비자금으로 집권한"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6·29선언으로 얻은 '민주화의 공로자'라는 이미지가 이 규정을 덮을 수는 없다. 역사는 공과를 같이 기록하되, 반헌법 행위를 면죄하지 않는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노태우 1951년.(South Korea's former president Roh Tae-woo dies at 88 | The Jerusalem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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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 중미 정상회담은 무슨 뜻이어야 할까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5.18 06:48
  •  
  •  댓글 0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중국 외교부는 5월 11일에야 중미 정상회담 일정을 공식 발표한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정상회담 날짜를 확정 공표한 것은 원래 4월 초 개최키로 합의했던 일정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연기한데 대한 보복인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으로서는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는 뜻을 애써 드러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사실 중국이 미국에게 애걸복걸할 사안은 없었다. 온통 미국이 손을 벌려야 하는 이슈만 가득했다.

 

미국은 중국에 희토류와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사정해야 했고, 대두를 포함한 미국산 농산물, 보잉 항공기, 에너지 구매 역시 부탁해야 했다. 반면에 중국이 아쉬울 것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와 AI 정도였지만, 중국으로서는 설령 엔비디아 칩이 없더라도 자체 기술력으로 얼마든지 자생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별히 절실할 것도 없다. 사실 AI의 군사적 결합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국과의 대화와 협력을 요청해야 하는 측면이 더 크다. 한편 대만 문제에 관해 중국은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언사를 발해 주기 원했겠지만, 종전처럼 “대만에 대한 미국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는 선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진핑은 대만 문제에 대해 트럼프에게 ‘선빵’을 날렸다. 중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이 충돌하거나 심지어 분쟁에 빠져 전체 관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고 했으며, 미국은 대만 문제를 다룰 때 “각별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말에 묵묵부답하던 트럼프는 회담이 끝나고 루비오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취하려 한다면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뒤늦게 내놓았을 뿐이다.

시진핑의 역사 강의 또한 준엄한 것이었다. 그는 세계가 “백 년에 한 번 있을 변동” 속에 있고 국제정세가 요동친다고 전제한 뒤,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설 수 있느냐, 새로운 대국관계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느냐, 세계에 더 큰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역사와 세계와 인민이 던지는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답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였다. 즉 미중은 경쟁하더라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야 하고, 차이는 관리해야 하며, 평화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할 말이 많은 승자가 아니었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남미 형제국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데다 중동의 중국 우방 이란을 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중국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 처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위법판정을 받은 상호관세와 글로벌관세를 무기로 세계를 협박해 온 장본인이 입만 열면 거짓말만을 쏟아 내온 불신의 화신이고 보면 과연 트럼프가 무슨 낯으로 중국에 기어들어 갔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 미국이 이란 문제에 관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으로서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을 듯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처량한 모습니다. 적벽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조조가 화용도에 나 앉아있는 형국하고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조조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은 체면도 병력도 위신도 크게 상한 채 빠져나갈 길을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트럼프도 미국이라는 제국의 물적 힘을 갖고는 있지만, 이번 베이징행의 외교적 자세만 놓고 보자면 “내가 중국을 굴복시키러 간다”는 식의 허세는 애초에 가당치 않았던 것이고, “시진핑이 체면을 좀 세워주면 그것을 성과라고 포장해 돌아가야 하는” 모습에 가까웠던 것이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함께 나세르의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되찾으려 군사행동을 벌였지만 미국과 소련의 압력 앞에서 물러난다. 영국으로서는 ‘개망신’이었다. 영국이 군사력 부족으로 진 것이 핵심이 아니다. 세계질서를 명령할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요체다. 현재 미국의 처지가 딱 그렇다. 미국은 아직 항공모함, 달러, AI 반도체, 제재권력을 갖고 있지만 세계를 향해 “질서”를 말할 때 아무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뒤 유럽의 거대한 제국 러시아 역시 포츠머스 조약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동아시아에서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다. 백인 제국이 아시아 신흥강국 앞에서 체면을 구긴 장면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러시아처럼 군사적으로 패전한 것도 아니고 중국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장면은 비슷하다. 한때 중국을 개방시켜 세계질서에 편입시킬 대상으로 보던 미국이 이제는 중국에게 미국산 물건을 사 달라, 희토류를 풀어 달라, AI와 핵 문제를 관리하자고 요청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최근에 발표된 <2026 민주주의 인식 지수(Democracy Perception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이스라엘,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함께 세계에서 평판이 가장 나쁜 5개국에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최악이다. 반면, 조사 대상 83개국 중 76%가 중국에 대해 더 나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 대륙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미국이 중국보다 더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미국이 귀하의 국가에 군사 기지를 두어야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97개국 중에서 일본, 한국,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단 4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강한 “아니오”로 답했다. 모두의 경멸을 한 몸에 받은 골리앗이 지금 미국의 모습이다.

중국은 이런 미국을 굳이 거칠게 몰아붙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점잖게 환대하고, 국빈 방문의 격식을 차려주고, 보잉 몇 대, 대두 몇 톤, 무역·투자 양국 협의체 같은 선물을 쥐어 주면 되었다. 중국은 미국이 완전히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너무 몰아붙이지 못하게 만들고,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태도를 흔들어 놓으며, 반도체와 AI, 희토류, 관세 같은 핵심 문제에서 시간을 벌면 그만이었다. 시진핑은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조조가 살아 돌아가 혼란을 조금이나마 더 관리해주는 편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고 계산하는 관우였다.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결론은 ‘큰 타결’보다는 양국 간 수면 아래에서 전개되는 보이지 전쟁의 관리였다. 중미 전략경쟁을 끝내는 회담이 아니라 작년 부산 회담 이후의 불안정한 휴전을 관리하고 양쪽 정상에게 국내정치용 성과를 주는 회담이 되었다는 얘기다. 특히 안보 의제는 성과보다 충돌 관리 쪽에 가까웠다. 미국은 중국이 자기 편에 서서 이란을 압박하기를 요구했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응할 생각이 없었다. 대만 문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입장 변경을 원했겠지만 미국은 공식 정책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체적으로 중미 신냉전의 해빙은 없다. 충돌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래가 전부였다. 트럼프는 “내가 얻어냈다”는 성과가 필요했고,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에 와서 중국의 위상을 인정했다”는 장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외형은 화려하고 발표는 긍정적이었지만, 이란, 대만, 반도체, AI, 희토류를 둘러싼 본질적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AI는 미국이 전적으로 양보하기 어렵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전략 고지다. 그러므로 미국의 봉쇄, 중국의 우회 및 국산화, 제3국 경유 통제, AI 모델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수에즈 이후의 영국처럼 신뢰를 잃었고, 포츠머스의 러시아처럼 아시아 강국의 상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화용도의 조조처럼 시진핑이 열어준 길로 체면을 건져 돌아갔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조조는 화용도 뒤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세력을 수습했다. 영국은 수에즈 뒤에도 핵보유국과 금융 강국으로 남았다. 러시아도 1905년 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끌던 시대는 영영 종말을 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새겨야할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의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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