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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파업 위기에 조선 “노동권익 아니다”·동아 “파업 접어라”

[아침신문 솎아보기] 노사 막판 협상… 중앙 “노조, 과도한 요구 접어라”

정부는 긴급조정권 거론… 경향 “국가가 노동3권 개입? 부적절”

지방선거 TV토론 실종? “유권자 검증 안 받겠다는 것”

대만 협상 카드로 삼은 트럼프… “주한 미군도 우려된다”

기자명윤수현 기자

  • 입력 2026.05.18 07:32

▲ 2026년 4월23일 평택사업장 앞에서 삼성전자 직원 약 4만 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

파업을 앞둔 삼성전자 노사가 18일 막판 협상을 앞둔 가운데,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 ‘긴급조정권’ 가능성을 거론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경향신문·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는 정부가 노동3권을 제한하는 긴급조정권을 거론한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노사가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번 파업 시도에 대해 “상식적인 노동권익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며, 동아일보도 노조가 파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노사가 18일 막판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긴급조정권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긴급조정권은 노조의 쟁의행위가 국민 일상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 경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 발동할 수 있는 조정 절차로, 발동 후 30일간 파업이 금지된다. 삼성전자 노조의 쟁의행위권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5월18일자 주요 일간지 1면 갈무리. 클릭 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삼전 노조 주장, 다른 노동자 박탈감 키운다”

이에 주요 일간지는 18일 지면을 통해 이 소식을 전했다. 아래는 주요 일간지 1면 헤드라인 기사다.

경향신문 <최종 담판 직전 ‘긴급조정’ 꺼낸 정부>

국민일보 <오늘 마지막 담판 한국경제 분수령>

동아일보 <이재용 “삼성 한가족” 호소, 金총리 “긴급조정 강구”>

서울신문 <모두 잃거나, 함께 살거나 삼전노사 오늘 ‘최후 담판’>

세계일보 <“삼전 파업땐 긴급조정… 협상 마지막 기회”>

조선일보 <긴급조정권 꺼낸 정부, 삼성 노사에 합의 압박>

중앙일보 <‘반도체 과실’ 쪼개는 한국, 키우는 일본>

한겨레 <“삼전 파업 때 긴급조정” 초강수 압박한 정부>

한국일보 <이재용 호소에… 삼전 노사 오늘 ‘최후 담판’>

▲5월18일자 경향신문 1면 광고

지난 16일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1면에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삼성전자 사장단 광고가 게재된 것에 이어, 18일에도 경향신문·서울신문·세계일보·중앙일보·한겨레에 동일한 광고가 게재됐다.

▲18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동아·조선은 삼성전자 노동조합에 비판적인 기사를 종합기사와 함께 배치하거나 전문가 인터뷰를 담는 등 노조 파업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서 “이번 파업은 국민뿐 아니라 사내 다른 노조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부진, 증시, 환율 등 파업에 막대한 경제적 악영향을 감안해 노사 대화와 더불어 긴급조정권 발동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는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를 전했다. 또 동아일보는 2면 <메모리 품귀 속 삼성 파업땐 대체 업체 물색… 中 경쟁사만 웃는다> 보도에서 “공급망 확장을 노리는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이번 사태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했다.

▲18일자 조선일보 3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3면 <21년 만에 긴급조정권 임박… 과거 4차례선 합의·강제중재 ‘반반’> 보도를 통해 과거 긴급조정권이 발동됐을 때 합의와 강제중재가 이뤄졌다고 설명하고, 같은 면에서 <非반도체 차별에… 조합원 한달새 4000명 탈퇴>·<1700여 협력사들 “수억 성과급? 우린 생계 걱정”> 등 삼성전자 노조에 부정적인 기사를 함께 게재했다.

반면 한겨레는 정부가 대기업 노동자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긴급조정’을 거론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한겨레는 2면 <정부, 21년만에 ‘긴급조정 불사’ 강경… 양대노총 “헌법 무력화”> 보도에서 “파업이 현실화하면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충격이 작지 않은 만큼 이를 막겠다는 정부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정부가 긴급조정해서 중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노사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정홍준 서울과기대 교수 분석을 전했다.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사설에서도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양대노총, 삼성전자 파업도 노동 권익 문제라고 보나> 사설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이번 요구는 ‘노동 권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인당 수억 원씩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인 노동권익 확보로 해석되기 어렵다. 다른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일”이라며 “양대노총이 삼성전자 파업을 지지한다면 보상과 리스크를 주고받을 용의가 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중앙일보도 노동조합에 파업 중단을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이재용 “힘 모아 나아가자”… 노조도 파업 접고 호응해야>에서 “삼성 내부 문제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삼성이 두고두고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 파업으로 인한 도미노 효과가 현실화할 경우 1700여 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 수출, 국제수지에 모두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고 했다.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삼전 노사 오늘 마지막 교섭… 파업은 파국이다> 사설을 통해 “사태 해결의 관건은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접는 것”이라며 “파업 역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권리가 남용돼 국민 경제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면 정당성을 잃게 된다는 기본권의 한계를 노동계도 부인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경향신문·한겨레 등은 노사 모두 양보가 필요하며, 정부의 긴급조정권 거론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파업을 막고 싶은 바람과는 별개로 노동3권 제한이라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8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이재용 호소에 극적 협상 재개, 마지막 기회 저버리지 말길> 사설을 내고 “양측이 한발씩 물러선다면 합의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긴급조정은)최후의 카드로 준비는 하고 있어야겠지만, 원만한 협상 분위기 조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폭력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해 사실상 사문화됐던 긴급조정조치를 발동할 경우 노정관계 악화를 불러올 것인 만큼 벌써부터 입에 올릴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서 대타협 이뤄내길> 사설에서 “삼성전자 파업은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긴급조정을 해서라도 파업을 막고 싶겠지만 이는 또다시 ‘나쁜 선례’를 남길 뿐”이라며 “국민의 생명·안전·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파업이 아닌 이상 국가가 강제 개입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18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삼성전자 ‘파업→긴급조정권 발동’ 파국은 안 된다> 사설을 내고 “삼성전자의 파업이 우리 경제에 가져올 파장이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긴급조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정부가 강제로 파업을 중지시키는 긴급조정권은 이런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수단인 만큼 극히 예외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노동 존중’을 표방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에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 2월2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선거 TV토론 실종에 조선 “알권리 침해”

6·3 지방선거가 1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자들의 TV 토론이 법적으로 정한 횟수보다 많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야 지지율 격차가 크게 발생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최소 기준인 ‘1회 토론’만 응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는 6면 <쇼츠에 점령당한 선거, TV토론 실종…국힘 “여당 몸조심 탓”> 보도에서 “주요 격전지에서 TV토론회가 한 차례만 열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지율에서 다소 우위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직선거법에서 최소한으로 명시한 ‘1회 토론’ 규정을 활용해서”라며 “국민의힘은 맹공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유튜브 쇼츠 등으로 선거전의 중심을 이동시키려 한다”고 했다.

▲18일자 한국일보 칼럼

김회경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칼럼 <도전자 패기 가리는 부자 몸조심>에서 “민주당은 ‘보름만 버티면 이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란 청산 프레임을 앞세워 다소 느슨해진 진보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되, 상대측 공세와 보수 결집의 빌미를 줄 계기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중도·무당층을 향한 득점은 안중에 없고 실점만 줄이겠다는 민주당의 전략이 야심차게 선보인 ‘일잘러’ 후보의 경쟁력 홍보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사설에서도 관련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與 후보들 ‘선거 토론’ 계속 회피, 법이라도 바꿔야 할판> 사설에서 “유력 후보 간 양자 토론은 서로 상대를 비판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정책은 물론 현안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 등도 비교·검증할 수 있다. 후보의 진짜 실력은 일방적 발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질문과 반론이 오갈 때 드러나곤 한다”며 “지금처럼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 토론을 회피한다면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은 침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토론회 실종된 지방선거, 유권자는 뭘 보고 뽑나>를 통해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토론을 피하는 것은 유권자의 검증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며 “토론이 부족하면 선거가 이미지 경쟁이 되거나 ‘깜깜이 투표’로 흐를 우려가 커진다. 토론 참여를 유권자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법정 토론회 개최 규정을 어겨도 과태료 처분에 그쳐 일부 지역에선 최소 1회 토론도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만큼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8일자 대전일보 사설

지역 언론에서도 관련 우려가 나온다. 대전일보는 <토론회 피하는 ‘침대축구식 선거’ 볼썽사납다> 사설에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토론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은 국민들과 유권자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며 “TV토론회에 나갔다가 실수를 하거나 약점을 잡히면 자칫 선거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진검승부를 하지 않고 침대축구를 하듯 일부러 공을 돌리며 시간을 끌겠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김명래 경인일보 정치부장은 칼럼 <인천 정치엔 왜 승부수가 없나>에서 “판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후보는 정책 토론을 피해 다니고, 불리한 전세를 뒤집으려는 후보는 말꼬리 잡기에만 열중한다”고 했다.

‘대만’ 협상 카드 삼은 트럼프 “주한미군도 우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에 대한 논의를 했다. 아주 상세하게 논의가 이뤄졌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할 때 중국과 사전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44년간 지켜온 정책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반도 안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18일자 중앙일보 12면

중앙일보는 12면 <트럼프 “대만 무기, 좋은 협상 칩”… 주한미군도 딜 우려> 보도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직후 대만 무기 판매를 협상 카드로 규정해 외교가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번 트럼프의 메시지가 한국에 던지는 충격파는 적지 않다. 미국의 방위 공약이 자국의 손익계산서에 따라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트럼프 “대만 무기 판매는 협상 칩”… ‘거래적 동맹관’의 현주소> 사설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우방이자 중국 억제 전략의 최전선인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 여부가 중국과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라며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이 달린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며 주한미군의 방공 무기를 차출해 가면서도 대북 방어는 한국이 주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미국이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을 중국이나 북한과 먼저 논의한 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없도록 동맹의 소통 체계를 치밀하게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18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사설 <미-중 대만 놓고 ‘타협’ 가능성, 향후 파장에 대비해야>를 내고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여 정책’이 후퇴했다는 의심이 생겨나며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억지력’이 약화되는 연쇄 효과가 발생한다. 예전엔 대만 사태에 ‘말려들까’ 걱정했다면, 이젠 우리도 대만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쪽으로 공포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향후 전개되는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5·18 민주화운동 46주기 “이재명 정부, 국가 효능감 기대한다”

5·18 민주화운동 46주기를 맞아 광주전남 지역신문들이 관련 사설과 칼럼을 냈다. 무등일보는 사설 <12·3 넘어, 이재명 정부 5·18… 국가 효능감 기대>에서 “지난 12·3 내란의 음험함을 2년여 동안 목도해야 하는 지금, 대통령의 방문에 옷깃을 여민다. 이번 광주방문이 위기에 처한 민주공화국의 정체를 되살리고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기고 다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18일자 광주일보 칼럼

광주일보는 <5·18, 기억은 어떻게 민주주의가 되는가>라는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 칼럼을 지면에 게재했다. 이 회장은 “5·18은 현실 속에서 다시 읽혀야 한다. 그것은 단지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 기억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왜 끊임없이 지켜져야 하는가를 묻는 살아있는 역사여야 한다”며 “광주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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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간 이야기, 역사와 믿음, 유랑의 서사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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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걷기를 실천한 사람들 19회]

길이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지 돌아본다면

순례자의 길 어떻게 믿음으로 연결되는지

유랑과 망명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물음은

사진=pixabay.com

1. 길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인류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길을 따라 흘러온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은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한 물리적 통로가 아니다. 길은 인간이 남긴 흔적이며,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층이고, 문명과 권력, 저항과 희망이 교차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태어나고, 길을 따라 만나며, 길 위에서 역사를 만든다.

그렇다면 길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처음 길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자연 속을 오가며 남긴 반복된 발걸음이 곧 길이 되었다. 사냥과 채집을 위해 숲을 가로지르던 발자국, 강을 건너기 위해 다듬어진 얕은 물길, 계절을 따라 이동하던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방향을 만들었다. 길은 자연 속에 새겨진 인간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 습관이 지속될 때, 그것은 단순한 흔적을 넘어 공동체의 질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어느 길을 따라가면 물이 있고, 어느 길을 따라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기억은 집단의 생존 전략이 되었고, 길은 곧 지식이 되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길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정착은 멈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많은 길을 필요로 했다. 농산물을 교환하고, 잉여를 나누며,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길은 단순한 생존의 흔적을 넘어 경제의 혈관이 된다. 곡물과 도구, 이야기와 기술이 길을 따라 흐르며 문명은 확장되었다. 길은 물자의 이동을 넘어 생각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서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길이 본격적으로 역사가 되는 순간은 권력과 만날 때이다. 제국은 길을 만들고, 길은 제국을 유지한다. 로마의 도로망이 그러했고, 동아시아의 역참제도가 그러했다. 길은 군대를 이동시키고 세금을 운반하며, 권력의 명령을 가장 먼 곳까지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길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지배의 구조였다. 길을 장악한 자가 공간을 장악했고, 공간을 장악한 자가 역사를 썼다. 길은 그 자체로 권력의 지도였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권력의 도구로만 머물지 않았다. 길 위에는 저항 또한 흐른다. 억압의 시대마다 길은 또 다른 의미를 띠었다. 피난민의 행렬이 지나간 길, 망명을 향해 떠난 발걸음, 자유를 향해 걸어간 행진의 길은 권력이 기록하지 못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 길은 말 없는 증언자였다. 길은 묻지 않지만 기억하고, 침묵하지만 증언한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어떤 역사에 서게 되는지를 배운다.

근대에 들어 길은 다시 한 번 변모한다. 철도와 도로, 항로와 항공로는 공간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수개월이 걸리던 이동이 며칠, 몇 시간으로 단축되면서 세계는 급격히 좁아졌다. 길은 더 이상 땅 위에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바다와 하늘까지 확장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인간의 인식 구조를 바꾸었다. 멀리 있는 것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었고, 타자는 점차 이웃이 되었다. 길은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기 시작했다.

 

사진=박철

하지만 이 확장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식민지의 길, 전쟁의 보급로, 자원의 수탈을 위한 철도는 길이 반드시 평등과 연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길은 때로 약탈의 통로가 되었고, 타인의 땅을 침범하는 경로가 되었다. 같은 길이라도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길은 중립적이지 않다. 길은 언제나 어떤 의도를 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길은 다시 보이지 않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또 다른 길 위에 살고 있다. 정보는 광속으로 이동하고, 사람들은 물리적 이동 없이도 서로 연결된다. 이 새로운 길은 국경을 넘고, 시간의 제약을 허문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낸다. 연결된 자와 연결되지 못한 자의 차이는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이 된다. 길은 여전히 우리를 이어주지만, 동시에 나누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길은 인간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길은 고립을 거부하고 연결을 선택하는 행위의 결과다. 우리가 길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단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길 위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발걸음, 기억되지 않은 선택들이 모여 오늘의 세계를 만들었다.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길을 걸었던 모든 이들의 집합이다. 우리는 그 위를 걷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길을 묻는다는 것은 곧 역사를 묻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그리고 어떤 길을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물음이다. 경쟁과 지배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연대와 공존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길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이 모여 공동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또한 하나의 길 위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수많은 길들이 이곳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미래를 향한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한다. 어떤 길은 더 빠르고 편리할 수 있지만, 어떤 길은 더 느리고 돌아갈지라도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후자의 길에서 더 깊어졌다.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도로가 사라지고, 철도가 끊기고, 흔적이 지워진다 하더라도, 길은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노래 속에서, 발걸음 속에서 길은 이어진다. 길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기억의 형식이며, 역사의 언어이다. 결국 길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기록 방식이다. 돌에 새긴 글보다 먼저, 종이에 적힌 문장보다 먼저, 길은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 위에 새로운 문장을 쓰고 있다. 우리의 선택, 우리의 이동, 우리의 만남이 곧 길이 되고, 그 길이 다시 역사가 된다.

길은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의 발걸음으로.

 

사진=박철

 

2. 순례자의 길, 믿음의 발걸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비워내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내면의 여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 전부터 ‘순례’라는 이름으로 길을 걸어왔다. 순례자의 길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며, 도착보다 걸음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고, 신을 찾으며, 서로를 만나고, 결국은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순례자의 길은 그렇게 믿음의 발걸음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다. 순례는 언제나 결핍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공허, 삶의 무게,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이 인간을 길 위로 이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향한 갈망이 없다면, 굳이 먼 길을 떠날 이유도 없다. 순례자는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순례의 첫 걸음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안전한 자리를 떠나며, 스스로를 낮추는 데서 순례는 시작된다.

역사 속에서 순례의 길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간 중세의 신앙인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유럽의 순례자들, 인도의 갠지스 강가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한반도의 성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까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걷는 길에는 공통된 정서가 흐른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와의 만남을 갈망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만남을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려는 의지이다. 순례자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먼 거리와 낯선 환경, 육체의 피로와 불확실한 상황은 순례자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순례의 의미는 깊어진다. 편안함 속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기 어렵지만, 고통과 결핍 속에서는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숨이 차오르며,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워질 때,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겸손으로 이어진다.

 

사진=박철

믿음은 종종 확신으로 오해되지만, 순례자의 길에서 드러나는 믿음은 오히려 질문에 가깝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걸으면 걸을수록 더 깊어지고,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 질문을 품고 계속 걷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상태가 아니라, 알 수 없음 속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태도이다. 순례의 길 위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또한 새롭게 형성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삶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연대를 느낀다. 물을 나누고, 길을 묻고, 잠시 함께 걷는 그 짧은 만남 속에서 인간은 공동체의 본질을 경험한다. 순례는 개인의 여정이지만, 동시에 타인과 함께 이루어지는 길이다.

순례는 또한 시간에 대한 감각을 바꾸어 놓는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에 순례는 느림을 선택한다. 자동차 대신 두 발로, 효율 대신 경험으로, 목적지 대신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 느림 속에서 인간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한다. 바람의 결, 햇빛의 온기, 길가의 작은 풀 한 포기, 그리고 자신의 호흡. 순례자는 세상을 다시 배우는 사람이다.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마주한다. 그러나 순례의 진정한 목적지는 특정한 장소에 있지 않다. 물론 많은 순례가 성지라는 물리적 목적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변화이다. 길 위에서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가 순례의 본질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순례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살아가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고.

현대 사회에서 순례는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다. 종교적 신념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방식으로 순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 끊임없는 경쟁에 지친 이들, 삶의 방향을 다시 찾고자 하는 이들이 길 위로 나선다. 그들에게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을 다시 정렬하는 시간이다.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 속에서, 오히려 물리적인 걸음이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낸다. 믿음의 발걸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고, 역사책에 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분명히 존재하며,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한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변화는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순례자의 길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영향을 남긴다.

 

사진=박철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순례자이다. 비록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가이다. 목적지만을 향해 서두르는 발걸음인지, 아니면 과정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돌아보는 걸음인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순례자의 길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며,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여정이다. 중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멈출 수도 있고, 다시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순례자가 된다. 믿음의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3. 유랑과 망명의 길

길은 언제나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어떤 길은 스스로 나선 것이지만, 어떤 길은 떠밀리듯 시작된다. 유랑과 망명의 길은 후자에 가깝다. 그것은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어서 시작되는 길이며,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삶의 방식이다. 그 길 위에는 낭만보다 상실이, 기대보다 두려움이 먼저 놓여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깊은 사유와 새로운 문화는 종종 이 길 위에서 탄생해왔다. 유랑은 반드시 비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길 위에 서는 사람도 있다. 정착된 삶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 혹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유랑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고정된 자리를 떠나 흐르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저항이다.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그래서 유랑자의 길에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동시에 가능성이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타인과 풍경은 자신을 확장시키고,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러나 망명은 다르다. 망명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이며, 자유가 아니라 상실이다. 정치적 박해, 전쟁, 폭력, 혹은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게 되고, 익숙한 언어와 풍경은 한순간에 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망명의 길은 끊임없는 상실의 연속이다. 뿌리 뽑힌 삶,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상태가 그 길 위에 놓여 있다. 망명자는 두 개의 시간 속에 산다. 하나는 떠나온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해야 할 현재이다. 그러나 이 둘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과거는 그리움으로 남고, 현재는 낯섦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망명자의 삶에는 늘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그 질문은 때로 고통이지만, 동시에 깊은 성찰을 낳는다. 인간은 가장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신을 가장 진지하게 묻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박철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유랑과 망명의 길 위에 있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났지만, 그 떠남 속에서 새로운 언어와 사유를 만들어냈다. 낯선 땅에서 바라본 세계는 이전과 다르게 보였고, 그 차이는 창조의 원천이 되었다. 경계에 서 있는 존재는 중심에 있는 사람보다 더 넓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망명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유랑과 망명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경계’이다. 그들은 어느 한 곳에 완전히 속하지 않기에, 두 세계 사이를 오간다. 이 경계적 위치는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독특한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자신이 속한 문화와 타인의 문화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익숙함과 낯섦을 함께 경험하는 감각은 그들에게 특별한 이해를 준다. 경계에 선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길을 지나치게 미화해서는 안 된다. 유랑과 망명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족과의 이별, 언어의 단절, 사회적 배제, 경제적 불안은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난민의 현실은 이 길의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떠나지만, 도착한 곳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길은 끝났지만, 정착은 시작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길 위에서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의미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망명자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지가 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는 의지, 상실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려는 힘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유랑자의 길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은 안정감을 주지 않지만, 대신 새로운 발견을 선물한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기에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 경험들은 결국 자신을 더 넓은 존재로 만든다. 유랑자는 특정한 장소에 속하지 않지만, 대신 더 넓은 세계에 속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유랑과 망명의 의미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글로벌화는 이동을 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냈다.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고, 문화적 차이는 여전히 크다. 경제적 이유로 떠나는 이들, 정치적 이유로 쫓겨나는 이들, 자발적으로 이동하는 이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길 위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사진=박철

이 질문은 단순한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한다.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으며,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그러나 유랑과 망명의 길은 그 욕망을 끊임없이 흔든다. 익숙한 것을 떠나야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길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우리가 직접 망명의 길을 걷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대의 삶은 어느 정도의 ‘내적 유랑’을 요구한다. 직업의 변화, 관계의 이동, 가치관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완전히 고정된 삶은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부분적인 유랑자이며, 때로는 작은 망명자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길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이다. 유랑을 단순한 방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가능성의 공간으로 볼 것인지. 망명을 단순한 비극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까지 함께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시선은 달라진다. 물론 고통을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외면할 수는 없다. 길은 묻는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랑자와 망명자는 이 질문을 누구보다 자주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확실한 답을 갖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질문을 안고 계속 걸어간다. 그리고 그 걸음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유랑과 망명의 길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인류 전체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이야기이다. 전쟁과 평화, 권력과 저항, 이동과 정착의 반복 속에서 이 길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서로를 만난다. 낯선 타인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또 다른 인간으로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일 것이다. 상실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 낯섦 속에서도 연대를 선택하는 사람, 불확실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유랑과 망명의 길은 우리에게 그것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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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이재용 “비바람 제가 맞겠다”···파업 위기에 급거 귀국, 6년 만에 대국민 사과

수정 2026.05.17 07:59

“내부 문제로 심려끼쳐 전 세계 고객분께 사죄”

“문제 해결 위해 애써주시는 정부·관계자에 감사”

노조엔 “우린 한 몸 한가족, 비바람 제가 맞겠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입장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하면서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며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며 “우리 한번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봅시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저희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전 세계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항상 저희 삼성을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또 채찍질해 주시는 우리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저희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주고 계시는 정부와 관계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드린다”며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고객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올린다”고 덧붙였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준비한 원고를 꺼내 읽은 뒤 자리를 떠났다. 사과 발언 도중 세 차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문제 등에 대해 사과한 이후 6년 만이다. 공개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2020년 5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선 두 차례 사과는 부회장 시절 이뤄졌고, 2022년 10월 회장 취임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 중 노조 파업을 앞두고 일정을 변경해 급거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벌일 계획이다.

전날 삼성전자 사장단은 “지금은 매 순간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다. 회사 내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노조에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노조는 사측 대표 교섭위원 교체와 성과급 제도화·상한 폐지 등 핵심 요구에 대해 회사가 먼저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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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괴벨스'의 탄생, 공안검사에서 극우 선봉장까지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고영주, 공안검사가 방문진 이사장이 되기까지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 기사입력 2026.05.17. 07:09:41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을 받아 들었다. 책은 고영주(1949~)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영화 〈변호인〉 부림사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전천후 용공조작 전문가."

읽다가 한참 멍해졌다. 전천후(全天候). 어떤 날씨에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독재정권에도 민주정권에도, 군복을 입은 권력 앞에도 넥타이를 맨 권력 앞에도. 4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빨갱이'를 찾아다닌 사람. 그것이 고영주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삼아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려 한 자들의 냄새다. 20세기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림사건, 그리고 노무현의 전환점

고영주는 1949년 2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뒤 아버지 사업을 돕다가 군에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고 진로를 바꿨다.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1980년 11월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은 그는 이듬해 부산지검에 공안부가 신설되자 그곳에 배속됐다.

1981년 9월, 전두환(1931~2021) 정권의 부산지검 공안부는 기획수사를 통해 부산양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19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했다. 길게는 49일간 불법 감금한 채 물고문과 이른바 '통닭구이' 고문을 자행했다. 고영주는 최병국(1952~), 장창호와 함께 이 사건 담당검사였다. 그들은 경찰의 고문현장인 부산시경 대공분실을 직접 방문해 정황을 파악했다. 피의자들이 검찰조사에서 경찰조서를 부인하며 고문사실을 호소했지만, 고영주 등은 이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부림사건 관련자 이상록의 항소이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법의 준수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불법고문 수사를 지휘했다. 이 나라에는 법이 있고 인권이 있는 나라인가? 하는 절망적인 자탄을, 검사의 방문은 저희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 노무현(1946~2009)은 훗날 "부림사건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고영주가 만들어낸 사건이 노무현을 인권변호사로 바꾼 것이다.

2014년 9월, 대법원 재심에서 부림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고영주와 최병국은 그 순간에도 사과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확신범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목표였다."

세계사 속의 동류, '빨갱이 감별사'의 계보

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이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을 빌미로 수천 명의 삶을 파괴한 인물이다. 그는 증거도 없이 "나는 국무부에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외쳤다. 그 이름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이념 딱지를 붙이는 정치적 마녀사냥을 뜻하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는 미디어를 장악해 반대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고영주가 '한국판 고벨스(고영주+괴벨스)'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괴벨스가 라디오와 영화를 장악했다면, 고영주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MBC를 장악하려 했다.

매카시는 결국 1954년 상원 청문회에서 "상원의원,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변호사 조지프 웰치(Joseph Welch, 1890~1960)의 한마디에 몰락했다. 방청석이 박수로 들썩였다. 그러나 고영주는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방문진 이사장, 그리고 '공산주의자 문재인'

검찰을 떠난 고영주는 극우단체들 사이를 누비며 '애국보수'의 이론가를 자처했다. 2015년 박근혜(1952~) 정권에 의해 방문진 이사장에 임명됐다. MBC 지분 70%를 소유한 대주주 기관의 수장이 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거침없었다. 국정감사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사 공산주의자"이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공언했다.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을 공격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앉아서는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방해했다. 2017년 11월 방문진 이사장직에서 해임됐지만, 법원과 싸우며 버텼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최종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공적 인물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견 표명"이라는 이유였다. 이 판결 이후 그는 스스로를 "법원에서도 인정한 공산주의자 감별사"라고 불렀다. 유머 감각만큼은 있는 셈이다. 다만 그 유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웃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도 냉전시기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영국 정보기관 MI5는 1940~50년대 공무원, 언론인, 노동운동가 수천 명을 공산주의자로 분류해 사찰하고 직장에서 쫓아냈다. '음화 심사(Negative Vetting)'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이 사찰은 수십 년간 비밀에 붙여져 있다가 뒤늦게 공개됐다. 영국판 블랙리스트였다.

그러나 영국은 이 문제를 비밀로 덮어두는 대신, 수십 년 뒤에라도 문서를 공개하고 의회 청문회를 열고 피해자를 복권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늦었지만 기록했고, 기록했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1981년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가 2015년 방문진 이사장이 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이후에도 고영주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25년 2월 이승만바로알기국민연합 상임고문을 맡았고, 대통령 이재명(1964~)이 여수·순천사건 피해자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냈을 때 이를 격렬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4년 부림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날, 고영주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가 고문현장을 방문하며 기소를 강행했던 그 사건의 피해자들이 30년 넘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 했던 동안, 고영주는 훈장을 두 번 받았다(1995년 홍조 근정훈장, 1997년 황조 근정훈장). 그리고 지금도 살아서 성명을 내고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매카시는 대중 앞에서 몰락했다. 괴벨스는 전범으로 기록됐다. 고영주는 아직 그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러나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미 그 이름을 기록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연합뉴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최근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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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주기... 살인 10건 중 2건 가해자, 여성 폭력 저질렀었다

거상 김만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름이 오른 여성 리더입니다.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았지만, 혼자 힘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쌓았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눈 삶의 가치가 실록에도 남게 된 거죠. 그가 처했던 상황, 문제의식 그리고 걸어왔던 길은 지금과도 통합니다. 유리천장은 아직도 튼튼하니까요. '오늘의 김만덕 이야기'를 매주 전합니다.

지난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메모글과 꽃이 놓여 있다. ⓒ 이희훈

[여성인권] 강남역 10주기... 2020년대 살인범죄 여성피해자 비율 높아지고 있어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당시 34세였던 김성민에게 범행 대상은 앞서 화장실에 들어가던 남성 6명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이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살인·강도·성폭력·방화 등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입니다.

경찰청 '범죄 피해자 성별 추이'(2016년∼2020년) ⓒ 경찰청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2016년 강력범죄 피해자는 2만5071명(성별 미상 제외)이었습니다. 이중 여성 피해자는 2만2000명(87.8%). 강력범죄 피해자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이 여성이라는 이 사실, 최근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그 해 강력범죄 피해자는 2만3186명입니다. 이중 2만42명(86.4%)이 여성입니다.

살인범죄의 경우는 이런 양상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찰청의 '대표 피해자 성별 추이'에 따르면 살인범죄의 경우 2016년 남성피해자는 520명, 여성피해자는 379명으로 여성 비율이 41.5%였습니다. 2024년 같은 통계를 보면 살인피해자 여성 비율은 43.5%(772명 중 336명)로 오히려 2016년보다 높아졌습니다.

그 추이를 보면 2024년 갑자기 나타난 흐름이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2020년 살인사건 여성피해자 비율은 39.4%, 2021년 40.9%, 2022년 41.7%, 2023년 42.5%였습니다. 2020년대 들어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5일, 장윤기는 일면식도 없는 여학생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피해자를 도우려던 남학생도 그가 휘두른 흉기에 크게 다쳤습니다. 장윤기의 당초 범행 대상은 자신을 스토킹범으로 신고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해당 여성이 교제를 거부하자 폭행하고 성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살인의 전조가 관계성 범죄로 이미 나타났던 겁니다.

관계성 범죄에 대한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됐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경찰청의 '2024 사회적 약자 보호 주요 활동보고서'를 보면 그 해 발생한 살인 사건 중 무려 150건(19.5%)의 경우 앞서 이미 여성 폭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살인 사건 10건 중 2건의 가해자는 앞서 여성 폭력을 저질러 이미 '살인의 전조'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광주 여학생 살인 사건 가해자들의 범행 목표는 자신보다 물리력이 약한 여성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어린이나 노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여성폭력은 그 다음 일어날 또 다른, 또는 더 큰 범죄의 전조입니다.

[여성경제] 드디어 회장직 오른 김정수... "드라마 한 페이지를 찢었다"

2023년 9월 14일,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 누디트 익선에서 열린 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라면 60주년 비전선포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닭의 어머니'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6월 1일부로 회장직에 오릅니다. 15일 삼양식품은 그의 승진 소식을 전하며 "김정수 부회장의 승진은 글로벌 시장 확대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1년 12월 부회장직에 오른 후 5년 여 만의 일입니다.

사실 그의 회장직 승진은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매출 1조1929억 원(연결 기준), 영업이익 1475억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는데요.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은 82%까지 확대되는 등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삼양식품은 김 부회장이 개발한 '불닭볶음면'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김 부회장은 2025년 '은탑산업훈장'을, 올해는 '한국이미지상'과 여성 경영인 최초로 한국경영학회 선정 '대한민국 경영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승진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받을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4년 1월, 미국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김 부회장을 집중적으로 다룬 특집 기사를 내놓기도 했는데요. 삼양식품 창업주의 며느리라는 점이 부각된 기사의 첫 문장, 다음과 같습니다.

"김정수의 삶은, 한국 드라마의 한 페이지에서 찢겨 나온 거처럼 보인다. 재벌가에 시집와 전업주부로 살다 부도를 선언한 라면회사에 돌연 입사했다. 그녀는 이제 (그 회사의)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책임자)다."

이제 그의 위치는 유일무이한, 그룹 '회장'으로 격상됐습니다.

[세계여성] 345억 쏟아 붓는 호화 파티 취소한 그녀... "이제 파티는 끝났다"

신디 로즈(Cindy rose)는 세계적 광고 회사 WPP의 첫 여성 CEO다. ⓒ WPP 홈페이지 갈무리

글로벌 광고·마케팅 업계의 공룡이라 불린다는 WPP를 아시나요. 세계 5대 광고 지주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회사의 CEO, 신디 로즈(Cindy rose)입니다. 5대 광고 지주회사 CEO 중 여성은 그녀가 최초라고 하네요.

WSJ는 지난 7일 신디 로즈의 8개월 간 분투기를 담은 기사를 내놨습니다. WSJ는 "지난 9월 CEO에 취임한 그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하나의 장면을 대표적으로 소개했습니다.

"매년 6월, 광고 대행사들은 칸 광고제에서 광고주들을 유치하기 위해 5일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지난해 WPP는 칸 광고제를 위해 2,300만 달러(한화로 약 344억 7000만 원)를 지출했습니다. 파티를 즐긴 참석자들은 요트에서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파티는 끝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신디 로즈는 요트·섬 파티 취소를 결정하는 대신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 등이 참석하는 클라이언트 오찬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AI 역량을 확보하는 프로그램 진행에 초점을 맞출 거라고 하는데요.

WSJ는 신디 로즈가 "▲ 인력을 적정 규모로 조정하고 ▲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 AI 기반의 미래에 맞춰 회사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WPP는 지난해 직원 수를 9% 가량 감축했다고 합니다. 추가 감원을 두려워하는 직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신디 로즈가 해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WSJ는 짚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취임 2개월 후, 신디 로즈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 효과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새로운 구상에 맞춰 움직이고 있습니다. 빠르게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WPP와 임직원, 고객, 주주 모두를 위한 밝은 미래를 위해 올바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녀의 확신이 현실이 될지, 세계 5대 광고 지주회사 첫 여성 CEO 뿐 아니라 '성공한 CEO'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여성정치] TK 6.3 지방선거 여성 출마자 역대 최다?

12년 전입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대구·경북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공천을 받은 여성 후보는 모두 5명이었습니다.

그 기록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깨질 것으로 보입니다.

14일 기준 각 정당 공천 상황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김기현 경산시장 후보, 박희정 포항시장 후보, 강부송 영덕군수 후보 등 3명의 여성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조순자 구미시장 후보(개혁신당), 양희 대구 동구청장 후보(정의당), 정수미 구미시장 후보(무소속) 등도 출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국민의힘 TK 지역 여성 후보 공천 상황에 따라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양희 후보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인상적입니다.

"선거운동이라고 해서 그간 해온 정치 활동과 다를 게 없다. 함께 살고 있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이주 여성과 아이들, 장애인, 소수자,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변하고, 나서주는 정치."

양희 정의당 대구 동구청장 후보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양희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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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등 육사 입학, 수학 과락할 뻔, 쿠데타 '일등' 전두환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다른 기사 보기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1권

12·12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의 최종책임자

육사생도 지지 시위 이끌어 박정희 눈 들어

특유의 기질로 하나회 조직, 군 내 친위세력

12·12와 5·17로 번번이 법과 제도 짓밟아

삼청교육대와 언론학살, 녹화사업도 책임

빠른 사면이 12·3 내란 불러낸 것은 아닌지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1권을 펼쳤다. 전두환(1931~2021) 항목 첫 줄이 눈을 잡아끈다.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수괴이자 광주학살 원흉."

수괴(首魁). 우두머리 괴수. 대법원이 1997년 확정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수괴는 1995년 구속됐다가 1997년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1997년 12월 사면됐다. 구속에서 사면까지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광주에서 쓰러진 사람들이 흙 속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1959년의 전두환(위키피디아)

226등 입학, 수학 과락 면제, 그래도 쿠데타는 일등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본인 순사에게 부상을 입히고 만주로 도주하는 바람에 가족 모두 만주 생활을 하다 1941년 대구로 이주했다. 빈민촌에서 약 배달을 하며 또래보다 늦게 학교를 다녔고, 1952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성적은 228명 중 226등. 스스로도 1차 합격자 발표에 끼지 못하고 "보충생"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육사 시절 수학 과락을 면하기 위해 동기생에게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 동기생은 "전두환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황금 같은 외출시간을 거의 다 빼앗겼다"고 회고했다. 졸업 성적은 156명 중 126등. 성적으로는 도저히 상위권에 들 수 없었던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오직 하나, 기질과 투지였다. 축구부에서 실력이 아닌 기질로 주장이 된 그는 나중에 군대에서도, 정치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정상에 올랐다. 능력이 아니라 기질로. 법이 아니라 투지로.

 

1985년의 전두환(위키피디아)

하나회, 그리고 박정희의 친위대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서울대 ROTC 교관이던 전두환은 육사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위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박정희(1917~1979)의 눈에 들었다. 박정희의 비호 아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육사 11기들은 비밀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었다. 군부 내 친위대가 필요했던 독재자와 빠른 출세가 필요했던 야심가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하나회 전체가 예편 위기에 몰렸으나 박정희가 수사 확대 중지를 지시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피살됐다. 기회가 왔다.

 

1985년의 전두환(위키피디아)

12·12, 5·17, 그리고 광주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며 수사권을 장악했다. 1979년 12월 12일, 그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1929~2002)를 불법으로 연행했다. 12·12 군사반란이다.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아야 할 보안사령관이 그 상관을 체포한 것이다. 법은 이미 그날 밤 죽었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전국 비상계엄 확대를 강행했다. 5·17 내란이다. 바로 다음날, 광주에서 계엄군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전두환은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 열흘 동안 수천 명의 시민이 살상 당했다. 공수부대 특전사 부대원들이 광주 시내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내려쳤다. 계엄군의 총에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는 학생도, 노인도, 아이를 안은 어머니도 있었다.

 

전두환.(Chun Doo-hwan, South Korea's Most Vilified Ex-Military Dictator, Dies at 90 - The New York Times)

세계사 속의 동류, 제복을 입은 학살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속 닮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2013)다. 1976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이른바 '더러운 전쟁(1976~1983년)' 동안 3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을 납치·고문·학살했다. 비델라는 2010년 반인도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13년 사망했다. 그는 끝내 풀려나지 않았다.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와도 닮아 있다. 1973년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장악해 3000명 이상을 죽이고 수만 명을 고문했다. 피노체트는 1998년 런던에서 체포됐다. 스페인 법원의 국제 체포영장이 집행된 것이다. 영국 법원이 그의 신병 인도를 심리하는 동안 런던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건강을 이유로 칠레로 돌아갔고 2006년 사망할 때까지 최종 처벌은 면했다.

전두환은 1997년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됐다. 추징금은 사망할 때까지 대부분 내지 않았다. 29만 원밖에 없다는 말을 남긴 채.

 

1976년의 호르헤 비델라(위키피디아)

삼청교육대, 언론학살, 녹화사업

광주 학살 이후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 실질적 최고권력자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그가 한 일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삼청계획'을 승인해 6만 명 이상을 영장도 없이 군부대로 끌고 가 가혹한 훈련과 폭력에 시달리게 했다. 사망자만 수십 명에 이르렀다. 언론인 700여 명을 강제해고하고 언론사를 강제통폐합했다. '녹화사업'으로 군 내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사찰하고 프락치로 만들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 김대중(1924~2009)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5공화국 내내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이 줄을 이었다. 전두환은 이 모든 것의 최종 책임자였다.

 

1981년의 전두환과 이순자(위키피디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아르헨티나는 비델라를 종신형에 처했다. 칠레는 피노체트를 국제체포영장으로 런던에서 붙잡았다. 스페인은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총통 사후 40년이 지나 그의 유해를 국가묘역에서 파냈다. 이 나라들이 완벽한 정의를 실현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독재자를 2년 만에 사면해 골프장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로 지켜 보았다. 계엄군이 국회를 향해 움직이던 그 밤, 나는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떠올렸다. 전두환이 2021년 11월 23일 사망할 때까지 광주 피해자들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반헌법의 문법과 무관하지 않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온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전두환을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수괴이자 광주학살 원흉"으로 기록했다. 대법원이 확정한 표현이다. 그런데 그 수괴는 사면됐고, 추징금을 내지 않았고, 사과하지 않았고, 자연사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 법정의 방청석에 앉은 우리가 이 기록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유일한 심판이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광주 5·18 국립묘지에 있는 추모관. 이곳은 학살범 전두환이 자행한 광주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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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지역행보에 국힘 “관권선거”..민주 “말도 안되는 공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5/16 11:44
  • 수정일
    2026/05/16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민일성 기자

  • 업데이트 2026.05.16 09:38

  • 댓글 0

송언석 “한번 더 하면 법적조치”..조승래 “대한민국이 마비돼야 한단 건가”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경기 성남 모란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청와대 >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 행보를 두고 관권선거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정치 공세”라고 맞받았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히 수준 낮아도 한참 수준 낮은 얘기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SNS에서 이 대통령의 전통시장 방문 등을 언급하며 “노골적인 관권선거, 선거개입이다. 대통령이 선거개입의 수준을 넘어 아예 직접 선거운동을 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특히 성남 모란시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고, 김병욱 성남시장 후보가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 장소 선정의 기획의도부터 매우 불순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대 대통령마다 선거개입 논란이 있곤 했지만, 이렇게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매일 같이 전국의 전통시장을 직접 돌며 선거운동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한 번만 더 진행된다면, 국민의힘은 즉시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법적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승래 사무총장은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되는 거냐”라며 “그러면 국무회의도 관권선거가 되겠다. (그런 논리라면) 언론도 (대통령) 동정 보도를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반박했다.

조 사무총장은 “선거라는 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정은 돌아가야 한다”며 “대통령이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안보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과 관련된 정책이나 의제에 대해 점검하고 현장 확인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것을 할 수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마비되어야 한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대통령 일정은) 지방선거와 전혀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이규연 수석은 “코멘트할 정도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 명분 있는 행사, 가야 할 곳을 가고 계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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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여당 승리’ ‘야당 승리’ 40% 동률…민주 ‘긴장’ 국힘 ‘기대’

조희연,장나래,김채운기자

  • 수정 2026-05-16 08:12

특검 공소취소 권한 ‘반대’ 44% ‘찬성’ 27%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 셋째)가 15일 제주 연북로 위성곤 제주지사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가 19일 앞으로 다가온 15일. 여야는 지방선거 결과 전망에 관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술렁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휴대전화 가상번호 전화 인터뷰) 결과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답변은 44%,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3%로 11% 포인트 차였다. 3∼4월 같은 조사에서는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보다 평균 17% 포인트 가량 웃돌았던 것에 견주면 격차가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여당 후보가 당선 돼야 한다’는 답변과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답변이 40%로 같게 나왔다. 2주 전 조사에서는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8%포인트 높았는데, 격차가 사라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앞줄 왼쪽 둘째)와 송언석 원내대표(셋째) 등 의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무시 심판 공소취소 저지 국민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긴장’…국힘은 ‘기대’

양당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지지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는 반응이다. 영남 지역 광역단체장 선거를 돕고 있는 한 민주당 의원은 “이제 선거가 20일도 안 남은 상황인 만큼 긴장해야 한다”며 “다음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들어가는 만큼, 다음주 여론까지 (여야 격차가) 더 좁혀진다면 민주당이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지지율이 상당히 좁혀질 거로 예상했고, 그 예상 시기보다 오히려 (좁혀지는 시점이) 늦게 왔다”며 “지방선거의 성격, 각 정당에 대한 태도 같은 국민들의 구조적 인식이 바뀐 건 아닌 것 같다. 이 구조적 인식이 투표로 나타나도록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고무된 모습이다.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공소취소 특검 추진과 부동산 가격 상승, 나무호 피격 등이 겹치면서 분위기가 바뀐 건 사실”이라며 “이 흐름을 이어가면서 현역 광역단체장의 안정성 등을 강조하면 보수뿐 아니라 중도층의 마음까지 되돌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당내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원오 후보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데다 공소취소 특검 추진 등이 겹치면서 보수 결집 흐름이 서울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이럴 때 더 낮은 자세로 읍소해야 하는데 장동혁 대표가 당당하고 거칠게 나오는 게 역효과가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선거가 임박하자 영남마저도 민주당에 넘겨줄 순 없지 않느냐는 보수 결집 움직임이 확연히 느껴진다”면서도 “보수 결집이 충청과 강원, 수도권까지 확산하는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특검 공소취소 권한 ‘반대’ 44% ‘찬성’ 27%

한편, 이번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44%는 ‘조작기소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공소취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응답은 27%, 의견 유보는 28%였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공소취소권 부여에 찬성하는 의견이 43%, 반대가 27%였다. 반대로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선 반대(68%)가 찬성(14%)보다 많았다. 무당층 또한 반대(50%)가 찬성(12%)을 크게 웃돌았다.

정치 성향별로 보면 자신이 중도적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 반대(45%)가 찬성(27%)보다 많았다. 이 대통령 직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소취소권 부여에 찬성하는 의견이 39%, 반대하는 의견이 30%로 격차가 크지 않았다.

지역별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소취소권 부여에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찬반 여론을 보면 서울은 44%·27%(이하 찬·반), 인천·경기 24%·49%, 대전·세종·충청(26%·44%), 대구·경북(25%·51%), 부산·울산·경남(20%·49%)였다. 민주당 지지가 강한 광주·전라(35%·39%)마저 찬반 여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다퉜다.

대통령 긍정 평가 61%…2주 전엔 64%

갤럽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61%, 부정평가는 28%로 나타났다. 2주전 같은 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64%, 부정평가는 26%였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26%), 외교(10%), 전반적으로 잘한다(7%), 소통(6%), 직무 능력·유능함(6%) 등이 있었다. 갤럽 쪽은 “대통령 긍정 평가 이유에서는 경제 사안이 최상위”라며 “지난 몇 달간 파죽지세로 상승한 코스피가 이번주 8000에 육박했고, 우리나라 시가총액은 세계 6위로 올라섰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부정 평가 이유는 도덕성 문제·본인 재판 회피(10%), 과도한 복지·민생지원금(10%), 경제·민생·고환율(9%), 전반적으로 잘못한다(8%), 부동산 정책(7%), 독재·독단(7%) 등이 꼽혔다. 2주 전(지난달 28~30일)과 비교하면 부정 평가 이유에서 도덕성 관련 지적이 늘었다. 갤럽 쪽은 “여당이 추진하는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안’(조작기소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 부여 공방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과도한 복지’ 지적에 관해 “김용범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발언 영향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서서 가짜뉴스라고 언급했지만, 초기 국민이 받은 충격이 워낙 커서 이 대통령 주장도 불씨를 끄기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조작기소 특검의 공소취소 문제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특검이 수사하는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등의 공소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됐다. 이후 이 대통령이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숙의 과정을 요청하자 민주당은 법안의 시기·절차·내용을 지방선거 이후 논의하기로 한 상태다.

자세한 내용은 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보면 된다.

조희연 기자 choh@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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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유권자'들 손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박세열 칼럼] 지역주의가 힘 못 쓴 최초의 선거로 기록될 수도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6.05.16. 09:27:20

노무현이 서울 종로를 떠나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부산 북강서을 지역에 출마할 때가 2000년 총선이었다. 당시엔 합동유세라는 게 있었다. 운동장에서 유권자들을 모아놓고 유세하는 것이다. 그때 연단에 선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의 유세 연설은 아마 한국 정치사상 최악의 기억으로 꼽힐 것이다.

"살림살이 나아지셨다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혹시 전라도에서 오신 거 아닙니까?"

"부산시민들은 지난 2년간 DJ정권으로부터 가장 핍박과 홀대를 당해왔다."

"이번에 노무현 씨가 당선돼 기가 살아서 2년 반 뒤에 대통령 선거를 할 때 또 이사람이 출마를 한다면 부산의 표 또 일부 갈라가지고 또 누구 좋은 일 시키는 제2의 이인제 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전라도 사람이 주축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영남 사람이 대선주자 되겠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 아닌가."

현장에선 '지역감정 하지 말라'는 격한 항의가 나왔지만, 그는 늠름하게 유세를 마무리했다. 허태열은 53.9%로 당선됐고, 노무현은 37.0%로 낙선했다. 노무현은 낙담한 참모들에게 말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시간이 약이다. 시간 만큼 확실한 대책은 없다. 고생 좀 더 하고 갑시다."

참으로 야만의 시대였다. 한국 정치사의 맥락에서 지역주의는 이념 투쟁의 비극적 역사의 상처를 후비고 인종주의적 외피를 입고서 상대 지역을 폄하하는 행태를 주로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영남과 호남이라는 한국 정치의 '라이벌' 파벌이 전체 선거판에 영향을 미치는 특유의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지역 파벌주의'로 규정해도 좋겠다. 전자의 지역주의와 후자의 지역 파벌주의는 꽤 끈끈하게 연결돼 있었다.

전자의 지역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노무현이 말한 것처럼 26년의 시간이 흐르며 정치판에선 사실상 퇴출됐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이번 지방선거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 파벌주의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 첫번째 선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징후들이 있다.

첫째, 부산 북갑에 나선 하정우의 출마 방식이다. 과거 노무현이 부산에 내려갔을 땐 '대의를 품고 희생하러 간다'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스타 참모'가 여론의 대대적 주목을 받으며 출마 선언을 했다. 26년만의 변화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국회 의석 18석 중 17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했지만, 8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에선 부산시의회 전체 47석 중 41석을 민주당이 차지한 적도 있다. 여전히 '영남 파벌주의'가 강하다고 해도 부산은 점점 '스윙보터' 지역이 되고 있다.

둘째, 역시 부산 북갑에 나선 한동훈의 사례도 주목된다. 서울 태생의 한동훈이 무소속으로 부산 지역구를 선택한 것 자체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동훈은 어찌됐든 국민의힘에서 '새로운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부산을 선택한 것은 국민의힘이 '본진'으로 여기는 영남의 한복판을 '보수 개혁'의 시작점으로 선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거라면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 역시 최근 정치판의 변화를 상징한다 볼 수 있겠다.

셋째, 김부겸의 TK 진출이다. 민주당 후보 중 '역대급 스펙'을 가진 그의 대구시장 선거 출마로 국민의힘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김부겸의 당선 가능성과는 별개로 '영남 파벌주의' 세력이 현재 역대 가장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내에서 TK 지역의 토호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에서 더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 가장 큰 유권자 집단인으로 묶일 수 있는 수도권 정치에서 TK 정서가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징후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넷째, 중앙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호남이다. '호남 파벌주의' 세력은 여전하지만,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이미 수도권 정당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호남이 우호적 인물로 꼽는 조국은 경기도 평택에 출마했지만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중앙당이 공천한 전북도지사 후보에 맞서 무소속 후보가 나왔지만 수도권 민심과는 거리가 멀고, 전체 판을 흔들수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멈추고 있다. 호남 지역의 이익이 중앙당을 흔들지 못하는 징후도 꽤 많다.

과거엔 영남과 호남의 지역 파벌주의가 중앙 정치에 실질적 힘을 발휘했다. 지역의 이슈가 중앙당을 흔들거나 수도권 민심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 이게 '액상화'되고 있다. 노무현의 말대로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유권자 연령층 변화가 주요했다. 수도권의 영호남 커뮤니티는 고령화됐고,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올라온 그의 자녀 세대들은 '지역 정체성'에 굳이 얽매이지 않는다.

더 큰 이유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수도권 일극화가 강화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지역주의를 희석하기 위해 수도권에 자원을 집중한 것은 아니지만, 수도권 일극화 현상이 의도치 않게 지역 파벌주의에 제동을 걸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외부 효과'다. 일극화된 수도권은 더 이상 지방에 흔들리지 않는다.

영남 기반의 국민의힘이 영남 소파벌주의로 쪼그라든 것, 호남 기반의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으로 변모하며 호남의 중앙 정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을 대한민국 정치 지형 변화의 조짐으로 읽을 수 있을까.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영남의 선택'이다. 영남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의 '텃밭'이란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게 될 경우, 한국 정치는 새 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보수의 고질병 같은 '윤어게인'을 끝내고, 한국 정치의 '지역 파벌주의'를 와해시키는 것은 결국 영남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영남이 한국 정치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셈이다. 대구에서, 부산에서, 경남에서 그들의 선택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지역주의'가 힘을 쓰지 못한 최초의 선거가 될 지도 모른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후보,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후보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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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군 재편 구상'... 하와이 발언의 함의와 다영역 전쟁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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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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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5.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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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인도태평양지싱군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인도태평양지싱군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전문성을 요하는 일을 일정을 정해 추진하려 할 가능성이 나를 잠 못 들게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 인도·태평양 지상군 심포지엄에서 나온 이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속도조절론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한국군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구조 속에 완전히 편입하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브런슨 사령관은 이날 전작권 문제와 더불어 ‘다영역 태스크포스(MDTF)’ 배치와 한국의 ‘권역 지속지원 거점(Regional Sustainment Hub)’ 역할을 동시에 강조했다. 이는 분리된 사안이 아니다. 한국군을 인도·태평양 전구 전체를 포괄하는 미국의 다영역 전쟁체계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통합 전략이다.

주목할 점은 이 구상이 지난 4월 말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발표한 ‘한미 연합 다영역 태스크포스 구성 계획’ 보고서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민간의 아이디어가 주한미군 지휘부의 전략으로 구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영역 태스크포스’는 공중·해상·지상·우주·사이버를 통합한 네트워크형 전쟁체계다. 문제는 이 체계의 핵심 인프라인 우주자산, 전략정보, 데이터 링크, AI 기반 표적화 시스템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이 이 체계에 편입될수록 외형상 독립 지휘체계를 갖추더라도 실질적인 작전 통제는 미국 시스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브런슨 사령관이 전작권 전환에서 “조건이 우선한다”고 강조한 본질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국군의 군사적 준비 부족이 아니라, 미국의 다영역 통합전 체계에 한국군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편입·연동되느냐의 문제다. 

최근 애틀랜틱 카운슬의 전략보고서는 한미동맹의 역할을 한반도를 넘어 제1도련선 전체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일본·필리핀을 ‘전략적 삼각지대’로 묶어 공동 다영역 전력과 장거리 화력망을 구축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한국군을 한반도내 임무에 묶어두지 않고,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군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다. 대만 유사시나 동·남중국해 분쟁에 한국군을 동원하려는 포석이다.

브런슨 사령관이 “현대의 억제력은 참호만큼이나 공장 생산 현장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통해 장기전 수행을 위한 보급망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동맹국의 산업기반을 미국 중심의 전쟁경제 체계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 구상에서 탄약, 미사일, 함정, 드론을 공급하고 정비하는 ‘권역 군수허브’ 역할을 요구받는다. 브런슨 사령관이 한국의 ‘권역 지속지원 거점’ 역할을 공론화한 이유다.

이러한 흐름은 전작권 반환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이 전략 정보와 타격망을 장악한 상태에서 작전 통제권을 넘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작권 전환이 지연되거나, 형식적 반환이 이루어지더라도 실질 통제권은 미국 중심 체계가 작동하는 기형적 구조가 될 우려가 크다.

브런슨 사령관이 제시한 구상은 단순히 부대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존재 목적, 한미동맹의 성격, 한국 산업의 전략적 방향, 나아가 대중국 관계와 한반도 평화 전반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가 설계한 전략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입을 통해 한국의 국가안보 전반을 뒤흔드는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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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경고에도 침묵한 트럼프, 불안해진 대만? "美 대만 지지 약화 의구심 나와"

대만 외교부 "베이징, 국제사회에서 대만 대표해 어떤 주장도 할 권리 없어"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5.15. 05:58:57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별다른 대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대만 외교부는 중국 정권이 대만을 대표해 어떤 주장도 할 권리가 없다고 반발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대만 일간지 <자유시보>는 대만 외교부가 이날 오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으며, 베이징 당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대표해 그 어떤 주장도 할 권리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대만 외교부는 "지금 이 시각에도 인민해방군이 제1열도선과 대만 해협 주변 해역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회색 지대' 도발 및 군사적 위협이야말로, 현재 역내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유일한 리스크"라며 "대만은 미국을 포함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역내 안보, 안정 및 번영을 보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오늘 오전 6시까지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기 3대가 대만 서남부 및 동부 공역에 진입했으며, 중국 군함 6척이 대만 해협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가 시진핑 주석의 발언만 전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 보도하지 않은 것을 두고 "미국의 반응이 '중국 매체가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예야오위안(葉耀元) 미국 성 토마스 대학교 국제학 석좌교수의 분석을 소개했다.

예 교수는 중국이 매우 화려한 의전을 제공하며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줬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모두 발언에서 시 주석을 치켜세웠으나, 체면을 세워줬다고 해서 실질적인 속내(裡子)까지 잘 풀린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이런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사전에 의제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회담 후 '사후 발표'를 통해 결론을 설명하기 마련인데, 현재 아무런 발표가 없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신호"라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음에도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을 발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국가 이익인 '제1도련선의 안보, 미국의 패권, 기술 우위' 등은 중국이 타파하려는 대상이기 때문에 애초에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면서 "반공 최전선 인사"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아무리 화려한 의전을 제공하더라도 실질적인 이득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2시간 반 정도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티엔탄(天壇) 공원에 시 주석과 함께 방문했는데, 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논의했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고 미국 방송 CNN이 보도했다.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티엔탄에서 시 주석과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동안 대만 문제가 논의되었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두 차례 나왔다. 평소 언론과 소통을 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 촬영을 위해 시 주석과 나란히 섰지만, 두 명의 기자가 각각 다른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답변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이 중국 정권과 더 광범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만에 대한 지원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시 주석이 회담 모두발언에서 "중미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극복하고 강대국 간 관계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손을 맞잡고 전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며 세계에 더 큰 안정을 가져올 수 있을까?"라며 "강대국 지도자들은 우리 시대의 이러한 질문에 함께 답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한 데 대해 대만 <연합신문망>은 대만의 도발이 없는 한 중국이 먼저 대만을 봉쇄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매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을 대중적으로 널리 퍼뜨린 하버드대 교수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이 14일 CNBC와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시진핑 모두 사적으로 미중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양국이 계속 적대 상태를 유지하면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앨리슨 교수는 미중 양측이 대만 문제와 같은 사안에서 제3자의 도발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앨리슨 교수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으며, 트럼프는 시진핑이 "재임 중에는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보장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매체는 "양측 모두 이 문제가 더 긴 시간에 걸쳐 해결될 것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대만 측에서 심각한 도발이 없는 한, 중국이 올해 대만을 봉쇄할 가능성은 1% 미만"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미중 간 긴장 관계에 따른 위험은 커지고 있다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직접적인 선전포고가 아니라, 대만해협·남중국해·한반도 문제 혹은 군함 충돌 같은 국지적 위기가 통제 불능으로 번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앨리슨 교수는 대만이 가장 우려되는 상황에 처해있다면서 대만해협을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칸반도 화약고"에 비유하기도 했다. 매체는 "이는 (대만 문제가) 강대국 충돌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현지시간) 오후 티엔탄 공원에 방문했다. ⓒAFP=연합뉴스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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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실사격훈련 3년만에 재개하는 건 반평화·비정상"

평화연대, 포천 승진훈련장 '2026 합동화력훈련' 즉각 취소 촉구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5.14 23:31
  •  
  •  수정 2026.05.1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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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평화연대는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말뿐인 평화, 이재명 정부는 대규모 합동 화력훈련 취소하라!'는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주통일평화연대는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말뿐인 평화, 이재명 정부는 대규모 합동 화력훈련 취소하라!'는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가 오는 18, 21, 27일 경기도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2026 합동화력훈련'을 진행한다.

식전 행사로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의 기동비행이 예정되어 있고 본 훈련에서는 육·해·공군 합동 전력의 실사격과 기동훈련이 공개된다. 

현장에서는 K2 전차, K9 자주포, 다연장로켓 등 이른바 K방산 주력 장비와 함께 신규 전력화 무기체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장비 전시도 진행된다.

국방부는 이번 훈련이 △국민주권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시행되는 합동화력훈련으로 △독자적인 방위능력과 합동성에 기반한 자주국방의지를 구현하고 △군의 굳건한 대비태세와 합동작전 수행능력을 보여주며 △K-방산 무기체계의 실전 우수성을 현장에서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참관단 1,200명을 모집해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공군 전투기 오폭사고가 발생한 접경지역 훈련장에서 3년전 대북 적대를 고취하는데 여념이 없던 윤석열이 했던 것과 같이 국민참관단까지 모집해가며 대규모 실사격 훈련을 재개하는 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바늘구멍이라도 뚫겠다는 정부의 언명이 무색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평양 연고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경기를 치르는 기간에 모처럼 조성된 평화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화력훈련'을 강행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대형 축구공안에 화염 속 '전쟁 훈련' 문구가 적힌 선전물에 'X'자를 붙이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대형 축구공안에 화염 속 '전쟁 훈련' 문구가 적힌 선전물에 'X'자를 붙이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주통일평화연대(평화연대)는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말뿐인 평화, 이재명 정부는 대규모 합동화력훈련 취소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화력훈련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평화연대는 함재규 민주노총 통일위원장과 이연희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윤석열 정부가 2023년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한 이후, 3년 만에 또 다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조선(북)을 살대한 한 대규모 실사격 훈련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평화를 말하는 이재명 정부 역시 이러한 훈련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깊은 우려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화력훈련 즉각 취소를 촉구했다.

또 "대통령 스스로 북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음에도, 실제로는 상대를 겨냥한 전쟁훈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규모 합동화력훈련은 공대지, 지대지 실사격을 포함해 상대를 '격멸'하는 화력 과시 군사훈련인데, "화해와 교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며,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아니"라는 것.

더군다나 평화와 공존을 말하는 정부가 '국민참관단'을 모집해 '화력훈련'을 마치 축제나 스포츠경기를 즐기는 행사처럼 포장한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평화연대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은 결국 맞대응을 불러오고, 이미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더욱 파국으로 몰아갈 뿐"이며, "접경지역 실사격훈련 중단은 대선시기 공약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거듭 훈련 취소를 요구했다.

자주연합 상임대표인 주재석 평화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주연합 상임대표인 주재석 평화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주연합 상임대표인 주재석 평화연대 상임대표는 "사람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관계에서도 겉으로 좋은 말 하면서 뒤로는 이상한 짓 하면 관계를 상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대규모 합동 화력훈련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특히 "이런 훈련이 뭐 그렇게 크게 홍보할 일이라고 국민참관단까지 대규모로 모집했느냐", "접경지역 주민들의 어려움도 무시하고 진행하는 훈련이 이재명 정부에 무슨 도움이 되는 일이냐"고 반문하고는 거듭 훈련 중단을 촉구했다.

주 대표는 "남북관계 경색의 가장 큰 이유는 역대 정부가 북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공언하는 이재명 정부마저 앞뒤가 다른 합동 화력훈련을 실시하는데 대해 우리는 경악을 금치못한다"고 격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항아 빈민해방실천연대 사무총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항아 빈민해방실천연대 사무총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항아 빈민해방실천연대 사무총장은 "평화를 말하면서 한편으로 '격멸'을 외치는 군사훈련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평화 정부의 모습이냐"고 하면서 "평화는 말로만 오지 않는다.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신뢰회복의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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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 해결 못하면..." 광주항쟁 한 달 전 계엄군이 강원도로 향한 이유

[1980사북, 늦은 메아리] 신군부가 강요한 기억과 싸우는 광부들... 광주 이전에 사북 있었다

26.05.15 06:39최종 업데이트 26.05.15 06:39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1980년 12월 20일 <조선일보>에는 송년 특집 데스크 좌담이 실렸다. 이 좌담에는 안병훈 정치부장, 송형목 경제부장, 김대중 사회부장 등이 참여했다. 당시 한 데스크는 전두환의 5.17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정치 안정의 분기점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사북사태"와 "광주사태"를 권력의 공백이 초래한 무질서한 사태의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권력의 질서가 잡히기 시작한 5.17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삼는다면 그 이전까지는 권력의 공백상태가 사북사태, 학생데모, 광주사태 등을 촉발 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태들은 어떻게 보면 모두가 70년대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진통이 아닌가 해요. 이러한 상처를 안은 채 5.17을 기점으로 양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개혁주도세력이 등장해서 정치 안정을 서서히 잡아갔고, 사회정화로 일반의 질서가 꽤 잡혀져가는 현상을 보였어요. (취재 데스크 좌담 "대전환의 진통, 격변 '80'", 1980년 12월 20일 <조선일보> 3면)

나란했던 이름, "사북사태"와 "광주사태"

1980년 12월 23일 <경향신문>은 '국내 10대 뉴스'를 발표했다. "평화적 정권교체… 새 정치 개막"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전두환 대통령 취임'을 10대 뉴스로 언급한 가운데, '광주사태'와 '사북광부소요'도 이름을 올렸다. '과격분자', '무법천지', '약탈', '치안부재', '폭동', '암흑천지', '파괴'… 이 때만 해도 광주와 사북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 12월 27일 <동아일보>도 "격변 충격의 '80 본사 선정 10대 뉴스"를 5면에 실었다. "광주사태"와 "사북사태"는 10대 뉴스의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유혈사태', '혼란', '행정공백', '무장한 폭도', '치안공백 사태', '유혈 충돌'… 두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 언론의 시각은 거의 비슷했다.

1980년의 마지막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한 체제가 무너지면 그 체제가 내포했던 여러가지 대소 문제가 일시에 노출되어 혼란과 갈등이 뒤따르게 마련"이라면서 사북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봄이 되면서부터 술렁거리기 시작한 학원가는 족벌체제 반대로부터 어용교수 배척 그리고 집체훈련 거부로 고양되고 교내시위로부터 가두시위로 번져나갔다. (중략) 열기는 횡적으로 노동계에로 비화하여 마침내 그 충격적이던 사북사태를 빚고 말았던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불안정 요인의 상승에 물리적 제동이 가해졌고, 그 제동 과정에서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광주사태라는 상처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다난의 승화를 기약하며 -1980 경신년을 보내는 사념", 1980년 12월 31일 <조선일보> 사설)

똑같이 나흘 만에 알려진 '사북'과 '광주'

영화 <1980 사북> 스틸컷엣나인필름

1980년 4월 21일 월요일 강원도 사북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노조사무실 앞. 어용노조에 항의하는 광부들을 경찰 당국이 사찰하면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사찰 행위가 발각된 경찰은 도망치면서 농성 광부들에게 지프차를 돌진시켜 광부 원일오(당시 36세)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대로 도주했다. 흥분한 광부들이 사북지서를 파괴하고 경찰은 이웃 마을 고한으로 피신했다. 사북 광부들은 그날 저녁부터 사북 전역을 장악하고 광업소 본사와 동원탄좌 객실에 모여 있던 중앙정보부 조정관, 보안대 요원, 경찰간부들을 급습하였다. 이 날은 사북 사건의 성격이 노조 민주화 운동에서 공권력에 대항한 광부와 부녀자들의 항쟁으로 전환된 핵심 분기점이었다.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제출된 기무사 자료에 따르면 "1980년 4월 22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경찰 기동타격대 병력 2개 중대(간부 6명·병사 275명) 현지 급파"라는 기록이 있다. 서울기동타격대 병력이 특별열차 편으로 사북역을 통과하여 고한역에 내리는 것을 목격한 일부 주민들 사이에 공수부대 투입 소문이 났고 광부들은 이에 대비해 화약고와 무기고를 먼저 장악하기 시작했다.

1980년 4월 22일 23시 11특전여단 61대대 지휘관 40명과 병사 249명이 사북사건 진압을 위해 원주 1군사령부로 배속되었다(육군본부, <계엄사>, 1982, 383쪽). 1980년 4월 23일 오후 4시 한계령에서 훈련 중인 11특전여단 62대대 지휘관 40명과 병사 290명이 1군사령부로 추가 배속되고, 같은 날 19시 10분경 육군본부는 11공수여단 62대대에 사태 진압을 위한 부대 이동 지시를 하달 한다. 병력 투입 시점은 4월 25일 BMNT(동틀 무렵)으로 결정되었다(기무사 자료, <동원탄좌 사태 진전상황2>).

그러나 4월 24일 새벽, "오늘 중 해결 안 되면 말 못할 어려움이 온다"고 호소한 김성배 강원도지사의 중재로 협상이 극적 타결됨에 따라 11공수 병력은 실제 사북에 투입되지 않았다. 이날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는 사건 발생 나흘만에 처음으로 "사북사태"를 보도했다. 제11공수특전여단 61, 62대대는 4월 29일 20시를 기해 부대 배속이 해제되고 원대 복귀하였다.

한달 뒤인 5월 21일 경향신문 1면에는 "광주 일원 소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지난 18일부터 연3일째 전남 광주 일원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계엄사령부의 발표를 전하는 형식으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광주사태"를 처음 보도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꼭 한달 전 '사북'을 보도할 때처럼, '광주' 소식을 나흘 만에 1면 톱 기사로 전했다.

계엄사령부는 지난 18일부터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조속한 시일 내에 평온을 회복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사북에서 경찰의 지프차 돌진 공격으로 대규모 항쟁이 촉발되었던 1980년 4월 21일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5월 21일 수요일. 전라남도 광주시 전남도청 앞과 금남로 일대에서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시민들과 대치하던 계엄군은 전남도청 앞에서 갑자기 집단 발포를 시작했고 당시 중3 학생이던 김완봉(15세)군 등 34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흥분한 시민들은 총기를 탈취하여 시민군을 조직했고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물러났다. 광주의 치안은 시민군과 수습대책위원회로 넘어갔다. 이 날은 광주 사건의 성격이 민주화 시위에서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 무장항쟁으로 전환된 핵심 분기점이었다.

사북과 광주의 계엄군... 11공수특전여단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를 한 부대 중 하나는 사북에 투입 예정이었던 11공수특전여단 62대대였다. 이 부대는 3공수, 7공수와 함께 시위대 진압을 맡은 주력 부대였으며, 곤봉과 대검을 사용하여 시민들에게 잔혹한 유혈 진압을 가했다.

군 기록과 계엄군 진술을 종합하면, 11공수여단은 5월 19일 새벽 4시부터 제7공수여단 33, 35대대로부터 광주 작전 거점을 인계 받았다. 이후 오전 10시 30분에 바로 62, 63대대 병력을 광주로 증원했다. 11공수 62대대는 5월 19일 15시경 도청 앞 금남로 남쪽에서, 63대대는 전남여고 맞은편 중앙국교 앞 사거리에서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주남마을 민간인 학살'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11공수여단 62대대 부대원들은 5월 22일 새벽 광주에서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주남마을에 매복해 있다가, 5월 23일 오전 9시 30분쯤 나주 방면으로 향하던 미니 버스 1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탑승객 18명 중 15명을 사살했다. 생존자 중 중상자인 청년 2명도 11공수여단 본부 작전보좌관의 처리 명령에 따라 인근 야산에서 총살 당했다.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증언자는 여고생 홍금숙이었다.

다음 날인 5월 24일, 제63대대는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던 중 송암동 효천역 부근에서 전투교육사령부대(보병학교 교도대)와 오인 교전을 벌였다. 이 교전으로 대대원 9명이 사망하자, 63대대는 이에 대한 화풀이로 송암동 인근 마을을 수색하며 초등학생 전재수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민간인을 마구 학살했다. 이때 시민군이었던 김종철과 주민 권근립, 김승후, 임병철 등이 사살됐다.

5월 27일 새벽 11공수특전여단은 전남도청으로 진입하여 최후 진압 작전을 벌였다. 도청에 남아 있던 시민군과 학생들이 마지막 항전을 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최종 진압되었다.

사북을 위해 투입 준비를 마쳤던 11공수를 주력부대로 광주민주화운동이 진압된 바로 다음날, 5월 28일 <경향신문>에는 "사북사태 관련 모두 26명 구속"이라는 짤막한 기사가 실려 사북에서 일어난 사태도 일단락이 되었음을 알렸다.

1980년 5월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 기사는 '국가보위비상대책원회가 설치되었고, 그 위원장에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가 취임했다는 소식이었다.

항쟁의 봉우리와 사건의 골짜기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선악의 구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때때로 폭력의 가해자가 폭력으로 되갚음 당하기도 하고, 폭력의 피해자가 어느 순간 폭력으로 대항하기도 한다. 가해와 피해가 교차되는 지점이 얼마간 존재하는 것이다.

각자가 어느 자리에서 사건을 경험했는가, 어느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주로 보고 들었는가에 따라 사건에 대한 개인의 평가는 종종 일반적인 평가와 궤를 달리한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지거나 크게 다친 당사자와 군경의 가족들에게는 시위 군중에 대한 원망과 반감이 앞설 뿐 '독재타도'니 '민주화'니 하는 대의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반면, 시위 과정에서 군경의 총칼에 숨지거나 큰 피해를 입은 학생과 시민들에게는 계엄군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치밀어오를 뿐, '질서'니 '법치'니 하는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되는 것은 당사자의 기억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다. 사북과 광주는 바로 여기서 극명하게 갈렸다. 사북에 대한 집단의 기억은 심하게 왜곡되었고 광주에 대한 그것은 엄정히 바로잡혔다. 시간이 갈수록 '광주'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사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

우리는 광주에서 맞부딪힌 두 방향의 폭력 중에서 더 압도적인 계엄군의 폭력을 기억한다. 그것은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카메라에 비친 시민 항쟁의 장면들로서, 절망적으로 고립된 광주 시민을 측은히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점이다. 그리하여 광주는 국가 폭력에 처참하게 짓눌린 힘없는 시민들의 고난사이자 영웅적인 저항의 서사로 기억된다.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우리는 사북에서 맞부딪힌 두 방향의 폭력 중에서 한때 압도적이었던 광부들의 폭력을 기억한다. 그것은 사북 광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신아일보> 하두만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폭력의 현장으로서, 억울한 희생양으로 붙잡힌 여인에 주목했던 특종 뉴스의 시점이다. 그리하여 사북은 시위 군중에 패퇴한 공권력의 수난사이자 통제력을 잃은 원시적 분노의 서사로 기억된다.

신아일보 하두만 기자가 찍은 사진 중 한 장면을 실루엣으로 재구성한 이미지(제공: 정선지역사회연구소)정선지역사회연구소

그렇게 광주는 민주화의 봉우리가 되었고, 사북은 그늘에 가려진 채 깊고 깊은 사건의 골짜기로 남아 있다.

집단 기억을 가른 두 개의 상징

역사적 기록물은 당대에 있었던 모든 일이 아니라 기록자가 선택한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이고 사진과 영상으로 포착된 장면이며 소멸의 위험에서 살아남은 유물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런 기록, 사진, 유물을 통해서만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다. 어떤 장면은 부각되고 어떤 장면은 지워지며, 어떤 사람은 기억되고 어떤 사람은 잊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십수 년 동안 '광주사태'로 폄하 되었지만, 1995년 12월 대한민국 국회가 같은 사건을 '5.18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집단의 역사적 기억을 형성한 적절한 상징과 그에 맞는 진실의 발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5.18 당시 보안사가 군의 정보 활동을 위해 채증한 사진. 2019년 당시 국회에서 공개된 바 있다.오마이뉴스 자료사진

1980년 4월 사북 광부들의 항쟁을 무법 천지로 비난했던 신군부와 언론은, 한 달 후 계엄군에 맞섰던 광주 시민들의 항쟁을 똑같은 식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그에 반하는 증거를 넘치도록 확보한 2026년의 한국 사회는 광주에 대한 그런 비난에 그다지 현혹되지 않는다.

1980년 4월 21일 경찰의 비인도적인 차량 공격으로 쓰러진 광부들의 처참한 모습은 사북의 상징이 되지 못했다.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 결정적 장면은 철저히 은폐 되었다. 신군부는 경찰의 원죄를 가리기 위해 애꿎은 피해 여성의 결박 사진을 사북 사건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사북 광부들의 울분으로 전도된 국가폭력의 이미지사북 광부들의 울분으로 전도된 국가폭력의 이미지(제공: 정선지역사회연구소)정선지역사회연구소

그 후 국가의 압도적인 보복 폭력에 철저히 유린 당한 사북의 이야기는 지난 40년 동안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북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2026년의 한국 사회는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0년 4월 사북에서 터진 일이 몇십 년 동안 '사북사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2026년 4월 대한민국 국회가 같은 사건에 대해 국가 사과 이행을 결의하고 나서도, 왜곡된 집단 기억을 바로잡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둘러싸고 심각한 기억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북의 늙은 광부들과 그들의 편에 선 아주 적은 친구들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신군부가 강요한 기억과 맞서며, 또 한편으로는 자꾸만 딴 곳으로 향하는 당국자들의 발걸음을 돌려 세우며 이중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이행 촉구 사북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기자회견사북항쟁 제46주년을 1주일 앞둔 14일 오전 사북민주항쟁동지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이행을 촉구하는 사북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정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의 1980사북 특별페이지(www.jcrc.kr)에도 실립니다. 저자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사북항쟁과 국가폭력>(지식공작소, 2021)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 #사북사건 #1980사북 #국가폭력 #11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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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중개인들의 한미동맹을 걷어낼 때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5.1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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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아일랜드에 악질 지주 관리인이 있었다. 이름하여 찰스 보이콧(Charles Boycott), 소작농들이 그와의 모든 소통과 거래를 끊고 철저히 소외시킨 데에서 ‘보이콧’ 전술이 탄생한다. 영어 사전의 ‘quisling’이라는 단어는 나라를 팔아먹은 배신자를 뜻한다. 역사 속 실존 인물 비드쿤 퀴슬링(Vidkun Quisling)이 일반 명사화한 또 다른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의 정치인 퀴슬링은 히틀러에 협력해 괴뢰 정부의 수반이 된다. 그는 독일의 힘을 빌려 반대파들을 탄압하고 나치의 인종청소 정책에 동조하다가 전쟁 후 사형에 처해졌다.

국힘 대표 장동혁이 4월 중순 방미한 이후 벌이고 있는 행태가 “국가의 주권을 외세에 팔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가 만난 미 의원들은 쿠팡으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야당 대표가 미국과 합세해 쿠팡에 대한 플랫폼 규제를 막기 위해 자국 정부를 압박하려 했다는 내통 의혹도 있다. 귀국해서는 미국 인터넷 언론에 “이재명 대통령은 친중 좌파”라는 프레임을 전달하고 있다. 외세의 힘으로 자국 정권을 흔들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심산이겠지만 숭미주의자들의 매국 본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숭미인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부르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미국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은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는 1919년 미국 대통령 윌슨과 국제연맹에 “한국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어 달라”는 청원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어 1925년 3월 탄핵됐다. 그런 그였으니 그는 통치 기간 내내 미국의 원조와 군사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주의 진영은 그를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민족의 자결권을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한국에 뿌린 숭미의 씨앗은 지난 80년 동안 쑥쑥 자라났다.

2011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외교 전문에는 한국의 고위 공직자,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들이 ‘미국을 위한 정보원’ 역할을 한 기록들이 상세히 남아 있다. 2006년 7월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버시바우 미 대사와의 통화에서 한미 FTA 협상과 관련된 한국의 ‘약 가격 적정화 방안’을 미국 측에 미리 통보하며, 이 정책이 미국 기업에 불리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이 청와대와 “필사적으로 싸웠다(fought like hell)”고 발언한다. 한미 FTA로 국익을 창출하겠다고 외치던 자가 사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두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미국 대사관의 전문에는 이 밖에도 당시 한미 FTA 수석대표 김종훈이 협상 과정에서 상부의 훈령을 어기고 미국 측에 유리한 정보를 흘린 사실, 당시 통일부 장관 현인택이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방문을 위해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 했던 사실,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이 이명박의 최측근임을 과시하며 국내 정치 상황과 여론 동향을 수시로 미 대사관에 브리핑한 사실들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이토록 미국에 충성하는 인재들이 많은 한국을 미국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나 정신과 의사요 탈식민주의 사상가이자 혁명 이론가로 우뚝 선 프란츠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저서를 통해 종주국에 부역하는 ‘식민 중개인’의 행태를 분석했다. 장동혁이 쿠팡의 독과점이나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내 정책을 조율하기보다, 미국 의원들을 찾아가 한국 정부를 압박해달라고 요청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중개자적 행태다. 또 미국 내 강경파들이 타국을 공격할 때 즐겨 쓰는 ‘친중 좌파’라는 프레임을 직수입해 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 역시 ‘하얀 가면’을 쓰고 미국의 시각으로 터무니없게 한국을 부정하려는 태도다.

 

퀴슬링의 양태는 다채롭다. 천주교도로서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서양 열강이 수백 척의 군함과 5만 명의 정예 군대를 보내 조선 정부를 굴복시키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해 달라”고 간청하려던 1801년의 황사영처럼 개인적인 동기의 매국이 있는가 하면,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민족의 반역자’라며 가장 통렬하게 비판했던 신라 김춘추(무열왕)가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꺾기 위해 당나라를 개입시킨 정략적 매국이 있다. 그리고 이승만과 그 후예 장동혁이 벌이고 있듯이 숭미주의로 변형된 유전자가 숙주를 움직이는 원초적 매국도 있다.

“정치는 물가에서 멈춘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민주당 트루먼 행정부와 협력해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NATO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공화당 상원의원 아서 밴던버그가 한 말이다. “정쟁은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거나 “외교·안보 앞에서는 당파정치를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숭미주의자들에게 한미 간의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쟁이란 주인국의 이익을 거양하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부풀려야 할 대상이다. 그들에게 한미동맹은 절대가치를 가진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의 자격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한 이완용은 한일병합을 동양평화라 보았고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라고 불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인 이완용은 경고문을 내고 독립운동 참가자들을 “민족을 멸망시키고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적”이라고 비난했다. 매국의 언어는 늘 이렇다. 종속을 평화라 부르고 굴종을 현실이라 부르며 외세의 이익을 민족의 활로라 번역하는 것이다.

영화 <300>으로 유명해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 군은 에피알테스라는 자의 배반으로 뒷산의 샛길을 알아챈 페르시아 군에 포위되어 전멸한다. 외세는 성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다. 뒷길을 알려주는 모든 식민 중개인이 에피알테스다. 인도 식민화의 문을 연 것도 벵골의 미르 자파르 같은 내부 중개인이었다. 그는 동인도회사와 손잡고 자기 주군을 배반했다. 중일전쟁 중 일본과 협력해 1940년 난징의 친일 괴뢰 정권 수반이 된 왕징웨이는 한때 쑨원의 측근이자 중국 국민당의 거물이었다. 그는 조국을 팔면서 조국을 구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이라는 굴레는 미국이 강제로 우리에게 씌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 내부의 퀴슬링과 에피알테스와 미르 자파르와 왕징웨이와 이완용과 장동혁 같은 식민 중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스스로 뒤집어쓰고 동족의 머리에도 눌러놓은 것이 한미동맹이다. 우리가 먼저 걷어내야 할 것은 동맹 그 자체이기 전에 동맹의 이름으로 주권을 팔아먹는 식민 중개인들의 기생 권력이다. 성문을 부수는 적보다 더 위험한 자는 성 안에서 적과 내통하는 자들이다. HMM 나무호 피격을 이유로 당장 미국의 명령에 따라 호르무즈로 전함을 파견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퀴슬링이 아니라면 과연 누구인가. 한미동맹을 국익의 도구로 되돌리려면 먼저 한미동맹을 사유화하고 국내 정치를 ‘물가’로 가져가려는 숭미 중개인들의 언어부터 박탈할 일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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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시민의회', 지금 시작해야 하는 이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원영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kwaknh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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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5.14 16:20

  • 수정 2026.05.14 16:21

  • 댓글 1

20년째 바뀌지 않는 '개혁 불판' 교체해야

광장의 에너지를 숙의 테이블로 옮겨오자

2년 후 총선을 향한 시스템 개혁의 포문

2004년, 노회찬은 TV 토론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고, 두 차례의 촛불혁명을 일으켰으며,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까지 탄핵했다. 고기는 수없이 바뀌었다. 그런데 불판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젠 '불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왜인가.

답은 간단하다. 불판을 바꿀 권한을 가진 자들이 그 새까매진 불판이 그래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단 이유로 바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선수가 직접 정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셀프 입법 특권'이다. 선거법도, 공천 규칙도, 의원 세비도, 국회의원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게 아니라,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이유가 없는 구조다.

이번 공천 파동을 보라. 시민들은 분노한다. 그런데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사람'이다. 저 후보가 나쁘다, 저 당이 문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진짜 문제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천 룰을 국회의원이 직접 정하는 한, 공천 파동은 4년마다 반드시 되풀이된다. 불판이 바뀌지 않는 한, 고기는 계속 새까매진다. 세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를 먼저 겪은 나라들이 이미 해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96년 선거에서 BC자유당은 득표율 1위를 하고도 의석 2위로 패배했다. 소선거구제의 구조적 왜곡 때문이었다. 4년 뒤 집권한 고든 캠벨 주지사는 선거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회의원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대신 160명의 시민을 무작위 추첨으로 뽑아 11개월 동안 학습하고 토론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찬성률 91%. "일반 시민이 바보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본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봐요." 선거제 개혁이라는 난제를,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훨씬 더 현명하게 풀어낸 것이다.

아일랜드는 낙태권과 동성결혼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시민의회에 넘겼다. 수십 년간 정치인들이 건드리지 못한 문제들이었다. 종교적 갈등, 선거 부담, 진영 논리—어느 쪽을 선택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었다. 시민의회는 9개월간 숙의 끝에 결론을 냈고,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사회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정치인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용이었다.

벨기에는 다민족·다언어 사회의 만성적 교착 상태를 시민의회로 돌파했다. 정당 정치로는 타협이 불가능한 의제들을, 이념과 지역색을 뺀 일반 시민들의 숙의로 풀어냈다. 특히 오스트벨기엔 모델은 시민의회를 일회성이 아닌 상설 기구로 제도화했다. 대의제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의제가 실패하는 영역을 책임지는 독립적 장치로 만든 것이다.

프랑스는 노란 조끼 시위라는 사회적 폭발 뒤에 기후시민의회(CCC)를 소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50명의 시민에게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다. 시민들은 9개월간 149개의 구체적 제안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상당수를 희석시키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 한계마저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시민의 숙의에는 제도적 구속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민의회 국제심포지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 5.8 시민의회입법추진100인위원회 제공

네 나라의 공통점은 하나다. 기존 대의제가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고장 난 상태'일 때, 시민의회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의회를 소환한 것은 정치인들의 선의가 아니었다. 체제가 무너지거나 자신들의 정치 생명이 끝날 것 같다는 절박함이었다.

우리에게는 왜 어려운가

그렇다면 한국은 왜 안 되는가.

첫째, 승자독식 구조의 달콤함이다. 0.73%p 차이로도 모든 행정 권한과 인사권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에서, 기득권 양당이 굳이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나눠줄 이유가 없다. 4년 기다리면 풍향이 바뀌어 이번엔 내가 싹쓸이한다는 계산이 여야의 암묵적 공모를 만든다.

둘째, 갈등을 자양분 삼는 구조다. 아일랜드가 난제를 시민의회에 외주 줘 리스크를 피한 것과 달리, 한국의 기득권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연료 삼아 진영을 결집시키는 데 더 능숙하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민의회는 오히려 진영 논리를 약화시키는 방해물로 여겨진다.

셋째, 촘촘한 관료 시스템의 관리 능력이다. 프랑스처럼 국가가 마비되는 수준의 저항이 일어나기 전에, 한국의 행정 시스템은 보조금과 민원 처리와 공권력으로 갈등을 개별화하고 관리하는 데 능숙하다. 기득권이 느끼는 '한계점'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게 설정되어 있다.

넷째, 대의제 신화의 강고함이다. "선거로 뽑힌 우리가 곧 주권자의 대리인"이라는 선민의식이 뿌리 깊다. 추첨제 시민의회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반감이 기득권층 저변에 깔려 있다.

기존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시민의회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다. 전국포럼이 창립되었고, 지역 포럼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세미나와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과 김상준 교수 등 뜻있는 인사들이 전국적인 차원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도 '셀프 입법 특권'이라는 개념적 무기를 벼리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것은 아직 '설득의 운동'에 머물러 있다.

설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기득권은 설득되어서 권한을 내준 적이 없다. 언제나 그들이 버틸 수 없을 만큼의 압력이 왔을 때, 혹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날 것 같을 때, 비로소 움직였다.

2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선거제도·정치 개혁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1.21. 연합뉴스

지자체장이나 기존 의회가 시민의회를 수용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재선 부담이 없는 단체장, 지역소멸로 사면초가인 지자체, 소규모 기초단위 실험—이런 조건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에서도 법적 근거의 부재, 지방의회의 반발, 예산 문제, 정치적 리스크라는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저항은 어떤 단위에서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주권자 시민들이 그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그 인식이 선거 압력으로 전환되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식이 행동으로, 행동이 조직으로, 조직이 선거 압력으로 전환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출발점이 바로 '파일럿 시민의회'다.

파일럿이 '사건'이 되어야 한다

발상은 단순하다. 먼저 시민들이 직접 돈을 모은다. 1인당 10만 원, 1,000명에서 1,500명이 모이면 1억에서 1억 5천만 원이 된다. 이 돈으로 추첨으로 선발된 150명의 시민이 실제로 모여 '의원 특권 방지와 선거제도 개혁'을 숙의하고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든다. 그 과정을 전 국민에게 공개한다.

왜 10만 원인가. 서명은 공짜라서 헌신이 없다. 100만 원은 부담이 커서 망설인다. 10만 원은 딱 진심을 가진 사람을 걸러내는 필터다. 10만 원을 낸 사람은 이해당사자가 된다. 성공을 바라는 능동적 지지자가 된다. 그리고 모금 과정 자체가 홍보다.

왜 이 주제인가. '의원 특권 방지와 선거제도 개혁'은 셀프 입법 특권의 핵심을 겨냥하면서도, 공천 파동을 경험한 시민들이 즉각 체감할 수 있는 주제다. 이것을 국회의원에게 맡겨두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파일럿 시민의회의 숙의 과정을 통해 증명된다.

이 '사건'이 일으키는 공명이 핵심이다. 추첨으로 뽑힌 평범한 시민 150명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선거제도 개혁안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공개될 때, 두 가지가 동시에 증명된다. 시민이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사안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를.

총선을 향한 2년의 로드맵

파일럿 시민의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2년 후 총선을 향한 첫 번째 포문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2년 후 총선이다. 파일럿 시민의회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동안, 시민의회법 입법을 공약으로 내거는 총선 후보들에게 전국민적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공천 파동에 분노한 시민의 에너지를 구조의 문제로 연결하고, 그 구조를 바꾸겠다고 나서는 후보에게 조직적 지원을 보내는 것. 이것이 기득권이 무시할 수 없는 압력을 만드는 현실적 경로다.

사람을 바꾸는 정치는 일시적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정치는 영구적이다.

'불판교체단'이 필요하다

노회찬은 "판을 갈자"고 외쳤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불판교체단은 "우리가 직접 갈겠다"고 나선다. 그것은 실행이다.

모금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후원이 아니다. 20년째 바뀌지 않는 불판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교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시작해도 좋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 150명이 선거제도를 설계한다고? 그게 정말 되나?" 그 호기심이 참여의 출발점이 된다.

광장의 에너지를 숙의의 테이블로 옮겨오는 것. 분노를 설계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주의의 다음 버전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시대, 주권자가 직접 가위를 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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