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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괴벨스'의 탄생, 공안검사에서 극우 선봉장까지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고영주, 공안검사가 방문진 이사장이 되기까지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 기사입력 2026.05.17. 07: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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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을 받아 들었다. 책은 고영주(1949~)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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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부림사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전천후 용공조작 전문가."

읽다가 한참 멍해졌다. 전천후(全天候). 어떤 날씨에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독재정권에도 민주정권에도, 군복을 입은 권력 앞에도 넥타이를 맨 권력 앞에도. 4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빨갱이'를 찾아다닌 사람. 그것이 고영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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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삼아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려 한 자들의 냄새다. 20세기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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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 그리고 노무현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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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는 1949년 2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뒤 아버지 사업을 돕다가 군에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고 진로를 바꿨다.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1980년 11월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은 그는 이듬해 부산지검에 공안부가 신설되자 그곳에 배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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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9월, 전두환(1931~2021) 정권의 부산지검 공안부는 기획수사를 통해 부산양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19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했다. 길게는 49일간 불법 감금한 채 물고문과 이른바 '통닭구이' 고문을 자행했다. 고영주는 최병국(1952~), 장창호와 함께 이 사건 담당검사였다. 그들은 경찰의 고문현장인 부산시경 대공분실을 직접 방문해 정황을 파악했다. 피의자들이 검찰조사에서 경찰조서를 부인하며 고문사실을 호소했지만, 고영주 등은 이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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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 관련자 이상록의 항소이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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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준수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불법고문 수사를 지휘했다. 이 나라에는 법이 있고 인권이 있는 나라인가? 하는 절망적인 자탄을, 검사의 방문은 저희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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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 노무현(1946~2009)은 훗날 "부림사건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고영주가 만들어낸 사건이 노무현을 인권변호사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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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대법원 재심에서 부림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고영주와 최병국은 그 순간에도 사과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확신범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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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의 동류, '빨갱이 감별사'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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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이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을 빌미로 수천 명의 삶을 파괴한 인물이다. 그는 증거도 없이 "나는 국무부에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외쳤다. 그 이름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이념 딱지를 붙이는 정치적 마녀사냥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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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는 미디어를 장악해 반대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고영주가 '한국판 고벨스(고영주+괴벨스)'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괴벨스가 라디오와 영화를 장악했다면, 고영주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MBC를 장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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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는 결국 1954년 상원 청문회에서 "상원의원,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변호사 조지프 웰치(Joseph Welch, 1890~1960)의 한마디에 몰락했다. 방청석이 박수로 들썩였다. 그러나 고영주는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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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 이사장, 그리고 '공산주의자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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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을 떠난 고영주는 극우단체들 사이를 누비며 '애국보수'의 이론가를 자처했다. 2015년 박근혜(1952~) 정권에 의해 방문진 이사장에 임명됐다. MBC 지분 70%를 소유한 대주주 기관의 수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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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자리에서 거침없었다. 국정감사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사 공산주의자"이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공언했다.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을 공격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앉아서는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방해했다. 2017년 11월 방문진 이사장직에서 해임됐지만, 법원과 싸우며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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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최종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공적 인물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견 표명"이라는 이유였다. 이 판결 이후 그는 스스로를 "법원에서도 인정한 공산주의자 감별사"라고 불렀다. 유머 감각만큼은 있는 셈이다. 다만 그 유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웃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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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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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냉전시기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영국 정보기관 MI5는 1940~50년대 공무원, 언론인, 노동운동가 수천 명을 공산주의자로 분류해 사찰하고 직장에서 쫓아냈다. '음화 심사(Negative Vetting)'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이 사찰은 수십 년간 비밀에 붙여져 있다가 뒤늦게 공개됐다. 영국판 블랙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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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국은 이 문제를 비밀로 덮어두는 대신, 수십 년 뒤에라도 문서를 공개하고 의회 청문회를 열고 피해자를 복권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늦었지만 기록했고, 기록했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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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어떠한가. 1981년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가 2015년 방문진 이사장이 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이후에도 고영주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25년 2월 이승만바로알기국민연합 상임고문을 맡았고, 대통령 이재명(1964~)이 여수·순천사건 피해자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냈을 때 이를 격렬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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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부림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날, 고영주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가 고문현장을 방문하며 기소를 강행했던 그 사건의 피해자들이 30년 넘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 했던 동안, 고영주는 훈장을 두 번 받았다(1995년 홍조 근정훈장, 1997년 황조 근정훈장). 그리고 지금도 살아서 성명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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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매카시는 대중 앞에서 몰락했다. 괴벨스는 전범으로 기록됐다. 고영주는 아직 그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러나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미 그 이름을 기록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연합뉴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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