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올해 총선의 주된 기조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편에는 여전히 윤석열 정부 심판 여론이 있지만, 기세가 몇 달 전만 못하다. 오히려 정치평론가 가운데에는, 여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는 이들까지 있다. 그만큼 백중세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는 물론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의사 파업에도 아랑곳없이 밀어 붙이는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방침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요즘 보이는 모습 역시 총선 지형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다. 민주당은 공천 명단에서 이른바 '비명'계 현역 국회의원들을 단호히 배제하고 있다. 누가 봐도, 차기 대선 주자를 노리는 이재명 대표가 당을 더 확고히 장악하려는 작업의 일환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회의와 환멸을 느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서 보이는 독단적 행보만큼이나 독선적인 모습을 이재명 대표의 당정(黨情) 운영에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총선 정국은 점점 더 안개에 휩싸인다. 바다의 두 괴물 스킬라(Scylla)와 카리브디스(Charybdis)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던 오디세우스마냥 민심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암초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와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이 아니라 '체제'가 문제다
이런 현실은 이미 주류 언론도 다들 짚고 있다. 윤석열과 그 후계자 한동훈이든, 반대편의 이재명이든 모두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언론이 없다. 단지 윤석열, 한동훈이 진짜 심판 대상인데 이재명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푸념하거나, 이재명이 진짜 원흉인데 윤석열도 답답하기만 하다고 가슴을 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 양편의 지도자, 즉 특정한 '사람'이 문제라고 보는 점에서는 매일반이다. 검사 출신 권력광 윤석열, 한동훈 탓이라거나 온갖 의혹에 휩싸인 이재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불행은 하필이면 이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 양대 정당 모두 '가장 이상한'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 데 있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박복한가, '한강의 기적' 뒤에 점지된 운명이 '윤, 한' 아니면 '이'라니!
하지만 이런, 진단 아닌 진단이야말로 지금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문제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 하필 이런 사람들이 지금 양대 정당의 맨 꼭대기에 군림하는 현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국정을 통해서든 당정을 통해서든 권위주의적 리더십 밖에는 보여줄 수 없는 인물들이 2024년 시점에 한국 정치에서 양대 정당의 최고위직을 차지한 것은 한국 정치 자체의 구조와 논리가 낳은 결과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 '체제'가 문제다.
어떤 '체제'가 문제인가? 1987년에 뼈대가 만들어지고 이후 계속 진화해 온 '제6공화국 정치 체제'가 문제다. 그리고 이 체제의 정점에는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 있다. 미국이나 라틴아메리카와 비슷한 대통령제라지만, 미국과 달리 연방제도 아니고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달리 결선투표제도 없는 한국형 대통령제 말이다.
이 대목에서 제6공화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 양대 정당이 보이는 모습은 제6공화국이 막 시작될 무렵에 정당들에서 나타난 모습과 비슷하다. 지금이야 외부 인사로 채운 공천관리위원회라도 만들어 '공(公)'천 시늉이라도 하지만, 노태우와 삼김 씨가 각 당을 이끌던 시절에는 '총재'가 공천을 비롯한 만사를 다 결정했다. 오죽하면 양김 씨의 사랑방이 있던 동네가 각 정당을 상징하는 이름('동교동', '상도동')이 됐겠는가.
그러나 지금과 견줘보면, 비슷한 '사당(私黨)'화 양상에도 불구하고 양김 씨의 당정 운영에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우선 이는 당시의 정당 형태는 김영삼, 김대중의 항시적 선거운동 캠프로서 직선 대통령을 배출하기에 최적화돼 있었다. 또한 이런 정당 형태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김대중은 군부독재에서 벗어난다는 제6공화국 초기의 역사적 과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양김 씨가 각각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 양대 정당은 역시 나름대로 이후 상황에 맞게 진화하려는 노력을 했다. 양김 씨 뒤에 등장한 지도자들은 양김 씨와 달리 양대 정당을 '사당'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 점이 대의민주주의가 안정화된 제6공화국 중반의 사정과 잘 맞아떨어졌다. 김영삼을 계승한 정당은 1997년에 사뭇 역동적인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치렀고(비록 대선 자체에서는 패배했지만), 김대중을 계승한 정당은 이를 더 확대 발전시킨 국민참여경선을 치열하게 펼침으로써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이든 양김 시대에 비하면 현대적 대중정당에 가까워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강력한 두 명의 대선 주자를 키워내고 이 둘 사이의 역동적 경쟁을 통해 어쨌든 2017년까지 집권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성공적으로 부응한 사례였다. 2010년대 초에 이들 반대편에서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이런 역사적 경험을 뒤따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6~2017년 촛불항쟁과 이후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겪으면서 제6공화국 정치 체제는 급격하게 새로운 국면으로 내몰렸다. 우선 촛불항쟁 이후 붕괴 일보직전에 놓였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2017년 조기 대선뿐만 아니라 2022년 대선에서도 당선 가능한 후보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해 극적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촛불항쟁 이후 이들이 처한 근본적 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며, 그래서 현재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목한 검찰 출신 대선 주자 한동훈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신세다.
다른 한편 촛불항쟁 직후 만년 집권당까지 꿈꾸었던 민주당에서는 또 다른 역사의 간계를 통해 유력 대선 주자가 이재명 한 사람으로 압축되는 일이 벌어졌다. 본래는 문재인 정부의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안희정이나 김경수, 조국이나 임종석 같은 인물들이 마치 2000년대에 양대 정당이 보여줬던 것 같은 당 내 경쟁 구도를 펼치리라 기대됐다. 그러나 이재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잠재 주자가 문재인 정부의 실패 모멘텀마다 한 명씩 탈락했고, 덕분에 당 내 비주류에 가깝던 이재명이 대안부재론 속에 쉽게 대선 후보가 되고 당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외형만으로 보면, 양대 정당이 모두 제6공화국 초기의 사당형 정당으로 돌아간 꼴이다. 윤석열, 한동훈의 당과 이재명의 당 모두 양김 씨가 각각 상도동당과 동교동당을 이끌던 시절에 가깝다. 두 당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자기 당의 유일한 현재적 대선 주자(한동훈과 이재명)에게 권력을 몰아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다음번 대선에서 제6공화국 정치 체제의 중심인 '대통령' 자리를 수호/탈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24년 대한민국 총선은 정책 경연장이 될 수 없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을 어떻게 정리하고 새 시대로 나아갈지, 팬데믹 종료로도 끝나지 않은 복합위기에 맞서기 위해 한국 사회를 뒤늦게나마 어떻게 재편할지, 토론하는 장이 될 수 없다. 오직 3년 뒤의 승리를 위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싸움일 따름이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한동훈 당, 이재명 당보다 더 나은 조직 형태도 달리 없다.
그러니 '윤, 한'과 '이'를 욕하지 말자. 한국 정치의 '때 아닌' 궁지를 한탄하지도 말자. 지금의 모든 사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랑거리로 치부되던 'K-민주주의' 바로 그것의 산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K-민주주의'의 포로 신세에서 벗어나자
흔히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든다. 그러나 정말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게 핵심 문제인지, 혹은 그것만이 문제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제도들이 '대통령'이라는 제도 때문에 기능 장애에 빠졌다는 점이다. 국회나 정당처럼 대의민주주의의 작동에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도들이 한국형 '대통령' 제도와 결합된 탓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국회는 양대 정당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놓고 전략 게임을 벌이는 장이 되었다. 입법이라는 국회의 기본 기능은 뒷전이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 180석의 민주당이 별다른 입법 활동을 하지 않은 사례나 윤석열 정부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매번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에서 보듯이, 입법 기능 자체가 양대 정당의 권력 투쟁 수단이 되어 버렸다. 국회가 제 기능을 안 하니 결국 대한민국 시민은 입법 통로를 원천 봉쇄당하는 꼴이다. 사실상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정당 역시 시민사회의 여러 집단을 대표하면서 사회 전체의 해법을 찾는 데 기여한다는 고유한 기능에서 더욱더 멀어진다. 제6공화국 헌법의 '대통령'이 과연 누적되기만 하는 복합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정당은 오로지 차기 '대통령'직을 차지하는 게임에만 골몰한다. 이를 위해 그간 그나마 쌓아온 현대적 대중정당의 외피마저 벗어버리며, 자당의 유일한 현 대선 주자에게 당 내 권력을 몰아준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기능 장애 상태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대다수 시민들 자신이다. 현재의 실패를 낳는 요인은 대개 과거의 성공을 낳은 그 요인이라는 무거운 진실이 한국 사회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제6공화국 초기의 성공을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대통령'(현 대통령이든 3년 뒤에 그리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든)에 모든 기대를 건다. 이들에게 정치란 '대통령 만들기'의 감동적인 서사를 끝내 완성하는 일이며, 그래서 국회든 정당이든 시민들 자신이든 모두 이 서사의 완성에 마땅히 동원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제6공화국 민주주의', '1987년 민주주의', 'K-민주주의'다. 이런 눈물겨운 '대통령 만들기' 멜로드라마를 위해 이제 윤석열-한동훈 당과 이재명 당뿐만 아니라 조국 신당과 이준석 신당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유일한 정치는 이러한 'K-민주주의의 단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K-민주주의의 포로' 신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민들 자신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정초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이런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오지 못한다면, 총선은 붕괴와 파국 직전의 거대한 낭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1만 명을 넘어섰다. 현장 이탈자도 9000명을 넘겼다. 이런 가운데 지난 23일 대전에서 80대 심정지 환자가 병상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아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1면에 보도했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등은 환자들이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상황을 사설로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 발언을 비판하면서도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소득 양극화를 방치한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7일 아침신문들 1면.
80대 심정지 환자 응급실 뺑뺑이 사망... 국민일보 “국민 분노 커질 수밖에 없어”
중앙일보는 1면 <의·정 ‘강대강’ 대치 속 응급실 찾던 80대 사망> 기사에서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일주일째 접어들면서, 80대 말기암 환자가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지 못해 헤매다 끝내 사망하는 사례가 나왔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26일 대전시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80대 여성 환자가 지난 23일 구급차에서 병원으로 이송 중 심정지로 사망했다.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후 인근 병원 7곳에 연락을 취했지만 ‘전문의가 없다’거나 ‘병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렵사리 진료가 가능한 대전의 대학병원으로 향했지만 환자는 이송 중 심정지로 사망했다. 이 환자가 구급차 탑승 후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53분이었다”고 보도했다.
▲27일 중앙일보 3면.
▲27일 중앙일보 1면.
의료대란으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3면 <“아이가 숨을 제대로 못 쉬어요”…한 살배기, 병원까지 3시간> 기사에서 “지난 25일 오전 8시31분 경남 창원시 의창구 한 주택에서 ‘아이가 숨을 제대로 못 쉰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아이는 1세 남아로, 구급대 출동 당시 호흡곤란, 입술청색증 등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하지만 이 아이는 2시간56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119구급대가 이송한 병원은 집에서 65㎞ 떨어진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이었다. 아이 집에서 차로 11~19분 거리(4.8~15㎞)에는 삼성창원병원과 창원경상대병원도 있었다. 하지만 26일 경남 창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들 병원은 ‘의료진 파업’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전공의 복귀 ‘29일 시한’ 엄중히 받아들여야> 사설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의사들이 환자를 떠난 상황에서 의료 파행이 심화하면 국민 피해와 분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반발하는 ‘2000명 의대 증원’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에 따른 필수의료 지원 정책의 첫 단추다. 의료대란을 겪으면서도 국민 다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다른 이익집단의 불법행위에 대해서처럼 엄중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의 절제와 양식 회복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27일 국민일보 사설.
▲27일 서울신문 사설.
국민일보는 <“환자부터 살려야” 전공의들 29일 복귀 시한 지키길> 사설에서 “보건의료위기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초래됐다는 건 심각한 모순이다. 대부분 전공의들은 여전히 정부의 업무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적반하장이라도 지나치다. 무정부 상태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국민들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기 전에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의사들의 권위와 협상력은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 곁을 지킬 때 존중받는다”고 주장했다.
중앙, 인기과 vs 비인기과 소득 양극화 방치 정부 비판
중앙일보는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키’ 발언을 비판하면서도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연봉이 4배 이상 차이가 나도록 의료시장 소득 양극화를 모른 체 해온 정부를 비판했다.
▲27일 중앙일보 칼럼.
정효식 사회부장은 <‘의료-공공재’ 논리가 MZ 전공의에 통할까> 칼럼에서 “의료시장(소득) 양극화 문제다. 전공의의 미래인 전문의 소득 상위 인기과와 비인기과 간 양극화는 최근 10년 새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펴낸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원 표시과목별 연봉 1위인 흉부외과(4억8799만원)는 꼴찌(22위)인 소아청소년과(1억875만원)의 4.5배에 달했다”고 운을 뗐다.
정효식 부장은 이어 “전공별 소득 격차가 4대 1 이상으로 커지도록 의료 영리화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건강보험체계 밖에서 이뤄지는 비급여 시장이 불어나는 데도 뒷짐만 졌다”며 “건강보험 통제를 받지 않고 병·의원이 자율적으로 수가를 정하는 비급여 진료비는 2010년 8.2조원에서 2021년 17.3조원으로 늘었다. 국민 4000만 명이 건보 급여 대신 민간 실손보험금으로 비급여 진료비의 60% 이상을 지출했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대 군사보호구역 해제에 동아일보 “정부·대통령실 자제해야”
정부가 여의도 면적의 117배에 달하는 전국의 339㎢(1억300만평) 규모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1면 <역대 최대 1억평 군(軍)보호구역 해제> 기사에서 “이번 보호구역 해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해당 지역 주민들은 높이 제한 없이 건축물 신축·증축 등을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충남 서산비행장에서 15번째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안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주민 수요를 검토해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27일 동아일보 사설.
그러자 동아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심성 정책이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그린벨트 해제” 5일 만에 “역대 최대 군사보호구역 해제”> 사설에서 “이렇게 발표되는 정책들 대부분은 지역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어서 야권을 중심으로 지나친 선거 개입이란 지적이 커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지난 두 달간 내놓은 선심성 정책들만 해도 과거 선거를 앞두고 암묵적으로 용인돼온 ‘정부 여당 프리미엄’ 수준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실의 자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尹 독일방문 나흘 전 취소에 한겨레 “‘석열스만’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 14일 윤 대통령이 지난 18일로 예정된 독일·덴마크 순방 계획을 출국 나흘 전에 돌연 연기했다. 취임 뒤 16차례 해외 순방을 다녀온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외교 일정을 출국 나흘 전에 취소한 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순방 연기 및 이유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윤 대통령이 KBS와 진행한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는데, 김 여사가 순방에 동행하면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좋지 못한 영향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겨레는 위르겐 클리스만 전 한국 출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윤 대통령을 비교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는 <‘석열스만’을 어찌할 것인가> 칼럼에서 “클린스만은 지난해 2월 취임하고 나서 잦은 해외 출장이나 미국 자택 체류로 6개월여 만에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다. 취임 200일 동안 한국에 머문 날은 68일에 불과해, 그 역시 해외를 방문하는지 한국을 방문하는지 헷갈리게 했다”고 운을 뗐다.
관련기사
“尹, 공공병원은 확충 안 하면서 급할 땐 공공병원 찾나”
의사 vs 정부 강대강 대치에 “둘 다 틀렸다” 말하는 의사
▲27일 한겨레 칼럼.
정의길 선임기자는 “그는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요르단에게 완패한 뒤 ‘한국으로 가서 경기를 분석해보겠다’고 하고선 미국 자택으로 가버려, 국민적 분노를 사며 감독에서 해임됐다. 그의 일관된 ‘노 빠꾸’ 정신은 독일 언론도 자극했다”며 “클린스만은 ‘노 빠꾸’ 정신으로 경탄을 자아낸 반면 윤 대통령은 ‘급빠꾸’로 경외를 끌어냈다. 가히 ‘석열스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선임기자는 “국빈 방문 정상외교를 나흘 전에 취소할 정도면 천재지변이나 정상의 신변 이상 등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실은 ‘국내 민생 현안 집중 등 제반 사유’라고 방문 취소 이유를 들었다. 지난해까지 해외 순방을 뻔질나게 다닐 때는 ‘순방이 곧 민생’이라고 했는데, 이번 독일과 덴마크 방문은 민생이 아니었는 모양”이라고 비판한 뒤 “독일을 저렇게 무지하게 기분 나쁘게 한 사연의 내막이 김건희 여사 때문임이 한국에서는 정설이다. 기자 생활 30년 이상을 하면서, 그런 이유로 국빈 정상외교가 취소된 사례가 있었던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하는 대통령이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국빈 정상외교에서 ‘급빠꾸’ 했다고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싶다!”고 주장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도시연구소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2.22 ⓒ민중의소리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다주택자들에게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최근엔 실거주의무도 3년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시도 중이다. 실거주의무는 실거주자만 분양받도록 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만큼 자칫 갭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서민 등 주거약자를 위한 정책은 오히려 축소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줄었고, 매입임대주택 실적도 급감했다. 특히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로 인해 세입자들의 피해가 급증했지만,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선구제 후회수’ 방안도 정부여당의 거부로 특별법에 담기지 못했다.
지난 22일 ‘민중의소리’와 만난 최은영 소장은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으로 점철돼 있다”며 “주거약자를 위한 주거정책 측면에선 점수를 주기도 민망한 낙제점”이라고 평가했다.
부동산 정책이 다주택자, 즉 가진 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최 소장은 “정부 정책으로서 있어야 할 사회적 설득과 공감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고 일축했다.
“있으나 마나한 전세사기 특별법... 아직도 세입자 보호 대책은 없어”
특히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대책에 대해 최 소장은 “핵심이 빠져 있으나 마나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5월 말 정부와 국회는 전세사기특별법을 처리한 바 있다. 하지만 반쪽짜리 특별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와 여당의 극렬한 반대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였던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빠진 데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특별법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은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한다는 우려였다.
최 소장은 “전세사기 피해의 핵심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만든 전세사기 특별법이라고 하면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해 전액은 아니어도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특별법엔 이런 핵심 내용이 빠져 있다”고 했다.
특별법 처리 당시 정부와 국회는 6개월마다 보완입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진행된 임시국회에서 보완입법을 위한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최 소장은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면서 “늘 실효성 없는 정책들로 피해자들을 농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규모 전세사기의 원인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점도 짚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전세대출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전세대출 보증, 보증보험 확대 정책과 맞물려 대규모 전세사기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주택가격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오른 전세보증금으로 인해 자기 자본 투입 없이도 ‘대출’과 ‘전세보증금’만으로도 주택 취득이 가능한,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최 소장은 “대규모 전세사기가 가능했던 건 공시가격의 150%까지 보증보험 가입을 받아줬기 때문이고, 전세금의 80~90%까지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라며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 소장은 “이후 공시가격의 150%였던 보증보험 가입 문턱을 126%로 낮추긴 했지만, 그 외에는 아직도 대책이랄게 없다”면서 “여전히 신혼부부, 청년을 중심으로 해서 빚을 내줄 테니 전세 살라고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상 대규모 전세사기 발생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최 소장의 지적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공시사격의 126%까지 보증 보험 가입을 받아주고, 전세 보증금 대출은 여전히 80~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세사기가 또 발생하더라도 세입자가 모든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촉구 기자회견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2023.12.21 ⓒ민중의소리
정부의 ‘부동산 PF 문제 관련 대책’과 ‘전세사기 피해 대책’간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도 짚었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관련해선 ‘사인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며 선을 긋던 정부가 건설사들의 무리한 투자로 인한 부동산 PF 부실엔 수십조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최 소장은 “1.10 부동산 대책을 보면 웃음도 안 나온다”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겐 있으나 마나한 말뿐인 정책들이 전부였던 정부가 건설사들의 경영실패로 인한 PF부실에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융지원을 약속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0일 정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부동산 부실 PF를 지원을 위해 공적 PF대출보증 25조원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또 연기금, 주택도시기금 등 공적기금을 출연한 1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반면 함께 발표된 전세사기 피해지원 대책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감정가액에 협의매수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세입자 외 다른 채권자가 없는 주택부터 우선 협의매수 대상으로 삼아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협의매수 대상 주택의 범위가 협소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1만994명 중 LH에 매입 신청을 한 건수는 141건(1.3%)에 불과했다.
이처럼 정부가 부실한 전세사기 피해지원 대책들을 내놓는 이유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도적 허점을 파고든 전세사기 범죄를 피해자들의 잘못으로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전세사기 대책이 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정부가 본인들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증 보험이 확대됐는지, 대출이 어떻게 확대됐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제도적 허점을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도시연구소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2.22 ⓒ민중의소리
망가진 취약계층 주거정책... 주거급여 정책도 지지부진
윤석열 정부 들어 주거약자들을 위한 주거정책 대부분이 후퇴했다는 점도 짚었다. 정부는 2023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 예산 5조원가량을 삭감했다. 2022년 반지하 주택 침수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주거취약계층에 공급하는 매입·전세임대주택 물량을 2배 늘릴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해 놓고 예산은 크게 깎아버린 것이다. 특히 매입임대주택 기금 예산은 올해 2조4,343억원으로 지난해(2조8,393억원) 대비 4,050억원 감소했다.
최 소장은 윤 대통령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봤다. 그는 “취약계층, 서민의 삶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면서 “문제는 그런 인식들이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 주거약자를 위한 정책들을 무턱대고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등 저소득층과 청년·고령자에게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은 지난해 약 4,610호 매입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목표 매입 물량(2만476호)의 23%를 밑도는 실적이다.
매입임대주택이란 LH 등 공공주택 사업자가 기존 주택을 사들이거나, 신축 예정인 건물을 매입(신축매입약정)해 저소득층이나 고령자, 신혼부부, 청년 등에게 장기간 시세의 50~80%로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택이다. 공공택지 등에 건설해 임대하는 주택과 달리, 매입임대는 임차인이 현재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주거안정을 지킬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라 수요가 많다.
최 소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모두 문제다. LH는 매입임대주택 2만호라는 목표가 있었는데도 4,600호를 사들이는 데 그쳤고, SH는 2022년 1만호에 달했던 목표치를 2023년 500호로 확 줄여버렸다”며 “이번 정부가 주거약자들을 위한 주거정책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LH의 매입임대 매입 실적은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히 줄고 있다. 2019년엔 2만340호를 사들인 바 있고, 2020년엔 1만6,562호, 2021년엔 2만4,162호를 매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엔 1만4,054호를 매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LH는 매입임대 매입 물량은 4,610호로 급감했다.
특히나 SH의 매입임대가 급감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사실상 개발 포화상태인 서울은 집을 새로 지을 땅이 없다 보니 매입임대를 통한 공공임대주택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매년 8천호 가량을 매입하던 매입임대를 작년부터 500호까지 축소한 것이다.
최 소장은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은 주거취약계층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면서 “그런데도 SH는 사실상 매입임대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그건 결국 주거취약계층의 삶이 더 개선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주거급여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거급여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대상 가구에 매월 지급하는 돈이다. 최 소장은 “그래도 윤석열 정부 들어 주거급여 쪽엔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면서 “대선 공약에 주거급여에 관리비를 포함하겠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거급여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현행 중위소득 46% 선인 주거급여 대상자를 50%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리비도 주거급여로 포함시키고 여름철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혹서기 지원’ 항목도 신설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취임 2년이 다 돼가도록 주거급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전무한 상황이다. 최 소장은 “공동주택 같은 경우에도 대부분 관리비가 있는 상황에서 주거급여에 관리비가 포함되지 않는 건 맞지 않다”며 “결국 주거급여가 아닌 생계급여로 관리비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취약계층에 이 부분은 꼭 제도적인 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도시연구소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2.22 ⓒ민중의소리
“집값 하향 안정화 없이는 어떤 대책도 백약이 무효”
최 소장은 현시점에서 주거취약계층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주택가격의 하향 안정화’라고 봤다. 당장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도 어려울뿐더러 공급물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택가격 하향 안정화 없이는 어떤 대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지금은 무엇보다 집값 하향 안정화되는 게 필요하다. 그게 아니고서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하다”면서 “집값이 안정돼야 전월세 가격도 안정돼 주거비 부담의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월세지원의 제도화를 제안했다. 최대한 많은 양의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돼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주거급여(중위소득 46% 이하)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에 월세를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11월 주거비 지원 제도가 없는 청년층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월세를 지원하는 정책이 도입된 바 있다. 다행히 총선 때문인지 이번 정부에서도 연장됐다”면서도 “이런 정책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청년 가구 외에 아동이 있는 가구도 소외돼 있는데, 제도화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대상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취약계층의 경우 지원 기준이 너무 낮아 아르바이트만 해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주거급여의 경우 중위소득 기준 46% 이하여야만 지원 대상이 되는 만큼 아르바이트만 해도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지원대상을 중위소득의 60~70%까지 올려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15대전본부가 26일 대전시청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연합전쟁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26일 오후 2시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주최로 ‘우리는 평화를 바란다! <대북전단 살포·한미연합전쟁연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한미연합전쟁연습과 대북전단살포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영복 6.15대전본부 공동대표가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영복 6.15대전본부 공동대표는 “오는 3월 4일부터 2주간 진행될 예정인 프리덤쉴드라는 대북선제공격과 전면전을 상정한 한미연합전쟁연습은 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미군사력의 한반도 전개와 더불어 진행될 예정”이라며 “연초 북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이라 밝히고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의미하는 자유의 북진정책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전개되는 이 핵전쟁연습은 한반도를 1950년 6월 25일 직전의 전쟁 전야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현우 진보당 대전시당 위원장이 촉구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정현우 진보당 대전시당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남북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아 전쟁의 위험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고 말하며 “최근 9.19 군사합의가 무력화되고 남북 대화 채널이 모두 끊긴 상태로 전쟁방지 장치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 그 위험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만약 무력충돌이 벌어진다면 단순 무력충돌이 아니라 한반도 전쟁으로 확전될 위성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호경 민주노총 대전본부 사무처장이 촉구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김호경 민주노총 대전본부 사무처장은 “마치 끝 겨울 살얼음판 같은 시기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한반도의 위기도 저는 정치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고, 경제적 안정도 꿈도 못 꿀 정도”라며 “한미일연합훈련을 통해 만에 하나 전쟁의 불씨가 당겨진다면 반만년이 훨씬 넘어서는 한민족의 역사는 사라진다. 대통령은 전쟁연습 당장 중단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추도엽 원불교 평화행동 공동대표가 촉구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추도엽 원불교 평화행동 공동대표는 “오늘날 우리 한반도는 핵전쟁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원인은 바로 미국과의 연합군사훈련이다. 매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진행되는 이 훈련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다”라고 지적하며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김성남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충청지역연합회 지역장이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끝으로 김성남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충청지역연합회 지역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오직 평화를 바란다. 한반도 핵전쟁위기는 곧 공멸이다. 우리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반도에서 안보불안을 부추기고, 전쟁위기를 조장하려는 일체의 적대행위와 군사행동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한반도 핵전쟁위기 부르는 윤석열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는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라며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연합 전쟁연습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향후 전쟁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평화현수막 게시 운동과 대전시청역 네거리에서 캠페인을 통해 전쟁연습을 중단시키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2024년 한미연합훈련이 오늘까지 총 13차례, 48일 동안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2월 24일까지의 통계이니, 56일 가운데 한미, 한미일 군사훈련이 48일 실시된 것이다. 한미군사연습이 10회, 한미일 군사연습이 1회, 한미일 포함 다국적군 훈련이 2회였다.
▲ 옅은 색은 1개, 짙은 색은 2개 이상의 한미연합 훈련이 실시된 날이다.
첫 시작은 한미연합 전투사격훈련이었다. 지난 해 12월 29일부터 시작하여 1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A-10 공격기의 정밀타격, K1A2 전차의 사격, 미국 스트라이커 장갑차의 공격 등이 주된 훈련 내용이었다. 경기도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 실시되었다.
▲ 미군 A-10 공격기가 훈련장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국방부
비슷한 공중훈련은 2월 23일에도 진행되었다. 이날 한미 공군 F-35 스텔스전투기들이 다수 참가하는 훈련이 실시되었다. 국방부는 영공을 침범한 적기와 순항미사일을 요격, 격추하는 ‘방어제공임무’ 훈련을 실시했다고 주장하지만,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은 스텔스 전투기가, 그것도 일본 가네다 기지에 주둔 중이었다, 출격했다는 것은 기습공격 훈련이었음을 보여준다.
1월 22일부터 2월 2일까지 경기도 포천시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는 한미 특수작전 훈련이 실시되었다. 국방부는 ‘그린베레’로 알려진 미국 제1특수전단과 함께 한 훈련이라고 자랑삼아 공개했다. 적진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훈련이었다. 로드리게스 훈련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 훈련장이다.
▲ 한미특수부대가 적진 침투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10차례 중 2월 1일 시작된 한미 KMEP 훈련은 20일 동안 진행되었다. 미 해병대의 한국 내 훈련 프로그램을 뜻하는 KMEP(Korean Marine Exchange Program)는 한미 해병대가 연합작전 수행능력과 상호 운용성 향상을 위해 시행하는 연합훈련이다. 한미 해병 장병 300여 명을 비롯하여 K808 차륜형 장갑차,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K1A2 전차, 대대급 무인항공기(UAV),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미 CH-53E 대형수송헬기 등이 참여했다.
4단계로 나뉘어 실시되는 이 훈련은 도시지역 전투상황을 가정한 근접전투 훈련, 연합상륙작전 훈련, 공중돌격 훈련 등이 실시되었다. 이 훈련을 통해 실전적인 전투 감각을 함양했다고 국방부는 평가했다.
그 중에서도 2월 15일 포항 조사리훈련장에서 실시된 연합공중돌격훈련은 미국 MH-53E 헬기에 탑승하여 낙하산을 활용해 적 지역에 침투하는 공중돌격 및 헬기돌격 훈련이었다.
▲ 미 MH-53E 헬기를 활용해 가상의 적 지역에 침투한 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기동하고 있다. ⓒ국방부
13회의 훈련 일지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대부분의 훈련은 정밀타격, 적진 침투와 도시 전투, 상륙 및 돌격, 공중기동 등 공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최소 130여 차례 기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월 30일 미2사단과 한미연합사단은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연합훈련 협조회의’를 진행했다. 올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소요를 종합하고 훈련 내용을 조율하는 회의였다. 한국과 미국의 군 주요 작전 계획 담당자 80여 명이 참여한 이날 회의에서 한미는 올해 계획된 130여 건의 연합훈련 일정을 조율했다.
고대 중국의 군사전략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의 병세편(兵勢篇)에 이르기를 전쟁에서 “기로써 이긴다(以奇勝)”라고 했다. 기(奇)라는 말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뛰어난 전략으로 전쟁에서 이긴다는 말이다.
군사전략에서 전법도 나오고, 전술도 나오고, 작전계획도 나온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군사전략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운명과 안위를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군에게는 없고, 아군에게만 있는 독창적인 전략이다. 적군에게도 있고, 아군에게도 있는 평범한 전략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또한 아군의 전략을 보완해 적군의 전략보다 좀 더 우세해진 비교우위 전략으로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아군만 갖고 있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독창적인 전략을 가진 군대가 있다. 조선인민군은 한미연합군이 갖지 못한 독창적인 전략을 가졌다. 조선인민군의 독창적인 전략은 김정은 총비서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체계화한 군사전략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독창적인 군사전략을 연구하고, 체계화한 과정을 살펴보자.
일본 마이니찌신붕(每日新聞)이 조선에서 유출된 대외비 문서를 인용해 보도한 2009년 10월 5일부 기사와 2010년 2월 24일 발간된 시사저널 제1062호에 실린 기사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군사전략을 연구하고, 체계화한 과정을 말해주는 중요한 정보다. 이 보도기사들에 들어있는 다음과 같은 정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보병지휘관 3년제 과정과 군사연구사 2년제 과정을 거치며 군사전략을 연구하였다.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 연구는 군사 문제 전반을 포괄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정찰위성 자료와 지구위성항법체계(GPS)를 사용한 새로운 군사전략도 포함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들을 지도하면서 실전화된 군사전략을 연구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0년 9월 28일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이 사실은 2010년 당시 김정은 총비서가 조선인민군 군사전략을 총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1년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이후 전군을 지휘, 통제하면서 자신의 군사전략을 체계화하였다.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은 군사전략을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과업을 군사보좌관들에게 맡기지만, 김정은 총비서는 군사전략을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체계화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에 관해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군사전략은 국가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조선을 비롯한 모든 나라들은 군사전략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예컨대, 미 제국에서 권위 있는 조선문제 분석가로 알려진 로벗 칼린(Robert L. Carlin) 같은 사람도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에 관해 알지 못한다. 그는 2024년 1월 25일 뉴욕타임스 보도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들(조선을 뜻함-옮긴이)이 1950년에 남측을 침공했을 때 미국인들을 정신적 혼란에 빠뜨리고, 모든 사람을 정신적 혼란에 빠뜨렸던 불시공격(surprise attack)은 오늘 북조선의 군사 기획자들(military planners)에게 유리할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불시에 공격할 것이라는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는 조선인민군의 불시공격전술이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에서 파생된 여러 전술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로벗 칼린은 조선인민군의 특정한 전술만 알고 있을 뿐, 조선인민군의 전략은 알지 못한 것이다. 군사전략을 모르면, 군사 정세를 심층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최근 한(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격화되는 군사 정세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변지역은 중국인민해방군과 미 제국군의 충돌위험이 존재하는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필리핀해를 가리킨다. 군사 정세에 대한 관심은 군사전략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다. 김정은 총비서의 군사전략이 무엇인지 알아야 군사 정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의 군사 동향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선의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군사전략 문제에 관한 김정은 총비서의 발언, 그리고 한국, 일본, 미 제국의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조선인민군의 전략적 동향을 종합, 고찰한 시론이다. 자료수집에 한계가 있어 아직 완결하지 못했으니, 시론이다.
2. 군정배합전략
군정배합이란 군사와 정치를 배합한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의 군정배합전략은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계승, 발전되어왔다. 군정배합전략은 김일성 주석이 이끈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1936년 2월 27일 김일성 사령관은 남호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 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보고하였다. 보고에서 김일성 사령관은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 특히 새로 편성되는 부대들에서는 대원들을 맑스-레닌주의와 조선혁명의 로선, 전략전술로 무장시키기 위한 집중 군정학습, 각종 형태의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하여 각 부대 내의 정치사업체계를 일층 완비하며 새로 편성되는 부대들에 유능한 정치일꾼들을 선발 배치하여야” 하고 “부대 내에서 혁명적 학습 기풍을 수립하고 지휘간부들과 전사들이 자체의 정치리론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1937년 11월 30일 김일성 사령관은 몽강현 마당거우 밀영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군정학습을 조직 진행하여 부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연설에서 김일성 사령관은 “학습은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혁명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며 “혁명군대 내에서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며 혁명군대가 언제나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중요한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첫 시기부터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강대한 적과 싸우는 간고한 투쟁 속에서도 항상 학습에 일차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학습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취하였”다고 말하였다.
1930년대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정배합전략은 1948년 2월 8일 창건된 조선인민군에 계승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인민군을 창건할 때 총참모부와 총정치국을 지휘부로 두었다. 총참모부는 군사활동과 군사작전을 지휘하고, 총정치국은 정치학습과 정치사업을 지도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 군대는 전투훈련을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전투정치훈련을 한다. 전투정치훈련이라는 말은 조선인민군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는 중요한 개념이다. 조선인민군의 전투정치훈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면, 모든 장병들이 매일 첫 일과로 정치학습을 2시간씩 한 다음에 전투훈련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 군대는 전투훈련만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전투훈련과 정치학습을 병행한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다른 나라 군대들과 구별되는 전략적 차별성이며 우월성이다.
조선인민군 전군의 정치학습과 정치사업을 담당하는 지휘부가 총정치국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치학습과 정치사업은 최고사령관에 대한 군대의 절대적 충성, 조선로동당에 대한 군대의 절대적 복종, 군대 내부의 사상정신적 단결, 군대와 인민의 전략적 일체성을 부단히 강화하는 활동인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위에 서술한 절대적 충성, 절대적 복종, 사상정신적 단결, 전략적 일체성이 조선에서 말하는 ‘주체의 혁명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정은 총비서는 전군을 ‘주체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 것을 조선인민군이 달성해야 할 총적 목표로 정했다. 그런 전략적 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전군을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모든 장병의 사상교양사업과 정치사업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조선인민군의 사상교양사업과 정치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자.
첫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각급 부대 정치부들에 사상교양사업 방침을 하달한다. 자유아시아방송 2023년 2월 8일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각급 부대 정치부들에 “군인들이 훈련하는 현장에 나가 화선식으로 정치사상교양을 진행할 데 대한” 지시를 하달했고, 그 지시에 따라 정치부 지휘관들은 “매일 2시간씩 진행하는 정치상학 외에도 훈련장까지 나와 사상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상학’이라는 말은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 하루의 첫 일과로 진행되는 사상교양을 뜻한다.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누구나 정치상학을 마친 후 군사훈련을 받는다.
둘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각급 부대 정치부들에 정치사업 방침을 하달한다. 2022년 11월 29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2022~2023년도 전투정치훈련을 앞둔 2022년 11월 22일 총정치국이 각급 부대 정치부들에 하달한 정치사업계획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군인들의 정치사상적 단결을 강화하려면 각 부대 정치부가 군인들이 부대를 진정한 전우집단, 정든 고향집으로 여기고 마음 편히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부대 정치부 지휘관들이 하급 부대를 하나씩 맡아 모든 군인의 애로를 청취하고 마음을 안착시키는 사업을 부대의 당적 사업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위에 인용한 보도에 의하면, 2022년 12월 총정치국의 정치사업방침에 따라 각급 부대 정치부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각급 부대 참모부, 작전부, 보위부 지휘관들도 대대와 중대를 하나씩 맡아 훈련 첫날부터 하급 병사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침식을 같이하면서 정치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지휘관, 정치일군 강습회’를 지도하면서 조선인민군을 “조선로동당의 사상과 령도에 절대 충성, 절대 복종하는 정치사상집단으로 만들며, 모든 작전과 전투, 부대 관리와 지휘관, 병사들의 군무생활을 조선로동당의 정책과 방식대로, 당의 의도대로 진행해나갈 것”을 지시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사상전이 벌어지는 사상전선과 사상사업이 벌어지는 사상진지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래서 김정은 총비서에게 있어서 사상전략과 군사전략은 분리될 수 없게 일체화되었을 뿐 아니라, 사상전략을 우선시하는 군사전략으로 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정치사상강군화는 우리 군건설의 기본이며 전략적인 제1 대과업”이라고 언명하였다. 사상전략을 첫째가는 대과업으로 규정한 김정은 총비서의 군정배합전략은 바로 이 발언에서 가장 명백하게 표현되었다.
김정은 총비서의 군정배합전략에서 핵심을 이루는 사상전략은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선전공세와 정치학습을 통하여 조선인민군 전군에 김정은 총비서의 혁명사상을 파급시켜, 조선인민군의 정신력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에 즈음하여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연설하였다. 연설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얼마 전 우리 당과 정부가 우리 민족의 분단사와 대결사를 총화 짓고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앞길이라는 뜻-옮긴이)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령토를 점령, 평정하려는 것을 국시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과 그 지지세력을 동족으로 보았던 관점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적 관념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김정은 총비서의 새로운 대적 관념을 전군에 파급시켜야 하는데, 새로운 대적 관념을 파급시키는 데서 사상전략을 우선시하는 김정은 총비서의 군정배합전략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유아시아방송 2024년 1월 18일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의 지시에 따라 각급 부대 정치부들은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매일 진행되는 정치상학과 집중강습, 강연회, 상학준비검열 등 군인들이 모이는 기회마다 평화통일에 대한 환상을 버릴 데 대한 내용의 사상교양을 반복해 진행”하고 있고, “한국은 절대 변하지 않을 우리의 적이라는 철저한 대적 관념을 가지라고 교육하고 있다”라고 한다.
3. 비대칭전략
김정은 총비서의 비대칭전략은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적이 예상하지 못한 전법과 전술로, 적이 방어하지 못하는 비대칭무기를 사용하여, 적이 방어하기 불리한 곳을 공격하여 적을 단숨에 제압하는 독창적인 군사전략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연구하고, 체계화한 비대칭전략의 3대 요소를 하나씩 살펴보자.
1)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공격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에 즈음하여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연설하면서 “전쟁은 사전에 광고를 내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합시다”라고 했다. 사전에 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사전에 공격징후를 적에게 노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그날 연설에서 조선인민군이 “까딱하면 언제든 (적을) 치고 괴멸시킬 수 있는 합법성”을 가졌다고 말하였는데, “까딱하면 언제든 (적을) 친다”는 말은 한미연합군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공격한다는 뜻이다. 로벗 칼린은 2024년 1월 25일 뉴욕타임스 보도기사에서 조선인민군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불시공격(surprise attack)’이라고 불렀다.
불시공격은 선제공격과 다르다. 선제공격은 적의 공격징후가 나타났을 때 먼저 적을 치는 것이고, 불시공격은 적의 공격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불시에 적을 치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보면, 김정은 총비서의 비대칭전략은 조선인민군이 공격징후를 한미연합군에 노출하지 않고 불시에 공격하는 전법을 파생시켰으며, 거기에서 수준을 더 높여 한미연합군의 공격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불시에 공격하는 새로운 전법을 파생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제공격은 조선인민군도 가졌고 한미연합군도 가진 평범한 전법이지만, 불시공격은 조선인민군만 가졌고 한미연합군은 갖지 못한 독창적인 전법이다.
2) 적이 예상하지 못한 전법으로 공격한다
김정은 총비서의 비대칭전략에서 파생된 전법들은 다음과 같다.
- 정규전을 예상하고 있는 적을 비정규전으로 공격하는 전법
- 전방을 방어하는 적을 후방에서 공격하는 전법
- 하늘을 쳐다보는 적을 땅속에서, 또는 바닷속에서 공격하는 전법
유사시 위와 같은 전법을 실행할 전투단위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시기 김정일 총비서가 조직한 제11군단(폭풍군단)을 더 확대, 개편하여 2017년 1월 1일 특수작전군을 창설하였다. 특수작전군은 육군, 해군, 공군, 전략군에 이어 제5군종으로 창설되었다.
미 제국 육군성이 2020년 7월 24일 「북조선의 전술(North Korean Tactic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총병력은 200,000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5개 특수작전여단에 배속된 병력 120,000명과 4개 침투저격여단에 배속된 병력 80,000명이다. 이들은 ‘일당백’ 구호를 외치며 고강도 훈련을 받았고, 신형 전투 장비 사용에 능통한 최정예 전투원들이다. 유사시 이들은 수송기, 습격기, 헬기, 잠수정, 공기부양정, 고속단정, 동력활공기, 낙하산 같은 다종다양한 침투 수단을 사용하거나, 남진갱도를 통해 한미연합군 후방 깊숙이 침투해 전방을 방어하는 한미연합군을 후방에서 공격하고, 땅속에서 또는 바닷속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한미연합군을 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들은 지상, 지하, 해상, 수중, 공중, 산악으로 입체적인 침투전을 벌여 매복, 습격, 파괴, 교란, 포위, 생포, 유인 같은 전투 행동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한미연합군이 미처 대항할 겨를도 없이 괴멸당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3) 적이 방어할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한다
비대칭무기가 있어야 비대칭전략을 수행할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의 비대칭전략에 따라 조선의 군수공업 부문에서는 유사시 한미연합군이 전혀 방어할 수 없거나, 방어하기 위해 상당한 전투력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각종 비대칭 무기들을 속속 개발하여 실전 배치했다. 지금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이 그처럼 다종다양하고, 그처럼 강력한 비대칭무기들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속속 개발하여 실전 배치한 것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북한의 국방과학원은 2022년 1월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조선이 개발한 비대칭무기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극초음속 미사일(supersonic missile)이다. 조선이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명칭은 화성-12형이다.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은 6축12륜 발사대차에 1발씩 탑재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사일총국은 2021년 9월 28일, 2022년 1월 5일과 1월 11일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을 각각 시험발사했고, 2021년 10월 11일 ‘국방발전전람회’에 그 미사일을 전시했고, 2022년 4월 25일 열병식에서 그 미사일을 공개했다. 그 미사일은 활공탄두부가 원뿔형으로 생긴 화성-12가형과 활공탄두부가 긴 삼각형으로 생긴 화성-12나형으로 구분된다.
2023년 1월 5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최종 심사된 극초음속 미사일 1단계 편제 배치 방안”이 2022년 12월 말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 제기되었고, “당 결정서가 해당 부문에 포치됐다”라고 한다. 이것은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 1단계 실전배치가 2023년 상반기에 완료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사일총국은 2024년 1월 15일 화성-12가형 극초음속 미사일을 또다시 시험발사했다. 2024년 1월 23일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1월 15일 시험발사에서 화성-12가형 활공탄두부의 최고 비행속도는 마하 14(초속 4.80km)에 이르렀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날아가는 바람에 한미연합군 감시레이더는 그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하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보면,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은 한미연합군이 방어할 수 없는 비대칭무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 제국은 2023년 8월 19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두 번째 시험발사했으나 또다시 실패했고, 프랑스는 2023년 6월 26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첫 번째 시험발사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조선은 미 제국과 프랑스가 아직 만들지 못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완성해 실전 배치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선의 미사일 제작기술이 얼마나 고도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로씨야와 중국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 로씨야군이 보유한 찌르콘(Zircon) 극초음속 미사일 활공탄두부의 최고 비행 속도는 마하 9(초속 3.08km)이고, 킨잘(Kinzhal) 극초음속 미사일 활공탄두부의 최고 비행 속도는 마하 10(초속 3.43km)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이 보유한 둥펑(東風)-17 극초음속 미사일 활공탄두부의 최고 비행 속도도 마하 10이다. 작전성능지표를 비교해보면, 로씨야나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들은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의 비행 속도(마하 14)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미사일 제작기술이 얼마나 고도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의 비대칭전략에서 사용되는 또 다른 무기는 김정은 총비서가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적들을 압승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의 실체로 인정되는 핵무기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각종 핵무기 중에서도 화산-31 전술핵탄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비대칭무기가 화성-11형 변칙궤도비행 전술핵미사일이다. 화성-11형 변칙궤도비행 전술핵미사일은 화성-11가형, 화성-11나형, 화성-11다형으로 각각 구분된다.
화성-11형 변칙궤도비행 전술핵미사일도 화성-12형 극초음속 미사일처럼 한미연합군이 방어할 수 없는 비대칭무기다. 한미연합군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된 함대공 미사일의 최저 요격고도는 70km이고, 경상북도 성주군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최저 요격고도는 40km다. 한미연합군이 서울 외곽과 주요 군사 기지들에 배치한 페이트리엇(Patriot) 미사일방어체계의 최저 요격고도를 보면, PAC-2는 24km이고, PAC-3은 40km다. 그러므로 한미연합군 미사일방어망에는 고도 25~39km의 공간이 뻥 뚫렸는데, 화성-11형 변칙궤도비행 전술핵미사일은 바로 그 뚫린 공간(고도 30km 안팎)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날아 들어간 뒤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상하기 힘들다.
4. 집초전략
집초(集焦)라는 말은 조선에서 쓰는 물리학 용어인데, 초점으로 에너지를 모은다는 뜻이다. 물리 실험에서 에너지를 집초시키는 것처럼, 적의 약점이나 적이 방어하기 불리한 곳에 공격력을 집초시키는 것이 김정은 총비서의 집초전략이다.
김정은 총비서의 집초전략이 실행될 대상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대상은 사이버 공간(cyberspace)이다. 조선인민군의 사이버 공격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자. 2022년 5월 10일 미 제국 국가정보국 국장 에이브릴 헤인즈(Avril D. Haines)는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조선은 어느 때라도 사이버 공격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고, 미 제국의 기간시설 전산망과 기업체 전산망을 일시적으로, 제한적으로 교란할 능력도 가졌다고 서술했다.
2024년 1월 24일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국정원 산하 국가사이버안보협력센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의 공공기관들이 사이버 공격을 하루 평균 162만 번씩 받았는데, 그중에서 80%를 차지하는 하루 평균 129만여 건은 조선의 사이버 공격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발표에 의하면, 조선의 사이버 전투원들은 한국 공공기관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하루 평균 129만 번씩 계속한 것이다.
2023년 4월 14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조선에서 4월 15일 ‘태양절’을 맞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본부 산하 기술연구소 연구사 10여 명이 ‘존함시계 표창’을 받았고, 다른 연구사 30여 명은 ‘종합식료선물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사이버 전투원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들은 “외국에 내보내 키운 수재들로서 전문분야에 고도로 능통해 당의 신임과 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이버 전투원들인데, 2022년 한 해 동안 “하루에 18시간씩 눈을 붙일 새 없이 연구사업에 몰두”하면서 ”외부의 적들을 교란하는 데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정보취득기술과 연관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활용한 외화 자금확보 전투에서 계획의 1.6배를 넘쳐 수행해 당에 충성의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2023년 9월 6일 국군방첩사령부가 서울에서 주최한 제18회 국방보안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출연한 임종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조선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유사시 가장 먼저 할 일은 한국 정부의 데이터센터(data center),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등에 사이버 공격을 가해 국가통신망 전체를 마비시키고 국가기반시설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사이버 공격 가운데서 한국군에 최악의 피해를 입힌 사례는 2016년 8월에 시작되어 9월까지 계속된 사이버 공격이다. 2017년 10월 10일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2016년 9월 당시 조선의 사이버 전투원들은 한국군 국방통합데이터센터(DIDC) 내부망에 침투해 A4용지로 약 1,500만 페이지에 이르는 235기가바이트(GB) 분량의 군사기밀정보를 몽땅 가져갔다고 한다. 그들은 국방부장관의 컴퓨터에도 침투했고, 외교부 전산망과 통일부 전산망에도 침투했다. 그들이 빼낸 것은 2급 군사기밀 141건, 3급 군사기밀 84건, 대외비 군사기밀 103건, 군사훈련 기밀 1,470건 등이다. 그중에는 참수작전계획이 포함된 작전계획 5015에 관한 문서들, 작전계획 3100에 관한 문서들, 한국군 작전, 군수, 군사훈련에 관한 계획서들, 한국군 특수전사령부 문서들,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제출한 보고서, 한국 육군참모총장의 업무보고서, 한미연합군 주요 지휘관들의 업무보고서들, 한국군 야전예규, K2 작전개념도, 조선인민군의 공격유형별 대응계획에 관한 문서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한국군의 사이버 보안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2년 11월 29일 한국 국방부가 서울에서 주최한 ‘2022 화이트햇 콘퍼런스(Whitehat Conference)’에 기조연설자로 출연한 박동휘 육군 3사관학교 교수는 한국은 조선의 사이버 공격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군이 사이버 공격으로 최악의 피해를 입은 때로부터 6년이 지났으나, 한국군은 사이버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과 한국군의 약점이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많이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의 집초전략은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의 약점이 가장 많이 노출된 사이버 공간, 그리고 한국군이 방어하기 불리한 사이버 공간을 집중공격하는 군사전략이다. 유사시 조선의 사이버 전투원들이 김정은 총비서의 집초전략을 실행하면,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과 한국군의 ‘신경망’은 마비 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2024년 2월 하순 현재 조선인민군은 2023년 12월 1일에 시작된 ‘2023~2024년 제1기 전투정치훈련’을 계속 진행하는 중이다. 올해도 그들은 김정은 총비서의 군정배합전략, 비대칭전략, 집초전략을 연마하는 군사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선제타격이 포함된 전쟁을 거론할 때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2조와 대통령의 '무력사용 권한(AUMF)' 두 개를 법률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미국의 조치를 합법화하려는 그런 조치라 할 수 있다.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2조의 원문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로 되어 있다. 이 조문에는 선제타격이라는 말이 없지만 유권해석을 할 때 가능하다는 논리다. 전형적인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이지만 미국 관리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미 대통령의 '무력사용 권한(AUMF)'에 대한 것으로 이 권한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적용되게 되어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도 이 권한을 발동하기 위한 사전 조치이다. AUMF는 2001년 9.11과 같은 테러를 계획, 주도, 지원, 실행한 개인이나 그룹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군사력을 사용할 권한을 미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전 세계에서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고 지속하기 위한 구실로 활용되어 2016년까지 14개국이나 공해상에서 37건에 개입하는데 AUMF가 적용되었다(Matthew Weed (February 16, 2018).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PDF).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trieved June 19, 2019).
AUMF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쟁 때 처음 활용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군 실세인 카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하면서 이란과 전쟁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것과 같은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AUMF가 미 대통령이 해외에서 군사력을 사용할 때 그 근거로 이용되고 있어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법안이 미 의회에 제출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한국군 평시작전권 가운데 6개 핵심 부분은 연합사령관이 행사
미국 대통령의 대북 선제 타격권과 관련해서 한국 대통령은 그런 권한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7월 초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 우리 군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승겸 신임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부터 보직 신고를 받으면서 확고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구축한 가운데 북한 도발 시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연합뉴스 2022년 7월6일).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나 취임을 전후해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도발 시 원점과 지휘부 타격 등의 발언을 하다가 최근에는 그 강도와 수위가 '신속 단호 응징'으로 낮아졌다. 윤 대통령의 대북 군 관련 발언 수위조절은 미국 정부가 의회를 통해 완곡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고, 현행 한국군의 작전지휘권과 관련해 불가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의회 산하기관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2022년 3월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 선출' 제목 보고서에서 윤 대통령 당선인이 대북 문제 등에서 미국과 더욱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한편 선제타격 등에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보고서는 “윤 당선인은 한미동맹을 통해 선제타격과 미사일방어 강화 등 한국의 국방과 억지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며 “미국은 과거 남북 군사 충돌이 있으면 종종 한국에 군사 대응은 자제하라고 압력을 가했는데 이는 윤 당선인 (이런) 공약과 상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연합뉴스 2022년 3월18일).
한국군은 현재의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북에 대해 자체 판단으로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할 수 없고 한미연합사령관인 미군을 통해 가능한 구조라는 점이다. 한국군은 세계 6위의 군사력이지만 어떤 면에서 종이호랑이라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고 국가 안보주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실을 군이나 정치권, 언론이 정확히 밝히기보다 한국군이 마치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는 착각을 하기 쉬운 정보를 주로 유통시키고 있는데 윤 대통령의 선제타격과 같은 초강경 발언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군이 대북 군사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근거인 평시 및 전시 작전통제권의 경우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갖고 있고, 대북 군사행동의 규모 등을 제약하는 정전협정은 유엔사가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작전통제권의 경우 1994년 12월1일 한미 두 나라 정부가 합의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군사위원회 및 한미연합군사령부 관련 약정의 개정에 관한 교환각서>에 따라 한국이 일부 범위의 정전 시기 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했다.
그러나 한국은 평시 작전통제권을 100% 환수한 것이 아니고 '연합 위기관리' 등 6개 영역은 '연합위임권한'(Combined Delegated Authority, CODA)이라는 이름으로 환수 범위에서 제외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미국에게서 평시작전권을 반환받으면서 그 가운데 6개 핵심부분은 계속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령관은 현행 정전체제에서 한국군의 평시작전권의 핵심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그 규정을 보면 △전쟁억제와 방어를 위한 위기관리 △조기경보를 위한 정보관리 △전시 작전계획 수립 △연합 교리 발전 △연합합동훈련과 연습 계획·실시 등이다. 현재와 같은 정전 상황에서 국군 주요전투부대의 연합 위기관리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다(브레이크뉴스 2020년 8월8일).
윤 대통령이 '북한 도발 시, 원점 타격'하라고 국군에 지시한다 해도, 이는 한미연합사령관인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한 범위에 속하는 문제다. 한국 대통령이 헌법상의 군 통수권을 온전하게 행사하려면 정전시기 및 전시 작전 통제권을 모두 환수해야 가능하게 되어 있다.
만에 하나 한미연합사령관인 유엔사령관이 윤 대통령이 언급하는 식의 대북 군사행동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 가능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정치라 하겠다.
윤 대통령이 북에 대한 날선 발언을 한 것에 대해 CNN은 “전직 검사이자 정치에 입문한 윤 대통령이 대화와 평화적 화해를 추진했던 전임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대북 강경 입장과 남한의 군사력 강화 의지를 일관되게 강조해왔다”고 설명했다(뉴데일리 2022년 5월23일). 이 기사에는 한미군사관계에 어두운 한국 대통령을 비아냥거리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대북 초강경 발언은 국민의 안보 불안을 달래준다는 심리적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익히 파악하고 있는 쪽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국군이 그런 능력이 있느냐?'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윤 대통령 집권이후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서는 한미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군이 세계 6위라는데 군사주권조차 확립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촌 상식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선언'은 미 헌법과 일반법의 하위 개념 불과
윤 대통령 등이 워싱턴 선언,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모습은 미국의 확산억제 정책이 나오는 미국의 국내법을 살피면 가슴 답답해진다. 미국 법체계에서 '선언'은 미 헌법이나 일반법령 등에 비해 하위개념이라는 점을 살필 때 그 실효성은 대단히 제한적이라 하겠다.
이런 점을 살피면 한국이 아무리 한미 정상의 확산억제에 대한 설명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해도 미국이 향후 발생할지 모를 한반도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국 정부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핵을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헌법과 일반법, 대통령령 등으로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 국익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우선하도록 해놓았다.
최근 한미 정상이 합의한 확산억제 조치가 한반도 핵전쟁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이 일부 인정될 수 있지만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한 점 오차 없이 일치할지도 의문이다. 미국자국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할 경우 한국 정부가 현재 희망하는 것과 같은 대응을 해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 미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신냉전시대가 가속화되는 시점에 취하고 있는 대북 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노림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실전의 경우에 입각해 부지런히 여러 가지를 챙기는 모습은 아쉬운 점이 크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전쟁이 나면 한반도 전역이 그 피해를 피해가기 힘들다. 자칫 한민족 공멸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윤 정부는 과거 박정희 이래 취해온 남북교류협력 노력이 전쟁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을 관리하는 측면이 강했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윤 대통령 집권이후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면서 전쟁을 방지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부각되지 않아 아쉽다. 대북 협상은 북한이 협상장에 나올 수 있는 동기 부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조하는 것은, 이 조약이 정전협정이 맺어진 직후 만들어진 것으로 평화협정 전환에 역행하는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의 북진통일 논리가 부활하는 느낌도 준다. 윤 대통령 정부가 올인하는 튼튼한 안보 속의 평화 정책의 그늘이 너무 짙은 것 같아 걱정된다.
미국 우방국 정부 도감청 불구 윤석열 ‘문제 없다’ 입장
미국은 세계 평화보다 자국 안보를 최우선하는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은 물론 자국이익에 필요할 경우 베트남전 확전, 이라크 침공에서 보듯 가짜 뉴스를 동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 우방국 권력기관 도감청 사실까지 밝혀진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무오류, 절대 선'이라는 식의 초강력 신뢰와 안보의존으로 올인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법으로 지구촌을 상대로 유무형의 제재, 통제를 강행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의 경우 9·11 테러 이후 시행된 도청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한시법으로, 미국 정부는 외국에서 영장 없이도 외국인의 통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법은 2008년 제정된 지금까지 논란속에 시행되고 있으며 미 정부는 계속 추진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매일 아침 30분씩 백악관에서 '대통령 일일 브리핑(daily briefing)'이라는 정보를 보고받는데 이 정보보고의 60% 이상은 미국 정보기관이 해외 인사들의 전화, 이메일 등 전자신호를 도청해 수집한 정보다. 미국 특수부대는 이들 정보를 활용해 알카에 지도자 암살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CBS노컷뉴스 2023년 4월17일).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우방국을 동원해 중국에 대해 경제, 안보 등에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땅을 강탈했던 미국의 반인륜적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한국 등의 우방국 기업을 상대로 중국 투자, 교역 등에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는 막가파식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미국은 우방국을 상대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식의 무뢰배 짓을 일삼고 있고 그것이 미국 법체계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한반도 안보문제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그에 종속되는 형태의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 군사문제는 남북한과 미국 등 주변국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고차 방정식과 같은 대처가 필요하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한국도 주권국가로서 그렇게 대처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은 체질적으로 미국익 추구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이 미국식 법치라고 주장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국도 그에 맞는 대응방식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의 국가이익에 맞춰져 있는 한반도 정책에 대해 한국 정부가 올인 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식은 곤란하다. 그것은 한미 근현대사를 통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미국이 주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대북 정책을 강행한다면 한국은 과거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추진했던 남북교류협력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국과 다양한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하면서 궁극적으로 남북한 평화통일이라는 목표에 접근해 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남북한 평화통일은 한반도, 동북아에 기여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방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인도주의적·재정적 차원으로 제한된 데 대해 "개인적으로 자유세계 일원으로서 전면 지원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지만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여 러시아 측의 반발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 때의 고위인사가 모 일간지 기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수출 자제 방침을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논거들이 타당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게끔 한 것은 누가 원인을 제공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러시아의 반응은 한국의 그간의 행동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은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두 차례 참석하여 반러시아 전선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으며 그러한 입장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해 비살상무기를 지원하였고 대통령이 키예프를 방문하였다. 또한 러시아에 대해 금융 거래를 중지하고 수출입 제한 조치를 하였으며 항공편 운항을 금지시켰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작년 3월 미국에 155mm 포탄 50만 발을 대여하여 무색해졌다.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분노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무기 수출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가가 취하는 행동의 인과관계를 간과한 주장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우리가 그간 러시아에 대해 취한 행동은 러시아가 반응할 만한 그런 것이었다. 러시아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행동을 취할 때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지적하거나 제기하였다.
둘째, 그는 한국이 '무기 지원 자제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만 해도 러시아가 전전긍긍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쟁 수행에 의미 있는 무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형편인가 묻고 싶다.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전쟁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면 우리가 러시아에 대해 갖는 레버리지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셋째, '러시아의 힘이 약화되면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이 공세적 팽창 정책으로 역내 안정을 교란할 여건이 불리해진다'고 하였는데 러시아-중국 관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생각이다. 러시아와 중국 간 관계에는 역사적으로 갈등, 그리고 이해관계의 상충이 상존한다. 러시아의 힘이 약화되면 중국이 공세적 팽창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생각인데 현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넷째, '러시아가 약화되면 중국의 행동이 위축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증진될 것이므로 지정학적으로는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있어 그리고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변수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가 러-북 접근을 초래하여 북한이 이득을 보고 있다.
다섯째, '국제적 대의와 핵심 우방과의 의리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6.25 전쟁 때 한국을 구해 준 나토 회원국들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국가 간 관계에서 '의리'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리 사회에는 성리학적 의식구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여 국제정치에 대해서도 '의리'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제사회에는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국가 간의 관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지난해 말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에는 'It’s time to end up magical thinking about Russia’s defeat'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과 EU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역전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의 우크라이나 장기 지원계획에 영토 회복 목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의 말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종식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대세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얻는 것이 없이 잃는 것만 있을 수 있다.
▲ 지난해 6월 13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현장을 찾은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제공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한 패널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대해 영부인이 아닌 ‘김건희 특검’이라고 호칭한 것을 놓고 SBS에 행정지도를 의결하자 한국일보가 “앞으로 모든 언론은 ‘김건희 여사님 특검’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인가”라며 “납득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선방심의위는 지난 22일 7차 회의를 열고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2024년 1월15일)엔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해당 방송엔 야당 측 출연자(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특검에 대해 영부인이 아닌 ‘김건희 특검’이라고 호칭하고 윤석열 정부엔 폭정이라고 언급하는 등 윤 정부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취지의 민원이 제기됐다. 회의엔 임정열(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추천), 박애성(대한변호사협회 추천) 위원이 불참해 전체 위원 9명 중 7명이 참석했다.
‘여사’ 안 붙였다고 문제제기… “어떻게 공정성 저해했다는 건지”
▲ 26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26일 사설 <‘김건희 특검’에 ‘여사’ 안 붙였다고 불공정 보도라니>을 내고 “김 여사를 직접 지칭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고유명사처럼 사용돼 온 ‘김건희 특검법’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다.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어떻게 저해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 22일 선방심의위 회의에서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김건희’라고 언급된 것을 놓고 “지상파는 보편재다. 불특정 다수가 보니 국민교육, 정서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 순화된 용어를 진행자가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손형기 위원(TV조선 추천)은 “여사를 안 붙이고 이러면 진행자가 사려 깊게 잡아줘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김 여사를 아무런 호칭 없이 ‘김건희’라고 직접 언급했다면 폄훼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 의원이 언급한 것은 그간 언론에서 통용돼 온 ‘김건희 특검’”이라며 “본회의에 부의됐던 법안의 정식 명칭(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어디에도 ‘여사’는 없다. 앞으로 모든 언론은 ‘김건희 여사님 특검’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방위 설치·운영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한다. 방통심의위를 여권 위원이 장악했으니 선방위 구성도 한쪽으로 기우는 게 당연하다”며 “이번 의결 또한 뉴스타파 녹취록 인용보도 및 ‘바이든-날리면’ 보도 과징금, 윤석열 대통령 ‘짜깁기 영상’ 접속 차단 등 최근 일련의 방심위 조치와 맥을 같이한다. ‘정치 심의’ 시비를 벗으려면 선거방송에 공정성 잣대를 적용하기 앞서 본인들에게 먼저 들이대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풍자 영상 접속차단, 한겨레 “가상영상인 거 삼척동자도 안다”
▲틱톡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풍자 콘텐츠.
한국일보뿐 아니라 한겨레도 방통심의위를 비판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3일 긴급심의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게시물 22건에 대해 출석위원 만장일치로 시정요구(접속차단)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등을 통해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라며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확산됐으나 실제로는 ‘짜깁기 영상’이었다.
한겨레는 26일 사설 <대통령 풍자 영상 접속차단하는 게 자유 국가인가>을 내고 “이 영상은 누가 봐도 ‘가상의 영상’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사실이 아닌 풍자로 받아들일 내용”이라며 “ 여기에 방통심의위가 접속차단이라는 초강수로 대응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정부 비판을 억누르는 검열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접속이 차단된 영상엔 제목에 ‘가상으로 꾸며본’이라고 적혀 있다.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이 영상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실제로 하지 않았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며 “그런데도 방심위는 ‘현저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영상’이라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틱톡 등에 접속차단을 요청하기로 했다. 어떤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는 말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회 혼란’ ‘허위 정보 확산’ 등으로 침소봉대해 제재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민주 정부의 대응 방식이 아니다. 권력자를 풍자하는 이런 정도의 표현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는 숨 쉴 공간을 잃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행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중략) 최근엔 대통령 경호를 빌미로 말 그대로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민의 자유보다 권력자의 심기를 우선하는 독재체제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라고 했다.
파열음 나는 민주당 공천 과정… ‘비명횡사’ 불공정 비판
▲ 24일자 동아일보 5면 사진기사.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불공정’ 의혹이 제기된 여론조사 업체를 총선 후보 경선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가 일제히 민주당의 공천 방식을 비판하는 사설을 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의 공천을 함께 비판했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민주당만을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26일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제기한 ‘불공정 여론조사’ 의혹> 사설에서 홍익표 원내대표의 요청을 놓고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용역을 수행한 이 업체에 현역 의원을 배제한 경쟁력 조사를 맡기는 바람에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게 이유”라며 “이 업체는 원래 경쟁 입찰 때 탈락했다가 하루 만에 친명계인 수석 사무부총장이 개입해 추가 선정됐다고 한다. 업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 선관위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이제라도 경선 과정과 근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며 “당 지도부가 여론조사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민주당의 공천 과정은 정상이 아니다.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에 찬성한 의원들을 쳐내기 위해 현역 의원 평가가 악의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고 했다.
▲ 26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시중의 유행어가 된 ‘비명횡사 친명횡재’>을 내고 “당내 일각에선 친명 핵심 인사가 해당 업체를 밀어넣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으나 진상은 오리무중”이라며 “결국 해당 업체는 빠지게 됐지만 이미 해당 업체가 현역 의원평가 등에 참여했기 때문에 엎질러진 물이다. 이래서야 비명계 의원들이 나중에 공천에 탈락할 경우 순순히 결과를 납득할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난 25일 정청래·서영교·이개호·김영진·권칠승 등 이 대표 측근들을 단수 공천하는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민주당의 7차 공천 발표에선 단수 공천을 받은 현역 의원 17명 중 15명이 친명계로 분류됐다. 반면에 경선에 붙여진 4명의 현역 의원들은 전부 비명계였는데, 죄다 친명계 원외 인사들과 양자대결을 벌여야 할 처지”라며 “이 대표는 요즘 시중에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말이 왜 유행어가 됐는지 그 배경을 잘 되새겨보기 바란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함께 비판했다. 사설 <‘운동권 자객’ ‘친명 무사’… 비전-정책 없는 싸움꾼 선거>에서 “정치권은 여전히 시야가 좁다. 여당은 586 잡을 공격수를 찾고, 야당 역시 ‘잘 싸우는 야당’을 입에 달고 산다”며 “이렇다 보니 이재명 테러 때 거론한 ‘증오의 정치인에게 불이익 검토’ 약속도 흐지부지돼 버렸다”고 했다.
종북논란 부추기는 조선일보, ‘갤럭시링’ 1면 실은 중앙일보
▲ 26일자 조선일보 1면.
▲ 26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면에 ‘경기동부 계열’이 약진을 예고하고 있고, 민주당까지 접수하려는 구상이 나온다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는 1면에 삼성전자의 ‘갤럭시링’ 공개 기사를 실었다. 대다수 신문은 해당 소식을 10면 이후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1면 <“경기동부연합, 이재명을 숙주 삼아 국회 진출 시도”> 기사에서 “22대 총선을 거치며 야권의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 세력 지형이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며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에서 주류 ‘86 운동권’ 출신들이 퇴조하고,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멸족(滅族)되다시피 한 경기동부 계열은 민주당과 진보당, 시민 단체의 야권 연대를 통해 약진을 예고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김건희 ‘여사’ 안 붙여 행정지도…SBS 노조 “대통령 심기 경호 편파심의”
민주당 “말끝마다 ‘김건희 여사님 특별법’이라고 불러야 하느냐”
신장식 하차에도 MBC ‘뉴스하이킥’ 7번째 법정제재
운동권 청산론과 함께 종북 논란을 통한 여론 몰이를 꾀하는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야권에서는 경기동부가 진보당을 통한 의회 재진출을 넘어 민주당까지 접수하려는 구상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기동부는 과거 민노당의 비주류로 참여해 결국 주류 세력이 됐고, 그 흐름은 통진당과 진보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삼성전자 ‘갤럭시링’ 소식을 실었다. 국민일보(11면), 서울신문(18면), 한국일보(16면) 등과 지면 편집이 차이 난다. 중앙일보는 “삼성전자가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에서 ‘갤럭시 링’ 실물을 최초로 공개한다”며 “연내 출시 예정인 갤럭시 링은 수면 중에도 편하게 착용할 수 있으며 반지 안쪽 면으로 건강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다”고 했다.
2020년 2월 19일, 오리건 주립대학교의 연구실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서 고무 타이어에서 나온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현미경으로 관찰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환경의 모든 곳에서 쌀알보다 더 작고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인 '미세 플라스틱'을 발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유엔환경총회(UNEP)가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 협상위원회(INC)와 함께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규칙을 정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초안'을 2023년 9월에 발표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전 세계적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친 규칙을 만드는 협약이다.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가 시작됐고, 5차례에 걸친 정부간 협상위원회를 통해 2024년 말 체결될 예정이다. (마지막 제5차 회의는 한국에서 개최된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열린 2차 회의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방법을 두고 '생산 자체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입장과 '재활용을 포함한 폐기물 처리에 중점을 두자'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보다는 화학적 재활용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사후 관리에 초점을 둔 해결책을 강조했다고 한다.
플라스틱 위기의 심각성과 플라스틱 재활용 입장의 문제점을 다룬 트루스아웃의 기사를 소개한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플라스틱처럼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플라스틱 위기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여러 시급한 문제들이 그렇듯, 플라스틱 위기에 대한 관심은 바람처럼 왔다가 스쳐 지나갈 뿐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세플라스틱, 나노플라스틱과 가소제가 우리 음식과 식수를 통해 우리 몸속으로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연구한 최근의 세 보고서에 대한 관심도 그렇다.
컨슈머 리포트(CR)의 거침없는 조사관들이 작성한 첫 보고서는 다양한 포장에 담긴 여러 식품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고무나 플라스틱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 어디에나 쓸 수 있게 만드는 화학 첨가제인 가소제는 우리 음식 공급망 전반에 퍼져 있었다. 애니의 유기농 치즈 라비올리부터 웬디스의 바삭한 치킨 너겟, 제너럴밀스의 치리오스 시리얼, 100% 과일 주스에 담긴 델몬테 슬라이스 복숭아, 콩을 넣은 호멜 칠리, 바다의 닭고기 연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 제품 모두 1회 제공량 당 총 프탈레이트(가소제의 일종) 부문에서 각 식품군의 1위를 차지했다.
CR이 조사한 상품은 모두 잘 알려지고 널리 소비되는 제품인데, 놀랍게도 그중 99%에 많은 양의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가소제의 일종)이 있었다. 수많은 식품을 통해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넉넉한 양의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도 함께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소제는 체내에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젠을 모방해 호르몬 장애를 일으키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다. CR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연구도 많이 이뤄진 가소제의 일종인 DEHP가 미국과 유럽의 규제 기준보다 훨씬 적어도 높은 인슐린 저항성, 고혈압, 생식 기능 문제, 조기 폐경 등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션 컨서번시와 토론토 대학교의 두 번째 연구에서는 해산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두부와 세 가지 식물성 육류 대체품 등 조사한 16가지 단백질 중 88%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이런 결과와 관련 연구 결과를 종합한 이 연구는 미국인이 매년 평균 11,5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추정했다. 미국인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이 수치는 연간 380만 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 저녁 식사 메뉴가 소고기든 무엇이든, 거기에는 산더미 같은 미세플라스틱이 함께 나온다.
마지막으로 콜롬비아 대학교의 세 번째 연구에서는 ‘자극 라만 산란 현미경’이라는 기술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노플라스틱이 생수에도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물 1리터당 무려 11만에서 37만 개의 플라스틱 입자를 발견했고, 그중 90%가 나노플라스틱이었다.
나노플라스틱은 1마이크로미터에서 최대 1밀리미터에 이른다. 이에 비해 미세플라스틱은 1마이크로미터에서 5밀리미터, 사람의 머리카락이 17에서 181마이크로미터이다. 다시 말해 나노플라스틱은 매우 매우 작다.
이렇게 작은 나노플라스틱의 침투력은 상상 이상이다. 2022년에 발표된 인간과 나노플라스틱 사이의 생체 인터페이스에 관한 논문에서는 석유화학산업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나노플라스틱의 침투력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를 강조한다. 동물 실험에 기반한 한 연구는 나노플라스틱이 장 장벽을 통과하고 혈관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또 다른 연구는 그렇게 침투한 나노플라스틱이 뇌에 축적된다는 것을 밝혔다.
또 다른 연구는 나노플라스틱이 수동수송을 통해 태반 장벽을 통과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노플라스틱이 혈액-공기 장벽을 통과해 호흡을 통해 퍼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혈액 순환계로 운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폐를 통해 혈류로 들어갈 수 있는 나노플라스틱을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우리가 말 그대로 나노플라스틱을 구름에 ‘업로드’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날씨: 흐림, 플라스틱 내릴 가능성 있음
2023년 11월 ‘환경과학과 기술 회보’에 발표된 한 논문은 중국 동부의 타이산 정상에 있는 구름의 액체 샘플에서 미세플라스틱 섬유를 발견했다고 했다. 이 연구는 구름 샘플에서 발견된 의류, 포장재 또는 타이어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섬유는 구름의 고도가 낮을수록 더 많았는데, 그것이 납, 산소, 수은과 같은 원소를 끌어당기는 일부 오래된 입자와 결합해 더 많은 구름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이 있는 구름이 기후 변화를 촉진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는,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한 연구팀이 2021년 ‘신생’ 허리케인 래리가 이 지역을 강타했을 때 비에 섞여 내린 미세플라스틱 양의 변화를 측정했다. 허리케인 래리는 대서양 상공에서 형성된 후 해류에 의해 생성된 소용돌이치는 플라스틱 쓰레기 덩어리인 ‘북대서양 협곡’을 통과하고 이 지역에 처음 상륙했다. 허리케인 래리 상륙 전, 도중, 후에 샘플을 수집한 결과,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수만 개에서 최대 11만3천 개까지 급증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궤적 모델’을 통해 입자를 추적함으로써 허리케인 래리가 바다에서 각종 미세플라스틱을 대기로 끌어왔고, 이를 뉴펀들랜드에 쏟아부었음을 확인했다.
부정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나
안타깝게도 대기 중으로 유입된 플라스틱은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올라디메지 아요 이와라예 교수의 동물성 플랑크톤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이와라예는 청어, 어린 연어, 볼락의 주요 먹이인 사이포카리스 챌린저리라는 작은 새우 모양의 생물이 5밀리미터 미만의 미세플라스틱 섬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심각한 것은 미세플라스틱이 심해에 빠르게 떨어지는 무거운 대변을 만들어 게, 불가사리, 벌레 또는 해삼과 같은 해저 해양 생물까지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연구자인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의 달리아 사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생명력 넘치는 강 중 하나인 나일강변의 어시장에서 널리 판매되는 민물 나일 틸라피아가 모두 미세플라스틱 입자에 오염됐음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11개국 3억 명의 생명줄로 주변 사람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나일강에서도 미국의 식품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시대의 표식이 있는 것이다. (더 슬픈 것은 플라스틱 오염과 마찬가지로 탄화수소의 산물인 기후변화와 수온 상승 등으로 나일강의 물고기 수가 크게 감소하는 있다는 점이다).
석유화학산업의 광범위한 영향은 지난 11월 케냐에서 유엔이 주관한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정부 간 협상 위원회 3차 회의에서도 느껴졌다. 글로벌 플라스틱 조약을 마련하기 위해 175개국이 5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환경운동가들은 플라스틱의 전 수명 주기를 관리하는 국제적인 규칙의 수립이 산유국에 의해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산유국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지 않기 위해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는 잘 알려진 전략이다. 2022년의 2차 회의를 앞두고 로이터 통신은 엑손모빌, 로열 더치 쉘, 다우를 대표하는 플라스틱 산업 그룹의 이중적인 전략을 폭로했다. 이들 기업은 공개적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협약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비공개적으로는 자금을 지원한 미국 화학위원회(ACC)와 같은 무역 단체를 움직여 조약 논의가 생산 제한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이들 기업이 ACC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기업’이라는 단체를 꾸린다는 이메일이 유출됐는데, 이 단체의 목표는 ‘회의 참가자들이 플라스틱 제조를 제한하는 협약을 거부하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고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플라스틱의 이점에 각국 정부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논의 방향을 바꾸고, 매달 모여 각국 정부에 정책 권고안을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로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열심히 로비했다. 국제환경법센터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은 최근 실패한 협상 회의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143명을 보냈다. 이는 이전 협상 때보다 35% 이상 증가한 수치다. 플라스틱을 장려하는 로비스트들이 이제 지구 모든 구석에 쌓이고 있는 석유화학 쓰레기만큼 많았다.
ACC는 미국 내 입법 활동에도 앞장서 세 차례에 걸쳐 발의된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플라스틱 규제 법안에 반했다. 2023년 10월 제프 머클리(민주당-오레건)과 제라드 허프먼(민주당-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이 법안을 다시 발의한 직후 ACC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우리 환경에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동의하면서도 법안이 플라스틱 오염을 없애는 데는 별 효과가 없고 미국 경제만 해친다면서 다른 방책을 제안했다.
ACC는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한 5가지 조치’로 포장재의 최소 30%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혁신적인 재활용 기술을 적절히 규제하면서, 전국적인 재활용 최소 요건과 표준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플라스틱산업협회도 법안을 폐기하고 대신 ‘재활용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와 최소요건 및 강한 최종 시장을 통해 재활용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를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단체가 진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자금을 책임지는 석유화학산업의 생산량을 줄이는 모든 조치이다. 이들 단체도 플라스틱의 수명 주기 관리에서 재활용으로 논의 초점을 옮기려고 노력했다. 특히 ACC는 소위 첨단 재활용 기술을 내세우며 플라스틱을 계속 생산하고 화학적으로 분해한 다음 다시 재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전망으로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입법자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클에 대한 약속 뒤에는 재활용의 처참한 실패를 지적하는 수많은 연구가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약 5~6%의 플라스틱만 재활용되고 있고,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플라스틱의 약 9%만 재활용됐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재활용을 ‘신화’나 ’거짓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플라스틱 위기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고려할 때, 가장 매력적인 대책일 수 있는 플라스틱 재활용이 최소한 가장 해로운 그린워싱(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이 친환경적이라고 이미지 세탁하는 행위)이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미국 공익연구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총인구가 1,200만 명이 넘는 5개 주와 도시에서 비닐봉지 사용 금지 조치로 인해 일회용 비닐봉지 소비량이 연간 약 60억 개 감소했다며, 이는 지구를 42바퀴 돌 수 있는 양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에 사용 금지령을 시행한 뉴저지주에서만 비닐봉지 사용량이 연간 55억 개 이상 줄여 향후 수십 년 동안 분해돼 자연으로 서서히 흩어질 플라스틱 양을 줄였다. 적어도 그만큼의 플라스틱은 구름으로 올라가거나 수생 생물의 먹이에 침투하지 않을 것이다. 석유화학업계에서 과대포장하는 플라스틱 재활용과는 달리 비닐봉지 사용 금지는 실제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는 500개 이상의 도시가 비닐봉지를 금지하고 있고, 12개의 주도 비닐봉지 금지 조례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크다. 반대자들은 비닐봉지 금지 조치가 위선적이고, 기업과 경제에 좋지 않으며, 플라스틱 사용을 선택할 소비자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발의 결과로 18개 주에서는 지방 정부가 자체적으로 비닐봉지 사용 금지 조치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위 ‘선점법’을 통과시켰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 중 하나는 플라스틱의 편재성 때문에 우리가 플라스틱 사용을 ‘선택’할 자유는 애초에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어 심지어 부모는 모유가 아기에게 해가 될지도 고민하는 지경이 됐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듯 2022년의 한 연구에서 살충제, 난연제와 더불어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모유 샘플의 75%에서 발견됐다. 이 연구의 수석 연구원은 CR 보고서에 인용된 프탈레이트와 같은 가소제가 수면, 배고픔, 성관계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역할을 인간 호르몬을 모방하거나 그 작용을 방해해 태아 미발달, 신경장애, 비만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자녀 계획이 있는 예비 부모 중에는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이미 많다. 탄화수소가 신생아의 내분비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들을 더 괴롭게 만든다.
더디게나마 탄화수소 에너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세계에서 화석연료 기업은 플라스틱 생산을 대안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지속적인 수익을 위해 그런 계획의 부산물을 먹거나 마시거나 숨 쉬지 않는 것을 원하는 우리에게는 대안책이 없다. 우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 뜬구름을 잡을 수조차 없다.
[창간 24주년 기획 - 2024 대한민국] 권력과 언론의 전쟁, 이길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착각
4.02.26 06:56ㅣ최종 업데이트 24.02.26 06:56
윤석열 정부 3년 차, 대한민국은 괜찮은가? 저출생, 경기침체 등 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적으로 높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24주년 기획으로 2024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펴보고 오늘의 위기를 진단하며 내일의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 수많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언론 정책의 실패를 꼽아야 한다. 하필이면 대통령 주변에 이동관 같은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비극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악의 언론 정책과 불통의 메시지 전략의 반면교사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의 여덟 가지 착각
몇 가지 결정적인 패착을 살펴보자. 첫째, KBS를 장악한다고 해서 여론이 달라질 거 없다. KBS 하나 발가벗고 뛴다고 해서 김건희 명품 가방 사건이 묻힐 리 없고 낮은 지지율을 커버칠 수도 없다.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대통령 권한이라 치더라도 결국 쫄려서 그렇다는 걸 모두가 안다. 일을 키워 놓고 뒤늦게 덮으려 하니 덮어질 리가 없다.둘째, 방송통신위원회를 자기 편으로 심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사장을 몇 명 갈아치울 수는 있겠지만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이 너무 크고 정작 얻는 건 별로 없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방송 안 보면 그만이고 볼거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방통위는 원래 치고받고 싸우는 곳인데 그게 싫다고 자기 편만 두 명 남겨놨다. 그런 방통위에서 하는 어떤 결정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겠나.
셋째, 기자회견을 피한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간단히 털고 갈 수 있는 질문이 점점 더 불어나 급기야 정권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KBS 신년 대담 같은 건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넘어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할 판인데, V1과 V2가 보시기에 흐뭇했던 것일까? KBS는 설날 아침에 재방송까지 했다. 그만큼 정무적 판단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후 KBS 1TV를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파우치 논란과 관련해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4.2.7 [KBS 방송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넷째, 바이든-날리면 논란 같은 건 애초에 이길 수 없을뿐더러 찍어 누르려 하면 할수록 오해와 불신이 커지기 마련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이런 논란은 질질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고 조언했을 텐데 윤석열(대통령)이 말을 안 듣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MBC 기자를 전용기에 안 태우겠다고 한 건 옹졸할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쪽팔려 할 일이었다.
다섯째, 언론사 압수수색을 아무리 해봐야 겁먹을 기자들이 아니다. 감옥에 처넣을 수도 없고(어차피 영장도 대부분 기각된다), 기사를 막을 수도 없다(정권이 꿀릴 때 하는 일이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법원이 특별히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대통령이 부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끌벅적하기 마련이고 여론의 비판을 뭉개고 가면서 성공한 정권은 없다.
여섯째, 방송통신심의위를 앞세워 뉴스타파를 징계하겠다고 한 건 코미디였다.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 운운했지만 아무런 징계도 못했다. 방송이야 허가 또는 승인 사업이지만 인터넷 신문을 보도 내용을 문제 삼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일곱째,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가짜뉴스' 때려잡기도 봉창 두드리기나 마찬가지다. 우리 편'이 아닌 언론 보도를 '가짜'로 매도하는 건 갈등을 부추겨서 국정 동력을 잠식하는 소모적인 편가르기다.
여덟째, 진짜 문제는 언론의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대결하려는 태도다. 굳이 언론을 적으로 만들고 국민들과 싸워서 얻을 게 뭐가 있나. 정권을 잡으면 그 어느 언론보다 강력한 스피커를 갖게 된다. 해명할 건 해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설득하면서 가면 된다. 그런데 윤석열은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지지 기반을 허물고 스스로 고립됐다.
윤석열의 언론관은 다음 한 마디로 설명된다. "답변하지 마십쇼, 좌팝니다." (대선 후보 시절 수행비서가 한 말이다.)
이명박은 이동관 때문에 망했다
▲ 지난해 12월 1일 국회 탄핵표결을 앞두고 자진사퇴를 밝힌 뒤 윤석열 대통령의 사표 수리로 방송통신위원장에서 물러나게 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 이정민
27년 검사 경력이 사회생활의 대부분인 윤석열 대통령은 원래 언론을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검사들은 주변에 받아 쓰는 기자들이 넘쳐난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게 일이고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쁜 놈 잡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고 언론과 부딪힐 일이 없거나 있어도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게 검사들이다.
하필이면 이동관(전 방통위원장)이 윤석열의 언론특보였던 건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가깝다. 이동관은 애초에 이명박 정부의 몰락에 책임이 큰 사람이다. 조중동에 종편(종합편성채널)을 안겨주고 MBC와 소송을 벌였으며, 방송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언론 보도에 시시콜콜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래서 성공했나? 이명박 정부는 이동관이 잘못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이동관이 잘해서 무너진 것이다. 광우병 촛불 집회부터 시작해서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 자원외교 등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 여론을 틀어쥐려 했고 그때마다 지지율이 급락했다. KBS와 MBC를 잡고 종편이 거들어주면 적당히 깔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여론에 귀를 닫고 폭주하는 정권의 끝은 비참했다.
그렇다고 탁현민(문재인 정부 전 비서관) 같은 사람을 갖다 쓰라는 말이 아니고, 문재인 정부 시절 김의겸(대변인)이나 고민정(대변인)이 잘 했다는 말도 아니다. 언론과 싸우는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원래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더 많은 비판을 받기 마련이지만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극복할 때 권력의 정당성을 지킬 수 있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지만 잘못을 인정해야 힘이 생긴다.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진실은 남는다.
대장동 커피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윤석열이 조우형(대장동 브로커)에게 커피를 타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커피가 아니다. 윤석열이 검사 시절 친분에 따라 수사를 축소하거나 중단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보도할 가치가 있고 윤석열에게는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애꿎은 뉴스타파를 아무리 털어봐야 윤석열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워낙 복잡한 사건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꿀린 게 없으면 왜 이렇게 배배 꼬고 봉창을 두들기나.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니고, 까놓고 말하고 털면 될 일이다.
윤석열에게는 퇴로가 없다
윤석열에게는 지금 퇴로가 없다. 한동훈(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내세워 총선에서 선방하면 남은 3년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만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식물 대통령은커녕 조기 퇴진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이준석이 윤석열의 문제를 "기술적 미숙이 아니라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게 맞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가 "(내년 총선에서 지면) 레임덕이 문제가 아니라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는 것만이 '선장 없는 나라'의 혼란과 참담함을 면하게 하는 길"이라고 경고한 것은 그냥 엄포가 아니다. 2016년 10월 태블릿 사건이 터지고 용도 폐기된 박근혜를 가장 앞장서서 공격한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윤석열이 지금처럼 언론을 멀리하고 김건희(대통령 배우자)를 감싸고 돈다면 이 정권의 남은 3년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고 싶으면 애초에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최승호(뉴스타파 PD)가 말한 것처럼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
윤석열은 KBS 신년 대담에서 "참모들이 써준 예상 질문과 답변을 보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그래서 나라 꼴이 이 모양이란 걸 알아야 한다. 국무회의할 때마다 혼자 떠든다고 해서 '59분 대통령'이란 별명도 붙었다. 최근 일련의 돌발 행동을 보면 뉴스를 제대로 보거나 읽기는 하는지 구중궁궐 용산에서 민심의 보고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직 정권의 반도 안 지난 시점이니 조언을 하자면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사람을 가까이 두고 기꺼이 비판에 직면해야 한다. 스스로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비로소 뭐라도 새로운 걸 시작해 볼 수 있다.
윤석열과 오바마의 차이
▲ 2013년 11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베티 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이민개혁법 통과 촉구 연설 중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한 청년을 돌아보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윤석열은 대학 졸업식에서 소리치는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냈지만 버락 오바마(전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청년을 막지 말라"고 경호원을 제지하고 대화에 끌어들였다. 청년은 "이민자 추방을 막아달라"고 외쳤고 오바마는 "그런 권한은 나에게 없다"면서도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화제를 넘겨받았다.
"만약에 제가 의회의 입법 절차 없이 모든 사안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미국은 법치 국가입니다. 제가 가려는 건 더 어려운 길입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는 거예요. 당신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 2013년 11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베티 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이민개혁법 통과 촉구 연설 중
사과의 3A는 동의하고(Agree) 사과하고(Apologize) 행동하는(Action) 것이다. 핵심은 비판을 대하는 태도가 실제로 행동의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쫄리면 안 된다. 두들겨 맞을 건 맞고 반박할 건 반박하고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 참모들에게 예상 질문을 다시 뽑아오라 하고 기자들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디올백 의혹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많다. 다시 강조하지만 "질문을 받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윤석열을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해도 좋을 것이다. '파우치' 하나 때문에 정권을 잃을 셈인가. 이 정도 조언을 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이 '입틀막' 정권은 이미 망해 있는 것이다.
전통시장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17개 시도 중 자영업자 소득 격차가 가장 큰 곳은 서울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와 하위 20% 소득 격차는 149배에 달했다.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서울에서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사람 중 서울에서 상위 20% 자영업자 소득은 평균 8,674만원으로, 하위 20%(58만원)와 148.8배 차이 났다. 반면 소득 격차가 가장 낮은 곳은 전남으로 69.5배였다.
서울 소득 상위 0.1%에 해당하는 1,539명 소득은 26억5,275만원에 달했다. 전국 기준 상위 0.1% 소득 평균 16억9,116만원보다 10억원 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서울에 이어 부산이 19억1,18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그외 대구 18억원, 광주 16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상위 0.1%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곳은 경북으로 11억289만원이었다.
양경숙 의원은 “자영업계도 빈익빈 부익부 등 소득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며 “정부는 자영업 부문의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개선책을 마련하고 자영업계 살리기를 위한 내수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봄 신세계이마트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얼추 마무리 되던 즈음이었다. 두 명의 노동자가 '해우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신세계이마트 사건 뉴스에서 권영국 변호사와 내 이름이 자주 등장해서 우리 사무실로 상담을 하러 온 것이라 한다. 그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이라고 했다. 삼성의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노동자다.
그런데 근로계약서 상으로는 삼성이 아니고 하청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원청 수리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업무지시·감독, 교육·평가 모두 원청으로부터 받는데 여하간 하청 소속이란다. 위장도급, 불법파견이었다. 삼성이 헐값에 노동자를 쓰다가 마음대로 자르고, 또 필요하면 뽑고, 그러다가 다치면 책임도 안지고 그리고 또 자르고 그렇게 하려고 위장도급 즉 가짜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리 업무를 하청업체에 위탁한다는 도급계약은 가짜고 실제로는 하청 수리기사들과 직접 사용·종속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상의 근로계약관계다.
이런 경우 법원은 '형식'보다 '실질'로 판단하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직원이라고 인정해준다. 그러니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기 위해, '진짜 사용자'가 누군지 찾기 위해 우리 사무소를 찾았다. 이후 법원에서 8년이나 걸렸으나 결론만 말하자면 진짜 사용자는 삼성이었음이 인정됐다. 그 길에 있었던 더 크고 많은 투쟁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삼성과의 싸움이 갖는 무게, 그리고 슬픈 에감
두어 달 법률검토 기간을 거친 후 2013년 여름부터 위 두 사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마중물이 되어 소송 원고 모집과 동시에 노조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회의원(장하나, 은수미, 심상정),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강력하게 지원하고 연대했다. 권 변호사와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자료들을 검토하여 소송 제기 전 최초 법률검토 작업으로서 위장도급 및 노동환경에 대한 법률의견서를 작성해 언론에 배포했다. 선전포고였다. 어두운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등대 신호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이라는 성 바깥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정규직화는 이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그들이 성 밖에서 일단 뭉쳐서 노동조합이 되었다. 이제 정규직화로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동으로 삼성에는 법적·실질적 최초의 민주 노조가 이식되는 셈이다. '트로이의 목마' 같은 형태라고 할까. 그래서 시민사회와 노동계, 하청 수리기사 당사자들은 동시에, 직감적으로 이 투쟁의 의미를 인지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현장에 국한되는 투쟁이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 그리고 삼성 무노조신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후진적 반노동경영에 강한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싸움임을 깨달았다. 한편 슬프고 무섭게도, 그래서 이 투쟁이 얼마나 어렵고 우리의 희생이 클지에 대해서도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범·염호석, 두 노동자의 죽음
2013년 10월경까지 전국에서 원고 수백 명이 빠르게 모였다. 그 이상의 숫자가 노동조합원이 되었다. 그렇게 조직화 운동은 들불처럼 이어져서 2014년까지 한 해 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의 무노조 7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삼성의 직원인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전에 '삼성일반노조'가 있었고 에버랜드 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삼성지회'도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삼성과 단체협약을 최초로 체결했다는 점에서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은 특히 의미가 있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 7월 14일 386명의 조합원이 모인 자리에서 노동조합 출범식을 가졌다. 그리고 열흘 후인 2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 각 협력업체에 교섭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원청과 협력업체는 이때까지는 모두 무시로 일관했다. 오히려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은 노조활동이 활발한 센터에 본사 인력을 투입하여 조합원들의 일감을 빼앗는 방식으로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려 하였다. '표적감사'라 하여 조합원들을 상대로 전면 감사를 실시하면서 무리하게 징계하기도 하였다. 이런 노조탄압 과정에서 2013년 10월의 마지막 날, 천안 최종범 조합원이 "그 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삼성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 해석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열사투쟁' 국면을 맞이하여 삼성의 노조탄압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결의하고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이어갔다. 조합원들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다. "노동조합 인정하라", "건당수수료체계 폐지하고 기본급을 지급하라"
노동조합 결성권은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고, 대기시간과 업무준비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성수기와 비수기에 임금격차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는 살인적인 건당수수료체계를 월급제로 바꿔달라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요구였다. 그런데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은 노동자들이 서초동 본관 앞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호소해도 들은 채 만 채였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듬해인 2014년 5월 17일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故) 염호석 조합원이었다. 그는 부모님에게 남긴 유서에서 자신의 시신을 안치한 후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는 날 그 때 정동진에 화장해달라고 했다.
경찰은 전투병력을 동원해서 신성한 장례식장까지 밀고 들어와 조합원들을 물리력으로 진압하고 시신을 강제로 탈취해가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또 한 번의 열사투쟁과 그에 따른 대기업 삼성의 위기를 국가공권력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투사가 목숨을 잃으면 '열사투쟁' 국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 안기부, 공안경찰들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시신 탈취'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태가 수십 년 만에, 21세기 세상에서 재현된 것이다. 이제는 군부독재정권이 아닌 삼성을 위해서.
경찰과 삼성, 두 골리앗에 맞선 다윗들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을 통해 국가와 대기업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사조사위')는 5년 뒤인 2019년 5월 14일 경찰 지휘부에 "고 염호석 씨 모친의 장례주재권 행사와 화장장 진입을 방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할 것", "현행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에 대한 시행령, 시행 규칙 내 경찰 정보활동의 범위를 경찰관직무집행법 상 직무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노조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는 염호석 조합원의 유서가 발견됐음에도, 경찰은 유족을 설득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을 발굴해 사측에 소개하고 합의 금액까지 제시하는 등 사측 대리인처럼 사건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같이 사건에 개입한 경찰 인력은 사건 관할 경찰서의 정보관들뿐만 아니라, 본청 및 지방청 소속 정보국 경찰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즉 정보경찰이 사측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유남영 진상조사위 위원장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의 행위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로 경찰은 사측이 바라는 대로 노조장을 가족장으로 변경하기 위해, 친모를 배제한 채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과 유족과의 만남을 4차례 주선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정보관들은 고인의 유족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인 이 모 씨(염호석 친부의 지인)를 경찰 정보망을 이용해 찾아내고, 해당 인사를 회사에 소개하고 합의 금액까지 제시했다. 두 번째로 경찰 정보관들은 유족과 노조의 동향을 파악한 뒤, 이를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들에게 상세히 공유하는 행위를 했다. 그리고 고인의 친모를 장례식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장례 마지막 날 화장장에선 고인의 유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경찰 정보관들은 장례식에 적극 개입해 노조가 장례식을 방해할 염려가 있다는 보고를 했다. 이는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빠르게 전파됐고, 이 정보를 접수한 경비 경찰은 경력을 동원해 가족장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했다.'
유 위원장은 경찰의 행위를 열거하면서 "저희가 보기에 경찰 정보관은 삼성전자서비스 대리인이었다"라는 이례적인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어 "이런 경찰의 개입행위는 경찰직무집행법 제2조(직무의 범위)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와 경찰법 제4조(권한남용의 금지)에서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정성·중립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가공권력과 삼성이 합심한 공격에 맞서 비정규직 하청 수리기사들은 싸웠다. 비정규직들이 다윗인 건 맞는데, 골리앗이 둘이었다.
첫 승리, 80년 무노조 '신화'의 종식
염호석 조합원 장례투쟁 과정에 쏟아진 경찰과 삼성의 탄압에도 조합원들은 굴하지 않고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총파업투쟁을 선언했다. 신규 조합원 가입률도 이 시기 급격히 상승하였다. 노동자의 권리는 국가와 기업이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모두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분수령이었다.
결국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2014년 6월 28일 삼성과 단체협상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협력업체들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와 맺은 것이지만 그 실질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원청과 교섭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로써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무노조 동토(凍土)인 삼성에서 처음으로 단체교섭을 체결한 노동조합이 되었다. 기본급 쟁취와 노조인정 및 열사들에 대한 삼성의 사과라는 성과를 얻으면서 말이다.
분명히 한계는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형식적인 교섭 상대방이 협력업체들을 대리하는 경총이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쟁점으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법원 판결 전에 원청 사용자로서 교섭에 공개적으로 나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국 모든 센터가 일괄적으로 단체협상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차후 센터별 단체협상의 기준이 되는 기본협약안을 작성하는데 그쳤다는 한계도 있다.
기본급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이는 것, 원청 사용자성의 공식적인 인정 등은 앞으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쟁취해야 할 과제였다. 이후 노조는 이마저 이루어 냈다. 말로 다 못할 5년의 전투 끝에 2018년 5월경 삼성에서 직접고용 선언을 이끌어 냈다. 결국에는 삼성의 성을 무너뜨리고 조직이 통째로 걸어 들어가서 80년 무노조 신화마저 종식시킨 것이다.
연이은 삼성 내 노동조합 설립
삼성이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을 매각한다고 발표한 이후 두 사업장 모두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조가 이렇게 신속히 설립된 것은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의 여파였다. 실제로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위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도왔다.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처지가 불안해지자 이제야 노조를 만든다'며 백안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비판이다. 노동조합은 본래 그래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가 열악한 자신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스스로 권리를 지키려고 결성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 스스로가 내 이익을 지켜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낄 때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조합 본연의 목적과 의의에 정확히 맞다. 노동권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의 필요성, 기본권 수호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노동조합이라는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렇게 볼 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노동조합은 주체적으로 해답을 찾아나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을 통하여 이제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 경영철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반노조 정책은 헌법 제33조에 명시된 노동3권을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 행복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여 결국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함으로써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이러한 점들을 기업과 노동자가 공히 인식하고 모든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설립된다면 그 때부터 우리 사회의 노동권과 국민 복지는 급격히 향상될 것이다.
5년 만에 뒤집힌 검찰 수사결과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시작된 2013년부터 우리는 삼성의 각종 노동탄압 범죄에 대해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검찰 수사결과가 처음에는 삼성 편이었다가 새로운 증거들로 재고소·고발한 끝에 5년 만에 노동자들 편으로 뒤바뀌었다. 실로 사필귀정의 드라마였다. 2018년경 검찰의 재수사 결과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이 하청 수리기사들의 인사 및 업무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이 협력업체를 폐업시키고, 돈을 찔러 주면서 탈퇴시키고, 고 염호석 조합원 시신을 탈취해 장례투쟁을 무력화하려 한 증거까지 다량 발견됐다.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가 사실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그 5년 전에는 노동부도, 검찰도, 법원도 모두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에 검찰이 발표하는 내용과 언론 단독보도들은 사실 노동자들이 5년 동안 목이 터져라 폭로하던 것들이었다. 서운함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변화한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만 우리사회가 노동자의 이야기를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들었는지, 삼성의 벽 앞에서 진실을 덮는 일에 공범이었던 적은 없는지 함께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2013년 10월에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심상정 국회의원을 통해 폭로됐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작성해 실행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건이었다. 당시 노동부와 검찰은 해당 문건을 삼성그룹 차원에서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하며 실제 부당노동행위 실행이 확인된 실무자 4명을 제외한 그룹 임직원 모두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2018년 공개된 2013년 당시 노동부의 내부 수사보고서를 보면 문건 작성자는 삼성경제연구소, 작성 지시자는 삼성인력개발원, 그리고 총괄 수습 단위는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었다는 것이 그대로 서술돼 있다. 2013년 당시 노동부와 검찰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문건을 작성했다는 점과 작성자·실행자들의 실명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결론을 낼 때는 정반대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얘기다. 어떤 정무적인 이유로 삼성을 봐준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 노동자의 부당해고 관련 사건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문건은 삼성이 작성했으며 이는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불법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이러한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말이다.
2018년 수사결과가 바로 잡힐 때까지 그 5년 동안,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 계획된 내용들은 삼성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에게 차례차례 그대로 실행됐다. 수사기관이 2013년, 2014년 최초의 수사결과를 양심적으로 냈다면 대부분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다.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합원은 해고를 당해 5년 동안 밥벌이도 없이 법정과 거리를 헤매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표적감사와 일감 빼앗기, 노골적인 왕따와 협박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겨울 최종범, 2014년 여름 염호석 조합원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둘 다 유서에 삼성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조합원들의 투쟁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을 남겼다.
삼성은 염호석 열사가 떠난 직후 "노조원 1명 탈퇴"라며 노조파괴 성과의 보고사항으로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6억원을 직접 건네며 고인이 원했던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바꾼 후 시신을 빼앗아 피울음 쏟는 동료 조합원들과 어머니 눈앞에서 화장해 버렸다.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삼성은 천륜을 어겼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단지 사적인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 삼성의 80년 노동탄압 역사 속에서 말없이 착취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경제적·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었을 노동자들은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끝내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무노조 '흑역사' 무너뜨린 노동자들, 법원에서도 승리하다
삼성은 70년 넘게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을 '신화'로 불렀다. 그러나 이는 신화가 아니라 '흑역사'다. 이 흑역사의 주인공인 삼성그룹 임직원들에 대한 실형 판결이 드디어 2022년 2월과 3월에 연이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22년 3월 17일 대법원은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 차원에서 움직였다고 판단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징역 1년4개월 등 노조파괴 주범인 임직원 12명에 대해 징역형 및 벌금의 유죄 선고를 내렸다. 강 전부사장은 경찰 출신이었다. 삼성은 경찰 출신을 지속적으로 특채로 고용해왔다. 헌법을 농락하는 삼성 무노조경영은 국가 공권력과 삼성의 합작품이었다. 강 전 부사장은 2011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7년 동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하면서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에버랜드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해 왔다.
2022년 2월 4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임직원 30여 명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마찬가지로 법원은 삼성그룹의 조직적 범죄로 봤다. 이로써 삼성 노조파괴에 대한 형사재판은 모두 끝났다. 고소·고발부터 판결 확정까지 10년의 시간이다.
한편 2022년 4월 14일에는 삼성에버랜드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삼성지회도 사용자인 삼성물산과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11년 설립된 삼성지회가 11년 만에 얻은 성과다. 참고로 지금까지 에버랜드에는 삼성그룹이 '방탄용'으로 설립한 어용노조가 계속 '엉터리' 단협을 체결해 왔는데 법원은 이 어용노조가 삼성과 공범이라며 어용노조 위원장 2명에게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했다. 어용노조가 회사와 함께 노조파괴 범죄로 처벌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끝내 '진짜 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진짜 단협'을 정식으로 맺었다. 삼성지회 임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전원이 징계받거나 해고됐다. 그 징계와 해고는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의 일환이므로 무효고 삼성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까지 진다는 판결은 애초에 나왔다. 네댓 명의 노동자가 삼성그룹 전체와 맞서는 그 싸움이 어땠을까. 가시덤불을 뚫고 가는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대중의 지지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투쟁 끝에 2019년 1월 사측과 합의로 정규직 전환을 최종적으로 쟁취했고 소송의 경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는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2022년 1월 26일 항소심 선고에서 1심이 뒤집혀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9년 만의 일이다. 기적적이지만 법리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 폐기 선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5월 무노조 경영에 대해 사과하고 무노조 정책 폐기선언을 했다. 이러한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투쟁 승리의 기세로 이후에 삼성웰스토리·에스원·삼성디스플레이·삼성화재, 그리고 삼성전자에까지 노조가 만들어졌다. 삼성그룹 노조는 현재 13개로서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삼성 무노조 역사가 무너졌다. 실로 노골적인 삼성의 반헌법·불법·인권유린 정책이 87년 민주화 이후 40여 년이나 지나서 바로 잡혔다. 21세기에 홀로 전근대에 머물 수 있었던 삼성의 힘은 대체 얼마나 대단했던가. 삼성에 노조 세우기, 최초 단체협약 체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경영진 형사처벌과 같은 성과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상대가 삼성이거나 최초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결과여서 그렇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삼성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은 늘 노동자의 성취보다 늦다. 노동자가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즉시 행사해버리는 게 소송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의미다. 그렇다. 우리 국민은 법률에 의한 판결 이전에, 법률보다 더 높은 헌법에다가 '노동 3권'이라는 것을 명시하여 일상에서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이 보장되도록 해놓았다. 소송은 늦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는 당장 실현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법원이 아니라, 헌법이 공인한 기구인 노동조합을 통해 즉시 정의와 기본권을 지킬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헌법 제33조 '노동 3권'의 의의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간략히 소개한 이 삼성 사건을 교훈 삼아 다른 현장의 노동자들도 용기를 내기 바란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아직 14% 정도에 불과하다. 권리 앞에 잠자는 자를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 떠들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삼성 노동자의 투쟁에는 시민사회와 각계 전문가, 언론이 적극 연대한 힘도 컸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또한 희망한다.
ⓒ연합뉴스
번외 : 불량노동조합
- 삼성에버랜드 '어용노조 설립무효' 소송 사건
학교에는 불량학생·보통학생·모범학생이 섞여 있다. 제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동료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은 불량학생이다. 선생님은 불량학생의 불량한 행동을 발견한 경우 꾸짖고 교화할 의무가 있다. 통상의 선생님들은 그렇게 한다. 학교의 규칙과 사회의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을 이렇게 정의한다.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
이에 우리 법원은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판결한다. 이를테면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해 사용자의 수족 또는 회사의 하부기관에 불과한 노동조합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원은 구체적으로 '노동조합설립 무효 확인의 청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자격을 박탈해도 될 정도로 '불량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학생으로 치면 퇴학이다.
삼성 노동자들을 돕던 변호사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대리하여 에버랜드 어용노조를 상대로 '노동조합설립 무효 확인의 청구'를 제기했다. 이론상 가능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실험적 소송이었다.
2021년 8월 26일 법원은 삼성에버랜드에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에버랜드노동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어용노조가 상소했으나 원심은 그대로 최종 확정되었다. 그 근거로 ① 노조가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향후 자생적 노조가 설립될 경우 그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용자의 전적인 계획과 주도 하에 설립된 점 ② 회사가 자체 검증을 거쳐 노조 위원장 등 노조원을 선정한 점 ③ 노조설립 직후 회사와 201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진성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던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 노조는 그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서 헌법 및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그 설립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에버랜드노동조합은 2011년 7월 옛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파트와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어용노조다. 당시 삼성은 진성(眞性)노조 즉 '진짜'인 민주노조가 설립될 경우를 대비해 '진성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어용노조를 만든다'는 내용이 포함된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작성했다. 삼성은 2011년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노조설립을 추진하자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직전에 미전실 주도 하에 에버랜드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중심으로 비상상황실을 설립해 조직적인 노조파괴 공작 차원에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그 후 진성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 대신 어용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회사의 의도대로 어용노조가 형식적인 노동자 대표 역할을 해왔다. 어용노조는 진성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삼성은 진성노조 간부들을 부당하게 징계하고 해고했다. 이 징계 및 해고는 모두 법원에서 부당함을 인정해 이미 무효화한 바 있다.
진성노조 파괴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삼성그룹 간부들은 이후 구속기소 됐고 1·2심 모두 삼성전자 부사장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범죄에 있어서 이례적이게도 실형을 선고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 5월 삼성의 노조파괴 역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어용노조의 1·2기 위원장도 삼성과 공동정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노동자면서 동료 노동자를 괴롭히고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 사측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다가 감옥에 갇히다니, 일제 부역자와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한국노총의 입장표명은 없었다. 어용노조에 대한 한국노총의 조사나 징계도 전혀 없었다. 한국노총은 역사가 오래된 훌륭한 조직이다. 노동법과 제도개선, 노동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조직이다. 소속 노동조합은 대부분 건강하고 자주적이다. 그러나 일부 '불량노동조합' 사건에 대해 의견표명을 하지 않는 점이 당시 무척 아쉬웠다.
불량학생의 불량행위를 발견하고도 묵인하는 선생과 학교의 태도는 불량학생에게 힘을 준다. 불량학생 지망생이 자라난다. 보통의 학생들은 학교를 냉소하고 교과서를 집어던지며 절망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이제 학교가 아니게 된다.
"피고 노동조합 설립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2021년 8월26일 삼성 노동자들이 방청석에 자리했던, 수원지법 법정에 울려 퍼진 판결 내용을 모두가 매섭게 기억하기를 바란다.
▲ 윤석열 대통령, 토지규제 개선 민생토론회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열세 번째,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민생토론에는 토지 규제 개선과 관련한 정부 부처의 합동 보고와 참여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비수도권에 위치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에는 개발제한구역을 풀지 않더라도 기업을 유치할 땅이 널려있는데다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 대거 해제가 투기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윤석열표 그린벨트 해제조치는 총선용 대책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난데 없는 윤석열 정부의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허용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오후 울산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비수도권 그린벨트 대폭 해제 등이 담긴 토지 규제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수도권 그린벨트는 대폭 해제하도록 허용하고 지역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운영하도록 한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비수도권 지역 주도로 추진하는 전략사업(지역전략사업)의 경우, 그린벨트 해제 가능 총량을 줄이지 않은 채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게 한다고 천명했다.
심지어 환경평가 1·2등급지는 원칙적으로 그린벨트 해제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비수도권 지역전략사업의 경우에는 환경평가 1·2등급지도 그린벨트 해제를 허용한다고도 했다. 윤 정부는 환경등급 평가 체계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6개 환경평가 지표 중 1개만 1∼2등급이더라도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능한 방식으로 엄격하게 운영되는데, 앞으로는 지역별 특성에 맞게 환경등급을 조정하는 개선 방안을 연구할 예정이다.
또한 토지이용규제기본법에 등록된 모든 규제에 일몰제를 도입해서 정기적으로 존속 여부를 결정하고, 불필요한 규제가 중복됐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신속하게 일괄 해제할 수 있도록 통합심의 절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계획관리지역 중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확보된 곳은 공장 건폐율(건설부지에서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을 현행 40%에서 70%까지 완화하고, 생산관리지역에서 환경오염이 적은 경우에는 300㎡ 미만 휴게음식점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외에 공장 준공 이후 용도 지역이 변경되는 등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10년간은 준공 당시의 허가 기준대로 증축을 허용하고 계획관리 지역 내 숙박시설 입지 규제를 철폐해 관광 수요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비수도권에 싼땅이 없어서 기업들이 안 가나?
▲ 윤석열 대통령, 토지규제 개선 민생토론회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열세 번째,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민생토론에는 토지 규제 개선과 관련한 정부 부처의 합동 보고와 참여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총선을 앞둔 윤 정부의 이번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허용조치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건,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허용조치가 지역경제활성화와 무관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풀지 않은 지금도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토지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고 각종 혜택을 부여하겠다면서 기업 유치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인재와 각종 인프라 등 원활한 기업활동에 필요한 자원 측면에서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비해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위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자체들이 토지와 세제에 특혜를 준다고 해도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지방은 고사하고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인 안산·의정부·김포·하남시조차도 2021년 경기도에서 부여받은 해제 가능 총량을 활용하지 못해 회수당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환경파괴, 투기만 야기할 총선용 그린벨트 해제허용
윤 정부의 그린벨트 규제 혁신안이 특히 위험한 건 환경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윤 정부는 지역 전략사업으로 지정되면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 포함하지 않고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풀겠다고 공언했는데, 만약 이 공언이 실행된다면 대규모 환경파괴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듯 한 번 파괴된 환경을 되돌이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윤 정부의 이번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허용 공약은 윤 정부가 지난해 1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2030년까지 자연 보호지역을 전 국토의 30%로 확대하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 의결과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윤 정부가 앞뒤 맞지 않는 발언과 정책을 내놓은 적이 하도 많아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무관하고 환경파괴만 야기할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를 윤 정부는 왜 대관절 지금 밀어붙이는 것일까? 총선을 빼놓곤 설명이 어렵다.
당장 이날 민생토론회가 열린 울산의 경우만 해도 전체 행정구역의 25.4%에 해당하는 면적이 그린벨트이고, 그중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 비율은 81.2%에 달한다. 주지하다시피 울산은 이른바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중 하나로 민주당과 국힘이 각축을 벌이는 지역 중 하나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하면 그린벨트에 토지를 가진 유권자의 마음이 어디로 쏠릴지는 불문가지라 할 것이다.
그린벨트 제도는 국힘 지지자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박정희가 만든 것으로 환경보호 및 난개발 억제, 녹지확보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이 그린벨트를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통령인 윤석열이 줄이려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선거철이 다가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여권은 ‘운동권 청산’을, 이재명 대표와 야권은 ‘검사 정권 심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운동권 청산’이 주제라니,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거의 다 범죄자로 보면서 자신만 선의이고 나머지는 모두 부정하는 소아병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발달 심리의 대가 피아제(Piaget)는 사람의 인지발달을 4단계로 나누고 아동기 심리상태의 특징을 ‘자기중심성’이라고 했다. 자기중심성은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에 빠진 사람은 객관과 주관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즉, 남들도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대로 바라본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 유명한 실험이 피아제와 인헬더(Piaget&Inhelder, 1995)의 ‘세 산 실험(three mountains task)’이다.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모양의 모형 산 세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테이블을 돌아가며 각각의 위치에서 산이 어떻게 보이는지 관찰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 반대편 의자에 인형을 앉혀두고 “지금 저 인형은 어떤 산 모양을 보고 있을까?”를 물으며 (아까 관찰했던) 다양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고르게 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과 똑같은 사진을 골랐다. 내 위치와 인형의 위치가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중심적 인식 ⓒpixabay
자기중심성이 아동기만의 특징인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나 성인기에도 나타난다. 다만 자기 객관화를 해나가는 정도에 따라 상대편에서는 다른 풍경을 본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에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감대 없이 자기 능력을 과대 지각하며 오직 자신만 특별한 존재라는 망상에 빠져 산다. 운동권이라는 말은 세상의 부정에 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민주 정부가 세워지면서 보수 언론이 ‘운동권식 국정운영’, ‘운동권식 권모술수’, ‘운동권식 정략’ 등의 레퍼토리로 진보 진영을 낙인화하는 비판에서 시작된 말이다.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재벌은 수조 원의 비리를 저질러도 무죄가 되고 대통령과 기득권자들은 법을 무력화하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죄를 저질러도 언론에서조차 다루지 않는다. 반면, 진보 인사나 시민들에게는 조그마한 법 조항을 문제로 가혹한 처벌을 선동한다. 이것을 시정하고자 자신의 이익보다 공익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운동권이다. 이들은 자유, 인권,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전직 활동에 들어서고 자기 삶을 바쳐 현장에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부조리와 부정의가 있는 사회에서 운동권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운동권 청산은 재벌과 기득권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익을 지키려는 행위에 대해 근본적인 철퇴를 가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중심성은 아동기만의 특징은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친다
오랜 시간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신이 공천을 못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한다고 한다.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난 결과라고 인식하기보다 조직이 부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주장한 보편적인 정의와 인권, 공익적 가치가 불가능해져 이 사회도 이 조직도 파멸의 길로 간다고 인식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고 바탕이 되었던 것을 무너트려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마저 생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며 정의의 구현자로 나선 격이다.
이런 광인 모드에 들어서면 기존 질서는 믿을 수 없는 세계가 되고, 공정한 활동은 편파성이 되며, 정의는 당파성으로 대체된다. 자신의 좌절감을 퍼부을 공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려고 드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윤석열 검찰 정권의 무도하고 무정한 권력에 희생당하고 있다. 요즘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입틀막 정권’으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소아병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사람일 것이다. 낙담과 무력감에 압도당하는 것도 사치인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힘겨운 날에도, 시간은 지나고 내일의 태양이 뜬다. 역사 속에서 언제나 씨알들이 생산과 삶의 주체였듯이 역사의 힘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 중심의 시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