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문] 북 외무성 “한미, 지역 안보 불안정 높이는 도발적 망동하고 있어”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8/23 [15:41]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8/23 [15:41]

 

북한 외무성은 최근 미국이 한국에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판매를 승인한 것과 관련해 22일 담화를 발표했다.

 

외무성은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을지 프리덤 실드’가 강행되고 있는 속에 미 국무성은 한국에 36대의 ‘AH-64E 아파치’ 공격용 직승기[헬리콥터]와 부분품의 판매를 승인하였다”라면서 “미 군부는 이번 판매로 한국의 군사적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지역의 근본적인 군사적 균형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밝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역의 안보 환경에 엄중한 위험을 조성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력 증강 책동을 강력히 반대 배격하며 그로부터 초래될 후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개시로 조선반도[한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가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속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를 공표한 것은 지역에서의 안보 불안정을 고의적으로 증대시키는 도발적 망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성된 정세는 미국의 무기 판매 행위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안보 도전과 위협에 정비례하여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철저히 보장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다”라면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강요되는 힘의 불균형을 철저히 불허하고 강력히 대처해 나가는 것은 국가의 주권적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가 실시된 지난 19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은 한국에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36대와 관련 물품을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보잉과 록히드 마틴이 한국 정부에 35억 달러(대략 4조 6,900억 원)에 이르는 헬기와 물품을 판매할 것을 승인했다.

 

이번 판매와 관련해 미국 국방안보협력국은 “적을 억제하고 역내 작전에 참여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전력을 제공해 한국이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향상할 것”이라면서 북한을 겨눈 것임을 암시했다.

 

국내에서는 ‘지상전’에 특화된 아파치 헬기의 판매 결정이 북한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아래는 담화 전문이다.

※ 원문의 일부만으로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편향적으로 이해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기에 전문을 게재합니다. 전문 출처는 미국의 엔케이뉴스(NKnews.org)입니다.

 

군사적균형을 확고히 유지하는것은 평화와 안정보장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담화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을지 프리덤 실드》가 강행되고 있는 속에 미 국무성은 한국에 36대의 《AH-64E 아파치》 공격용 직승기와 부분품의 판매를 승인하였다.

미 군부는 이번 판매로 한국의 군사적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지역의 근본적인 군사적 균형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밝혔다.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판매가 성사되는 경우 한국에 공격용 직승기들이 새롭게 배비되는 것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구입하여 2017년에 작전 배비한 《아파치》 직승기들의 성능도 개량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조선반도의 안보 형세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지역의 안보 환경에 엄중한 위험을 조성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력 증강 책동을 강력히 반대 배격하며 그로부터 초래될 후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

일방을 겨냥한 타방의 무력 증강은 크든 작든 지역에서의 군사 정치 정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물며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개시로 조선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가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속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를 공표한 것은 지역에서의 안보 불안정을 고의적으로 증대시키는 도발적 망동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일본,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 내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책동이 보다 활기를 띠고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지역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안보 도전으로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미국은 한국에 《F-35》 스텔스 전투기 25대, 《SM-6》 함대공 요격 미사일 36기, 《AIM-9X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42기 등 천문학적 액수의 각종 첨단 살인 장비들을 납입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한국 군부와 신속한 군수 물자 공급을 목적으로 한 《공급안보협정》이라는 것까지 체결하였다.

또한 올해 6월 6대의 최신형 해상 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한국에 제공한 데 이어 오는 12월에는 한국에 인도할 12대의 신형 해상작전 직승기 《MH-60R》 중 첫 납입품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군사기술 및 무기 수출 통제 조치를 대폭 완화하고 일본,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지역 내 동맹세력들에 대한 무기 판매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산생되고 있는 안보 위기들은 미국의 살인 무기 제공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대결과 모순을 격화시키고 군사적 균형을 파괴하여 새로운 충돌 위험을 조장 확대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조성된 정세는 미국의 무기 판매 행위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안보 도전과 위협에 정비례하여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철저히 보장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강요되는 힘의 불균형을 철저히 불허하고 강력히 대처해나가는 것은 국가의 주권적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미국이 지역 내 동맹국들에 대한 전쟁 장비, 살인 장비 제공에 집념할수록 국가의 안전 이익과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 억제력은 배로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날로 더욱 무분별해지는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준동과 살인 장비 납입으로 초래될 수 있는 군사적 불균형과 불안정 상황을 통제 관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위적 군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결행해 나갈 것이다.

주체113(2024)년 8월 22일

평 양(끝)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박명훈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북한 외무성은 최근 미국이 한국에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판매를 승인한 것과 관련해 22일 담화를 발표했다.

 

외무성은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을지 프리덤 실드’가 강행되고 있는 속에 미 국무성은 한국에 36대의 ‘AH-64E 아파치’ 공격용 직승기[헬리콥터]와 부분품의 판매를 승인하였다”라면서 “미 군부는 이번 판매로 한국의 군사적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지역의 근본적인 군사적 균형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밝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역의 안보 환경에 엄중한 위험을 조성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력 증강 책동을 강력히 반대 배격하며 그로부터 초래될 후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개시로 조선반도[한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가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속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를 공표한 것은 지역에서의 안보 불안정을 고의적으로 증대시키는 도발적 망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성된 정세는 미국의 무기 판매 행위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안보 도전과 위협에 정비례하여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철저히 보장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다”라면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강요되는 힘의 불균형을 철저히 불허하고 강력히 대처해 나가는 것은 국가의 주권적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가 실시된 지난 19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은 한국에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36대와 관련 물품을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보잉과 록히드 마틴이 한국 정부에 35억 달러(대략 4조 6,900억 원)에 이르는 헬기와 물품을 판매할 것을 승인했다.

 

이번 판매와 관련해 미국 국방안보협력국은 “적을 억제하고 역내 작전에 참여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전력을 제공해 한국이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향상할 것”이라면서 북한을 겨눈 것임을 암시했다.

 

국내에서는 ‘지상전’에 특화된 아파치 헬기의 판매 결정이 북한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아래는 담화 전문이다.

※ 원문의 일부만으로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편향적으로 이해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기에 전문을 게재합니다. 전문 출처는 미국의 엔케이뉴스(NKnews.org)입니다.

 

군사적균형을 확고히 유지하는것은 평화와 안정보장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담화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을지 프리덤 실드》가 강행되고 있는 속에 미 국무성은 한국에 36대의 《AH-64E 아파치》 공격용 직승기와 부분품의 판매를 승인하였다.

미 군부는 이번 판매로 한국의 군사적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지역의 근본적인 군사적 균형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밝혔다.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판매가 성사되는 경우 한국에 공격용 직승기들이 새롭게 배비되는 것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구입하여 2017년에 작전 배비한 《아파치》 직승기들의 성능도 개량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조선반도의 안보 형세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지역의 안보 환경에 엄중한 위험을 조성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력 증강 책동을 강력히 반대 배격하며 그로부터 초래될 후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

일방을 겨냥한 타방의 무력 증강은 크든 작든 지역에서의 군사 정치 정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물며 미한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개시로 조선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가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속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를 공표한 것은 지역에서의 안보 불안정을 고의적으로 증대시키는 도발적 망동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일본,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 내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책동이 보다 활기를 띠고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지역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안보 도전으로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미국은 한국에 《F-35》 스텔스 전투기 25대, 《SM-6》 함대공 요격 미사일 36기, 《AIM-9X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42기 등 천문학적 액수의 각종 첨단 살인 장비들을 납입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한국 군부와 신속한 군수 물자 공급을 목적으로 한 《공급안보협정》이라는 것까지 체결하였다.

또한 올해 6월 6대의 최신형 해상 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한국에 제공한 데 이어 오는 12월에는 한국에 인도할 12대의 신형 해상작전 직승기 《MH-60R》 중 첫 납입품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군사기술 및 무기 수출 통제 조치를 대폭 완화하고 일본,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지역 내 동맹세력들에 대한 무기 판매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산생되고 있는 안보 위기들은 미국의 살인 무기 제공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대결과 모순을 격화시키고 군사적 균형을 파괴하여 새로운 충돌 위험을 조장 확대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조성된 정세는 미국의 무기 판매 행위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안보 도전과 위협에 정비례하여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철저히 보장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강요되는 힘의 불균형을 철저히 불허하고 강력히 대처해나가는 것은 국가의 주권적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미국이 지역 내 동맹국들에 대한 전쟁 장비, 살인 장비 제공에 집념할수록 국가의 안전 이익과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 억제력은 배로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날로 더욱 무분별해지는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준동과 살인 장비 납입으로 초래될 수 있는 군사적 불균형과 불안정 상황을 통제 관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위적 군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결행해 나갈 것이다.

주체113(2024)년 8월 22일

평 양(끝)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박명훈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민 10명 중 7명 윤석열 정부 일본 오염수 대응 “잘못함”

오염수 문제없다는 윤석열 정부에 73% “비동의”

(자료사진)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2023.11.13 ⓒ민중의소리

이번 달 24일이면 일본이 태평양 바다에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를 버리기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가운데, 10명 중 7명은 일본 오염수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 10명 중 8명가량은 이 같은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은 지난해 8월 24일부터 후쿠시마 사고원전 부지에 쌓인 130만t의 오염수를 수백 배의 바닷물로 희석한 뒤 바다에 버리기 시작해, 올해 7월까지 5만여t을 버렸다. 일본의 오염수 투기는 앞으로 30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76.2% “오염수 해양방류, 반대”

73.5% 일본·IAEA “불신”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찬반 ⓒ환경운동연합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환경운동연합 의뢰로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2%는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매우 반대”는 65.5%였고, “다소 반대”는 10.7%였다.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이었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찬성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상당수 있었다. “매우 찬성”은 7.2%, “다소 찬성”은 13.9%였다. 2.7%의 응답자는 “모름”을 선택했다.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투기가 국제기준에 맞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장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73.5%가 불신한다고 답했다. “매우 불신”은 61.9%였고, “다소 불신”은 11.9%였다.

일본 정부와 IAEA를 신뢰한다는 24.4%(매우 신뢰 11.5%, 다소 신뢰 12.9%)에 불과했다.

오염수 방류, 문제없다는 윤석열 정부

73% “비동의”

73% “정부 대응, 잘못함”...65% “매우 잘못”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정부 대응평가 ⓒ환경운동연합

오염수 방류가 문제없다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73.6%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소 비동의”는 9.0%였고, “전혀 비동의”는 64.6%에 달했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 동의한다는 여론은 25.3%(매우 동의 15.1%, 다소 동의 10.2%)였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 평가도 박했다. 응답자의 73.6%가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답했다. 특히 “매우 잘못함”이 65.2%로 높았다.

정부가 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24.1%(매우 잘함 10.6%, 다소 잘함 13.5%)였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65.2%로 나타났다. 수입을 금지하면 안 된다는 여론은 32.3%였다.

조사개요

○ 조사기간 :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 조사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오차 ±3.1%p

○ 표본추출 :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인구 구성비에 따른 비례할당추출

○ 보정방법 : 2024년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치 부여 (셀가중)

○ 조사방법 :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ARS 자동응답 전화조사 (무선 100%)

○ 응답률 : 2.1%

“ 이승훈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염수 투기 1년··· 논란 여전, "51년까지 폐로 불가능"

기자명

  •  김준 기자
  •  
  •  승인 2024.08.22 21:09
  •  
  •  댓글 0
 

일본 오염수 투기, 객관성 신뢰성 지적
일본이 약속한 2051년 폐로, 불가능 해
중국, 홍콩 수산물 수입 금지, 한국만 늘어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핵오염수 해양투기 1년 기자회견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즉각 중단하라”' 기자회견 ⓒ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핵오염수 해양투기 1년 기자회견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즉각 중단하라”' 기자회견 ⓒ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만행을 눈감아준 지 1년이 다 돼간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이야기다. 

일본은 현재 8차 오염수 투기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염수에 대한 많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일본은 51년까지 방출과 폐로 완료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매일 80톤씩 오염수가 더해져 현실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1년 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IAEA가 오염수 안전성 검증했다"며 오염수 투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IAEA는 안정성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가 담당할 일’이라며 “위험성을 평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오염수 방류는 시작됐다.

24일이면 일본이 오염수를 투기한 지 1년이 된다.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은 국회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1년, 과연 안전한가,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할 때’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함께 개최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대표는 일본 정부의 해양방류 결정 과정을 설명하며 신뢰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IAEA 폐기물 관리 원칙은 9가지다. ▲인간 건강보호 ▲환경보호 ▲타국보호(국경을 넘어 보호) ▲후손 보호(미래세대 보호) ▲후손 부담 경감 ▲국가 법체계 정비 ▲폐기물 발생 조절 ▲핵폐기물의 발생과 관의 상호관계 고려 ▲시설의 안전이다.

그러나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대표는 IAEA의 종합보고서를 보면 하나도 체계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폐기물 발생 조절의 경우, 현재 발생량을 조절할 기술이 없고, 타국 보호는 일본의 영향이 없다는 주장을 IAEA가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 주장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IAEA 참여 과학자의 투명한 대시민 소통을 지원해야 하며, 주변국 예산으로 독립적인 전면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 정부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일본은 안전에 대한 이해관계국의 우려를 아직도 해결하고 있지 않아 핵오염수 방출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양국 간 대화’, ‘독자적인 감시체제 구축’, ‘배상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해서도 수입을 꺼리는 모양새다.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가리비와 가다랑어 등 수입을 금지해 일본의 수산물 수출이 92,3%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다. 한국에 대한 일본 농림축수산식품 수출은 16.5% 증가했다.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현지에 수차례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지만, 조사 활동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전문가들이 후쿠시마 연안의 시료를 채취하고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을 보이는 거다.

일본이 약속한 기간 내 방류가 끝나지 않은 것이란 지적도 계속된다. 주제준 정책위원장은 “현재까지 8차 방류 완료해 5만톤 바다로 흘려 보냈지만 매일 생성 오염수가 80톤씩 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원전오염수 문제는 지난해 8월 오염수의 해양방출이 시작되면서 저장탱크의 한계라는 위기는 피할 수 있었지만 매일 발생하는 오염수를 멈추지 않는 한 방출은 계속된다는 거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기자회견을 이어가며 “환경적 영향과 오염 위험은 전 세계 생태계와 생명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염수 해양투기를 즉각 중단하고, 육상 장기 보관을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주권국으로 오염수 해양투기 중단을 위해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일본산수산물수입금지’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반미반일 애국투쟁을 적극 벌이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8/23 12:14
  • 수정일
    2024/08/23 12: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석열 매국정권을 응징하여 애국정권을 수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정호일 | 등록:2024-08-23 08:33:18 | 최종:2024-08-23 08:34:32

 
 

반미반일 애국투쟁을 적극 벌이자

윤석열 매국정권을 응징하여 애국정권을 수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현시기 애민, 애국의 핵심적 기조는 반미, 반일 애국투쟁을 적극 벌이는 것과 함께 윤석열 매국정권을 응징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맺은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매개로 일본까지 끌어들이며 한반도에 핵전쟁의 참화를 일으켜 민족이 공멸할 수 있는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막아내자면 애민, 애국의 기치에 근거하여 반미, 반일 애국투쟁을 거국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반미, 반일 애국투쟁의 성과를 내오자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려고 하지는 않고, 도리어 그들의 요구에 부화뇌동하면서 매국 행위를 벌이는 윤석열 매국정권을 기필코 응징해야 합니다. 그래야 애국정권을 세울 수 있고, 미국, 일본과 맺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하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이고,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낮은 것은 한국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가 식민지매국사회로서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면서 그들만이 부를 독점해가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이 궁핍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빈부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을 넘어 자포자기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사람들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넣으니만큼 하루빨리 이를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는 식민지매국경제의 구조를 띠고 있기에 이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않고서는 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 민생이라고 하면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의 실시를 놓고 유예 내지는 폐지하느니 마느니 하며 논쟁하는 것에서 그 실상이 드러납니다. 금투세는 여야가 합의한 것이고, 그것도 금융에 투자해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22.5%(20%+지방세 2.5%), 그리고 3억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27.5%(25%+지방세 2.5%)의 세금을 걷자고 하는 것입니다. 금융에 투자해 이런 정도의 수익을 내는 정도라면 아무리 봐도 서민과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서민과 연결시켜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견강부회하면서 그 세금을 폐지하자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투세를 유예 내지는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국의 경제구조가 이런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으면 바로 그런 돈이 한국에서 빠져나감으로써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논리 아니겠습니까? 돈이 빠져나가면 결국 경제가 잘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투세를 유예 내지는 폐지하자고 하는 주장의 본질은 한국 경제가 서민을 위한 경제구조로 되어 있지 못한 관계로 외세와 매국노들을 위한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대고 솔직하게 한국 경제가 식민지매국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지 어떻게 민생을 위해서라고 둘러댈 수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이것은 한국 경제가 민생을 위한 정책을 취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취약한 경제구조로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민생을 위한 정책을 취하자면 이런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외면하고 실질적으로는 외세와 매국노들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도 조삼모사식으로 서민을 위한다고 둘러대며 민을 기만한다면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민생을 위한 정책을 펴려면 식민성과 매국성의 경제구조부터 바꿔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식민성과 매국성의 경제구조를 바꿔나가자면 정치에서 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한사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특검법과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는 야권이 정쟁을 위해서 다수의 힘으로 법안을 가결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민의 절대다수가 요구한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최소한 정치적 해결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조차 거부하니 정치 자체가 실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윤석열 정권이 정치 자체를 실종시키고 있으니 그 어떤 희망을 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3년이 아니라 3개월도 길다고 하면서 탄핵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정권은 이런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남북 간에 대립, 대결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실상입니다. 한마디로 식민성과 매국성을 갖는 식민지매국사회인 관계로 이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민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현시기에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기인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가중되면서 민족이 핵 참화를 겪고 공멸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 유일 패권의 위기를 겪자 어떻게든지 이를 모면하고자 세계정세를 대립과 대결로 치닫게 하면서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정세를 대립과 대결의 분위기로 몰아갔기 때문에 파생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한반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이 그런 정책을 추구한다고 해도 한국이 그에 추종하지 않으면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에 의해 사실상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통해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면서 한반도 또한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한미일 군사동맹의 구축에서 드러납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구축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일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우리 민족이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기필코 막아야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몰아오고 있는 미국에 대해 일차적으로 반대해서 싸워야 합니다. 한마디로 반미 애국투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과 맺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하고 주권을 되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미국이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고, 일본은 미국의 정책에 추종하면서 또다시 한반도 재침을 꿈꾸는 상황이기에 반일 애국투쟁 또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한마디로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반대하는 반미, 반일 애국투쟁을 거국적으로 불러일으킴으로써 주권을 되찾아 제대로 행사해야만 한반도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미, 반일 애국투쟁의 성과를 내오자면 윤석열 매국정권을 우선적으로 응징해야 합니다. 미국과 맺은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 때문에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파기하고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또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한반도 재침을 꿈꾸고 있다면 이에 대해 단호히 배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한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책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미국의 정책을 철저히 추종하며 일본까지 끌어들여 한반도를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윤석열 정권의 모습이 철저히 반민(중)적이며 매국정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윤석열 매국정권을 철저히 응징해야 합니다.

반미, 반일 애국투쟁을 전개하면서도 윤석열 매국정권을 우선적으로 응징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반미, 반일 애국투쟁이 소기의 성과를 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관계로 만드느냐는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미국과 맺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하는 것은 한국의 정권이 담당해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정권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는 매국정권을 그대로 놔둔다면 미국과 일본과 맺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하면서 주권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정권 문제를 올바로 풀어야만 주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윤석열 정권이 매국정권임을 분명히 하면서 응징하여 애국정권을 세워내야만 반미, 반일 애국투쟁이 소기의 성과를 내오게 하면서 주권을 확고히 되찾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민의 삶은 고통스럽고, 거기에다가 한반도의 전쟁 위기까지 겪고 있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자면 반미, 반일 애국투쟁을 거국적으로 전개하면서 윤석열 매국정권을 응징하여 애국정권을 수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한다면 미국과 맺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함으로써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그것을 기초로 식민지매국사회를 철저히 뜯어고침으로써 참답게 민생 문제도 해결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호일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민 60% 이상, 윤석열 정권 국정운영·방향 부정 평가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4/08/23 [11:21]

 

국민의 60% 이상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방향에 대해 모두 부정 평가를 했다.

 

22일 발표된 8월 4주 전국지표조사(NBS) 리포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긍정 평가가 27%, 부정 평가가 63%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두 배 이상이며 직전 조사(8월 8일 발표)와 비교해 긍정 평가는 2%포인트 떨어졌으며 부정 평가는 3%포인트 올랐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4개월째 60%를 넘기고 있다.

 

모든 지역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았다.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경북지역에서도 부정 평가가 50%를 기록했고 긍정 평가는 35%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의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16%포인트나 급락했다.

 

▲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1년 간 여론조사. © NBS

 

그리고 국민 60% 이상이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에 대해서도 부정 평가를 하고 있다.

 

국민은 ‘경제가 안정되고 좋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74%, ‘공정과 상식의 가치가 잘 실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66%, ‘한반도가 평화롭고 안전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66%,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65%,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62%의 부정 평가를 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의 국정 방향이 국민의 뜻과 완전히 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높았다.

 

국민의 59%는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명분 없이 국회 기능을 제한하는 권한 남용’으로 봤다. ‘야당의 일방적인 입법을 막기 위한 정당한 권한 사용’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0%였다.

 

이번 조사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이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 NBS

 

한편, 2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국민의 63%가 부정 평가를, 27%가 긍정 평가를 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김영란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중동 사설이 김건희 겨냥? 조선 "이런 사람을 대통령 부인이 만나?"



중앙 "명품백 무혐의 결론, 수심위 검토 거쳐야"…동아 "여론 싸늘, '尹부부에 면죄부' 비판"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4.08.23. 10:00:51

 

 

검찰이 지난 22일 이른바 '김건희 명품백'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고 수사 결과를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보고했지만 여론의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 이튿날인 23일에는 대표적 보수언론으로 꼽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나란히 명품백 사건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조선>은 이날자 지면에 실린 '北은 종교 자유 보장, 이런 사람을 대통령 부인이 만났다니' 제하 사설에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백을 준 최재영 씨가 (중략) 어떤 사람인지는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국보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이력도 공개돼 있다"면서 "최 씨 관련 문제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람이 윤 대통령 부인을 아무런 과정 없이 수 차례나 만났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최재영 목사가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만나는 과정에서의 검증 절차가 "대통령 부인의 부친과 친분 있음을 주장했다는 것이 전부"였다는 점을 꼬집으며 "대통령 부인은 이런 사람을 대통령 취임식 만찬장에 초대해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통령과도 사진을 찍게 했다. 말문이 막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경찰에 따르면 최근 인천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최 목사가 창간에 참여한 친북 성향 온라인 매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매체 홈페이지에는 북한에 대해 "조선은 참으로 멋지고 위대한 나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숭고한 위민헌신의 정신을 천품으로 지녔다"고 하는 등 북한 체제·정권을 찬양하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은 같은날자 '명품백 무혐의 결론, 수심위 검토라도 거쳐야' 제하 사설에서 "최재영 목사의 동영상 폭로로 촉발된 이 사건은 기획된 측면이 강하지만, 대통령 부인이 고가의 선물을 받은 사실은 법적인 논란과 정치적 이슈로 폭발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정식 사과 대신 '박절하지 못해서' 등 발언으로 비켜가는 모습을 보여 국민감정이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무혐의 결론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정하게 수사했다는 검찰의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면서 "검찰은 '대통령의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대통령의 업무 대상은 훨씬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원석 총장은 누누이 공정한 수사를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직권으로 수사심의위를 열어 외부 전문가의 눈으로 수사팀 결론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공개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동아> 역시 이날 사설에서 "서울중앙지검이 내놓은 명품백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며 "검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해 윤 대통령 부부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고 짚었다. <동아> 역시 "이 총장의 임기는 이제 2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던 본인의 말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판가름날 시간이 됐다"고 사실상 수심위 소집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 총장은 전날 퇴근길에 기자들이 명품백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은 데 대한 입장을 묻자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수심위 소집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국빈방문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곽재훈 기자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본 정부의 이 말... 보란 듯이 뒤집혔다



[임성희의 환경리포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언제까지 방치할텐가

 

24.08.22 07:13최종 업데이트 24.08.22 07:13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2023년 8월 24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지역 어민과 주변국의 반대에도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 연합뉴스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방출한 오염수는 총 5만 4600톤. 지난 7일부터 8차 방류량 7800톤이 추가로 버려지고 있다. 일본의 계획대로라면 30년간, 아니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오염수 방류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녹아내린 880톤의 핵연료 제거 계획은 여전히 실패 중이다. 후쿠시마 원전 폐로검토위원회 위원장 미야노 히로시는 "2051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로한다는 도코전력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한 2011년 이후 일본 정부는 '안이한 오염수 해양 방출은 하지 않는다, 관계기관의 양해나 관계자들의 이해 없이 해양 방출이나 그 어떤 처분도 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이러한 말은 보란 듯 뒤집혔는데, 일본은 쌓여가는 오염수(2023년 기준 134만 톤) 처리를 위한 다섯 방안(지층 주입, 수증기 방출, 수소 방출, 지하 천층 매립, 해양 방출)을 놓고 고심하는 듯하더니, 2021년 4월 결국 가장 저렴한 처리 방안인 해양 방출을 결정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결정은 최소한의 양식이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 금지 소송 기각한 법원

 

일본의 후안무치한 결정에 대해 어쩌면 한 통속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안전성 검토 결과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보고서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IAEA는 핵발전사업자이자 사고 유발자인 도쿄전력의 방류 계획과 관련 문서를 검토했을 뿐이다.

 

배출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배출을 전제로 도쿄전력과 일본의 오염수 처리를 근본적으로 신뢰한다는 전제하에 작성된 보고서였다. 그러고는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새겼다. 이 무책임한 보고서의 결론을 무기 삼아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방사능오염수에 삼중수소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핵종이 보통 17종이라면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에서 배출된 핵종엔 독성이 매우 강한 스트론튬, 플루토늄, 아메리슘을 비롯한 62개의 핵종이 존재한다. 이 오염수를 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내어 이른바 '처리수'로 만들었다는 장담은 일본 정부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다. IAEA도 이 ALPS라는 핵종제거설비의 성능을 검증한 적이 없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봄 '2023년 일본산 농수축산물 방사능 오염실태 분석 보고서'를 냈는데, 일본 수산물 4%에서 세슘이 검출되고 후쿠시마산 농어와 쏨뱅이에서 세슘이 검출되었다. 도쿄전력 자료에 따르더라도 조피볼락과 노래미, 가자미류에서도 세슘이 검출되고 있었다. 암이나 유전자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부산 환경운동연합 회원 16명은 2021년 4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 '폐기물 및 기타 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의정서)과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의 안전에 관한 공동협약'(비엔나 공동협약) 체결 당사국으로서 이들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방사성 오염수가 방류되면 해류를 타고 부산 앞 바다에 도달해 어패류 등 각종 먹거리를 오염시켜 부산에 거주하는 원고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없다며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 관할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맞서왔다. 1심에서 각하된 이 소송은 2심에서도 기각되었고 원고들은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방사능 오염수 방류 멈춰야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 2023년 8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로 인해 우선 2023년부터 2029년까지 6년간 3조 1436억 원의 예산을 집행될 계획이란다. 지난해만 해도 5000억 원 이상 썼는데 올해도 7000억 원 이상을 쓴다. 이른바 후쿠시마 대응 예산이다. 해앙방사성물질 감시체계 구축과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수산물 상생 할인 지원, 안전성 강화 등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세금으로 쓰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홍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첫 방류에 즈음하여 18억 8320만 원의 광고비를 썼다는 사실이다. 임오경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 ' 우리바다는 안전합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등 영상과 카드뉴스, 간행물을 제작, 배포, 광고했다.

 

이에 대해 김영희 변호사(민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변호단)는 정부가 국제해양법협약에 따라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을 위해 지출한 세금에 대해 도쿄전력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명백한 배임이라면서 예산을 편성·집행할 때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국민 부담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국가재정법이 정한 예산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각종 이런 수고와 예산에도 시민들은 정부의 홍보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한 인식 조사(온라인 설문, 485명 응답)를 진행한 결과다.

 

도쿄전력이 지난 1년간 7차례 방사능오염수 5만 4000톤가량을 해양투기 했고 향후 계속 투기할 계획에 대해 응답자의 97.3%는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고 답했다.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답변이 96.5%, 환경 및 해양오염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답변이 96.7%였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가 국가 규제 기준을 준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신뢰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93.9%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수산물에 내재하는 방사성 검사 항목에 대해 94.1%가 베타핵종의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는 답했다.

 

해양오염으로 인한 바다생물의 피폭, 삼중수소,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의 체내 축적은 치명적이다. 서서히 축적된 방사능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지금이라도 시멘트 고체화 등의 방법으로 육상에서 장기 밀폐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핵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지금도 핵발전에서 이익을 얻고, 핵발전의 사고와 파장, 피해는 묵인하거나 은폐·왜곡하면서 손해를 감당하려 들지 않는 무책임한 사업자, 연구자, 그리고 그들을 뒷배로 정치를 하는 핵마피아 카르텔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핵마피아들에게 우리의 바다와 생명을 맡길 수 없다. 지금 당장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멈춰야 한다.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후쿠시마오염수 #핵발전사고 #방사능오염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건희 명품백 무혐의 가닥에 조선일보 “받은 것 자체가 부적절”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건희 수사팀, 무혐의 결론… 주요일간지, 대통령실·수사팀 비판

동아 “대통령실, 법적 문제 회피에 급급해 논란 키워”… 한국 “수긍할 국민 얼마나”

대통령실, 광복회 외 추가 지원단체 검토… “광복회에 대한 대통령실 불만 기류”

기자명윤수현 기자

  • 입력 2024.08.22 07:37

  • 수정 2024.08.22 07:43

구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로 인해 김 여사 수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으며, 특검이 필요하다는 언론의 지적이 나왔다. 조선일보 역시 김건희 여사가 초기에 사과해야 했으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가 수년 동안 나오지 않는 것 역시 일반 상식과는 다르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최근 이창수 중앙지검장에게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금지법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전담수사팀 구성 4개월 만에 내린 결정으로, 수사팀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가 윤석열 대통령 직무와 관련성이 없다고 봤다. 최재영 목사가 김 여사에게 개인적 감사 표시로 선물을 했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은 22일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할 예정으로, 이 총장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을 경우 불기소 처분이 된다. 이대로 수사 결과가 확정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청탁금지법상 신고 의무도 없어지게 된다.

▲8월22일 동아일보 1면 갈무리

동아 “대통령실 법적 문제 회피에 급급”… 조선 “김건희 사과해야”

동아일보는 이원석 총장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 판단을 받아볼 수도 있다고 봤다. 동아일보는 22일 1면 <중앙지검 ‘金여사 디올백’ 무혐의 결론>에서 “법조계에선 이 총장이 수사팀 결론을 바로 수용하지 않고, 수사심의위를 직권으로 소집해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며 “피의자 신분인 최 씨도 23일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수사심의위 결론은 권고일 뿐이어서 강제성은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5면 <용산 눈치보던 검찰, 저자세 일관하다 ‘명품백 면죄부’> 보도를 내고 “(수사팀이)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며 ‘출장 조사’를 벌이는 소극적 수사 끝에 ‘예정된 결론’을 내어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법조계에선 ‘노골적인 봐주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했다. 검찰 간부는 한겨레에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했다면 당연히 알선수재나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겠나”라고 했다.

▲8월22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이번 수사팀의 결정으로 청탁금지법 취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사설 <檢 “김 여사 명품백 무혐의”… 유사 사례도 ‘헐한 잣대’ 적용될까>에서 “다른 비슷한 사례에도 이 사건처럼 ‘헐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논란을 낳았다”며 “명품백 사건은 ‘기획’ 측면이 강하긴 하지만 대통령실 역시 법적 문제를 회피하는 데 급급하며 논란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명품백 무혐의 가닥... 李총장, 수사 공정성 보완 조치를>을 통해 “이 총장이 지난 5월 ‘법 앞에 예외 없다’며 의욕적으로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게 무색한 결과다. ‘황제 조사’ 논란이 비등했던 만큼 이대로 수용한다면 수긍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절차의 공정성을 지키지 않은 수사에서 결과의 공정성을 믿어달라고 하는 건 너무 민망하다”고 했다.

▲8월22일 한겨레 사설 갈무리

한겨레는 <‘김건희 명품백’ 무혐의, 이게 ‘성역 없는 수사’인가> 사설을 통해 “검찰의 태도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 등 전 정권 인사와 야당 정치인, 심지어 언론인까지 탈탈 털다시피 수사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게 윤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인가. ‘성역 없는 수사’는 김 여사에겐 예외인가”라며 “‘명품백’ 무혐의가 확정된다면 특검 외에는 답이 없다. 검찰이 자초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수사팀의 결정이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김건희 여사가 이번 논란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검찰 스스로 논란 키운 ‘김 여사 명품백’ 무혐의 결론> 사설에서 “(수사팀 주장은) 가방은 최씨가 김 여사를 만나 몰카를 찍으려는 수단이었을 뿐 청탁 대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법적으로는 이 판단이 맞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김 여사가 가방을 받은 것 자체는 부적절했던 만큼 김 여사는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바로 사과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 역시 수년이 지나도록 결정이 나지 않고 있다면서 “일반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8월22일 세계일보 사설 갈무리

세계일보 역시 사설 <검찰 명품백 무혐의 결론 내도 김 여사 국민에 사과해야>를 내고 “검찰 결정이 국민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검찰이 제아무리 철저한 수사와 충분한 법리적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하더라도 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김 여사의 진심 어린 사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광복회 외 공법단체 추가하나 “광복회 힘 빼겠다는 의도”

대통령실이 광복회 외 독립 분야 등 보훈 공법단체를 추가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동아일보 단독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최근 독립기념관장 선임 등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광복회와 갈등을 빚은 상황에서 공법단체 추가 지정을 검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8월22일 동아일보 1면 갈무리

동아일보는 1면 <“독립운동 주체, 광복회만이 아니다”… 대통령실, ‘공법단체’ 추가지정 검토>에서 “독립기념관장 인선과 건국절 논란을 겪으며 사상 처음 쪼개진 광복절 기념식을 치른 대통령실이 광복회 1곳만이 지정돼 있던 독립 분야의 공법단체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독립 분야 공법단체 추가지정이 이뤄지면 광복회에 매해 지급되는 예산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다만 공법단체 추가지정을 위해선 국회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광복회 外 독립운동 공법단체 추가… 분란만 더 키울 수도>에서 “이 같은 조치는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 행사와 별도의 광복절 기념식을 치른 광복회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스러운 기류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대통령실이 공법단체의 추가지정을 추진하는 것은 그간 광복회가 누려 온 독보적 위상, 나아가 정부 지원금 같은 독점적 권리를 다른 단체들과 나누도록 함으로써 그 힘을 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8월22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는 “국가보훈부가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 위반 여부에 대한 감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며 “공법단체는 법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만큼 그런 발언에 대해선 정치적 중립 위반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지만, 그것 역시 무리한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지금은 양측이, 누구보다 대통령실이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월22일 세계일보 칼럼 갈무리

이와 관련 세계일보 박창억 논설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 편향적 인물을 반복 등용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칼럼 <이상한 인사>에서 “가장 심각한 대목은 이념 편향적 인물을 반복해 등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론 분열을 불러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과 더불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문수 노동부 장관 인사가 대표적”이라며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수장을 광복회 측의 반발이 예상되는 인물을, 사전에 충분히 조율작업도 하지 않고 왜 앉혔는지 모를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면초가의 위기 국면에서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고 ‘확실한 내 편’을 결집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장악 청문회 이어가는 과방위… 조선 “정쟁 별개로 AI기본법 처리해야”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등 방송장악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하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민생 법안 처리 요구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사설 <국회 과방위, 정쟁 계속하더라도 ‘AI 기본법’은 처리해야>에서 “과방위에 계류된 법안 중 80% 가까이가 과학·기술 관련이다.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청문회 정쟁과 별개로 AI 기본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 플랫폼 자율 규제, 이공계 지원 관련 법안 등은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8월22일 중앙일보 1면 갈무리

중앙일보는 1면 <‘방송 정쟁’ 논란의 과방위 AI·단통법 논의 회의는 0>에서 “3개월간 18차례 전체회의의 총시간은 112시간 46분이다.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처리된 법안은 고작 4개였는데, 이른바 ‘방송 4법’이었다”며 “합의 처리된 법안은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결국 성과 제로였다”고 했다.

세계일보도 3면 <‘방송 전쟁’에 밀려… AI기본법 뒷전 이번엔 26일 전체회의에 상정될까>에서 “AI기본법이 과방위의 방송 전쟁에 표류하고 있지만 여야는 서로 그 책임을 떠넘길 뿐”이라며 “격화하는 방송 전쟁에 AI기본법 심사 지연을 놓고도 여야 간에 ‘네 탓’ 공방만 벌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정치권 안팎에서 차라리 과방위에서 ‘과학·방송을 분리하자’는 의견이 계속 잇따르는 터”라고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본의 모퉁이엔 반드시 조선이 있다"..."전전(戰前) 회귀를 우려한다"

[단독] 강만길·강덕상 두 역사학자의 마지막 좌담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4.08.21 09:04
  •  
  •  수정 2024.08.21 11:33
  •  
  •  댓글 1

 
 

"우리가 과거에 일어났던 평화롭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역사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세계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지역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가장 먼저 됐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중·일, 동아시아지역에서는 21세기 역사의 큰 흐름인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조금 소극적입니다. 지난 20세기의 불행한 역사때문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또 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이 북과 수교하고 한·중·일만 들어있는 '아세안+3'에서 북도 함께하는 '아세안+4'가 되어야 합니다. 남북의 통일을 일본과 일본 여론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유감입니다." (고 강만길(姜萬吉, 1933.10.25~2023.6.23) 선생)

"(미국의 정책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남북한과 국교를 맺고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제대로 된 외국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한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긴 국호를 가진 나라가 생긴지 70년(2018년 기준)이에요. 일본 언론은 처음엔 북선(北鮮)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엔 '기타조센'(北朝鮮)이라고 했습니다.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같은 역사학자들이 '북선'은 아주 차별적인 표현이라며 항의한 결과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전체 이름을 붙여 '기타조센'이라고 하다가 최근 일본인납치사건이 문제되면서 다시 없어졌어요.  신문사 보도국이 합동회의를 거쳐 '기타조센'으로 통일시켜버렸습니다. 북은 나라가 아니라는 거죠.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나는 이런 일본의 모습에 항상 분노합니다. 그저 '조선'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고 강덕상(姜德相, 1931.6.20~2021.6.12) 선생)

2018년 12월 15일 오후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학교 국제연구관 대강의실에서 진행된 고 강만길·강덕상 선생의 생애 마지막 좌담.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영상 갈무리]
2018년 12월 15일 오후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학교 국제연구관 대강의실에서 진행된 고 강만길·강덕상 선생의 생애 마지막 좌담.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영상 갈무리]

'분단시대 사학'과 '시무(時務)의 역사학'을 좌표로 삼아 평생 연구에 매진한 두 역사학자는 지난 2018년 12월 생애 마지막 좌담에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밝혔다.

강만길 선생에게서는 약간의 낙관과 기대감이 묻어났으나, 불편한 몸 상태때문에 안대를 착용하고 좌담회에 임한 강덕상 선생은 '변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좌담에 앞서 그해 4월과 9월 두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사이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상황이었지만 이듬해 결국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전조를 예감해서일까? 

과거 조선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분단을 넘어서려는 남북의 노력에 어깃장을 놓는 일본에 대해서는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는 묵직한 경고를 보냈다.

고 강만길·강덕상 선생의 좌담은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역사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지난 2018년 12월 15일 오후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학교 국제연구관 대강의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강덕상 선생이 5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재일 조선인 최초로 일본 국립대 교수로 부임한 '히토츠바시대학교'의 '한국학연구센터'와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7년 강만길 선생이 설립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했으며, 조선여성사 연구의 권위자인 송연옥(宋連玉)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学院)대학 명예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강덕상 선생의 첫 한국인 제자이자 당시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하며 행사를 주관했던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 센터장은 "좌담은 병상에 있던 강덕상 선생의 희망과 요청에 따라 강만길 선생이 일본을 방문해 이루어진 것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방청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전날엔 강만길 선생의 강연도 열렸다"고 설명했다.

좌담에서 강덕상 선생은 "조선과 일본이 수교를 결정한 강화도조약(1876)이후 벌어진 청일전쟁(1894.7.~1895.4)과 러일전쟁(1904.2~1905)도 모두 '조선전쟁'이고, 갑오농민전쟁과 의병투쟁, 3.1운동은 '조선의 항일전쟁'이며,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대규모 정규군을 간도에 출병시킨 후부터는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다"고 하면서 일본의 역사는 '조선과의 전쟁의 연속'이라는 지론을 재확인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황은 150년 동안 조선의 상황에 의해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모퉁이(역사적 전환기)에는 반드시 조선이 있다"는 결론이다.

또 일본이 '전후 민주주의'를 내세워 전전(戰前)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약점을 극복했다고 주장하지만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일본의 정책에 의해 끌려온 재일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할 때부터 이미 전전으로의 회귀는 시작된 것이라며 "일본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남북대화와 평화무드를 가장 달가워하지 않고 훼방을 놓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하면서 "근저에서부터 일본이 이같은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신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일에 이바지하는 역사학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강만길 선생은 "한국의 역사학계, 특히 젊은 역사학자들이 상당히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좋은 업적도 많이 나온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우리 세대보다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민족문제나 통일문제에 있어서 훨씬 더 나아지고 있다. 그 점에서는 아주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역시 좌담에 앞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된 당시의 희망적 분위기에서 나온 이야기로 보인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 "남북 공동으로 국사학 개설을 쓰기로, 남북의 젊은 역사학도들을 서로 교류하도록 합의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꺼져버렸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개성만월대 공동발굴과 복원사업을 비롯해 좀 더 구체적인 진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이에 대해 강덕상 선생은 자신이 초창기부터 참여했던 '조선사연구회'(1959년)에서 이미 1995년 무렵 탈퇴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일본의 전전(군국주의) 회귀 영향이 강하게 불어 그곳에서도 더 이상 남북 문제와 여러 형태로 관련되는 역사적 문제를 다룬 논문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조선사 연구를 통해 일본사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져가는데 대한 짙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식민지배와 저항이라는 다른 결로 구성되어 있는 한일 근현대사는 어떡하든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이 우리에게는 근대사이고 일본이 지배한 과정이 현대사"라는 강만길 선생의 정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좌담은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역사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진행됐다. 사진은 좌담 포스터.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좌담은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역사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진행됐다. 사진은 좌담 포스터.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앞선 강덕상 선생의 구술기록에 따르면, 조선사연구회는 와세다(早稻田)대학생 강덕상이 '중국사'에서 '조선사'로 연구 방향을 정한 이후 미야타 세츠코(宮田節子), 권영욱(權寧旭), 그리고 가지무라 히데키 등 학문적 동지를 만난 곳으로 일본내 조선사 연구의 시초이다.

신노 사토루(神農智)라는 일본식 통명을 버리고 강덕상이라는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일본공산당 소속으로 같은 대학 중국연구소 연구원인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郎) 선생이 '조선인이면서 왜 조선사를 공부하지 않느냐? 조선사는 일본의 근대사를 바라보는데 가장 중요한 거울'이라는 말을 들었던게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조선총독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만든 우방협회에서 호즈미 신로쿠로(穂積真六郎, 총독부 식산국장·조선전기주식회사 사장), 곤도 겐이치(近藤釼一, 경성일보 편집기자), 시부야 레이지(渋谷礼治, 조선은행 간부) 등을 만나 조선지배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며 전후 최초로 '조선근대사료연구회'도 만들었다.

연구회가 유명해지자 야마베 겐타로, 박경식, 금병동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참여도 늘어나 2~3년 사이에 조선사연구회가 만들어지게 됐다.

와세다대학 중국연구회의 조선사 연구그룹인 '조선사부회(朝鮮史部会)'에서 출발하여 우방협회 '조선근대사료연구회'를 거쳐 조선사연구회까지 발전한 것. 

강만길 선생은 "지금은 국내에서도 젊은 학자들이 근, 현대사를 많이 연구하지만 상당 기간 활발하지 못했다. 재일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연구성과는 그때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강만길 선생의 연표에는 1967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처음 발령을 받고 1970년 반년간 교환교수로 일본을 방문해 처음으로 『역사과학』 등 북의 역사학 동향을 접하게 되었으며, 1978년 8월부터 와세다대학교 파견교수로 1년간 생활하면서 강덕상을 비롯해 박경식(朴慶植), 강재언(姜在彦), 이진희(李進熙), 박종근(朴宗根) 등 재일 역사학자들과 교류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후기 상업사에 대한 다수 논문을 발표하다 1980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에서 해직되기 전인 1978년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필두로 『한국민족운동사론』(1985),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1990), 『고쳐 쓴 한국 근·현대사』(1994)를 비롯한 저서를 발표했는데, 이날 좌담에서도 "내가 처음으로 한국 근대사, 한국 현대사를 쓰는데 거기에 재일 역사학자들의 업적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표적 연구로는 △조선도 근대화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역사임을 밝힌 자본주의 맹아연구 △좌우합작 독립운동 연구 △식민지근대화론의 반론을 위해 그 시대 민중의 삶을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 규명한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등을 꼽았다.

또 '분단시대'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1945년 8.15 이전을 '일제시대', 그 이후를 '해방 후 시대'라고 했으나 '반드시 통일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의지를 담아 그렇게 명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덕상 선생은 △가지무라가 주장한 '내재적 발전론'을 '화폐론'으로 묶어 증명하려 했지만 내재사관 성립하지 않아 5~6개 논문을 끝으로 그만 두었던 일 △연구주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다니던 민족학교 담임이었던 박경식 선생으로부터 '시무'(時務, 시대의 의무)의 역사인 '강제연행 연구'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을 실증적인 일본의 지배문제로 연구한 일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쟁취했다는 시각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산화한 위인들을 찾던 중 여운형을 발견해 40여 년간 연구한 일에 자신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운형은 항상 민족을 중심에 놓고 싸운 사람이라며, "지금의 분단을 통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 사람을 남북 양쪽이 제대로 평가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강덕상 선생의 『여운형 평전』은 제1권 '조선 3.1독립운동'과 제2권 '상하이 임시정부', 제3권 '중국 국민혁명의 친구로서'에 이어 2019년 '일제 말기 암흑시대의 등불로서'라는 제목의 제4권까지 총 1,688쪽의 대작으로 완간되었다.

좌담에 앞서 도쿄 시내를 걷는 강만길·강덕상 선생.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좌담에 앞서 도쿄 시내를 걷는 강만길·강덕상 선생.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오랜 벗으로 두터운 정을 나누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이 때가 마지막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더 이상 오갈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강덕상 선생이 2021년 6월 21일 별세하고 강만길 선생마저 2년뒤인 2023년 6월 23일 우리 곁을 떠났다.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오랜 벗으로 두터운 정을 나누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이 때가 마지막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더 이상 오갈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강덕상 선생이 2021년 6월 21일 별세하고 강만길 선생마저 2년뒤인 2023년 6월 23일 우리 곁을 떠났다. [사진-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송연옥 교수는 "만약 두 분에게 항일투쟁을 한 인물과 역사적인 대담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하고 싶으냐"는 흥미로운 질문도 던졌다.

강만길 선생은 김원봉을 선택했다. 평생 육탄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후 귀국해서는 미군정의 경찰책임자에 의해 감옥에 가고, 가족과 함께 북으로 갔으나 거기서도 감옥살이를 했다고 하니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서 가장 억울한 분'이라는 이유이다.

강덕상 선생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분명히 인식하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 '국내에서 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면서 해방을 준비한 사람', '일본의 지배아래서 49%까지는 양보하더라도 51%는 내 것으로 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한 여운형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학문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정사 고민까지 허물없이 나누던 두 역사학자는 좌담에서 민족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기엔 일본 초대 천황인 진무텐노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알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 단군도 전혀 몰랐던 1945년 전 소년 강만길, 한 민족끼리 싸우는 처참한 전쟁을 직접 겪으면서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고민하던 19살의 대학생 강만길이 있었다.

두살 위인 강덕상은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지금의 도쿄 아자부(麻布)의 후루카와쵸(古川町)의 조선인 부락에서 살던, 교육칙어를 전부 암송하는 열렬한 '황국신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근로동원에 나갔던 중학교 2학년때 하숙집으로 돌아와 대성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멍한 상태로 '나는 일본인과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일장기를 반쯤 색칠해 태극기를 만들어서는 만세를 부르는 많은 조선사람들을 보면서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대학에 갈 형편도 안되었기 때문에 선원을 양성하는 상선학교나 수산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일본 국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와세다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반대, 원자폭탄을 쓰지말라는 학생운동에 동감해 참가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조선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무렵 만난 야마베 겐타로는 큰 스승이었다. "조선인인 네가 왜 중국사를 하는가. 조선사는 일본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거울이다"라고 한 지적은 지금도 옳은 말이라고 새기고 있다. 

결국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스스로 '나는 조선인이다. 민족사를 배워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강만길·강덕상 두 역사학자의 좌담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이 망각하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다. 

"역시 민족을 되찾는다는 것. 이것은 사상이 아닙니다.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한 것은 좌와 우입니다. 이것은 사상입니다. 그 뒤편에는 공통의 민족 체험이 있습니다. 이것을 회복한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는 강덕상 선생의 외침을 되새겨볼 일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고] 3년은 너무 길다!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 끌어내리자!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4/08/22 [08:24]

   

© 대통령실

 

대부분 언론은 이번 8.15를 ‘둘로 쪼개진’ 광복절로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일매국 윤석열의 반자유·반통일세력과의 투쟁 결의대회’와 ‘친일 사관에 맞선 항일애국 독립운동단체의 광복절 행사’이다.

 

‘항일애국 독립운동단체 광복절 행사’는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폄훼하고 친일매국노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친일매국 행태에 맞서 선열의 자주독립 운동의 얼을 선양, 계승하는 독립운동단체의 결기 어린 대회였다.

 

윤석열은 이번 경축사에서 ‘일본’을 단 2회 언급했다. 그마저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일본과 비교하는 데, 그리고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를 비교하는 데 ‘일본’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이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정부 산하 국내 3대 역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김낙년(『반일 종족주의』의 저자)을 7월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허동현(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참여)을 5월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박지향(『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공동 저자)을 1월에 임명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이들 역사기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배 만행을 밝혀내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들 기관의 수장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본의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공공연히 부정해 온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을 버젓이 임명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친일매국노가 판을 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를 보고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광화문광장에서 “제79주년 광복절 맞이 ‘친일 주구’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윤석열을 지칭하며 “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입니까?”라고 비난했다.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 윤석열

 

경술년(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어 나라가 망했다. 바로 경술국치(庚戌國恥)였다.

 

그리고 일본은 더욱 강력하고 보다 직접적인 통치기관이자 수탈기관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그 우두머리로 총독을 두어 1910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통치했다. 총독은 ‘오직’ 일왕에게만 책임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존재로 총독의 말이 곧 법이었다.

 

조선 총독은 9대까지 있었다.

 

총독의 면면은 하나같이 철천지원수지만 그중에도 악질적 총독의 면면이다.

 

초대는 데라우치 마사타케(1910.8.29.~1916.10.14.)로 취임식에서 ‘이제부터 조선인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라고 무단통치를 실시한 자다.

 

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1916.10.14.~1919.08.12.)는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때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이었으며 의병 탄압에 앞장섰다. 총독 재임 시 3.1운동이 일어나자 무력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진압한 자로, ‘제암리학살사건’ 등 만행이 알려져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자 사임했다.

 

3·5대는 사이토 마코토(1919.8.12.~1927.4.4., 1929.8.17.~1931.6.16.)로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전환하는 등 형식상 ‘문화통치’를 하였지만, 실제로는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추진하면서 조선의 경제를 수탈하였다. 또한, 자치론을 들먹이며 친일파를 육성하여 민족분열 책동을 조장(助長)한 자이다.

 

7대 미나미 지로(1936.8.5.~1942.5.28.)는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문화통치를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핑계로 지원병제도,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사용금지 등 민족 말살 정책을 편 자이다.

 

8대는 고이소 구니아키(1942.5.29.~1944.7.21.)로 역시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조선인을 전쟁에 총동원시킨 자이다. 학도병 지원제와 징병제를 실시하여 수많은 청년을 전장으로 몰아넣은 원흉이다.

 

9대 아베 노부유키(1944.7.22.~1945.9.28.)는 1943년 조선 여성을 징발하기 위해 ‘여자정신근로령(女子挺身勤勞令)’을 공포하여 전쟁에 여성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이용했다. 이자는 놋그릇 공출, 전시 채권 강매, 강제저축 등으로 마지막까지 조선인을 착취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다른 날도 아니고 광복절에,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죄상을 거명하지도 않으니, 과연 한국의 대통령이란 말인가!

 

이러니 조국 대표에게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입니까?’라고 멸시당하는 것도 싸다.

 

일본은 우리의 원수이자 중국과 러시아의 원수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박은식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서문당, 2019 / 수정 신판) 머리말에서 일본을 우리의 원수라 했다.

 

“일본 사람이란 것은 대대로 우리의 원수가 되어, 천백 년 이래로 쌓이고 쌓여서 서로 융합할 수 없다. 하나는 향기 나는 풀(薰)이고, 하나는 악취 풍기는 풀(蕕)과 같다, 절대로 피차 조화될 도리가 없다.

또 저들이 우리나라를 탈취한 것은 오로지 간사한 꾀와 힘으로써 하고, 신의와 맹약을 무시하여 버린 것이다. 비록 다행히 한때를 제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더라도,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는 결코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중략)

일본은 편벽(偏僻)되어 극동의 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서, 보고 들은 것이 본래부터 고루하다. 이는 새까맣게 물들이고 몸에는 먹실을 넣은 채 어별(魚鼈)과 함께 살고 있다. 음식·의복·가옥·기물 등은 우리에게서 배워 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보건대, 시급히 도모하여 자강(自强)하지 않으면 자존(自存)할 수 없고, 예의진취(銳意進取)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었다.

이에 국민을 무작정 외곬으로 돌진시켰다. (중략)

그러나 무인(武人)의 전제(專制)에 일반 민심은 불평을 품고, 밖을 향하여 내달림이 지나치게 급격하여 백성의 힘은 이미 피폐하였다.

저들이 우리나라를 도모함에 있어서, 우리의 민의를 무시하고 오직 소수의 간사한 무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싫어할 줄 모르는 야욕을 제멋대로 한껏 부린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도 또한 그 술책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 이권을 탈취한 것은 많으나 민의를 잃음이 너무나 많고, 더구나 그들의 군민(軍民)들은 교만하고 횡포하여 남에게 포학함을 저지른 (遇)가 많다.

그리하여 저들은 한 번 나아가서 우리의 2천만과 원수가 되고, 둘째는 중국의 4억 민중과 원수가 되며, 셋째는 러시아의 2억 국민과 원수가 되었다.”

 

일찍이 선열들은 일본을 천백 년 이래로, 대대로 우리 민족의 원수로 여겼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자가, 그것도 광복절에 일본 강점에 대한 사과는커녕, 아예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말인가!

 

이제 민중은 그동안 일본에 굴종·굴복한 윤석열과 한 줌도 안 되는 추종세력을 ‘친일매국노’로 천 년 동안 불러주마!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 없다!

 

다행히 윤석열과 달리 독립유공자와 후손단체인 광복회 이종찬 회장은 지난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단호하게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서 말했다.

 

특히,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일부이다.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일환으로 광복회원들의 결기를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분열의 시작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진정한 통합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국민 여러분!

광복절은 침해된 주권을 되찾은 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제 강점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주권을 침해당했을 뿐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립니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근간을 왜곡하는 일에는 반드시 단죄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복회는 친일 사관에 물들어 저열한 역사 인식을 가진 뉴라이트에 대해 “뉴라이트는 해방 후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일제강점기 일본의 국권 침탈은 불법·무효이다’라는 입장을 뒤엎어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입니다”라고 정의했다.

 

광복회가 정의하는 9대 뉴라이트이다.

 

1.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2.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3.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5. 식민 사관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6. 일제강점기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7.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8.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9.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한반도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윤석열은 작년 8.15 경축사에서 정부비판세력을 공산전체주의세력으로 매도하며 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라 예를 들며 망발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체주의세력은 자유 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세력의 생존 방식입니다.

공산전체주의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올해 또한 경축사에서 윤석열은 정부비판세력을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로 묘사하며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으로 매도했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하여 유통시키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고, 진짜 목표를 밝히면 거짓 선동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입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입니다.”

 

윤석열은 마치 일제강점하 제10대 조선 총독(?)인 양 행사하려고 하느냐!

 

과거 일제강점기는 헌병경찰제도를 두어 조선인들의 저항을 총독이 제압하고 감옥에 넣었다.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민족문제연구소, 2010)에 나오는 조선인 수감자 수치다.

 

“1908년 10월 말 재소자는 2,019명이었으나, 1909년에는 1일 평균 수용인원이 15,725명, 1930년 16,677명, 1940년 18,182명, 해방 직전인 1944년에는 21,900명에 달하였다. 피지배 민족인 식민지 조선인에게는 사실상 한반도 전체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윤석열이 말하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을 체포하여 한반도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3년은 너무 길다!

 

윤석열은 지금 정권의 위기가 닥쳐옴을 알고, 탈출을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마치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준비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강력히 탄압하기 위해 ‘일본의 국체(國體) 및 정체(政體)의 변혁과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12.) 제정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중일전쟁을 도발하면서 조선중앙위원회(1937.7.)를 두고 조선 지식인에 대한 개인적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조선총독부 경무국 주도로 조선방공(防共)협회(1938.8.)를 조직하여 공산주의 사상 및 그 운동을 박멸하고 일본 정신을 찬양하게 했던 일제강점기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민족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 전선에서 투항하거나 ‘전향’한 사람들의 단체인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1938.8.)을 만들어 전향자들에게 ‘사상국방전선’에서 반국가적 사상을 파쇄하고 격멸하는 육탄 용사가 되기를 요구하는 일제강점기 정책을 보는 듯하다.

 

지난 8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벌써 21번째 거부권이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전세 사기 특별법, 농어업회의소법, 지속가능한 한우산업 지원법 등으로 대부분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민생 개혁 입법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은 마누라와 장모 그리고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불볕더위도 이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꺾이기 시작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렁이 인간의 권력욕과 탐욕에는 자연의 순리를 기대해선 안 된다. 특히 일본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일본 국익에 복무하는 자는 그대로 둘 수 없다.

 

지난 자랑스러운 민중 투쟁 역사의 순리로 쟁취해야 한다.

 

무지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아!

 

민중의 ‘퇴진하라!’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게 나라냐!

 

3년은 너무 길다!

 

반제·반일·자주·평화애호세력은 총단결하라!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용마 기자 5주기, "지지 않는 것이 언론노조의 전통"

기자명

 

  •  김준 기자
  •  
  •  승인 2024.08.21 22:46
  •  
  •  댓글 0
 

고 이용마 기자 5주기 추모식
12년 전, 이용마와 이진숙의 악연
"이용마의 싸움 우리가 이어받는다"

 

고 이용마 기자
고 이용마 기자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윤석열 정부가 2012년 공영방송 장악을 답습하려는 지금, 당시 정부에 맞섰던 한 기자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 뜻을 이어가고자 모였다.

언론탄압에 당당히 맞섰던 고 이용마 기자의 5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언론탄압이 노골적인 현재, 다시 그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용기를 이어가기 위한 이들이 광화문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다.

2010년대 초 이명박 정부는 방송사 경영진을 친정부 인사들로 교체하며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특히, MBC의 경우 김재철 사장이 임명된 후, 보도 방향이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돼갔다.

이에 기자들과 PD들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보도 내용이 왜곡되고, 정부를 향한 비판 보도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파업에 돌입했다.

약 500여 명, 170일이라는 방송사 최장 파업, 그 선봉에 이용마 기자가 있었다. 그는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을 지내며 노조의 대변인 활동을 펼쳤다. 경영진은 이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파업 참가자들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취했다. 많은 파업 참가자들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고, 이용마 기자 역시 해고당했다. 

그러나 MBC 파업은 많은 시민과 언론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KBS와 YTN 노조가 연대하기 시작했고,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도 파업에 참여했다. 그 영향으로 무한도전 방송은 중단됐고, 재방송 분량이 방영됐다. 

해고당한 이용마 기자는 국민 라디오 ‘이용마의 한국정치’를 진행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알렸다. 그 과정에 현 방송통신위원장인 이진숙의 노조 파괴 행위를 고발하기도 했다.

외부 단체 연대도 이어졌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국제언론인협회(IFJ)도 MBC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한국 정부에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촉구했다. 

긴 투쟁의 결과, 2017년 법원은 이들의 파업이 정당한 쟁의행위로 판단해 이용마를 비롯한 기자들과 PD들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공정방송 의무는 근로조건에 해당하므로 사측이 인사권 남용으로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것은 근로조건 저해라며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거다.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최초의 대법 판례였다.

또, 대법원은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김장겸(현 국민의힘 의원)과 기획홍보본부장이었던 이진숙(현 방송통신위원장)의 ‘부당노동행위’, ‘직원 사찰’을 인정해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고 이용마 기자 추모식 ⓒ 김준 기자

고 이용마 기자가 타계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정부는 언론자유를 구태로 후퇴시키며 사라졌어야 할 김장겸과 이진숙을 그 선두로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8월 이명박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며 KBS, MBC, EBS의 이사 및 이사장 교체를 시도하고, KBS 김의철 사장을 해임해버렸다.

지금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는 2010년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방송문화진흥원의 경우, 법원이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기존 체제를 유지했지만, 이진숙 신임 방통위원장이 2시간 만에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마쳐버렸다. 

현재 법원은 이진숙 위원장이 졸속으로 처리한 방문진 이사진 임명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심리를 진행 중이다. 26일 그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공영방송의 운명이 결정된다. 

21일 추념식에서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미래를 결정할 운명을 결정할 정말로 중차대한 결정”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정의가 존중받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재판부가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마지막 꿈으로 삼았던 고 이용마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MBC 구성원이 되겠다”며 “그가 목숨을 걷고 내걸었던 그 가치 잊지 않고 MBC 반드시 지키는 힘을 시민 여러분이 함께 해달라” 호소했다.

이진숙 위원장이 기획홍보본부장을 역임하던 시절, 이용마 기자와의 악연도 소개됐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던 강지용 기자는 “이진숙 본부장이 회사 특보를 통해 김재철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계속 변명해주고 변호했는데, 이용마 기자가 매일 파업 특보를 통해 그 내용에 반박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만은 최소한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배신한 게 이진숙 국장의 회사 특보였다”고 전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자기를 불살라서 싸웠던 나의 동료는 이제 재가 됐다”며 “이제 그 싸움을 제가 이어받았고, 우리가 함께 받아 안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용마 기자와 같은 해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용마 기자를 처음 본 건 방송사 면접 시험장이었다”며 “다른 언론사를 소속으로 기사 경쟁해야 할 기자들이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언론탄압이 질서가 되는 세상을 맞닥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 유구한 전통은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이라며 “이번에도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터뷰] 박은정 “채상병 특검법 또 거부하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할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8/21 09:59
  • 수정일
    2024/08/21 09: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경훈 기자 qa@vop.co.kr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9 ⓒ민중의소리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대중들 사이에선 ‘윤석열 저격수’, ‘검찰 저격수’로 불린다. 검사 신분으로 현직 검찰총장을 감찰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검찰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 행사가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다”, 박 의원이 22대 국회에서 하려는 것이다.

 

‘민중의소리’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의원을 직접 만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일원으로 서울구치소 현장검증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탄핵소추 조사 대상인 김영철 검사가 국정농단 공범 장시호에게 위증교사를 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절차였다. 지난 6월 22대 국회 개원 이래 박 의원은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요청 국민동의청원 청문회, 검사 탄핵 청문회 등 윤 대통령과 검찰을 관통하는 권력 견제 활동의 한가운데 서 있다.

 

-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을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2000년 2월에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검사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25년 차 검사인 올해 3월 6일에 해임 처분을 받았어요.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했다는 이유로 막상 해임이라는 처분을 받고 나니, 그동안 제가 검사로서 보람되게 일했던 이런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됐고,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순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정치인 박은정으로 싸우겠다고 마음먹은 건가요?

“반드시 소송을 해서 바로잡겠다고 생각을 하던 무렵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께서 창당을 하고 연락을 해오셨어요. 처음에는 ‘정치’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징계 취소 소송을 해서 윤석열 대통령과 싸우는 것과 조국혁신당이 내세운 ‘검찰독재 조기 종식’이라는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 징계 때문에 변호사 활동도 어려웠을 테고요.

“그렇죠.”

 

- 짧은 기간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주변에선 반응이 어땠습니까?

“저는 정치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컸어요. 특히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말리기도 해서 그것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앞으로 계속 윤석열, 검찰과 싸워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또 어려움을 겪을까봐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 국회에서 무엇을 할 건가요?

“국회의원으로서 제 정치적 과제는 검찰독재 조기 종식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겁니다. 검찰개혁 법안들을 반드시 통과시키는 거고요.”

 

- 문재인 정부 때 검찰개혁은 미완이었나요?

“미완이 아니라 실패했습니다. 6대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해줬어요. 분리가 아니라 수사권을 조정한 거지요. 처음부터 수사·기소 분리를 내걸고 그 방향으로 갔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윤석열도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한다고 하고 총장이 됐어요. 문재인 정부 초기에 적폐청산 수사를 이른바 ‘윤석열 특수부’에 맡기면서 특수부가 강화되고, 그게 여론의 지지를 얻었어요. 그러고 나서 수사·기소 분리를 하려고 하니 힘을 잃었던 거지요. 검찰 내부 기류도 바뀌었고요.”

 

- 검찰 조직 자체도 권력화에 딱 맞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실질적 인사권을 가진 총장 아래에 줄 세워서 요직에 앉히고 말 안 듣는 임은정 검사 같은 사람은 지방만 전전하잖아요.

“그렇죠. 인사권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게 해줘서 말을 듣게 하고, 검사들이 권력을 지향하도록 하죠. 말 안 들으면 징계를 하고요. 인사와 징계,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조직을 장악해서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검사를 고립시키는 게 탁월한 조직이죠.”

 

- 추미애 장관 때는 검찰을 건드리면 그 상대가 장관이라도 들이받더군요.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사실 문민통제의 의미가 컸지요. 윤석열 검찰총장의 배우자 수사와 관련해 총장 지휘권을 배제시키는 지휘였잖아요. 그것마저 없으면 검찰권은 그 어떤 문민통제도 받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지요. 초유의 사태라고 말들 하는데, 과거엔 법무부 장관도 검찰 출신, 민정수석도 검찰 출신이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으니 그럴 일이 없었던 겁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9 ⓒ민중의소리

 

- 그런 검찰이 지금 조국혁신당이 수사권 폐지를 시도하면 가만히 있을까요?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권이 남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문제의식을 갖는 검사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듣기로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서도 수사·기소권 분리에 찬성하는 분들이 꽤 많다고 해요. 그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깐요.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 설득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최근 무차별적 통신조회 사찰 논란에서 알 수 있듯, 국민 누구나 검찰 수사로 인한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어요. 무도한 수사로 전직 대통령도 돌아가시고,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잖아요. 그런 검찰 권력이 끝없이 확대돼서 급기야 가장 큰 권력을 쟁취해서 그 권력마저 오용하는 상황이에요. 국민들의 문제의식은 과거와 분명히 다를 겁니다.”

 

조국혁신당은 박 의원을 필두로 22대 국회 안에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공소청법과 중수청법, 수사절차법 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핵심은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고 수사기관의 적법 절차와 인권보호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조국 수사는 수사가 아니라 ‘사냥’이었다”

 

조국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가족 등 주변부를 겨냥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조 대표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중국집 배달부에게 취재를 하는 모습이 담긴 기괴한 사진이 그때 나왔다. 막강한 수사·기소권에 기반한 이른바 ‘먼지털이식’ 수사였다. 이는 그동안 검찰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지적되어왔고,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이기도 했다.

 

- 보수진영에선 조국 대표 수사에 대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해야죠. 하지만 수사라는 건 굉장히 침익적인 행정행위이기 때문에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도 부합해야 하고, 따라서 그것이 너무 과잉이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 조국 수사는 과도했다는 건가요?

“과도한 수사였죠. 온 가족을 다 수사를 하고, 심지어 기소 적절성에 대한 문제가 됐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일어났던 그 수많은 피의사실공표라던지 각종 위법한 논란이 됐던 많은 것들을 살펴보면, 그건 수사가 아니라 사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다른 정치인 수사와의 형평성 논란도 있었습니다.

“수사는 공평해야 됩니다. 정의는 형평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수사했던 사건 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사건 중에 이 전 대통령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한테 받은 뇌물 사건과 관련해 김윤옥 여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어요. 그때 검찰은 소환을 시도했다가 출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가 수사를 포기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 및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의 뇌물수수 정황을 확인하고도 김 여사가 출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김 여사의 뇌물수수 사실은 법원에서 인정됐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데 따라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9 ⓒ민중의소리

 

- 검찰의 조국 대표 관련 수사가 과도했다면 재판 절차에서 교정이 됐을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수수사라는 게 그렇습니다. 처음에 압수수색을 하는 순간 피의사실공표를 마구 합니다. 그 자체로 피의자를 악마화시켜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 동력으로 구속영장 청구까지 가요. 영장을 심사하는 판사 입장에선 한쪽 입장만 볼 수밖에 없는 거지요.”

 

- 재판은 검찰 공소를 바탕으로 하는데, 결국 검찰의 무리한 수사의 영향으로 법원 판단이 왜곡됐을 수도 있다고 보시나요?

“그 부분은 제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법원도 어느정도는 그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근본적으로는 정치 수사가 문제군요.

“모든 특수수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윤석열 검찰의 특수수사가 정치적으로 보이는 건 자명하잖아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계속해서 한쪽에 대한 수사만 과도하게 하고 있는데, 마치 대통령의 정적 죽이기를 같이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요.”

 

- 이재명 대표 수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죠. 이 대표에 대한 수사라든지, 민주당에 대한 수사, 이런 것들에 반해서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수사는 굉장히 초라하잖아요. 이런 모습들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검찰 주류와 보수 쪽에선 “박은정도 정치 검사”라고 비난한다. 다만 ‘검사 박은정’은 성폭력 분야 공인전문검사로 인정받고, 검사 임관 후 10년간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최다 처리 실적을 보유한 인물이다. 2010년 서울서부지검에 있을 때는 검찰 최초로 성폭력범죄대응센터를 개설했고, 검찰의 성폭력 수사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 정치 검사 이력이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윤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위헌적, 헌재 권한쟁의심판 대상”

 

당장 정치권력에 대한 사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및 명품백 수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수사 이력은 윤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다. 의아한 상황이다.

 

-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데, 특검법도 번번히 좌초됩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 사건이라서 계속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본인 수사를 막기 위한 거부권 행사이기 때문에 아무리 헌법상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 규정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 거부권의 내재적 한계를 일탈하는 위헌적인 거부권 행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방법이 없나요?

“조국혁신당에서도 채해병 특검법을 또 발의를 해놓은 상태인데, 만일에 이것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저는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으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이 거부권 행사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 헌재 판단을 받아낼 겁니다. 결국 윤 대통령이 무한반복으로 거부권 행사를 하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 민주당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안했던 3자 추천 특검법도 논의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합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찬대 원내대표가 논의해보자고 하니 한 대표가 또다시 발을 빼고 있잖아요. 저는 당대표 선거용이었다 생각하고, 실제로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으로선 진상규명을 위한 고육지책 아니었을까요?”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9 ⓒ민중의소리

 

-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이나 명품백 수수 관련 수사 과정도 논란이 많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 입장에서는 주가조작 사건 같은 경우 오래 되기도 했고, 명품백 관련해서도 당연히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니 이걸 제대로 안 하고 임기를 마치게 되면 나중에 특검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모양새를 갖춰서 조사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제대로 수사를 해보려고 했다는 건가요?

“아니요. 기소하겠다는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다만 조사하는 모양새를 갖춘 뒤에 불기소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합니다. 근데 그마저도 실패했던 거죠.”

 

- 무엇 때문에요?

“그마저도 용산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검찰은 김건희 여사를 소환하지 못하고 김 여사 측이 지정해준 이른바 ‘안가’에서 출장 조사를 했다. 담당 검사들은 경호처 관할이라는 이유로 휴대전화를 반납하기도 했다. 또한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에 앞서 해당 명품백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실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이미 무혐의 판단을 전제로 공매를 통한 국고환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그 명품백이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것이 맞는지에 대한 동일성 검증 작업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 행태는 어떻습니까?

“이런 수사는 검찰 역사상 없었습니다. 부끄럽고 초라하고 비참한 몰골이라고 생각합니다.”

 

- 윤 대통령이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를 발탁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송경호 검사장이 김 여사 명품백과 주가조작 수사와 관련해 김 여사를 소환하네 마네 하다가 그것 때문에 부산고검으로 갔어요. 좌천성 승진인 셈인데, 그때부터 저는 심우정을 염두에 뒀다고 생각해요.”

 

- 특수부 검사들에 대한 불신 때문인가요?

“특수부 검사들이 자기처럼 언제 또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거지요.”

 

- 또 다른 특수부 출신 한동훈 대표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될까요?

“지금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충돌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두 사람은 한 몸이자 운명공동체일 수밖에 없어요. 두 사람의 사법리스크는 겹치지요. 서로를 지켜줘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봉합인 듯, 아닌 듯, 그냥 이대로 끝까지 갈 겁니다.”

 

“ 강경훈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파치’ 4.7조 원어치 구매…한반도에선 ‘무용지물’인데 왜?

방위사업청, '아파치 한반도 지형과 기후에 안 맞다' 이미 판단

‘아파치’, 걸프전에 투입된 사막전쟁용

‘아파치’ 왜 또 구매했을까?

폴란드, 최근 '아파치' 96대 구매

미국 국무부의 승인에 따라 한국 정부가 35억 달러(약 4조6655억원) 규모의 아파치 공격 헬기(AH-64E) 36대 및 관련 물품을 ‘보잉’과 ‘록히드 마틴’에서 구매한다.

그런데 2018년 방위사업청(DAPA)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치’는 성능 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겪고 있어, 목표물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한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소프트웨어 결함과 해상 탐지 능력의 부재가 지목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아파치’ 36대를 약 1.8조 원에 구매했다. 당시 ‘아파치’에는 롱보우 화기 관제 레이더가 장착된 고급 센서 장비를 탑재하고 있어, 최대 12km 거리에서 128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탐지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파치’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국군은 이 레이더의 성능이 기대 이하였다고 밝혔다. 롱보우 레이더는 공중 공격 작전 테스트에서 제대로 목표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정된 4개의 목표물을 101개의 목표물로 잘못 인식하는 결함을 보였다고 방위사업청 보고서는 지적했다.

별도의 산악 지형 테스트에서는, 6km 떨어진 18개의 목표물을 9개로, 3km 떨어진 18개의 목표물을 5개로 잘못 인식한 것. 가장 심각한 결함은 해상에서의 테스트 중 발생했는데, 이 레이더가 어떠한 목표물도 탐지하지 못해 아파치 헬기가 사실상 해상 공격에 대해 '눈먼' 상태가 되었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광대한 해안선과 북의 다양한 대공 방어 시스템을 고려할 때, 이는 특히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진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록히드 마틴에 레이더 성능 향상을 요청했지만,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바람에 뒤로 미뤄진다.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는 예산 4000억원을 투입해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성능 향상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완료된 후에도 기존에 제기된 레이더의 탐지 정확도 문제와 해상 탐지 능력 부재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이 소프트웨어 결함이나 시스템 설계상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도입하는 ‘아파치’와 관련 물품 역시 헬기의 일부 성능이 향상됐을 뿐, 탐지 및 레이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아파치’, 걸프전에 투입된 사막전쟁용

본래 ‘아파치’는 1991년 걸프전에 처음 실전 배치돼 사막 전쟁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70%가 산악지형이고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한반도에서 ‘아파치’의 효율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파치’는 평지나 개방된 지역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지만, 산악 지역에서는 비행경로의 복잡성과 시야 제한으로 인해 적을 탐지하고 공격하기가 어렵다. 또한, 산악 지형은 기복이 심해 레이더의 탐지 및 회피 기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반도는 사막과 달리 4계절 기상 변화가 매우 빠르고 극단적이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 여름에는 장마철의 강한 비바람과 안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악천후는 ‘모래폭풍’만을 대비한 아파치의 비행 안정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고성능 전자 장비와 센서의 효과적인 운영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비와 눈, 안개는 열화상 시스템의 탐지 능력을 저하시켜 실전에서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더구나 북은 S-300, S-400과 유사한 장거리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스템은 매우 높은 고도와 긴 사거리에서 헬기를 탐지하고 요격할 수 있다. 또한, SA-2, SA-3 같은 중거리 방공 미사일뿐만 아니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S)과 같은 단거리 시스템도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 저고도로 비행하는 헬기에도 큰 위협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아파치’는 기동력이 떨어져 전방에 배치해야 하지만 기습 공격에 취약하고, 산악 지형의 특성상 ‘아파치’는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지상군과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또한 ‘아파치’는 고도로 복잡한 기계 및 전자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정비와 유지보수에 많은 비용이 든다. 합동군사훈련에서 ‘아파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파치’ 왜 또 구매했을까?

윤석열 정부는 1대당 약 7,000만 달러(한화 약 1,000억 원)씩이나 주고 ‘아파치’를 왜 구매했을까? 한반도 지형에선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몰랐을까. 그럴 수는 없다. 중앙행정기관인 방위사업청이 낸 보고서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무엇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제작해 연내 육군에 납품하게 될 소형무장헬기(LAH)는 무장력이 뛰어나 ‘아파치’에 비해 규격은 작지만 뛰어난 성능 탓에 ‘한국형 아파치’로 평가받는다.

LAH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총 6539억원을 투입해 체계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양산에 들어갔다. 앞으로 육군에서 170여대를 운용할 예정이다. 사실 LAH의 성능을 더 향상하면 미국산 ‘아파치’를 고가에 구매할 이유가 없다.

‘한국형 아파치’로 불리는 국산 소형무장헬기(LAH) 시제기 시험비행 장면.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제공

윤석열 정부가 굳이 ‘아파치’를 구매한 이유는 미국의 강매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오랜 기간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자국산 무기를 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외교적, 군사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 활동을 축소하고, 그에 따라 남은 군 장비와 무기 시스템을 새로운 시장에 판매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파치’는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서 미군 철수와 함께 많은 ‘아파치’가 남게 됐다.

미국은 이런 잉여 장비를 동맹국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13일 폴란드도 미국으로부터 96대의 아파치(AH-64E) 헬기를 100억 달러(13.3조원)에 구매하기로 계약했다. 물론 러시아의 침공을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잉여 장비 강매가 분명하다.

미국의 요청이라면 일본과의 굴종외교도 마다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가 아닌가. 미국의 ‘아파치’ 강매에 혈세 4.7조원을 날려 먹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강호석 기자sonkang114@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 '김건희 후원' 연결고리 영세업체, 대통령 관저 공사 2차례 수주

구글어스로 본 대통령 관저. 빨간색으로 칠한 부분이 45.53㎡(약 13.79평)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 오마이뉴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부(인테리어) 공사 당시 설계·감리를 맡았던 법인등기도 없었던 영세업체(개인사업자)가 관저 증축 공사 계약까지 따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영세업체 대표는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대표였던 코바나컨텐츠 주최 전시에 3차례나 후원한 업체인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아래 희림)와 얽혀 있어, 공사 계약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영세 건축 설계·감리업체인 A사는 지난 2022년 8월 대통령 관저 증축 공사와 관련한 설계·감리 계약을 따냈다. 용산구청이 관련 설계·감리를 허가한 일자는 같은 해 8월 26일이며, 착공일은 3일 뒤인 29일이다.

이 증축 공사에 앞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2년 5월에는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단독] 대통령 관저 공사, 김건희 여사 후원업체가 맡았다 https://omn.kr/202u5)

당시 이 인테리어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실내건축공사업체 '21그램'과 함께 A사 역시 해당 공사의 설계·감리를 수의계약으로 따낸 바 있다. 그런데 A사가 3개월 후엔 관저 증축 공사에도 다시 참여한 것이다.

이 증축 공사는 대통령 관저 2층 공간을 45.53㎡(약 13.79평) 확장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법인등기가 존재하지 않는 A사는 제대로 된 사무실도 갖추지 못한 영세업체였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A사 사무실은 사실상 '유령 사무실'이었다. 지난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해당 건물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여기는) 주소지만 빌려주는 곳이다. 사업자등록을 위해서 (사무실 임대 계약을) 하는 건데, 지금은 그분(A사 대표)이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코바나 후원한 '희림'을 둘러싼 의문점들

법인등기가 존재하지 않는 개인사업자인 A사는 제대로 된 사무실도 갖추지 못한 영세업체였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A사 사무실은 사실상 '유령 사무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 조선혜

A사 대표는 인테리어 시공업체 B사 대표의 남편이다. B사 대표는 희림에 근무한 이력이 있다. 희림은 코바나컨텐츠가 주최한 전시에 3차례나 후원한 업체다. 2015년 '마크 로스코전'과 2016년 '르 코르뷔지에전', 2018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등이다.

B사는 2020년 7월 설립됐으므로, B사 대표가 희림에 재직할 당시 코바나컨텐츠 후원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관저 실내 공사 설계·감리 용역과 증축 공사 용역 역시 코바나컨텐츠 후원이라는 인연을 통해 연결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대통령실, 법인등기 없는 영세업체에 '가급' 국가중요시설 설계 맡겨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부(인테리어) 공사 당시 설계·감리를 맡았던 개인사업자가 증축 공사 계약까지 따낸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대표를 지낸 '코바나컨텐츠'에 3차례나 후원한 업체인 '희림'이 연결고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 용산구청

이밖에도 의심가는 부분은 더 있다. 해당 증축 공사는 2022년 8월 29일 착공해 9월 5일 완료됐는데, 서류상으로 보자면 일주일만에 공사를 모두 마무리한 셈이다.

그러나 약 13.79평 규모의 증축 공사를 일주일 내에 완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건설 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전홍규 변호사(법무법인 해랑)는 "관급공사에 참여할 경우 낙찰 이후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시공뿐 아니라) 설계·감리의 경우에도 최소 한 달 정도는 소요된다"며 "만약 긴급 입찰이었다 하더라도 일주일 내에 모든 게 마무리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가급' 국가중요시설인 대통령 관저의 공사 설계를 2차례나 법인등기도 없는 영세업체에 맡긴 것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 변호사는 "대통령 관저는 테러 문제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국가 중요 시설이고, 이에 대한 설계는 당연히 안보와 직결돼 있다"면서 "관저 설계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데 대기업보다 영세업체가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공사를 맡긴 것 자체가 부적절해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관저 증축 공사 계약 경위 등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A·B사와 대통령실에 각각 수 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 14일, 참여연대가 2022년 10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 과정에서 직권남용, 특혜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국민감사를 청구한 내용에 대해 뚜렷한 이유 없이 1년 10개월 동안 감사기간을 7번째 연장해 사실상 감사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대통령실, #관저, #윤석열, #공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부' 이승만을 기린다? '국부'를 부정한 순간이 대한민국의 진짜 시작점

[장석준 칼럼] 8월과 4월, 남북의 갈림길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4.08.21. 05:01:31

올해 광복절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취임 이후 줄곧 대한민국 대통령이기보다는 뉴라이트 역사관 전도사로 분주한 윤석열 대통령 탓이다. 대통령의 언행이며 인사(人事), 외교며 대북정책이 모두 다 헌법 정신의 테두리와 사회적 합의의 큰 줄기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그래서 기후변화로 인해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진 여름 날씨만큼이나 환멸과 분노도 끓어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과 주위 뉴라이트 아첨꾼들이 항일독립운동의 기억을 폄훼하면서까지 떠받드는 것은 이른바 한미일 연대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겠다는 궁극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세계관-역사관을 응축한 인물로 이승만을 떠받든다. 3.8선 이남이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걷도록 만들어준 '국부' 이승만을 제대로 기려야 하며 이승만으로부터 윤석열로 이어지는 계보와 어긋나고 상반되는 요소들은 모조리 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기승을 부리다 한풀 꺾였던 흐름인데다 21세기에 '국부' 운운하는 게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 이런 논리, 아니 비논리를 굳이 반박하려고 노력까지 해야 하나 싶다. 그러나 이런 논리 아닌 논리가 대통령의 행정권 남용을 통해 감히 사회 위에 군림하려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러니 논란의 지형 자체가 퇴행적임을 알면서도 반격의 수고를 마다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여름에 선보인 현대사 연구의 역작 한 권을 읽고 나니 그런 감회와 결의가 더욱 짙어진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거울에 대한민국의 얼굴을 비춰볼 수 있었고, 거울에 드러난 그 면모가 뉴라이트 역사관이 설파하는 서사와는 도무지 닮은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고된 쿠데타>가 전하는 '8월 종파사건'의 진실

언급한 책은 북한사를 다룬 굵직한 저서를 발표해온 역사학자 김재웅의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푸른역사, 2024)이다. 무려 650쪽에 달하는 이 대작은 흔히 '8월 종파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1956년 북한 내부의 정치적 충돌을 다룬다. 이 사건은 북한 현대사에 관한 책에는 빠짐없이 등장할 만큼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그러나 이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의외로 없었다. 이런 배경만 놓고 봐도 <예고된 쿠데타>는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한데 1956년 8월 사건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저작이기만 한 게 아니다. 이 책을 접한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예고된 쿠데타>는 해당 사건의 '결정적' 분석이자 정리라는 인상을 준다. 엄청난 공을 들여 구소련 1차 자료들을 섭렵하지 않고는 찾아낼 수 없었을 생생한 증언과 희귀한 기록으로 600여 쪽이 꽉 채워져 있다. 다른 관련 서적에는 그저 이름만 소개되고 문장 몇 줄로 정리되던 인물들이 이 책에서는 마치 지금 여기에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처럼 저마다의 고뇌와 사연을 짊어지고 다가온다. 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는 정치 드라마이자 한반도와 세계를 넘나드는 대하소설이고 가슴을 옥죄는 비극이다.

<예고된 쿠데타>는 이제껏 조선노동당 내 '연안파'가 김일성 중심의 당권파와 충돌한 분파 투쟁 정도로 이해되던 1956년 8월 사건의 배경과 전개, 내막을 소상히 펼쳐 보인다. 거기에서 마주하는 것은 한국전쟁 후 북한 민생경제의 일상적 위기,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불어 닥친 탈스탈린화 바람, 스탈린주의 체제의 북한판인 김일성 주도 체제에 대한 자생적 반성과 문제제기가 서로 급박하게 교차하던 당시 정황이다. 그리고 이 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주소대사 이상조를 비롯한 노동당의 40대 간부들이다.

<예고된 쿠데타>는 이러한 당 내 비판세력의 인적 구성을 상세히 밝힌다. 그 중 핵심인 이상조, 윤공흠, 서휘 등은 물론 일제 말에 중국 연안에서 팔로군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운 화북조선독립동맹-조선의용군 출신, 즉 연안파다. 그러나 연안파만이 아니라, 더 일찍부터 김일성 세력의 견제를 받던 재소 고려인 출신, 즉 소련파 간부들도 가담했다. 또한 연안파 전부가 함께 한 것도 아니어서, 독립동맹 계열 중진 중에는 최창익만 정변의 구상과 실행에 적극 참여했다. 뿌리 깊은 당 내 분파 갈등이라기보다는 북한 사회의 진로를 둘러싼 새로운 개혁파의 대두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들이 노동당 공식회의를 통해 관철하려 한 것은 김일성 개인숭배 중단, 사당(私黨)화된 노동당의 민주적 운영 회복, 농업 및 경공업과 중공업의 균형 발전을 지향하는 경제계획 등이었다. 하나같이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에 현실사회주의권에서 새로운 상식처럼 부상한 내용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소련과 중국 모두 노동당 내 김일성 비판세력에 동정적이었고, 몇몇 경로를 통해 지원 의사까지 밝혔다. 그러나 당 회의 석상에서 쏟아지는 비판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김일성 그룹의 당 장악력을 확인한 뒤에는 두 나라 다 입장을 바꿨다. 게다가 동유럽의 탈스탈린화 흐름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두 '형제국'은 기존 노동당 당권파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고 나섰다.

모처럼 등장한 당 내 개혁파의 시도는 삽시간에 무참히 좌절됐다. '8월의 대전환'이 될 수도 있었을 사건은 결국 '8월 종파사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북한 사회 전체가 전보다 더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정변 기획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던 연안파 인사들도, 심지어는 형식적 국가원수였던 김두봉까지 숙청당했다. 중경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체제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연안파 인사들의 옛 지도자였던 김원봉은 덩달아 탄압을 받다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전쟁 중에 이승만 정부가 홀로 도망가는 바람에 납북당하고 만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들 역시 대숙청 대상에 포함됐고, 조소앙은 이에 자결로 항의했다.

어쩌면 현재 북한 사회의 원형이 이때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나라 밖 사회주의권의 동향에 잔뜩 주눅 들었던 처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체"라는 말이 새로운 깃발이 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할 '주체사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선노동당은 이견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김일성 유일체제의 조직적 수단이 됐고, 20년쯤 흐르고 난 뒤에는 더 나아가 '세습'을 통해 이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하려 하게 된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바로 이 점에서 <예고된 쿠데타>는 수십 년 전의 망각된 사건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만은 아니다. 이 책은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현재가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감으로써, 북한 사회가 '가지 않은' 길,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제 가야 할' 길의 방향을 확인한다.

북한의 8월과는 달랐던 남한의 4월

1950년대 후반이라는 비슷한 시간대 탓인지 나는 '8월 종파사건'에서 늘 남한의 진보당 사건을 떠올리곤 했다. 1956년에 휴전선 북쪽에서 노동당 내 개혁파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대숙청의 파도가 일 무렵, 휴전선 남쪽에서는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뜻밖의 바람을 일으킨 진보당 대선 후보 조봉암이 2년 뒤에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59년 7월 조봉암은 끝내 사형을 당했다. 마치 데칼코마니마냥 한쪽에서 체제에 가장 진지하게 문제제기한 이들이 청소당할 때에 다른 쪽에서도 체제에 가장 근본적으로 도전한 이들이 제거된 것이다.

그러나 <예고된 쿠데타>를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것은 조봉암과 진보당 탄압이 아니었다. 조봉암이 희생되고 1년도 안 돼 폭발한 민주혁명이었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으로 새겨진 1960년 4월 혁명이었다.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는 요즘 일각의 복고 풍조에 따르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기원'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을 반공과 친미,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로 점지했다는 시작점이고, 이 기원에서 비롯되는 거룩한 계보로부터 이탈하는 현실의 모든 존재는 그 이탈의 정도만큼 철퇴를 맞아야 할 운명이다. 이승만 외의 독립운동가들이나 해방정국 지도자들을 애써 공식 역사에서 지워 버리려 하고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을 기리자고 하는 현재 뉴라이트 주도의 소란은 이 "이승만=기원"론의 변주인 셈이다.

한데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이 계승해야 할 두 전통 혹은 기억(또 하나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중 하나로 명기된 4월 혁명이란 무엇인가?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원'이라는 그 이승만의 부정이고 전복이다.

그 해 봄, 이승만 정부가 자행한 부정선거에 맞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수많은 시민이 총알이 빗발치는 경무대로 돌진했다. 국민을 학살하는 경찰에 맞서 급기야 시민이 무장하기 시작했고,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 이승만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남산에 서 있던 25m 높이의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리는 장면이야말로 이 혁명의 절정이자 축도(縮圖)였다. 1956년 10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혁명 군중이 똑같이 25m 높이였던 스탈린 동상을 무너뜨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가장 치열한 상징 행위이자 상징 그 이상의 행위였다.

<예고된 쿠데타>가 다루는 북한의 '8월'을 마주하며 4년 뒤 남한의 '4월'을 떠올린 이유는 이러한 '기원'의 부정과 극복이라는 4월 혁명의 의의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기원'이 이승만이라는 사고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그대로 대입한다면, 이 경우의 '기원'은 당연히 김일성이다. 1950년대, 즉 한국전쟁 직후의 시간 속에서 이승만과 김일성 모두 자신이 '기원' 노릇을 한 한반도의 양쪽 지역에 나름대로 견고한 독재 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에서 1960년대로 넘어가는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 남한과 북한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이 갈라졌다. 1956년 북한의 '8월'은 실패한 반면 1960년 남한의 '4월'은 성공했다. 아니, 이렇게만 말해서는 안 된다. '실패'와 '성공'을 나누는 그 결정적 기준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한다면, 이렇게 다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95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의 '기원'을 부인하지 못한다는 점을 통렬히 확인했으나, 1960년 대한민국은 그 '기원'을 과감히 부정했다.

사회의 모든 복잡다단한 소통과 교섭, 결정 과정이 일당 체제의 집권당 내 구조에 말도 안 되게 집중된 상황(스탈린주의=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몇몇 당 간부들은 참으로 진지하게 체제의 모순과 한계에 손을 대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체제가 시작되면서 받아들인 근본 전제들을 뒤집기는커녕 철저하게 그 틀 안에서 궤도 수정을 시도했다. 몇 겹의 장벽을 통해 대중과 분리된 당=국가의 공식 회의에서 정변을 시도했고, 건국의 후견 세력이었던 '형제국'들의 개입으로 정치적 실력을 대신하려 했다. 이런 극도로 제한된 도전 앞에서 김일성 그룹은 권력을 오히려 더 확고히 다졌고, 정말로 '기원'이 철두철미 지배하는 국가, 세습 수령의 나라를 만들었다.

반면에 1960년 봄에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거침이 없었다. 잇단 부정선거를 통해 선거정치의 잠정적 무용성을 확인하자 정치의 더 근본적인 통로, 즉 거리의 정치를 스스로 열었다. 남한 쪽 후견 세력인 미국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힘을 빌어야 한다거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 결과, 김일성 체제와는 달리 이승만 체제는 일단 무너지고 말았다. 4월의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기원'이 이승만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기원'은 곧 그날의 그들 자신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심오한 진리가 토착화하는 경이로운 역사적 순간이었다.

물론 불과 1년 뒤에 다시 세상이 뒤집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그토록 찬란한 산업화의 성과를 냈어도 그것이 독재자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믿는 국민은 늘 압도적 다수에 미달했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가 그러길 거부했다. 4월의 긴 그림자가 거기에 있었다. 무법천지가 된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이 조직될 때에도,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들이 무려 7년이나 지나고 나서 이에 화답했을 때에도 4월의 기억이 지표면 저 밑에서 흐르고 있었다. 헌법 전문에 괜히 "4.19"가 새겨져 있는 게 아니다.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부'를 부정한 그 순간이 대한민국의 진짜 시작점이다

그러고 보면 '국부'란 말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승만을 사무치게 기억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승만 동상을 25m보다 더 높게 다시 세우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매년 4월 시민들이 동상을 쓰러뜨리는 유쾌한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용도라면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목 잘린 옛 왕비의 모습을 자랑처럼 전시하는데, 또 다른 민주공화국에 비슷한 미풍양속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렇다고 이게 과시용 의례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부'를 부정한 그 순간이 대한민국의 진짜 시작점이라는 기억의 반복적 환기는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를 더욱 심오하게 되새기게 만들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궁극의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결국 '기원'에 속박당하지 않는 국가, 언제든 자신이 '기원'임을 선언할 수 있는 주체인 제헌적 시민들이 그 권력을 일상의 시간 속에서 녹슬지 않게 살려 나가는 사회, 어느 때든 새로운 '기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경로를 과감히 전환할 수 있는 공동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적 각성이야말로, 휴전선이 가른 양쪽 중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자부심을 갖고 전파할만한 무엇일 것이다. 이미 60여 년 전에 동상을 쓰러뜨려본 기억이 소실되도록 놔두지 않고 마침내 양쪽 모두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모아지도록 만드는 일. <예고된 쿠데타>가 전하는 '8월'의 진실과 혼란한 세월 속에 되새기는 '4월'의 기억을 서로 거울삼아 비춰보면서 새삼 이 일이 우리 앞의 숙명적 과제임을 절감한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