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황산덕(黃山德, 1917~1989) 항목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제자이자 문학평론가 권영민의 회고다. 법무부장관이 된 옛 스승에게 "그렇게도 자신을 미워하던 정권 밑에서 일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황산덕은 이렇게 답했다.
"짜식아, 너도 해봐! 자리 제의를 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러고는 덧붙였다.
"국가에서 부를 확률이 0.03% 정도밖에 안 되고, 이를 거절한다는 것은 국민 된 도리로 못할 짓이지."
14년간 권력에 맞서다 대학에서 쫓겨났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가장 솔직하고도 가장 비참한 자기변호였다.
1917년 평안남도 양덕 출생, 3·1운동가 아들에서 학문의 길로
황산덕은 1917년 6월 18일 평안남도 양덕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황경환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다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을 치른 독립운동가였다. 황산덕 자신은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와 사법과에 모두 합격해 학병 징집을 면했지만, 아버지의 사상범 전력 때문에 해방될 때까지 판사임용이 되지 않아 경상북도청 말단관리로 지냈다. 친일과 항일의 경계선에서 가장 모호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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