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마가(MAGA), 국무부의 민주인권노동국(DRL), 공화당 의회, 복음주의 네트워크 등 트럼프 워싱턴의 여러 권력축이 이재명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선 DRL의 라일리 반즈 차관보와 줄리 터너 부차관보 대행, 백악관 신앙사무국 연락관이 최근 6월 부산 세계로교회를 방문해 손현보 목사와 면담하고 예배에 참석했다. 손현보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세이브코리아’의 지도자다. 한국 정부가 공직선거법 위반 문제로 다루는 사안을 미국이 종교 자유라는 명목으로 한국 정부의 법 집행 정당성을 흔드는 외교적 개입이다.

 

정동영 장관 발언 논란과도 연결된다. 정 장관의 북한 구성 핵시설 언급을 두고 미국은 정보공유를 일부 제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구성 핵시설 존재는 이미 논문과 언론보도로 알려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 사안은 정 장관이 상징하는 평화공존, 대북 유연노선,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한 견제로 작동한다. 정 장관은 “감성적 통일론보다 현실에 기초한 평화적 두 국가론이 유일한 방책”이라고 주장했고, 통일부도 이를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의 현실적, 실용적 이행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익은 영원한 남북 적대체제다.

쿠팡 문제는 더 노골적인 압박 사례다. 미 의원 54명은 4월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공개서한을 보냈고,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민감도 낮은 데이터 유출”로 규정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박해”로 표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쿠팡, 디지털 무역장벽, 온라인플랫폼법, 손현보 목사 등 미국 정부가 동시에 다루는 현안”이 있고, 이들이 핵추진잠수함·농축·재처리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우리가 주권을 내려놓으라는 얘기인가. 위 실장은 우리 자원봉사자 납치에 대해 이스라엘 편을 들기도 했다. 미 하원 법사위는 7월 1일 스태프 보고서를 내고 한국 정부가 쿠팡을 포함한 미국계 기업을 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셸 스틸 대사 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트럼프는 4월 13일 미셸 스틸 전 하원의원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고, 6월 17일 상원이 그 지명을 인준했다. 스틸은 청문회에서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의 재원과 집행 방식을 따져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종전선언에 극렬히 반대했고,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출동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자다. 스틸의 의미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투자, 대중국 견제, 대북 강경 기조를 한국 현장에서 밀어붙일 정치형 대사라는 것이다. 단단히 손 봐야 할 인간이다.

미국은 이재명 정부를 향해 네 개의 압박 축을 동시에 가동하고 있다. 하나는 종교자유 프레임을 통한 국내 보수 세력 접촉이다. 잠실 폭동을 배후 지원하기도 했다. 둘째는 정동영 발언을 계기로 한 국내 자주세력 거세의 공작이다. 셋째는 쿠팡, 온라인플랫폼법, 디지털무역장벽을 둘러싼 통상 압박이다. 그리고 넷째는 미셸 스틸 대사 인선을 통한 압박의 제도화다. 모두 이재명 정부의 자율적 정책을 제약하려는 술수들이다. 한국의 진보정부를 동맹 내부의 순응적 파트너로 길들이려는 것이다. 요는 우리의 단호한 배격 의지와 결기다.

미국은 한국의 진보정권 출범 시마다 압박정책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상징적인 압박 사례는 이라크 파병이었다. 노무현은 결국 두 번에 걸쳐 파병하며 굴복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로도 압박한 미국은 결국 주한미군을 대중국 전략자산으로 확장하는데 대체로 목적을 달성했다. 아울러 미국은 북핵 문제에 대한 유화적 접근을 시도하던 한국을 무릎 꿇리고 북한 인권 담론을 정치화했다.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문제 역시 미국이 한국의 숭미적 관성과 자기 비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사례다.

문재인 정부 때의 압박 양상은 더 노골적이고 다층적이었다. 먼저 트럼프는 한미 FTA를 “끔찍한” 협정이라 부르며 재협상을 요구해 관철했다. 이어 트럼프는 2017년 9월초 조선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조선을 위협하면서 한국의 대북 유화책을 저지하려 했다. 이어 트럼프는 2018년 한국 정부가 5·24 조치 해제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한국을 조롱했다. 그해 11월에 출범한 한미워킹그룹은 미국이 한국의 남북협력을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미국의 한국 진보정권 압박은 구조적으로 반복됐다. 노무현 정부에는 자주외교와 평화번영 정책을 동맹 재편과 대북 강경프레임으로 제어했고, 문재인 정부에는 평화프로세스를 제재, 워킹그룹, 방위비 증액 압력, 한미일 군사협력으로 제어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를 향한 압박도 그 연장선이다. 미국은 한국 진보정부가 한반도 평화, 대미 자율성, 국내 규제 주권을 넓히려는 순간마다 동맹관리라는 이름으로 정책공간을 좁히려 한다. 압박의 목표는 한국 정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주권을 짓밟자는 얘기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반미 감정이기 전에 국가 정상화다. 동맹을 당장 끊자는 얘기가 아니라 동맹을 숭미로부터 수단으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익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자동 편입되는 데 있지 않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남북 적대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며, 우리 기업과 시민의 권리를 우리 법으로 지키고, 중국·미국·일본·러시아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권을 보존하는 데 있다. 이것이 진짜 대한민국이다. 남의 전략 속 하위 부품으로 사는 나라가 아니라 자기 국민에게 책임지는 나라다.

정부의 대응도 선명해야 한다. 첫째,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성 접촉에는 조용한 유감 표명을 넘어 공식 항의와 기록을 남겨야 한다. 둘째, 통상·안보·대북정책을 한 묶음으로 엮어 압박하는 방식에는 사안별 분리 원칙으로 맞서야 한다. 쿠팡 문제는 개인정보와 플랫폼 규제의 문제이고,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의 문제이며,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는 한국 안보의 문제다. 미국이 이를 한 바구니에 넣어 흔들 때 우리는 더 잘게 나누어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모든 협의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면합의 절대불가다.

국민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미국이 압박하면 한국 정치권 일부는 늘 “괜히 미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외친다. 신중함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굴종의 다른 이름이다. 시민은 정부가 미국과 싸우는지, 아니면 미국 뒤에 숨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법 집행을 외국 권력이 흔드는 순간, 그것을 허용하는 세력은 더 이상 애국을 말할 자격이 없다. 주권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다. 누가 우리 법을 정하고, 누가 우리 평화를 결정하며, 누가 우리 시장의 규칙을 쓰느냐의 문제다. 우리 자신이어야만 한다.

역사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압력을 무조건 따라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드골의 프랑스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지휘 아래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핵과 외교와 군사노선을 자기 손에 쥐려 했다. 그것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가 프랑스로 우뚝 서게 하는 결기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굴종은 안 된다. 한국이 한국으로 남으려면 미국이 허락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시민이 세운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정부가 머뭇거리면 시민이 밀고, 미국이 압박하면 시민이 분쇄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