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이었지만,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학기 중이더라도 취직만 되면 공부 대신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연수를 받을 때의 모습. 이때부터 저의 반도체 삶이 시작됐습니다.이봉렬
첫 직장 : 시위주동자로 몰려 권고사직을 당하다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터집니다. 3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된 어느 날 교실에 삼성그룹 인사 담당자가 들어와 반 1등부터 10등까지 지원서를 가져가라더군요. 그런데 일주일 전, 이미 현대그룹에서 10등까지 싹 쓸어간 뒤였습니다. 결국 삼성은 어쩔 수 없이 11등부터 20등까지를 데려갔고, 저도 그 어쩔 수 없이 뽑힌 학생 명단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치된 곳이 기흥의 1메가 D램 웨이퍼를 생산하던 3라인 팹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반도체가 뭔지 어느 정도 알지만,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반도체니 팹이니 하는 용어를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저 전자기기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은 그래도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한 게 자랑스러웠는지 제가 회사에서 팹 완공 기념으로 받은 밥그릇을 38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 계십니다.
삼성전자가 직원을 학력에 따라 5급(고졸), 4급(전문대졸), 3급(대졸)으로 나누던 시절,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승급할 수 있다고들 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2년이 아니라 3, 4년이 걸려도 승급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인사고과를 기다리기보다 졸업장을 따는 게 빠르겠다는 판단에, 교대 근무를 하며 야간 전문대에 지원했습니다. 반도체 팹은 교대 근무 체제라 아침 조로 일하면 저녁에는 가까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시대를 뒤흔든 파도가 저를 덮쳤습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폭정에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고 그 과정에 대학생들이 경찰에 맞아 사망하고 또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전 학교에서 뜻 맞는 동기들과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때 필요한 유인물을 제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회사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바로 해고하려 했지만, 명분이 조금 부족했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인사과 사무실로 출근시키며 사표를 강요했고, 밤마다 같은 부서 선배들이 기숙사로 찾아와 제발 사표를 써달라며 돌아가며 사정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버티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표를 냈습니다. 제 삶의 첫 번째 사표였습니다.
인사과장은 그날로 저를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한 군데로 데려가 취업을 시켜주었습니다. 사표 강요가 문제가 될까 봐 입막음용으로 자리를 구해준 것이었죠. 하지만 반나절 만에 그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회사 사장에게는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 후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은 6개월의 학업을 마쳤고, 졸업 후 군대에 갔습니다.
두 번째 직장 : 1990년대에 주5일제를 도입한 회사를 내 발로 그만 두다
제대 후 취직한 곳은 모토로라코리아였습니다. 이곳은 팹에서 만든 웨이퍼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패키징 회사였는데, 1990년대 초 국내 기업 중 5일제를 시행하는 몇 안 되는 신의 직장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도 여유가 넘쳤고 서로에게 다정다감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표를 낼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모토로라코리아처럼 패키징을 주로 하던 아남산업이 웨이퍼 팹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 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웨이퍼 팹과 패키징은 그 규모부터가 달랐습니다. 아직 젊어서였는지, 조금 더 크고 최신 기술이 적용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는데 곧바로 입사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 회사가 중대 발표를 한다며 팀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서울 광장동에 있던 공장을 경기도 파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파주로 같이 갈 수 없어 사표를 내는 이들에게 퇴직금 외에 별도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발표 네 시간 전에 미리 사표를 낸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행히 인사팀에서는 발표 당일에 낸 사표부터 유효하다고 인정해주었고, 저는 뜻밖의 위로금까지 챙겨 회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코리아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직장 : <오마이뉴스> 때문에 잘리다
▲아남반도체에 입사 후 제 손으로 첫 장비를 설치하고 기념으로 클린룸 안에서 방진복을 입고 찍은 사진입니다.이봉렬
아남산업에 합류했을 때는 이제 막 팹을 짓기 시작하던 단계였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된 경력직들이 각자의 능력치를 풀가동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전공인 기계 설계를 살려 팹 내부 장비 레이아웃을 그렸습니다. 지금도 팹 전체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건 그때의 경험 덕분입니다. 이후 펌프나 스크러버 등 보조 장비를 담당하다가, 팹 완공 후에는 반도체 8대 공정 중 하나인 금속 배선팀에 속해 일했습니다.
3년도 채 못 채우고 떠났던 이전 회사들과 달리, 아남산업에서는 회사 이름이 동부아남반도체를 거쳐 DB하이텍으로 바뀔 때까지 9년 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부실한 민방위 교육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본 소방방재청에서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한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쓰는 시민기자일 때는 방송 출연 요청이 오면 카메라를 들고 클린룸까지 들어가게 해주며 지원하던 회사가, 그날 이후로는 제가 쓰는 기사에 트집 잡으며 저를 불온한 인물로 몰아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DB하이텍 최초의 노조 결성에 제가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자,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맡기며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을 버텼지만, 저 하나 때문에 조직까지 바꾸는 것을 보고 결국 근속 10년을 석 달 앞두고 세 번째 사표를 냈습니다.
▲DB하이텍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게 만든 오마이뉴스 기사. 하지만 싱가포르에 와서도 기사는 계속 썼습니다.오마이뉴스
네 번째 직장 : 싱가포르의 반도체 장비 회사, 한국인 사장에게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다
삼성전자와 DB하이텍에서 사표를 강요받은 저를 받아줄 국내 반도체 회사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다행히 먼저 싱가포르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소개로 싱가포르의 한 반도체 소부장 업체에 취업했습니다. 반도체 장비와 부품을 중개하고 셋업까지 담당하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장이 문제였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는 싱가포르에서 축구단을 인수하고 연예인과 싱가포르 국가대표팀을 후원할 정도로 기세등등했지만, 방만한 운영 끝에 회사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협력업체 대금을 제때 주지 못해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8년 정도 몸담았던 그곳에 네 번째 사표를 던졌습니다.
다섯 번째 직장 : 드디어 내 회사를 차렸으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다
퇴사 후 제 이름을 건 개인 회사를 차렸습니다. 싱가포르는 창업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고, 선후배들이 도와준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3년 정도 사업을 이어가며 수익도 꽤 좋았습니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첫째 대학 등록금과 둘째 고등학교 학비를 모두 해결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삼성전자 시절 함께 일했던 동기에게 뼈아픈 사기를 당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해외를 떠돌던 옛 동기에게 프랑스에 있는 반도체 팹 관련 업무를 맡겼는데, 3개월 뒤 그는 제게 거짓말을 하고 그 업체와 직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사업 아이템을 뺏긴 것보다 20년 지기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여섯 번째 직장 : 반도체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말라기에 사표를 내다
상심해 있을 때, 싱가포르 STM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친구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험한 사업 그만두고 우리랑 같이 일하자고요. DB하이텍 시절부터 알고 지낸 그 친구는 제가 사업가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고민은 딱 3초면 충분했습니다. 회사를 정리하고 입사한 STM은 유럽계 기업으로, 세계 10대 시스템 반도체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일을 반복해야 했지만, 적어도 월급은 제날짜에 꼬박꼬박 들어왔으니까요. 사업할 때의 불안함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한국인 동료들과 의지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입사 10년을 채웠고,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 다닌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다닌 회사를 되돌아보면 삼성전자는 설계와 생산을 다 하는 메모리 종합반도체(IDM), 모토로라는 반도체 웨이퍼를 테스트하고 조립하는 후고정(OSAT), DB하이텍은 팹리스로부터 주문받은 반도체를 만드는 파운드리, 그리고 STM은 시스템반도체 회사입니다. 거기에 반도체 소부장 회사도 다녔고, 개인 사업도 해 봤으니, 팹리스 정도를 제외하고 큰 틀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분야를 깊게는 모르지만 반도체 관련해서 얕지만 넓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걸로 반도체 특별과외 기사도 쓰고, 가끔 강연도 할 수 있었죠.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직원을 회사는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이봉렬
그런데 얼마 전 다섯 번째 사표를 낼 일이 생겼습니다. 사실 전조는 3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마이뉴스에 반도체 관련 글을 쓰며 STM 직원임을 밝힌 게 화근이 되어 인사팀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회사 측은 제 활동을 예의주시해 왔으나 간섭하지 않았는데, 제가 소속을 밝히는 순간 제 글이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며 다시는 소속을 밝히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습니다. 어길 시 해고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요.
그 서약서를 쓴 후로도 반도체 관련 기사를 계속 썼지만 한 번도 STM 직원이라는 걸 밝히진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초, 인사팀에서 갑자기 절 부르더니 제가 쓴 글 몇 개를 보여줬습니다. 반도체 팹이 호남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쓴 글이었습니다. 인사팀에서는 제가 그런 글을 쓴 이유를 물었고, 전 그런 글을 쓰면 안 되는 이유를 되물었습니다. 인사팀은 앞으로 그런 글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고, 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인사팀은 결국 절 부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STM의 한국의 고객사에서 제가 쓴 글을 이유로 항의를 해왔다는 겁니다(인사팀에서는 회사 이름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 STM 직원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글을 썼지만, 그 반도체 회사는 제가 STM직원이라는 걸 알고, 그런 글을 쓰지 못하도록 제가 아닌 회사에 압력을 가한 것입니다. 그날의 면담 이후 전 해당 회사와 반도체 관련한 글을 일부러 더 많이 쏟아냈습니다. 그 정도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거였죠.
사실 이렇게 강하게 나갈 수 있었던 건 진작부터 은퇴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에 한국에 살 집도 계약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사표를 내고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한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오기가 생겨 오히려 퇴사를 미뤘습니다. 이런 류의 압박에 못 이겨 나가는 모양새도 싫었고, 차라리 해고를 당한다면 제 삶에 더 강렬한 서사가 생길 거란 생각에 버텼습니다.
그리고 3월에 휴가를 내고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아직 퇴사 전이었지만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 해고 통지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확신했거든요. 하지만 다시 만난 인사팀장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법률 검토 결과 그 정도로는 해고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회사를 봐서라도 그런 글을 쓰는 걸 멈춰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저는 앞으로 더 열심히 쓸 예정이고, 곧 관련해서 책도 나올 것이라고 답하며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계획했던 일이었고,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러자 인사팀장의 얼굴이 확 피더군요.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두 달은 더 일해야 하는 규정도 무시하고 당장 그만두게 해주겠답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팀에서 인수인계를 위해 최소한 2주는 필요하다고 해서 3월 말까지 일하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동료들이 축하연을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주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건 모두의 소망이니까요.
▲STM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했더니, 딸들이 집에 이런 걸 붙여 놓고 상패까지 만들어 주며 축하해 줬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앞으로 잘 살겠습니다.이봉렬
1988년에 시작된 저의 반도체 대장정은 이렇게 2026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다섯 번의 사표 중 세 번이 권고사직이라니, 그것도 모두 제가 쓴 글 때문이라니 참으로 굴곡진 인생입니다. 이제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를 받아줄 반도체 회사는 없겠지만, 저 역시 미련은 없습니다. 아이들도 독립했으니 큰 짐도 내려놓았습니다. 살다 보면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기에,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잘렸으니, 억울해서라도 앞으로 더 치열하게 써볼 생각도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그다지 화려하진 않았어도, 크게 부끄러울 것 없는 반도체 노동자의 삶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오늘 이후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한가로이 어슬렁거리는 저를 마주친다면, 고생 많았다고 토닥토닥 한번 해줄 수 있죠? 전 그거면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한국 화물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단독으로 움직이다가 이란의 공격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43%의 석유를 조달한다고 하다가 “그런데 그들의 선박이 공격당했다. 그들은 선박의 대열에 없었고 혼자 행동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리고 그들의 선박은 어제 박살이 났다. 하지만 미국이 보호하던 선박들은 공격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있던 한국 화물선 HMM 나무호가 단독으로 움직이다가 이란의 공격에 노출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나무호에서 발생한 폭발·화재의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부터 이란의 공격에 따른 사건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경색 해소 기여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은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과 관련한 선박 이동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화물선 등 무관한 국가들을 향해 몇 차례 발포했다”며 “한국도 이 작전에 합류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같은 날 ABC방송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그건 혼자 운항하던 한국 선박이었다”며 “한국 선박을 겨냥해 다수 발포가 이뤄졌고 한국이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미국은 4일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상선들의 탈출을 돕는 ‘프로젝트 프리덤’을 시작했다. 당일 미군은 이란이 미사일·고속정 등을 동원해 상선들을 향해 공격해 이를 격퇴했다고 밝혀 휴전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을 상대로 공격을 재개했다.
4일(현지시각) 키프로스 니코시아에서 촬영된 사진 일러스트로, 한 사람이 선박 추적 웹사이트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이동 상황이 표시된 대형 화면 앞에 서 있다. 니코시아/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해상 공격을 이유로 한국의 군사 작전 참여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호르무즈해협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프리덤’과 관련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프리덤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수개월째 발이 묶인 각국 선박들을 미 해군이 호위·안내하는 작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발표했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움알쿠와인항 인근에 정박 중이던 한국 선박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일어났다. 선원 24명(한국인 6명, 외국인 18명) 전원 안전이 확인됐으나, 한국 정부는 고의적 공격 여부 등을 확인 중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항구의 석유 시설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또 이란은 접근하는 미 군함을 향해 경고 사격을 가했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이란의 소형 고속정 7척을 격파했다고 강조하며, 현재 해협 상황을 미군이 통제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다만 한국 선박에서 발생한 피해를 제외하면 추가적인 큰 피해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앞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박을 공격하면 이란을 지구상에서 날려버리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나온 것으로,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동시에 동맹국의 참여를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무기와 탄약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상황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이란은 “해협에 진입하는 외국 군대는 공격 대상”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무력 충돌에 준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은 상선 보호 작전을 진행하며 미국 국적 상선 2척이 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를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는 등 양쪽 주장도 엇갈리고 있다.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교착 상태다. 이란이 최근 14개 항목의 평화안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수용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25 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3:0으로 완파하고 대회 2연패를 기뻐하는 북한 선수들. [사진-FIFA 홈페이지]
평양을 연고로 하는 북측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오는 5월 17일(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수원에서 경기를 펼친다. 8년만이다.
각국 리그 우승팀이 참가해 아시아 최강 클럽을 가리는 여자클럽 대항전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여자 챔피언스리그'(AFC Women's Champions League(AWCL) Final 2026' 준결승, 결승 경기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이다.
4일 통일부에 따르면, 내고향여자축구단은 AFC에 예비선수 4명을 포함해 선수 27명과 스텝 12명 등 총 39명의 명단을 통보했으며, 대한축구협회는 AFC로부터 5월 1일 저녁 이메일로 명단을 전달받았다.
최종 명단은 17일 확정된다. 고위급 인사는 빠진 것으로 파악된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17일 베이징에서 에어차이나편으로 출발해 오후 2시 1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수원으로 이동하며, AFC 숙소 규정에 따라 준결승 경기를 하는 '수원FC 위민'팀과 '노보텔 엠베서더 수원' 호텔에 함께 묵는다.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한 차례 공식훈련이 예정돼 있으며, 20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 위민'팀과 준결승전을 벌인다.
같은 날 앞서 오후 2시 '멜버른시티 FC'와 '도쿄 베르디 벨레자'간 준결승전 제1경기가 벌어지며, 준결승전 우승팀들은 오는 23일(토) 오후 2시 수원종합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이 결승전까지 오를 경우 24일 귀환하고, 준결승전에서 수원FC위민'팀에 패할 경우 당일 귀환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AFC는 준결승 경기 전날인 19일 4팀 감독과 선수 1명이 참가하는 프레스데이가 잠정 결정되었다고 알렸으나 아직 시간은 확정되지 않았다.
막판까지 선수단 명단을 통보하지 않은 북측은 지난 4월 28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AFC 총회에서 셰이크 살만 AFC회장이 김일국 북한 체육상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따로 만나 협의했으며, 4월 29일 FIFA 총회가 이어져 이때 북의 최종 경기 참가 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고향' 브랜드의 소비재 생산 기업인 '내고향'의 후원을 받는 '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21-2022 시즌 당시 북한 1부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4.25체육단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선수단 상당수가 최근 연령별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AWCL 2025-2026 조별예선에서는 수원FC위민(한국)와 ISPE WFC(미얀마)를 3:0으로 이기고 도쿄 베르디벨레자(일본)에게는 0:4로 패한 전적으로 준결승에 올랐다. 리유일 전 북한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휘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이 아닌 클럽대항전이기 때문에 경기에서는 공식적으로 국가를 틀지 않고 국기 대신 클럽기를 사용한다.
우리 응원단의 경우 '공화국기' 사용은 법령에 따라 불허되며, '단일기'(한반도기) 사용도 반입금지 대상이 된다. 지난 3월 호주에서 열린 여자축구대회에서 AFC는 경기장내에서 정치적·종교적 표현을 금지하는 규정을 근거로 호주축구협회측에 '단일기' 반입을 금지한 바 있다.
경기는 쿠팡플레이에서 중계한다.
통일부는 "북측은 여자 축구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만큼 국제대회 준결승에 참가한 것으로 본다"며,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대했다.
경기가 열리는 수원종합운동장은 1만 2천석 규모이지만 수원FC측은 축구전용구장이 아니기 때문에 약 7천명 규모로 예매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한국을 방문해 체육교류를 한 일은 여자축구팀의 경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며, 전체 종목으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그해 9월 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그해 10월 춘천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12월 인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 그랜드파이널스대회 이후 8년만이다.
질주하는 들소들을 배경으로 흰 말을 타고 달려가는 노음 크리스티 전 국토안보부장관. 광고 동영상 갭처
갈색 말을 탄 카우보이 차림의 여인이 광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얘기한다.
“내가 왜 이런 광활한 공간(wide open space)을 사랑하느냐고? 우리 선조들이 왜 여기로 왔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지. 이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만이 줄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나는 크리스티 노엄입니다.”
지난 3월 5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국토안보부 장관자리에서 쫓겨난 그 크리스티 노엄(55)이다.
국토안보부장관직에서 쫓겨난 노엄의 광고
그녀 배후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역사 영웅들의 거대한 얼굴조각들이 새겨진 러시모어 바위산이 보인다. 그곳이 노엄이 2019년부터 트럼프 정권에 들어간 2025년까지 그녀 자신이 주지사로 있던 미국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 주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장면이 바뀌면서 이번에는 다른 차림새로 백마를 탄 노엄이 앞쪽에서 달려가고 있고, 그 뒤에는 수많은 바이슨(baison 아메리카 들소. 미국에서는 버팔로(buffalo)라 불린다. 둘은 생김새가 비슷한 소과 동물이지만 조금 다르다) 무리가 초원을 떼재어 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하고 있다.
제퍼슨, 루스벨트 등의 거대 얼굴조각이 새겨진 러시모어산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가는 노엄 크리스티. 광고 동영상 캡처
노엄은 미국이 자유를 찾는 사람들의 고향이 되겠지만, 자신은 ‘불법 이민’을 단속할 것이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미국 시민을 다치게 한 자는 응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1분짜리 동영상 광고 때문에 노엄은 쫓겨났다. 역설적이게도 응징을 당한 자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의 경질 이유로 지난 1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이민단속 요원들의 무리한 불법 이민자 단속 중에 시민 2명이 잇따라 단속요원 총에 맞아 사망한 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된 사실이 거론됐다. 2월 말 미국의 이란 침공 뒤 원유공급 차질 등으로 가솔린값이 오르고 인플레가 더욱 악화되면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이 총애해 마지 않던 노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 며칠 뒤인 10일에는 백악관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향해 중간선거 악재가 될 수 있는 이민자 대량 추방(mass deportation) 강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국토안보부가 주도한 이민단속 정책에 대한 이미지 악화가 노엄 경질의 한 가지 이유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노엄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작한 그 광고 동영상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2억 2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정부자금을 가져다 썼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트럼프의 승인을 받았느냐는 의원들 추궁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기 광고를 불법이민 단속의 정당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트럼프의 점수까지 따려 했다가 역풍과 함께 그러잖아도 떨어지는 지지율에 예민해진 트럼프의 역정까지 사 잘린 것이다.
‘서부 개척’은 백인들의 선주민 식민지배 과정
동영상에서 “서부를 개척한 카우보이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미국에 온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추구한 것은 ‘자유’였다고 주장한 노엄의 그 ‘자유’는 19세기에 새로 미국땅으로 편입한 ‘서부’로 몰려 간 백인 식민자들의 자유였다.
자유노동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남부의 노예제를 반대하는 정당으로 1854년에 창당한 공화당은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링컨 정권을 창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시작된 남북전쟁 때 경작자들에게 공유지를 무상 불하한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1862년. 자영농지법으로도 불린다)을 제정해 연방정부가 입식자들(‘서부 개척’에 나선 백인 식민자들)에게 노엄이 얘기한 “광활한 공간”을 (각자가 가질 수 있을 만큼) 자기 땅으로 삼아도 좋다고 사실상 인정해 준 결과, 계속 확장되던 철도망(1865년에 최초로 대륙횡단철도 개통)까지 가세해 동부의 거대한 인파가 서부로 밀려 들어갔다.
하지만 서부는 빈 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많은 선주민들(아메리카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백인들은 남북전쟁을 통해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면서 같은 시기에 서부 선주민들로부터 광대한 땅을 빼앗았다. 선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안에 그들을 가둬 넣고는, 무력으로 그들을 ‘토벌’해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백인들의 ‘서부 개척’은 실은 선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식민지로 만든 것이었고, 홈스테드법은 그들 백인 식민지 정착민(입식자)들의 토지 탈취를 합법화한 것이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나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선주민 땅 빼앗기와 입식이 이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아메리카 들소 바이슨. 미국인들은 버팔로라고 부른다. BBC
440만~800만이던 선주민 20만~30만으로
미국역사의 영웅,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백인 지배계급 영웅들의 거대 두상이 새겨진 러시모어산을 포함한 ‘블랙힐즈’도 원래 그 일대에 살았던 선주민 라코타 수우족의 성지였던 ‘파하사파’(Paha Sapa 검은 언덕)였다. 백인정부는 1868년에 그 일대를 선주민의 영토로 지정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그나마 그 한정된 지역에 가둬 ‘보호’하는 듯했으나, 6년 뒤인 1874년에 그 주변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채굴자들이 몰려들자 1876년에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는 전쟁을 벌여 그 땅을 모조리 빼앗았다.
노엄이 동영상에서 얘기한 그의 선조들의 ‘정당한 이민’의 실상이 그런 것이었다.
그 토지 강탈이 불법이었다는 것은 100년이 지난 1980년에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선주민들에겐 이미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백년이었다.
유럽 백인들이 밀려들어오기 전의 아메리카 선주민 수는 440만~800만 쯤으로 추산됐으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20만~30만으로 줄었다. 최근까지 그들의 수는 다시 예전 수준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그들의 잔혹한 수난사는 잊혀졌다.
노엄이 자랑스레 얘기한 “광활한 공간”은 청정한 빈 땅이 아니라 그들의 선조가 선주민들로부터 약탈한 피눈물로 얼룩진 땅이었다.
산처럼 쌓아 올린 무수한 들소들의 뼈. 디트로이트 공공도서관 임병선
3000만~6000만이던 들소들은 456마리만 생존
백인들의 그 식민지 약탈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선주민들만이 아니었다. 선주민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기둥 가운데 하나였던 바이슨(미국인들은 ‘버팔로’로 지칭)도 대량 살해당해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다.
“선주민들의 (백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높여 토지 양도에 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합중국(백인 정부)은 정책적으로 평원 민족(대평원의 선주민들)의 기본적인 경제기반인 버팔로를 절멸시키도록 군에 지시했다.”(대니얼 임머바르 <제국 숨기기 How to Hide an Empire>, <미국, 제국의 연대기> 글항아리)
아메리카 들소 대량학살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가 인용한. 위의 사진 중 아래 부분.. BBC
선주민의 경제 젖줄 말리기 위해 들소 학살
1880년대까지 그레이트 플레인(대평원)의 들소들은 거의 절멸당했다. 백인들은 선주민 학살과 함께 선주민의 경제적 젖줄이던 들소들을 절멸시킴으로써 선주민들의 투항을 유도하려 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선주민들은 연간 10만 마리 미만의 개체만을 사냥해 들소의 수를 1800년대 초반까지 3000만~6000만 마리로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889년 1월 1일 현재 미국에는 순종 들소가 고작 456마리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중 256마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한 줌밖에 안 되는 보호구역 안에 갇힌 상태로 생존했다.(BBC. 2024.12.4. ‘산더미처럼 쌓은 들소 해골들,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이유’ 임병선)
노엄이 만든 동영상에 배경으로 비친 들소들은 그러나 AI로 만든 가짜영상이 아니다. 1890년대에 조직적인 들소 보호운동이 시작됐고, 그 덕에 상당수가 복원됐기 때문이다.
들소 보호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뉴욕에서 1899년에 문을 연 브롱크스 동물원이었다. 거기에서 번식된 들소들 중 14마리가 1913년에 블랙힐즈 남쪽에 있는 윈드케이브 국립공원까지 철도로 실려가 증식됐다.
버팔로 사냥하던 루스벨트, 들소 보호자로 변신
서부 ‘개척’시대 이후 자연보호와 야생동물 보호운동, 국립공원 설치를 추진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1901~1909년 대통령(제26대)직에 있던 루스벨트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보다 100년도 더 전에 제국주의적인 ‘먼로 독트린’을 다시 제창했다.
1858년 뉴욕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후반에 다코다에서 들소 사냥과 목장경영을 하면서 열정적인 ‘개척자적 삶’을 보냈다. 말하자면 그는 맥인들의 서부 ‘개척’시대의 선주민 배제와 들소 절멸정책의 마지막 연대에 가담하면서 자신이 파멸로 몰아간 대상을 애처롭게 여기는 도착적인 수호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것이다.
그 무렵 국내 정복, 곧 내부 식민지 개척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루스벨트는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차관직을 내던지고 육군 지원병이 돼 선주민과의 전쟁 경험자들과 함께 ‘러프 리이더스’(Rough Riders)라는 의용군 기병대를 창설하고 스페인을 상대로 쿠바 정복 전쟁에 참전했다. 1901년에 대통령이 된 뒤에는 강력한 해군력을 토대로 카리브해 주변에서 강압적인 제국주의 ‘곤봉 외교’(Big Stick Diplomacy)를 펼치는 한편, 태평양 쪽에서는 열강들에 잠식당하고 있던 중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문호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인종차별주의자 루스벨트의 한국과의 악연
그때 루스벨트는 일본을 아시아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려 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데에는 루스벨트의 그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루스벨트는 일본의 전쟁비용을 대는 재정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영국과 함께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그는 1905년 러-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중개하면서 일본에게 유리하게 체결되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루스벨트의 밀명을 받은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를 만나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보장하는 대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보장해 준 것이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루스벨트는 백인 외의 인종들을 경멸했으나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준백인’ 대우를 해 주면서 조선인들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 마땅한 미개인 취급을 했다.(<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한국> 나가타 아키후미)
이후 미국은 줄곧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일본의 독점적인 중국침략이 노골화한 뒤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고,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대일 전쟁에 돌입했다. 일본 패전 뒤 미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분단해 소련과 분할통치했다. 분단과 전쟁, 1천만 이산가족 등 한국현대사의 질곡이 거기서 비롯됐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인종전시’까지 한 백인들의 비백인 차별 여전?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관여한 또 다른 주요 인물 중에 매디슨 그랜트가 있다. <위대한 인종의 소멸>(1916)을 쓴 매디슨 그랜트는 당시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새로운 이민물결이 미국으로 밀려들고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인 이민도 늘어나자 ‘이민의 위협’을 선동하고 다른 인종과의 혼혈을 부정하면서 “위대한 인종”인 “북방인종”의 소멸을 걱정한 인종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랜트의 우생학적인 주장은 결국 1924년의 이민법(1890년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미국의 국가별 이민 쿼터를 2% 이내로 제한해 동·남유럽 및 아시아 이민을 차별·배척한 법)으로 이어졌다.
이 또한 트럼프의 ‘돈로주의’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몽골계 선주민과 히스패닉 등 남방계 인종의 미국 이민에 거부감을 지닌 트럼프 정권의 전 국토안보부장관 노엄도 노르웨이계의 이른바 ‘북방인종’이다.
1906년 브롱크스 동물원에 '전시'된 오타 벵가. 위키피디아
2020년 5월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래퍼 조지 플로이드가 경관들 손에 살해당한 뒤 인종차별반대 시위가 미국과 세계로 확산되자 브롱크스 동물원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첫째 1906년 9월의 며칠 동안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라는 남성을 원숭이 우리 속에 넣어 오랑우탄과 나란히 ‘전시’한 것을 사죄했다. 그리고 우생학에 토대를 둔 그랜트의 사이비과학적인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사죄하고 그것을 비난했다.
오타 벵가는 루이지애나 매입 100년을 기념한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 때 처음으로 전시됐고, 그때의 대규모 ‘인간전시’에는 아메리카 선주민과 미국의 식민지가 된 필리핀 사람과 아이누족 사람들도 ‘전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SNS에 올린,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게시물.
미국은 그런 점에서 아직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를 원숭이로 묘사한 인종차별적인 클립이 포함된 게시물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비난이 일자 삭제했다.
러시모어산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백인들의 영웅을 새겨넣은 덴마크계의 가트슨 보그람 역시 노엄과 같은 ‘북방인종’으로, 그들 인종의 우월성을 맹신하며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집단 KKK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이 글은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세카이(세계)> 5월호에 실린 모치즈키 히로키의 연재물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 제16편을 토대로 해서 쓴 글이다. 작가이자 NPO법인 ‘난민지원협회’가 운영하는 웹매거진 ‘닛뽄 복잡기행’ 편집장인 모치즈키는 2024년부터 뉴욕 시에서 살고 있다.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레이와신센구미 등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도 집회에 함께했다. 제1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은 주최 측을 통해 지지 입장을 밝혔다.
현행 일본 헌법은 9조에 군대 보유 금지, 전쟁 금지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평화헌법’이라고 부른다. 지난 10월 집권한 다카이치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 등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려는 군국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이에 주최 측은 두 달 전인 3월 1일부터 해당 집회를 연다고 미리 공지하며 자국민에게 집결하자고 호소해 왔다.
주최 측은 이번 집회 기조로 ▲개헌안 발의를 용납하지 않으며 헌법을 살려 평화·목숨·생활·인권을 지킬 것 ▲미국·이스라엘의 무력 공격을 용납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에 헌법 9조를 살리는 평화 외교를 촉구할 것 ▲대만 유사시를 선동하고 미일 양국의 군사 일체화를 용납하지 않고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미사일 기지 배치 철회를 촉구할 것 ▲오키나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불평등한 미일 지위협정을 근본적으로 개정할 것 ▲자민당 중심의 금권 부패 정치를 구조적으로 전환할 것 등을 강조했다.
“주권자는 우리들!”
“현법개악 절대반대!”
“헌법 지켜라!”
“퇴진! 퇴진! 다카이치 정권!”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아키야마 마사오미 헌법공동센터 공동대표는 주최 측을 대표해 한 인사말에서 “평화헌법의 위기를 맨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정치 환경이 존재하고 있다”라면서 내년 봄 자민당 당대회 시점에 평화헌법 개정을 암시한 다카이치 총리를 겨눴다.
그러면서 “헌법대집회를 (연대를 위한) 연결점으로 삼아 헌법을 살려 평화·목숨·생활·인권을 지켜 나가자”, “지금까지 개헌을 용납하지 않은 건 시민운동이 있기 때문이었다. 풀뿌리(시민)가 목소리를 크게 높여 가자. 9조 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한 점”에 모으자고 호소했다.
일본펜클럽 회장을 역임한 작가 요시오카 시노부 씨는 다카이치 정권이 스파이방지법과 국기손괴죄 등 일본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하면서 “강한 나라”를 지향하겠다고 주장하는데 “(그) 도착지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공산당의 다무라 도모코 위원장은 “(일본) 국회는 개헌파가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한다”라고 현 상황을 냉정히 진단하면서도 이번 집회의 의미에 관해 “‘9조를 지켜라’라는 국민을 다수파로 만드는 시작점”이 되리라고 소망했다.
다무라 위원장은 기자단 질의에선 “지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지지한 사람 중에서도 개헌에 백지위임한 건 아니라는 마음”이 있다며 “‘전쟁은 싫다’라는 목소리를 일치점으로 삼아 여론을 넓혀 다카이치 정권을 퇴진시킬 힘으로 삼고 싶다”, “국민 안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앞으로의 정치를 결정해 간다”라고 강조했다.
사회민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는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이 전쟁할 수 없었던 건 (평화헌법) 9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9조가 전쟁을 멈추고 있다”라며 “절대로 바꿔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집회에 참가한 남성은 아사히신문의 질의에 “지금 현행 헌법에 뭔가 나쁜 내용이 있나? 정말 모르겠다. 어디에 나쁜 내용이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거꾸로 헌법을 개정하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 국민주권 등이 제한된다”라며 “(다카이치 정권이) 전쟁을 하고 싶으니까 헌법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카이치 정권이 전시 상황을 명분으로 “(일본) 국민을 고문하고 싶어 하니까, (일제강점기 당시 치안을 이유로 사상을 탄압한) 치안유지법 시대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헌법을 개정하려 하는 게 분명하게, 투명하게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헌법개악 절대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근처를 행진했다.
지난해 같은 날 열린 집회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3만 8천 명이었다. 올해 집회에는 1만 2천 명이 더 늘어나 개헌 반대 동력이 상승 추세임이 확인됐다.
현재 일본에는 지난 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뒤, 다카이치 정권에 정면으로 맞설 구심점이 될 정당·단체가 딱히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올해 헌법기념일에 도쿄 한복판에 평화헌법 개헌 반대를 강조한 최대 규모 인파가 모인 것이라 의미가 있어 보인다.
헌법기념일을 맞아 같은 날 오사카에서는 주최 측 추산 4,500명이 참가한 개헌 반대 집회가 열렸다. 그 밖에도 일본 각지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평일과 토요일에는 이전부터 일본 국회의사당과 역 앞 등 곳곳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평화번법 개헌 반대” 등을 주제로 발언하고 노래하는 문화제 형식의 집회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개헌 반대”, “다카이치 퇴진”을 강조하는 일본 시민사회 처지에선 흩어진 개헌 반대 동력을 하나로 아울러 총결집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화 나누는 강호동-송언석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4월 2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농협 자율성 수호 농민 결의대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4월 21일 국회 앞에서 강호동 회장이 붉은 머리띠를 맸다.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이 아닌,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 얘기다.
비리 의혹 당사자가 주장하는 '농협 자율성 수호'
강호동 회장이 두른 머리띠에는 '농협 자율성 수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필자는 뉴스에서 이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여러 기막힌 장면들을 보아 왔지만, 비리 의혹의 당사자가 집회에서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처음 본 듯하다. 그가 주장하는 자율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현재 강호동 회장과 그 측근들은 공금유용, 뇌물수수, 업무상 배임, 특혜성 수의계약 등 여러 비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혹들 중 상당수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고, 여러 언론들을 통해서 보도되기도 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정부 특별감사에서 사실로 확인되어 수사의뢰가 된 건들이 여럿이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집회에서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 회장 옆에서 붉은 머리띠를 두른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좀 당황스러웠다. 그는 '국민의 힘' 송언석 원내대표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이 자리엔 같은당 이만희, 김선교 의원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의혹을 받는 강호동 회장 옆에 앉은 송언석 원내대표가 두른 머리띠에도 '농협 자율성 수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송 원내대표나 '국민의힘'은 강호동 회장과 그 측근들이 받는 비리 의혹에 대해 어떤 입장이길래, 그 옆에서 같이 머리띠를 매고 있었던 것일까?
정부·여당 추진하는 농협법 개정안 반대...독립적인 감사가 자율성 침해?
▲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4월 4일 마포구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강호동 회장이 자율성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민주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인 윤준병 의원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이다. 정부와 여당이 당·정협의를 거쳐서 발의한 법안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법안의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 농협 내부의 유명무실한 감사조직을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숱한 비리와 공금유용, 부당계약, 부실대출 등의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의 내부감사조직은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특히 중앙회장과 그 측근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상 눈감아 왔다. 그리고 단위조합에 대한 감사에서도 조합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분을 해 왔다. 성희롱, 업무상 배임 등에 대해서도 경징계를 한 사례가 여럿인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중앙회에 소속된 내부감사조직의 인원과 예산은 어마어마하다 감사를 맡고 있는 인력만 해도 260명이 넘는다. 1년 예산도 500억 원 이상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조직을 독립시키자는 것인데, 강호동 회장 등은 이것을 '자율성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득력이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비리를 저지를 자율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과 모든 공익성 있는 비영리조직들은 주무관청의 감독과 감사를 받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게다가 농업협동조합은 금융업과 경제사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특례를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공적인 책임도 져야 한다.
둘째, 전조합원 직선제를 통해서 농협중앙회장을 뽑자는 것이다. 지금은 1110명의 단위 조합장들만 농협중앙회장 선거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품선거가 만연하고 있다. 일반 조합원은 투표권이 없고 단위 조합장만 투표권이 있다 보니, 농민들을 위한 공약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그래서 187만 명의 조합원들이 직선으로 농협중앙회장을 뽑자는 것이다. 물론, 전조합원 직선제에 대해서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조합원 직선제가 '자율성 침해'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셋째,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감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은 어떤 조직이든 해야 할 일이다. 농협중앙회에 소속된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감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도 감시의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다. 지금은 특별감사를 하는데도 금융지주 자회사의 자료제출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의 검사와 중복될 우려 있다면, 상호 협의해서 조율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지금 농협중앙회의 반대는 '감시의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벌어졌던 비리와 부조리가 계속되게 하겠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과 국민 다수, 농협개혁에 찬성
▲위기의 농협중앙회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중앙회와 농협재단 특별감사에서 비위 의혹과 인사·조직 운영 난맥상, 내부 통제 장치 미작동 등 65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두 건에 대한 법령 위반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2026-01-16연합뉴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농협 조합원 1079명과 국민 1000명을 대상(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조합원과 국민들 대다수는 농협개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호동 회장이 '자율성 침해'라고 주장하는 독립적 농협감사위원회 설치는 조합원과 국민 각각 85.8%, 93.3%의 지지를 받았다. 모든 개혁방안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이다. 그리고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전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는 것에도 조합원 83.1%, 국민 90.5%가 찬성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 지주회사 및 자회사 감독권 강화에 대해서도 조합원 67.5%, 국민 85.0%가 찬성했으며, 조합원 1명이 조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각각 68.9%(조합원), 79.7%(국민)가 찬성했다.
이처럼 조합원들과 국민들의 뜻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국민의 힘'은 강호동 회장과 계속 손잡을 것인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배후설에 입을 다물고 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이 나오면 곧장 고소·고발로 응수하던 정 대표의 평소 패턴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침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정 대표 본인이 이미 답해놨다. 2019년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풀어놓은 발언 그 자체가 답이다.
5월 1일 전주, 양정철 묻자 고개 돌린 정청래
지난 1일 전주를 방문한 정 대표에게 뉴탐사 취재진이 직접 물었다. "양정철씨 공천 개입 의혹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인재 부단장한테 계속 감찰 업무 맡길 건가요." "박우량, 김산, 장세일 후보 영장 얘기도 나오는데 공천 취소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 대표는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양정철이라는 이름이 들렸을 만한 거리였지만 고개만 살짝 돌렸다. 다른 비판에는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서던 그가 양정철 배후설에는 어떤 해명도, 부인도 내놓지 않는다.
2019년 판도라, 양정철 통화 토씨까지 옮긴 정청래
정 대표가 침묵하는 사이, 6년 전의 정청래는 다르게 말했다. 2019년 3월, 미국에 머물던 양정철씨가 민주연구원장직 수락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의 입장을 풀어준 인물이 정청래 당시 전 의원이다.
정 의원은 MBN '판도라'에 출연해 양씨와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양씨는 5월 1일 노동절을 피해 5월 2일부터 출근하기로 했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의 제안을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수락했다는 사실까지 정 의원이 풀어놨다. "본인이 이런 데서 얘기해도 된다고 그러더라고요"라며 운을 뗐다.
"본인은 원래 앞에 선봉에 선 사람이 아니라, 조절하고 통합하고 이런 역할을 주로 했다. 대선도 자기가 디자인을 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총선을 한번 디자인해 보고 싶다." 양씨가 했다는 말을 정 의원이 거의 토씨까지 옮긴 것이다.
진행자가 "공천 학살이죠"라고 받자 정 의원의 답이 더 구체적이다. "민주연구원에 공천하는 권한도 있냐"는 물음에는 "그런 건 없고요"라면서도 "당의 100대 정책, 총선 지역별 맞춤형 공약 이런 것 한다. 후보들이 필요한 거 갖다 쓰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 실세 이상이 났네 이거"라는 진행자 말에 "어, 근데 이제 아무래도 이런 사람들을 공천해야 된다는 공천 방향성 정할 수는 있죠"라고 답했다. 양씨가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 의원 본인이 인정한 셈이다.
청와대 안 들어간 이유, 양정철 본인이 풀어놓은 비선 정치
판도라에서 정 의원이 옮긴 양씨의 또 다른 발언이 있다. 양씨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다. 정 의원은 자신이 양씨와 직접 통화한 내용이라며 그대로 풀어놨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쨌든 대통령하고 가깝기 때문에 자기가 직책이 높든 낮든 자기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있다 보면 대통령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본다는 거예요. 가린다는 거예요. 자기가 없어져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가서 활발하게 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비켜 있는 게 낫다는 거예요."
직책에 들어가지 않고 비켜 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본인이 설계한 정치 방식이라는 진술이다. 정 의원은 이 말에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양씨는 지금 어떤 직책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 공천과 인사 곳곳에서 그의 손이 보인다는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6년 전 양씨 본인이 정 의원에게 풀어놓은 그림과 정확히 같다.
별명부터 한보 이력까지, 30년 호위무사 정청래
양씨의 행보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정 의원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양씨에게 붙은 "저주의 굿판 비서관", "언론 홍위병", "노무현의 언론 황태자"라는 별명까지 정 의원은 직접 변호했다. 양씨가 주도한 기자실 폐쇄 정책에 대해서도 "구태의 취재 관행을 좀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한 것인데 진보·보수 언론한테 다 집중 공격을 받았다"고 두둔했다.
2019년 5월 양씨가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강남 한 식당에서 심야 회동한 사실이 더팩트 보도로 드러나자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정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변호에 나섰다. "그냥 아는 사람끼리 만난 거 아닌가요." "두 사람이 뭔가 사전 모의한 것처럼 몰아가고 싶은 거겠죠. 팩트와 주장은 또 다른 거니까요."
이튿달 양씨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잇따라 만나 차기 대권 주자 줄세우기 논란이 일자 정 의원은 다시 같은 방송에 나왔다. "양정철 원장이기 때문에 생기는 말들인 것 같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슈 메이커이긴 하지만 좀 과도한 것 같다." 양씨를 변호하는 일에 정 의원만큼 열심이었던 인물은 당내에 없었다.
정 의원은 양씨의 30년 정치 이력을 방송에서 그대로 풀어놨다. 한국외국어대 학보사 출신으로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일부터, 청와대에서 다른 사람보다 두 시간 먼저 출근하던 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가장 크게 운 사람이 양씨라는 일화까지. "운명이라는 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권에 들어온 거예요. 데뷔를 한 거고. 그것을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 양정철이에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자체가 양씨의 기획이었다는 진술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18대 대선 패배 이후 4~5년에 대해서도 정 의원의 표현이 무겁다. "물 밑에서 온갖 일 다 한 거예요. 집사 역할도 하고 책사 역할도 하고 보좌관 역할도 하고 다 한 거예요." "김경수 지사랑 거의 맞먹는 책권이네요"라는 진행자 말에는 "사실은 더 친하다고 봐야죠"라고 답했다. 양씨의 한보그룹 시절 이력까지 정 의원이 직접 거론했다. "한보 정태수 측근으로도 있었더라고요. 부인을 하지 못하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한보 정태수 시절 직장 상사 이춘발, 언론중재위 부위원장 임명
양씨는 1996년부터 정태수의 한보그룹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다. 당시 직장 상사가 이춘발 전 문화일보 부국장이다. 이씨는 한보철강 부사장까지 올랐고 1997년 1월 한보 부도 당시 현직이었다. 이씨는 그 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로 정치권에 들어섰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비서관이던 양씨가 이씨를 KBS 이사로 천거하면서 언론노조의 반발 성명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씨는 결국 2007년부터 2009년까지 KBS 이사를 지냈다. 양씨가 직접 모시던 한보 시절 상사를 공영방송 이사 자리에 앉힌 셈이다.
이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공감TV 부흥 행사에서 좌장 역할을 맡으며 뉴탐사를 공격해왔다. 뉴탐사에 자주 출연하던 인사들에게 직접 연락해 출연 자제를 압박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런 그가 2025년 11월 17일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거쳐 12월 1일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이뤄진 인사다. 통상 언론중재위원은 현직에서 물러난 지 2~3년 안짝의 언론인을 임명한다. 이씨가 언론사에 마지막으로 몸담은 것은 1996년 문화일보 부국장 시절로, 30년이 다 돼 간다. 부위원장 자리는 판사 출신 위원장이 명예직인 만큼 사실상 위원회를 운영하는 핵심이다. 그 자리에 다시 양씨의 한보 시절 직장 상사가 앉았다. 양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의심이 따라붙는 이유다.
검찰 캐비닛으로 짠 2020년 총선, 양정철과 장인재
양씨는 2019년 5월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한 뒤 "총선 승리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21대 총선의 공천 설계가 그의 손에서 짜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 캐비닛이 동원됐다는 증언이 민주당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양씨가 검찰이 보유한 약점 자료로 일부 중진 의원을 압박해 공천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한 전직 장관을 통해 민주당 인사 6명에게 퍼졌고, 김어준 진행자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인사도 그 6명에 포함됐다.
검찰 캐비닛을 양씨에게 연결한 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장인재 현 민주당 윤리감찰단 부단장이다. 장 부단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다.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손에 청와대로 입성했고, 이후 임 전 실장의 소개로 양씨의 민주연구원에 합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 제보자는 양씨가 "일도 잘하고 그런 걸 사람들한테 잘한다"며 장 부단장의 처세 능력을 평가했다고 전했다.
장 부단장은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윤리감찰단 부단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2020년 총선 인사 영입을 맡았던 백원우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 문정복 의원은 정 대표의 최측근 최고위원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총선 무대를 짠 사람들이 2026년 지방선거에 그대로 복귀한 모양새다.
체포동의안 가결파 "이재명으로는 안 된다", 양정철의 비대위 체제 요구
2023년 9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국면에서도 양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가결을 막으려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이 양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 동석한 인물은 최재성 전 의원이다.
양씨는 이 자리에서 "양정철, 최재성, 이광재, 이인영 이렇게 만나서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의석수가 120개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 가지고는 안 되니까 역할을 해 달라"는 요구도 곁들였다. 부결시키면 그때 자신들의 분석을 들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 제보 내용이다. 결국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양씨가 원한 그림은 비대위 체제 전환을 통한 2024년 총선 공천권 회수였다. 양씨에게 이재명은 처음부터 끌어내야 할 대상이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같은 시기 뉴탐사와의 통화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당이 제대로 된 개혁을 하든 말든 솔직히 상관이 없어요." 양씨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진 탁씨가 이재명 체제에 거리를 둔 셈이다.
평택·안산 전략공천에 박지원 국회의장 시나리오까지
2026년 지방선거 공천 곳곳에서 정 대표 본인의 결정이라기보다 양씨의 손이 더 짙게 보인다는 의심이 당 안팎에 퍼져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저격수로 통하는 김용남 전 의원이 평택을 보궐선거에 전략공천된 것이 대표적이다. 정청래·조국 합당이 거론되던 흐름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인사다. 안산갑 출마 채비를 하던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김남국 전 의원의 전략공천에 자리를 비켜준 일도 거의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
국회의장 선거판도 같은 손이 짜고 있다는 분석이 따라붙는다. 박지원 의원과 조정식 전 정무특보, 김태년 의원의 3파전이 시작됐다. 박 의원은 집정부제와 책임총리제를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박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면 내각제 개헌이 탄력을 받는다. 조국 대표를 평택에 묶어둔 공천이 8월 전당대회 이후 조국혁신당의 흡수합당으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도 같은 라인에서 그려진다.
햇빛연금 빼서 기본소득 돌려쓴 박우량, 무감점 공천의 실상
정 대표 체제의 공천 검증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후보가 박우량 전 신안군수다. 박 전 군수는 햇빛연금을 농어촌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며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데려와야 되겠다"는 칭찬을 끌어냈다. 그러나 햇빛연금의 정식 명칭은 개발이익공유금이다. 태양광 발전소 주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 보상금이다. 신안군 안좌면 한 주민은 분기마다 받던 36만원의 햇빛연금이 올해 1분기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옆집 40만원도 끊겼다. 그 자리에 기본소득 20만원만 입금됐다. 피해 보상금을 빼서 기본소득으로 돌려쓴 그림이다. 대통령에게 보고한 설계와 정반대다. 이런 후보를 정 대표 체제는 무감점으로 경선에 통과시켜 민주당 후보로 만들었다.
다시 전주, 6년 전 본인 발언이 그대로 답이다
2019년 판도라에서 양정철의 입이 되어주던 정 의원은 2026년 5월 전주에서 그 이름을 묻는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이유를 정 대표 본인이 6년 전에 다 풀어놨다. 양정철은 총선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했고, 정청래는 그 말을 그대로 옮겼다. 양정철은 직책 없이 비켜 서서 일하는 것이 자기 방식이라고 했고, 정청래는 그 말도 그대로 옮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그림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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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의 수요가 소득과 함께 부채에 의해 결정되며, 과다한 부채로 경기와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진다는 ‘부채 기반 수요(Indebted Demand)’ 분석을 제시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사이클’ 이론을 통해 세계 금융은 미국의 금리와 달러 유동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통찰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높은 학식과 이론 보다도 그의 이름 석 자가 가진 무게감 자체가 상당하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스타를 영입한 것과 다름없는 기대감이 시장에 감돈다. 그는 국제 금융 무대의 중심인 BIS(국제결제은행)에서 조사국장으로 활동해온, 그야말로 금융계에서 ‘월드클래스’인 학자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 팬들은 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손흥민 선수라 할지라도, 국가대표팀 경기장이 배수가 안 되는 ‘논두렁 잔디’라면 특유의 스프린트와 정교한 슛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지금 신임 총재가 마주한 한국 경제라는 경기장도 선수들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다. 겉으로는 반도체 수출 호조라는 조명등이 켜져 있으나, 저성장으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장이 고물가, 고환율, 가계부채라는 진흙탕으로 뒤덮여 있다. 아무리 뛰어난 경제 이론가라 할지라도, 발이 푹푹 빠지는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은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란 오명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전임 이창용 총재 체제에서 화려한 등판이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 전 총재 역시 국제기구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한은의 연구 기능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의 실상은 참담했다.
한은 총재가 이른바 기재부장관이 주재하는 ‘F4(Finance 4) 회의’라 불리는 고위 당국자 모임에 한 명의 위원으로 정례적으로 참석하며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사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소리 없이 붕괴되었다. 중앙은행의 수장이 정부 관료들과 밀실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모습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다. 결국 한국은행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되돌아갔다는 비아냥을 자초했다. 정부의 입맛에 맞춰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데 급급했던 행보는 가계부채 문제를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방치했고, 한미 금리 역전 상황을 방치하며 고환율이라는 직격탄을 서민 경제에 날리는 우를 범했다. 신임 한국은행 총재 앞에는 이러한 과거의 관습을 어떻게 극복하고 한은의 독립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놓여있다.
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2026. 4. 30 연합뉴스
친기업적 금통위와 무력화된 통화정책
신임 총재의 앞길을 가로막는 더 큰 암초는 한국은행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한국 경제는 양극화가 심화된 K형 경제의 전형이라서, 통화정책을 펴기 어려운 국가임에 틀림없다. 반면 현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K자의 한 축인 서민경제와 중소기업보다는 다른 축인 대기업과 부동산업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중앙은행 총재가 부채의 위험을 강조하는 메이저리거급이라도 함께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원들이 모두 건설 경기 부양만을 외치는 ‘건설 해바라기’들이라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행 스스로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및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규모는 무려 600조 원에 달한다. 생산적인 금융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반으로 금융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경제 성장을 낮추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기형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져야 할 금통위원들은 구조조정의 칼을 뽑기는커녕, 여전히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내수가 산다"는 언론의 논조에 경도되어 금리 인하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보수적인 학자 출신 총재가 소신 있게 통화 긴축을 단행하거나 부실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압박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한은 총재의 역할은 이들의 등쌀에 밀려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 ‘삼중고’, 서민의 식탁은 눈물바다
경제 지표상의 차가운 숫자는 서민의 삶에 닿을 때 뜨거운 눈물이 된다. 지금 서민 경제는 단순히 '어렵다'는 형용사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라는 '삼중고' 앞에서 서민들은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협이 현실화될 때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은 속수무책으로 무력화된다. 케인즈는 금융정책을 '줄을 당기는 것(Pushing on a string)'에 비유한 바 있다. 줄을 당겨 긴축할 때는 효과가 명확하지만, 구조적 불황 하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줄을 밀거나 놓아버릴 때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반도체 대기업이 수출 대금을 환전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에 예금을 하려 했으나, 정작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이를 마다했다는 보도가 나올 지경이다. 이는 현재 시중 은행들이 가계의 부동산 담보대출이나 건설업·부동산업 대출 외에는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에 근접해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정책은 이미 무력화되었고, 재정정책은 비효율의 늪에 빠져 한국 경제의 저성장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자산가들이 저금리 유동성을 타고 주식과 부동산 파티를 벌이며 '금융장세'의 꿀을 빨고 있을 때,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며 배를 불리고 있을 때, 서민들은 그 늘어난 유동성이 초래한 고물가의 청구서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점심 식사 한 끼 가격에 벌벌 떨며 소비를 줄이는 이들에게,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실기는 단순한 판단 미스가 아니라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와 다름없다.
가계 부채의 늪과 부동산 투기의 망령
가계는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건설업계의 부도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끊임없이 자금을 수혈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은 건설업과 금융업의 부실을 감추는 에버그리닝을 방치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을 맞았고, 한국 경제 역시 같은 경로를 걸을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권과 금통위 내의 관료주의적 저항은 에버그리닝을 지속하려하기 때문이다. 부실한 건설사와 부동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자금 흐름은 계속해서 고여 썩게 될 것이다. 600조 원이라는 거대한 폭탄을 안고서도 "언젠가 오르겠지"라는 투기적 망령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전무해 보인다.
민주당 정부의 무지와 보수적 경제학자에 대한 짝사랑
여기서 우리는 정치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 경제와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가치로 내건 민주당 정부가 어째서 한국은행 총재직만큼은 이토록 일관되게 보수적인 경제학자들만 고집하는가? 이는 민주당 정부가 서민의 삶과 직결된 통화정책의 파급 효과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경제정책을 관료들에게 맡기고 다시 그들의 추천을 받아 보수적인 인물로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는 어처구니 없는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는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창용에 이어 신현송까지, 그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뛰어난 학자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보수적 경제관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의 시선에는 자산 시장의 안정과 대외 신인도라는 거대 담론만 존재할 뿐,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한 저성장과 저효율로 기초체력은 약화되고 양극화의 틈바구니에서 무너져 내리는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은 보이지 않는다. 이창용 총재가 방치한 고환율로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채식주의 식당을 경영한다면서 주방장은 스테이크 장인만 고용하는 이 아이러니가 결국 서민 경제를 더욱 사지로 내몰고 있다.
착시를 걷어내고 운동장 자체를 바꿔라
일시적인 반도체 경기 회복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이미 한국 경제는 여러 번 수출 지표가 좋아 보인다는 반도체 착시에 취해 저성장과 비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방치해 왔다. 그러는 사이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냈는데 이번에도 다시 같은 우를 범한다면, 한국 경제는 일본이 걸어갔던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과 혁신 저하라는 정해진 미래 앞에서, 펀더멘털이 무너진 한국 경제를 구원할 방법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바로 지금이, 그 여유 자금을 활용해 부실 산업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마지막 기회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적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신임 신현송 총재는 단순한 금리 조정자를 넘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설계하고 중앙은행의 '거버넌스'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신임 총재는 국제 무대의 찬사보다 서민들의 통곡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부속 기관이 아니다. 정부의 회의에 참석하는 관례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은행은 최고의 독립성을 기반으로 물가 안정과 민생 수호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 메이저리거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팀이 벼랑 끝에 몰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증명되는 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지원 계획을 밝히자, 이란 측이 "휴전 협정 위반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브라힘 아지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X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새로운 해상 질서에 대한 미국의 어떠한 간섭도 휴전 협정 위반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지지 위원장의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빼내는 작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글을 올리고 "중동 분쟁과 무관한 세계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자국 선박을 풀어줄 수 있는지 미국에 요청해 왔다"며 "이란, 중동,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그들의 선박들이 안전하게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측 대표들에게 미국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들의 선박과 선원들을 해협 밖으로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라는 점을 알리라고 지시했다"며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은 중동 시간으로 4일(월요일) 오전에 시작될 예정"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30일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까지 부여된 것을 놓고 조선일보가 “위헌으로 범벅된 공소 취소 특검법”이라는 사설을 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경향신문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민감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사설을 냈다.
경향신문 “여당 내에서도 ‘역풍’ 우려”
조응천 개혁신당 경기지사 후보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자들에게 ‘조작기소 특검’과 관련된 긴급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조 의원은 “조작기소 특검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모든 죄를 덮기 위한 공소취소 특검법, 범죄삭제 특검법”이라며 “윤석열은 비상계엄 내란, 민주당은 사법 내란. 둘 다 역사의 철퇴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이를 4일자 5면 <경기 조응천, 연석회의 제안… 추미애 맞서 야권 연대 시동 거나> 기사에서 주요하게 소개했다.
▲ 4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은 이날 1면 <‘공소취소 가능’한 특검법에 여당 내서도 ‘역풍’ 우려> 기사에서 “대통령이 당사자인 사건의 특검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특검이 공소취소까지 가능하게 한 법안을 낸 것을 두고 진보 진영과 학계 내에서도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한겨레도 3면에 ‘조작기소 특검’에 대한 법조계와 학계의 비판을 소개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검 도입 자체는 입법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공소 취소 권한까지 주는 것은 공정성 논란과 함께 법적 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다”며 “지금 특검법은 결국 이 대통령 본인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을 선임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 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위헌으로 범벅된 공소 취소 특검법> 사설에서 “이제껏 수사 기관의 사건 조작이 문제 된 사건과 관련한 특검은 한 차례도 없었다. 대부분 재심 등 기존 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됐다”며 “더구나 이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조작 정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특검을 해서 이 대통령 사건을 없애겠다는 것은 특정인을 위한 위인설법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특검법은 이 대통령 사건을 공소 취소할 수 있는 특검을 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그 자체가 이해충돌”이라며 “이것을 누가 공정하다 하겠나. 근본적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 대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런 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우리 국민이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은 무너진다.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방선거 한 달 앞, 공소취소·윤 어게인 경고 민심 새겨야> 사설에서 “국조특위에서 드러난 검찰의 수사권 남용 의혹을 밝히고 사법정의를 세우기 위한 특검의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공소취소권 부여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을 통해 자신의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겠는가. 험지 후보들이 ‘중도층에 악재’라며 속앓이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당장 격전지에서 보수 표심이 결집하는 상황을 지도부는 직시해야 한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민감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 4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대통령이 ‘조작기소 특검법’ 입장 분명히 밝혀야> 사설에서 “지난해 여당 주도로 추진된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지하는 ‘재판중지법’이 이 대통령의 반대 의사가 명확히 드러난 후 없던 일이 된 바 있다. 이번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며 “누구도 본인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근대 형사법 대원칙을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남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조선일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노동운동 종말”
▲ 4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면 톱으로 <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노동운동의 종말> 기사를 냈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와 “월급을 포기할 테니 그 돈을 회사 정상화에 써달라”는 입장을 밝힌 홈플러스 노조를 비교하며 “노동계에서는 ‘평등’과 ‘연대’를 내세우던 70~90년대 ‘노동운동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란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과거 노동운동은 다수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보편적 운동을 지향했는데, 이제는 특정 집단의 이익 극대화만 내세우는 불평등 운동으로 변질되며 노동 시장 이중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삼성전자 노조가 사측에 무기로 꺼낸 파업은 협력 업체 등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끼치는데,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이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 인터뷰도 나왔다. 4일자 중앙일보 22면에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에게나 노조원에게나 함께 일하는 주식회사가 ‘장기 번영 공동체’라는 사실”이라며 “회사 자산을 법인(法人)이 소유하는 이유는 자연인은 사멸하지만 법인은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기반 위에서 장기투자가 가능하다. 이 공동체의 장기 번영을 위해 함께 일하고 그 과실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지금 성과급이 문제인데, 정상임금이냐 성과급이냐를 강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에 대한 보상(실적 보상)과 미래에 좋은 성과를 내도록 북돋는 보상(미래 보상)을 나눠 합의를 도출하는 게 좋다”며 “삼성을 포함한 국내 회사 대부분이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가 약하다. 이번 기회에 장기성과 보상시스템을 제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는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한탕주의 현금 파티로 반도체 죽일 셈인가> 칼럼에서 “지구상에서 반도체 기업이 성과급 갈등과 파업 리스크로 홍역을 앓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뭔가 잘못됐다. 국민 69%는 삼성 노조의 이기적인 주장에 반대한다”며 “노다지가 굴러오니 한 밑천 챙기자는 한탕주의식 현금 파티는 정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분만실 뺑뺑이’ 첫 신고부터 이송까지 ‘3시간20분’
충북 청주에서 29주 고위험 임신부가 응급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부산까지 옮겨졌지만 결국 태아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1일 밤 11시5분께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29주차 30대 임신부가 출혈 증상으로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119 신고가 들어왔다. 해당 산부인과는 119 신고 전부터 충북대·충남대·대전을지대·건양대·순천향대(충남 천안) 병원 등 지역 내 상급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
▲ 4일자 한겨레 2면 기사.
119 소방은 충청을 포함해 전국 41곳 병원에 연락을 했고, 부산 동아대병원이 “수용 가능하다”고 응답해 헬기를 동원해 2일 새벽 2시25분쯤 병원으로 옮겼다. 한겨레는 “첫 신고부터 이송까지 3시간20분이 걸린 셈”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1면 <청주에서 부산까지 위기 임산부 ‘뺑뺑이’ 뱃속아기 또 숨졌다> 기사에서 “‘분만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24시간 분만·고위험 신생아 진료’가 가능한 지역모자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청주→부산 뺑뺑이’ 태아 사망, 특단의 대책 필요하다> 사설에서 “지난 2월28일 대구에서 임신부가 119 신고 4시간 뒤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쌍둥이 중 한명이 저산소증으로 숨진 지 두달 만에 또 일어난 비극”이라며 “잇단 ‘병원 뺑뺑이’와 ‘태아 사망’ 사건은 산과 전문의 부족과 소아청소년과 등 배후 진료 인력 부재가 낳은 결과다. 출산연령이 높아지면서 조산아·저체중아·다태아 등 고위험 분만이 늘고 있는데도, 저출생과 낮은 의료수가, 24시간 당직과 고난도 수술, 소송 부담 등으로 산과 진료를 포기하는 병원과 전문의가 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여러 명의 정치인이 카메라 앞에서 수어를 선보였다. 청인의 음성 소개에 맞춰 몇 초간 어설프게 손을 움직이고 사진을 남겼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짧은 이벤트, 수어의 쓰임을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에 가두는 불편한 연출이었다.
미디어에서 농인은 대게 결핍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를 독립적인 문법 체계를 가진 완전한 언어로 이해하지 않고, 농인이 공유하는 농문화와 농정체성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청인 중심의 시선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1년에 딱 하루, 수어를 이미지 연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의 모습 역시 농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대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책 <그 집의 언어>는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변형되는", "미디어가 원하는" 방식으로 농인을 소개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책 속에서 수어는 작가의 모어이자, 농인인 그 부모님의 언어다.
이 책을 쓴 유슬기 작가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다. 겉보기엔 고요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뜨겁고 시끌벅적한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세계를 수없이 잇고, 이해하고, 통역해 왔다. 몇 차례의 탈피를 거쳐 코다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농인의 세계에서는 청인으로, 청인의 세계에서는 농인의 딸로 살며 겪은 기록이 <그 집의 언어>에 담겨있다.
많은 이가 헷갈리지만, 수어는 한국어와 다르다. 수어는 문법부터 손, 표정 등 움직임을 활용해 한국어와는 표현 체계가 다른 독립된 언어다. 한국어는 "맑은 하늘"이라고 말하지만, 수어는 "하늘, 맑다"라고 표현한다. '하늘'이라는 대상을 먼저 제시하고, 수식어는 뒤에 온다. 또한 수어는 한국어와 달리 조사가 없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문법이 된다. 눈썹을 올리면 질문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면 긍정을 뜻하게 되며, 입 모양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로 감정의 결이 달라진다. 한국어에서 문장에 담긴 뉘앙스나 어조가 하는 일을 수어에서는 온몸이 한다."
수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한 작가는 사람들에게 '왜 수어를 배우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이 "수어를 배워서 봉사하고 싶다"고 답한다. 사람들에게 왜 영어를 배우냐고 물으면 "영어를 배워서 미국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데, 유독 수어는 선행과 봉사로 인식됐다. 시혜적 시선을 깨는 과정은 중요했다.
작가는 유튜브 채널 <유손생>을 운영한다. '수어로 자기소개하기', '농인을 만났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수어' 등 수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코다의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를 올린다.
미디어는 농인을 "불편함을 참고 사는 착한 사람"으로만 그리기에, "우리의 삶"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수어는 어떤 언어인지, 코다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삶이 정말 불쌍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미디어가 전통적으로 재현해 온 농인과 코다에 대한 고정관념을 직접 깼다.
농인과 수어를 향한 일상 속 '차별의 언어', 혐오 표현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작가의 모어이자 부모님의 언어를 구경거리로 삼는 것, 희화화하는 것 역시 그를 아프게 한다. "차별적인 언어를 고친다는 건 단지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다. 그 단어로 상처받았던 누군가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다. 나에게는 내 부모를 지키고 그들의 언어를, 나아가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듣는 사람' 중심의 사회,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농인이 겪는 차별적 요소를 드러낸다. TV 뉴스의 긴급 자막, 은행 문자, 정부 안내문, 공익 광고, 범죄 예방 안내 등 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들이 농인에게 얼마나 불친절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짚는다.
TV 화면 오른쪽 하단으로 밀려난 수어 통역의 배치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수어 통역은 미디어 안에서 여전히 부가적인 정보, '의무 이행' 정도로만 여겨지기에 그 작은 화면은 도통 커질 기미가 없다. 작가는 오른쪽 구석으로 밀려난 수어 해설 화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그 작은 창을 따라잡으려면 온 신경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청인에게 볼륨을 최저로 낮춘 TV를 보게 하는 일과 같다. 청인들은 말이 잘 안 들리면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운다. 작은 칸에 갇힌 수어 통역사도 리모컨으로 키우거나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는 스스로 "농수저"를 들었다고 표현한다. "쉽게 말로 꺼낼 수 없는 경험들과 농인 부모님의 억울한 삶의 증인이 되어 살아야 했던 시간에도 여전히, 기꺼이 코다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매년 4월 마지막 일요일은 '엄마 아빠 농인의 날'이다. 동시에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전 세계 코다들이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축하하는 코다의 날이기도 하다. 소리가 아닌 몸, 감각으로 전달된 사랑은 작가를 더 단단하게 했다. "코다로 사는 건 힘들었지만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엄마 아빠처럼 다정해지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손끝으로 느낀 다정함을, 작가의 언어로 이미 증명하고 있다.
독일 주둔 미군 약 5천 명을 앞으로 6~12개월 안에 줄이겠다고 미국 국방부가 1일 밝혔다. 이는 미국의 이란 침공에 회의적이거나 협력을 거부해 온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간의 갈등이 심화 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으로, 예정대로 삭감될 경우 유럽 주둔 미군병력은 2022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다시 줄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관련해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 대해서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해 왔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침공에 대해 “아무런 분명한 전략도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며 “이란 지도부로부터 미국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총리의 발언(4월27일)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두둔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독일에 주둔 중인 여단 전투팀이 철수하고, 조 바이든 전 정부가 올해 말에 독일에 배치하기로 계획했던 장거리 화력부대는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주독 미군병력 감축이 최근의 미국, 유렵 쌍방간의 불화와 반목 때문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총리. BBC 5월 2일
장기적 미군 해외전력 재배치 전략의 일환?
독일은 약 3만 6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유럽 최대규모의 미군 기지국이며, 주요 훈련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 이는 약 5만 4천 명에 이르는 주일 미군 다음으로 큰 규모다. 그 다음은 한국으로, 약 2만 8500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유럽 기지에는 모두 6만 8천 명(순환배치를 포함하면 약 8만 4천 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유럽 다른 지역에 재배치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이나 남북 미주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반구’로 옮겨 갈 수 있다고 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정권은 지난 2월 말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서기 전부터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에 대해 “핵무기에 대한 방어는 미국이 주축을 맡겠지만 통상전력(재래식무기)에 대한 방어는 유럽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얘기헤 왔다. 이런 식의 전환을 주도해 온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지난 달 말 X(예전의 트위터)에 독일이 유럽 군비강화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번의 주독 미군병력 감축도 전부터 준비해 온 미군 해외배치 재검토 계획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란과의 대치를 계기로 유럽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동맹국과 협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제법의 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가디언 5월 1일
스페인, 이탈리아와도 불화하는 미국
4월 30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미군 철수를 고려할 것인지 묻는 기자들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보세요, 왜 안 되겠습니까?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스페인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초기부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체스 총리는 “동맹국과의 협력은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미군기의 자국 영공 통과와 미군 공동기지 사용 등 미국의 협조 요구를 거부했다. 스페인에는 2025년 말 기준으로 약 3800명의 미군이 로타 해군기지와 모론 공군기지 등에 주둔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3월 말부터 미국 항공기가 전쟁무기 수송을 위해 시칠리아 공군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탈리아에는 지금 약 1만 3천 명의 미군이 7개 해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데, 이탈리아는 이란 공격을 위해 미군이 자국 영토 내의 군사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의 유럽 주둔군 철수는 “자해행위”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병력 감축이 얼마나 지지를 받을지는 불확실하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미군 기지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최근에는 이란을 포함한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미군 작전의 핵심 전진 기지이자 물류 허브 역할을 해왔다.
국방 분석가, 야당인 민주당,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일부 의원들까지도 유럽에 강력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미국의 세계적 군사적 영향력 확보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 대규모 병력 철수나 기지 폐쇄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하고, 전 세계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워싱턴의 역량을 크게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가디언 5월 1일)
공화당 소속 돈 베이컨 하원의원은 4월 30일 소셜 미디어에 “나토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의) 지속적인 공격은 미국인들에게 고통을 준다”며 “독일에 있는 두 개의 대형 비행장은 우리에게 세 대륙에 걸쳐 탁월한 접근성을 제공한다. (독일 주둔 미군병력 감축으로) 우리는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허풍일 뿐”
이는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의 군사관계를 격하하겠다고 위협한 것에 대한 명백한 반발로, 미국 하원은 대통령의 병력 감축 권한을 제한하는 국방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유럽 주둔 병력이 45일 이상 7만 6천 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금지하고 주요 장비의 철수를 막고 있다.
독일 군 관계자들은 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감축 위협에 대해 "협력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전직 미국 고위 군 관계자가 “그들은 '이런 상황은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허풍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일 유럽 동맹국들이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려는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나토 탈퇴를 “절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했으나, 미국이 탈퇴하려면 2024년에 통과된 미국 법에 따라 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또 다른 입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낮다.
2025년 2월 6일, 독일 남부 호엔펠스 훈련장에서 미군 장병들에게 연설하는 랜디 조지 미 육군 참모총장.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랜디 조지 참모총장에게 사임을 요청했다고 한 미국 관리가 4월 2일 밝혔다. 이 관리는 조지 참모총장이 즉시 퇴임 요청을 받았다는 CBS 방송의 보도를 확인했다. 2025.2.6. AFP 연합뉴스
주한 미군과도 겹치는 주독 미군의 존재 이유
미국이 독일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이유, 그 역할,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지 축소 위협이 왜 미국에 이롭지 못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디언(5월 1일)이 간략하게 살펴본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한 미군, 주일 미군의 존재 이유, 주둔 경위, 역할, 감축 가능성 등과도 많은 부분 겹친다.
미국은 왜 독일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나?
미군의 독일 주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정권 항복으로 끝난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에는 160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숫자는 1년 만에 3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주로 미군 점령지역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미국의 주둔 규모는 계속 줄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임무는 탈나치화에서 소련에 대한 방어벽으로서 독일을 재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49년 나토 창설과 서독 건국으로 미군 기지는 영구적인 시설로 자리 잡았다.
냉전 절정기에는 미국이 독일 전역에 약 50개의 주요 기지와 800개가 넘는 시설을 운영했는데, 여기에는 대규모 비행장과 병영부터 도청 시설까지 다양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2년 뒤 소련 붕괴 이후 많은 기지가 폐쇄됐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는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이 25만 명을 넘는 경우도 많았으며, 수십만 명의 가족들이 기지 안팎에 거주하면서 학교, 상점, 영화관 등을 갖춘 자급자족적인 미국 마을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기지들의 규모와 역할은?
미국 국방인력자료센터(Defense Manpower Data Center)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군은 유럽의 기지에 6만 8천 명의 현역 군인을 상시 배치했으며, 그중 절반이 조금 넘는 약 3만 6400명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유럽사령부와 아프리카사령부 본부를 포함해 20~40개의 기지(기지 정의에 따라 개수가 달라질 수 있음)에 분산되어 있으며, 이 두 사령부는 양 대륙의 모든 미군 작전을 총괄한다.
유럽에 있는 7개의 미 육군 주둔지 중 5개가 독일에 있다(나머지 2개는 벨기에와 이탈리아에 있음). 슈투트가르트 외에도 가장 큰 규모의 미군기지로는 8500명의 공군 병력이 주둔하는 유럽 주둔 미 공군사령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가 있다.
바이에른 주둔군이 관리하는 그라펜뵈르, 빌제크, 호엔펠스는 유럽 최대규모의 미군 훈련장이며, 비스바덴 주둔군은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 사령부 본부다. 란트슈툴 의료센터는 미국 외의 지역에서 가장 큰 미군 병원이다.
이 기지들의 역할은 냉전 이후 급격히 변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란을 포함한 미군 작전지의 핵심 전진기지이자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비슷한 위협을 한 적이 있나?
여러 번 있었다. 백악관 첫 임기였던 2020년, 독일의 낮은 국방비 지출과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건설 지원에 격분한 듯 독일을 "불량 국가"라고 부르며 주둔 미군병력을 3분의 1로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고, 나토 고위 관리들까지 완전히 허를 찔린 것으로 보인다. 그 누구도 그 결정에 대해 통보받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일부 병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키고 나머지 병력을 폴란드와 이탈리아 같은 국가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의회에서 초당적인 반발에 부딪혔고, 막대한 물류적 난관에 직면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이 계획을 동결했고, 이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
주한 미군 부산 군사우편 터미널 개관식이 열린 30일 부산 동구 범일동 부산 물류센터에서 참석 내빈들이 테이프절단식을 하고 있다. 약 280평 규모의 부산 군사우편 터미널 시설은 인천의 주 허브 터미널과 함께 분할 분배시스템으로 운영되며 매년 한반도로 반입되는 5400톤 이상의 우편물 중 약 40%를 전담하여 처리하게 된다. 2026.4.30. 연합뉴스
주독 미군, 철수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 너무 커
독일에서 미군을 대폭 감축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 아니타 히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안보·외교담당 대변인은 4월 30일 미국이 "유럽의 안보와 방위에 필수적인 파트너"이기는 하지만, 유럽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미국이 자국의 세계적 역할 수행을 지원하는 데에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존스 홉킨스대 미국독일연구소의 제프 래스케는 같은 의견을 제시하며, 미국이 람슈타인 기지와 같은 곳에 전진 배치를 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고 있으며, 그런 기지가 없다면 많은 작전 수행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 주둔 미군은 감사할 줄 모르는 유럽인들에게 주는 자선 기부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은 유럽 방어를 돕고, 유럽은 미국의 세계 군사작전을 위한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미군은 유럽 내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에 약 1만 3천 명, 영국에 1만 명, 스페인에 4천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국방수권법에 따라 미군 병력은 영구적으로 7만 5천 명 미만으로 줄일 수 없다.
하지만 국방 분석가들은 슈투트가르트와 람슈타인 같은 기지에서 상당한 인력 감축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미 국방부 작전의 핵심 전략 거점으로서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 온 만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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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자수의 한 땀, 한 땀에는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것은 바느질이 아니라, 시간을 꿰매는 일이지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다가오는 인기척에도 바람처럼 가볍고 깊은 인사만을 건넬 뿐이다. 창으로 스며든 봄빛이 천 위에 내려앉고 그 빛을 따라 바늘이 느리지만 흔들림 없이 오간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손놀림이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는 지나온 세월과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시간의 결이 여사의 얼굴에 잔잔히 스며 있다.
그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다. 이름 없이 이어져 온 여인들의 삶과 사라질지 모를 생활문화의 기억이다. 작업실을 채운 자수 작품들은 공예품을 넘어 하나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한 땀씩 쌓아 올린 시간 위로 강릉 여인들의 삶과 전통이 오롯이 이어진다. 봄이 짙어지는 어느 날, 강릉의 한 작업실 겸 전시실에서 자수장 김순덕(80)여사를 만났다.
▲작업실에서 바느질에 몰두한 김순덕 여사, 한 땀씩 쌓인 자수 작품들에 강릉 여인들의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진재중
오죽헌에 스며든 또 하나의 예술
강릉 오죽헌은 오랜 세월을 품은 유적지로, 신사임당과 이이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이제 이곳은 단순한 유적을 넘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한켠에 강릉자수 무형유산 김순덕 여사가 작업실과 전시실을 마련했다. 그의 자수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규방에서 이어져 온 삶의 기록이자 시간의 언어다. 그의 바느질은 오죽헌이 간직한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덧입히며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작업실에는 화려함 대신 깊이가 있다. 비단 위에 수놓인 꽃과 새, 자연의 형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억의 흔적처럼 다가온다. 관람객들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늦춘다. 소리 없는 이야기들이 실의 결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과거는 박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속에서 다시 숨 쉬며 이어진다. 오죽헌이 품어온 정신과 김순덕 여사의 자수가 만나는 순간, 공간은 하나의 살아 있는 서사가 된다. 바늘 끝에서 이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품은 공간. 오죽헌은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짓고 있다.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집안일의 중심에 서 있었다. 중학생이 되던 무렵에는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별한 배움이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에 가까웠다. 이불을 만들고 해진 옷을 기워 입히는 일은 늘 반복됐고 바느질은 기술이라기보다 가족을 위한 책임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걸 보면서 따라 했어요. 그땐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에게 바느질은 선택이 아닌 일상이었다. 집안을 꾸리고 가족을 돌보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익숙해진 손놀림이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가사 시간에 처음으로 자수를 접하게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이미 바느질에 익숙했던 그는 자수 작업도 금세 손에 익혔고 결과물 역시 또래들보다 뛰어났다. 이를 본 선생님의 칭찬은 그에게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
"바느질이 익숙해서인지 자수가 손에 잘 맞았어요.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그 칭찬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바느질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을 위해 해야만 했던 바느질이 점차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 해보고 싶은 일로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익숙했던 일상 속 기술이 개인의 재능과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 속에 깃든 김순덕 여사의 자수 인생, 강릉자수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한다. ⓒ 진재중
스승을 만나 전통이 되다
1975년, 김순덕 여사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강릉 지역 여성 모임인 예림회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만난 성기희 교수(전 가톨릭관동대 가정학과)는 그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예절도 가르쳐주시고, 전통음식이랑 자수까지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셨어요."
그가 배운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전통을 대하는 자세와 삶의 방식이었다. 예림회에서 전통자수 분과 위원장을 맡은 그는 성 교수 곁에서 보조 역할을 하며 배움을 쌓았고, 이후에는 직접 강단에 서며 전통을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가르치다 보니까, 우리 규방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 깊이 알게 됐어요."
배움은 자연스럽게 나눔으로 이어졌고, 그 나눔은 전통을 이어가는 힘이 됐다.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바늘질은 이제 더 많은 이들의 손으로 전해지며 사라질 뻔한 규방의 기억을 다시 삶 속으로 불러내고 있다.
▲사라질 뻔한 규방의 기억을 자수로 되살려, 다시 삶 속으로 이어가고 있는 김순덕 여사 ⓒ 강릉자수보존회
강릉수보, 지역의 정체성을 품다
"강릉수보에는 혼이 서려 있어요."
그는 강릉의 수보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며 이를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스승 성기희 교수와의 인연이자 이어가야 할 유지로 여긴다. 강릉수보자기는 혼례용 보에서부터 떡 목판을 덮는 목판보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색채와 문양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나무와 꽃, 새와 풀, 그리고 작은 벌레들까지, 이러한 소재들은 강릉의 여류 화가이자 문인인 신사임당의 '초충도'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한 땀 한 땀에 마음이 담겨 있지요."
그는 수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전한다. 자연을 사랑하던 소박한 마음,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던 간절한 바람이 바늘 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작업을 할 때마다 옛 강릉 여인들의 정성과 삶의 무게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고 말한다. 강릉수보는 단순한 공예를 넘어, 마음을 전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다. 그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품고, 강릉 자수가 지닌 깊이를 오늘에 이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순덕 여사는 혼례용 보부터 떡 목판을 덮는 목판보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온 강릉수보자기의 쓰임과 아름다움을 담았다. ⓒ 강릉자수보존회
반세기 장인의 길, 강릉 자수의 맥을 잇다
2003년 전국 공예 대전에서 '다기와 자수 찻상'으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2009년 강원 공예 대전에서 '자수 이야기'로 수상한 김순덕 자수장은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과 전승 노력을 인정받아 2017년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강릉전통자수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반세기 넘게 강릉 전통 자수의 맥을 이어온 그는 지역 자수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온 대표적인 장인이다.
2025년 전승발표회에서는 그간 축적해온 기예와 미감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전시에는 강릉 자수의 특징을 집약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강릉수보와 조각보, 여의주보 등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공간을 채웠다. 작품들은 지역 고유의 색채와 조형미를 뚜렷하게 드러냈고, 정교한 침선과 풍부한 색감은 각각의 작품에 깊이를 더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한 작품은 전통 회화를 섬세한 바느질로 풀어낸 사례로 주목받으며 큰 관심을 끌었다.
▲김순덕 자수장에 복원된 방사문 혼례용 강릉자수 보자기(강릉수보) ⓒ 강릉자수보존회
속도보다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에게도 작업을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눈을 실명하거나 안구가 위축될 수 있는 망막박리라는 예상치 못한 질환이 찾아온 것이다. 수를 놓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한동안 바늘을 잡을 수 없었다. 익숙하게 이어오던 작업이 멈추자 일상도 함께 느려졌다.
"빠른 것보다 한 땀, 한 땀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를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지요. 바느질이 제 건강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자수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했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예전과 같은 감각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바늘을 잡는 것부터 서툴게 느껴졌고 손의 움직임도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다시 손을 움직였고 익숙함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이어갔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작업을 대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빠르게 완성하는 것보다, 한 땀 한 땀에 집중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자수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감각과 집중, 그리고 마음이 함께 쌓여 완성되는 작업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김순덕 여사의 한 땀의 바느질은 기술을 넘어 삶의 시간이 된다. ⓒ 진재중
이건 복원이 아니라, 시간을 겹쳐놓는 작업입니다
그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하며, 이를 단순한 모사가 아닌 자신의 시간을 덧입혀 새롭게 쌓아가는 작업으로 여긴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한 땀 한 땀 옮기는 반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마주한다. 초충도에 담긴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섬세함이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자수는 옛것을 그대로 되살리는 재현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해석입니다. 전통의 이미지 위에 오늘의 숨결을 더해 새롭게 이어가는 일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작업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자수는 재현이 아니라 해석이다. 과거의 이미지 위에 현재의 감각을 더하며 전통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사라지지 않게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한 작품은 그의 작업 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과 삶이 더해진 또 하나의 창작이다. 화면 위에는 자연의 섬세함과 함께 장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초충도, 김순덕 자수장에 재해석된 자수 초충도 8폭 병풍 ⓒ 강릉자수보존회
그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지속'이다
그는 전통자수의 기법을 익히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 생각은 자수를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목걸이와 브로치 같은 장신구부터 보석함, 찻상, 윷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 소품에 자수를 적용하며 전통을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이러한 작업은 전통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통해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예쁘지 않아요." 작품을 바라보며 말을 이은 뒤,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이유는 전통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문화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이 실제로 쓰일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에게 호응을 얻은 눈꽃무늬 자수 목걸이 역시, 그러한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동계올림픽 눈꽃무늬 자수 ⓒ 강릉자수보존회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수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전통 공예가 새롭게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도 기대와 함께 경계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겉모습만 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며, 무엇보다 '진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법과 지역 고유의 정서가 함께 담겨야 비로소 전통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빠진 작업은 단순한 모방에 그친다는 생각이다. 전통은 상품이 아니라 이야기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문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게 자수는 기술을 넘어 삶 자체다. 특별한 극복의 서사로 설명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시간을 이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바늘을 든 지금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리듬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일이기에, 끝까지 의미 있고 아름답게 완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한편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또 다른 핵심어는 '규방 문화'다. 과거 여성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규방은 단순한 일상의 장소를 넘어, 감정과 바람을 표현하던 창작의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탄생한 자수와 보자기는 삶과 예술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김순덕 여사의 전통자수는 목걸이와 브로치 같은 장신구를 비롯해 보석함, 찻상, 윷판 등 다양한 생활 소품에 자수를 입혀, 전통 문양이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여준다. ⓒ 강릉자수보존회
▲장신구부터 생활 소품까지 자수를 더해, 전통을 오늘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 강릉자수보존회
한 땀, 그 느린 기록
천 위를 오가는 바늘질은 더디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그 흐름 위에는 이름 없이 이어져 온 여성들의 삶과 강릉이라는 지역의 시간이 함께 포개져 있다. 그는 전통이란 먼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오늘도 그의 바늘은 묵묵히 천 위를 지나며, 사라질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조용히 이어간다.
인터뷰 막바지, 그는 바느질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한다.
"강릉자수에는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한 땀 한 땀에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김순덕 자수장에게 자수는 생업을 넘어 삶의 방식이다. 시간과 시련 속에서도 손에서 바늘을 놓지 않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의 꾸준한 손길은 거창한 사명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성실히 이어가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으로 닿기를 바란다.
강릉자수는 그렇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이 조용한 계승은 전통이란 오래된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시간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여든이 넘은 손길로 자수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태도와 잔잔한 울림이 전해진다.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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