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희망이었던 MBC,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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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①] MBC 노동조합 초창기 주역 김평호 단국대 교수… “87년 체제 누린 MBC, 새 해방구 만들어야”
<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MBC 노동조합(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은 87년 체제 산물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이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고 외면당했던 것처럼 1987년 6월 항쟁에서 MBC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당시 MBC 취재차였던 하얀색 르망은 명동성당에서 시민들에 의해 박살났고 MBC 기자들은 이런 시민들의 울분을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과 MBC노동조합 탄생으로 승화했다. 방송 민주화 운동은 공정한 방송을 갈망한 시민들의 각성에서 비롯했다.
30년이 지났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PD들은 시용·경력 기자들로 물갈이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폭주한 언론부역 세력은 노골적으로 방송과 보도를 망가뜨리고 있다.
초창기 MBC 노조 주역이었던 MBC PD 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6월 항쟁에서 터져 나왔던 민주화 열망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었다”며 “국민이 만들어준 87년 체제라는 해방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 노동조합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강고해진 신자유주의 체제의 억압과 강제가 방송 민주화 운동을 쇠락시켰다”는 지적은 곱씹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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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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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박근혜 탄핵은 언론사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또한 MBC 정상화는 차기 정부 미디어정책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적폐를 청산하자는 시민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언론개혁, 그 가운데서도 MBC 정상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
“너무 망가졌다. 우리 때완 많이 다르다. ‘김장겸 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언론 부역자들이 9년 동안 지배하게 되는 거다. DNA 자체가 뒤바뀌게 된다. 인력이 회복될 수 없는 수준으로 물갈이되면 과거 MBC로 되돌리는 게 불가능해진다.”
- 권력의 언론장악을 견제할 세력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MBC 구성원들이 지속적인 탄압으로 힘을 잃고 있다.
“지금은 노조에 눈길 한 번 줬다간 불이익을 받지 않나. 가슴이 찢어진다. 선후배 동료 덕분에 MBC를 반석 위에 올려놨다고 생각했는데 과실을 엉뚱한 이들이 채갔다. 후배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1981년 MBC에 입사한 김 교수도 해직과 복직을 경험했다. MBC는 1990년 9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PD수첩’의 ‘농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편을 방송 몇 시간 전에 불방 조치했고 1991년 1월부터 방송됐던 사회 고발성 대하드라마 ‘땅’도 일방 지시로 조기 종영시켰다. 사측은 PD수첩 불방 사태에 항의한 안성일 MBC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당시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MBC노조가 유례없었던 50일 파업에 돌입한 배경이었다.
기자가 김 교수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초창기 방송 민주화 운동에 대한 증언이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땡전뉴스’로 공보 역할에 충실했던 MBC가 87년 체제를 겪으며 방송 민주화 운동 선두에 설 수 있었던 배경, 1987년이 그랬듯 박근혜 탄핵 이후 언론인들의 해방 공간이 열릴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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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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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MBC노조가 생긴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매해 파업했던 것 같다. 대부분 프로그램과 뉴스와 관련된 사안 때문이었다. 87년 체제의 힘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거다. 노조가 매번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어도 노조 요구안이 관철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MBC 내부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다르더라도 ‘언론인들은 권력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땐 이렇게 삽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지.”
- 언론노조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던 때였다.
“언론노조는 외형적으로 가장 강력한 시민단체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건설노동조합,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등 소위 인텔리 노조의 지도단체 성격이 강했다. 권영길(1987년 초대 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선배가 그 힘으로 1997년 대통령 후보에 나설 수 있었다. 언론노조를 밑에서 떠받치던 노조가 KBS·MBC였다. 하물며 조선일보도 1988년 노조를 만들었는데 초대 위원장이 김효재씨(MB정부 전 청와대 정무수석)였다. 조선투위 선배들과 함께 활동했던 걸로 기억한다.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준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MBC노조의 방송 민주화 투쟁 선봉에 섰던 이들은 한국 언론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1992년 MBC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로 50일 파업을 이끌었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며 20일간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tbs교통방송을 라디오 시장에서 1위로 도약시킨 정찬형 tbs대표 역시 1996년 노조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정 대표는 “방송사 민주화 운동은 거창하게 운동권들이 창출한 싸움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든 6월 항쟁 공간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직장인들이 시작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자유언론의 창달’을 명시한 6·29선언이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고 말했다. 최승호·조능희·김환균 등 PD수첩 대표 PD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 당시 언론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MBC노조가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는 얘기도 참 많았다. 왜냐면 시민들이 변화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광주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1989년 2월 방영된 MBC ‘어머니의 노래’가 그랬다. 노사가 공정방송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었고 우리는 광주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부들은 ‘애기들아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만류했다.(웃음)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MBC 어머니의 노래는 민족의 쾌거’라는 내용의 시청자 편지를 받기도 했다. 많은 성금과 격려가 있었다. 우리가 집회를 하면 시민단체 성향과 상관없이 찾아왔다. 지역 노래패들이 기꺼이 연대해 노래를 해주는 등 자랑스러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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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1992년 당시 MBC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로 50일 파업을 이끌었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며 20일간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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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가장 큰 장점은 조직 문화였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선후배간 유대감이 굉장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기수 문화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파업에서 올라오면 선배들이 수고했다고 살뜰히 후배들을 챙겨줬던 곳이다. 초창기엔 일부 조합원들이 집회 참여로 불이익을 봤지만 감정적으로 부딪히진 않았다. 지금처럼 비인격적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내부 DNA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금도가 있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대신해 모든 걸 뒤집어썼던 시기였다. 지금은 대놓고 기회주의적인 인사를 자리에 앉히지 않나.”
- 그럼에도 방송 민주화 운동에 한계가 있었다면?
“집회를 할 때 동료들과 그런 말을 했다. ‘우리 목소리를 반드시 화면에 반영하자. 꼭 실천하자.’ 그게 진정한 의미의 투쟁인데 집회현장에서 현장으로 돌아가면 일상에 매몰돼 그 기억을 잊곤 했다. 우리가 외친 구호만큼 화면은 따라오지 못했다. 6월 항쟁 열기에 우리는 무임승차했다. 완전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보수 세력과 언론은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했다. 끝없이 좌파로 몰아세웠다. MB정부는 2009년 MBC 관리감독기구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켰다. MBC 장악의 신호탄이었다. KBS·MBC 때문에 진보진영에 정권을 뺏겼다는 보수의 트라우마는 깊고 오래된 것이었다.
김 교수는 “MBC 제작 자율성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때는 노무현 정부 시기가 맞지만 좌고우면 않는 권력 비판에 노무현 정부도 MBC를 골치 아파했다”며 “노무현 정권의 한 청와대 비서관은 내게 ‘MBC는 같은 편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 방송문화진흥회가 지금처럼 보도나 제작에 개입한 적이 있었나?
“방문진은 바람막이 그 이상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방문진 차원의 프로그램 개입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 ‘MBC 일베화 작전’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웃음) MBC PD 출신 김우룡씨가 2009년 방문진에 오면서 ‘노영방송’ 프레임이 본격화했다. 본인 스스로 ‘좌파를 청소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한국의 우파 기득권 집단이 보기에 MBC는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할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현실이 된 거다.”
- MBC가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진 배경은 무엇일까. 노태우 정권에서도 광주를 다룬 MBC였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억압적인 삶과도 연관이 있다. MBC 기자 후배 임명현씨 논문에도 잘 나와 있다. MBC가 극우 매체화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잉여적 주체’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처럼 MBC 구성원들도 불안정한 신자유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항적 목소리가 힘겨운 게 아닐까. 내가 해고될 때만 해도 사회·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었다. 노동조합은 임금 1원도 틀리지 않고 보전해줬다. 사회적으로도 저항 언론인, 투사로서 인정받았다. 내게 노조 활동은 자랑스러운 삶의 궤적이었다. 그러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방송사 노동조합은 여러 압력을 받아왔고 영향력과 권위가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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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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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언론 목줄을 죄는 압력이 지금보다야 이완되겠지. 내부적으로도 그에 따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당장 국회에 계류돼 있는 언론장악방지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태극기 방송’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MB정부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쫓아내듯이 진보 진영이 공영방송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
- 정치권 역할도 중요할 텐데 어떻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나?
“차기 정부 최우선 언론 정책은 MBC 바로세우기가 돼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되레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 통과에 부정적인 것 같다. 혹시 ‘MBC는 이제 우리 차지’라고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된 거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이미 극우매체가 된 MBC를 다시 되돌릴 이유가 뭐냐는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 미디어 학자로서 차기 정부에 조언한다면?
“새 정부가 미디어·IT 정책에 크게 힘쓸 필요가 있나 싶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개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재 공무원 수준을 감안하면 차라리 손을 대지 않는 게 낫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클 것이다. MBC 문제만 해결해도 큰일하는 거지. MBC 사태는 적폐청산의 최우선 순위로 다뤄져야 한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어쩌면 공영방송 이사회 개편보다 중요할 수 있다. 제도나 틀만 내세울 게 아니라 다시 MBC 문제 본질을 공론화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현장] 전국에서 3000여 명 성주 집결... 사드 배치 강행 중단 범국민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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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반대' 시민과 경찰 충돌... 원불교 천막 강제 철거
[현장] 전국에서 3000여 명 성주 집결... 사드 배치 강행 중단 범국민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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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 오후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사드배치예정지인 성주 골프장 인접 도로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마친 집회참가자들이 원불교 교무들이 설치한 천막을 경찰이 철거하려하자 충돌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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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돌에도 의연한 원불교 교무들 18일 오후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사드배치예정지인 성주 골프장 인접 도로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마친 원불교 교무들이 천막을 철거 하려는 경찰과 충돌 중에도 기도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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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 오후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사드배치예정지인 성주 골프장 인접 도로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마친 집회참가자들이 원불교 교무들이 설치한 천막을 경찰이 철거하려하자 충돌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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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 오후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사드배치예정지인 성주 골프장 인접 도로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마친 집회참가자들이 원불교 교무들이 설치한 천막을 경찰이 철거하려하자 충돌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최종신 : 18일 오후 8시 40분]
원불교 측이 설치한 '3평 크기 천막' 두고 충돌
사드 반대를 위해 경북 성주에 모인 시민들과 경찰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사드 반대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원불교 교단은 18일 사드 강행 중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후 오후 5시 40분경 성주군 소성리 잔밭교 부근에 기도를 위해 간이 천막을 설치했다. 사드 설치가 예정된 미군 부대의 입구 지점이다.
해당 장소에는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 200여 명이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강제철거에 항의했으나 경찰이 "바짝 밀고 나가", "(천막) 들고 나가"하며 철거를 강행하자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 병력은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폭력경찰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자 미군 부대 쪽으로 이동했다.
박근혜 적폐 청산... 최우선 과제는 '사드 중단'
앞서 오후 3시 30분부터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사드 반대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자축했다. 시민들의 촛불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 사드 설치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석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대표는 "한반도 방어를 위해서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박근혜 잔당들이 한반도 안보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면서 "중국 관광객 끊기면서 서민, 중소상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퇴진국민행동은 '박근혜 탄핵 시즌 2'를 박근혜 적폐 청산에 두고 있다"면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사드 중단"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3월 25일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사드 반대 투쟁을 전면에 배치하고 대선에서도 사드 배치 취소를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만들어내자"고 호소했다.
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인 함세웅 신부는 "며칠 전 박근혜 파면 소식을 들으면서 감격의 기도를 올렸다"면서 "이 기도는 사드 배치를 저지함으로써 완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인들은 평화의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기와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강대국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정의당,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특정 단체에서 온 이들도 있었지만, 개별적으로 참석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사드가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충남 당진에서 온 강종수(56)씨는 "어차피 북한에서 쏘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사드로 막을 수 없다"면서 "괜히 국력 낭비하지 말고 다른 방어 수단을 찾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점들을 보면 현 정부가 국익 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쫓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주를 찾은 박미향(45)씨는 참석 동기를 묻자 "사드 설치 얘기가 나오고 나서부터 중국과 사이도 급속히 안 좋아지고 괜히 미국 좋은 일 해주다가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드 한번 배치하면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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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시민단체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1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출발해 사드배치 예정지인 성주 골프장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 참가자들은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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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시민단체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1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출발해 사드배치 예정지인 성주 골프장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 참가자들은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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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시민단체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1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출발해 사드배치 예정지인 성주 골프장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 참가자들은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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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18일 오후 3시 40분]
"박근혜 다음은 사드... 황교안도 물러가라"
"사드 배치 결사반대! 사드 배치 결사반대!"
"아이고 어서 오이소."
참외 재배용 비닐하우스 사이로 난 2차선 도로가 깃발을 든 외지인들로 길게 들어찼다. '사드 반대'가 그려진 밀짚모자를 쓴 농민들은 길가에 나와 연신 웃으며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18일 오후부터 경북 성주군 등지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범국민대회는 최근 오산 미 공군 기지에 사드 발사대가 반입되고 사드 레이더 반입이 예정되는 등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사드의 성주 배치를 국민적 결의로 저지하겠다는 취지다. 대회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은 "불법적 사드 배치가 원천무효임을 밝히고 정부의 불법에 맞서 평화 행동을 통해 결연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정오부터 성주군 초전농협 앞에서 행진을 시작해 사드 예정지 인근인 소성리 부근에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성주 군민들뿐 아니라 외부 지역에서 사드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김충환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공동위원장은 행진에 앞서 "오늘 평화의 길이 될 것. 소성리 마을에 도착하면 5000명이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현재 소성리 삼거리 앞에는 약 2000여 명의 행진 인파가 도착했다.
촛불집회 ‘1억 빚’ 후원 요청에 9억여 기적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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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억 빚’ 후원 요청에 9억여 기적 모였다퇴진행동 “평범하고 위대한 시민의 힘으로 이미 새로운 세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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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행동 주최, 20차 촛불집회에서 촛불 승리 폭죽이 터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
촛불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1억 후원을 요청한 지 3일 만에 해당 금액에 9배에 달하는 8억 8천여만원이 모아졌다.
관련기사 ☞ 촛불집회 ‘빚 1억’…“다시 시민들에 호소할 방법밖엔”
퇴진행동은 19일 ‘1억 빚에 대한 시민후원 감사의 글’을 통해 약 2만 1천여명이 마음을 보태 8억 8천여만원이 모아졌다고 알리며, 후원금은 3월25일과 4월15일에 예정된 대규모 촛불집회 비용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4일 박진 공동 상황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전야부터 시작된 집회비용으로 퇴진행동 계좌가 적자로 돌아섰다”며 “광장이 아니고서는 집회비용을 충당할 방법이 없는데, 고생한 무대팀들에게 미수금을 남길 수도 없는데 적자 폭은 1억을 상회한다”고 당시 상황을 알린 바 있다.
퇴진행동은 감사의 글에서 “후원 요청에 앞서 망설였다”고 밝히며 “말하면 모아줄꺼라 믿기도 했지만, 예민한 돈 문제여서 걱정했다. 퇴진행동이 감당하지 못하면 업체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전가될 것이 뻔히 보여 소심하게 용기를 내었는데 순식간에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퇴진행동은 “촛불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신 분도 계시고, 광장에서 함께 맞은 따뜻한 봄을 기뻐하며 보내주신 분도 계시다”면서 “행사기간 실비로 일해주고, ‘광장의 일원으로 서게 해줘서 고맙다’며 큰 후원해준 업체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고 알렸다.
이어 “박근혜를 퇴진시킨, 특권과 반칙을 참지 않았던, 비가오나 눈이오나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이 주인이었던, 광장의 힘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며 “권력과 권력끼리 나눈 부정부패에 분노해 열린 광장이었다. 늘 해왔던 대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 푼의 돈도 헛되이 쓰지 않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평범하고 위대한 여러분들의 힘으로 이미 새로운 세상은 시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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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커박사, 북미 핵전쟁 우려 심각, 북미대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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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커박사, 북미 핵전쟁 우려 심각, 북미대화 절실 | ||||
| 기사입력: 2017/03/18 [01: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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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방문과 때를 같이하여 북 핵단지를 여러 번 방문한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Hecker) 박사와의 대담을 보도하였는데 이 대담에서 헤커 박사는 북미핵전쟁을 포함한 핵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이 아니라 비밀이 보장된 북미 양자회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사실 헤커 박사는 지난 1월 트럼프 신 행정부 출범 직전에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한 바 있고 본지에서도 그것을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1270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C) 선임 연구원으로 있는 헤커 박사는 이번 대담에서 "현재 당면한 사안은 우리가 핵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고, 따라서 핵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라며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현재 그것을 운운할 때가 아니라 당장 핵 충돌 즉, 핵전쟁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서 현재 한반도에서 핵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어서 사실 매우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헤커 박사는 핵재앙의 구체적 내용으로 북 내부에서 핵물질을 취급하다가 날 수 있는 사고 등도 언급했지만 한반도 군사적 충돌시 핵전쟁이 발발할 우려에 역점을 찍어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물론 헤커 박사는 "행여 북한이 어떤 형태의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한반도에서 사용한다면 그게 바로 ‘핵 재앙’입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되거나 폭발하는 것을 막는 일이고, 그게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첫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라며 북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나 주일미군기지, 괌 미군 기지 등에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는데 그도 한반도 전쟁이 재발하여 핵무기가 사용되면 북은 지난해 공개한 화성 10호를 이용하여 괌 미군기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이 여러차례 공개한 화성 13호, 화성 14호와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성능을 그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위성을 4번이나 쏘아서 성공시킨 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헤커 박사는 그런 핵전쟁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트럼프 정부가 당장 북미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은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타결을 본 후에는 다자가 모여 그 구체적 이행 방안을 수립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사실 북미 사이엔 현재 전쟁이 진행중이다. 정전협정 즉, 전쟁을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하루 빨리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완전히 전쟁을 종식시켜야만 북미 사이의 전쟁 위기는 일단락짓게 된다. 그런데 핵무기를 동원한 북미전쟁 가능성을 미국의 최고 핵 전문가가 매우 우려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가.
문제는 헤커박사만이 아니다. 17일 연합뉴스에서 인용 보도한 미주 민족통신의 예정웅 정세논평가의 글에서는 이미 북이 미국과 핵전쟁을 결심했다는 의지를 중국과 러시아에 통보했다는 내용까지 언급하고 있으며 그 정보가 러시아를 통해 트럼프에게도 들어갔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긴급하게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중인 순방에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연합뉴스에서는 이 부분까지 소개하지는 않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서 원문을 읽어 보니 이 내용이 핵심이었다.)
더불어 예정웅 정세평론가는 지난 6일 북의 탄도미사일 집중발사 훈련에서도 알려진 4발만 쏜 것이 아니라 추가로 9발을 더 쏘았으며 이 미사일은 중거리와 장거리로 미국 본토 주요 거점을 노리고 발사된 것이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덧붙였다. 미국의 지배세력들이 충분히 알 수 있게 대기권을 벗어나 미국 목표타격 능력을 충분히 과시하고 자체 폭발한 이 미사일들은 모두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공간을 비행했다고 그는 지적했는데 통상 대기권은 1000KM 상공을 의미한다. 지난해 북이 쏜 화성 10호 신형 대출력 엔진을 장착한 미사일이 지난해 대기권 1400KM 지점까지 올라 간 바 있다. 예정웅 평론가는 이를 통해 북이 미국 본토를 직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미국의 지배세력들은 지금 어찌해야할 바를 못 찾고 당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치열한 대결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이런 북의 지원 사격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고 했으며 러시아도 사드 배치로 미국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는데 북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내심 반기고 있다고 한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를 하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기는 하지만 북이 미국을 제압할 수 있는 전쟁이라면 중국 러시아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분석되는 글이었다.
북은 미국에 대해 핵선제타격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라며 광주항쟁 때처럼 남측 주민들의 전민항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할 경우, 이라크전쟁 수준의 무력을 한반도 인근에 집중시킬 경우 명백한 선제타격의사표시로 보고 먼저 북이 타격을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목할 점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17일 한국에 와서 판문점을 방문한 후 새 대북접근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군사적 방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이 생각하는 선이 있는데 그것을 북이 넘어설 경우 군사적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고 우리 언론들이 보도하기는 해다. 우리 언론들은 그래서 틸러슨의 이번 입장 표명을 더 강력한 제재로 해석하던데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북 제재는 전쟁 외에 무엇이 있을까 의문이다.
또 하나 17일 헤일리 미국 유엔 대사가 6자회담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대화를 한다면 북미 직접대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다. 헤커 박사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헤일리 대사는 군사적 옵션도 열어놓고 있다고 언급하기 했다.
결국 북미 사이에 직접 대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것이 깨지면 결국은 전쟁일 것이다. 미국도 그렇지만 북도 더는 미국의 시간끌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헤커 박사나 예정웅 평론가의 주장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다음은 관련 헤커박사의 대담의 핵심 내용이다.
(RFA)기자: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대화보다는 강경책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습니다. 박사님은 올해 1월 미국 유력일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과 직접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에 최선의 선택방안이라 주장했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헤커: 저는 트럼프 행정부 사람들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게 긴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핵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북한과 잠재적인 핵 충돌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도 되는지 혹은 핵을 포기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훨씬 장기적인 문제입니다. 현재 당면한 사안은 우리가 핵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고, 따라서 핵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자: 6자회담이 있는데 미북 양자회담을 굳이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헤커: 1994년 제네바 협상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제네바 협정이 도출됐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에서 미북 직접대화를 권하는 주된 이유는 핵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섭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 의도가 무엇인지, 북한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북한의 핵정책이 무엇인지, 핵 사고를 막기 위해 북한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핵무기 안전 대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논의는 다자협상을 통해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논의를 북한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유일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 재앙을 막기 위한 대화는 미국과 북한 간에 직접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한국도 포함해야 하고, 중국도 포함해야 하고, 6자회담국인 일본, 러시아도 포함해야 합니다. 결국은 다자간 협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핵 재앙을 막기 위한 의미있는 협상을 이루려면 미북 양자회담이 이뤄져야 합니다.
기자: ‘핵재앙’ 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헤커: 제가 우려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정말 위협적인 핵무기고를 건설했습니다. 북한은 아마도 20~25개에 이르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원료를 확보했습니다. 북한은 계속해서 좀 더 정교하고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그런 강력한 핵 화력을 가진 상황에서 내가 핵재앙을 우려하는 까닭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들의 핵무기의 보안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북한 정권의 오판이 생길 수도 있으며, 나아가 한반도에 군사충돌이 생겨 긴장이 격화돼 핵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행여 북한이 어떤 형태의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한반도에서 사용한다면 그게 바로 ‘핵 재앙’입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되거나 폭발하는 것을 막는 일이고, 그게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첫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기자: 미북 대화가 잘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특사를 파견하기 앞서 북한 측의 비핵화 다짐을 받을 필요는 없나요?
헤커: 그런 식의 접근은 저의 우려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당장 저의 우려는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비핵화 문제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야 할 장기적인 과제다. 물론 협상은 궁극적으론 북한의 비핵화를 겨냥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핵화는 향후 몇년 동안 해결될 사안이 아닌 훨씬 장기적 과제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건 당장 북한과 협상하라는 게 아니라 핵 재앙을 막기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자: 북한은 기존의 핵무기 외에 해마다 6~8개의 핵무기를 추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셨는데요?
헤커: 제 추산은 플루토늄에만 근거한 게 아닙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1년에 최대 한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합니다. 제가 최선의 추측을 해보건 데 북한은 아마도 일 년에 6개까지 고농축 우라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은 매년 6~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핵 위기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미칠 수 있는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자: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어떤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헤커: 우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잠재적 핵 재앙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 측 얘기도 들어본 뒤 미국이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확고한 공약엔 변함없으며, 북한의 인권과 궁극적인 북한의 비핵화를 중히 여긴다는 점을 그들에게 주지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협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북한에 득이 된다는 점도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저의 충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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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초 만에 살펴보는 사드 성능 보고서
본문
사드(THAAD, 종말단계미사일방어체제)의 국내 도입을 두고 논란이 점점 커집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드 찬성 측과,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사드 반대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죠. 문제는 워낙 사드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양측 모두 사실보다 감정을 앞세운다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토론이 되지 않죠. 신뢰도 높은 정보를 공유하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과연 사드의 실제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사드를 직접 테스트한 미 국방부의 사드평가 보고서입니다.
①미 국방부 작전시험평가 국장인 마이클 길모어(J. Michael Gilmore)가 2015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 및 ②2016년 미 육군이 발행한 2016년 미사일방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브리핑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사드 성능에 대한 3가지 사실.
1. 사드, 날씨가 나쁘면 장담 못 한다
사드(THAAD, 종말단계미사일방어체제)의 국내 도입을 두고 논란이 점점 커집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드 찬성 측과,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사드 반대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죠. 문제는 워낙 사드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양측 모두 사실보다 감정을 앞세운다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토론이 되지 않죠. 신뢰도 높은 정보를 공유하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과연 사드의 실제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사드를 직접 테스트한 미 국방부의 사드평가 보고서입니다.
①미 국방부 작전시험평가 국장인 마이클 길모어(J. Michael Gilmore)가 2015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 및 ②2016년 미 육군이 발행한 2016년 미사일방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브리핑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사드 성능에 대한 3가지 사실.
1. 사드, 날씨가 나쁘면 장담 못 한다
"바람이 강하거나 먼지가 있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미사일 요격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실제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의 일부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눈-비-먼지바람 등의 악천후의 경우에 사드의 성능을 장담할 수 없죠. 사드 판매사인 록히드마틴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지금까지 17차례 사드 요격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이 중 실험 자체가 취소된 경우는 총 6차례,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실험이 취소됐습니다. 즉, 사드 실험은 적의 미사일이 날씨가 좋은 날만 골라서 날아온다는 가정을 하고 진행된 것이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사드 판매사인 록히드마틴은 이 사실을 감추고 '사드 요격 성공률은 100%'라고 과장합니다.
2. 사드,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한 적 없다
사드의 존재 이유는 '발사된 탄도미사일' 요격입니다. 하지만 사드는 지금까지 수송기에서 '낙하'시킨 미사일만 요격 실험했습니다. 국내 사드전문가로 알려진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43.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는 최근 저서 <사드의 모든 것>에서 "지상에서 발사된 중거리탄도미사일이 비행시험에서 요격대상이 된 적이 아직까지 없다"고 지적합니다.
3. 사드, 북한 미사일 추격도 제대로 못한다
북한의 주력미사일인 노동-무수단미사일의 비행고도는 400~1000km에 이릅니다. 정욱식 대표는 "미사일이 사드 기지를 넘어가면 탐지 범위에서 사라진다"고 분석합니다. 성주 상공을 지나 부산-경남-제주 등으로 향하는 북한 탄도미사일은 위치파악조차 장담할 수 없죠. 북한 미사일은 초속 3km에 이를만큼 빠른 속도로 낙하하므로, 잠시라도 탐지에 실패한다면 요격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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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의 요격범위. 북한의 주력미사일인 노동/무수단 등은 사드포대를 넘어 부산/제주도 등을 타격할 수 있다. | |
| ⓒ 정욱식 | |
참고자료:
(1) 미 국방부 시험평가 국장, 마이클 길모어가 2015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
https://www.armed-services.senate.gov/imo/media/doc/Gilmore_03-25-15.pdf (7~8페이지)
(2) 2016년 미 육군의 <전장에서의 미사일방어 준비> 보고서
http://www.apd.army.mil/epubs/DR_pubs/DR_a/pdf/web/atp3_01x16.pdf (3-40, 3-41, 3-42 참조)
(3) <사드의 모든 것>: 정욱식 저, 출판사 유리창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쑈사이어티 유튜브, 페이스북 및 단비뉴스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법원, 국정교과서 제동...문명고 학생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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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한미FTA 반대 운동을 '괴담'이라 비웃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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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7/03/17 10:57
- 수정일
- 2017/03/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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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에 걸친 한미 FTA 반대 운동에서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중 특히 한 국회 보좌관(그의 이름은 정창수이고 지금은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이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가 감옥에 갇힌 이유가 바로 미국의 덤핑 보복 폭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13일, 한미 FTA 타결 여부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한미 양국은 막판 고위급 협의를 가졌으나 결렬되었다. 당시 한국이 국민에게 공언한 핵심 과녁은 미국의 악명 높은 반덤핑 장벽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결국 한국은 물러났다. 한국 협상단은 내부적으로, 계속 미국에게 요구하되 미국이 끝까지 거부할 경우에는 한미 FTA 타결을 위해 '무역구제 분야', 미국의 반덤핑 장벽 개선 요구 관철을 포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이를 국회에 '대외비'로 보고했다. 정창수 당시 보좌관은 이러한 중대한 협상 목표 수정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에 제공했다. 그리고 다음 해 겨울 감옥에 갇혔다.
그 사이 정부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고, 협정문에 서명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은 이렇게 자랑했다.
"반덤핑 등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 가능성을 억제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목표를 상당부분 달성" (2008년 <한미 FTA 상세 설명 자료>, 131쪽)
그러나 그 때부터 이미 거짓말이었고, 지금도 아직 거짓말이다. 이미 한미 FTA를 처음 만들 때 제10장의 반덤핑 조항 자체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입에 발린 서비스 장식이요 치장이었다. 반덤핑 조사를 시작할 때에 서면으로 알려준다는 등의 조항(10.2조)은 이미 미국의 반덤핑 국내법에서 보장하는 절차였다. 게다가 이 화장발 같은 치장 조항조차 미국이 지키지 않을 경우에도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게 따지는 길을 막았다. 제네바로 가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하도록 했다.
충분히 보았다. 한미 FTA 발효 후 5년, 충분히 보았다. 미국의 반덤핑 장벽은 더 치솟았다. 산업부가 작년 9월 19일 기준 작성한 <수입규제 관리카드표>를 보면, 당시의 23건의 미국 조치(조사 중 포함) 중 14건이 한미 FTA 발효 이후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3월 10일 한국산 변압기에 61%라는 엄청난 반덤핑 관세 최종 판정을 내렸다. 이는 매우 이례적으로 그 배경에는 매우 일방적으로 조사를 받는 한국 기업이 성실하게 자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당국이 '조사 기업에게 불리한 입수 가능 사실 자료(adverse facts available)' 조항을 일방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 한미 FTA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 장벽을 세계무역기구(WTO)에 두 차례나 제소해야 했다. 2013년에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그리고 2014년엔 한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가 WTO 위반이라는 이유로 제소했다. 한미 FTA는 무력했다.
한국이 제네바에 낸 소장을 보면, 미국은 WTO 규정과 판결을 어기고 '제로잉'이라는 방식으로 덤핑 판정을 했다고 되어 있다. 이 방식은 덤핑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비싸게 판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치고('제로'로 처리), 값싸게 팔아 덤핑 혐의가 있는 거래만으로 덤핑 여부 판정을 하는 사기꾼 판정이다. 간단히 말하면 비싸게 판 것은 제외하고 싸게 판것만 가지고 싸게 팔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 홍보를 하면서 미국이 제로잉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이 방식을 사용하였으니 고쳐달라고 WTO에 제소 중이다.
특별히 나는 이 글을 정창수를 위해 쓴다. 그리고 한미 FTA 반대 운동에서 탄압을 받은, 이름 없는 많은 분들에게 쓴다. 그리고 국회의원직을 건 사람도 있었다.
2006년부터 시작하여 2012년까지 지속한 한미 FTA 반대 운동은 세계 통상 질서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의 이 운동은 국내 통합에 실패한 FTA의 세계사적 미래를 내다 본 것이었다. 이 운동은 세계의 FTA 질서를 ‘제헌’하는 위치에 있지 못한 한국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FTA 질서를 당장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헌국가’의 앞줄에 있는 미국과 영국은 트럼프의 등장과 EU 탈퇴라는 방식으로, 국내 통합 없는 FTA를 거부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국내 통합에 실패한 FTA가 낳은 자식이다. 다음 회에 자세히 보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 통지를 하지 않는 것은 트럼프의 FTA 모델을 아직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한국은 미국의 FTA 모델을 심는 곳이지, 한국을 위해 별도의 모델을 만들 곳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지난 10년간의 한미 FTA 반대운동을 '괴담'이라 비웃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트럼프가 새로운 FTA 모델을 한국에게 요구할 때, 그대들은 이에 대비할 힘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트럼프에게 찾을 것인가?
민주당=오만 프레임, 작동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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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미국 금리인상에 한국 시증은행 금리 변동 가능성 “은행 이자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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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3월 17일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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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3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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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일보 4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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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일보 3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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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3월 17일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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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일보 3월 17일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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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6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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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3월 17일 사설 |
방북한 미 CBS 사장 일행 트럼프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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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북한 미 CBS 사장 일행 트럼프 특사?! | ||||||||
| 기사입력: 2017/03/17 [00: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로즈 미국 CBS뉴스 사장 일행이 북 외무성과 국가우주개발국 관계자 등을 면담하고 16일 귀국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중앙통신은 "체류 기간 총사장 일행은 외무성과 국가우주개발국, 교육위원회 일꾼(간부)들을 만났으며 주체사상탑,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관, 평양 지하철도를 참관하였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로즈 사장 일행은 지난 14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중앙통신은 앞서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에서는 이들이 북과 위성통신을 이용한 방송문제를 협의했을 것으로 진단하였다.
어제 본지에서 접한 미 막후 협상팀의 평양방문설의 실체가 결국 이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력한 대미 군사력 과시 압박 정책은 트럼프 당선으로 잠시 중단된 것일 뿐 끝난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판단해본 후 바로 이어갈 것이 명백했다. 그 판단의 결정근 계기는 키리졸브-독수리 합동군사훈련이라고 본지에서는 판단했다.
물론 이번 한미합동훈련을 미군 사령관이 아닌 한국 합참의장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미국이 뒤로 빠졌다고는 하지만 항공모함과 같은 전략 무장장비가 한반도에 접근한다면 북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본지에서는 내다보았다.
그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온다고 하니 얼마나 우려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알고 보니 15일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CBS 사장 일행이 평양으로 들어가 북 외무성 관계자들을 만났던 것이다.
CBS 사장 일행은 연합뉴스에서 분석했듯이 북의 위성방송사업이나 논의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물론 AP통신이 북에 지국을 개설했기에 CBS방송국도 평양에 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실무진이 먼저 들어가야지 사장이 직접 들어가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 이들은 사실상 트럼프의 특사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외무성 관계자들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시작된 독수리 훈련에 대응하여 고체연료엔진을 이용한 신형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를 전격 단행하였다. 참으로 무서운 위력을 지닌 미사일이었다.
그리고 키리졸브 훈련이 진행되고 말레이시아에서 북이 VX 독가스 테러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의 이를 기화로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는 말이 나오자 바로 4발의 신형 화성6호 탄도미사일 집중발사 훈련을 전격 단행하였다. 시험발사가 아니라 실전훈련이었다. 이 집중발사는 한반도 주변 모든 미군 거점과 미 본토 전역을 동시에 핵폭탄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그 성격이 대단히 심각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놓고 보았을 때 미국이 선손을 쓰지 않고 항공모함을 부산항에 끌고 왔다면 북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CBS 사장단을 앞세운 트럼프 특사단의 평양방문은 트럼프 신행정부가 북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심각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흥미있는 점은 때를 같이 하여 한중일 순방길에 나선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첫 방문국 일본에서 기시다 외무장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20년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며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전쟁 아니면 북의 요구를 전면 수용한 대화인데 CBS사장단 방북과 결부해보면 그 새 접근법이 대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하나 삭제되기는 했지만 흥미있는 보도가 나왔는데 16일 연합뉴스에서 나왔는데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에 오게 되면 한미외무장과과 회담을 하기 전이나 중간에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기사에서는 관례에 없는 방식이라며 의아해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 한국 외무부는 미국이 함께 상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그저 미국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사대매국 외교로 일관해온 박근혜 정부의 처참한 말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미국이 현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를 얼마나 무의하게 보고 있는지는 몇 달 째 공석으로 두고 있는 주한미국대사관만 놓고 봐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친미세력들을 다른 경로를 이용하여 조종하고는 있을 것이다.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취급을 못 받고 종당엔 머저리가 되고 사대주의에 빠진 나라는 나라 취급도 받지 못하고 종당엔 망조가 들고 만다는 것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막후에서 북미대화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물론 대화가 깨진다면 순식간에 북미관계는 겉잡을 수 없는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 우려는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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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꺼내면 박근혜가 꼭 봐야 합니다"
본문

- ▲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손에 든 지성이 아빠, 문종택(55)씨. ⓒ 정대희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처참한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 선고문을 읽을 때였다. 바로 전날, 세월호를 인양해 조사 작업을 벌일 목포신항에서 그가 한 말도 스쳤다.
"이 녹슨 철망에 박근혜를 매달고 싶습니다."
맹골수도에서 세월호를 꺼내면 거치할 장소를 그가 먼저 밟았다. 목포신항이다. 여기서 인양작업이 시작되면, 차디찬 물속에 잠겼던 세월호 주변에 컨테이너 박스 40개가 들어온다. 유가족이 드나들 문은 목포신항만 건물에서 100여m 떨어진 옆문이다. 부둣가와 신항로 294번길 사이로 약1km 녹슨 철망문 위아래로 등군 가시철망이 지나갔다.
"선체 청소만 3개월이 걸린답니다. 그 뒤에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을 할 겁니다. 유가족들도 슬퍼하겠죠. 세월호의 진실을 박근혜가 직접 보아야 합니다. (철망을 손가락으로 굳게 부여잡으며) 여기 매달린 채."
지금부터 쓸 글은 아주 특별한 방송인과의 동행취재 기록이다. 3년 전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이었던 문지성 학생의 아빠 문종택씨(55). 416TV 방송팀장인 그를 이날 오전 9시20분경 4호선 초지역에서 만났다. 그는 기자증이 아니라 지성이 명찰과 학생증을 목에 걸고 나왔다. 416TV 취재차량을 타고 16시간 동안 목포신항과 팽목항, 안산 세월호 분향소에 동행했다. 우리는 우선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생중계] 그의 카메라는 운다

- ▲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든 지성이 아빠, 문종택(55)씨 ⓒ 정대희
지성이 아빠는 목포신항 사무소와 세월호 인양터가 보이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에서 사다리를 꺼낸 그는 검은색 카니발 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카메라가 달린 삼각대를 그 위에 펴고 노트북을 켰다. 20여 분간 차 지붕 위에서 작업을 하던 그는 카메라 위에 스마트폰을 장착한 뒤에 416TV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으로 동시 생중계를 시작했다.
"생명을 찾아서 진실을 규명해야지요.(중략) 탄핵 촛불이 아니라 인양의 촛불, 생명의 촛불을 지켜주십시오. 목포신항에서 416TV 지성이 아빠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15분 만에 생중계를 마쳤다. 직전에 목포신항에서 취재한 정보와 목포신항 찾아오는 길을 설명했다. 삼각대 중간에 단 노란 리본이 세찬 바람에 펄럭였다. 지붕 위의 노트북도 위태롭게 들썩였다. 대본은 없었다. 그는 목이 메어 침묵했다가 다시 말을 잇곤 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목에 힘줄이 섰다. 그게 칼날처럼 느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3년 동안 벼리고 벼렸다.
- 오늘 왜 이곳에 왔나?
"세월호가 인양되면 이곳에 거치한다. 유가족들이 어떻게 찾아올 수 있는지, 컨테이너 박스를 어디에 설치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고 왔다. 일종의 내비게이션 방송이다."
여느 방송과 너무 달랐다. 기존 언론이 생중계할 때에는 방송차, 중계차와 기자들로 북적거리지만 그는 혼자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와서 카메라를 돌렸다. 그의 말은 전문 앵커처럼 유창하지 않았다. 방송용 멘트라기보다는 한이 서린 독백 같았다. 어떤 때는 소름이 돋았다. 그가 아니라 딸 지성이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 카메라를 왜 들었나?
"2014년 국회에서 단식할 때 여당 의원들은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세금도둑, 시체장사'라고 말하면서 가슴에 대못만 박았다. 그런데 방송사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이 바뀌었다. 공손해졌다. 그때부터 우리도 카메라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하무인인 저들을 겁먹게 할 도구였다. 또 '기레기'들은 세월호를 기록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는 그와 유가족들의 무기였다. 그는 "상대방은 나의 육두문자보다 카메라를 더 의식했다"면서 "현장에서 생중계를 중단하고 경찰의 채증 카메라를 막으려고 삼각대를 휘저으면서 칼싸움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용도 무기였다.
- 험한 취재도 많았을 것 같다.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졌을 때 나는 반대편 차선에서 그 모습을 찍었다. 집사람이 장롱면허인데, 똥줄이 타니까 운전대를 잡았다. 차벽 코앞에서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데, 깨진 대리석이 날아왔다. 선루프가 깨졌다. 그걸 맞았다면? 카메라는 경찰이 쏜 캅사이신으로 범벅이 됐다."
- 첫 방송은 언제 했나?
"2014년 8월8일 국회에서 했다. 카메라와 노트북 한 대, 건전지 여분도 없었다. 와이어리스는 1인 미디어인 미디어몽구가 줬다. 첫 방송 때 '우리는 방송이 아닙니다. 가족의 이야기이고 눈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대놓고 욕을 하다가 울컥해서 말문이 막히면 가족들이 국회에 세워놓은 노란 우산을 수십 번 비췄다. 유가족들은 그걸 보고 또 울었다."
그와 유가족들만 운 것은 아니었다.
"카메라가 자꾸 울어요. 맹골도 사고 현장에서 배를 타고 나오는데, 카메라 후드에 부딪치는 바람소리를 따라 나도 울었어요. 동거차도에서 어민들을 만나 사고 당일의 증언을 담을 때도 카메라가 울었어요. 몇날 며칠이고 카메라와 함께 울었어요. 카메라가 유가족들에게 약이 되고 피로회복제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어떤 현장을 비춰도 엄마아빠들은 웁니다."
그와 카메라는 울면서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고, 세월호 진실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다.
[편집] 몇날 며칠이고 코피를 쏟다

- ▲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손에 든 지성이 아빠, 문종택(55)씨. ⓒ 정대희
그는 어깨 너머로 방송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보도부장이었던 그는 니콘 카메라 조작법을 배웠지만 캠코더를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416기억저장소 김종천 사무국장이 카메라를 주었고, 그에게서 기초적인 편집 기술을 배웠다. 뉴스타파와 미디어몽구 등 현장에서 만난 대안 언론사 기자들에게 물어보면서 한 가지씩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만든 방송영상 목록은 500편이 넘는다. 바이러스로 날아간 14테라바이트(TB)를 빼고도 15테라바이트 정도 남아있단다.
"나는 지금 지성이의 몫을 살고 있어요. 제가 찍은 영상은 지성이의 남은 삶입니다."
현장에서 3~4시간 생중계한 것을 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6시간. 초기에는 일주일에 팽목항을 3~4번 왕복하면서 취재했다. 매일 밤늦은 시간에 안산 분향소 옆에 있는 416TV 컨테이너 박스에 도착해서 영상편집을 하다가 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코에서 무언가 흘러내려서 손으로 씻었더니 시뻘건 피였단다. 몇날 며칠이고 코피를 쏟은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나아졌단다.
"남은 아이들 4명이 딱 한번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는 자식이 아니냐'고요. 하지만 카메라를 멈출 수 없었어요."
-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를 시청하나?
"기자회견을 할 때는 200~300명 정도. 세월호 청문회 때에 가장 많이 봤는데 몇 만 명 정도였다. 개떡 같았던 청문회였다. 사실 시청자 수를 확인할 겨를도 없고 중요하지 않다. 행사 때 유가족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혼자 카메라 들고, 멘트 하고, 컴퓨터 확인하고... 때론 울다가 말문이 막히고. 그럴 때에는 시청자들이 대신 댓글로 말을 해준다. '지성이 아빠, 또 울어요.' '아스팔트에 떨어진 가족들의 눈물을 보십시오.'"
- 언제 가장 힘들었나?
"지금도 힘이 든다."
- 언제 가장 기뻤나?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다. 국회 앞에서 세월호 엄마아빠들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을 담았다. 카메라를 돌리면서 나도 눈물을 흘렸다. 뭔가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도 안 갔다. 탄핵 이슈에 세월호가 묻히는 것 같았다."
[아, 지성아!] 0.7초 영상

- ▲ 진도 팽목항 ⓒ 정대희
조수석에 앉아 그의 말을 노트북에 담으면서 나는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이 질문을 해야 할까? 운전대를 잡은 그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간혹 눈물을 흘리는 듯 했다.
- 지성이와의 마지막 순간은?
"난 확신한다. 맹골수도는 100% 학살현장이다. 진실은 이미 규명됐다. 저들이 인정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날 오전 9시4분에 지성이와 통화했다. 친구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했다. 3-4분정도 통화한 것 같다. 아이와 통화하면서 나는 2번이나 세월호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 사실 나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한동안 침묵)."
다음은 지성이 아빠가 전한 마지막 대화의 순간이다.
| 마지막 대화 |
| "아빠, 배가 기우는 데 어떻게 해요?" "침착해라. 구명조끼를 입었니?" "예." "아빠와 또 전화를 할 수도 있으니 통화가 끝난 뒤 핸드폰은 과자봉지에라도 넣어둬라. 네 옆에 창문이 있니? 그걸 깨야한다." "창문 없어요." "비상구가 있니?" "아빠, 갈 수가 없어. 배가 기울어서 그쪽으로 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던지 당장 나와야 한다."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
"환장하겠더라고요. 미치겠더라고요. 나중에 나와 통화한 친구의 핸드폰을 찾았어요. 거기에 지성이 영상이 0.7초 남아 있었어요. '아빠하고 통화하려고 하는데 핸드폰을 빌려주면 안 돼?' 45도쯤 기울어진 상태로 누워서 친구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한동안 침묵)."
지성이는 초기 생존자 명단에 있었다. 그는 아이를 데려오려고 이불과 새 옷을 사갔단다. 하지만 팽목항에서 지성이를 찾을 수 없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잘못된 발표였다. 2주 뒤인 4월 30일에 사고해역 인근에서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가 생중계하는 핸드폰 초기 액정화면엔 지성이가 살아있다. 장미꽃 향기를 맡으려고 허리를 숙인 모습이다. 그의 핸드폰은 매일 오후 4시16분에 운다. 그 알람소리는 '진실의 벨'이란다.
[나는 분노한다] "야, 오늘 우는 장면이 없네"

- ▲ 진도 팽목항에서 현장 생중계를 하고 있는 지성이 아빠, 문종택(55)씨. ⓒ 정대희
그는 참사가 난 다음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화통화도 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걸려온 전화에 '발신자번호표시제한'이 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애원했단다.
"특공대 중의 특공대를 투입시켜서 한명이라도 구해주세요."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색상황 알 수 있게 스크린 설치해준다고 약속했는데, 스크린이 설치됐냐'고만 물었단다. 그는 "결국 자기 자랑질하려고 전화를 건 것"이라고 말했다.
- 박 전 대통령이 왜 지금까지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고 보나?
"인간이 아닌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당시에는 머리를 말아 올리든, 화장실을 가든... 자기의 행동 모두가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 헌재의 탄핵 판결이 내일(10일)이다. 어떻게 될 것 같나?
"탄핵된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촛불이 잦아들까 걱정이다."
- 탄핵된 박근혜씨를 만나면 방송인으로서 꼭 묻고 싶은 말은?
"내가 그날(세월호 참사 다음날) 당신에게 '한 명이라도 구해 달라'고 부탁한 말을 기억하나? 그래서 한 명이라도 구했나? 한 명이라도 구하라고 명령이라도 했는가? 예, 아니오라는 단답형으로 묻고 싶다. 여성의 사생활... 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팽목항에서의 생중계를 마친 뒤 오후 7시경,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주유소에 멈췄다. 차량에 붙어 있는 '416TV 방송'이라는 스티커를 본 직원은 "박근혜는 혀 깨물고 죽어야지... 세월호 참사 때 한 일을 보면 인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고 머리를 숙였다.
다음날 새벽 1시경에 안산 세월호 분향소 옆의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갔다. 416TV 방송국이다. 지성이 아빠가 컴퓨터를 켜자 '띠릉~ 띠릉~' 경고음이 세 번 울리면서 컴퓨터 에 이런 경고문이 떴다.
'원치 않는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이런 현상이 잦아졌단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집요하게 그의 컴퓨터를 뒤지고 있다는 찜찜함. 그는 "전에도 이상한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데이터를 날렸는데, 내일 박근혜가 탄핵되면 컴퓨터를 켤 때마다 이런 기분 나쁜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미디어] '기레기 언론'과 맞짱

- ▲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든 지성이 아빠, 문종택씨. 그의 목에는 기자증이 아니라 딸의 학생증이 걸려있다. ⓒ 정대희
그와 헤어질 때 <오마이뉴스> 메인 면에 걸린 탄핵 시계는 '남은 시간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오전 11시 20분경, 헌재는 세월호를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을 탄핵했다. 민간인 신분인 박씨는 청와대에서 쫓겨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지성이 아빠도 이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오늘도 차 지붕 위에서 울고 있는 카메라. 노란리본이 달린 그의 카메라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무기다.
"내가 카메라를 든 것은 '시체 장사'라고 떠벌이는 종편 때문이었어요. 지상파도 마찬가지지요. 특별조사위원회 전원회의를 할 때였습니다. 카메라 기자들이 자기들끼리 말하더라고요. '야, 오늘은 우는 장면이 없네' '싸우지도 않는데 그냥 가자'. 화가 치밀어서 소리쳤어요. '당신들 말 한마디로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아는 언론권력은 대통령 위에 있습니다. 언론이 제대로만 보도한다면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어요. 언론권력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깰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 3년간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408km 거리를 100번 정도 왕복했다고 한다.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을 때도 그는 한 손에는 밥공기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운전할 때 들어온 유가족들의 카톡을 확인하고 취재 일정과 노선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새벽 1시 30분경, 16시간의 동행취재를 마친 그는 <오마이뉴스> 취재진을 배웅한 뒤 안산 세월호 분향소의 컨테이너 박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를 탄핵한 그날 오전 11시경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생중계를 했다. 나중에 편집된 영상의 제일 뒷부분에는 그의 자작곡을 실었다.
'탄핵은 끝났지만 세월호 촛불을 끝까지 지켜 달라.'
1인 미디어인 그는 이렇게 '기레기 언론권력'과 맞짱을 뜨고 있다.
| 이 기사가 마음에 든다면... |
| 이 글을 읽고 지성이 아빠가 지치지 않고 세월호의 진실을 취재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보태주실 분이 계시다면 응원을 부탁드립니다(전화 : 010-3699-4630). 또 지성이 아빠는 "탄핵 촛불을 생중계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오마이뉴스를 응원하고 후원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20차례에 걸쳐 촛불 광장을 생중계한 오마이TV를 지키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매월 1만 원 이상씩 자발적 시청료를 내어주시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에 가입을 해 주십시오.(핸드폰 010-3270-3828) |
“광장의 힘, ‘사회적 총파업’으로 대한민국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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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6 23: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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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 빈슨호' 부산 입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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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5 16: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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