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정희와 '5공'이 사랑한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

전체주의·공산주의 동시 비판…반공자료 악용

'율법에 맞게 도축' 도살장 유대인 시신 목격

영혼이 더렵혀졌다고 털어놓을 만큼 큰 충격

정작 유대인 탄압 안토네스쿠 독재에 일조

망명 후 부역자로 미군에 붙잡혀 수용소 신세

하루가 지나도 구원의 아침 오지 않는 『25시』

다섯 차례나 한국 찾아 『한국찬가』 책까지 내

비판의 언어도 권력에 이용될 수 있다는 교훈

시골 신부 아들, 세계 문호가 되다

루마니아 북동부 시골 마을에서 정교회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던 이 청년은 스물다섯 나이에 세계 전쟁의 한복판에 섰다. 그의 이름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 훗날 세계문학사에 이름을 남길 줄, 그리고 반세기 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국민작가 급 대접을 받을 줄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이 사람의 인생자체가 소설보다 기구하다.

 

게오르규(위키피디아)

도살장에서 본 것

1941년 정월, 부쿠레슈티에서 극우 무장조직이 유대인 대학살을 저질렀다. 그때 게오르규는 그 참상을 목격했다. 도살장에 소가 아닌 사람의 벗은 시신이 걸려 있었고, 죽은 몸에는 '유대 율법에 맞게 잡은 고기(코셔, kosher)'라는 도살장 정결육 도장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고 그는 훗날 적었다. 자기 영혼이 더럽혀졌다고 고백할 만큼 충격이 컸다.

그런데 이듬해, 게오르규는 이 폭력의 뿌리인 정권의 외무부에서 외교관 서기로 일하기 시작한다. 당시 루마니아를 다스린 인물은 이온 안토네스쿠(Ion Antonescu, 1882~1946), 나치 독일과 손잡고 반유대 정책을 밀어붙인 독재자였다. 대학살을 목격하고 영혼이 더럽혀졌다던 청년이, 그 정권의 녹을 먹는다. 이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 훗날 그를 연구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가 '파시스트 부역자'였는지, 아니면 단지 시대의 급류에 휩쓸린 지식인이었는지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1941년의 이온 안토네스쿠(위키피디아)

감옥에서 태어난 베스트셀러

전쟁이 끝나자 게오르규는 서방으로 망명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미군에게 붙잡혀 2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다. 나치 부역 혐의를 받는 동유럽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감옥 체험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증언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1949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소설 『25시』는 순식간에 세계적 화제작이 되었다.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죄 없는 농부인데, 유대인으로 몰리고, 헝가리 부역자로 몰리고, 나치 친위대 선전 모델로 이용되고, 종전 후엔 전범으로 몰린다. 국적도, 신념도, 얼굴도 상관없다. 서류와 제도라는 거대한 기계가 한 인간을 갈아 넣는 이야기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숫자와 서류로만 존재하는 시대, 하루 스물네 시간이 다 지나도 구원의 아침이 오지 않는 절망의 시간, 그것이 '25시'다.

이 소설로 그는 일약 세계적 작가가 됐고, 1963년 정교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71년에는 프랑스 내 루마니아 정교회 최고위 성직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도살장을 목격한 청년이, 부역 혐의로 옥살이를 한 망명객이, 마침내 신부복을 입고 세계의 양심으로 추앙받게 된 셈이다.

 

게오르규(Cartile autorului Constantin Virgil Gheorghiu aparute la Editura Agaton si editurile asociate)

다섯 차례 한국을 찾은 신부

한국에서 게오르규의 존재감은 유럽 본토보다 오히려 컸다. 『25시』는 1952년 한국전쟁 와중에 처음 소개된 뒤 1980년대까지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켰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상영됐고 방송에서도 되풀이 방영됐다. 1999년 전문가들이 뽑은 '20세기 걸작' 순위에서 13위에 오를 정도였다.

단순한 문학적 인기가 아니었다. 냉전 시절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입장에서 이 소설은 더할 나위 없이 쓸모 있는 텍스트였다.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 서구 지식인의 인도주의 소설이라니, 반공교육 자료로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나. 학계에서는 이 책의 한국 수용사를 다루며 '어용'이라는 단어까지 등장시킨다. 순수문학으로 읽히기보다 체제 선전에 동원된 측면이 있었다는 뜻이다.

게오르규 본인도 이 인기에 응답했다. 1974년부터 다섯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고, 1984년에는 『한국찬가』라는 책까지 냈다. 프랑스 신문 기고문에서는 홍익인간 이념을 거론하며 한국의 저력을 예찬하기도 했다. 세계적 지성이 이 나라를 이렇게까지 좋아해 준다니 흐뭇할 법도 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이것도 묘하다. 정작 그 시절 한국은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5공을 거치며 '기계문명이 인간을 짓밟는 시대'를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야만을 정면 비판할 잣대는 정작 수입된 소설 속에서만 작동하고, 국내현실에는 잘 적용되지 않았다.

 

게오르규(Pr. Virgil Gheorghiu - tezaur al beletristicii ortodoxe)

오늘 우리가 되짚어야 할 이유

게오르규 이야기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다. 전체주의 기계에 짓밟히는 개인을 그토록 절절하게 그린 작가가, 정작 젊은 시절엔 그 기계의 부속품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가 쓴 인도주의 소설은 다시 다른 나라의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도구로 쓰였다. 비판의 언어조차 권력에게 접수당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이 작가의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진짜 교훈이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이 나라에서도 비상계엄이라는 낯선 단어가 텔레비전 화면에 떴다. 그날 밤 많은 이들이 게오르규의 소설 제목을 떠올렸다고 한다. 24시간이 다 지나고도 구원의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 말이다. 다행히 이번엔 아침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소설 속 절망의 시간만이 아니다. 인도주의를 표방한 언어조차 독재권력이 손쉽게 빌려 쓸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빌려 쓴 언어를 걸러낼 안목은 결국 시민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게오르규 개인에 대한 평가도, 그의 소설을 도구로 썼던 이 땅의 독재권력에 대한 평가도, 언젠가는 다시 정산될 날이 온다.

 

루마니아 파시 공동묘지에 있는 게오르규의 무덤(위키피디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