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 대책회의' 결정에 굴복, 직접수사 중단해
사건 축소·은폐·조작 기회 제공…범인은닉 적극 방조
결국 허언이 되긴 했으나, 검찰 수장이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과거의 잘못'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로부터 6개월여 뒤인 2018년 10월 1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활동 보고를 토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 방안 및 대책 수립 권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검찰이 처음부터 직접 수사를 하지 않은 의혹에 대해
-검찰은 1987. 1. 16. 박종철의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뒤 초기에는 직접 수사를 계획하였고, 실제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의 주검을 처음 본 의사 등을 조사하는 등 내사에 착수하였음.
-그러나 1. 17. 오후 검찰총장이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다녀온 후 검찰의 직접 수사가 중단되었고, 치안본부가 수사를 담당하게 되었음.
-검찰은 치안본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신뢰할 수 없어 직접 수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결정에 굴복하여 치안본부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사건 축소 및 은폐 조작 기회를 제공한 결과가 되었음. 즉, 검찰은 직접수사 방침을 변경하여 경찰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조기에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실패하였고 결과적으로 2차, 3차 수사가 이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음.
2. 검찰이 1차 수사 결과에 대해 졸속으로 수사한 의혹에 대해
-당시 여론을 조기에 무마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를 단기간에 종료하라는 검찰 지휘부의 지시 또는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결정에 따라 검찰은 처음부터 사건을 신속하고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 매우 짧은 수사 기간을 설정한 후 수사에 착수하였음.
-법무부 검찰국 검찰3과의 「고문치사(박종철)」 문서철 중 1987. 1. 19.자 「고문치사 사건 수사중간보고서」를 보면, 검찰은 처음부터 피의자를 2명으로 확정한 상태였고 공범에 대한 조사는 수사의 초점이 아니었음.
-구체적 수사 내용을 보더라도 검찰은 치안본부에서 사건이 송치되자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아니하고 단기간에 졸속으로 수사를 끝냈음.
*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된 중요 사건임에도 피의자 2명에 대하여 각각 2회의 조사만 하였고 피의자들에게 추가 공범의 존부, 상관의 지시나 관여 등에 관해 치밀하게 질문하거나 집요하게 추궁한 흔적이 드러나지 않음. 고문치사에 직접 가담한 피의자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실황조사(현장검증)를 하였고, 박종철이 사망한 대공분실 9호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작동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음. 단 2명의 검사가 하루에 피의자들 2명 및 공범으로 의심되는 경찰관(총 5명)을 모두 조사하는 등 충실한 수사를 하지 못하였음.
-특히 치안본부 대공5차장 등의 범인 도피와 관련하여, 만약 수사 초기에 대공분실에 있었던 CCTV의 작동 여부, 시청자 유무 등을 직접 확인하여 조사했다면 대공5차장 등을 범인도피죄가 아니라 고문치사의 공범으로 의율할 여지도 없지 않았으나 이러한 수사 지연 및 직무유기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기회마저 놓친 결과가 되었음.
-검찰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 보장보다는 신속하고 '조용히' 기소함으로써 치안본부의 진상 은폐를 사실상 묵인하고,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치적인 고려(정권 안정)를 우선하여 사건을 처리하였음.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