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등록일
    2005/03/12 12:56
  • 수정일
    2005/03/12 12:56
[폭력론 노트]의 저자이자 평생을 아나키스트의 길을 걸어온
무까이 꼬오가 지난 8월 6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난 2001년 여름에 오사카에서 만나뵌 적이 있는데
이야기는 오래 나주진 못했지만
느긋하고 여유롭고 지혜로우면서도 평범한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김원식 할아버지로부터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했답니다.
곧 제가 얼마전 부안에 갔다온 얘기며 새만금 이야기 등등을 하다가
주책스럽게도 왈칵 눈물이 삐져나오더군요.
그랬습니다. 제가 지나온 지난 몇 개월간
그 행동과 생각의 매듭 매듭마다 무까이 꼬오의 생각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안을 생각하며, 새만금을 생각하며, 삼보일배를 생각하며,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며, 전쟁반대와 군대반대를 생각하며,
무까이 꼬가 비폭력직접행동의 모델로 보여준 인도의 소금행진을
생각하며 그렇게 함께 무까이 꼬오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나키에는 스승과 제자의 위계도 없다고들 하지만
제가 커다란 스승 중의 한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안하게 주무시듯 가셨다고
말씀하시는 김원식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도 눈물이 배어있었습니다.

간단한 추모회를 가져서 그분의 명복을 빌었으면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탐폰과 일회용생리대가 과연 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 상징일까요?

  • 등록일
    2005/03/12 12:55
  • 수정일
    2005/03/12 12:55
저는 키퍼와 면생리대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 않구요. (일회용 생리대도 여행할 때와같이 필요할 때는 씁니다.) 면생리대라 하면 예전에 할머니께서 쓰시던 그런 두툼한 옥약목 생리대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여성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개발해낸 대안 생리용품들을 보시면 그런말씀 안하실거예요.
링크를 클릭하면 면생리대와 키퍼(일종으로 고무로 만든 탐폰같은 것입니다.)를 볼 수 있습니다.  

탐폰과 일회용생리대가 여성의 몸에 어떤 식으로 나쁜지는 앞에서 얘기했으니깐 여기서는 생략할게요. 또 하나, 생리대는 소각되지 않는 거 아시죠? 엄청난 인구가 내놓은 생리대쓰레기를 생각해보세요. 결국 대자본이 여성에게 "편리"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구미 백인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오해하지 마세요. 일부의 백인!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입니다.)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마치 일회용생리대가 여성해방과 무슨 연관이 있는냥 떠들어댔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리대를 만들기 위한 다국적 기업의 펄프산업이 제3세계의 숲을 파괴시킵니다. 혹시 인도의 칩고 운동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숲을 근간으로 해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다국적 기업의 자연파괴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고 시위를 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 숲을 베어내어 생리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매년 열리는 월경페스티벌은 마치 생리대, 탐폰회사의 잔치같아요.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너무 좋은 생각이예요. 그동안 친구끼리 생리대를 주고받을 때 남자들 모르게 쉬쉬하는 것도 질릴 때가 됬죠. 이젠 떳떳하게 보여주고 말할 수 있어야죠. 하지만 거기서 여성 해방의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여자가 남자처럼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그래서 사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건 결국 남자보스를 여자보스를 바꾸는 것 밖에는 아니잖아요. 위계적 자본주의 국가 시스템은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그걸 위해서 자연환경, 여성 자신의 몸, 제3세계 주민의 삶까지 해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그 "편리함"의 소비주의적 신화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것이야 말로 결국은 마초적 자본에 편승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생리, 월경, 맨스

  • 등록일
    2005/03/12 12:54
  • 수정일
    2005/03/12 12:54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성의 "생리"라는 말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여성의 월경을 위생학의 포장으로 감싸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 의사가, 탐폰회사가, 생리대회사가
관리해주어야할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 드는 단어란 말이다.
또 뭔가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한 대상을 좀 완곡학 지칭하기 위해서
그런 소독약 냄새나는 단어를 쓰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신문기사, 방송맨트, 공문서 등등에서 쓰는 그런 말들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리대란 말도 다른 말로 바꿔야한다.
일본어로는 생리대를 뭐라고 할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월경대라는 말이 보였다.
월경대가 좀더 자연스럽고 덜 수치스러운 느낌이 든다.
말만 바꾼다고 뭐가 어찌된다고는 절대 믿지 않지만
어쨌건
생각해보니 처음월경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속삭이듯 "맨스"라는 말을
아주 느끼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알고보니 그런 기억을 다른 친구들도 갖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느끼했던 것일까?
맨스라는 말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반다나 쉬바, 제3세계, 여성, 어린이의 입장에서 세계화에 저항하기

  • 등록일
    2005/03/12 12:53
  • 수정일
    2005/03/12 12:53
반다나 쉬바(www.vshiva.net)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이것 저것 많은 걸 얻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미 <에코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책이 나와있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아나코페미니즘의 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http://jukisalki.pe.kr/ 자료실에서 퍼왔습니다.

- 반다나 쉬바 인터뷰 전문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
우리는 퇴보해 있다고.
우리의 머리는 더 나은 것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여기 수많은 강 둑 위에 무엇들이 있습니까?
당신의 망원경으로 우리의 환희를 들여다 보세요.
여기 이 삼베 위에 놓인
5백여개의 다양한 감자들의 씨들로부터 나온
5백여개의 다양한 꽃들을.

당신의 눈은 저 다양한 5백여개의 꽃들이
나의 머리와 나의 살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다나 쉬바의 저서 '녹색혁명의 폭력` 중에서---


내가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를 알게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불과 2년전,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에 개탄을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고 있을 즈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에코페미니즘>. 그렇게 나는 반다나 쉬바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생태운동이라고 하면 환경운동을 생각한다. 환경운동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극히 부분적이고 죽어있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 환경운동이라는 말보다 생태운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권유한다. 왜냐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우리의 일상에 걸쳐있는 것들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어낼 때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조화로운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변혁운동이 될 것이다. 반다나 쉬바는 바로 그러한 생태주의 변혁이론가이자 활동가인 것이다.

반다나 쉬바 , 전 지구적으로 특히 제3세계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그녀와의 만남, 전세계적으로 제아무리 유명한 매체라도 10-15분의 인터뷰 시간만을 고집한다는 그녀의 원칙은 깨져 버렸다.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결하고 명쾌한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그녀가 설립한 생태공동체 대학(Bija Vidyapeeth)과 내년 3월에 개교를 하는 '녹색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였고, 지금 준비하는 매체 발간 즈음 민주노동당과 각 시민환경단체가 연합하여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반다나 쉬바의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생태적 사유가 어떻게 관통되는 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나의 질문에 대해 그녀의 간결하고도 명쾌한 응답, 어투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열정, 그녀를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직도 전율이 내 몸에 흐른다.  .  
  
그녀와 만난 사무실, 벽면 걸개에 쓰여진 시에 대해서 묻자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서 일어났던 생물 다양성 운동에 대한 것으로 자신의 '녹색혁명의 폭력`이라는 책에 실린 것이라고 하였다. (위의 시)                

다음은 반다나 쉬바와의 인터뷰 내용을 각 주제별로 정리해보았다.  

생태운동가로서 지금까지의 생애를 돌아보며
--- 선생님은 핵물리학을 전공하시다가 생태운동가가 되었는데 '과학`의 어떠한 문제점이 있어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요? 또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지요?

: 당신도 잘 알겠지만, 나는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잘 나가는 물리학 분야가 핵물리학임을 알고 핵물리학자 되기로 했지요.
그때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핵물리학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지요. 그러다 방학 때 의사인 언니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대해 얘기하다가 방사능위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핵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핵물리학자로서 그것을 통해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과 방사능이 생태시스템(인간, 식물, 지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지요.

대부분의 과학이 오로지 한쪽 눈만을 가지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어떤 것을 할 것인가에 대한 눈은 있지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눈은 없어요. 그래서 나는 핵물리학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론물리학자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물리학을 좋아했거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유명한 1970년대 초 여러 유형의 산림보호 운동 중 하나인 칩코운동(산림 보호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성들이 히말리아에 있는 나무들을 끌어안는 시위를 했지요.
그리고 1982년 환경부에서 나의 고향에서 나에게 광산 연구를 하라고 요청해왔는데, 이미 그 때 고향인 뱅갈 지역에서 광업에 대한 연구와 강단에 있던 내 상황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터였지요. 나는 광업에 대한 연구를 그만두고 대학강단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녹색운동을 지원하는 독립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학, 기술, 생태`라는 연구재단을 만들었어요. 1997년, 유전조작과 생명특허라는 매우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9개 씨( nine-seeds)를 의미하는 '나브다니아(Navdania)`라는 새로운 운동을 펼쳤어요. 이것은 씨들을 구하는 운동이었는데 유기농을 권장하고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곡물을 제공하는 운동이지요. WTO로 연구영역을 확장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요. 지난 30년 동안 나의 열정은 바로 농업과 생물의 다양성 운동,  '나브다니아` 에 바쳐왔지요.

히말리아 유기농장에서 재배된 유기농산물을 2-3일 이내에 델리로 가져옵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민들을 위해 직접거래 방식의 유기농작물 판매시장을 델리에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어요. 델리 하트(Delli Haat)이지요. 델리 하트는 아주 아름답고 유명한 시장이 되었어요.  5-6년 전에 '씨의 다양성과 어떻게 그 문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생물의 다양성이 어떻게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는가?` 관한 전시회를 했지요. 그 일은 델리 관광부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지속적인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나에게 요청했어요. 그래서 '델리 하트`는 우리의 농부들로부터 생산되는 유기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장소로 되었지요.
나는 핵물리학을 그만 둔 뒤로 퀀타(Quanta 양자)에 파묻혀 열심히 연구하는 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나는 쌀과 밀 더미에 앉아 있을 겁니다. 그것이 내 인생이지요.

대안문명, 대안과학과 기술에 대하여
--- 다른 사회를 건설하고 휴머니즘을 실현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무엇인지요?  
우리는 두 개의 문명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석유, 화석 연료에 기초한 문명으로 기후를 파괴하고 오염을 발생시키고 전쟁을 만들어내지요. 만약 미스터 부시(Mr. Bush)가 이라크의 석유를 앉아서 받을 수 있다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을 겁니다.
석유는 민중들과 지구에 반하는 폭력이지요. 지난 세기동안 모든 과학기술은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개발되어왔어요. 우리의 밭에서 사용한 비료가 그랬고 ,우리의 옷을 만드는 직물시스템이 그렇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도 그러하지요. 이것은 화석연료문명으로부터 나온 것이지요.
화석연료의 대안은 생물의 다양성입니다. 생물의 다양성은 19세기까지 인류를 유지하도록 할 수 있었지요. 인간이 필요한 것들은 모두 얻을 수가 있지요.
'나브다니아`는 단지 유기 농작물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브다니아`는 생물 다양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플라스틱이 필요없어요.  쥬트(jute-섬유의 일종)는 물건들을 포장하는데 최고의 물질입니다. 종이는 생태 자원에서 생산됩니다. 델리 하트에 있는 나브다니아 시장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종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염된 강을 가질 필요도 없고 무자비한 오염에 노출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거대한 직물을 제공해왔습니다. 자연은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에게 영리한 머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이고-그것은 원시적인 인간입니다. 생태적 기술을 훈련받지 않는 원시적인 인간입니다.

여성운동에 대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여성적 가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자본 권력과 지구와 여성을 억압하는 폭력이 함께 결합한 것이지요. 다른 사회를 만들어내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자연의 창조성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자연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면서 자연을 억압해왔습니다. 오염물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들의 역할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가지지 않았어요. 우리는 화학재료 없이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독성없는 옷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험이 없는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지요. 자연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아주 현명합니다. 비폭력과 여전히 비폭력적인 인간성을 기억에 남아 있는 여성들이 함께 할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성들 그들의 개인에게 남겨진 기억들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여성은 비폭력 진화라는 미래입니다.
우리는 자본과 대기업에게 의존하도록 강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폭력 진화에 대한 미래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우리의 지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 종류의 다양하게 진화된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여성입니다. 여러 종류의 곡물시스템처럼. 진정한 지성은 진정한 창조성에 있습니다. 생태적 위기에서 자연과 인류 사이의 균형만을 복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즉 여성의 진정한 정체성 그리고 남성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성안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고, 여성안에도 역시 두 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려는 남성들이 자기 자신의 인간 본성에서 여성성을 제거해 버렸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미스터 부시는 아주 사악한 인간입니다. 그는 비인간적인 사람이지요.  그는 이라크 뿐 아니라 미국 민중과 자기자신에게도 지독하게 나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성활당제나 지명제, 적극적 차별정책은 남성의 전리품에서 얻는 것으로 여성의 주변화는 계속된다고 하셨지요. 여성운동의 내부에서 '남성따라잡기`식 경쟁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흐름이 적지 않게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는?

생태주의는 변화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델을 추종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자본주의 속에 가두어 놓고 거기에만 주저앉은 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서 반드시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구가 생태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바라보고, 궁국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아닌 우리가 염원하는 사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운동가들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자본주의 틀 속에서 오히려 자본주의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그 틀을 없애버리는 것에 목적을 가져야만 합니다.

--- 여성운동가들에게 정말 충고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나는 대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또한 나는 정책을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매우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이런 저런 것을 할 수 있도록 소외된 중간계층의 여성을 위해 법을 만들 수 있어요. 여성들의 꿈과 대안, 전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것이 일부 여성들이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고, 대학에서 강의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상황 속에 있으려는 이유입니다. 즉 그런 여성들은 변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고정된 것도 중간적인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행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 여러분들의  참여, 여러분들의 말, 여러분들의 행동에 의해 판단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분야든 여러분들의 생각을 올곧게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여성운동가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가난이라는 것이 박탈과 몰수의 결과인 가난의 물질적 경험으로서의 가난과 생계유지 생활에 대한 문화적 개념의 가난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 박탈로서의 가난을 가장 철저히 실현하고 있는데...한국과 인도의 경제기반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산업노동자 중심이라면 인도는 농민중심의 농업경제입니다. 지난 4월에 한국 정부는 발전소를 민영화함으로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의 위기로 몰아넣으려는 데 맞서 긴 기간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세계화 정책하에서 치루어지는 고통은 인도, 제3세계의 농민들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노동자들,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을 벌인 그것이 중앙집권적이고 반생태적인 발전에너지 산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노동자 파업에 방관하였습니다.이러한 괴리는 어디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해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고용과 생태주의 사이에 모순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생태적인 모든 것은 고용을 창출합니다. 생태주의는 자연을 보존합니다. 그리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은 고용을 만들어내기에 노동자들은 자원보존에 모두 나서야 합니다. 단기적인 성장은 환경을 파괴하고 일자리를 빼앗아갑니다. 모든 문화를 보세요. 산업생산에 있어서 환경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요?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거나 ,사람들을 자원들로 대체되어 사용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더 많은 가난을 만들어왔고 지구를 파괴해왔어요.

짧은 기간동안, 자본주의는 가난을 만들어내지 않은 것처럼 은밀하고 교묘한 제도를 만들어서 가난을 조장하고 왜곡하는 상황을 만들어 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공장으로 몰아내고 더 많은 임금을 받도록 경쟁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가난하게 된 것이지요.

노동자들은 의도적으로 희생당하고 그 희생된 보상을 받는 거예요. 전력생산 공장으로 던져진 노동자들은 민영화라는 제도에 던져짐으로서 계속 희생만을 요구받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야말로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본성, 진정한 가난이라는 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가 직면한 상황과 교육이라는 인식의 페러다임의 전환을 위하여

---- 인도는 문맹률이 높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민중들은 여전히 생존 그 자체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불가촉민들은 교육자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는데...이러한 정치경제사회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문맹타파의 교육운동이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100% 비문맹률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근거자료도 있어요. 모든 마을에는 그 마을에 맞는 교육시스템이 있었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영국인들이 이러한 교육시스템을 해체시키고 자신들의 교육시스템을 강제로 이식시키기 시작했어요. 인도인들을 영국 식민주의에 부합되는 일꾼으로 만들기 위하여 식민지 교육을 받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문맹 상태로 나누도록 하는 이원화된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것이 문맹률이 높은 한 이유가 되었지요.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지요. 일반적으로 교육에 대하여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 인디언식(인도다운 것)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주 좋은 토론이 있었지요.
인디언식 교육이 무엇인가? 땅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디언식 눈을 가지도록 어떻게 교육을 행할 것인가? 내 관점 속에서의 인디언식 교육은 바로 '생태화`라는 것입니다.
히말리아에 대해서는 히말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속에 있는 사람만이 그 환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모두 무시하고 정치적인 기회를 얻기 위하여 종교 근본주의라는 이슈로 이것을 돌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왜곡된 교육제도를 더더욱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맹이라는 것이 지난 수세기동안 만들어져왔을 지도 모르지만 지식이라는 것은 완전히 배타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주도했던 칩코운동, 그들은 비록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생태주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태주의에 대해 그때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오늘날 생물다양성에 대한 모든 작업을 서류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품제조회사에서 사용하는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시골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의 지식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나는 읽고 쓰는 것과 지식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지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진 지식은 더욱 좋지요. 지식이 없는 읽고 쓰는 정도의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단순히 문맹률을 없애기 위한 읽기 쓰기 교육이 아닌 참다운 지식이 있는 인디언식 교육 그것이 중요한 관건이지요.

국제연대를 위하여
---- 한국의 진보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민주노동당 당원들, 그리고 제 시민환경단체 활동가들녹색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등 한국의 민중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의 도전을 똑같은 얼굴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수년 전에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을 보아라! 얼마나 발달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 지."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금융위기, 민영화, 실업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국민중들이 매일 거리로 시위에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인도는 똑같은 이슈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자원을 보호하고 고용을 창출할 것인가.`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다같이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기술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민중들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경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중들은 결코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고통받는 민중들이여 우리 함께 힘을 모아 싸우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만들어나갑시다.  


  
*녹색대학은 반다나 쉬바가 설립한 Bija Vidyapeeth(비야 비데피스, 지속적인 삶을 위한 국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이 대학의 설립 취지문과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탐욕과 경쟁, 속도와 무휴, 오염과 생태적 파괴, 전쟁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본 대학은 지속성과 다양성의 원리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예술과 과학을 탐구하고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본 대학은 평화롭고 오염이 안된 둔 벨리(Doon Velley)에 있는 나브다니아(Navdaya)에 유기농 농장이 위치해 있는 곳에 있습니다.

본 대학은 우리 시대에 선구적인 지성인들과 상호교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속가능성이라는 한 이념으로의 통찰력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하는 생명력있는 삶, 명상, 조사 그리고 역동적인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본 대학에서 공동체 생활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지속성에 대한 훈련과 공동체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배웁니다. 참가자들은 요리, 정원가꾸기, 요가, 조립, 작곡, 음악과 영화 제작을 배우게 됩니다. 가능한 현장여행을 통해 공동체간의 상호교류도 추진할 예정입니다.

주요 교과 과정으로는 비즈니스 윤리와 지속가능성, 비폭력 문화 창조-간디와 세계화, 생물 다양성과 생태기술 그리고 생물해적질, 살아있는 물, 공평한 부-지속성과 정의를 위한 부에 대한 재규정, 식량 등이 있다.

-반다나 쉬바의 약력-
*반다나 쉬바는 1952년 인도출생으로 핵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을 공부했으며 생태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 활동가이다. 그녀는 인도 과학,기술,과학 생태연구재단을 설립하고 제3세계 생태운동과 여성운동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올해 지속적인 삶을 위한 국제생태공동체 대학인 Bija Vidyapeeth를 설립했다. 그녀는 세계화의 물결이 지적재산권을 앞세워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서 제3세계 민중들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하고, 반세계화운동과 대안사회운동에 왕성한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살아남기>(staying alive-솔출판,1998), <에코페미니즘>(마리아 미즈 공저, 창비 2000),<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biopiracy-당대,2000) 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모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연대 -반다나 시바

  • 등록일
    2005/03/12 12:52
  • 수정일
    2005/03/12 12:52
출처 : <환경과 반차별 3호>

모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연대
- Solidarity against All Forms of Terrorism -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9월 18일에 열렸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공격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백만명이라는 사람들이 오전 10시부터 2분동안 묵념을 하였고 나도 같이 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다른 테러와 폭력행위에 의해서 희생된 수백만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든 그것에 저항하자는 맹세를 새롭게 했다.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나는 라쿠슈미, 라이버리, 그리고 스라남과 함께 오릿사주 카시풀지구의 조디아 사히마을에 있었다. 라쿠슈미의 남편 가비 조디아는 최근 굶어죽은 20명의 부족민의 한사람이다. 같은 마을에서 소바르나 조디아도 똑같이 사망했다. 그 후에 우리는 바라말마을에서 싱가리와 만났지만 그는 남편 사다하와 큰아들 스랫트, 작은아들 파이라, 그리고 의붓딸 스밀라도 잃었다. 이렇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고의로 식량을 보내지 않은 게 세계은행에 의한 ‘구조조정프로그램’의 핵이 되어 있다. 인도의 공공분배기구(Public Distribution System = PDS)를 해체하는 것이 세계은행의 조건인데 지출삭감의 명목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런데 식량보조를 위한 예산은 1991년에 280억루피에서 2001년에는 1400억루피로 부풀어올랐다. 세계은행이 식량보조를 인상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돈이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식량의 가격상승을 초래하고 PDS의 구입가격이 하락해서 더더욱 저장량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나라의 식량보장은 파탄에 이르러게 되었다.

나는 기아의 희생자가 된 부족민의 가족들이 2분동안 묵념을 하는데 참가했다. 창고 안에는 6천만톤의 곡물이 썩고 있다는데……. 나는 사람들을 빈곤과 기아로 몰아넣은 경제정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테러의 한 형태와 다르지 않다. 마하라슈트라, 라자스탄, 오릿사 등지에서의 아사는 우리들의 식량시스템이 허물어지는 징후이다. 카시풀은 일찍이 자연의 혜택이 넘쳐 있었다. 본래 아사 따위와는 관계가 없는 땅이다. 그런데도 자연과 부족사회에 대한 폭력의 파도에 의해서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다. 산업과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부족의 자원을 수탈하는 한편에서 송두리채 헐벗은 부족민들에게 복지와 생활보장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국가정치 때문이다. 카시풀이나 기타지역의 아사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원을 약탈당하고 식량박탈, 경제개혁정책의 보장시스템, 그리고 기후변동의 영향이다. 2년이나 계속한 가뭄 때문에 곡물이 자라지 않았고, 금년에는 오히려 계절을 벗어난 너무 많은 비 때문에 또다시 곡물이 타격을 받았다.

20년전 펄프공장이나 제지공장은 카시풀의 숲을 없앴으며 지금은 가까이에 있는 안드라 프라데시에서 유칼리를 들여오고 있다. 펄프산업에 의한 테러 때문에 이 지역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르웨이의 하이드로와 캐나다의 알칸 인디코, 인도의 발코 스타라이트 등 거대한 채광기업이 새로운 테러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카시풀의 웅대한 구릉지 안에 있는 보크사이트를 노리고 있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의 원료인데 알루미늄은 코카콜라 캔이나 전투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산, 하나하나의 산을 자연이 몇 천년이나 걸려서 만든 세계무역센터라고 상상해보자. 세계가 9월 11일에 경험한 것보다 심한 참변이 도대체 얼마나 일어났는가 생각해보자. 탐욕스러운 산업과 시장에 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1983년 두운계곡에서 광업에 의한 환경테러리즘을 막았다. 최고재판소가 광산을 폐쇄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은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쟁취한 생태계측의 승리는 세계화정책에 의한 환경규제완화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광업은 ‘자유화’되고 기업은 도처에서 광물을 캐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알루미늄기업은 카시풀 부족민의 토지를 탐내고 있다. 그러나 카시풀의 여러 부족은 고향을 떠나는 걸 거부하고 비폭력적 저항운동으로 토지와 지구를 지키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지킨다"는 이 운동에 참여하는 중년의 여성리더 묵따 조디아는 18일 카시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우리들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딸이죠. 채광기업은 우리 땅에서 우리를 무지막지하게 움직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은 신과 창조의 힘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정부가 준 게 아닙니다. 정부에게 우리의 땅을 빼앗는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자원을 빼앗는 것도 테러리즘의 하나, 이를테면 기업테러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러한 기업테러의 희생자들과 연대해 왔다. 이런 테러는 200개 마을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미 사람들의 생명까지 빼앗고 있다. 2000년 12월 16일, 경찰은 주민을 살해했다. 아비라슈는 이 때 경찰에게 피살된 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처 스바루나 조디아는 임신중이었다. 나는 그녀와 만나기 위해 마이칸나 마을을 찾아갔다. 스바루나는 아버지가 무참하게 살해된 후에 태어난 여자아기를 데리고 오두막집 입구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나보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샥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평화적인 형태로 힘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아버지와 부족이 보여준 채광기업과 경찰국가의 테러에 대한 10년이 넘은 저항운동정신이다.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하나가 된 힘이다. 최근 40년간 댐 때문에 집을 잃고 쫓겨난 5천만명의 부족민들도 또한 테러의 희생자이다. 그들은 테크놀러지와 파괴적 개발의 공포와 직면해왔다. 오릿사를 엄습한 초대형 사이클론(인도양에서 발생한 태풍)으로 사망한 3만명, 그리고 기후변동과 화석연료에 의한 공해 때문에 홍수, 가뭄, 사이클론이 더욱 심해졌을 때 생명을 잃게 될 몇백만명의 사람들에게는 쿄오또의정서에 서명을 거부한 부시는 또 하나의 테러리스트에 다르지 않다.

시애틀에 모인 시민들은 WTO에게 세계테러리스트기관(World Terrorist Organizatio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WTO의 규칙은 몇백만명이라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9월 11일의 비극은 군사, 테크놀러지, 경제, 정치 등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방지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테러는 군사적 발상이 아니면 안 된다. 무력은 불안정과 공포감을 만들고 오히려 테러를 키우게 된다. 지금 벌어지는 ‘테러에 대한 전쟁’은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 평화와 안전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외국인 배척의 물결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인도인, 아랍인, 아시아인들이 습격당하고 살해되고 있다. ‘보복’적 분위기에 힘을 얻은 모든 원리주의자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람들의 안전보장을 첫째로 하는 문화뿐이다. 9월 11일 이후의 세계를 ‘문명과 야만’이나 ‘민주주의와 테러리즘’간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 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 부딪치고 있는 것은 거울처럼 서로의 가치관을 비쳐주는 두 형태의 테러리즘이다. 어느 쪽이나 폭력주체의 문화이고 같은 무기, 같은 기술을 쓰는 폭력과 공포를 사용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 양자는 서로의 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장소의 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희생자가 된다. 참된 충돌은, 평화와 안전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전세계의 시민들과, 그러한 평화와 안전을 부정하는 폭력과 공포의 힘과의 싸움이다.

조디아 사히의 부족민들은 마을의 제단에서 나를 위해서 등을 밝혀 주었다. 제단은 조그만 돌이었다. 그런 부족의 제단은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하찮은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깊고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관대한 평화적 우주를 구체화한 것들이기 때문에 지구와의 평화, 인간간의 평화, 인간에 내재하는 평화…….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서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평화의 문화가 아닌가.

전세계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를 몇 번이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와 강욕 그리고 세계화의 폭력에 의해서 파괴된 몇백만의 성스러운 제단이나 가정 그리고 농장에는 아무도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암흑의 화요일’의 희생자를 추도할 때 다른 형태의 테러나 폭력에 의한 방대한 숫자의 감춰진 희생자와의 연대도 강화하자. 그리고 폭력이나 테러리즘은 지구에 사는 우리의 미래의 가능성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이고 무참한 역사의 순간을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는 힘으로 틀림없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9월 18일 오릿사주 카시풀 지구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까이 꼬오의 마지막 말

  • 등록일
    2005/03/12 12:51
  • 수정일
    2005/03/12 12:51
무까이 꼬오의 마지막 인사라며 나까지마군이 보내왔습니다.
"나는 가는 게 당연하고 내 부고과 함께
여러가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http://www.ne.jp/asahi/anarchy/saluton/saluto_en.htm

<원문>
前略、当年83歳といえばもうあたりまえで
どうということもないというわけで、
ぼくはようやく2003年8月6日に死にました。
おしらせをかねて、生前のいろいろのことありがとうと
お礼のごあいさつを送ります。

2003年8月6日

故 向井  孝

水田ふう君がいますから、ぼくの代わりにどうかよろしく。

<영어>
Greetings,
I am 83 years old, that's natch and doesn't matter.
I died finally on August 6th, 2003.
With the announcement of my death,
I send greetings to you to thank for everything.

August 6th, 2003

Kou Mukai
P.S. Fuu Mizuta is here, so please look to her instead of me.

<한글번역>
저는 83이고 가야하는 것도 이제 당연한 것 같습니다.
2003년 8월 6일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 죽음의 소식과 함께, 생전에 여러가지로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2003년 8월 6일
故 무까이 꼬오
추신: 저 대신 미즈타 후상을 잘 부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여성

  • 등록일
    2005/03/12 12:49
  • 수정일
    2005/03/12 12:49

일다에서 퍼옴

------------------------

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여성
- 명동성당 농성에 ‘중독’된 이유

  김숙현 기자
2004-03-22 04:37:32  

요즘 나의 생활은 직장과 명동성당, 이 두 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저녁 때(혹은 야근 후 밤에) 거의 매일 명동성당에 간다. 명동성당에는, 21일로 128일째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연행동지 석방’을 외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왜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가?

처음에 나는 ‘투쟁과 밥’이라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주노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연대를 표하는 모임에 친구들과 참여했다.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요일에 원하는 사람 아무나 갈 수 있는 날 가는 약간 느슨한 모임이다. 어차피 음식을 준비하여 조리하는 것은 숙련된 몇몇 분들이 할 수밖에 없기에, 나와 친구들은 배식을 돕고 설거지를 하거나, 뒷정리에 함께 하거나, 혹은 밥만 얻어먹고 매일 저녁 명동성당 계단에서 갖는 집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우리는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과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고, 수줍게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나는, ‘투쟁과 밥’에서 만난 사람들 몇몇과 함께 꾸린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모임은, ‘투쟁과 밥’보다 조금 더 강한 결합을 원하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활동’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은 소소하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화성보호소에 있는 굽타와 깨비, 헉을 면회 가는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 인터넷에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글과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농성단 홈페이지에 오른 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기도 하고, 낮 시간에 농성장에 와서 농성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부로 외출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며 보디가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와 밥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세탁물을 한 짐 지고 가서 빨래를 해다 주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글 읽기/쓰기가 약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낮 시간 활용이 가능한 몇몇 사람들이 한글교실을 열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와 차트까지 준비해 진행된 이 수업에, 농성단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진정한 연대란 주고받는 것인 법. 조만간 방글라데시/네팔의 문화, 언어 등을 배우는 교실 역시 생길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프리스쿨’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 모임에 속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현상이 꽤나 낯설었던, 우리 모임의 ‘적극분자’ 중 유일한 남자인 K씨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왜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나는 예전에 친구들과 <불한당>이란 책을 만들 때, 인권운동사랑방 상근활동가인 배경내씨를 인터뷰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인터뷰에서 소위 ‘부문운동’이라 불리는 분야 활동가 중에 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그리고 자문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토록 이주노동자 운동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성으로서 느끼는 ‘동병상련’

회사 때문에 주로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고 밤에 잠깐 명동성당에 들르는 내 경우, 주위에서 ‘수고한다, 힘들겠다’ 등의 반응을 받게 되면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나는 힘든 것을 참고 있는 게 아니라, 농성단에 가는 게 너무 즐거워서 가기 때문이다. 나뿐 아닐 것이다. 우리 모임 사람들이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명동성당 농성단은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이니까.

그러나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해 나는 여전히 이론적이고 명확한 논리들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곤 있지만 계급론이나 좌파 이론에 밝지 못하며, 뭔가 싸우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등의 운동 이론엔 문외한인 나로서는, ‘왜 나는 연대하는가?’라는 자문에도 그럴듯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불쌍해서? 연민을 느껴서?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에 머리에 떠올린 것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닌, ‘동병상련’이라는 감성적 영역의 언어였다.

‘여성은 이 시대 마지막 흑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인종주의를 재빨리 몸으로 익힌(그것도 백인중심주의적, 사대주의적으로) 한국인들 중 한 명이긴 해도, 저 말에 사용된 ‘흑인’이라는 단어가 갖는 그 절절한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건 사실이다. 오히려 나에게는 ‘흑인은 이 시대 마지막 여성’이라고 표현해야 의미가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성’, 특히 ‘노동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저 문장에서 사용된 ‘여성’이라는 단어가 생물학적 여성을 지칭한다기보다 ‘억압 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가리키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다른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픈, 혹은 연대해야 한다는 나의 바람을 투영시킨다면 저 문장의 주어 ‘여성’의 자리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로 대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는 이 시대 마지막 여성, 장애인은 이 시대 마지막 여성, 혹은 이주노동자는 이 시대 마지막 여성.

이러한 ‘사회적 여성’들이 받는 고통과 억압은, 그 본질은 다를지라도 형태와 외양은 비슷하다. 혹은 형태와 외양이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비슷하다. 이들의 운동을 매도하고 왜곡하며, (합당한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언어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논리에서, 혹은 ‘노동귀족’을 비판하는 논리에서, 장애인 운동에 무심한 사람들이 뱉는 무심한 말 한 마디에서, 동성애자를 희화화하는 표현들에서, 페미니스트들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논리와 표현과 반응과 왜곡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 중 특히 남성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성별의 측면에서, 국적의 측면에서, 우리의 기득권을 묘하게 교차하며 갈등지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와 내가 똑같이 노동비자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것이 ‘물리적인’ 노동비자라면, 한국인 ‘여성’으로서 내가 원하는 것은 ‘상징적인’ 노동비자다. ‘상징적인’ 노동비자를 원하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 비자발적 실업자 남성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여기에 또다시 연대의 새로운 범위가 추가된다.

연대의 그물을 잇는 한 희망은 있다

지난 3.8 여성대회 집회 때,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참여했던 건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연행과 강제출국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집회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특히 열심히 참여하는 집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다. 지난 14일 건설일용노조집회에서는 1시간 먼저 같은 장소에서 사전집회를 가진 후, 본 집회에 함께 하기도 했다. 책상 앞에서 생각만 하기론 가장 적대적인 관계일 것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일용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그렇게 거리에서, 집회장에서 연대의 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 한국인들 역시 비슷하다. 이주노동자들의 농성단 천막을, 그리고 연대주점을 찾아오며 가장 강하게 연대를 보이는 사람들 중 한 무리가 장애인이동권연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천막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천막에 함께 결합해 있는 단위엔 민주노총도, 또 각종 사회운동단체도 있지만 ‘불완전고용철폐연대’ 역시 있다는 사실.

이렇게,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여성들’은 비(非)여성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씨줄과 날줄을 엮어 연대의 그물을 짜고 있다. 그렇다. 농성장을 방문하고 이주노동자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하나의 줄로 된 연대의 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끈이 길이가 길어질수록,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한 줄의 끈’이 아니라 가로 세로가 복잡하게 얽힌 ‘그물’ 형태라는 것이다. 내가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농성단 방문에 강하게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감동과 기쁨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희망’이란,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다. 아니,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 www.ildaro.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탄핵이라는 가상스크린에서 벗어나는 길

  • 등록일
    2005/03/12 12:42
  • 수정일
    2005/03/12 12:42

탄핵이라는 가상의 스크린에서 벗어나는 길
- 깨철이(kikibar)   http://cafe.naver.com/solidarity/152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에서의 탄핵을 접하면서 맨 처음 보일 수 있는 가장 즉자적 반응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통령 탄핵을 결의한 국회와 정치인들에게 냉소 혹은 분노를 표시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반응이 보일 수 있는 정치적 입장은 '탄핵반대', '국회해산'이나 혹은 '민주수호'와 같은 슬로건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대통령을 탄핵했다고 해서 국회를 해산하자'는 것과 '민생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는 그 동안의 국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은 다르다. 만약 국회해산의 의지가 후자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대통령 노무현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탄핵도 옳고, 국회해산도 옳다고 외쳐야 하리라. 그러나 국회해산의 의지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사코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서 탄핵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고 그것이 현실화되어야 한다면 그들은 국회해산과 민생해결을 위한 일을 해야한다. 그러나 탄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은 의원직을 사퇴하자고 요란을 떨었다가 다시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선 이 땅 에 국회해산의 의지를 가진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탄핵사건이 점점 각 당의 정략적 이해에 따라 누가 총선에서 이득을 남길 것인가 하는 경주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민주수호'는 정치인들의 정쟁에 적당한 명분을 얻기 위한 꼬리표에 불과하다. 만약 지금 내 말이 오해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국회를 해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단지 노무현이 옳아서 탄핵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는 그 말이 진정이라면, 그렇다면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옳은 방식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탄핵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파탄 난 민생, 노무현 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뿐만 아니라 각종 차별정책들을 폭로함으로써, 지금의 '탄핵반대'가 가리고 있는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다. '탄핵반대'를 외치는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입에서 민주화 항쟁의 과정에서 숨졌던 열사의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그 이름은 거의 무의식중에 1987년 정도에서 멈춘다. 그는 노무현 정권 탄생이래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부안 주민들을 탄압했던 것은 노무현 정권이며, 장애인 이동권 요구를 묵살하는 것도 노무현 정권이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했던 농민들의 욕구에 맞선 것도 노무현 정권이며,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제도를 강행하는 정권도,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던 것도 노무현 정권이다. 그런데도 '민주수호'를 위해 노무현 탄핵을 저지하자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민주수호'의 의미를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국 현재를 유지하자는 발상이고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할 게 별로 없다는 말로 들린다. 지금 그 '민주수호'라는 그 발상은 고통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나는 탄핵 사건이 있기 전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접하고 그들의 투쟁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농성장을 찾아가 일주일에 한번씩 밥을 지으며 이주노동자들과 만나고 있는 '투쟁과 밥' (http://bab.gg.gg)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투쟁과 밥'에 섞여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하고 보호소에 가두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나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생산하던 일부였던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마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처럼 말하고 우리들에게 민족적, 인종적 편견까지 강요해왔다.

그러나 한편에서 노무현 정부는 올해 이주노동자 8만명을 더 받아 들여서 인력난에 허덕이는 기업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이런 사실은 최근 3월 27일자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정부가 기업주들을 위해 마음껏 부리다가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저임금 노동력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인력난이라고? 정부와 기업주들은 단순히 일반적인 노동력을 원하지 않는다. 마음껏 부리다가 마음대로 버려도 제대로 항변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 노동력을 원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시민들은 이런 이야기에 실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해외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들여오기 위해 그동안 산업연수원 제도라는 편법을 이용해왔다. 해외로부터 들어온 이들 노동자들은 알다시피 노동자도 아니고 학생 신분으로써 자기 노동과 그 결과에 대한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이들 노동자들이 저항하자 정부는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강제추방을 단행하고,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한 고용허가제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로서의 신분은 인정하되 여전히 체류기간을 3년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더구나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사업주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류기간 3년이라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단결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한 시간제한이다. 노동자로 인정은 하지만 근로기준법이나 노동3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고용허가제라는 이상한 법안이다.

정부는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않는 사업주의 자유만을 확대하고, 노동3권을 철저히 부정하며 불법 행위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관심은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저임금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유입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이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처럼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노예노동에 대해 정부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너무나 쉽게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타민족에게 국한되어지는 폭력이 아니다(타민족에 행해지는 폭력 그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오늘날 비정규직과 같은 다양한 고용형태의 편법이 동원되면서 이런 노예노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동의 이주노동자 농성단 투쟁이 100일이 훨씬 넘었을 때 바로 탄핵 사건이 일어났다.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된 나로서는 이 탄핵 사건에 대해 별 할 말이 없다. 분노도 냉소도 없다. '탄핵반대'와 '민주수호'라는 구호는 내게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고 공허할 뿐이다. 지난 3월 21일부터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단 근처에는 서총련 소속인지 뭔지 하는 단체가 따로 농성을 시작했다. 탄핵반대, 국회해산, 민주수호 등과 같은 구호를 내걸고 말이다. 물론 이들은 바로 옆에서 130일이 지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수호하고자 탄핵 반대에 나서는 것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최근에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에 반대하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동감하는 사람들과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http://cafe.naver.com/solidarity)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거창한 단체들의 사람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헌신했던 사람들도 아니다. 그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는 문제가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노예노동이 일반화시키는 체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뭔가를 해야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고민은 탄핵정국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모임을 만들고자 고민했던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탄핵정국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 탄핵정국은 현실적 문제들을 회피하고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가상의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 농민들의 저항, 파병반대와 반전의 요구, 부안 주민들의 투쟁에 직면했던 이 체제는 위기를 돌파할 수단으로 탄핵을 이용하고 있다. 탄핵 사태는 기존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의제를 조작할 기회를 주었다. 정치인들은 재빨리 미디어를 동원하여 정권에 대한 지지나 체제에 대한 승인으로 다중들의 자율을 향한 열망들을 포섭하고 있는 셈이다. 탄핵을 둘러싼 그 모든 잡음은 이주노동자들과 같은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가상의 스크린이다. 이것을 깰 수 있는 것은 탄핵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과 사회적 '연대'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탄핵 사태 이전에 현실의 어떤 문제와 소통하고 있었다면 당신은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아니어도 좋다. 탄핵이라는 스크린을 외면하고 현실의 분노와 고통과 손을 잡으라고 말이다. 탄핵을 둘러싼 그 모든 말들에 과연 진지한 '소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거기에 쏟아지는 말들은 그저 소통이라고 착각하며 내뱉는 가상적 의제에 대한 가상 회의에 불과하다.

어쩌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에 개입하는 방식은 권력을 누가 잡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우리들의 열망과 욕구들 사이에 어떻게 집단적 협력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반미 촛불시위, 파병 반대 반전집회, 부안주민들의 투쟁, 농민들의 투쟁, 그리고 이주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들은 모두 우리의 열망과 욕구들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열망들은 아직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스크린 속에 있는 은밀한 권력욕망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열망들 사이에서 소통해야 하며 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야 한다.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은 어떤 단체나 소속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 결정에 의해 참여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연대 모임이다. 나는 연대를 위해서는 이런 분자(分子)적인 움직임들의 활성화와 노동, 생태, 여성 등을 가로지르는 횡적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탄핵이라고 하는 가상의 스크린에서 벗어나는 길, 그것은 소통을 위해 분자적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좋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와 소통하는 모임이 아니어도 좋다. 문제가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자! 이것이 정치판의 정치학에 저항하는 우리의 정치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다른세상을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에 게재되었음. http://www.another0415.net
http://www.another0415.net/bbs/view.php?code=poverty&id=2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주 특별한 워크샵

  • 등록일
    2005/03/12 12:40
  • 수정일
    2005/03/12 12:40
피자매연대, 투쟁과 밥 친구들이 지난 일요일(16일)에 풍동에서 아주 특별한 워크샵을 열었다. 이주노동자 농성단에서 해외 네트워크에 기사를 보내는 일을 맡고 있는 독일인 친구과 캐나다인 친구와 함께 백석역에서 내려 약 10분정도 택시를 타고 어느 벌판 입구에 내렸다. 이미 다른 지역은 새 아파트로 들어차 있었고, 그 곳만 마치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뻥 뚤린 폐허였다. 경찰이 입구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바람에 약 5분간 다소 쓸데없는 실갱이가 벌어졌고, '백인 외국인'을 의식해서인지 결국엔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경찰을 만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사방에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넓은 벌판에 사방이 길이다. 우리가 만들면 길이다...)

풍동은 철거현장은 여기저기 흙과 깨어진 벽돌, 쓰레기, 가재도구들, 흙에 범벅이 된 인형, 부서진 가구들이 즐비한 것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건물 몇 채만 남기고 집들이 다 부셔져 있었는데, 그 남은 몇 채 마저도 이미 창문가 문이 다 뜯기고 골격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멀쩡한 집이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가고 있는 풍동 철대위 골리앗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들은 얘기로, 용역들이 기거하며 침탈준비를 할 때 사용한 집이다.





(폐허 속의 산타)



(또 산타)



(또 산타)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한 고요함과 폐허, 그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함께 간 친구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위에서 누구냐고 묻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이 옥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아나키스트 블랙블록이 아닌가! 잠깐 의심하던 사이, 육중하게 잠겨있는 문이 열렸다. 골리앗은 약 6개월 전 철거가 시작되자마자 11가구의 철대위 주민들이 4층짜리 빌라를 점거해서 그 위에 망루를 쌓아올린 일종의 저항의 "요새"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안은 매우 컴컴했다. 계속된 침탈 때문에 건물내에 있는 창문이란 모든 창문은 두꺼운 판자로 꽉꽉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빛도 없고 전기도 끊긴 어둠 속에 고립되어 이들은 무엇을 희망삼아 이토록 오랫동안 투쟁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주민들은 주택공사가 던져주는, 방한칸 전세값도 안되는 700만원을 들고 풍동을 떠난지 오래인데...

방에 들어서자 철대위 위원장님이 약간은 어색해 하며 우리를 반긴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침탈 이후에 MBC니 오마이뉴스니 하는 매체들에서 인터뷰들이 나오니 조금은 얼떨떨한 모습인 듯.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여성분들 중 반 이상이 60이 넘는 노인분들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방 안 곳곳에 매직으로 쓴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여느 캠페인이나 행사, 시위 등에서 흔히 보는 세련되고 매끈하게 인쇄된 플랭카드니 포스터들과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들 다섯 분과 함께 워크샵을 시작했다. 먼저 대안달거리대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견본을 몇 개 보여주었더니, 덧버선 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새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한분은 철대위 남자분들과 함께 공동생활 하고 있기 때문에 달거리대를 빨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챙피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빨자... 운운했을 터인데, 이 날만큼은 나중에 농성 끝난 다음에 사용하시라는 완곡한 어법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들의 바느질 솜씨는 역시나 대단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평소 2시간이 걸리던 워크샵이 1시간 남짓 마무리가 되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아주머니 한 분이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 농담조로 생리도 안하는 분이 무엇 하러 배우시냐고 핀잔을 주니, 나중에 손녀에게 가르쳐 주신다며, 대학 디자인과를 진학한 외손녀가 솜씨가 좋다는 자랑을 한참 늘어놓으신다. 눈이 침침하신 할머니가 바늘에 실을 못 꿰고 있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자신만의 특허라며 바늘 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아주머니 이마는 지난번 침탈 때 용역깡패가 쏜 쇠구슬에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빨갛게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침탈 때 구슬을 맞고 피 흘리는 아주머니)



(여기저기 길에 널부러져 있는 구슬들을 모아놓은 사진. 아이들의 구슬이 깡패들의 손으로 들어가 사람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워크샵이 끝나고 몇몇 함께 간 친구들이 맛있게 부친 야채 부침개를 먹고 나서 건물을 나왔다. 다른 투밥 친구들이 페인트를 가져다가 불에 그을린 건물들 벽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글씨와 그림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와 죽음과 폐허의 장소라고 느꼈던 풍동의 벌판은 왁자지껄한 생명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경찰을 만날 때부터 답답했던 마음이 다소나마 환하게 뚫리는 듯 했다.  











지금 풍동은 한참 풍동 문화제 준비로 들떠 있다. 주공과 정부가 풍동에게 안겨준 것은 이윤추구를 위한 이런 저런 방식의 죽음과 파괴이다. 그래서 우리의 저항은 자연스레 이런 저런 방식의 삶과 이런 저런 다른 방식의 연대와 축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돌아가신 일본의 아나키스트 무까이 꼬오의 말을 되새겨 본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승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지고 또 져도 지지않을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늘 동일한 식으로 지는 게 아니라 방법을 그때 그때 바꿀 것, 다시 말해서 지는 방법을 바꿀 것, 체념하지 않고 바꾼 방법으로 계속 대처할 수밖에 없다. 잠이 들려고 할 때 귀찮은 파리나 모기 같은 것, 방법을 차례 차례로 조금씩 바꾸는, 와글와글 떠드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재미거리로 즐기는 것이다.”



철거민연대투쟁위원회(준) http://sangdo2.cyworld.com

풍동 지지모임 홈페이지: http://nobreak.gg.g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놈의 병! -웰빙과 소비병과 피자매연대에 대해서

  • 등록일
    2005/03/12 12:39
  • 수정일
    2005/03/12 12:39
피자매연대(http://bloodsisters.gg.gg)의 느림이 쓴 글입니다
------------------------------
오늘 뉴스를 보니, 20대 여성들이 카드빚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어간다고 나온다.
대학생들의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고 있지만, 그들의 소비습관까지 바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할 때면 고민을 하든, 하지 않든 카드를 긁는다.
가슴에 아무리 번민이 가득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이것이다.
소비를 피하지는 않는다는 것. 어느새 소비 그 자체가 우리들 삶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반 자본주의 어쩌고 하면서 제아무리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를 욕하면서, 청렴결백을 떠는 듯해도,
나 자신조차 이 소비습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사야만, 그것이 가치있는 재화로 내게 다가오고, 또 나는 돈을 지불하는
그 관계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슬슬 옥죄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 역시, 인사동 등지에 가면 잠잠했던 소비병이 도진다. 우습게도,
가장 기품있고 우아해보이고, 삶의 질과 연관되는 이른바 웰빙의 골목에서
나는 엄청나게 소비를 조장받는다. 이것도 사고싶고, 저것도 사고 싶고.
저 예쁜 한지 편지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평소에 생각나지 않던 사람도  떠오를 정도이니까.
나는 나의 욕망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르고 한지가게에 들어갔다.
창호지 두 장을 2천원 주고 둘둘 말아 손에 드니, 왠지 아직도 손이 비어있는 느낌이다.
거리를 배회하며, 각종 귀걸이, 목걸이, 반지, 인도 옷들, 희안한 장신구들을 바라본다. 원래 인사동 그런 곳 아니었냐고?

인사동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난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이 골목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 때, 인사동 골목의 80%는 화랑이었다.
화랑은 언제나 공짜로 들어가 걸려있는 그림을 구경하고 나오면 되는 그런 공간이었고,
나에게는 신기하고 고마운 곳이었다. 지금은 찻집인지 밥집인지 술집인지 하는 곳으로 변한 건물에, 예전에는 ‘그림마당 민’이라는 화랑도 있었고, 지금 단성갤러리만 살아남은 그 주변도 온통 조그만한 화랑들이어서, 들어가서 쓱 한번 보면 그집 그림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뻘쭘함을 무릅쓰며 그런 곳에 들어가는 일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돈이 좀 되면, 화랑을 나오면서 팜플렛 하나 천원 주고 사서 집에 들고오는 마음이 행복했었다.
그런 행위들은 소비가 줄 수 없는 어떤 뿌듯함을 나에게 주었고,
나는 조금은 엄숙하기도 한 그러한 의식을 치르면서 성장해왔다.
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서른 군데가 조금 넘는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었고,
골목 골목에도 작은 화랑들로 아기자기했다. 내 기억에 90년대 중반 이후,
급작스럽게 ‘오, 자네왔는가!’ 따위의 인위적이기 그지없는 전통업소들이 들어왔고,
스타벅스가 들어왔을 땐, 인사동이 변해간다는 것에 대한 회의도 흐지부지해졌던 것 같다.
요즘엔 인사동에 한지를 사러 가거나, 구경거리가 없나 둘러보긴 하지만,
그림을 보러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한 2년동안, 중심가에 있는 단성에도 한 번 안들어간 것 같으니까.

  이제 인사동은 웰빙족들의 호사스런 소비공간이 되었고,
그 부유한 자들의 틈에는 나같은 가난뱅이들의 허영심을 채워줄 싸구려 물건들도
곳곳에 진열되어있고, 몇 천원짜리 쪼만한 장식들이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좋은 그림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래도 인사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만.

  우리 시대에, 웰빙이란, 건강식품, 다이어트상품, 유기농채소와 면생리대로 대표된다.
공통점은, 정신의 풍요를 강조하면서 하나같이 비싸다는 것인데, 원래 몸에 좋은 것은 비싸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 우리시대의 웰빙이다. 우리 시대의 웰빙상품 소비는,
그 물건들이 왜 비싼지, 생산과정이 어떠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지도 별로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몸과 영혼과 행복은 서로 분리되어있고, 이 모두를 소비를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먹어왔던 것, 입어왔던 것, 생활 속에서 노동을 통해 얻고 누리며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것이,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비싸고 몸에 좋은 것으로 둔갑을 하는 것을 보면
소비병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소비병에 걸린 사람들은 아직도 풍요(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차원에서)가 노동과 생산과
생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모른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자신의 몸에서 소비의 병을 치유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인데,
몸을 쓰지 않고, 무조건 간단하고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고 가련할 따름이다.
몸을 쓰긴 쓰되, 몸짱이 되기 위해서 헬쓰클럽에 나가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가 우리의 육체를 관리하고 감독하고 다스리는 힘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영혼과 대화를 하긴 하되, 요가 비디오 빌려서 따라하고 곧 잊어버리는 기억 상실증에
또 한번 그 위력을 깨닫는다.
일러주지 않으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정신구조 또한 참 아슬아슬하다.
모두가 병들고 모두가 치유하고 싶어하지만, 모두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편리하고 쉽게만 하려 한다.
홈쇼핑도 생기고 인터넷 쇼핑몰도 마구마구 생기니, 돈만 있으면,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유기농 채소를 기르려고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생리대를 만들어서 쓰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웰빙은 무슨. 자신의 병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계속 구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토마토와 고추, 쑥갓 등 묘목을 심어놓고 보는데, 날마다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그 초록 잎사귀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고요하고도 활기차다.
뒷산에서 흙을 퍼오고, 화분을 정리하고, 옥상에 낑낑대며 화분을 날라놓고, 날마다 계단을 올라
그네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잎사귀를 만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날씨를 예감하는 일은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소비의 병이 이렇게 고쳐지는 것임을 안다.
나는 요즘 물도 적게 쓰기 위해 오줌을 눌 때는 좌변기에 앉지 않는다.
물론 밖에 나가면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는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시원하게 일을 보고
한 바가지 물로 씻어낸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좌변기에 앉기도 했는데, 점점 바지 내리고
엉덩이를 깐 상태에서 다시 화장실 바닥으로 엉금엉금 걸어와 소변을 보는 일이 잦아졌고
이젠 조금씩 정착이 되가는 추세이다. 그러자, 습관적으로 휴지로 밑을 닦았던 것도 한 두 번씩
물로 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찬물로 씻는 것은 두렵고도 생경해서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최근, 피자매연대 사람들이 휴지 쓰지 말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자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은 휴지들을 쓰는 지 알게 되었다. 아직도 휴지를 들고 다니지만,
곧 가제 손수건을 들고 다닐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손수건 빠는 재미도 느낄 것이고,
손수건 빨아 너는 재미도 느낄 것이고, 손수건 마르기를 확인하면서 아직 눅눅한 손수건을
만지작 거리며 명상도 할 것이다. 진짜 좋은 삶(well-being)이란 무릇 이런 것이리라.

요즘 피자매 달거리대가 확 뜨긴 떴는지,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웰빙 쇼핑몰에서 같이
하자고도 연락오고 아주 난리인데, 좋은 현상이면서도 조만간에 판매가 확 줄었으면 싶은 마음도 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어온 사람들이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것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면생리대 만들기 워크샾을 여러 번 해나가면서, 매번 놀라운 체험하게된다.
처음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나와같이 소비의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참 씁쓸하기도 한데, 더 무서운 것은 나이가 어릴 수록 그 증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달거리대를 전시해놓으면, 일단 와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확인하고 바로 하는 말이
“와, 예쁘다. 근데 얼마에요?”인데, 왜 좋은지, 왜 써야하는지,
어떻게 만드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든 별로 없다.
우리가 막 설명을 하면, 나이드신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고,
아주머니들은 쑥스럽게 웃으시면서 꼬치꼬치 물으시고,
젊은이들은 관심있게 살펴보고, 잘 들으며,
십대 중에서도 중고딩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또래 애들과 수다떨기에 정신이 없으며,
초딩쯤 되는 애들은 그저 살지 말지를 고민한다. 참나, 이래서야 되겠느냐 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바느질을 시작하면 그토록 고요하고도 활기차게 변한다는 것은
보지 않으면 믿기도 어렵다. 그들은 집중을 해서 바느질을 하고,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잘 떠들고 논다.
손이 천을 만지는 감촉에도 몰입하고, 바늘의 단단하고도 부드러움에 몰입하고,
길다란 실과 좁은 구멍과 나풀거리는 먼지들까지 몰입을 하고,
그들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머리카락도 그 순간 고요하다.
난 이런 순간에 어떤 기운들을 느끼는데, 그래서 나도 가만 있지 못하고 결국엔 바느질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나는 또 한 번 놀라는데,
모두들 훨씬 예뻐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얼굴에선 빛이 오르고, 어떤 사람들의 얼굴에선
쫒기는 사람의 뭔가 흐트러진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곳에서 각자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자본주의의 두꺼운 가면이 금가고 녹아드는 모습을 본다.
소비병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그래서 밝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아무리 피곤하고
목이 쉬어도, 워크샾을 하고 나면 기분이 아주 상쾌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최근, 면생리대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들이 막 생기고 있다.
뭐, 자신들은 좋은 일을 한다고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웰빙에, 좋은 물건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고 현실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 업체들도 필요하긴 할 것이다.
아직 이 땅에는 소비병에 물든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당신들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 대량생산을 좀 맡겨주시오.’하는 부탁 아닌 부탁은 좀 안해줬으면 싶다.
피자매연대가 나날이 발전하고, 여기 저기 알게 모르게 워크샾이 퍼져나가면서 달거리대 작업팀도 늘고, 튼실해져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좀 잘 알아줬으면 한다.
대량생산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사람들에게
클릭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직접 만들면서 명상도 하고, 삶의 여유도 느끼고,
소비의 병을 치유하고, 조금씩 소량생산, 자급자족의 패러다임을 확산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수고로움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피자매연대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즐겁게 느끼고,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피자매연대에서도 아직 만들기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면생리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에서 판매를 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천막농성단을 지원하기 위한 행동에 돈이 필요하고,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도, 풍동 철거민들의 투쟁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도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일회용 안쓰기로 가길 바라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길로 가길 바라고 결국에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소비는 줄 수 없는 수고로움의 행복을 체득하기를 바라며,
결국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시스템을 부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피자매연대 활동은 여성의 생리라는 작은 영역(물론 아주 작은 영역이라고 보기도 힘들지만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진실되고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피자매연대가 ‘피자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자매연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