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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16
    <미코노스> 보다 델로스가 좋다(10)
    제이리
  2. 2006/11/16
    <산토리니> 못 갈뻔하다(5)
    제이리
  3. 2006/11/16
    <아테네> 신들의 도시에 가다(4)
    제이리
  4. 2006/11/16
    <이스탄불> 드디어 이스탄불이다(2)
    제이리
  5. 2006/11/16
    <샤프란볼루-아마스라> 진짜 흑해에 오다(4)
    제이리
  6. 2006/11/16
    <아마시아> 터키 물가를 실감하다
    제이리
  7. 2006/11/16
    <트라브존> 트라브존은 항구다.. 그저그런(2)
    제이리
  8. 2006/11/16
    <도우베아짓> 다시 동행이 생기다(3)
    제이리

<미코노스> 보다 델로스가 좋다

미코노스 가는 배를 타러 버스정류장에 나간다. 캐리어 두 개, 커플룩은 아니지만 왠지 커플임이 분명한 남녀 한 쌍.. 아무리 봐도 한국인 신혼부부다. 아.. 말을 시켜.. 말어.. 잠시 고민이 된다. 아무리 아쉬워도 커플들한테 먼저 접근하지 말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아쉬운 건 나다. 버스 떠나는 시간까지 엽서 몇장을 살 생각이었던 나는 결국 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말을 건네고 만다. 한국분들이시죠? 신혼여행 오셨나 봐요? 저 배낭 잠깐만.. 뭐 이렇게 만난 신혼부부 커플은 배시간이 나보다 한시간 더 느릴 뿐 목적지는 똑같은 미코노스섬이다. 게다가 이 커플은 몹시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만났다는 한국 남자여행자 하나가 자기들이랑 같은 배니까 오늘 저녁에 넷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잖다. 드디어 자취여행자 신세를 벗어나나 보다.

 

산토리니에서 미코노스 섬까지는 세시간.. 고로 배는 그리 크지 않다, 대략 동해에서 울릉도가는 쾌속선 비슷한 이 배는 불어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롤러코스터 흉내를 낸다. 어지럽다. 그래도 아직 배멀미를 할 정도는 아니다. 애써 잠을 청하며 버텨본다. 결국 이배는 어느 섬에선가 두시간 가까이 정박해 있다가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나중에 나보다 한시간 늦게 출발해 한시간 빨리 도착한 신혼부부 일행에게 물어보았더니 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배멀미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는데.. 아마 내가 탄 배가 정박해 있던 시간이 바람이 몹시 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다섯 시간만에 미코노스 섬에 도착한다. 다행히 미코노스섬의 숙박시설은 항구에서 멀지 않다, 가서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픽업니온 삐기를 따라간다. 산토리니의 방값과 같은 가격인 20유로짜리 방을 찾으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따라오란다.

 

이번에는 실패다. 멀지는 않은데 골목 어귀의 화장실 같은 문을 열더니 여기가 방이란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돈으로 이만하면 좋은 방인 줄 알란다. 성수기때는 이방도 30유로였다나 뭐라나 해가면서 말이다. 다시 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본다. 멀쩡하게 호텔 간판을 붙인 곳은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이곳에서 스투디오라고 부르는 민박 비스므리 한 방은 정식 숙박 허가가 난 것이 아닌지 숙소 간판이 아예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삐끼인듯한 한 여자를 따라가는 서양애들이 보인다. 여자에게 방이 있냐고 물으니 따라오란다. 결국 아파트먼트 형식의 집의 방한칸을 빌린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세 칸이 있고 욕실에 부엌이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다. 아마 집 하나를 세내  방마다 대여를 하는 모양이다. 부엌을 쓸 수 있긴 한데 취사도구가 없으니 그저 차나 끓이고 샌드위치 정도 만들어 먹는 게 고작일 것 같다. 25유로.. 산토리니보다 5유로 비싸긴 하지만 이번에는 다운타운의 중심가다^^.


미코노스섬 전경


미코노스 섬의 풍차

 

늦게 도착한 탓인지 숙소를 잡고 나니 어느새 약속한 저녁 시간이다. 항구로 나가 일행을 만난다. 신혼부부가 말한 또다른 여행자도 나와 있다. 잠깐 회사를 옮기는 기간을 이용해 나왔다는 이 친구 거의 열흘만에 그리스와 터키를 도는 야무진 일정의 주인공이다. 신혼부부는 이미 한국 여행사에서 정해준 근사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또다른 여행자는 삐끼를 따라서 어딘가에 숙소를 정했단다. 차로 끌려가서 숙소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이 친구는 여기서 걸으면 이십분은 걸릴걸요 해가며 너스레다. 섬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저녁을 먹으로 들어간다. 몇가지 해산물을 시키고 보니 와인이 의외로 싸다-뭐 딴 물가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우스와인이 1리터에 칠팔천원 수준이다. 대략 계산해봐도 맥주보다 더 저렴한 것 같다. 와인맛이야 잘 모르지만 맛도 그리 나쁘지 않다. 산토리니에서 우아하게 혼자 와인이나 마실걸.. 슬쩍 후회가 된다^^.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1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2

 

담날 차를 렌트해서 섬을 돌아보겠다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 근처의 델로스섬을 간다. 이번에는 밤배로 이동해 사모스섬에서 배를 갈아타고 터키의 쿠사다시로 들어가는 일정이니 짐은 잠시 일행에게 맡겨둔다. 신혼부부는 오후 비행기로 아테네로 떠나는 일정이고 남자여행자는 어차피 나랑 같은 배다. 저녁 무렵 다시 만나기로 하고 델로스행 배를 탄다. 델로스는 미코노스에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섬인데 섬 전체가 그리스 시대의 유적지다. 이곳 역시 지금은 흔적만 남은 돌더미들이 유적의 대부분이긴 하지만 섬전체가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어 한적한 맛이 있다. 유적지 사이로 이미 시들어버린 나무들 사이를 걷는 일은 상쾌하다. 이천년도 더 된 한때는 어느 신전의 기둥이었을 돌더미에 앉아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온다.


델로스섬의 사자상


델로스 유적

 

약속시간까지 조금 남은 시간에 결심을 깨고 다시 버스를 타고 비치 한군데를 얼쩡대다 온다. 파라다이스비치.. 어차피 이곳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한 터다. 미코노스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이곳은 산토리니의 비치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저녁무렵이어서였을까.. 바다가의 레스토랑에서는 이미 커질대로 커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젊은 친구들로 가득하다. 으으.. 이것도 적응이 안된다. 비치 한쪽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다가 약속시간이 가까워서야 주차장쪽으로 가본다. 다행히 일행은 늦지 앟게 도착한다. 신혼부부를 배웅하고 차를 반납하고도 배시간까지는 한찬이나 시간이 남았다. 배는 어차피 11시나 되어서야 떠난다. 저녁을 먹고 와인을 홀짝이며 시간을 죽인다. 다행히 일행이 있어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사모스행 배를 기다리는 항구에서 일군의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공무원 연수단이다.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다니면서 이런 형태의 연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베트남에서, 인도에서. 이스탄불에서 만나고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이 가장 시끄럽다^^. 여행 도중 가방을 세 개나 잃어버렸고 아테네에서는 택시 바가지를 몹시도 썼다며 우린 왜 이러냐는데도 즐거워 보인다. 어차피 터키까지는 동행이다. 같이 배를 탄다. 배한구석에 침낭을 깔고 자다보니 어느새 사모스섬이다. 다행히 사모스섬에서 두어시간을 기다리면 터키로 가는 배가 있다. 일행과 사모스섬으로 가는 배표를 끊어가지고 돌아와보니 이분들 배를 얼마에 끊었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보다 2유로가 더 비싸다. 어디서? 우리는 왼쪽 여행사에서..그쪽은 오른쪽 여행사에서.. 일행이 일곱명이니 무려 14유로 바가지다. 환불하겠다고 달려간 사람들은 결국 그냥 돌아온다. 어디서나 내 손을 떠난 돈은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쿠사다시로 향하는 배안에서 왼쪽이 미코노스에서 만난 친구다.

 

결국 쿠사다시행 배를 타고 두시간을 더 가서야 터키에 도착한다. 다시 터키로 온 것이다. 바로 에페스로 떠나는 연수단 일행과 헤어지고 일정이 빠듯해 셀축으로 가지 못하고 파묵칼레를 거쳐 그날 밤차로 카파도키아까지 이동하겠다는 일행과 같이 터미널까지 간다. 나야 셀축까지는 돌무쉬를 타면 되는 가까운 거리니 파묵칼레 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잠시 기다려준다. 이 친구 빠듯한 일정이 몹시 아쉬운 모양이다. 나야 있는 건 시간뿐이니 이런 친구들이 좋겠다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너는 가면 월급 나오잖아? 하긴 나도 짧은 휴가를 나올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긴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지금 결국 자기가 갖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왠일인지 이제 조금씩 돌아갈 걱정이 된다. 터키 남부를 거쳐 서서히 내려가면 이집트까지 가는데 한달, 이집트에서 한달, 두달이면 예정했던 루트는 끝이 난다. 그다음엔 어디로 가지.. 유럽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돌아가고 싶은데 날씨가 너무 춥고.. 아프리카로 내려가자니 썩 내키지가 않고, 남미로 튀자니 나중에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천천히 생각해보지 뭐.. 지금 답 안나오는 건 결국 답이 안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생각을 미뤄둔다. 어쨌든 두달 뒤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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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못 갈뻔하다

눈을 떠보니 6시가 훌쩍 지나 있다. 7시 밴데 아무래도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정신없이 짐을 싸서 민박집을 빠져 나온다, 택시를 탈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막힐 것 같다. 전절역으로 달린다. 아.. 이 배낭을 메고 달리다니.. 바쁘니까 별 게 다 가능해진다^^. 다행히 전철은 금방 와 준다. 남아있는 역수는 7개쯤 된다. 2를 곱해본다. 10분 정도 남는다. 하지만 지하철 역 사이가 2분이라는 건 서울 지하철 얘기지 아테네 지하철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지하철 공사에 매뉴얼이라는 게 있는지 이곳 지하철도 대략 2분 정도마다 역이 있다. 그러면 난관은 하나가 남는다. 역에서 항구 사이의 거리...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보면 남아 있는 10분은 배를 타기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시간이다. 아.. 늦어서 못 타도 환불이 될라나.. 고민하며 지하철역을 빠져 나간다. 다행히 길하나 건너편에 내가 타야 할 배가 보인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군,., 무단 횡단까지 감행해 배에 올라타니 배가 떠난다.

 

어차피 가장 싼 배표는 좌석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갑판 아무데서나 앉아서 가야 하니 그나마 바다가 잘 보이면서 바람을 막아주는 곧이 가장 좋은 자리인 셈이다. 배의 갑판은 이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그나마 혼자라서 좋은 점은 이런 경우 슬며시 끼어 앉기 좋다는 건데 다행히 구석에 끼어들만한 공간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비로소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온통 검푸른 바다다. 이곳이 지중해란 말이지.. 배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를 항구를 벗어나고 있다. 지금 가고 있는 산토리니까지는 대략 6시간이 걸린단다. 산토리니까지는 밤배를 많이 이용한다는데-사실 밤배를 타면 시간도 절약되는데다 하루밤 숙박비도 아낄 수 있다- 이제 밤에 이동하면 어차피 한나절은 쉬어야 하니 그냥 바다나 보고 가자하는 생각이다. 배는 근처에 섬들을 하나씩 들러가며 천천히 산토리니를 향해 나간다.


 산토리니 가는 페리


페리에서 본 산토리니

 

멀리서 산토리니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토리니는 화산섬이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뭐,가까이서 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불모의 섬이다. 그나마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들만 눈이 내린 것 같이 하얀 경계를 긋고 있다. 배가 섬에 닿자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과 숙소에서 나온 삐끼들로 한바탕 북새통이 일어난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도로를 타고 10분 이상을 올라가야 하니 대략 이곳에서 픽업 나온 숙소 주인과 합의를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보는 방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뭐 방은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데다 가격도 성수기를 지나서인지 생각보다는 잘 깍이는데 실제 모습이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그저 운에 맡기고 차에 올라탄다. 도착한 숙소의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방안에 취사시설까지 갖춰져 있는데다 베란다에선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방값을 치르고 나서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다운타운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음 여기가 어디지?

 

산토리니의 중심 마을은 피라 마을이다. 그 달력에서 본 하얀 골목길들이 바닷가를 향해 쭈욱 나 있는 바로 거기 말이다. 알고보니 숙소는 그 마을에서 2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대략 이삼십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싸고 좋더라니.. 그래도 밤늦게만 안다니면 그냥 걸어다닐 만한 거리니 하루이틀 머물기에 그리 나쁠 건 없다 싶다. 가지고 온 쌀로 밥을 해 먹고 피라 마을쪽으로 슬슬 걸어가 본다. 어느덧 해가 질 무렵이다. 산토리니의 일몰포인트는 섬북쪽에 있는 이아마을이지만 오늘은 그냥 피라에서 일몰을 본다. 해는 주변의 있는 흰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 너머로 사라진다. 바다를 따라 난 하얀 집들에 온통 불이 켜진다. 사실 이 집들은 거의 호텔이거나 음식점 아니면 가게들이다. 이집들을 사이로 둥글고 파란 지붕의 그리스 교회들이 보인다. 이거였나..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게.. 뭐 아무려면 어떠랴.. 어쨌든 여기는 산토리니인 것이다.


피라마을의 전경


피라마을의 골목길

 

이곳 산토리니에도 유적이 있단다. 가이드북에는 가는 방법이 나와 있다. 가볼까 망설이다 그만 둔다. 내가 무슨 고고학자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유적은 뭔 유적.. 그냥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먼저 가본 곳은 일명 블랙비치라 불리는 까마리 해변이다. 이 비치는 모래가 아니라 검은 화산재로 이루어져 붙은 이름이란다. 해변 가득 온통 비치파라솔이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바다라는 게 물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더구나 일행이 없는 경우엔 더더욱 할 일이 없는 곳이다. 바다에 잠시 앉아 잇다 백사장 아니 흑사장을 끝에서 끝까지 걷고 나니 아.. 또 할일이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레드비치로 옮긴다. 이곳은 무슨 연유인지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비치다. 여기서도 똑같은 짓을 해본다. 바다에 앉았다가 끝에서 끝까지 걸어주고.. 그나마 이곳은 뒤가 절벽으로 이루어져 그늘 한 점이 없다. 에구.. 돌아가자. 내 다시는 일행없이 바닷가에 오나봐라 하는 쓸데없는 다짐을 또 해 본다.


블랙비치


레드비치

 

저녁에는 이아마을로 향한다. 산토리니 최고의 일몰 지점이란다. 이아마을로 향하는 버스는 이미 발디딜틈도 없다. 매일 지는 해보려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쯧쯧.. 해봐야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마을 끝 지점에 풍차있는 곳 까지 가랬지? 뭐 여기에 풍차가 있다고? 가보니 그 풍차란 건 어느 호텔의 인테리어용이다. 이아마을도 피라마을과 비슷하다. 온통 하얀 건물들 사이로 숙소와 음식점, 가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해지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다. 수평너머 부근엔 이미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결국 해는 조금 붉어지는가 싶더니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하나들 일어서기 시작한다. 다시 만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아마을의 일몰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해 먹는다. 이곳 산토리니에선 밥을 사먹은 기억이 없다. 아침저녁으론 밥을 해먹었고 나갈 땐 샌드위치를 도시락 삼아 들고 나갔으니 사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인데.. 여기까지 와서 웬 궁상인가 싶다가도 음식점 기격표를 보면 잘했다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차피 미코노스에서는 밥해먹기가 쉽지 않다니 어디 한국인 일행이나 만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우아라도 떨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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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신들의 도시에 가다

버스는 새벽 무렵 아테네의 어느 터미널에 도착한다. 이렇게 새벽이나 늦은 시간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데 별 도리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시간엔 대부분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 택시로 숙소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가이드북에는 아테네의 택시는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으니 어지간하면 타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그냥 지하철이 다닐 시간까지 터미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이럴 때면 한 번씩 내가 뭐 하러 이런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뭐하러 사서 고생이냐 말이냐.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러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날이 얼핏 밝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지하철을 타고 여행자 거리가 있다는 신따그마 광장을 찾아간다.

 

이곳에서는 어떤 여행자가 추천해준 한국인 민박에 묵을 생각이었다. 가격이 하루 20유로로 싸진 않지만 부엌 사용도 가능하고 인터넷도 무료인데다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 왈, 한국인 민박이 으레 그렇듯 건물의 한층 정도를 세내어 운영하는 곳이라 간판도 없고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물어 보라며 식당의 이름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동서남북의 가늠도 안되는 새벽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 식당을 찾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라.. 식당문이 닫혀 있다. 이른 시간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은 일요일, 식당이 쉬는 날인 것이다. 앞에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 있긴 한데 아테네의 전화기는 죄다 카드식이라 카드 하나 구입하는데도 사오천원이 든다. 전화 한 통 하자고 이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간판은 없더라도 조그만 표시는 있겠지 싶어 근처를 두어바퀴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한시간 가량을 헤매다 포기하고 그냥 유스호스텔로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유스호스텔 가격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오히려 민박집 값이 더 싸다. 유스호스텔은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다시 짐을 맡겨 놓고 다시 한 바퀴를 둘러보다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다. 다행히 그 친구들이 그 숙소에 묵고 있단다. 아직 내 운이 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차에서 내린지 네시간 만에 한국인 민박집에 짐을 푼다. 한숨자고 일어나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역시 물가가 만만치 않다. 빅맥세트가 5.9유료, 거의 8천원 돈이다. 그래도 서유럽 돌고 온 친구들은 이곳이 싸다고 생각한다니 날씨도 날씨지만 유럽 올라가는 건 재고해봐야 봐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첫날은 그저 시내만 어슬렁거리다 박물관만 잠시 다녀온다. 어치피 아테네의 유적들을 보는 데는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니 그냥 내일 하루 몰아서 다녀볼 생각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규머나 크기가 만만치 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거의 모든 유물이 부조거나 조각이라는 점이긴 하지만 돌아보는데 지루하지는 않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여행사에서 산토리니와 미코노스로 가는 배편을 미리 예약해 둔다. 다행히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배표는 쉽게 구해진다. 숙소에서 몇몇 한국 친구들을 만난다. 이때까지 보던 여행자들과 다른 점이라면 여행 가방이 배낭이 아니라 캐리어라는 점일텐데 이곳을 여행하는 친구들은 주로 유럽에서 내려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녁에 한 친구의 생일을 핑계로 술자리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여럿이 어울려 술을 마셔본 것도 한참이나 전의 일인 것 같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각 아프로디테를 유혹하는 헤파이토스라나 뭐라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음날 아크로폴리스를 찾아간다. 아크로폴리스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언덕 위에 있다. 그리스 시대 시민-이라야 귀족 남자들만 지칭하는 말이긴 하지만-들의 광장이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여전히 보수 공사가 한창인데다 떼거지로 몰려드는 단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나마 신전의 형태라도 갖춘 건 원형극장과 파르테논 신전 정도다. 잠시 둘러보다 고대 아고라터로 내려 온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자리한 이곳은 예전의 시장터로 교역과 사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뭐 소크라테스도 이곳에서 강연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더미로 된 잔해들만 남아 있다. 이런 돌더미들로 그때는 상상하기엔 내 상상력은 너무 부족하고 괜히 그래픽으로 유적지가 눈앞에서 복원되던 역사스페셜만 아쉬워진다. 


아크로폴리스의 디오니소스극장, 원형극장이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고대아고라 터,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오후에는 수니온 곶을 찾아간다. 포세이돈 신전이 있었던 바닷가라는데 신전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수니온 곶 근처 바다가 볼만하다고 해서 나선 참이다. 포세이돈신전 역시 남아있는 기둥 몇 개가 전부다. 게다가 바닷가 언덕에 세워진 이 신전엔 바람이 심하게 분다. 일몰도 볼만하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일몰시간까지 기다리기에 바람은 너무 심하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두어시간 가량 머물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빨갛게 해가 지는 것이 보인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제의 한국 친구들이 백숙을 해 먹었다며 에이.. 좀만 빨리 오시지.. 한다. 밥을 해서 먹으려고 하니 백숙 국물이 좀 남았다며 같이 먹으란다. 제법 건더기도 있다^^ . 그리스 섬들은 물가가 많이 비싸다기에 저녁을 먹고 슈퍼에 들러 쌀이랑 몇가지 물건들을 산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다시 무거워진 가방을 대충 싸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포세이돈 신전


포세이돈 신전에서 바라본 수니온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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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드디어 이스탄불이다

드디어 밤차를 타고 아침 무렵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터키에 들어온 지 이주일 가까이 됐건만 왠지 이제야 터키라는 곳에 발을 들인 것 같다. 터미널에서 트램을 타고-트램이 뭐냐고 물으신 필리씨를 떠올리며, 전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종의 지상철이지요- 여행자 거리인 술탄아흐멧 지역을 찾아간다. 트램에서 내리니 언젠가 사진에서 본 푸른 지붕의 모스크가 아침 햇살 속에 서 있다.  내가 이스탄불에 오긴 온 모양이다. 대략 방향을 잡아 한국인 숙소를 찾아간다. 터키만 해도 한국인 여행자가 넘치고 넘쳐 굳이 안 접해도 되는 여러 정보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뭐 이곳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긴 하나 제대로 된 이스탄불 정보가 워낙 없는 탓에 그냥 이곳을 목적지로 정한다.

 

숙소는 말로 듣던 것 보다 깨끗하다. 뭐 이 정도면 쾌적하네.. 우리가 그새 너무 더러운 데로만 다녔나? 하는 걸 보면 친구도 비슷한 느낌인 모양이다. 성수기 한때는 사람들도 붐볐을 이곳도 이제 막 여름방학이 지나서인지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있는 여행자들도 이미 터키를 다 돌고 이삼일 내에 출국 일정이 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출국하는 여행자에게서 가이드북을 하나 얻는다. 지중해라는 책인데 좀 허접하긴 해도 터키 이외에도 그리스,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심지어 레바논, 이스라엘까지 들어 있는 책이니 일일이 론리를 구입할 수도 없어 어쩌나 싶었던 나머지 중동 지역이 대략 해결이 된 셈이다. 그 외에도 떠나는 여행자들은 어머 일년이 넘으셨어요? 하면서 벼라별 물건들을 다 주고 간다. 쓰다남은 샴푸니 치약은 물론이고 고추장이며 먹다 남은 영양제까지 나온다. 그 중에는 겹치는 물건도 있지만 일단 받아둔다. 내게 필요하지 않으면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면된다. 여튼 단기 출국여행자가 많은 도시-방콕이나 델리 같은데-에서는 느닷없는 물건들이 많이 생긴다.

 

이스탄불의 상징 불루모스크 여기는 무료라 들어갔고


이스탄불의 또다른 상징 아야소피아 여기는 유료라 안들어갔다.

 

이스탄불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아니 이스탄불의 볼거리를 거의 한곳에 모여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구시가의 블루모스크니 아야소피아, 몇 개의 궁전들을 거의 다닥다닥 붙어 있다시피 하고 신시가지의 중심지인 탁심 광장도 구시가지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니 그저 숙소를 중심에 두고 걸어서 움직이면 된다. 그나마 모든 관광지를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다 학생 할인도 잘 안되니 취사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뭐 우리의 초절약여행자의 경우 입장료가 있는 곳은 거의 아무데도 안 들어가신다^^- 전문가가 아닌 바에는 이삼일이면 거의 둘러볼 수 있다. 나 역시 하루에 한두군데씩 다닌 게 전부인데도 사나흘이 지나고 나니 더 이상 할일이 없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간다는 그랜드 바자르니 이집션 바자르 같은 데는 이제 더 이상 흥미도 없다. 숙소가 편하면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그저 주변이나 산책하며 며칠 보내도 좋으련만 도미토리는 또 이게 쉽지가 않다. 

 


강 너머 보이는 게 갈라타 타워.. 여기도 유료라 안 들어갔다


흥미가 없다면서도 갔다. 이집션 바자르의 향신료들

 

결국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른다는 보스포러스해협-요새 대한항공 광고가 이거라면서?, 여튼 광고에 나온 곳은 다 가보는구만^^-에서 배까지 타고 나니 우습게도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그사이 초절약여행자 친구는 먼저 셀축으로 떠나고 몇 명의 여행자들의 얼굴이 바뀐다. 슬슬 떠나도 될 것 같은데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보는 한국TV-KBS월드가 나온다-보는 재미로 며칠을 더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그리스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아본다. 이스탄불에서 아테네로 가는 국제 버스가 있긴 한데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다 20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갈까말까 망설이다 그냥 표를 끊고 아테네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눈다는 보스포러스 해협 이쪽이 유럽인지 아시안지 모르겠다


고등어케밥가게. 여튼 생선은 밥하고 먹어야 한다니.. 빵에 생선 싸먹는 건 비추!!!

 

내가 그리스에 굳이 가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일차적으론 그놈의 여기까지 와서..가 제일 큰 원인일 것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물가가 아무리 비싸도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값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지 뭐 하는 핑계까지 대고 말이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가장 주요한 원인은 아무래도 아직 버리지 못한 환상과 허영이 더 큰 게 아닌가 싶다. 그 광고에 나오는 달력 같은 섬들에 대한 환상과 신화 속의 그리스 신전을 보고 직접 왔다는 허영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본다. 에이.. 환상이면 어떻고 허영이면 어떠라.. 사실 거의 모든 여행이란 게 많은 부분 환상과 허영에 기초하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아직까지 그런 게 남아있다는 거에 대해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하며 생각을 고쳐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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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란볼루-아마스라> 진짜 흑해에 오다

샤프란볼루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대의 가옥이 남아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고 한참 한국여행자가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봐야 아마시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지 싶어 갈까말까 망설이다 흑해를 한 번 더 보러 아마스라에 가는 길에 들르기로 한다. 샤프란볼루는 아마스라와 두시간 거리에 있다. 샤프란볼루 역시 아마시아에서는 연결되는 버스가 없으니 중간 도시에서 갈아타고 가야 한다. 새벽쯤 중간 도시에 도착해 터미널에서 두어시간 기다렸다 버스를 타면 되겠다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버스는 터미널이 아닌 외곽에서 우리를 내려 준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버스가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에 바깥은 아무 것도 없는 도로다. 게다가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못 내린다고 버틴다. 이번엔 나도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아니 새벽 3시에 이런데다 내려주면 어쩌란 말이냐.. 대부분 테헤란으로 가는 승객들은 별다른 불평없이 우리를 지켜본다

 

결국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내려라 못내린다 실갱이 끝에 버스가 다시 달린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다시 차가 선다. 안내군이 빗속으로 쪼르르 뛰어가더니 30분 뒤에 샤프란볼루행 버스가 이곳으로 들어오니 갈아타면 된단다. 휴게소 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짐을 꺼낸다. 진작 이러면 좋았을 텐데.. 자다가 깨서 불평없이 기다려준 승객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비내리는 휴게소에서 차이를 마시며 기다리니 샤프란볼루행 버스가 온다. 이번에는 차비 실랑이가 시작된다. 이제 터키 물가가 대략 감이 잡히는데 특히 차비의 경우 두시간 가량을 간다면 10리라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휴게소에서 건진 두인간이 무슨 복권으로라도 보였는지 기사아저씨 자기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 뻔한 차비를 일인당 15리라씩 달란다. 정가는 대략 5리라 정도일 것 같다. 학생증을 꺼내고 깍아달아 안된다 실랑이 끝에 10리라로 합의를 본다. 아.. 여행하기 정말 힘들다^^   

 

새벽에 내린 샤프란볼루는 춥다.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까지 돌무쉬를 타야 하는데 차가 아직 다닐 시간이 아니다. 건물들은 대부분 잠겨 있어 ATM부스에 들어가 본다. 여전히 춥다. 마침 열려있는 건물에 들어가 보지만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걷는게 낫지 싶어 구시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차가 와서 선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숙소 주인아저씨다. 새벽에 터미널에 픽업하러 나왔다가 손님이라도 건져볼까 싶어 선 것이다. 냉큼 올라탄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니 한낮이다.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 오래된 골목길들 사이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미시아의 골목을 봤기 때문일까 우산을 쓰고 돌아본 동네는 또 그만그만하다. 그저 비가 내리는 마을만 차분히 빗속에 가라앉아 있다. 하루만 묵고 아마스라로 떠나기로 한다.

 

샤프란볼루의 골목길


기념품 가게


성터에서 내려다 본 마을

 

샤프란볼루에서 돌무쉬를 타고 넘어간 아마스라는 제대로 된 바다를 보여 준다. 이곳에서 한 일 역시 골목길에 숙소를 잡아 놓고 구서구석 돌아도 두시간이 채 안 걸리는 동네를 돌아다닌 것이 전부다. 그래도 나름 비치도 있고 방파제도 오래된 성도 있고 다리도 있고 언덕도 있다. 결국 옮겨다며봐야 거기서 거기인 바다를 보러 이곳저곳을 다닌다. 저녁에는 그래도 바다에 왔는데 하면서 생선구이를 먹는다. 생선은 거의 옥돔 수준인데 아.. 와사비장도.. 밥도 없다. 생선을 바게뜨빵이랑 같이 먹어 본 적이 있는가.. 으.. 생각만해도 우울하다^^. 술 못 마신다는 친구를 앞에 두고 터키 전통술을 마신다. 라키라는 이놈의 술은 투명하다가 물을 부으면 우윳빛으로 변하는 데 맛이 꼭 어린이감기약 코리투살같다. 윽.. 그래도 시킨 술이니 한병을 다 먹어 준다. 술이 들어가서인가.. 간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저녁을 보낸다. 이상하게도 아직 터키로 왔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스탄불에 가기 전까지는 터키를 유예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마 한국인 여행자들이 없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스탄불로 간다. 아시아의 끝으로 가기 때문일까..아직 몇 달이 남았는데도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 끝을 내야 할지도 막막한데 시간만 끊임없이 흐르는 것 같다.


섬은 로마시대에 만들었다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아마스라

 


일행이 있으니 가끔은 내 사진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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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시아> 터키 물가를 실감하다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녘에 아마시아 터미널에 우리를 떨궈 준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터미널까지 왔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허접한 한국가이드북에는 이곳이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대략 어느 방향으로 가야 숙소 있는 골목이 나오는지 조차 알 수 가 없다. 그저 정류장에 가서 시내 가냐고 물어본 뒤 버스를 탄다. 다행히 아마시아는 그리 넓지 않은 곳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가 나오고 여행안내소 표시가 보인다. 가방을 챙겨 내린다. 그러나 여행안내소는 그 커다란 팻말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결국 배낭을 메고 30분가량을 헤매다 내가 가방을 지키기로 하고 그 친구 혼자 여행 안내소를 찾아 나선다. 내가 차이를 얻어 마시면서 하맘(목욕탕) 아저씨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에 30분만에 돌아 온 그 친구 왈 여행안내소를 찾긴 했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단다.

 

결국 하맘아저씨가 가르쳐 준 싼 숙소가 모여 있다는 골목길 쪽으로 걸어가 본다. 도무지 숙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길에 하나둘 숙소가 보인다. 헉 그런데 숙소비가 만만치 않다. 이건 초절약여행자 기준이 아니라 날라리 여행자 기준으로도 감당이 안된다. 도미토리는 아예 없고 더블룸이 기본 80리라-대략 5만원이 넘는다-다. 그냥 나오면 60리라-대략 4만원 가량- 까지는 내려가지만 이것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골목에 있는 십여군데의 숙소를 다 돌아봤지만 가격은 대략 거기서 거기다. 가장 싼 숙소가 35리라까지 깍이긴 했지만 가격 대비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마지막에 50리라짜리 펜션을 발견한다. 방이 4개 있는 주택인데 다른 손님이 없어 거의 단독으로 쓸 수 있는데다 전망도 좋고 부엌 사용도 가능하다. 어차피 죄 비싼 거라면 여기서 묵는 것도 좋을 듯싶은데 아.. 이 초절약여행자를 어떻게 꼬시나.. 하는 맘이 든다. 슬쩍 말을 건네보니 좋긴 한데 그냥 35리라짜리에 묵잖다.

 

15리라 차이라면 두사람이 7-8리라 정도 더 부담하는 셈인데 이 숙소의 경우 부엌이 있으니 밥을 해먹으면 그 정도는 세이브가 될 거라는 말로 다시 한 번 꼬셔본다. 그 말에 넘어간건지 아님 자기도 그 방이 맘에 들었는지 이번에는 그 친구가 양보한다. 결국 50리라라는 거금을 주고 그 숙소에 묵기로 한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다는 동부가 이 정도면 서부는 어떻게 다니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아마시아는 숙소도, 음식값도 만만치가 않다. 하긴 그래봐야 한국 물가 정도인데 한국에 돌아가면 그 물가는 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그것도 걱정이긴 하다^^.  여튼 여전히 가늠이 잘 서는 터키 물가에 잠시 당황해하며 아마시아에 도착한지 몇시간 만에 숙소에 짐을 푼다.

 

저 창문 중 하나가 우리 숙소다


나중에 알고 보니 4개의 방마다 색깔이 다 다르다. 우리는 빨간방에 묵었다^^

 

숙소가 편하니 어디 나가기보다는 숙소에서 뒹구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긴 아마시아란 곳이 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다녀야 하는 곳도 아니다. 근처 슈퍼에서 쌀이며 야채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냥 터키사람들처럼 오이랑 토마토를 썰어 넣고 레몬즙과 소금만 살짝 뿌려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이거 생각보다 간단하고 맛있긴 한데 한국에선 레몬이 너무 비싸 가격대비 효과가 반감될 것 같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쏘세지랑 야채 그리고 케첩을 볶아서 밥 위에 얹어먹는 쏘야 덮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냥 밥이란 야채를 볶아서 볶음밥을 해 먹기도 한다. 밥을 할 경우엔 누룽지 끓여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둘다 장기여행자인 탓에 고추장이니 라면스프 같은 거야 남아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뒤져보면 고춧가루 정도는 파는 곳도 있으니 이걸로 오이지를 무쳐 먹기도 한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걸로 하루를 보내다 심심해지면 그저 골목길을 걷거나 강 주변을 산책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그도 저도 심심해지면 외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그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도 한다. 사실 이제 무언가를 보는 거 보다 이런 게 더 맘이 편한 것도 사실이다. 방값이 조금만 싸면 한 며칠 더 뒹굴거리면 좋을 도시지만 며칠이나 뒹굴거리기엔 방값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결국 사흘을 머물고 아쉬운 마음으로 도시를 떠난다. 


마을에서 만난 아주머니들, 반상회라도 하시는 모양이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아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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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브존> 트라브존은 항구다.. 그저그런

트라브존은 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일단 한동안 못 본 바다나 보자는 생각으로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흑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살짝 들뜨기까지 한다. 도우베아짓에서는 트라브존까지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중간 도시인 엘주름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그런데 이 버스.. 엘주름 터미널까지 들어가지 않고 엘주름 외곽에 슬쩍 우리를 떨궈 주고 가려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터키는 회사별로 버스가 운행되는 시스템이라 경쟁이 심해 버스비가 깍이기도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는 욕심에 실제로 버스가 그 도시를 가지 않더라도 손님을 태운 뒤 그 도시 외곽에 떨궈 주고 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시내에서 묵든 아님 차를 갈아타야 하든간에 다시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 시내로 들어가야 하니 이용자의 경우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 된다.

 

에구.. 내려서 터미널까지 가야 하나 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옆의 동행이 내리지 말라고 눈짓이다. 오잉 그러면? 했더니 이 친구 기사인지 안내군인지를 잡고 차근차근 따지고 있다. 우리는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곳은 터미널이 아니다.. 상대 아저씨 처음에는 이곳에서 택시 타라더니 그럴 수 없다고 버티자 이번에는 버스를 타라며 타는 위치와 번호까지 가르쳐 준다. 그럼 이만 버스를 타야 하나..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기니 동행 왈, 버스비는 니네가 내시란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한데 쟤들이 그렇게 까지 해주겠어 하는 생각에 그냥 가려고 했던 나는 속으로는 조금 황당해진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서 몇분간 실랑이가 계속되다가 결국 상대아저씨가 버스기사와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결국 버스를 그냥 타고 가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우와.. 새삼스레 동행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본다. 이 인간 만만치 않군..음!!!

 

사실 이 친구가 초절약 여행자라는 사실은 파키스탄에서 이미 눈치를 채긴 했지만 실체를 보니 살짝 긴장이 된다. 나야 워낙 물건이든 숙박비든 잘 못 깍는데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그나마도 귀찮아 어지간하면 좋아좋아하고 다니는 편인데 이 일을 어쩌나..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나보고 깍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옆에만 있으면 되는데 덕 좀 보겠다 싶기도 한다. 게다가 여기는 내가 다닌 나라들 중 가장 물가가 비싼 터키가 아닌가 말이다. -조금만 깍아도 금액이 만만치 않다^^- 덕분에 트라브존에 있는 여행자 숙소란 숙소는 거의 다돌고 어느 허름한 호텔 5층에 있는-당근 걸어 올라가야 한다ㅠㅠ- 방을 잡는다. 아.. 물론 이곳이 트라브존에서 가장 싸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간다는 모숙소에 비하면 거의 반값이다. 앞방 옆방에 돈벌러 온 러시아 언니들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싼맛에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수멜라 수도원, 가파른 절벽에 깍아지른 듯 서 있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온통공사중이다.


수도원 내의 벽화, 대부분 훼손되긴 했지만 일부는 그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워낙 바지런히 움직이는 그 친구를 따라잡기는 만만치 않아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트라브존 주변을 다니다가 인근에 있는 수멜라 수도원은 함께 가기로 한다. 뭐 당연히 대중 교통수단은 없고 여행사에서 왕복 교통편을 우리 돈으로 만원쯤에 제공하는 상품이 있다. 어차피 대중 교통편도 없는데 저거나 타고 갈까요? 했더니 너무 비싸단다. 뭐 비싸기는 하지.. 그러면서 인근 마을까지 돌무쉬를 타고 가서 히치를 하잖다. 그러죠 뭐.. 결국 돌무쉬를 타고 인근 마을까지 가서 히치를 시도한다. 생각보다는 차가 잘 선다. 결국 두 번에 걸쳐 차를 갈아타고 다시 수멜라 수도원까지 간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히치다. 이번에는 운이 좋다. 두 번째 얻어 탄 차의 부부가 점심이나 같이 먹고 가잖다. 결국 이 부부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그 부인은 내게 모스크갈 때 쓰라며 쓰고 있던 스카프까지 벗어 준다. 이 사람들은 대체 낯선 외국인들에게 왜 이리 친절한 것일까.. 혹시 터키에서 뭔가 불쾌한 일이 생기더라도 이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수멜라 수도원을 제외하고는 트라브존에서는 시내 주변만 돌아다닌다. 사실 바다를 보겠다고 그것도 흑해를 보겠다고 온 곳이긴 하지만 이곳은 그저 항구 도시다. 물론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많은 부분이 항구로 가로막혀 있고 그나마 항구가 아닌 곳도 온통 방파제로 가로 막혀 있다. 인천 연안부두를 보는 것 같다. 게다가 바다 근처라 그런지 갑자기 높아진 습도탓에 더위도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결국 흑해는 아마스라에나 가서 다시 봐야 될 것 같다. 담은 어디로 가나 한참을 고민하다 아마시아로 떠난다. 바로 샤프란볼루까지 가기엔 길이 너무 멀어 그저 골목이 이쁘다는 말만 듣고 가이드북에도 없는 도시를 행선지로 정한 것이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인데 다 비슷할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마시아로 가는 밤차를 탄다. 


트라브존 시내에서 바라본 바다.. 항구가 보인다


온통 방파제로 막힌 바다에서도 해는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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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베아짓> 다시 동행이 생기다

이란 국경을 넘어 막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고 돌아서니 주변의 사람들이 스카프를 벗으라고 손짓이다. 그러면서 여기는 터키란다. 이란을 벗어나면 당장 스카프부터 벗어야지 했는데 그새 깜빡한 것이다. 스카프를 벗고 나니 시야도 넓어지고 머리 부근이 시원해지는 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택시 타라는 기사들의 손짓을 뿌리치고 국경을 벗어나니 터키의 국경도시인 도우베아짓까지 가는 돌무쉬-대충 봉고 수준의 버스다-가 기다리고 있다. 국경까지 얼마냐고 했더니 3리라-터키는 2005년에 화폐 개혁을 단행해 0을 6개나 떼버린 새 화폐를 쓴다. 현재 1리라는 우리 돈으로 700원이 조금 안 된다-나 한다. 터키가 내가 다녔던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비싼 편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란과 비교하면 거의 스무배 가까운 가격이다. 돈 단위가 적어 달랑 동전 3개를 내니 차비가 해결되긴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적은 돈은 아니니 터키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조금 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터키는 동부가 서부보다는 물가가 싼 편이라 그런지 숙소는 생각보다 저렴하다. 일주일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으로 북적거렸다는 숙소에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하지만 한국인 전용 게스트북이 있어 이곳 도우베아짓 뿐 아니라 터키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누군가가 남겨두고 간 터키 한글판 가이드북도 있어 가지고 있던 이란 가이드북과 바꿔 둔다. 이곳 도우베아짓은 조그마한 도시라 딱히 볼만한 것도 없으니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에 누워 가이드북과 게스트북을 번갈아 뒤적이며 터키 루트를 짠다. 생소한 지명이며 용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즈음이 되자 간신히 터키 일정이 그려진다. 루트를 짜고 나니 새로운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게스트북의 정보에서 이스탄불에서 그리스의 아테네와 섬들을 다녀 와 터키를 계속 여행하는 새로운 루트를 알게 되었으니 그리스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지도 않던 고민이 생긴 것이다. 가자니 물가가 만만치 않고 빼자니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일단 이스탄불 가는 사이에 더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근처 카페에서 바라본 이삭파샤궁전


노아의 방주터. 왼쪽에 있는 배 모양이 방주의 흔적이란다. 믿거나말거나

 

도우베아짓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삭파샤 궁전과 노아의 방주터에 다녀 온 걸 제외하고는 그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음식도 이란보다는 다양한데다 왠지 모를 편안함에 그저 좀 쉬었다 가자하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는 반팔이나 치마를 입은 여자들도 보이고 남자들의 치근덕거림도 이란보다는 덜한 편이니 확실히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저 길거리만 걸어 다녀도 차를 마시고 가라며 불러들이는데 터키에서는 남이 주는 건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다른 여행자들의 조언이 생각나긴 하지만 에이.. 그냥 동네 가겐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싶어 또 부르는 데로 들어가 수다를 떨다 나온다. 하루는 어떤 아저씨 한분이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차를 마시다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마침 눈에 익은 일본 여행자가 보이길래 동석을 한다. 어렵게 외운 터키어 인사를 건넸더니 대뜸 자기는 쿠르드족이라며 쿠르드말로 된 인사를 가르쳐준다. 이런... 완전 실수다!!

 

거의 모든 터키 동부 지역이 그렇지만 이곳도 민족적으로는 투르크족 그러니까 터키 민족이 아니라 쿠르드족이 사는 곳이다. 쿠르드족이라는 이름은 주로 이라크 전쟁 때 주워들은 쿠르드 반군 정도의 명칭이 지식의 전부이긴 하지만 한때는 이들도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저항군이 존재했었고 대규모 진압이 이루어진 현재도 소규모의 반군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한다. 최근 잇달아 벌어진 터키 내의 소규모 테러도 이들이 저지른 일이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쿠르드 사람들은 그저 유쾌하고 친절하다. 나야 인종적인 구별도 되지 않으려니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그 언어조차 구별이 되지 않으니 그저 본인이 쿠르드족이라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는 게 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튼 이 아저씨 고맙게도 저녁에 도우베아짓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저녁까지 사 주신다.


쿠르드족 마을에서 만난 아이


식당에서.. 내 오른쪽 친구가 일본인 처자다. 이것도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러다가 숙소에서 낯익은 한국인을 하나 만난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만난 1년 6개월 되었다던 남자 여행자다. 파키스탄을 한달쯤 더 돌고 온다더니 벌써 터키로 들어 온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했더니 지금 파키스탄은 우기로 접어들었는지 비가 많이 내려 파키스탄 남부는 포기하고 그냥 훈자만 들렀다 이란을 거쳐 바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친구도 터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다. 어차피 비슷한 루트에다 서로 아는 것도 없으니 이스탄불까지는 동행을 하기로 한다. 동행이 생겼으니 며칠 느려졌던 일정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대충 터키 북부의 도시 몇 개를 찍고 이스탄불로 가기로 하고 다음 도시인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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