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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공짜밥에 늘어지다

 

룸비니는 네팔과 인도 국경이 근접한 곳에 있는 불교 성지로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다. 어..부처님은 인도에서 태어나신 거 아닌가 싶은데 여튼 룸비니는 부처님 태어날 당시에야 인도땅이었는지 모르나 현재는 엄연히 네팔 땅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베틀레헴이나 메카같은 순례자들로 가득한 땅이 될 법도 한데 불교도들은 덜 극성스러운지 아님 경전에 평생에 한 번은 거길 꼭 가야 한다든지 뭐 그런 말이 없어서인지 그저 한적한 시골 동네같은 분위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다만 각국에서 그 나라 특색에 맞는 절들을 세워 놓고 부처님 태어나신 성지임을 기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 대성석가사라는 한국절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룸비니에 들르기로 한 이유는 오직 하나 한국절에서는 공짜로 재워주고 삼시 세때 먹여 준다는 말에 혹해서 이다. 게다가 삼시 세때가 전부 한국 음식이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사실 완전히 공짜라기보다는 나갈 때 모두들 적당한 기부금을 내기는 하지만 안낸다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니 여행자들에게는 쉼터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룸비니에 가기 위해 네팔과 인도국경이 있는 소나울리행 버스를 탄다. 로컬버스와 여행자버스 두종류가 있다는데 당근 여행자버스가 좀더 비싸다. 결국 마찬가지일 거란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행자 버스를 탄다.-미리 고백한 바와 같이 이젠 가능하면 좀더 편하게 가고 싶은 맘이 더 크다^^- 그러나 로컬버스가 어떤지야 알 수 없지만 여행자 버스도 현지인으로 가득하고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정차해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게다가 남부로 내려갈수록 날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급기야 소나울리 조금 못 미친 사거리에서 내려 룸비니로 가는 버스를 갈아탈 즈음이 되어서는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온도가 된다. 이 온도가 인도에서는 평상시 온도려니 생각하니 그냥 인도를 건너뛰고 싶어진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들어선 한국절은 여전히 공사 중임에도 불구하고-삼년전인가 와 본적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때도 공사 중이었단다- 편안한 잠자리를 내어준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게 되어 있는 제법 큰 방인데 천장에 선풍기는 물론이고 모기장까지 달려 있다. 게다가 방마다 욕실이며 화장실까지 붙어 있다.


여전히 공사중인 대성석가사


식당, 원하는 만큼 먹고 설거지는 각자 해야 한다.


포카라에서 만났다가 먼저 떠난 사람들이 몇 명 보인다. 그저 하는 일 없이 쉬다가 밥 먹으라는 종소리가 울리면 밥 먹으로 가는 게 낙이라며 언제 시간이 가 저녁을 먹나 하는 얼굴이다. 공양 시간은 아침 6시, 오전 11시 30분 그리고 저녁 6시라는데 하긴 주위는 그저 다른 나라의 절들을 제외하곤 온통 숲들뿐이니 딱히 할일도 없겠다 싶긴 하다. 씻고 방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 종이 울린다. 식당에 가보니 스님과 보살님 세분, 한국인 칠팔 명 그리고 외국인 서너 명이 오늘의 식사 인원의 전부이다. 서양애들의 경우는 자기 나라의 절이 없으니, 일본애들은 자기 나라 절의 규율이 엄격해서 종종 한국절로 온다는 소문이다. 저녁 메뉴는 국수와 된장국이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처럼 감칠맛은 없으나 그저 어느 집 밥상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맛이 입맛을 끈다. 국수와 밥을 배터지게 먹고도 모자라 아무나 타먹어도 된다고 쓰여 있는-심지어 가지고 가도 된다고 되어 있어 한봉지 챙겨오기도 했다^^- 미숫가루까지 한사발 마시고 나서야 저녁 식사는 끝이 난다. 결국 절밥에 마음이 동해 다음날 떠나려던 일정을 연기하고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망루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다음날도 비슷한 하루가 계속된다. 종이 울리면 밥을 먹으러 가고 끼니시간 사이엔 식당에 비치되어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 그나마 읽을 만한 걸 골라 책을 읽거나 숙소 옥상에 있는 망루에 올라가 주변 경관을 바라보거나 그도 저도 지치면 낮잠을 자거나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주변에 부처가 태어난 곳이며 부처가 태어나기 직전 그 어머니인 마야 데비가 목욕했다는 연못 등이 있다고는 하나 무더운 날씨 탓에 어느 한 곳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그저 절에서는 금연이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한 번씩 절 밖으로 나서는 때를 제외하곤 그저 하루종일 뒹굴거린 셈이다. 결국 마지막날 아침까지 꼬박 챙겨먹고-사실 아침 6시 공양이라면 차라리 잠을 잘 것 같은데 내가 아는 한 아침을 굶은 한국인은 하나도 없었다^^- 국경으로 떠난다. 가능하다면 오늘 중으로 아니 늦은 밤중이라도 바라나시에 도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조금 서둘러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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