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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공짜로 사원 들어가는 법

 

비행기가 새벽의 여명을 뚫고 날아오르자 저 멀리 구름 아래로 설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척박한 설산들 어디쯤에 티벳이 숨어있는 것인지 라싸로 가는 두 시간 내내 산들의 행렬은 계속된다. 육로로 간다면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린다는 길을 비행기를 타니 그저 두시간만에 도착한다. 고도가 4천을 넘나드는 도시인 리탕이며 캉딩을 넘어오긴 했지만 성도에서 두주 이상을 빈둥거렸으니 새롭게 고산 증세가 나타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된다. 다행히 아래배가 조금 빵빵해지는 느낌을 제외하곤 별다른 증세는 없다. 북경에서 성도로 바로 넘어온 사진작가 친구도 다행히 별다른 증세는 없는 모양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라싸에서 내려 야크호텔을 찾아간다. 야크호텔은 성수기에는 거의 방을 구할 수 없다는 라싸에서는 가장 유명한 여행자 숙소인데 아직은 비수기인 탓인지 도미토리에 자리가 있다.


비행기에서 본 산들, 두시간 내내 눈덮인 설산이 이어진다


포탈라궁 앞의 도로, 그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이삼일 먼저 온 루미라는 일본인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사진작가 친구가 일본말이 가능한 관계로 수다가 가능하다는^^- 셋이서 함께 한국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 열심히 밥 잘 먹던 사진작가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길래 그저 화장실에 가나 했더니 느닷없이 이층 난간을 잡고 푹 주저앉는 게 아닌가.. 으으..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보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히 그날 하루를 잘 쉬고 나니 다시 생생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첫날은 그저 조심조심 하루를 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크호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이 거의 10여 명이 넘는다. 우리 옆방은 침대 6개중 5명이 한국인이니 아주 한국인 방이다. 거기에 묵고 있던 스페인애 하나는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방을 옮겼으며 마지막까지 중국애 하나를 제외하고는 하루 이상 머문 외국인이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라싸는 더 이상 티벳이 아니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은 탓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어서 인지 나에게는 오히려 기대보다는 더 많이 티벳 분위기가 난다. 물론 들은 대로 조캉 주변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미 한족의 상권이 자리 잡고 있어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항에서 라싸로 오는 길에 펼쳐진 황량한 산들이며 조캉 사원 주변으로 여전히 보이는 티벳식 건물이며 거리를 오가는 티베탄들이 여기가 티벳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너무 오래 돌아와서인지 여기를 오자고 그렇게 시간을 들였던가 조금 허탈해지는 맘도 숨길 수는 없다. 여튼 다시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추스르며 고산 적응에 -뭐 다른 건 아니고 담배 덜 피고, 술 안마시고 정도 되겠다- 하루 이틀을 보내다가 한두 군데 사원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라싸에서의 최대 화제는 단연 <나는 어떻게 공짜로 사원에 들어갔는가>이다. 라싸의 최대이자 유일한 볼거리는 티벳 사원들인데 이 사원들의 입장료가 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그 입장료가 티베탄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로 들어간다는 소문이고 보면 그저 입장료를 안내는 것 뿐 아니라 약간의 정의감까지 더해져 공짜로 사원 들어가기가 거의 죄책감 없이 성행한다. 라싸의 사원은 티베탄 최대 성지인 조캉 사원과 그 주변의 바코르 길을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미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가 살던 포탈라궁, 그리고 그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노블링카, 티벳 3대 사원으로 알려진 드레풍사, 간덴사, 세라사 마지막으로 라싸 외곽에 있는 사뮈에사 정도가 있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마한 사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여튼 앞에 나열한 사원들만 돈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해도 거의 500원(6만원 정도) 돈이 된다. 어지간한 입장료는 내고 다니자는 나로써도 우선은 금액에서 질리는 동시에 내고 들어가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공짜로 들어가기를 시도하게 된다.


최대 성지인 조캉사원,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들을 언제나 볼 있는 곳이다


포탈라궁, 밖에서 볼 땐 화려한 데 정작 입장료를 내면 뒤로 돌아들어가 건물의 일부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조캉사원부터 시도해 본다. 팁은 아.침.일.찍.이다. 아직 매표소 직원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무료로 들어가는 티베탄 참배객들에게 묻혀 슬쩍 들어가는 건데 거의 100% 성공률을 자랑한단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닌고로 무료로 입장에 성공한다. 하지만 티벳 불교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뭐 사원은 그저 그만그만하고 주변에 있는 순례길인 바코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 순례객을 보는 일이 더 흥미진진하다. 다음엔 포탈라궁인데 가끔 무료입장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두 번의 통과 의례를 거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대부분 울며겨자먹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곳이다. 더구나 100원이라는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볼 거 하나도 없어요>이고 보면 들어갈까 말까 무척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포탈라궁인데.. 하는 맘에 그냥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뭐 볼 게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 개방하는 곳이 워낙 일부인데다 정해진 곳 이외에는 한발자국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본전 생각이 조금 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거대한 궁이자 사원의 일부나마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조금 위로가 될 듯도 하다. 그 다음 아무도 공짜로 들어간 적이 없다는 노블링카는 과감히^^ 포기한다.


간덴사 순례길에서 기도 종이를 날리는 티베탄 아저씨. 이때 후어이! 하는 괴성을 질러줘야 한다^^


드레풍사에서 바라본 라싸 시내, 마침 눈이 내려 시내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세라사의 유명한 교리문답장면, 손바닥을 내리쳐 가며 일대일의 교리문답을 진행하는데 처음에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관광객용으로 변질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다음은 라싸 외곽에 있는 간덴 사원의 경우로 입장료를 징수하는 라마승과의 협상이 필요한 곳이다. 누구는 산을 빙 돌아 들어가기도 했다지만 해발 4200m가 넘는 곳에서 산을 한바퀴 도는 일은 건강과도 직결된 바 권장 사항은 아니라 사료된다. 우리의 경우 이십여분의 걸친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이 한 사람 표만 내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으니 -물론 탁월한 협상가가 따로 있긴 했지만-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스님들 거처에서 티베탄의 주식인 짬파에 차까지 얻어먹었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또한 여행 7개월여 만에 입장료 깍기는 처음이니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을 듯 하다^^. 눈이 내리는 날 찾아간 드레풍사는 사원에 이르는 길이 너무 예뻐 내처 걷다가 정작 사원 앞에서는 그냥 넣어줘도 못 들어가겠다며 돌아섰으며 스님들의 교리문답으로 유명한 세라사원은 담치기 할 각오로 나섰다가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정정당당히 입장했으니 대략 입장료를 제대로 낸 곳은 포탈라궁 하나 정도인 듯 하다.


우리가 날마다 들렀던 짜이집, 그래도 티벳에는 여전히 티베탄들이 존재한다.


쓰고 나서 보니 티벳의 역사라든가 현실 혹은 종교적 경건함에 관한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순 공짜 입장이야기가 다인 듯 하여 이렇게 장난처럼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라싸에 있는 동안 나는 그저 여행자였으며 상당히 많은 한국 사람들과 수다나 떨고 싸구려 만두나 죽 따위를 먹으러 다닌 게 생활의 전부였으니 여기서 티벳의 현실 운운 한다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북경의 천안문-본인은 정작 자금성의 관문이라고 우기기는 하지만-에 이어 포탈라궁을 찍으러 라싸에 온 사진작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한족들-티베탄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 정도만 전할까 한다. 그들에게 포탈라궁은 천안문과는 달리 그저 관광지에 다름 아니라는 건데 뭐 그게 현재 티벳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티벳의 현실에 분개하는 한국인 여행자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글쎄 나에게 티벳은 그 황량한 자연 환경을 제외하곤 그저 다른 여행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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