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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다

 

비엥싸이 가는 것 보다 약간 낫다 뿐이지 루앙프라방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라오스 북부는 온통 산악 지형인지 도무지 평평한 도로가 보이질 않는다. 끊임없이 비오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버스는 그래도 8시간 만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루앙프라방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두 번째 오는 도시가 조금이라도 맘이 편한 이유는 그나마 지리를 좀 안다는 건데 그전에는 여행자 버스를 타고 와 게스트하우스 골목에 내렸던 탓에 터미널에 내리니 똑같이 낯선 곳이다. 여러 명이 같이 타는 트럭 버스가 다운타운까지 만낍-천원-에 간다며 말을 건네 온다. 루앙프라방의 크기나 론리의 지도에 따르면 시내와 그리 먼 곳 같지는 않는데 도무지 흥정이 되질 않는다. 그래, 200원 깍아서 부자되겠냐 싶어 그냥 올라탄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멀지 많은 강가에 차를 세워 준다. 거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가 괜찮았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본다. 게스트 하우스는 그대로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방값이 10불이란다. 분명 3년-햇수로 3년이지 만으로 2년 조금 더 된 것 같은데-전에 4불 하던 곳이었는데.. 그나마 풀이란다. 주변 게스트하우스도 거의 마찬가지다. 강가에 있는 집들은 죄다 10불이고 어떤 곳은 15불까지 부른다. 태국을 제외하고 다녀본 중 최강의 가격이다. 에효.. 그나마 뒷골목을 뒤져 6불짜리 방을 찾아낸다.



해가 지는 메콩강


루앙프라방에 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강변에 즐비한 레스토랑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해지는 모습이나 한가하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비엔티안에도 강 주변에 맥주집이 있긴 하지만강폭이 넓은 탓인지 건기인 이즈음에는 물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뭐랄까 분위기가 매우 로컬스러운데 반해 루앙프라방은 제법 노천카페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여튼 첫 날은 강변에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술값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것 같다^^. 막상 다음날이 되니 별 할 일이 없다. 주변에 있는 땀짱 동굴이니 꽝씨 폭포니 하는 곳은 이미 다녀 온 곳들이고.. 뭘 할까 고민하다 막상 루앙프라방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라는 데 사원이라고 씨엥통 하나 밖에 안 다녀왔다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뒤져보니 론리에도 워킹투어라는 하루 코스의 사원 답사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다. 론리의 지령에 따르면 아침에 시장을 구경하라는데.. 음 이전에 봤으니 생략! 글구 지금은 아침도 지났잖아.. 하면서 시장 다음으로 가라는 두 개의 사원을 둘러본다. 이 두 사원을 보고 나니 사원에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다. 뭐 별로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양식이나 특징은 잘 모르겠고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는 얘기다. 에이.. 사원 구경은 포기하고 강변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걷는다.


메콩 강변의 카페

 


승복이 널려 있는 사원 앞마당


다시 오후가 고스란히 남는다. 인터넷이나 하고 점심을 먹어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이번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왕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전에 왔을 때 시간이 없어 못 가본 곳이다. 그때는 그걸 못 보고 가야 하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는데 막상 시간이 이리 많이 남는데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적미적 거리다 들어간 왕궁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1975년 라오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 까지 존재했다는 씨사봉 왕가의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 하긴 그때까지 여기가 왕궁이었고 거기에 집기며 옷, 유물들을 전시해 두었으니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여튼 아직까지 왕이 있는 태국이나 캄보디아를 제외하면 미얀마나 베트남은 식민지시절 이전에 이미 왕가가 무너진 반면 1975년까지 왕이 있었던 탓인지 비교적 궁전의 형태나 집기들도 온전하고 심지어 왕실 일가의 가족사진도 걸려 있어 이 사람들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프랑스쯤으로 망명해서 잘 먹고 잘 살지 싶은데.. 아닌지도 모르겠고..   



루앙프라방 강변


한때는 왕궁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인 왕궁박물관


저녁에는 야시장이나 둘러본다. 이 야시장은 주변의 고산족들이 만들 수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베트남의 박하 시장, 치앙마이의 나이트 바자와 함께 본 중에는 규모도 있고 제법 눈길이 가는 물건들도 많은 곳이다. 아.. 혹시 한국에 가야 한다면 선물을 사야하나 싶어 유심히 이것저것 살펴본다. 역시 시장 구경은 살 거라는 마음이 있을 때 해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문득 돈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태국에서 밧을 남길 때 딱 라오스에서 쓸 돈 정도만 남겨 낍으로 환전했던 것이다. 달러도 재환전하기가 번거로워서 미얀마에서 쓰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여기는 ATM도 안되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 아직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선물은 무슨.. 무겁기만 하고.. 꼭 사야 되면 중국 가서 사면 되지 뭐.. 하면서도 몇 가지 물건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루앙프라방 야시장

 

갑자기 시장 구경이 재미없어져 밥이나 먹으러 간다. 반찬 이것저것 골라 밥 위에 얹어 먹는 시장통의 500원짜리 밥집에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한다. 방콕의 한국인 숙소에서 잠시 스친 어린 여학생이다. 여행 올 때 같이 태사랑에서 만난 일행과 일정이 안 맞아 헤어지고 혼자 다니고 있단다. 마침 내 다음 행선지인 농키아누에 다녀왔다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맥주나 한잔 할래요? 했더니 맥주 좋아하는데 돈이 없단다. 쇼핑이 취미라 이것저것 너무 많이 사는 통에 한달 일정에 13일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 얼마 밖에 안 남았다며 이걸로 캄보디아까지 갈 수 있을까요? 되묻는다. 지금처럼 다니면 될 것도 같은데.. 했더니 안돼요, 50불은 남겨서 리바이스 청바지랑 사 갖고 가야 되는데.. 한다. 귀엽다. 그냥 맥주 한 잔 사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가끔 단기 여행자들에게 맥주 한 잔씩 얻어먹은 기억은 나는데 여행 다니면서 누구한테 뭐 사준 적도 없는 것 같다. 일차를 하고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자기가 산단다. 돈 없다며? 하며 그냥 맥주값을 낸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느즈막히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담배갑에 돌돌 말린 2000낍짜리 하나가 들어 있다. 화장실 간 사이 그 친구가 넣어 두었나 보다. 거듭 귀엽다. 이름은 송아나, 86년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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