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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남자도 치마를 입는다

안숙을 캄보디아로 떠나보내고 하루를 방콕에서 뒹굴거리다 미얀마행 비행기를 탄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한 시간 남짓인데도 어디 다른 대륙이라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비행기라는 이동 수단이 아니었으면 <안숙부재로 인한 여행 우울증>에 한동안 시달렸을텐데 환경이 변하니 안숙의 부재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양곤 공항은 익히 들어왔던 대로 뭐 우리나라로 치면 좀 큰 읍내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당연 수순대로 삐끼님들의 안내를 받아 택시를 타고 화이트게스트하우스 소위 말하는 백악관으로 향한다.


양곤은 같은 동남아인데도 사람들의 옷차림새부터 거리 풍경까지 인도차이나의 다른 나라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먼저 옷차림은 남녀 구분없이 룽지라는 긴치마를 입는 것이 특징이다. 뭐 여자들의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지만 대략 그냥 룽지라고 불러도 시비거는 사람은 없다^^. 이 룽지라는 옷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천의 양귀퉁이만 꿰매놓은 것으로 다리를 사이에 넣고 적당히 접어서 시접부분을 둘둘 말아 허리께에 밀어 넣으면 그만인 편리한 옷이다. -뭐 룽지속에는 속옷도 안 입는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남자들 옷은 대략 체크무늬가, 여자들 옷은 꽃무늬가 주종을 이루는데 여튼 이 치마를 입고 자전거도 타고, 축구도 하고, 더우면 걷어서도 입고, 목욕할 땐 가슴께로 올려서 가운으로도 입고 등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다음은 특징은 미얀마만의 특유한 화장 방법인데 여자들과 아이들 가끔 남자들까지 온통 얼굴에 노란색 가루를 칠하고 다닌다. 따렌까라는 나무수액으로 만든 이 화장품은 메이크업이자 썬블록의 역할을 한다는데 처음엔 액체지만 마르면서 얼굴에 노란 가루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아마 이 흔적이 남아야 더 예쁜 것으로 인정이 되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특히 볼부분과 코부분에 간혹 나뭇잎 모양이나 특이한 무늬를 그려넣은 제법 세련된(?) 화장법이 선보이기도 한다. 여튼 이 화장법 역시 마얀마 사람을 구별짓는 독특한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치마가 룽지다


사원에서 만난 아이. 얼굴에 묻은 노란 흔적이 따렌까 자국이다.


이 동네 남자들의 특징은 주로 우리가 죠스바를 먹고 났을 때나 볼 수 있는 벌건 입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처음 보면 흠칫 뒤로 물러나게 될 만큼 섬찟하다.  이는 꿍이라고 부르는 입담배 때문인데 나뭇잎에 하얀 가루를 바르고 무슨 열매인가를 잘게 썰어 싸서 씹는 이 잎담배가 입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입담배는 어느 정도 씹다가 뱉아 줘야 하는데 벌건 물이 입에서 확 쏟아지는 걸 보면 비위가 확 상한다. 단지 비위만 상하는 게 아니라 가끔 파편이 튀기로 하는 데 뭐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 덕분에 그리 깨끗하지 않은 거리는 온통 벌건 물이 들어 있다. 누군가의 조언에 의하면 외국인들에게만 징수되는 비싼 사원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면 룽지를 입고 입담배를 씹은 다음 징수원을 향해 씩 웃어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이 애용 상품이다.


양곤 거리는 매우 낡은 건물들이 그래도 무슨 유럽 뒷골목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미얀마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영어도 비교적 잘 통하고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없는 재밌는 곳이다. 하지만 수도라고 해야 영국 식민지풍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거의 슬럼화 되어있고 보도블록이며 맨홀뚜껑이 거의 깨져 있어 걸을 땐 발밑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대책이 안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는 수도라고 전기나 들어오지 양곤을 제외하면 저녁 두세 시간을 이외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그나마 수도시설이 없어 우기에 내린 비로 이루어진 웅덩이 물을 그냥 길어다 마셔야 되는 열악한 나라이기도 하다.


숙소 옥상에서 본 양곤시내


양곤에서는 쉐다곤 파고다만 보러간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 짜익띠요의 골든락과 함께 .미얀마 3대성지로 불리는 이곳은 현지인들은 무료지만 외국인은 5달러인데 굳이 매표소를 찾지 않아도 징수원들이 귀신같이 외국인들을 찾아내 입장료를 받는다는 곳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 지도대로 버스를 타본다. 미얀마버스는 숫자가 아라비아로 되어있지 않고 자기나라 고유의 글자로 되어 있어 버스타기도 쉽지 않다. 쉐다곤 파고다야 워낙 유명한 성지라 어째 물어물어 타기는 했으나 헉 이 버스 도무지 발디딜 틈도 없다. 5분 남짓이니 어찌어찌 견디긴 했지만 다른 버스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 미얀마에서 버스 탈 일이 꿈만 같다. 나중에 수도 없이 보게 되는 익숙한 형태의 불탑 주변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전 지식도, 가이드북도 없이 탑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뭐 별로 할 일도 없어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 졸다가 자다가 다시 나온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다음엔 쉐다곤 파고다가 우기에 잠길 때를 대비해 일부러 언덕을 쌓아 만들어서 그 흙을 판 곳은 인공 연못이 되었다는 깐도지 호수 쪽으로 가본다. 호수 주변에 철망이 쳐 있고 입장료가 1000짯 이다. 내지 뭐.. 하고 들어가 호수에 들어간다. 데이트 할 곳이 그리 많지 않은 듯 곳곳에 청춘남녀들이다. 에구 아주 염장을 질러라 하며 호수를 반쯤 도니 다시 입장료 내는 곳이 나온다. 이번엔 1300짯이란다. 살짝 약이 오른다. 뭐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를 부분부분 나눠서 곳곳마다 입장료를 받는단 말인가. 온 길을 되짚어 가기는 싫고, 입장료를 다시 내기는 더더욱 싫어 그냥 밖으로 나와 철조망을 따라 걸어본다, 길은 한산한데 이 호수 크지 않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땡볕을 두시간이나 걸어서 간신히 입장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삽질을 하고서야 양곤에서의 하루가 간다.


깐도지 호수. 저 다리 위를 걸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니^^


여튼 아침식사만 훌륭하다는 화이트게스트하우스에서 -미얀마는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준다- 이틀을 묵으며 여행 루트를 짠다. 가이드북도 없고 인터넷도 무지 느린 이 동네에서 의지할 건 노트북에 내려받은 정보가 전부다. 일단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네시아의 보르도부르 유적과 함께 아시아의 3대 불교 성지로 불린다는 바간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정해서 움직이면 될 일이다. 바간으로 가는 밤버스를 끊어놓고 시간이 남아 인터넷에서 누군가 추천한 강건너 달라시로 가 본다. 이곳도 외국인은 따로 돈을 낸다. 왕복 2불. 국가가 앞장서서 달러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달라시에 다녀오니 터미널로 갈 시간이 다 되어 있다. 양곤에서는 한국 사람을 하나도 못 만났다. 미얀마에서도 혼자 여행할 팔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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