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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행동주의 반대

행동주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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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다양한 운동에서 이른바 "엉망진창"에 대한 참고 사항1)

 

1) 행동주의는 활동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더 정확하게는 혁명적 관점의 부족을 보완하고 위장하기 위한 자발적인 활동의 발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즉각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즉각적인 행동을 목표로 하거나, 실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수정'하기 위한 성찰을 희생하면서까지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운동 최악의 퇴행 에피소드의 뿌리에 있는 일반적인 일탈은 '정치적 존재'를 나아가야 할 길을 제기하는 운동 활동에 뛰어들게 하는 원칙의 명확성과 연속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글을 참조하고 이전 경험을 통해 '멈추고 결정'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계속 행동하라."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1952, p.7, "행동주의에 대한 잘못된 의지")

 

이러한 우회는 곧 움직이거나 소음을 내거나 폭력적인 모든 것에 대한 사과로 해석된다. 이는 통합된 스펙터클의 ‘영원한 현재’가 악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Debord) 이것은 양과 같은 군중을 연출하고 무력감을 분노로 배가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보완 요소이다. 평화주의와 사교적 행렬의 꼬리 또는 선두에서 제한된 공간을 '화려한 반전, 다소 '군사주의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형태의 '대결'에 바치는 순간이다.2)

 

물론 이 두 가지 현실은 대체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정치를 구경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계획된 정치적 패배의 보다 '정력적인' 변형을 제공한다.

 

2) 역사적 목적에 관한 관심을 두지 않고 행동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짧은 기간만 뉴스 장면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이는 역시 당면주의이다. ‘승리’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일시적이며, 그 핵심은 부르주아지에 대해서 필요한 노동계급의 통일이며, 위태로운 본질적 정치 문제와는 결코 관련이 없다. ‘패배’가 있다면, 의지 부족이나 ‘불균형적인’ 억압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는 일, 가치, 국가의 중심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적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당대의 순간적인 이익에 직면하여 주요 관점을 망각하는 것, 궁극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간적인 성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현재를 위해 운동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정직한' 의도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이며 항상 기회주의가 될 것이며, 아마도 가장 위험한 것은 '정직한' 기회주의일 것이다."3) (F. 엥겔스: 1891년 사회민주주의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

 

3) 이런 의미에서 행동주의는 정치적 기회주의의 특정 형태일 뿐이다. 기회주의는 합법성과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지형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근육질의 모습으로 의회 외 분야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것은 자본의 지형과 개혁에 대한 반대 경쟁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정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수정주의자의 일탈은 매우 결정론적이지 않고 활동적이었다. 보기를 들어 베른슈타인은 진화론, 개혁주의자, 율법주의자였다. 당장은 달성할 수 없는 혁명적 목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적 궤적의 빛나는 비전에 눈을 감고 즉각적인 결과가 전부라고 말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 축소된 즉각적인 목표를 제안하며 그러한 결과를 의지로 모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였다. 소렐 학파의 폭력 당파인 신디케이트 주의자들도 같은 말을 했고 같은 방식으로 결말에 이르렀다. 전자는 의회 채널을 통해 입법 조처를 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였고, 후자는 회사와 부문의 승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둘 다 역사적 과제에 등을 돌렸다."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이미 인용됨)

 

4) 이러한 운동 성격의 가장 눈에 띄는 순응주의적 특징 중 하나는 이 운동이 모두 민주적 정당화의 틀, 즉 노동조합 및 기타 단체의 경우 거리의 '대중적' 정당화, 또는 극좌/극우 정당의 경우 의회의 정당화라는 틀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러한 운동은 항상 민주주의의 틀, 즉 자본과 그 대리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엄청나게 폭력적인 순간에도 노동조합은 이러한 운동의 통제권을 잃은 적이 없으며, 이는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독립 조직, 심지어 소수 조직조차도 완전히 부재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자본과 자본의 여러 이데올로기적 주체 중 하나 또는 다른 형태에 포섭되지 않고는 결코 그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 최근 연금 개혁 반대 운동에서 국가를 마비시키지 않은 선택적 봉쇄와 부문별 파업(일부 주요 도시의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과 같이 약한 노동자 대표단은 부문별로 행진한다. 이러한 운동의 계급 구성은 중개 구조에 의해 원자화된 개인들의 합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을 '국민'으로 정의하는 유순한 대중을 구성한다.4)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 있었던 이른바 '노란 조끼 운동(Gilets Jaune movement)'에서도 이미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특정 형태의 시위와 단편적인 반대(교통 서클 점거 및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반복적인 등반)가 이러한 유형의 '운동'의 본질과 정치적 의미를 가리고 위장하는 데 일조했다. 계급 사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특히 이러한 시위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부분에서 극우 정체성주의 및 파시스트 세력과의 입증된 허점이 특징이다.5) 그러나 전반적인 정치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푸자드주의’(poujadism)6)과 유사한 공정한 국가(이 경우 연료에 대한 세금 인하)를 요구하는 ‘소부르주아’, 인민 투표 운동의 의미로 남아있다.

 

‘연금 반대 운동’으로 돌아가서,7) 그 ‘엉망진창’ 또는 ‘황색화’는 노조의 헤게모니적 힘과 계획된 패배에 대한 좌절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노조의 평화주의 외관만큼이나 반(反)혁명적인 노조의 어두운 면이다.

 

5) 행동주의는 또한 ‘전투성’의 병리 현상이다. 반(反)혁명의 시간성을 선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전투적’으로 희생적인 사람은 편법으로, 즉각적이지만 헛된 희망으로, 무엇보다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도 오늘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물론적 비판의 무기에 대해 성찰하고 적용하지 못한 채 동요하기만 한다. 반反)혁명의 장기적인 관점을 상실한 이 '전투 세력'은 부서진 상점 창문 몇 개와 불에 탄 쓰레기통(모두 체제에서 정당하게 보험에 가입된 것)이 혁명을 예고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코뮤니스트 강령의 전파로 나아가는 어렵고 긴 노정을 막기 위한 사회 평화의 역풍, 조잡한 혁명의 예방 및 카타르시스적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행동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못’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노동운동을 괴롭히는 모든 ‘못’과 집착의 온상이다. 그러나 행동주의의 유행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 이론은 실제로는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의 민감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행동가적 가식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투쟁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항상 반反)혁명의 승리가 그 특징이었던 때 이러한 현상이 가장 강렬했다. ‘코뮌의 블랑키스트 이민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발췌하여 1874년 데어 볼크슈타트(Der Volksstaat)에 게재된 엥겔스의 한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혁명이나 반反)혁명이 실패한 후 해외로 도망친 이민자들은 열렬하게 활동한다. 다양한 색조의 정치 단체가 설립되어 각각 운동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반역죄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필멸의 죄를 비난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고국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조직하고, 음모를 꾸미고, 전단과 신문을 발행하고,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다시 하게 될 것이고, 승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맹세하며, 이를 예상하여 미리 정부 직책을 나누고 있다. 물론 환멸 뒤에는 환멸이 따르고, 이러한 좌절은 그들이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우연한 실수 때문이므로 상호 비난이 쌓이고 일반적인 난투극으로 끝이 난다."8) (A. 보르디가, 「코뮤니스트 투사」 6호, 1952년 3월 20일~4월 3일)

 

6) 행동주의는 따라서 자본의 극단적 좌파로서 좌파주의의 해체/재구성의 본질적 측면이다. "극좌"와 같은 최상급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9) 기본적으로 ‘극좌’로 정의되는 정치 운동을 불신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충돌의 미디어 이미지를 더욱 ‘무서운’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며, 실제로는 이념적이고 억압적인 실제 국가 테러리즘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초점은 국가(또는 국가 원수 개인에 대한)에 대한 ‘복수’와 이상주의적 반대의 필요성을 강화하여 일부 활동가들이 새롭게 ‘무장한 개혁주의’, 심지어 ‘녹색’으로의 일탈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특정 형태의 시위가 화려하게 굳어지는 이러한 과정은 실제 정치적 이해관계, 즉 전쟁으로 향하는 과정,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 임금 하락, 소외된 노동에 대한 거부, ... 그리고 다가올 기타 ‘자연적’ 및 건강 재난에 대한 공포심과 위장을 강화한다.

 

부르주아지가 제안한 또 다른 관점은 선거 마감일에 대한 관점인데,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오도하고 속이는 주기적 성향을 충분히 입증한 바 있다.

 

"의회는 자본주의 체제에 특유한 정치적 대표의 형태이다. 의회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맑스주의 코뮤니스트의 원칙적인 비판은 전체 국가 정부 기구가 지배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한 방어위원회가 되는 것을 투표권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권리는 국가의 대표 기관에 대한 선거에서 사회 계층의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지만, 그런데도 후자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투쟁의 역사적 도구로 조직된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관한 테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1920년, 각주 10)

 

2023년 7월 5일

Matériaux Critiques

 https://81b6bb22-93ff-445e-9132-db9118c0c19f.filesusr.com/ugd/ca292a_8f1c247f6b034aadb849db0c7dea2aef.pdf

 

 

<주>

 

1)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다양한 ‘운동’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통된 일탈주의적 실체, 즉 행동주의를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유사한 급진성과 현재의 반(反)혁명 노선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보도에 다시 한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것이 혁명적 집단과 동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과장된 허세이며, ‘이미지가 매개하는 사회적 관계’(Debord)로서의 구경거리의 일부이자 구색이며, 확고한 정치적 관점에 대한 암시를 선제적으로 무장 해제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믿는다. 과장된 묘사와 터무니없는 수식어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신비주의이며, 사소하고 진부한 현실에 무지하지 않았던 작가에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2) 우리는 여기서 직접 행동, 사보타주, 피켓 라인 무장 등 노동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해방 프로젝트를 의식하는 독립적인 계급 운동에 봉사하는 수단에 해당한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사례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시기에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내용과 급진적 행동 양식이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은 우리의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La soumission du procès de travail au procès de valorisation au travers de l' exemple du mouvement ouvrier américain (1887 – 1920)’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 monsite/archives

 

3) 맑스, 엥겔스 : 사회주의 강령, 74쪽, 스파르타쿠스, 파리, 1971

 

4) 이 질문에 대해서는 「중요 자료」(Matériaux Critiques) N°1 2020년 4월호 및 웹사이트에 있는 본문을 참조하시오. ‘프롤레타리아트 대 민중’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

 

5)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독자들은 S. Boulouque의 책을 참조하라. ‘노란 조끼를 입은 거짓말’, Serge Safran éditeur, Paris, 2019; 잡지: ‘조국도 국경도 없다’ N° 60-61, ‘노란 조끼와 혼란스러운 정치’, 2018.

 

6)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은 1950년대에 참여했던 푸자디스트 운동과 ‘노란 조끼’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했지만, 후자는 공통된 점을 제외하면 지도자도 없고 ‘표어’도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에 대한 ‘적개심’ 사이트 :

https://www.lefigaro.fr/flash-actu/2019/01/10/97001-20190110FILWWW00239-gilets-jaunes-des-similarity-with-poujadism-jean-marie-le-pen.php

 

7) 우리는 이미 2023년 3월 2일 입장문에서 이러한 계획된 패배에 대한 분석을 다루었다: ‘연금: 노동조합의 승리, 프롤레타리아의 패배’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ques

 

8) 웹사이트: https://www.pcint.org/03_LP/512/512_activisme-1.htm

 

9) 물론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 초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혁명에 대한 혁명적 반대에서 비롯된 역사적 ‘극좌파’(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이탈리아 좌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07/05/against-a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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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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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동지 사망 직후인 1979년 10월 16일

공개 시위 당시 작성된 보고서의 글

 

 

동지들,

 

우리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Pcint)을 대표하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를 대표하여 데이먼 동지의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노라토 데이먼은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의 정치 투쟁 역사에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다른 그룹과 흐름의 존재에 대한 언급에 더해 해외에서 제공된 언급은 데이먼 동지의 업적의 가치와 위상을 입증한다.

 

이 위대한 인물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노라토의 교훈과 모범에 충실한 노동자 운동과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과 관련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에 직면한 제2차 인터내셔널의 수치스러운 종말에 대해 논의한다.

 

자본의 무한한 개혁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환상은 당시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내에서 기회주의와 수정주의의 대열을 확대했으며, 바로 이 기회주의가 그 틀을 부식시켰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해 항복한 바로 그 정당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계급적 내용을 모두 빼앗아 갔다.

 

또한, 제2 인터내셔널 내 러시아에서 레닌의 투쟁은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이 노동계급의 혁명 과정 첫 단계이자 유일한 단계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인, 볼셰비키(RSDLP)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평의회에 기초하여 설립된 최초 노동자 국가 창조는 계급의 권력을 주장한다.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및 인터내셔널 경험에서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힘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더욱 완전하게 정당들이 투항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탈리아 사회당(PSI)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방해하지도 않는’ 신비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왜 그랬을까? 사회주의자 라자리(Lazzari)가 속임수의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PSI 내부에 방법과 맑스주의 원칙의 올바른 적용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방향에 충실한, 혁명적인 행동의 흐름이 퇴보하였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국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부르주아지의 권력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

 

동지 여러분, 그의 모든 젊은 정신에 몰두한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아직 특정 형태의 선험적 기권주의로 나뉘지는 않았지만, PSI의 좌파 분파인 기권주의자 분파를 지지하는 오노라토 데이먼 동지를 만나게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불복종을 선동한 혐의로 1919년 감옥에 갇힌 것이 성원으로서 그의 활동 특징이다.

 

1919년 전쟁이 발발하자 제3 인터내셔널은 거의 레닌 동지의 강권에 의해 구성되었다. 혁명가들이 사회민주주의와 결별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의 형성 과정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이 자극이 운동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지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2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그들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보다는 다른 나라 코뮤니스트 세력 내부의 자주성과 성숙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쉽게 이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PSI의 좌파 세력은 이미 그들 자신을 사회민주주의 기회주의라는 이념적, 정치와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볼로냐 대회에서 이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데이먼이 볼로냐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인터내셔널의 가능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명적 가르침의 귀중한 글꼴인 문서에 우리를 위해 기록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행동 전망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볼로냐에서 이미 최종적으로 단절을 한 것이 이미 잘못이 아닌 것처럼 논의된다. 정말로 오류였나? 이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혁명가들이 미래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혁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반영하여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어본다.

 

"이 사실에 직면하여 인터내셔널 내에서 우리 자신을 격렬하게 배치하는 심각한 정치세력을 현명하게 제거함으로써, 이 나라에서 혁명을 위한 투쟁을 유일하게 보장할 정당으로서 기능하는 분파와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결정적으로 상실한 사회당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제약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사회당과 결별했다. 적절한 결단력과 적시성을 가지고 이 수준에서 일하지 않고, 필요한 역사적 순간에 당 건설을 하지 못했거나, 너무 늦어서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전면 후퇴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오노라토 데이먼)

 

볼로냐 이후, 분파는 이몰라(Imola)에서 다시 만났다.(1920년 11월 28일) 그곳에서 그들은 리보르노(Livorno)에서 열리게 될 대회(1921년 1월 21일)에서 분열을 준비했다. 리보르노에서 데이먼이 고수했던 분파와 「신질서」(Ordine Nuovo)의 설립이 당으로 함께 흘러 들어갔다. 보르디가 좌파의 지시를 받은 젊은 코뮤니스트당은 그들 자신의 개선된 투쟁을 수행했다. 톨리아티(Togliatti)와 베를링게르(Berlinguer)의 권력기구의 호모큘러스가 혁명적 역할을 포기한 것은 바로 이 당이었다. 그 기간 데이먼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대리인이자 중앙 연합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는 토스카나(Tuscany)에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었는데, 피스토이아(Pistoia)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총상을 입었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완전히 후퇴했음을 알 수 있다. 레닌이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끌어내며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 러시아혁명은 오히려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 노동자 국가에 있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굶주림과 내전의 폐허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이와 같은 보복 뒤에는 아직 원칙의 차원이 아니었던 첫 번째 항복이 있었다. 러시아 동지들은 경제 조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되었고, 자급자족의 대가로 가장 혁명적인 정당에서도 항상 존재하는 기회주의적 자극을 증가시켰다.

 

이탈리아 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에서도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럽이나 동양에서 승리한 혁명만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혁명 과정의 위험 징후를 경고했다.

 

오노라토의 말을 인용한다.

 

"1924~25년은 노동자 운동의 내적 발전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이탈리아 좌파에게 부과된 추방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부는 더 유연하고 타협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형성 단계에서도 좌파와 함께 존재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람시 동지의 작업과 사상과 관련시키지 않고는 정확하고 책임감 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신화화되고 이론화된 그람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관점에서 관찰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살았던 우리와 같은 인간 그람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람시가 진정한 혁명 정당의 요구가 아니라 러시아 국가의 요구, 비록 그것이 노동자 국가의 요구라 할지라도 우발적인 정치에 당을 종속시켰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데이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당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따라서 인터내셔널의 집행부를 위해 당시의 문제는 우파의 공간을 확보하고 당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당의 정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당을 지배하고 있던 좌파의 흐름이 원하는 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3 인터내셔널주의 분파와 사회주의당의 핵심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통해, 결과적으로 당을 통해 이상적인 지점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에는 좌파가 침묵할 수 없었던 그람시 센터(Gramscian Center)의 정확한 정책이 부합했다. 1924년 코모(Como) 회의에서 좌파가 당의 다수파로 부상한 것은 1924년이었다. 인터내셔널이 부과한 새로운 당 중심과 당의 구성 노선이 그 순간 혁명적 정책의 필요성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체질은 건강했다. 그람시의 미묘한 지능으로 해석되는 장치가 지배했다. 이 기구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따라서 이 기구는 이름 없는 신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덧없는 조직, 거의 항상 특권의 연막 뒤에 숨겨져 있는 조직, 정치 활동의 기업의 모습을 취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모습이다. 문어처럼 촉수를 뻗어 전파되고 그것을 특징짓고 당의 나머지 조직과 구별되는 고유한 삶의 방식을 취한다.”

 

공동전선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자살, 근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아벤티네(Aventine) 양도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너무 늦게 해결되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은 책임감 있는 동지들 때문에 충분한 징후가 감지되었다. 이 시기에 데이먼과 그람시 사이에 아벤티네 양도 문제에 대한 단결의 논조와 마테오티(Matteotti) 사건과 그람시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당이 패배할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논쟁이 있었다.

 

데이먼, 레포시(Repossi), 포르티차리(Fortichiari)와 함께 "아직 구해야 할 것을 구하는 정확한 임무를 가지고" 인테사(Intesa) 위원회를 설립했다. 인테사 위원회는 역사적 순환의 새로운 문제, 즉 노동계급에 가장 쓰라린 패배와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문제에 대한 정교화와 정치적 투쟁의 중심지로서 인터내셔널의 반대 세력으로서 이탈리아 좌파가 탄생한 것이다.

 

보르디가는 이미 구성된 인테사 위원회를 고수하여 PCd'I의 내부 정치 투쟁에 최대한의 마지막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는 1966년 PCI 문서의 변형과 명예 훼손에 대해 명확히 하려고 했다.

 

"인테사 위원회의 강령은 밀라노에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동지들이 인테사 위원회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보급된 문서의 주요 부분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르디가는 알지 못한 가운데 예외적으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들을 지탱해 준 사람들의 개인적인 변덕에서 인테사 위원회의 경험은 그들이 아직 갖지 못한 의식에 가장 중요하다. 오노라토는 사후에 나온 그람시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저작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나왔다.

 

"인테사 위원회가 내린 경고는 인터내셔널 정치의 볼셰비키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구조적, 이념적, 정치적 타락, 스탈린주의의 종속적 각인, 소비에트 국가가 제국주의 대열에 진입하는 과정의 시작을 특징짓는 관점에 대해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직접 이 문제를 처리했다는 것은 그 경험의 절정, 당과 인터내셔널에서 다시 토론하려는 시도, 인터내셔널의 위선적 복수를 차단하는 데 있어 그 순간의 중심 문제에 의해 입증된다. 움베르트 드로즈(Umbert Droz)가 모스크바에서 시작한 이탈리아의 쇠퇴는 그 자신이 회고했듯이 인터내셔널과 그 정당 내에서 동일한 주제와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대가로 위원회의 해산 명령을 했다.

 

수년간의 투쟁을 위해 당의 위임을 받고 계급당의 쇄신 능력을 신뢰하는 동지들에게 이것은 큰 부담이었다. 스탈린은 1926년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보르디가에 응답함으로써 모든 의심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코민테른의 정책은 의존 관계에서 모스크바에 위임되어 러시아 국가의 방어, 이른바 "안정화" 전술로 축소되었으며, 구두 선언에서도 이것은 추상화되고 국제 혁명에 관한 이야기와 분리되었다. 런던에서 악명 높은 영-러 위원회가 출범하는 동안 그들은 예외적인 법률을 통과시켰다. 파시즘은 결정적으로 승리했고 코뮤니스트는 감옥에 갔고 그들과 함께 데이먼은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PCd'I는 볼셰비키화를 겪고 있었고 이로 따라 좌파가 소외되었다. 리오네(Lione) 의회는 스프리아노(Spriano)와 같은 코뮤니스트 역사가조차도 숨길 수 없는 사기이다. 우리는 이미 조직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을 느꼈고, 리옹에서 당의 시체를 대체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이다. 우리는 여전히 센터 측의 모든 기능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람시 아래에서 (1925년 인테사 위원회의) 나폴리에 참여했던 당의 사무국원들이 소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행정적 딜레마는 자신에게 돈을 지급하는 정당의 정책을 계속 따르고 옹호하거나 해고되는 것이다. 이 "매춘"("puttano")의 밑바닥에는 마치 당내 혁명 세력이 협상의 보상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수치스럽게 항복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효과적인 딜레마"이다.”

 

리오네의 승리와 함께 좌파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상대적으로 느린 작업은 새로운 자극과 냉혹함을 가져왔다. 데이먼 동지는 1933년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같은 해 말 다시 수감되었고, 파시스트 신문을 통해서 PCd'I에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도 당과의 화해 목표는 모든 가능성의 범위 밖에 있었고 반대였다. 좌파에 몸담은 지 몇 년밖에 안 된 동지들이 모두 자신의 안락한 지위를 희생하면서까지 저항할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노라토 데이먼과 다른 사람들은 저항했다. 맑스주의를 확고히 고수하고 역사에 대한 완벽한 시각을 유지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미 중국의 에피소드 그리고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세계대전에 묶여 있다는 힘의 증거로 다시 나타났다. 포괄적 혁명은 모든 볼셰비키 구(舊)경비대에 대한 스탈린주의 숙청과 함께 러시아 상황에 의해 가속화되었습니다. 요컨대, 비극적 경험의 축적은 엄격한 계급 노선을 따라 수행된 분석의 필요성을 남겨 두었다.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었나? 다른 모든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그 세력에 대한 설명을 재개했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가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재건되면서 1919~1922년 내전에서 물려받은 다른 전선과의 대립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고 부유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제국주의 중심부로 떠오르는 문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이탈리아 좌파의 내부 중심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그는 스페인 전쟁 대신에 이미 분명하게 다음과 같은 세력이 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중도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 즉 국가 자본주의, 즉 구(舊)소련의 노예에 불과하다.”

 

데이먼이 감옥에 갇혀 있던 몇 년 동안에도 스페인 내전 기간과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처음에는 감옥에서, 그다음에는 망명지에서). 혁명적 강령을 재건하기 위한 교훈을 도출하기 위해 계급에 부담을 준 사건들을 조사하고 비판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였으며, 조직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외부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유지한 것도 감옥에서였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데이먼 동지가 그랬던 것처럼, 코뮤니스트 방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부르주아 언론과 파시스트 언론의 검열을 통과한 저널을 읽는 것만으로도 맑스주의자들은 사건에 발맞추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맑스주의자들은 더는 의구심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1915년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에 대해 일관되고 적극적인 반대, 전쟁을 적과 모든 배신자 세력과의 전면적인 정치적 갈등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1943년 북쪽에서 훌륭한 계급 봉기가 촉발되었고 당은 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운영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날 오노라토와 함께 1921년의 지연을 비판하기 위해 현재 행동하는 세력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듯이 (데이먼 실제로 최고의 공헌을 한 것처럼) 우리는 1943년에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 당은 데이먼이 감옥에 있을 때 그리고 감옥 안에서 만들어졌다. 데이먼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첫 번째 전단을 배포했을 때 망명 중이었고, 모두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기관지인 「프로메테오」의 첫 번째 시리즈가 출판되었다.

 

1943년 12월 1일 자에서 우리는 전쟁과 혁명에 반대하는 당의 계급에 기반을 둔 혁명적 성격을 독특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인 '우리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러시아'라는 제목의 주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당이었으며 다른 모든 당보다 부르주아 전선에 맞서 당으로서 행동했다. 이에 1945년 톨리아티와 PCI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지도자들을 방해자로 게슈타포 요원이라는 냉혹한 낙인을 찍어 CLN에 청원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노라토 데이먼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되었다.

 

데이먼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명도 혁명가로서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지 않았다.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은 우리 당이 견뎌낸 부르주아 재건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계속되었다.

 

당의 창립부터 오늘날까지 다른 투쟁과 문제들, 무엇보다도 1952년의 분열이 데이먼을 참여시켰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에서 정치조직을 쇄신하는 투쟁에 대한 그의 공헌은 헛되지 않았다.

 

그 순간에 오노라토의 모습이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자본 축적의 새로운 위기는 이 위기에 특정 맑스주의, 즉 해체된 지식인(intellettuali allo sbando),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의 맑스주의가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이 위기를 예견하고 조사한 혁명가들의 맑스스주의가 아니라 오늘날 당(Pcint)과 오노라토의 교훈 속에서 지속하는 바로 이 맑스주의이다. 그 잔해는 영원히 무의식적인 희생자가 될 수 없으며, 미래의 유일한 기준점은 코뮤니스트좌파, 국제 프롤레타리아당이 될 것이다.

 

오노라토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당의 쇄신을 위한 기본적 및 조직적 정책을 유지하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기 위해 간부를 양성하고 활동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 데이먼과 같은 동지들의 투쟁을 통해 형성된 성원으로서 우리는 그의 교훈을 함께 실천할 것을 맹세한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1999-11-01/the-work-of-comrade-damen-in-the-communist-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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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국제대회의 비극

국제대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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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자 전망」(IP) 웹 사이트에서 ‘코뮤니스트좌파 대회’(2023년 7월에 게시됨)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읽었다. IP(전 ICC, 현재는 ‘코뮤니즘화’)와 논쟁(前 ICC), 대부분 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성원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이 회의를 조직했으며, ‘국제대회’라고 화려하게 불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대회를 국제대회라고 부르기에는 비극적인 행사였다. 이렇게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제를 회피했으며, 대회 주최자의 견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종파적인 방식으로 논쟁을 피했기 때문이다.

 

위의 글에 나타난 개요에는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계급관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근본적인 위험을 나타내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핵심 문제, 즉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사이 전쟁과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두 블록 형성,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를 종식하지 않으면 3차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역학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코뮤니스트좌파의 자주적 대회라면 제국주의 사이 전쟁의 문제와 각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국제주의 투쟁에서 혁명가들이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우선시할 것이다. 그러나 주최 측은 1914년 이후 제국주의 전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의 의견 차이를 첫 번째 요점으로 안건의 순서를 정했다. 모든 종류의 이론가들은 약 150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본주의의 쇠퇴기와 다양한 경제적 설명, 주로 시장포화 및 이윤율 하락이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이론가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회 애국적 사회민주주의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사이의 단절에서 서로 다른 위기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단절의 양극단에 있는 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론적 쟁점은 침머발트 대회와 키엔탈 대회에서 혁명가들 간의 토론과 협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코뮤니스트좌파를 주장하던 조직들(ICC와 현재의 ICT)은 경제 이론을 발견하여 각 분파를 서로 분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1914년 이후 자본주의가 쇠퇴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이후의 모든 전쟁이 제국주의 사이 전쟁이었으며,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에 맞서 계급 이익을 위해 싸워야만 전쟁을 멈추거나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1) 1914년 이후 쇠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인해 발생하는 논의는 자신들의 모든 입장을 훼손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다양한 조직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동시에, 이 종파주의는 독단적인 입장의 배후에 있는 '이론가'로 자리 잡은 사람들의 종파들 내부에서 자기 입장을 옹호한다.

 

「국제주의자 전망」의 한 성원이 작성한 '대회'의 다음과 같은 개요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 그들은 자본주의가 이미 쇠퇴하였고 쓸모없다는 것을 정치 원칙의 최우선으로 삼아 그러한 입장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을 선호했다.

• 그들은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쇠퇴에 대해 풍부한 역사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논증과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반대하는 우리들의 이론적 발전을 무시한 채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대회에 참가한 언론과 다른 언론에서 이러한 효과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을 해왔다. 그러나 종파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방어적 편견과 함께 단순하고 교조적인 위안의 수단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히 부정적인 것이다.

• 그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곳에서 파괴를 낳고 있음에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과 자기 조직화 능력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일련의 생각해야 할 사항을 만들었다. 제한적이고 피상적인 고찰로 인해 자기 방종의 종파적 어조를 유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때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필요한 국제주의 혁명 활동에 대한 ICC와 ICT의 계획을 모두 비판했다. 두 단체의 성명서 모두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논의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동지들’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촉구'라는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12가지 테제를 제시하고 ‘이 요점이 당신의 입장을 대략 요약해서 동의한다면’ 개인과 단체는 연락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 테제들은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을 위한 협력을 위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를 위해 그룹과 개인이 이러한 특정 입장에 대해 동지들과 협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논제의 일부에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성명은 ICT의 약식 버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그들은 ICT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2023년 5월 대회의 맥락에서, 12개 테제 중 3개 테제에서 그로스만/매틱의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 이론이 주기적 또는 경기 순환적 위기뿐만 아니라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하락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이론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으며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ICT의 자발성과 자체 조직 건설에 대한 절대적 우선순위는 다른 그룹과의 공동 활동으로 이어질 국제대회를 통해 당을 준비하려는 ICT 전임자들의 원래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또 하나의 보기이다.2)

 

따라서 2023년 5월 위원회 참여를 위한 첫 번째 정치적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을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낡은 체제이다.’ IP와 논쟁은 이 기준이 ICC와 ICT의 호소에 대한 비판의 공동 서명자로서 우리를 배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여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요소와 그룹의 모임처럼 최소한의 요점으로 충분하며, 1914년 이후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생각이 참여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전히 의제에 포함되어 있다면, 현재의 제국주의 사이 전쟁을 논의한 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메시지였다.

 

우리가 NWBCW 위원회의 12개 항목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이후, ICT는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부분들을 삭제하여 5가지 항목으로 축소했다. 최근 ICT의 국제국 성명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국제주의자가 현재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의 심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논쟁에 갇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은 NWBCW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주의자로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들어온 것과 같은 오래된 얘기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을 만들고 점점 더 절망적인 체제에 직면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모여야 하는 현실에서 서로 신뢰를 구축하려면 몇 가지 차이점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동시에, NWBCW는 전면적인 정치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 사항에 따른 국제주의적 입장(강대국 제국주의 국가이든 약소국 제국주의 국가든 그 어떤 국가도 지원하지 않으며, 모두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서 국가적 지분을 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3)

 

최악의 관료주의 전통에서, 약간의 공감을 얻는 비판을 받게 된 후 그들의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비판과 비판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해’와 ‘과거의 논쟁’으로 전체 문제를 덮고 있다. 아마도 1970년 룩셈부르크 지지자들과 그로스만/매틱 위기 이론 사이의 논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쇠퇴에 대한 현재의 논의와는 매우 다른 논쟁이다.

 

ICT가 NWBCW의 가입 기준 변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가정해 보겠다. 1914년 이후 자본주의의 쇠퇴를 인정하는 것을 5월 모임의 가입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분명히 그들은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것을 기뻐했다. ICT는 비겁하게도 ICT의 프랑스 간행물에 「빌랑과 전망」(Bilan et Perspectives)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숨기면서 참여했다.

 

각자의 호소 이후 ICT와 ICC는 자신들의 방침을 따랐고, 다른 단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이러한 계획에 동참하거나 입장을 밝히고 그들의 방침을 따랐다. 종파주의는 여전히 남아있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에 대항하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의 조직적이고 공통된 투쟁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다른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본질에 합의하려고 노력하고, 모두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대하여 합의에 도달하는 시간을 정하는 대신, 그들은 힘의 관계에 따라 관리하고 접근을 시작하는 자신의 경향으로 요소를 포착하려고 하는 종파적 행동 방식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더 활동적인 사람들은 ICT가 출범한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서 언급 한 텍스트에서 종파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전통적인 맥락에서 대차 대조표를 작성하고 오만하게 행동한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실현하기 쉽지만, 종파의 편안한 역학을 깨뜨리기 때문에 종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들 계획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엄격하게 베일로 가려야 한다. 당신이 굴복하지 않고 그들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당신을 배척하고 기회주의적 침묵으로 대응한다.

 

ICC처럼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나머지를 적대적인 기생주의로 규정하는 세력도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소수의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서 혁명적 열정을 감지한다. ICT와 같은 다른 조직은 여러분이 그들의 게임을 하거나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입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전통적인 방식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보르디가주의 지부처럼 그들 사이에서 분열된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완고함을 보인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우크라이나 자본(그리고 나토 동맹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방어를 선택한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부 집단은 이 문제를 마치 다른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두 블록은 점점 더 큰 규모로 서로를 강화하고, 통합하고, 대립하고 있다. 모든 부르주아지와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더 많은 잉여가치를 쥐어짜 내려 한다. 그들은 직간접 임금과 사회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국제적 규모로 필수적인 전략을 관장하는 군사주의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 및 사회적 압력과 퇴보, 경쟁자에 대한 해당 블록의 이익에 항복하라는 민족주의적 압력, 각 부르주아지에 의한 대규모 착취와 제국주의 정치 조작, 총알받이가 되고 대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고통받는 대중,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전쟁은 훨씬 더 과감한 것을 요구하고 이끌어간다.

 

따라서 자본의 과잉 생산의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를 통해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공격이 양적, 질적으로 점점 더 큰 규모로 발전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근절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제국주의적 군사주의 노선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에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종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제한된 역량을 약화하는 암세포다.

 

2023년 7월 25일

아니발과 프레도코르보(Aníbal and FredoCorvo)

 

<주>

1) 이 글의 저자들은 쇠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발은 쇠퇴는 가까운 미래에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에 관한 토론을 참조하라. 링크(Link)의 최근 글에 대해 아니발의 답변. 코르보는 자본주의의 쇠퇴기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부분을 참조하라. 하지만 어떻게?

2)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두 가지 호소. 관심 있는 독자는 두 사이트 모두에서 우리의 비판, 대안 및 HC가 비판한 부분에 대한 답변에 따른 앞뒤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국제대회에 대해서는 코뮤니스트좌파의 국제대회: 1977-1980을 참조하라. 단행본 - 2023년 5월 25일. 편집자의 다소 개인적인 소개와 함께 완전히 필사되었다. 618쪽.

3)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국제국,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2023년 5월)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07/25/on-a-travesty-of-an-international-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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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이니셔티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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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서는 지난 5월 2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국제서기국이 승인했다. 정치 체제의 진정한 계급적 기반을 드러내는 데 제국주의 전쟁만큼 좋은 것은 없으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확실하게 입증했다. 자본주의 좌파(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대응은 제국주의 전선(나토 또는 러시아) 중 하나 또는 다른 쪽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같은 입장을 숨기는 거짓 평화주의로 일관했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실질적으로 동일시되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뒤에 나토가 있고, 패자는 모든 곳의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볼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자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심하게 분열되었다. 친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그것에 대해 단순히 더 큰 강대국이 더 작은 강대국을 점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 간의 패권 다툼이 심화함에 따라 현재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게 될 세계 위기 분쟁의 최종적인 국면이다.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통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분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체제의 정체로 인해 뚜렷한 경제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선택지가 좁아졌음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의 코뮤니스트좌파는 노동계급의 국제적 이익을 위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 비판했다. ICT는 조직화하지 않으면 세계 노동계급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다른 국제주의자들과 협력함으로써 국제주의적 입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전 세계 노동자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을 조직하기 위해 위원회에 참가한 이유이다. 이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아직 국제주의자가 모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바로 지금 실질적인 조직화를 위한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 문서는 우리가 1년 동안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대차대조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하며 의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경고했다.1) 두 달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은 우크라이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화된 전쟁의 위협이라는 우리의 분석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15개월이 지난 지금, 현재의 전쟁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결함만을 더 심화했다.2) 이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공개적인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 친러시아 세력을 구축한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이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재무장 계획은 분리주의 지역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고, 결국 침공으로 이어졌으며, 우크라이나가 더 강력한 저항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서구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전쟁터에 국한되지 않는 새롭게 멈출 수 없는 군비 경쟁을 촉발했다.3) 미국은 중국의 야망을 비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양국은 남중국해에서 적대적 움직임을 강화했다. 푸틴이 서구를 북대서양조약기구로 단결하게 했지만, 러시아, 중국, 이란 정권에 대한 제재로 인해 이들 국가는 더욱 긴밀해졌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가 심연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궁극적 힘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 세계 노동자의 정치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낮은 생활수준은 내일의 전면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더 강하게 타격하기 위한 준비 운동일 뿐이다. 지난 40년 동안 노동계급은 역사가 이제 시작된 계급이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게임의 객체에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의 주체로 변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작년 4월, ICT가 정치조직에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어 있지 않은 모든 진정한 국제주의자에게 NWBCW의 기치 아래 지역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호소문4)을 발표한 이유이다. 조직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성원과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첫 번째 지역 위원회가 지난해 3월 리버풀에서 아래와 같은 5가지 원칙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국가 자본, '덜 악한' 국가, 또는 구성 중인 어떤 국가도 지원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재산, 화폐와 이윤을 위한 생산은 자유롭게 연합한 세계 생산자들로 대체된 사회를 위하여.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벌어질 전쟁으로 인해 노동계급에 가해지는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반대한다.

•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투쟁을 위해, 자주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와 노동자평의회의 구성을 위해.

•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결집을 위해.

 

그 이후로 글래스고, 파리, 몬트리올, 토론토, 시카고, 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 튀르키예, 한국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일부는 ICT 성원이 포함된 곳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이렇게 빠르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모습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지만, 우리가 여기서 구축하는 것이 단지 국제적 개입을 위한 틀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지는 않다. 원래 호소문에서 썼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더 긴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보다 먼저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수십 년 동안 쇠퇴한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크라이나 상황은 정부가 모든 곳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며, 우리는 일상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우리' 지도자들의 정치적 계획에 대응해야 한다. 현재 인류의 재난 상황에서 비록 역사가 새롭게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곧 계급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반대하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가 약간의 타협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이는 향후 제국주의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6)

 

또한, 우리는 새로운 위원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며 어려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자본주의 좌파의 다양한 기회주의자들(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가짜 국제주의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은 NWBCW 이미지나 구호를 사용하지만, 그 글에는 국제주의적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7) 그들은 ’거짓 깃발 아래‘ (우리의 깃발!) 날아다니고 있지만, ’억압받는 민족‘(즉, 민족주의 투쟁)의 ’약자 제국주의‘ 또는 미국에 반대하는 모든 국가를 지원한다는 그들의 실제 정치를 숨길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지지할 수 있는 민족이나 민족의 투쟁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NWBCW가 실제로 어떤 조직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했거나, 오히려 이전의 급진 개혁주의 활동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포틀랜드와 로마8)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데, 특정 세력은 40년 동안의 후퇴에서 벗어나 이제 막 인플레이션에 대한 싸움에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계급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 NWBCW를 생각했다. 그들의 당면주의 그리고 극도로 행동주의적 관점은 위원회의 소멸을 초래했을 뿐이다.

 

또한, NWBCW는 1940년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과 같은 개념의 공장 그룹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PCInt의 성원과 긴밀한 지지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임금 투쟁을 제도화하고 자본주의 합법성의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국가기구에 통합된 노조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싸우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원래 '노조 공장 그룹'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노조는 이미 오래전에 맑스가 말했던 ’사회주의 학교‘가 아니었고, 이제 국가가 파업 운동을 제한하는 법적 범위 내에서 항상 착취자들과 진행하는 협상을 관리하는 주체가 되었다. 따라서 계급의 영구적인 경제 조직은 기존의 현상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조직에 불과할 운명이었다(이 때문에 평조합원 노조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해결 방법은 이러한 그룹의 공장에서 정치적,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투쟁에서 PCInt의 무기가 되었다. 그들은 계급을 조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협조주의에 저항하여 계급 내 코뮤니스트들을 조직하려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는 산업 구조조정과 새로운 계급 구성으로 인해 서로 다른 직장의 노동자들이 조직화 가능성이 더 큰 '지역' 그룹으로 결합하는 방안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는 PCInt(그리고 더 나아가 ICT)의 도구였으며, 지금도 도구이다. NWBCW는 ICT 성원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전통을 가진 국제주의자들이 모여서 모든 측면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조직하고 선전하기 위한 국제적인 위원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임무는 오늘날의 생활 수준 하락을 미래의 더 전면화된 전쟁 위협과 연결하는 것이다. NWBCW는 현실적인 문제(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그들이 겪었던)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룹은 흥망성쇠를 거듭할 것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주의자로서의 우리의 헌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우리가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NWBCW는 더 큰 계급 운동의 일부로서만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NWBCW 위원회는 역시 직장의 특별한 투쟁에서 발생한 단순한 투쟁 그룹이 아니다. 후자는 투쟁 속에서 그리고 투쟁을 위하여 만들어진 조직이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단체는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회원 카드나 강령, 심지어 기본적으로 합의(NWBCW 위원회와 같은)해야 하는 항목도 없다. NWBCW 위원회는 모든 노동자와 투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NWBCW 위원회는 대중 집회, 파업위원회, 노동자평의회 등과 같은 계급의 다른 단일 조직과 같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폭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투쟁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조직이다.

 

현재 노동자 투쟁의 문제점 중 하나는 투쟁이 일시적(지금 여기저기 발생하는 투쟁)이고, 특정 부문의 투쟁이 소멸하면 사라진다는 점이다. NWBCW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끌고 가는 더 큰 그림에 집중함으로써 더 장기적인 목적을 제공할 수 있다. NWBCW는 앞으로 다가올 더 광범위한 투쟁을 예상하여 다른 국제주의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아직 자유로울 때) 더 광범위한 위원회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리고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실제로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NWBCW는 공개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일부 동지는 이를 1915년 침머발트 좌파의 전쟁 반대와 반(反)자본주의 정신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체제에 대한 투쟁이기도 한 점을 언급하지 않은 침머발트 선언의 주요 내용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NWBCW는 침머발트 좌파(나중에 1919년 제3 인터내셔널 설립의 기초가 된)의 이러한 측면을 공유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활동하는 환경이 100년 전 침머발트의 선배들과는 많이 다르기에 이러한 역사적 비교를 과도하게 확대해서 적용하는 것은 안 된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침머발트에서 만났을 때 1차 세계대전은 거의 1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부(러시아와 더불어, 폴란드, 불가리아, 세르비아 정당들만이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촉구했다)를 대부분 지지했던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지도부가 배신함으로써 입은 피해를 그들은 복구하려 했다. 당시 제2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재결집하고 모든 곳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파업을 벌여 제국주의 전쟁을 막겠다는 결의를 잇달아 통과시켰기 때문에 그 배신감은 더욱 컸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쇠퇴한 운동에 새로운 주도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검증된 노동계급의 전쟁 반대 입장을 새로운 운동에 도입하는 것이다.

 

모든 국제주의자가 현재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의 심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논쟁에만 분명히 갇혀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NWBCW가 의미하는 바를 깊이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주의자로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자주 들었던 것과 똑같은 오래된 논쟁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을 건설하고, 점점 더 절망적인 체제에 직면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모으는 실질적인 부분에서 신뢰를 구축하려면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을 동의해야 하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동시에 NWBCW는 전면적인 정치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 요점의 국제주의적 입장(강대국 제국주의 국가든 약소국 제국주의 국가든 그 어떤 국가도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서 국가적 지분을 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재조직 계획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진 긍정적인 운동에 참여하면 정치적 토론을 자극하고 교류를 장려하여 운동을 확대하고 심화시킬 수 있지만, 미래의 인터내셔널에서 정치적 재조직의 문제는 실제 계급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더 광범위한 계급운동만이 혁명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과거의 차이를 쓸모없게 만들 것이며, 이는 잠재적으로 국제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유용성을 잃은 체제에 반대하는 계급전쟁에서 강령적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응집력 있는 국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더욱 유익한 정치 과정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따라서 이는 현재를 위한 계획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모든 기간에 대한 방향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ICT에 NWBCW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전통의 일부이다. 이는 1944년 PCInt가 발표한 '단결된 프롤레타리아 전선을 위한 호소문'과 일치한다.9) PCInt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양측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적 입장을 받아들인 모든 ’프롤레타리아 및 비(非)당파적 정치조직‘에 열려 있었다. PCInt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적인 조직적 항목으로 결론을 내렸다.

 

1. 이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은 (어떤 정치적 명칭을 사용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당의 요구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사상을 토론하고 명확히 하여 수용한 후, 직장에서 먼저 접촉하고 먼저 조직적으로 결집하는 설립자로 스스로 나서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이제 사장과 파시스트 하수인에 맞서 자신을 조직하는 능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노동자 공동전선은 전쟁과 그 주요 정치세력인 파시스트와 민주주의에 맞서 계급의 방어벽에서 싸울 운명을 가진 세력을 모으고 단단하게 한다.

 

2.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임무는 노동자들이 전쟁 선전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 혁명가로 위장한 제국주의자 들의 가면을 벗겨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자유의 기치 아래서도 전쟁의 목적과 지속을 위해 투쟁과 희생의 정신이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이 글 상단의 다섯 가지 기본 입장을 받아들여 자신의 위원회를 설립하거나 기존 위원회에 가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궤적이 지속해서 우리에게 가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모든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에게 같은 호소를 하고 있다.

 

2023년 5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국제서기국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6/ukraine-and-taiwan-flashpoints-in-an-uncertain-imperialist-world

2) 최근의 표현은 2023년 ICT의 메이데이 성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4-30/may-day-2023-there-is-no-right-side-in-an-imperialist-war-no-war-but-the-class

3)

https://www.leftcom.org/en/artiꠓcles/2023-02-24/one-year-since-the-invasion-ofꠓukraine-on-the-road-to-world-war-three

4) 우리의 원래 호소문은 여기에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4-06/no-war-but-the-class-war-a-call-for-action

5) https://www.leftcom.org/en/artiꠓcles/2022-05-02/no-war-but-the-class-war-stateꠓment-from-nwbcw-liverpool

6)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4-06/no-war-but-the-class-war-a-call-for-action

7) 이탈리아의 고전적이지만, 더 정교한 보기는 다음과 같다.

https://pungolorosso.wordpress.com/2022/11/01/no-to-imperialist-war-joint-statement-adopted-by-the-organizers-of-the-16-october-conference-in-rome/

그러나 10월 16일의 영국의 스탈린주의 YCL의 조직가에 의해 채택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공동성명은 비록 그들의 입장이 전체적으로 평화주의적이며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투쟁(동시에 러시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피하는)하기 위한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과 연계되지 않지만, 때때로 그것을 사용한다.

8) 로마위원회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leftcom.org/it/articles/2023-01-03/sul-comitato-di-roma-nwbcw-un-intervista

9)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10-31/1944-appeal-of-the-internaꠓtionalist-communist-party-for-the-creation-of-aꠓunit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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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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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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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자본가의 계획에 제동을 걸려면 투쟁을 장악해야 한다!

자본가의 계획에 제동을 걸려면 투쟁을 장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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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노동자 이익을 방어해야 할 사람들이 기만과 추악한 속임수를 이용해 가장 먼저 그들을 배신한다…

 

‘스탠드-업 파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그저, 유럽 때로는 미국에서 시행된 ‘순환’ 파업의 새로운 명칭일 뿐이다. UAW(미국자동차노동조합)이 ‘새롭게’ 명명한 이 유형의 파업은 노동자 투쟁(항상 자본가에게 주도권을 넘긴다)을 사보타주할 목적으로 날조된 두 가지 거짓말 중 하나다. 자동차 제조업자들에게 사전에 파업을 경고함으로써, 기습적 요소를 상실해 버린다. 그렇게 해서 생산 마비가 효과적 행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것은 어떤 플랜트 노동자로부터 다른 곳의 노동자를 격리한다는 사실보다는 덜 논쟁적이다. 노동자 단결이 그들의 강점이라면, ‘스탠드-업’ 시위는 실질적으로 노동자 단결을 약화한다.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2022년과 2023년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를 실패로 내몬 사례가 있다. 전술가 사이에는 어떤 권력 해체가 아니라, ‘권력 집중’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경우, 우리 권력이 그것의 운명에 가로막혀 버렸다는 것이다. 파업을 벌인 자동차 노동자는 파업 비용으로 매주 500달러를 받지만, UAW의 파업 자금은 거의 10억 달러에 이른다. 치욕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것이 파업을 실패로 이끄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파업 자금을 명시된 목적으로 풀지 않으려고 한다. 노동조합의 지지 없는, 그러나 사보타주하는 투쟁에 배팅하면서, 자금을 푸는 것은 노동자에게서 착취한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들쥐는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것을 가져간다…) 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노동조합 지시에 불복함으로써 노동조합 간부들이 항복하도록 위협하는 것이다. 더 많은 지출이 수반 될 수밖에 없다. 미시간주 웨인의 포드 플랜트에서 600명의 해고, 캔자스주 페어팩스의 GM 플랜트에서 2천 명의 해고 사례로, ‘스탠드-업’은 자동차 제조업자들이 처우의 규모를 축소하도록 만든다. 파업 자금 고갈 못지않게 혹독하다.

 

두 번째 거짓말은, 경찰·법원·입법부 즉, 국가가 ‘내 편’이라는 사실이다. UAW 지방 기능직 900인은 ‘경찰은 우리 편이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 지시 전달의 정당화를 위해, 노동자들이 플랜트 입구를 막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 노동조합(수백 만의 선이 국가와 닿아있다)을 통해서 노동자는 연대하는데, 파업은 국립노동위원회의 합법적 프레임 작업에 국한된다. 그리고 이것은 확고한, 자발적인 행위를 막는다. 이들 기관은 중립적 결정권자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노동자 투쟁을 포함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 중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착취자의 당근과 채찍 게임에서 ‘당근’(거짓말, 노조의 속임수)이 실패하면, 피(被)착취자를 훈련 시키기 위해 국가는 거리낌 없이 ‘채찍’(순전히 노동자의 행위를 억압)을 사용한다. 과거 멕시코·한국·중국 등지에서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외압 사례는, 모든 정부가 노동자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투쟁은 이것과 다른 국제적 차원을 보여준다. 토리노와 비양쿠르(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피아트·르노자동차 노동자 거대 주거지역의 도시들이), 디트로이트와 같은 운명으로 고통받듯이, 1970년대 이래 모든 주가 ‘재건’사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자동차 노동자(영역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공격을 거부하려면 우리는 ‘순환’ 파업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우리의 이익을 보호해 줄 ‘무기한’ 파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너무도 장기간 노동조합들이 노동자 투쟁 속도를 차단해 왔다. 다른 플랜트와 영역의 노동자들 사이에 세워진 장벽을 통과하려면 우리가 직접 페이스를 설정해야 한다. 이것은 공식적 계획 속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에 앞서 다른 플랜트로 파업을 확대, 파장을 일으키는 것(2019년 프랑스의 병원 노동자들의 성공적 사례처럼). 출입구를 막는 것. UAW 기능직들의 지시에 따라서가 아닌, 노동자들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집회에서 스스로 이런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과거 패배는 과거에 두고, 국제적 투쟁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표단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체제, 그것의 존재는 때때로 노동자 이익에 반(反)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체제의 이윤 확대를 위한 자원이며, 3차 세계대전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노동조합 방어선을 뚫기 위해 무기한 투쟁을 준비하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미국지부

2023년 9월 21일

 

IWG 전단은 자동차 노동자 파업 중 배포되었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9-21/to-throw-a-wrench-in-the-bosses-plans-we-need-to-take-control-of-the-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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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맑스주의와 섹슈얼리티

맑스주의와 섹슈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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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핵심에 있는 모순들이 상부구조 차원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이데올로기·문화·언어·조직의 형태들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으며, 이전 생산양식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인간 활동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자본주의적 모순이 격렬해지는 위기의 시기에, 섹슈얼리티는 공개적인 정치적 싸움터가 된다. 멀리서 확인할 필요도 없다. 4세대 페미니즘, 여성 파업,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자들(TERFs),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들(incels) 같은 현상과 정체성, 성노동, 대리모, 가정 폭력, 성폭력, 성소수자 관련 분쟁들에서 대립과 적대가 명백하게 부각되고 있다. 부득이하게 많은 혁명가가 이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데, 특히 개인적 차원에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맑스주의자가 그 모든 지저분한 차원에서 섹슈얼리티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은 단지 추상적인 피해망상이 아니다.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다른 곳을 찾을 것이고, 자본의 우파 또는 좌파(둘 다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의 영향력 아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충돌하는 권리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정당이 국가적 억압에 항의하고 저항해야 하는 의무는 어떤 특별한 ‘국가의 권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데, 이것은 이를테면 남녀의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위한 투쟁이 부르주아 해방주의자들의 운동이 말하는 특별한 ‘여성의 권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 의무는 계급 체제와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적 지배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기본 입장으로부터만 발생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민족 문제」, 1909)

 

우파의 것이든 좌파의 것이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충돌하는 권리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적대관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권리 대 트랜스젠더의 권리, 세속적 권리 대 종교적 권리, 재산권 대 노동자의 권리 등 그 어떤 것이든 원칙은 동일하다. 즉 한쪽의 권리는 다른 한쪽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하며, 이 도덕적·법적인 체계 안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개혁주의 또는 그들의 파생물들과 같은 부르주아 사고의 다양한 가닥은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지―극단적인 경우, 그것은 사회의 이 부분 또는 저 부분의 근절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했다―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인권, 즉 원래는 ‘인간(남성)의 권리(rights of man)’라고 알져진 것은 17~19세기에는 쇠퇴하는 봉건 질서에 맞서는 가장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는 국가와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특정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부상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점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분리에 기초한다. 이러한 분리의 권리,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제한된 개인이 권리가 바로 자유권이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실제로 적용한 것이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 권리이다.” (칼 맑스,「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1844)

 

맑스주자들로서 우리의 체계는 다르다. 우리는 상충하는 권리라는 것을 믿지 않으며, 합리적인 균형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맑스주의자에게 코뮤니즘은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해되는 권리는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권리의 세계는 국가, 군대, 경찰, 법률 시스템의 세계로 이 모든 것은 권리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제도들이다. 이 모든 제도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분리를 표현한다. 정의상 권리는 계급 사회를 의미하며, 계급 사회는 우리가 현대의 억압과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유물론적 관념

 

인권이 실제로 인간들 사이의 인위적인 적대관계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제 우리는 역사적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체계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성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는 생물학적 결정론(보기를 들어 많은 스탈린주의자가 젠더 문제를 다룰 때 보여준 것처럼)과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섹슈얼리티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간 활동으로 간주한다.

 

최근의 추정에 따르면 호모 속(屬)은 최대 300만 년 전에 출현했고, 우리 종(種)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최초의 원시적 성 분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 시대(4만 년 전)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렵 채집 사회는 협력과 상호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업 자체가 아직은 남녀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신석기 시대(12,000년 전) 무렵 식량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 다시 말해 농업의 발달로 전환되면서 바뀌었다. 정착지가 발달하고 노동 생산성이 증대하고 잉여가 전유됨과 동시에, 사유 재산이 생겨나면서 최초의 계급 사회가 탄생한다. 평등주의는 점차 남녀 간의 위계와 불평등한 관계로 대체된다.

 

“인류 사회의 천년 역사를 통해 사랑은 단순한 생물학적 본능―최상위 생물부터 최하등 생물까지 모든 생물에 내재된 번식 충동―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정서적 측면을 획득하는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 발전해 왔다. …… 역사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사회는 사랑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합법적”인지(즉, 주어진 사회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정의하는 규범을 확립했다. …… 부족 단계에서 사랑은 혈연적 애착(자매들과 형제들 사이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이전 시대의 고대 문화는 무엇보다도 사랑-우정을 제일로 쳤다. 봉건 세계는 결혼하지 않은 이성 간의 플라토닉한 궁정의 사랑을 이상화했다. 부르주아지는 일부일처제의 부부애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날개 달린 에로스를 위한 길」, 1923)

 

분업과 재산 관계는 수천 년 동안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거치면서 크게 발전해 왔다. 이러한 생산양식은 (국가와 종교 단체 또는 사회 자체에 의해) 종종 잔인한 방식으로 자체적인 성 관련 법과 도덕을 강요했다. 당연히 이것은 의식적으로나 잠재의식적으로나 현대 섹슈얼리티의 모든 측면에 상처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성, 섹슈얼리티 또는 젠더에 기초한 차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우리는 이것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사회를 부계 권력 아래의 가족 단위로 조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를 약화시켰지만, 가부장제를 완전히 종식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유재산과 분업이 폐지된 사회만이 그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 이것은 맑스주의자가 오늘날 성적 억압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 사회의 옹호자로서 우리는 입에 발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우리는 당대의 성적 적대관계의 사례들을 더 광범위한 자본주의 위기의 상황과 연결해야 한다.

 

“혁명운동은 …… 자본주의의 경제적 해체가 초래한 가부장적 가족의 쇠퇴 과정을 완성할 것이다. …… 정치적 반동 세력이 반동의 요인으로서 성적 억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 억압을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혁명 정당은 성적 반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회와 자본에 대한 이 반란을 지지해야 한다.” (빌헬름 라이히,「성도덕의 출현」(The Imposition of Sexual Morality), 1932)

 

 

재무장한 에로스

 

자본의 좌파와 우파는 계급 사회를 어떻게 관리할지 따라서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땜질하면서 문제의 근원이 실제 놓여있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보존하려고 할 따름이다. 페미니즘과 그 이데올로기적 자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곤경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자본주의를 훼손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으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조차도 페미니즘을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임금 노동, 화폐, 국가의 폐지가 아니라 부의 재분배와 복지 국가를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인류 전체가 나아갈 유일한 길은 착취당하는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국가의 족쇄를 벗어던지는 국제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이윤 욕구의 낡아빠진 압박에서 생산을 해방시키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에 전념하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을 창조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로 이전하는 것은 일부일처제 가족이 더는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페미니스트의 최후의 수단은 코뮤니즘이 가부장적 태도를 사회에서 자동으로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에 우리는 동의할 것이지만, 요점은 코뮤니스트 혁명 없이는 태도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어떠한 근거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CWO,「여성과 코뮤니즘」, 1986)

 

새로운 사회의 청사진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계급이 폐지되면 우리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동료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더는 상충하는 권리와 정체성의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이윤을 위한 경쟁 충동에도 얽매이지 않게 됨으로써, 미래 사회는 사람에 대한 통치를 사물에 대한 관리로 대체할 것이다. 상품 교환이나 편견이나 폭력보다는 사랑-동지애와 내적 연대가 성 관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곧 다가올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복 이후에 성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정돈될지 지금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부정적인 특성을 띠며 대부분은 사라질 것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을 때 대답이 나올 것이다. …… 이 사람들이 출현하면, 그들은 오늘날은 누구나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의 개인적 관행에 대해 자신만의 관행을 따르고 그에 상응하는 여론을 형성할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의 기원」, 1884)

 

혁명가들의 임무는 “에로스를 사회생활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구성체에 따라 그를 재무장시키고, 동지적 연대라는 위대한 새로운 심리적 힘의 정신으로 성 관계를 교육하는 것”이다.(콜론타이)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수천 년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 과정이 끝나면 평등주의와 협력 노선을 따라 노동계급이 사회를 개조하는 과도기가 시작될 것이며, 더는 물질적 근거가 없는 가부장적 태도는 코뮤니즘이 현실화되면서 세월의 찌꺼기와 함께 휩쓸려갈 것이다.

 

다이즈바스(Dyjbas)

 

2020년 5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옮긴이ㅣ김종원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5-09/marxism-and-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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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침머발트 선언문(1915년)

침머발트 선언문(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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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동자여!

 

1년 이상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 전장에는 수백만 구의 시체가 널려 있고, 수백만 명이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유럽은 거대한 도살장과 같다. 여러 세대에 걸친 노동으로 이룩한 문명 전체가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자부심이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야만이 승리하여 이를 자축하고 있다.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한 진실과 관계없이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전쟁이 각국의 자본가계급이 전 세계의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착취하여 이윤에 대한 탐욕을 채우려는 제국주의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나 정치적으로 약한 국가는 강대국에 예속하고, 강대국은 전쟁을 이용해 자신들의 착취적 이익에 따라 유혈과 철권으로 세계 지도를 다시 만들려고 한다. 벨기에, 폴란드, 발칸 반도 국가, 아르메니아와 같은 민족과 국가 전체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분할되어 병합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전쟁의 원동력이 완전히 악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 세계 재앙의 본질을 대중의 인식에서 감춰왔던 장막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민중이 흘린 피에서 전쟁 수익이라는 붉은 금을 만들어 내는 모든 국가의 자본가들은, 이 전쟁이 조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거짓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함께 자국민의 자유를 파괴의 현장에 묻어버리고 있다. 승자와 패자 모두,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짓누를 새로운 족쇄, 새로운 사슬, 새로운 짐이 생겨나고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생활 수준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빈곤과 궁핍, 실업과 인플레이션, 영양실조와 전염병이 발생했다. 전쟁 비용을 지불하는데 사회 개혁의 성과를 훼손하고 모든 진전을 방해하며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진하게 할 것이다.

 

지적, 도덕적 황폐화, 경제적 재앙, 정치적 반작용 등 국가 사이의 끔찍한 분쟁이 불러온 폐해다.

 

따라서 전쟁은 노동 대중의 이익, 역사적 발전의 환경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동의 존재라는 인간의 첫 번째 조건과도 화해 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세력, 손에 운명을 쥐고 있는 국가, 군주제 및 공화당 정부, 비밀 외교, 방대한 사용자 조직, 중산층 정당, 자본주의 언론, 교회, 이 모든 세력은 그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사회 질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착취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멸시받던 여러분은 전쟁 발발 당시 형제이자 동지로서 인정받다가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제 군국주의가 여러분을 손상하고, 상처입히고, 타락시키고, 파괴했을 때, 지배자들은 여러분에게 이익, 목표, 이상을 포기할 것을, 한마디로 "국가 휴전"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여러분은 자신의 견해, 감정, 고통을 표현할 수 없으며, 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투쟁할 수 없다. 언론은 재갈을 물리고, 정치적 권리와 자유는 짓밟히고 있다. 이처럼 철권통치를 하는 군부 독재 정권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유럽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으며, 감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노동계급은 군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해 왔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내 및 국제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제국주의 결과로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해가는 전쟁의 위협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슈투트가르트, 코펜하겐, 바젤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길을 결정하는 데 참여했던 우리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계급 조직은 전쟁 발발 이후 그에 따른 의무를 무시했다. 그들의 대표들은 노동자에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에 해당하는 노동계급 투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들은 전쟁을 계속한 지배계급의 공로를 인정하는 투표를 했다. 그들은 매우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그들의 정부에 의지했다. 그들은 언론과 특사를 통해 각국 정부 정책에 대한 중립국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국가의 휴전 준수를 위해 사회주의 장관들을 정부에 인질로 바쳤으며, 따라서 이 전쟁과 그 목표, 방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당들이 개별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모든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을 대표했던 「국제사회주의서기국」(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도 실패했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이, 비록 그 일부가 제1차 세계대전의 국가적 공황에 희생되지 않았거나 공황을 극복하고 일어선 곳에서도, 국가 학살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지금도 모든 나라에서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동시에 벌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함께 만났다, 우리는 사회주의당, 노동조합 또는 그 소수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을 대표한다. 착취계급과의 국가적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계급 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서 있다. 우리는 국제 관계의 끊어진 유대를 새롭게 연결하고 노동계급을 재조직하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모였다.

 

이 투쟁은 또한 자유, 형제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우리의 임무는 합병이나 전쟁 배상금이 없는 즉,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러한 평화는 국가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사상이 척결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점령당한 국가에 대한 강제 편입이 없어야 한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합병은 안 되며, 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더욱 견딜 수 없는 강제적 경제 결합도 용납될 수 없다.

 

조직 노동자들이여!

 

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당신은 지배계급에 봉사하기 위해 에너지, 용기, 용감함을 발휘했다. 이제 자신의 대의를 위해, 사회주의의 신성한 목표를 위해, 피억압 국가와 노예 계급의 구원을 위해, 화해할 수 없는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여러분의 임무다.

 

모든 힘을 다해 이러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교전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이다. 피비린내 나는 야만과의 싸움에서 모든 효과적인 수단으로 형제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립국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다.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시급하고, 이보다 더 귀중하며, 이보다 더 숭고한 임무는 없었으며, 공동으로 이를 완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국가 사이 평화 구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너무 크지 않으며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니다.

 

일하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와 아버지! 홀어미와 고아! 다친 사람과 장애인!

 

전쟁으로 인해 또는 전쟁의 결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외친다. 국경 너머, 연기가 자욱한 전장 너머, 황폐해진 도시와 마을에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 의 이름으로

 

■독일 대표단: 조지 르데부르(George Ledebour), 아돌프 호프만(Adolph Hoffman)

■프랑스 대표단 : A. 부르데론(A. Bourderon), A. 메르하임(A. Merrheim)

■이탈리아 대표단 : G.E. 모딜리아니(G.E. Modigliani), 콘사니노 라자리(Consanino Lazzari)

■러시아 대표단: N. 레닌(N. Lenin), 폴 액셀로드(Paul Axelrod), M. 보브로프(M. Bobrov)

■폴란드 대표단: 세인트 라핀스키(St. Lapinski), A. 바르샤바키(A. Warski), Cz. (야곱) 하네키(Cz. (Jacob) Hanecki)

■사회주의 연맹: (루마니아 대표단) G. 라코프스키(G. Rakovsky) (불가리아 대표단) 바실 콜라로프(Vasil Kolarov)

■스웨덴 및 노르웨이 대표단: Z. 호글룬드(Z. Hoglund), 투레 네르만(Ture Nerman)

■네덜란드 대표단: H. 롤랜드 홀스트(H. Roland Holst)

■스위스 대표단: 로버트 그림(Robert Grimm)

 

1915년 9월

 

 

1915년 9월 스위스에서 침머발트(전쟁 반대) 회의가 열렸다. 비록 42명의 대표만이 참석했지만(트로츠키에 따르면 4명의 지도자가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이 회의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인, 제3 인터내셔널의 토대를 마련했다.

 

 

좌파의 선언

 

서명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은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선언문에는 공개적인 기회주의나 급진적 문구 속에 숨어 있는 기회주의, 즉 인터내셔널 붕괴의 주요 원인뿐만 아니라 그 붕괴를 지속하려는 기회주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선언문에는 전쟁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 언론과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직면하게 한 과제에 관해 분명한 맑스주의적 입장을 계속 옹호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선언문을 투쟁에 관한 요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한다. 그리고 투쟁에서 우리는 인터내셔널의 다른 부문과 함께 나란히 행진하기를 열망한다. 우리는 이번 선언문을 공식 절차에 포함할 것을 요청한다.

 

■서명: N. 레닌(N. Lenin), G. 지노비예프(G. Zinoviev), 라덱(,Radek) 네르만(Nerman) 호글룬드(Hoglund), 윈터(Winter)

 

 

 

<관련 글> 침머발트 좌파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까지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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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헤르만 호르터 (Herman Gorter)

 

 

나는 이 편지를 러시아의 바르샤바로의 승리의 진격 동안에 썼다는 것을 레닌 동지와 여러분, 그리고 독자에게 밝힌다. 또한, 나는 여러분과 독자들에게 많은 반복에 대하여 사과하고 싶다. 대부분 국가에서 ‘좌파’의 전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목 차

 

1. 소개

2. 노동조합의 문제

3. 의회주의

4.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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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개

 

사랑하는 레닌 동지!

 

나는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습니다. 동지의 다른 많은 저작에서처럼 소책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확실히 많은 다른 동지들처럼,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역시 확실하게 서식하던 이러한 「유아적 무질서」의 많은 흔적과 많은 싹이 고쳐졌고, 확실하게 더 고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동지가 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머릿속에 야기된 혼동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완전히 옳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혁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매우 다르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동지의 문서는 나에게, 즉 과거보다 더 많이, 전술의 모든 문제에서 그리고 혁명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출현하는 것 같은 현실, 실제적인 계급관계에 의존한다는 나의 판단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을 때,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동지가 비판한 ‘좌익’을 더는 지지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리고 「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이나 영국의 야당을 위하여 더는 기사를 쓰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 이를 거절해야 했습니다.

 

잘못된 근거

 

이러한 내 입장은 모순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레닌 동지, 모순은 소책자의 출발점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지가 믿는 것처럼, 러시아와 서유럽 혁명의 일치성에 대하여, 서유럽 혁명의 조건들, 말하자면 계급관계에 대하여 올바르지 않게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동지는 좌파, 반대파가 성장하는 토대를 잘못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지의 출발점을 수용한다면 소책자는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을 거부하면, 모든 소책자는 오류입니다. 모든 동지의 옳지 않은, 부분적으로 옳지 않고, 부분적으로 확실히 완전히 오류인, 판단은 특히 독일과 영국의 좌파운동에 대한 비난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위의 좌파운동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알고 있듯이, 모든 점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확실하게 방어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나는 동지의 저술에 대해 좌파 방어를 위해 대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좌파에 대한 방어는 좌파가 생성된 토대를 보여주고, 여기 서유럽에서, 그리고 현 단계에서 그들의 정당함과 우수성을 증명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특히 러시아에서 서유럽의 혁명에 대하여 지배적인 왜곡된 생각을 극복하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서유럽에서의 전술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전술도 서유럽 혁명에 의존하고 있어서 위에서 말한 양자 모두 중요합니다. 이러한 내 생각을 모스크바 회의에 참여해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반박

 

우선 동지들과 독자의 판단을 기만할 수도 있는 동지의 두 가지 소견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동지는 독일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지도자 독재', '대중 독재', '위로부터 또는 아래로부터' 등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소리를 하며 비웃고 조롱합니다. 위의 서술에 대하여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지의 조롱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서유럽에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많습니다. 서유럽에는 여전히 많은 나라에 제2 인터내셔널 유형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전히 올바른 지도자, 대중을 지배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 지도자를 찾고 있으며, 이러한 지도자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이 아래로부터, 즉 대중 자신의 독재를 통해 집행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나에게 등산 안내자가 있는데, 나를 절벽으로 안내한다면, 오히려 등산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지도자를 찾게 되면 우리는 지도자를 더는 찾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대중 위에서 지배하지 않고, 대중을 배반하지 않는 지도자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독일과 영국의 좌파는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계급과 대중을 아우르는 하나로 통합된 전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두 번째 설명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 우리는 동지의 이러한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육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중, 정당, 노동조합이 내부적으로 가장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 집중화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있을 때까지는 우리는 그들이 옳다고 믿습니다. 코뮤니즘 실현에 가장 근접한 두 나라 독일과 영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이러한 투쟁은 동지의 비웃음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동지는 우리를 조롱함으로써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 요소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동맹」과 영국사회주의당,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의 코뮤니스트당 내 요소들이 대중과 지도자에 대한 모든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무의미하고 유치하다’라고 강요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구를 통해 그들은 지도자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을 피하고 또 피하고 싶어 합니다. 강철같은 규율과 중앙집중이라는 문구를 통해 그들은 반대파를 짓밟습니다. 그리고 동지는 이러한 기회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동지. 서유럽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 단계에서는 지배자보다 투사를 격려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동지의 소책자에 동의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와 서유럽의 다른 점

 

거의 모든 글이 우리가 감탄과 찬사를 하게 한 동지의 팸플릿, 소책자 그리고 서적을 읽으면서 우리 서유럽의 맑스주의자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더 자세한 설명을 찾으려고 애썼으며, 이런 설명을 찾지 못하면 마지못해, 그러나 의구심을 갖고 그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에 대한 동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주, 아주 흔하게 발생합니다. 그리고 동지는 항상 이 두 범주를 전 세계의 혁명적 요소로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읽은 그 어디에서도 러시아(및 동유럽의 다른 몇몇 국가)와 서유럽(즉,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국가, 심지어 이탈리아까지)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에 대한 명확하고 솔직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주의와 의회주의 전술에 대한 동지의 개념과 서유럽의 이른바 좌파 전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주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지도 나만큼이나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동지의 글을 읽고 판단하건대 서유럽 전술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서유럽 전술에 대한 귀하의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러한 동지의 문구가 모든 코뮤니스트당, 맑스주의자들조차도 아무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모든 코뮤니스트 신문, 잡지 및 소책자와 모든 대중 집회를 통해 판단하게 되면 서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의 봉기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와 서유럽의 커다란 차이점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판단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빈농의 많은 도움으로 러시아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의 우리도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서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으며, 전체 전술은 이러한 표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빈농이 결정적인 요소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사실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혁명적 요소로서 빈농의 중요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작아지게 됩니다. 아시아, 중국,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면 이 계급이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실제로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며, 폴란드와 남동부 및 중부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여전히 혁명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이 계급의 태도는 혁명에 대해 더욱 적대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약 700만에서 800만 명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농의 수는 약 2,5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수치 오류를 용서 바랍니다. 이 편지는 모든 속도로 발송되어야 하므로 기억에서 인용해야 합니다) 케렌스키가 빈농에게 토지를 주는 데 실패했을 때,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머지않아, 동지를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언급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그런 종류의 조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종종 끔찍하지만, 러시아만큼 비참하지는 않습니다. 빈농은 농부나 소유자로서 얼마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교통수단 덕분에 종종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생활은 다소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전쟁 중에는 물론 전쟁 이후에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식료품 수입은 매우 제한적인 필수품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지원을 받습니다. 자본주의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자본주의는 이들을 유지할 것입니다. 동지의 나라에서 빈농의 상황은 매우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동지와 함께 빈농은 정치적, 혁명적 강령을 갖고 있었고, 사회 혁명가들과 함께 정치적, 혁명적 정당을 조직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빈농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에는 분할해야 할 엄청난 양의 토지, 대규모 영지, 왕실 토지, 국유지, 수도원이 소유한 영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의 코뮤니스트는 빈농에게 무엇을 제공하여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농민에게 제공할 것이 없다

 

독일은 전쟁 전 400만에서 500만 명의 빈농(최대 2헥타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규모 산업(100헥타르 이상)에 고용된 인원은 800~90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코뮤니스트가 이 모든 것을 분배한다면 빈농은 여전히 빈농으로 남게 될 것이고 700만 또는 800만 명의 현장 노동자 역시 자신의 몫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규모 산업2)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분배할 수도 없습니다.

 

이 수치는 서유럽에는 빈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보여주며, 따라서 보조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 수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코뮤니스트는, 몇몇 상대적인 작은 토지를 제외하면, 빈농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소농민의 토지는 확실하게 소유권을 몰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400~500만 명의 빈농도 매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두 스칸디나비아 국가3)도 유사합니다. 서유럽 대부분 지역은 중소농민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10~20만 명 정도의 빈농이 있는 영국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빈농이 코뮤니즘 아래에서 소작료나 저당 이자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 역시 그들을 견인할 수 없습니다. 빈농은 코뮤니즘에서 내전, 시장의 소멸과 황폐화를 보고 있습니다. 서유럽에서의 빈농은, 지금 독일의 위기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위기, 즉 지금까지 존재하였던 모든 끔찍함을 넘어서는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한 자본주의 편에 설 것입니다.4)

 

산업노동자는 홀로 서 있다

 

서유럽 노동자는 모두 홀로 서 있습니다. 중하위 계급의 극히 일부만이 그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마도, 레닌 동지는 러시아도 역시 같은 경우라고 말할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도 역시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 후에야 비로소 빈농이 결합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레닌 동지는 농민이 확실하게 그리고 빠르게 동지 편에 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케렌스키가 농민에게 토지를 제공할 의사도 제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농민이 케렌스키를 더 오랫동안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바로 몇 달 후에 농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 수 있는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마법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서유럽 전역의 빈농이 당분간 자본주의의 편에 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독일에서는 지원받을 수 있는 빈농이 많지 않지만, 동지는 아직 부르주아지 편에 서 있는 수백 만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독일에서 러시아 빈농의 위치를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게 될 것이고, 지원하러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도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엄청난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 농민은 자본주의가 패배한 후에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했지만, 아직 자본주의 편에 서 있는 독일 노동자들이 코뮤니스트 대열에 합류하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혁명은 오랜 세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에 참담했으며 승리 후에도 지금도 참담합니다. 그러나 실제 혁명 당시에는 쉬웠고 이것은 농민들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혁명은 쉬웠고, 이후에도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혁명의 도래는 끔찍할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어떤 혁명보다 더 끔찍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지의 나라에서는 봉건주의, 중세, 심지어 야만과 마찬가지로 약하고 겨우 뿌리를 내린 자본주의였지만, 여기 서구에서는 강하고 널리 조직되어 뿌리를 깊이 내렸고, 얕고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계층을 제외하고는 항상 가장 강한 편에 서는 농민뿐만 아니라 중하층 역시 마지막까지 자본주의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빈농의 도움 덕분에 승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기, 서유럽, 그리고 세계의 곳곳에서는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유럽에서 노동자가 홀로 서 있다는 것도 러시아에서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홀로 서 있다

 

바로 이것이 완전히 진실이며, 우리의 전술은 이러한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전술은 오류이며 프롤레타리아트를 끔찍한 패배로 이끌 것입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아무런 강령도 없고 땅을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뮤니즘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사실임이 현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문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서유럽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적이며, 따라서 농민이 코뮤니즘을 지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빈농이 코뮤니즘을 얻을 수 있는 지역적 여건이 조성된 다른 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혁명의 시기에 우리 편에 서는 빈농이 없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빈농에게 지속적인 선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술은 혁명의 시작과 진행 과정에서 채택되어야 합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일반적 추세, 즉 일반적 경향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술은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5)

 

이로부터 우선 서유럽에서 진정한 혁명, 즉 자본주의의 전복과 코뮤니즘 수립 및 영구적 제도는 당분간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충분히 강한 나라, 즉 빈농의 도움이 불가능한 독일, 영국, 이탈리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선전, 조직화, 투쟁을 통해서만 혁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독일, 영국 등 큰 나라에서는 혁명을 통해 경제 상황이 크게 흔들리고 부르주아지가 충분히 약해졌을 때만 혁명 자체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러시아 군대의 도움, 인도의 봉기, 끔찍한 위기 등)에 우리 전술을 기반으로 할 수 없다는 데 당신도 동의할 것입니다.

 

동지, 빈농의 중요성에 관한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귀하의 첫 번째 큰 실수이며, 모스크바 집행부와 인터내셔널 집행부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전술과 관련하여서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다는 사실, 즉 다른 계급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우선 대중에 대한 요구가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혁명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지도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작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대중, 프롤레타리아는 전쟁 중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눈앞에서 농민이 곧 자기편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 프롤레타리아는 먼저 독일 전체 자본주의 및 모든 계급이 반대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이미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실제 노동자 수는 7,000만 인구 중 1,900만~ 2,000만 명에 달했지만, 그들은 다른 모든 계급에 맞서 홀로 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6) 그들은 러시아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자본주의에 맞서고 있으며, 그들은 비무장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독일 프롤레타리아, 모든 개인에게 혁명은 러시아에서 필요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와 희생정신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독일의 경제적 계급관계의 결과이지 혁명적 낭만주의자나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온 이론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전체 계급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혁명에 투신하지 않으면 혁명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술을 결정할 때 외부의 힘, 보기를 들어 러시아의 도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에 당신은 다시 한번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거의 무장하지 않은 채 홀로, 도움 없이, 밀접하게 결합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독일의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의식적인 투사,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모든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대다수가 의식 있고 확고한 투사로, 진정한 코뮤니스트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절대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상대적 의미에서도 훨씬 더 위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어떤 지식인이나 시인의 꿈이나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계급의 의미가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지도자의 의미는 작아집니다. 이는 최고의 지도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에 비해 지도자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인구 1억 6천만 명의 나라에서 700~800만 명의 도움으로 승리해야 했던 동지의 경우에 지도자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게 컸을 겁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술의 문제입니다. 동지, 동지가 했던 것처럼, 그토록 방대한 땅에서 적은 병력으로, 그러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자의 전술이 필수적입니다. 동지가 소수의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빈농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동지의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어떤가요? 아무리 영리한 전술을 구사하고 명석하고 천재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항하는 냉혹한 계급 적대감이 존재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힘과 수적 우위를 통해 스스로 판도를 뒤집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힘, 수, 규모를 통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적이 매우 폭력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보다 훨씬 더 잘 조직되었기 때문에,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은 특별히 자신들의 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다윗이 골리앗을 반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소유 계급에 반대했습니다. 다윗은 작았지만, 아주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영국,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거인이 다른 거인을 상대하듯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힘이 문제입니다. 육체의 힘, 그리고 특별히 정신력의 문제입니다.

 

레닌 동지, 독일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모두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 혁명이 애초에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고 웅장한 일이며, 코뮤니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독일 상황은 서유럽 어느 곳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홀로 서 있으므로 전체 서유럽과 비슷합니다.

 

대중 및 노동자 혁명, 세계 최초로 노동자 대중만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대중만의 혁명은 그것이 좋거나 아름답거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경제 및 계급관계가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

 

 

요컨대, 문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읽기 위해 서유럽과 러시아혁명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비교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영국령 인도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전체 인구의 0.5%만이 산업 프롤레타리아이며 80%가 소농이라고 가정할 때, 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으로 연합한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잘 훈련된 프롤레타리아의 주도 아래 혁명이 일어나야 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중국이나 인도 노동자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통해 승리했으니 이제 동지들도 혁명을 위해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러시아 노동자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러분의 나라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인구의 절반은 아니지만 3%가 산업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여러분의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해서 우리는 동지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러시아와 서유럽의 차이로부터 이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1. 만약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 또는 당신을 추종하는 서유럽, 스파르타쿠스동맹의 기회주의적 코뮤니스트 또는 영국 코뮤니스트당이 지도자냐 대중이냐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동지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오류입니다.

 

 

2. 동지가 우리에게 말할 때 "지도자 와 대중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이 우리와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3. 코뮤니스트당에 강철같이 강한 규율과 절대적으로 군사화된 중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집중을 추구하고 있어서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동지와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4.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보기를 들면, 코르닐로프 공격이나 다른 사건 이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했다거나, 이러저러한 시기에 의회에 진출했다거나, 노동조합에 남았다거나, 그러므로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도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 모든 것은 전혀 의미가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적용될 필요도 없고, 적용될 수도 없습니다. 투쟁과 혁명에서 서유럽 계급관계는 러시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5. 러시아에서 훌륭했던 전술, 보기를 들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기서 빈농이 곧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할 것이라는 확신,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지 않다는 확신에 기초한 전술을 우리에게 강요하려 할 때, 동지가 규정하고 그것에 따르는 전술은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파멸과 아주 끔찍한 패배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6.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 또는 스파르타쿠스동맹 중앙위원회나 BSP와 같은 서유럽 기회주의 세력이 우리에게 기회주의 전술(기회주의는 항상 프롤레타리아트를 배반하는 외부 요소의 지원을 구한다)을 따르도록 강요하려 한다면, 동지의 잘못입니다.

 

서유럽에서 전술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기반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홀로 서 있고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 대중의 중요성이 더 크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독일에 있을 때 라덱(Radek), 모스크바 집행부도, 동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동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 독일 코뮤니스트당, 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8)의 코뮤니스트당, 모스크바가 임명한 암스테르담 위원회의 대다수 전술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초 위에 그들은 무엇보다도 대중 전체와 개인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혁명적 투사가 될 수 있도록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교육하고, (이론만이 아니라 특히 실천을 통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렸으며, 외국의 도움이나 지도자에게 거의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볼프하임(Wolffheim)과 라우펜베르크(Laufenberg)와 같이 운동의 첫 단계에서 불가피한 사적인 발언, 사소한 문제 및 변명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정당과 동지들이 취한 견해는 매우 올바르며 동지의 반대는 전적으로 오류입니다.9)

 

만약 동유럽에서부터 서부로 이동하면,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경제적인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경제적 경계는 발트해 연안에서 지중해까지, 단치히(Danzig)에서 베니스(Venice)까지 이어집니다. 이 선은 두 세계를 서로 분리합니다. 이 선의 서쪽은 산업, 상업 및 금융자본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최고로 발달한 은행자본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

 

농업 자본조차도 이러한 자본의 지배를 받거나 결합하도록 강요받습니다. 이 자본은 매우 잘 조직화하여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국가 정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제적 경계선의 동쪽은 집적화된 산업- 상업- 운송 그리고 은행자본의 엄청난 발전도 이들의 패권도, 이것의 결과인 견고한 근대국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쪽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이 동쪽의 전술과 같다면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

 

1) 보기를 들어, 『국가와 혁명』에서 동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67쪽) "농민이 존재하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대다수 농민은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으며, 따라서 '값싼' 정부 전복을 갈망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것을 실행에 옮길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이 코뮤니즘을 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모스크바 농업 테제도 이를 인정한다.

3) 나는 스웨덴과 스페인에 대한 통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

4) 나는 「세계혁명」이라는 소책자에서 러시아와 서유럽의 이러한 차이점을 강조했다. 독일혁명의 전개는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매우 낙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빈농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5) 동지는 소인배들처럼 상대의 주장을 너무 단정적으로 받아들여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한 나의 발언은 후자를 위한 것입니다.

6) 물론 전쟁 전 수치를 사용해야 했고, 마지막 인구 조사(1,909년) 이후 프롤레타리아의 증가를 그 이전 수치에 비례하도록 했다.

7) 나는 이 다른 숫자 관계(독일은 2천 만에서 7천 만!)를 통해 대중과 지도자의 중요성, 대중과 당, 지도자 사이의 관계, 그리고 혁명의 과정과 마무리 단계에서도 러시아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8) 적어도 지금까지는.

9) 이 논쟁에서 대부분 반대파의 공적인 목소리가 아닌 사적인 목소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gorter/1920/open-lett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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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자본주의 위기와 대안 사회

자본주의 위기와 대안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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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사회라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길이 여러 가지 경로로 열려있다는 뜻을 담고 있거든요. 특히 반(反)세계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라는 상투적인 말로 역사 발전 법칙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나는 맑스주의자로서 이른바 “대안 사회”는 코뮤니즘(공산주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노동운동 진영이 많이 쓰는 말은 “좌파”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부르주아 진영에 속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도 국민의 힘에서는 “좌파”라고 높여주잖아요. 우리에게는 오직 사회주의자,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강연에 도움이 되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를 도표로 그려봤습니다. 동지들은 그 역사를 따라가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면 한눈에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도표를 따라가 보죠. 가로로 보면 연도가 1848년부터 2009년까지 되어 있는데 이 연도가 다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로를 보시면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용어가 첫 번째 있고 그다음에 그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가로와 세로를 따라가면서 자세하게 풀어나가죠.

 

자본주의가 위기가 있다, 또는 자본주의가 내리막길이다,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있다는 표현을 우리가 많이 씁니다. 또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있다고 하는 의미가 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지요.

 

여러분이 지난번 세계자본주의 위기를 경험하셨잖아요. 그런데 요즘 또 무슨 주식 값이 오르고 미국 경기가 좀 나아지는 것 같으니, 자본주의가 다시 살아난다, 잘못된 환상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다는 걸 설명하려는 거예요.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가는 경제가 나쁘다 좋다 이런 식의 말과 해석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체제는 거의 목숨을 다했다는 거죠.

 

맑스, 「코뮤니스트 선언」

 

1848년이 왜 중요한 해냐면, 맑스라고 하는 사람이 「코뮤니스트 선언」이라는 책을 낸 유명한 해입니다. 이 책은 필독 교양서입니다. 옛날에는 이 책이 금서라고 해서 숨기고 몰래 보고 했습니다만, 요즈음은 교양서입니다. 그러니까 맑스를 얘기하지 않고서 자본주의와 코뮤니즘 얘기를 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맑스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무튼, 출발은 「코뮤니스트 선언」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거지요. 160년 전에 맑스는 ‘코뮤니스트 선언’을 합니다. 세계 역사를 그렇게 본 거고 혁명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즘을 건설한다는 책을 쓴 것이 1848년이에요.

 

그래서 맑스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문제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거고요, 어떤 다른 이론을 가지고도 자본주의 문제를 얘기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도표에서 1848년 밑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상승기 그다음에 쇠퇴기라는 말이 쓰여 있잖아요. 자본주의의 역사가 더 오래됐지만, 봉건제 이후의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한 시기를 상승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상승기가 언제까지냐 하면 1914년이에요. 1914년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입니다.

 

봉건제 때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사회였으니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생산양식이 부르주아혁명으로 만들어지고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상승했다는 거지요, 계속 생산력이 발전하고 계속 발전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본주의가 상승하면서도 부침이 있어요. 호황기가 있고 불황기가 있고 호황기가 있고 불황기 있고 이런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냐면, 부르주아 경제학 쪽에서는 경기 변동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맑스 이론에서는 공황이라 그럽니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만일 2009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출발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공황의 측면에서 얘길 하면 ‘80년 만의 대공황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29년의 대공황이 80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공황은 10년마다 한 번 씩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10년이 주기에요. 공황 주기설이라 그러죠.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상승하면서도 주기가 계속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추세는 상승이라는 거지요. 맑스가 살았던 당시는 자본주의의 상승기였고, 그때 자본주의를 자유 경쟁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상승하는 시기가 꺾인 역사적 사건이 1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는 의문을 많이 갖는 거지요. 여러분이 흔히 이해하는 전쟁의 원인을 무슨 전쟁광이 있다든지 무슨 인간의 어떤 공격성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전쟁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1차 세계대전도 오스트리아에서 우연히 황제를 암살해서 일어났다고 흔히 이렇게 이해하잖아요.

 

1차 세계대전 의미, 자본주의 내리막길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은 자본주의가 더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자본주의가 계속 생산력을 발전시켜 왔는데 더는 발전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통해서 파괴하고, 파괴한 것을 다시 복구하는 과정에서 생산력을 다시 유지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1914년만 하더라도 세계자본주의 전체에서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있었던 유럽에 있는 나라들 하고 자본주의의 바깥에 있었던 식민지들이 있어요. 그 당시에 이 나라들을 자본 외적 세계라 그럽니다. 자본주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했던 나라들에 대해 침략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죠.

 

1차 세계대전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더는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바깥에 있는 나라들을 약탈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 이것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자본주의는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자본주의 쇠퇴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1914년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1차 세계대전은 단순한 1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더는 발전 상승하지 못하고 계속 내리막길로 가는 그 시점이었고, 전쟁은 결국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자본주의 바깥에 있었던 식민지국들을 약탈하고 정복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다시 한번 상승시켜 보자고 하는 움직임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자본주의 위기가 왔을 때 자본주의는 그걸 모면하는 방법이 있어요. 망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 방법이 있는데, 살아남는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일으키거나 히틀러 같은 파시즘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자본주의가 왜 안 죽는가? 안 죽는 이유가 있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을 야만의 생태로 몰고 가고 전쟁을 통해서 모든 노동자를 죽입니다. 전쟁터에서 누가 죽습니까? 다 노동자가 죽어요. 노동자가 전장에 내몰리는 거고, 실제로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죽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들끼리 총 쏴서 한두 명 죽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전쟁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을 살육하는 마당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쟁을 반대하는 거예요. (노동계급에 필요한 유일한 전쟁은 계급전쟁!) 노동자를 살육의 마당으로 몰지 말라 우린 죽지 않는다 이런 거지요. 노동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 강도에, 실업에, 구조조정에 죽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살기 위해서 일으키는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못 된다는 거를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 가지 면으로 노동자를 죽이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죽이고, 그다음에 육체적으로 죽이고, 실제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지요. 그리고 또 공장에서 산재로 목숨을 잃고, 투쟁하다가 분신하고 말이죠.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노동자의 대량 학살과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자본주의인 거고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어쨌든 1차 대전 이후에 자본주의는 계속 내리막길인데, 자본주의는 자유 경쟁 자본주의부터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했는데 이 독점자본주의를 우리가 흔히 제국주의라 부릅니다. 제국주의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단계지요. 그것이 쇠퇴기가 시작되면서 발전된 자본주의 형태로 나아가게 됐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노동자를 전쟁터로 내몬 사회민주주의

 

그런데 1929년이 대공황이고 1917년이 러시아혁명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유럽에 많은 사회주의 세력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주의자는 당연히 전쟁을 반대해야 합니다. 노동자를 죽음터로 몰아내는 거니까 당연히 전쟁을 반대해야죠. 그런데 이 당시의 사회주의 세력들은 전쟁을 찬성한 겁니다. 이른바 애국주의라 그러는데 자기 국가의 깃발을 들고 모든 노동자를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로 몰아넣습니다. 이거는 자본가만 그런 게 아니라 이때 사회주의 세력들이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때 전쟁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터로 몰아넣은 사회주의 세력을 요즘 표현하는 대로 사회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지요, 말하자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모순들을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건설할 수 있다는 이런 주장이에요. 다른 말로 혁명 없이 대안 사회를 만든다는 겁니다. 혁명을 통해서 대안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사회주의입니다. 혁명을 통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개량이라고 얘기하지요. 조금씩 조금씩 뭔가 개선하면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나가면 사회주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사회민주주의라고 해요. 우리나라에 그런 세력들이 있다는 거지요. 보기를 들면 진보당, 정의당이 그럴 수 있고, 노동당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를 가칭 팔아먹는 세력들이 있다면, 이 세력들은 1차 세계대전 때 유럽 좌파 세력과 비슷합니다.

 

내가 그래서 좌파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그랬잖아요. 사회민주주의도 좌파라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좌파라 부르지 않고 우파의 한 종류라고 부른다는 거지요.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자본주의는 개선이나 개량을 통해서 사회주의로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뭘 통해서 갑니까? 혁명을 통해서만이 대안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때 이른바 좌파들 오류는 자기 국가의 깃발을 들고 모든 노동자를 앞세워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게 역사적인 과오이고 오류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철저하게 반대해야만 하고 노동자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실제로 혁명이 일어난 데가 러시아였단 말이지요. 실제로는 어디에서 먼저 일어났어야 했습니까? 러시아는 농업 국가란 말이지요. 물론 공업도 조금 있었습니다만, 러시아혁명을 우리는 사회주의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주의혁명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혁명에 성공은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 됐어요. 러시아 하나만 혁명을 한 거죠. 실제로 혁명은 세계혁명이 돼야 하거든요. 한 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봐야 소용없는 거예요. 사실은 어디에서 일어나야 해요? 러시아보다 훨씬 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는 유럽이지요. 유럽에서 사실 혁명이 일어났어야 했는데 유럽에서 혁명이 실패합니다. 유럽의 중심이 독일이었어요. 1919년에 독일혁명이 실패합니다. 그런데 만일 독일이 성공했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세계적인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했겠죠. 그때 뭔가 세계혁명을 통해서 한 단계 나가지 못하고 러시아만 성공하고 유럽은 실패하니까 어떻게 됐어요? 러시아는 올바르게 사회주의로 갈 수가 없었죠.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여러분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지금도 그렇게 아시는 분이 많은데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었습니다만, 실제로 농업 국가였고,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결국은 러시아 사회라는 것이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유럽의 혁명이 성공했으면 같이 손을 잡고 세계 전체를 확 뒤집어 놨을 거예요. 유럽이 실패해 버리니까 러시아는 어떻게 됐습니까. 포위됐지요. 또 자체적으로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 국가였고 아무리 레닌 등의 혁명가들이 러시아혁명을 일으켰어도 그건 권력만 잡은 거지요. 러시아라고 하는 농업 국가를 사회주의 코뮤니즘으로 변혁시키지 못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러시아는 자본주의로 회귀해 버렸다는 겁니다.

 

아직도 러시아를 사회주의로 해석하고 있고 운동권 내부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아요. 분명히 말합니다. 사회주의 아닙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아닙니다. 중국도 사회주의 아니거든요. 이 문제를 올바르게 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가 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소련은 무엇이었나」(빛나는 전망, 2009)를 번역했어요. 그 책은 러시아가 왜 자본주의일 수밖에 없는 가를 설명하는 거예요. 소련이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두 가지 조건을 얘기했습니다. 유럽혁명이 실패한 것, 그래서 전체로 포위 당한 것, 그러면서도 러시아 자체는 농업 국가였다는 얘기죠.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사회주의 사회는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서, 세계 역사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 사회는 한 군데도 없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사회주의를 가장한 세력들에게 속지 마시라고 제가 얘기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북한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쿠바도 그렇고 차베스 베네수엘라도 그렇고, 제발 사기 치지 말란 말이죠. 사회주의 아닌 걸 사회주의라 참칭하면 안 됩니다. 주위에서 혹시 운동하는 사람들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였다고, 설명하면 분명히 아니라고 여러분은 공격하셔야 합니다. ‘공부 좀 해라’하면서 거꾸로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도표를 보면, 1928년 아래에 반(反)혁명의 시작이라고 제가 썼죠. 1928년은 스탈린이 집권한 해입니다. 스탈린의 소련의 헌법이 만들어진 해가 1928년입니다. 소련을 내가 자본주의라고 얘기했는데 소련이 반(反)혁명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힌 그 시점은 스탈린이 집권한 1928년이라는 거죠.

 

물론 그전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지요. 여러분이 잘 아는 레닌은 1924년에 죽었어요. 그럼, 레닌이 살아 있으면 나았겠느냐?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물론 스탈린의 반혁명세력보다 훨씬 나았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어쨌든 세계 역사로 보면 스탈린을 추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스탈린주의 변종들이 많아요. 어떤 겁니까. 스탈린의 변종들,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 이들을 소(小)스탈린이라 부르죠.

 

파시즘

 

그러니까 정확한 의미의 사회주의 입장에서,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우리가 해석한다면 인류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봐야 하고 지금까지 잘못 얘기한 사람들을 야단쳐야 하고 공부 좀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1928년이 중요한 해입니다. 그런데 1929년이 대공황이죠. 대공황을 지나면서 어떻게 됐어요. 유럽은 혁명이 실패했잖아요. 실패하면서 뭐가 들어섭니까? 이른바 파시즘이 들어섭니다.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지만, 히틀러라는 세력은 자기들을 뭐라고 불렀냐 하면 민족사회주의라고 불렀어요. 히틀러 당의 이름입니다. 파시스트도 사회주의를 썼다는 말이죠. 민족주의의 변형이지요. 그래서 독일뿐만 아니라 이태리 무솔리니 등등의 유럽 전체가 완전히 반혁명이 되는 거예요, 소련도 스탈린이 들어서면서 반혁명이 돼버렸고, 유럽도 혁명에 실패하고 사회주의 맛이 간 세력들은 애국 깃발 들고 전쟁터로 노동자를 내몰았고, 극우민족주의 세력은 정권을 잡고 파시스트 정권이 됐다는 거지요. 이게 유럽의 역사입니다. 1929년 자본주의의 대공황 후에 이루어진 또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반동화와 반혁명적 세력의 정권 장악이 소련과 유럽 양쪽에서 다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는 흔히 얘기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난 사회주의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스탈린으로 등장한 거고 유럽에서는 히틀러로 등장한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세계 역사가 묘한 겁니다. 그래서 둘은 마치 다른 것처럼 겉으론 싸우지만, 실제로는 손을 잡습니다. 이쪽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았고, 저쪽은 반(反)혁명 스탈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거지요. 그러나 체제는 뭐에요? 체제 자체는 자본주의고, 또 우리가 얘기하는 국가자본주의였다는 거예요.

 

결국, 자본주의가 1차 세계대전 때부터 내리막길인데 어떻게 버텼어요? 전쟁을 통해서 또는 파시즘을 통해서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잉여가치를 뽑아낸 거예요, 계속 그렇게 연명했다는 거지요.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파괴했잖아요. 파괴된 거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뭔가 조금 자본주의에 숨통이 트였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숨통은 뭣으로 유지했습니까? 지금 말씀드린 대로 한쪽은 파시스트 반혁명세력이, 다른 한쪽은 스탈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됐어요. 계속 내리막길이니까 자본주의는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이게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가 다시 연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쇠퇴를 스스로 막기 위해서 일으킨 세계전쟁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다시 살아났단 말이죠. 파괴하고 죽여야 살아난다는 거지요.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물질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여야 그다음에 자본주의가 살아나요. 살아나서 어떻게 됐어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기치 못한 호황이 일어났어요. 1945년부터 1970년 정도까지 25년이 자본주의의 호황 시기입니다. 나는 지금 쇠퇴기라고 얘기했잖아요. 쇠퇴하는 큰 추세 속에서도 자본주의는 25년 동안 역사에 드문 호황기를 맞았거든요. 25년 동안의 호황기를 가지고 자본주의가 잘나간다고 했지요.

 

자본주의 25년의 호황기

 

자본주의가 그러면 이 25년 동안 호황이 왜 벌어졌는가를 해석해야 하는데 그 해석에 대해서는 제 글 번역 「자본주의의 쇠퇴」(빛나는 전망, 2009) 속에 있습니다. 그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중에 보시길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엄청난 파괴가 이루어졌지요. 그러니까 다시 복구해야 하잖아요. 파괴된 것의 복구 재건이지요. 재건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다시 한번 숨통을 트인 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정부 적자 재정 적자 부채를 통해서였죠. 여러분이 최근에 우리나라 국가 부채가 어느 정도 늘어났는지 보셨을 거예요. 미국은 물론 더 엄청난 국가 부채를 갖고 있지요. 그 이후에 자본주의가 살아나는 방식은 엄청난 국가 부채를 통해서였습니다.

 

지금 내가 얘기했지요. 파괴된 시설과 공장의 복구, 또 하나는 엄청난 빚을 지면서 그 빚은 누구한테 가게 돼 있어요? 국가가 지는 빚은 누구 몫입니까? 우리 노동자 몫이에요. 노동자가 벌어서 피땀 흘려서 정부와 자본가한테 대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자만 죽게 돼 있어요.

 

자 어쨌든, 그 25년 동안의 호황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몰핀 주사 맞아서 잠깐 반짝 정도의 모습이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됐어요? 그 25년 이후 70년 초반에 이른바 여러분이 잘 아는 오일 쇼크가 일어납니다. 오일 쇼크는 공황의 한 종류예요. 아까 얘기하는 10년마다 주기인데 오일 쇼크는 중규모 정도의 공황이에요. 대공황 있고 중공황 있고 소공황이 있다면 70년대 초반 오일 쇼크는 중규모의 공황이지요. 이렇게 되니까 다시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잖아요. 25년 동안 조금 뜯어 먹을 게 있었죠. 그런데 이 25년 동안에 무엇이 살아났냐 하면 노동자 투쟁이 살아났어요. 그전까지는 노동자가 다 죽었잖아요. 전쟁을 통해서 죽고, 억압 당하면서 죽고, 파시스트한테 탄압 당해서 죽었는데, 2차 대전 끝난 다음에 조금 호황이 와서 얻어먹을 게 많으니까 어떻게 돼요?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됩니다. 자본주의는 호황기에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불황기에 노동자는 움츠러듭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별로 없잖아요? 지금 여러분 투쟁을 보세요.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지요? 소소한 것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공황기에는 노동자가 움츠러들게 돼 있지요. 여러분은 거꾸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어요. 노동자를 죽게 만들고 죽을 지경이니까 이판사판 붙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일어날 것이라고 역으로 해석하는 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아요. 항상 호황기에 먹을 게 있으니까 너 내놔라 이런 거지요.

 

자본주의가 25년 호황이니까 떡고물을 만들어 놨잖아요. 복지도 만들고 나눠주기도 하고 그랬단 말이죠. 유럽을 중심으로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됐어요. 노동자 투쟁 이야기는 다시 하겠습니다만, 어쨌든 자본주의의 호황과 불황과 노동운동과 무슨 관계가 있냐를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25년 호황기에 노동자 투쟁이 좀 일어났는데 어떻게 됐어요? 70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자본주의가 자기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먹을 게 많았지요. 우리가 흔히 개량의 토대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자본주의가 흔히 얘기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채택했다고 하죠. 서유럽도 그런 식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고 미국도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그 복지국가의 모델이 더는 못 버틴 거지요 못 버티니까 어떻게 돼요? 그러면 자본주의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지요. 다시 노동자한테 베풀었던 거나 나눠줬던 걸 다시 뺏는 거지요. 모든 자본이 노동자한테 양보했던 것을 전면적으로 철수시키고 다시 뺏어버리는 이 자본주의 체제를 우리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라고 말하잖아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개념이 뭐냐 하면, 지난 25년 동안에 호황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냈던 것을 가지고 다 나눠줬는데 그걸 가지고 더는 유지할 수 없으니까 다시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자한테 준 것을 다시 뺏어야 하겠다 이겁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에게 줬던 거 다시 뺏는 겁니다. 모든 복지를 삭감하는 겁니다. 우리는 복지도 없지만, 유럽 같은 데는 상당한 복지국가 모델을 유지했단 말이죠. 보기를 들면 실업자라도 얘 셋만 있으면 먹고살아요. 이른바 나눠줄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던 거지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그거 가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뺏어야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본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70년대 초반 이후에 지금까지 그랬어요.

 

자본주의의 쇠퇴

 

자, 이제 보십시오. 이론입니다. 도대체 왜 자본주의가 상승하다가 쇠퇴하고 마지막 단계로 와있고, 왜 대안적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완전히 철폐하고 노동자가 인간 답게, 노동자가 노동자 답게 사는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느냐는 것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란 말이지요. 주장이 아니라 그걸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하잖아요. 그 과학을 낸 사람이 맑스라는 사람입니다. 역사 유물론이고 역사 유물론에 근거한 것이 자본주의 쇠퇴론입니다.

 

자본주의 전에 뭐가 있었어요. 봉건사회가 있었지요. 봉건사회가 왜 자본주의로 가느냐. 그리고 자본주의가 왜 그를 넘어서는 사회로 갈 수밖에 없냐고 이걸 설명해야 하잖아요. 자본주의가 그냥 잘나가는 게 아니라 잘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잖아요. 그것이 역사 유물론인데 간단하게 이렇게만 얘기하겠습니다.

 

어느 사회가 유지되려면 그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을 우리가 생산력이란 말로 부릅니다. 그 생산력이라는 말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에요, 물론 물질적인 게 그 기반이겠죠. 그게 생산력입니다. 그 생산력이 계속 발전해 왔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생산력이 계속 발전하지 않고 정체하고, 오히려 생산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에선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계급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첨예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본주의는 어떻게 먹고 살아요? 자본주의를 얘기할 때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이라고 보통 이야기하잖아요. 이거 잘못된 이햅니다.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자의 투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사람하고 싸우는 건 줄 알아요. 악덕 자본가가 있으니 때려 부수자고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굉장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무엇과 싸워야 하냐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법칙하고 싸우는 거예요. 그럼,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법칙이 뭡니까, 자본주의는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이윤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때문에 그 이윤을 남기는 법칙을 때려 부수지 않으면 자본주의하고 싸울 수 없는 거예요. 자본가하고 백날 싸워 소용없어요. 자본가는 자본의 법칙에 따르는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싸움이 어려운 겁니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은 쉬운 건데, 노동자는 구체적인 인간들이고 이 체제가 움직이는 법칙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법칙이기 때문에 싸움이 참 어려운 거지요.

 

사람하고 싸우는 건 쉽습니다. 사람하고 싸우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싸움이 상당히 어려운 거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가, 다시 말해 자본의 대리인인 자본가계급과 그냥 노동력 팔아먹고 피땀 다 뺏기고 연명하는 인간은 노동자들이죠. 힘없는 인간들 노동을 통해서만 살 수 있는 이 인간들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 사이에는 적대적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짐승도 싸우는데 인간은 당연히 싸우는 거지요. 그래서 자본과 노동계급 사이 피나는 투쟁이 격화되면서 생산력이 떨어집니다. 싸우니까 생산력이 오르겠습니까? 이걸 죽이게 만들어야 생산력이 올라가지요. 뽑아 먹히지 않고 싸우니까 자본은 유지를 못 합니다. 노동자가 일하지 않을 권리 그래서 이 사회가 작동하지 않게 만드는 권리가 노동자의 유일한 권리입니다. 노동자의 파업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권리입니다. 노래 말에도 그런 거 있잖아요. 기계를 멈춰라! 공장을 멈추라고요. 그렇지요. 자본가도 살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살지 못해요. 생산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래서 이 싸움이 격렬해져서 생산력이 더는 늘지 않는 거지요. 그럼 어떻게 돼요? 늘지 않으면 그 체제는 죽는 거지요 그러니까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떤 체제겠어요?

 

노동자가 흥겹게 행복하게 그리고 억압 당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연대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그런 사회가 자본주의는 아니었고 아니잖아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노동자 다 죽이는 사회였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선 더는 생산력 증진이 안 되고 계급투쟁이 계속 일어나고 생태계가 다 파괴돼 인류를 파멸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다음 그 사회가 뭡니까? 그것을 우리는 사회주의 또는 한 단계 더 가면 코뮤니즘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그런데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은 한 번도 건설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1917년에 한 번 해보려고 그랬죠. 결국은 어떻게 됐어요? 안 됐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앞으로 오히려 건설할 가능성이 더 큰 거지요. 옛날에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굉장히 불균등했어요. 유럽에는 굉장히 선진적인 자본주의가 있고 러시아처럼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가려는 데도 있고 아주 편차가 컸단 말이지요. 남미 같은 데도 있고, 제삼 세계도 있고, 아프리카 같은 데도 있고, 뭐 이랬단 말이지요. 옛날 백 년 전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중심부에서는 깨져버렸고 변두리 소련 같은 데서 좀 해 보려다 망해 버렸다는 거지요.

 

요즘에 자본주의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불균등하지요. 여전히 농업 국가가 있지만, 그 불균등성이 굉장히 줄어들고 있어요. 편차가 크지 않다는 거지요. 물론 빈국이 있고 부국이 있고 이런 편차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자본주의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은 옛날처럼 자본주의 바깥에 있는 국가도 없고 다 국가가 자본주의 안에 있고 다 연결이 되어 있지요. 모든 것이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법칙으로 움직이죠.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에 진행 속도로 보면 계속 내리막길이고 다 죽어가고 있고 그래서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넘어선 대안 사회, 코뮤니즘을 만들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는 게 과학입니다.

 

그냥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합니까? 자본주의 분석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지요. 자본주의 분석을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그다음 사회에 대한 상을 그릴 수가 없는 거예요. 자본주의도 봉건사회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해보면 거기서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지가 나온 겁니다. 그게 자본주의 핵심적 세력이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될 사회는 주인이 누구예요? 지금 자본주의는 주인이 누굽니까? 부르주아 세력이란 말이지요. 자본가계급이지요. 그런데 앞으로의 사회는 누구예요? 그 주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죠. 그런데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갈 때는 주인이 새롭게 부르주아지로 등장했지만, 앞으로 사회의 주인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노동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트입니다. 그런데 이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처절하게 짓밟히고 착취 당하고 억압 당하고 목숨을 잃어 왔던 이 세력이지요. 이들을 누가 생산해 냈어요. 자본주의 체제가 생산해 낸 겁니다. 이게 자본주의와 다른 거예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온 것하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가는 건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은 농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르주아라는 세력이 등장한 것이고 앞으로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 억압 착취 당했던 바로 그 노동자들이 그다음 사회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당연히 노동자가 해방되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까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과학이고, 맑스가 말한 역사 유물론입니다. 생산관계의 모순이 더는 생산력의 발전을 이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내리막길입니다.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방식

 

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쇠퇴론입니다. 자본주의 쇠퇴론은 1914년까지 상승기, 191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쇠퇴하는 거지요. 한꺼번에 팍 죽는 게 아니에요. 서서히 내리막길인데 중간 25년 동안 반짝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방식이 이윤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를 더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잉여가치라 이야기합니다. 제가 잉여가치라고 썼잖아요, 잉여가치가 있어야 자본주의가 살아남아요. 그런데 잉여가치가 생산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고 생산된 것이 유통을 통해서, 시장을 통해서 실현되지요. 그러니까 두 가지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가 생산되고 실현됩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버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왜 몰락할 수밖에 없고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까? 그것은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과정에 모순이 늘어나고 잉여가치가 실현되는 데서 모순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산되는 데서 나타나는 모순을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이라고 얘기합니다. 이윤이 계속 있어야 자본주의가 버티잖아요. 이윤율이 저하하니까 자본주의가 버텨낼 수 없죠. 그런데 생산된 걸 팔아야 하잖아요. 시장의 실현 과정인데 팔 데가 있어야 하잖아요.

 

옛날에 1914년대는 팔았어요. 자본주의 바깥에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에 팔아먹을 곳이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 식민지 나라들이 모두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자본주의 시장은 이미 포화가 됐습니다. 그러면 소비를 진작하면 되지 않냐? 가짜 수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거예요. 광고를 통해 가짜 욕구 만들어서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시장은 이미 포화해 있고 이는 결국 이윤율 저하를 심화시키죠.

 

그런데도 아직 버티는 이유는 뭐냐? 다 포화하여 팔아먹을 곳이 없는데. 중국에 시장이 있고 인도에 시장 있으니 팔아먹을 곳이 많지 않으냐고. 이미 제가 중국이나 러시아나 자본주의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시장이 없는 자본주의지요. 자본주의는 꼭 시장이 있어서 자본주의가 아닌 거예요. 시장이 없는 자본주의에서 시장은 누가 가지고 있어요. 나라 전체 국가가 가지고 있지요. 국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거란 말이지요.

 

그런데 이제 지금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시장을 민영화하고 사유화시키니까 중국에서 돈 억수로 버는 자본가들도 수백 만 수천 만 나타나고 있잖습니까.

 

이제는 국가의 영역에서 민간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수요가 있고 팔아먹을 곳이 조금 생겼죠. 종전에 시장이 없었던 데가 시장이 생기면서, 조금 자본주의가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국가가 시장이었던 가짜 사회주의 국가들, 지금 사유화하면서 사적 자본주의로 나가고 있으니까, 옛날보다는 시장이 좀 생겼지요. 그런데 그것도 이제 조금 있으면 시장이 다 포화가 됩니다. 다른 말로 생산에서 이윤은 계속 떨어지고 팔아먹을 곳이 없으니까 안 팔려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생산을 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잉생산이란 말이지요. 계획해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수요 예측해서 무조건 무계획적으로 생산하니까 과잉생산입니다. 과잉인데 팔아먹을 데가 없어요.

 

그러니까 생산의 과정과 잉여가치가 실현되는 시장과는 분리돼 있지 않고, 악순환이죠. 그래서 결국 잉여가치가 있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코뮤니즘은 꿈으로 이룩되는 게 아닙니다.

 

도표에서 제가 객관주의, 주관주의라고 썼는데 그 뜻은 이런 겁니다.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더니, 붕괴할 수밖에 없는 모순도 있고 자동으로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그 당시에 있었다는 거지요. 이런 입장은 제2 인터내셔널 제3 인터내셔널이 다 그랬는데 이를 객관주의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그런 자연법칙 때문에 자본주의가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다른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경향과 달리 주관주의는 이런 겁니다.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모순만 가지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주인인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 당시 아주 유명한 혁명가였던 안톤 판네쿡이라는 혁명가가 있는데 이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아까 얘기한 이윤율이 저하한다든지 시장이 포화한다든지 그래서 자본주의가 법칙적으로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거지요.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서 자기해방을 했을 때만이 사회주의가 온다는 거예요.

 

이른바 그 사회의 주체가 되는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양쪽 편향을 다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사회, 다시 말해 코뮤니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코뮤니즘은 꿈으로 이룩하는 게 아닙니다. 꿈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거지요. 머릿속에만 있으면 그건 그냥 관념이에요. 그런데 코뮤니즘은 물질적 필요성입니다. 꿈으로 되는 게 아니라 물질적 필연성이죠. 그 물질적 필연성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노동계급이죠.

 

자본주의의 두 축인 자본과 노동계급의 투쟁을 계급투쟁이라고 얘기하는데 계급투쟁이 격렬해졌을 때 결국 선택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 선택은 뭐였어요. 전쟁이냐? 사회주의혁명이냐? 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을 전쟁으로 끌고 간 세력이 누구였어요? 사회민주주의 세력, 개량주의 세력이었고, 혁명이라고 얘기한 세력이 혁명세력입니다. 그런 혁명세력이 모여 만든 조직이 1919년 제3 인터내셔널(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쟁으로 가버리니까 한 축이 혁명을 일으켰지만, 세계혁명은 결국 실패했죠. 그리고 스탈린이 1928년 권력을 잡으면서 반혁명이 시작됐습니다.

 

그다음에 이 반혁명에 대한 대립 거부 투쟁이 잠깐 보였던 게 68이었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앞으로 올 것은 무엇입니까? 지구는 거의 편차가 없이 하나의 자본의 법칙이 지배하는 총체적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죠. 그럼 여기서 오로지 있을 것은 뭐예요? 다시 한번 사회주의혁명이냐? 야만이냐? 의 선택이에요. 인류의 선택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본은 어떻게 하겠어요. 자본 쪽에서 보면 전쟁을 일으키겠죠. 자본의 선택은 전쟁과 파시즘이고, 우리의 선택, 즉 노동자의 선택은 우리를 야만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입니다. 혁명을 통해서죠. 그래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정말 짐승 같은 야만의 시대로 우리를 몰고 갈 것인가. 이게 우리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이 선택이 100년이 지나 다시 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이 선택이 있었어요.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혁명을 선택한 세력은 러시아에서 성공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중간마다 선택의 기로가 좀 있었지만, 세계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죠. 그런데 다시 한번 백 년이 지났잖아요.

 

또 한 번 인류의 선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고, 그 선택은 다시 전쟁인가 혁명인가입니다. 진정으로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선택이지요. 이걸 누가 선택해요? 노동계급이 선택하는 겁니다. 고용이 불안하니까 좀 먹고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게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것 하려고 노동하는 거 아니에요. 더는 죽지 않으려고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죽지 않으려고, 또 인간답게 살려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선택이지요.

 

진정한 노동자의 삶은 자기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그게 노동자의 삶이죠. 그거 못 만들면 죽어야죠. 솔직하게 얘기하면, 야만으로 죽든지 조금 배불러 죽든지, 그렇게 사는 것은 죽은 겁니다.

 

혁명 전략, 당과 평의회

 

어쨌든 제가 보기엔 자본주의 역사에서 다시 한번 이런 선택의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제가 당장 몇 년 후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잘 분석하셔야 해요.

 

그런 점에서 계급투쟁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투쟁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걸 얻어 내겠습니까? 노사 협조해서 어떻게 얻어 내겠습니까? 자본가들이 줄 거 같아요? 2차 대전 이후에 조금 잘나갈 때 20 여 년 동안은 좀 줬어요. 요즘은 줄 게 없는데 뭘 주겠어요? 뺏는 거지요. 있는 걸 뺏는 겁니다. 고혈을 짜고 죽여서 이래서 뺏는 거지 줄 게 없다는 거죠. 그래서 계급투쟁 밖에 없습니다. 협조해서 되는 일 없습니다. 아니 협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에요. 진정으로 협동하고 연대하고 같이 잘살자는 사회는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그걸 못하게 만드는 사회이기 때문에 완전히 그 법칙을 깨뜨리는 새로운 사회만이 진정으로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행복한 그런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론도 있고 사상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동자도 무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무기가 뭡니까? 무기를 혁명 전략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대중들의 자기 조직이 있었단 말이지요. 그걸 노동조합이라고 그럽니다. 또 하나는 뭐에요 정치세력의 자기 조직이 있었어요. 그게 혁명당이에요.

 

그래서 두 축이지요. 대중에게 자기 조직의 축이 하나 있었고 이른바 혁명 세력들에게도 자기 조직의 축이 있었어요. 이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뚜벅 뚜벅 오고 있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이게 지금 달라졌잖아요. 혁명당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정치세력은 당연히 당이 있어야 하는 건데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은 말이 당이지 그건 당이 아니에요. 우리가 당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혁명당만 당이라 그럽니다. 혁명을 할 수 있는 정치조직만 당이라 그러지 나머지는 자본주의 당 중의 하나에요. 개량주의 수준의 당은 혁명세력의 전략이 아니지요. 그건 누구의 전략이에요? 그건 자본의 전략입니다.

 

우리에게 혁명당이 있느냐 없느냐는 이게 앞으로의 과제에요. 세계에는 뭐가 있어야 해요? 세계혁명당이 있어야 해죠. 이미 1919년에 만들어졌던 세계혁명당으로서 제3 인터내셔널은 망하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진짜 우리가 세계혁명당을 만들어야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입니다.

 

그 다음에 노동조합이 뭐로 달라졌습니까? 소비에트죠. 옛날에는 노동조합이 중요한 전투적인 조직이에요. 파업도 하고 협상도 했던 주도세력이었죠. 이 노동조합이 어떻게 됐습니까? 1차 대전 당시에 유럽을 보면 노동조합이 다 맛이 갔어요. 그러니까 이때는 당과 노동조합 양쪽이 다 맛이 간 겁니다. 혁명당은 사회민주당 개량주의 정당으로 맛이 갔고, 그다음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됐어요. 역시 조합주의 개량주의로 맛이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더는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투쟁 기구가 아니라는 거지요. 노동자를 조국의 깃발을 들게 해서 전쟁터로 몰아낸 것도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조직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이미 백 년 전에 노동조합은 이른바 혁명 전략으로서 자기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조합 역사를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맛이 갔잖아요? 유럽에서는 100년이 걸려서 천천히 맛이 갔는데, 여기는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말만 양치기 파업이나 하고 진짜 싸움 다운 싸움 한번 해 본 적 있습니까?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대중 기구를 전 이렇게 봅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 파업위원회, 대중총회와 같은 거죠. 파업이 물론 매번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앞으로는 파업이 계속 있어야 하겠지요. 자본주의가 이 모양 이 꼴이니까. 그래서 파업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일상화되는 파업위원회, 노동자가 아래로부터 중심이 되어 만드는 조직이지요. 이게 노동자평의회고 이게 소비에트입니다.

 

우리가 관료화된 노동조합을 어떻게 넘어 섭니까? 위에서 내리박기식 이런 게 아니고 아래로부터 스스로 만들고 투쟁해 나가는 이런 자기조직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맹아적인 것들이 파업위원회나 대중총회나 이런 걸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것이 지역으로 보면 지역평의회를 만드는 거죠. 이런 조직이 됐을 때만이 혁명적인 무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또는 조합 바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용노동자가, 실업노동자가, 여성노동자가어떤 형식적 틀에 갇히지 않고 전면적 싸워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싸우는데 공장 안에서만 싸우면 되겠어요? 공장 안에서 싸우지만 진정한 싸움은 큰 마당에서 싸우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전체 노동자를 묶어 낼 수 있는 조직이 뭡니까?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상정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끊임없는 아래로부터의 자생적인 자기 조직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얘기 했을 때 제3 노총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혁명적인 제3 노총 만들면 되는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새로운 상으로 대중조직을 투쟁 조직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고민들을 사실은 노동조합 안팎에서 해야 합니다. 동시에 혁명세력들이 같이 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혁명 전략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하고 혁명당 건설과 노동대중들의 자기 조직화 과정이 어깨동무하고 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무기를 갖고 만드는 거지, 소리 질러서 되는 것도 아니고 교육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론을 내겠습니다.

 

제가 자본주의 역사의 중요한 연도를 얘기하면서 쭉 말씀드렸고, 왜 이렇게 죽어가고 사멸하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인가를 설명하는 이론 등을 말씀드렸습니다. 대안 사회, 코뮤니스트 사회를 만드는 주체는 우리 노동계급이라는 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이 혁명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무기를 가져야 하겠냐는 걸 말씀드렸고 이제 결론적으로 얘기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그냥 경제적 위기라고 하지 않길 바랍니다. 맑스주의 내에서는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이런 걸 구분하질 않아요. 개념을 기능적으로 구분하질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회를 분석할 때 정치 따로 있고 경제 따로 있고 문화 따로 있고 사회 따로 있고 이렇게 분석하는 게 있잖아요. 이건 부르주아 사회과학의 분석이에요. 맑스주의에서는 그렇게 분석을 안 합니다. 위기도 경제적 위기 이렇게 얘길 안 해요. 자본주의 위기지요. 자본주의의 한 측면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 위기인 거죠. 총체적 위기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드러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표출됩니다. 물론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기는 하지요. 그런데 결국은 어떤 점에서 파탄입니까?

 

인류의 문명적 관점과 대안 사회


우리는 문명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인류의 문명, 이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총체적으로 파탄이라는 거예요. 전체 문명적 관점에서 위기이기 때문에 결국은 총체적인 대안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거죠.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제, 사회, 환경, 보건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화하는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50년 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실패했고, 오직 전쟁만이 살아 있는 자본과 죽은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이 새로운 순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의 학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50개 이상의 분쟁은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빈곤, 전쟁, 기후위기, 생태파괴 등 총제적 위기는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고, 이걸 오직 해결할 수 있는 사회는 코뮤니스트 사회밖에 없음을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코뮤니즘만이 인류의 유일한 대안이며 그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게 오늘의 결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가장한 또는 참칭한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소련이고 중국이고 북한이고 자신들이 사회주의라고 하더라도, 저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를 참칭했다고 제가 비판한 거예요. 오히려 자본가계급이지 노동계급 편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세력들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겁니다. 철저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노동계급을 헷갈리게 하지 말라, 마치 자기네들이 노동계급 편인 것처럼 하지 말라 위장하지 말라 이겁니다.

 

저는 이것이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참칭한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다음에 각종 민족주의와의 투쟁이 중요합니다. 참칭한 사회주의는 다 민족주의거든요. 스탈린주의는 소련의 민족주의, 히틀러는 독일의 민족주의 이런 거예요. 김일성주의는 북한의 민족주의, 모택동은 중국의 민족주의라는 거지요.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민족주의, 카스트로는 쿠바의 민족주의라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 세력의 민족해방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에 역사의 시기가 특수했어요. 그런데 대체로 이런 민족을 내세운 투쟁은 어떤 혁명이었냐면 다 부르주아혁명이었습니다. 그런 혁명이 사회주의혁명인 적이 없어요. 자신들은 사회주의혁명이라고 위장했지만, 다 부르주아혁명이에요. 그래서 식민지를 해방시켜 부르주아 국가를 만들었단 말이지요.

 

그래서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은 각종 민족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여기서 유명한 말이 있지요. 노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 이게 중요한 말입니다. 노동계급에게는 자기 나라가 없단 말이지요. 자기 조국이라고 깃발 들고 다 전쟁터로 몰아 넣는다는 거지요. 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는 자기 조국이 없는 겁니다. 이를 “노동자 국제주의” 그러잖아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걸 다 극복했을 때 우리가 단결할 수 있지요. 아니면 자본가들이 민족으로 갈라치고, 국가로 갈라치고, 성으로 갈라치고, 직업으로 갈라치고, 현장으로 갈라치고,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치잖아요? 이 갈라쳐 온 전략이 자본의 전략이에요. 노동자가 단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지요. 이게 자본의 법칙입니다. 그래야 자본이 살 수 있으니까요. 계속 갈라치기 때문에 노동자의 단결이 어려운 거지요.

 

자본은 하나의 법칙이기 때문에 단결돼 있어요. 그 법칙으로 다 단결돼요. 사람으로 단결하지 않고, 법칙으로 단결하는데 노동자는 사람이니까 단결이 어려운 겁니다. 남녀가 다르다, 나이가 다르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다르다고 다 갈라치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노동자들끼리 싸우는 거고 단결된 투쟁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특별히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와 민족으로 갈라칩니다. 그러니까 민족을 팔아서 노동자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동자를 민족의 이름 앞에 총알받이 시키지 말라는 거죠. 우리는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이 조국이 없다는 철저한 노동자 국제주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고 양측의 착취자들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노동계급이 전쟁의 고통과 대학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양측의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민족과 국경을 넘어 투쟁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위기와 전쟁이 강요하는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대량학살과 전쟁을 끝장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중단했습니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 바로 코뮤니즘입니다.

 

사실 오늘 강연 내용이 조금 어렵지만, 나름대로 쉽게 도표를 가지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어쨌든 몫은 여러분 몫입니다. 적어도 이렇게 자본주의를 아주 깊이 파고들어 가고, 그다음에 진정한 우리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린 거고, 가짜 대안 사회는 없고 진짜 대안은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대안이 여러 개 있는 게 아닙니다. 선택지가 여러 개 있는 게 아닙니다. 유일한 대안은 하나, 코뮤니즘밖에 없습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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