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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사기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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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강요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와 ‘국민’이라는 바로 그 용어를 의미 없게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착취계급은 막대한 부를 손에 쥐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정치 권력은 언론, TV 그리고 주류 소셜 미디어와 같은 이데올로기 지배 수단과 마찬가지로 착취계급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사회에서 ‘국민’은 이러한 계급 적대를 숨기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고,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의 권력독점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반면, 피착취계급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신들의 실질 요구를 관철하기 힘들다. 그동안 착취에 맞서 피착취계급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은 무력으로 진압되거나 회유와 협박으로 길들어 결국 국가에 편입되었다. 그것은 지난 100년 이상 동안 ‘노동자(진보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자본주의 초기와는 달리 노동자들은 대통령/의회/지방선거와 국민투표에서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 권장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계급이 아닌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으로 원자화된 ‘시민’으로서만 유권자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 부르주아 선거에서 투표하는 바로 그 행위는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의 부재(不在)에 따른 무력감의 표현이다.

 

또한, 선거에서의 이슈, 국회에서의 논쟁 주제는 우리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독점 아래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이익이 우리 이익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으며, 국가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타협할 수 없는 계급 적대를 감추는 거짓 공동체일 뿐이다. 게다가 부르주아 정당 사이의 논쟁에서 어떠한 선택도 자본주의 체제 위기가 초래한 생활 수준 하락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라는 종교

 

오늘날 민주주의와 국가는 칼 맑스가 처음으로 ‘인민의 아편’이라는 용어를 만든 시대의 종교처럼 되었다. 민주주의와 국가 이익은 부르주아 사회의 ‘영적(靈的) 향기’이며, “이 세계의 도덕적 재가(載可)이며, 이 세계의 장엄한 보충이요, 이 세계의 일반적 위안 근거이자 정당화 근거이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궁극적인 실체인 노동과 전쟁에서 요구하는 모든 희생에 대한 정당성을 민주주의와 국가를 가정(假定)하지 않고서는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향기’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대통령과 국회도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에 매우 나쁜 악취가 되었다. 맑스와 엥겔스 시대, 즉 자본주의 상승기에는 노동자 정당의 부르주아 의회 참가가 적합한 활동이었다. 왜냐하면, 의회는 지배계급 내부의 진보와 반동이 실제로 대립하는 장이었고,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지속적인 향상을 위해 싸울 조건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노동자 대표의 부패 위험성을 상시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단지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에 표를 모으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의회 맹신’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 지배계급 모든 분파는 똑같이 반동적이며, 생활 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의 여지는 전혀 없다. 그리고 전체로서의 전체주의 국가의 성장에 직면하여 의회 절차의 깊은 무기력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통령제든 의회제든, 부르주아 정치의 막다른 골목과 포퓰리즘 부상은, ‘엘리트’를 향한 가짜 비판과 함께, 많은 사람에게, 일을 해내는 사람, 즉 ‘독재자’의 통치 방식인 ‘비자유 민주주의’를 갖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급에게 여전히 또 다른 잘못된 선택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안

 

노동계급의 역사적 운동은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1871년 파리 코뮌은 이미 의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4년에서 5년에 한 번 지배계급의 어떤 구성원, 즉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잘못 대변하는지를 결정하는 대신” 노동자 집단은 별도 집회(총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그 집회의 대표들은 선출되고 위임받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소환되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소비에트나 노동자평의회는 공장과 다른 작업장의 노동자들 집회를 기반으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서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윤곽을 1871년 보다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1917~21년 전 세계 혁명운동 물결 속에서 노동자평의회는 의회(그리고 노동조합) 기구에 직접 반대하여 생겨났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이것을 매우 잘 이해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세계혁명의 운명이 결정될 독일에서, 우선 평의회를 합병하고, 평의회를 의회와 지방정부의 무력한 부속물로 만든 다음, 1919년 베를린에서처럼 평의회의 실질 권력을 회복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격렬하게 분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혁명, 피착취계급 해방에 치명적인 적(敵)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목표는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인민’ 아니 오히려 통일된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진정한 인간 공동체에서는 그리스인들이 ‘크라토스(kratos)’라고 부르는 힘, 지배, 통치가 어떤 종류의 국가나 정치 권력에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출처 : 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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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 윤석열 친위 쿠데타 : 자본가 정권 타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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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모순과 취약성을 드러냈다.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동원해 정치인 등을 체포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려 했지만,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서 친위 쿠데타 시도는 150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12월 7일 계엄령의 배후와 실체가 밝혀지는 가운데 진행된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되었다. 탄핵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과 전국적으로 벌어진 탄핵 촉구 집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석열 방어에 나섰고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모범’이라는 한국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현재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지배계급 사이 권력투쟁이 보여주는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이기도 하다.

 

윤석열 집권 2년 반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노동계급에 전쟁을 선포하고, 노조 탄압, 부자 감세, 대기업 규제 완화, 민영화 추진, 복지 축소 등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뿐인가. 물가 폭등, 실질임금 하락, 가계부채 증가로 생활 수준은 계속 악화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정 대란 등으로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미, 일 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조장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반(反)노동, 친(親)자본, 친(親)제국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권은 가족과 본인에 대한 끝없는 의혹과 폭로로 궁지에 몰리고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섰다. 더는 선택지가 없었던 윤석열은 결국 친위 쿠데타를 선택했고, 야만으로 회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모순과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친위 쿠데타는 45년 전 전두환의 12.12 군사 쿠데타와는 성격과 준비 정도가 다르지만, 불평등과 모순으로 가득한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도구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마저 군대를 이용해 짓밟았다는 점에서 성격이 같다. 이는 70~80년대 군홧발과 총검의 공포와 폭력을 민주주의를 통해 극복했다는 이 체제가 그동안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국가폭력으로 잔인하게 짓밟아 온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탄핵-퇴진 투쟁은 과거 촛불 투쟁처럼 노동계급의 독자적 투쟁과 권력의 전망이 없다.

 

이번 친위 쿠데타에 따른 탄핵-퇴진 투쟁은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대대적인 촛불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몰락의 길을 택한 윤석열의 폭주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과 자기 권력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퇴진 촛불 투쟁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노동자 운동은 계속 후퇴하여 윤석열 정권의 전방위적 공격에 맞서 방어 투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동계급의 영역(현장)에서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반격의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선언적인 윤석열 퇴진만을 외치면서 부르주아 야당의 투쟁 일정에 맞춰 집회를 배치하고 행동을 제한했다. 하지만,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날로 악화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를 폭발시켜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총파업과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번에도 윤석열 탄핵 투쟁에만 매몰된다면, 과거 촛불 투쟁처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현재의 탄핵 절차는 선출한 사람들이 잘못된 선출을 바로잡기 위해 선출자를 직접 끌어내릴 수 없다. 윤석열이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버티는 것도 탄핵이라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탄핵은 윤석열의 공범과 부역자들에게도 의결권을 주기 때문에 그들이 탄핵을 막을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탄핵을 가결한다면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고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에도 헌법재판소라는 선출되지 않은 기관에서 헌법재판관들이 판결한다. 결국, 대중들의 실질적인 요구는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무력화되어 낡고 부패한 현 체제 안에 갇히게 된다.

 

 

이렇게 모순적인 탄핵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노동자의 삶도 개선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필요에 따라 윤석열과 같은 통치자를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고, 이 체제의 모든 정권은 자본가정권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은 위기 때마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정권을 교체해 왔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지배계급의 일부인 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촛불 정부’를 자임하고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노동개악, 노동탄압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윤석열도... (미래의) 이재명도 자본가정권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2면]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노동자민주주의를 통해 다수가 사회를 통제하고 노동자 스스로 생산과 일상을 조절할 수 있다.

 

과거 박근혜 탄핵부터 지금의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선출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다.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소수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차 폐지한다. 이것이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이며, 노동자민주주의를 통해 다수가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노동자 스스로 생산과 일상을 조절할 수 있다. 노동자민주주의는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의 다수가 참여하는 정치 광장(노동자 총회, 노동자평의회)에서 탄생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린 토론과 민주적 결정, 직접행동, 계급적 연대로 확장된다. 윤석열에 분노한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탄핵-정권교체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권력과 민주주의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윤석열, 트럼프와 같은 통치자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토대이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속하는 경제위기와 전쟁, 기후 위기, 팬데믹 등을 겪는 동안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세계의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며 위기를 전가해 왔고, 대외적으로는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점점 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전쟁과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이윤추구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며, 트럼프와 같은 통치자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토대이다. 윤석열 정권도 이러한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의 필요로 탄생했고, 다음 정권도 노동계급에 위기를 전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계급은 탄핵-정권교체가 아니라 '노동자 권력이냐/자본가계급 독재냐', '혁명이냐/전쟁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부르주아 정치세력과의 야권연대를 끊어내고 자본가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 강화를!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 남미에서 아시아까지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 노동계급이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감을 되찾고, 오랜 기간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었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도 깨어나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실질적인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탄핵-퇴진' 이후에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그동안 자본가정권이 강요한 모든 굴욕과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부르주아 정치세력과의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고, 조합주의,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자본가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노동자 총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자본가정권이 아무리 자주 바뀌고 덜 나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위기, 전쟁 위기, 착취와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쟁과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뿐이다.

 

아래로부터의 파업위원회 건설! 실질적인 총파업 투쟁!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투쟁으로!

노동자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2024년 12월 12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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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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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모순과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1.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동원해 정치인 등을 체포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려 했지만,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서 친위 쿠데타 시도는 150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12월 7일 계엄령의 배후와 실체가 밝혀지는 가운데 진행된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되었다. 탄핵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과 전국적으로 벌어진 탄핵 촉구 집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석열 방어에 나섰고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모범’이라는 한국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현재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대중 투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지배계급 사이 권력투쟁이 보여주는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이기도 하다.

 

2. 윤석열 집권 2년 반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노동계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노조 탄압, 부자 감세, 대기업 규제 완화, 민영화 추진, 복지 축소 등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뿐인가. 물가 폭등, 실질임금 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생활 수준은 계속 악화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정 대란 등으로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미, 일 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조장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포탄 지원에 이어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살상 무기까지 보내려 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반(反)노동, 친(親)자본, 친(親)제국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권이 임기 절반을 남겨두고 가족과 본인에 대한 끝없는 의혹과 폭로로 궁지에 몰리고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섰다. 더는 선택지가 없었던 윤석열은 결국 친위 쿠데타를 선택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모순과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것은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정치 현상이기도 하다.

 

윤석열 탄핵-퇴진 투쟁은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과 자기 권력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때와 다르지 않다.

 

3.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는 45년 전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민중항쟁으로 이어진 전두환의 계엄령과는 성격과 준비 정도가 다르지만, 불평등과 모순으로 가득한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도구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마저 군대를 이용해 짓밟았다는 점에서 성격이 같다. 이는 70~80년대 군홧발과 총검의 공포와 폭력을 민주주의를 통해 극복했다는 이 체제가 그동안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국가폭력으로 잔인하게 짓밟아 온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계엄령 사태에 따른 탄핵-퇴진 투쟁은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과는 달리 대대적인 촛불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몰락의 길을 택한 윤석열의 폭주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과 자기 권력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탄핵 때와 다르지 않다. 그동안 노동자 운동은 계속 후퇴하여 윤석열 정권의 전방위적 공격에 맞서 방어 투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노동자 운동의 다수파는 노동자의 자리(계급의 영역)에서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반격의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선언적인 윤석열 퇴진만을 외치면서 부르주아 야당의 투쟁 일정에 맞춰 집회를 배치하고 행동을 제한했다. 하지만, 탄핵의 무산과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를 폭발시켜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총파업과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번에도 탄핵 투쟁에 매몰되어 탄핵이 가결될 때까지 윤석열의 공범인 한동훈의 입을 바라보며 탄핵 가결을 압박하고, 탄핵 후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바라보며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4. 현재의 탄핵 절차는 선출한 사람들이 잘못된 선출을 바로잡기 위해 선출자를 직접 끌어내릴 수 없다. 윤석열이 이렇게 뻔뻔하게 버티는 것도 바로 탄핵이라는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탄핵은 또한, 윤석열의 공범과 부역자들에게도 의결권을 주기 때문에 이번처럼 공범들이 탄핵을 막을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탄핵을 가결한다면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에도 헌법재판소라는 선출되지 않은 옥상옥 기관에서 상당한 시간을 갖고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따라 판결한다. 결국, 대중들의 실질적인 요구는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무력화되어 현 체제 안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본질을 갖는 탄핵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필요에 따라 윤석열과 같은 집행자를 합법적으로 갈아치울 수 있다.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은 위기 때마다 (이번과 같은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정권을 교체해 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탄핵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이번 탄핵 사태는 그 모두가 거짓이고 환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지배계급의 일부인 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8년 전 박근혜가 파면되고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노동개악과 반(反)노동 정책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윤석열도, (미래의) 이재명도 자본가정권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5. 과거 박근혜 탄핵에서부터 지금의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선출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고,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진적으로 폐지한다. 이것이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이며, 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자의 생산과 일상을 스스로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노동자민주주의는 계급투쟁 속에서 다수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 광장에서 탄생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토론과 결정, 직접행동, 계급적 연대로 확장된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분노한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탄핵을 통한 정권교체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권력과 민주주의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진정한 계급투쟁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윤석열,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토대이다.

 

6.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속하는 경제위기, 기후 위기, 팬데믹, 제국주의 전쟁을 겪는 동안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세계의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며 위기를 전가해 왔고, 대외적으로는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점점 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전쟁과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이윤추구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 몰락하는 윤석열 정권도 이러한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의 필요로 탄생했고, 다른 나라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의 다음 정권도 노동계급에 위기를 전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계급은 탄핵이나 정권교체가 아니라 '노동자 권력이냐, 자본가 독재냐', '혁명이냐,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 남미에서 아시아까지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 노동계급이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감을 되찾고, 오랜 기간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었다.

 

부르주아 정치세력과의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고, 자본가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7.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도 깨어나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계엄령 선포로 실질적인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탄핵-퇴진' 이후에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그동안 자본가정권이 강요한 모든 굴욕과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부르주아 정치세력과의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고, 조합주의,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자본가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권이 아무리 자주 바뀌고 덜 나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위기, 전쟁 위기,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로지 전쟁과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뿐이다.

 

형식적인 총파업을 실질적인 총파업으로!

생존권 투쟁 전면화! 아래로부터의 파업위원회 건설!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자본가정권 타도 투쟁으로!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2024년 12월 8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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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조성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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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혜영 시인은 자신의 시 「미투」를 통해 고 박영근 시인이 행한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습니다. 저는 제5회 박영근 작품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제 알았으므로 조혜영 시인에게 미안하고 몰랐으므로 18년이 넘도록 홀로 고통을 견뎌왔을 조혜영 시인에게 더욱 미안합니다.

 

지금 제가 시인으로서 지켜야 할 명예가 있다면 피해 생존자 조혜영 시인의 외침을 경청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삶의 체온을 느끼는 것입니다.

 

“박영근 작품상 반납을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글은 조혜영 시인의 요청에 대한 제 화답입니다. 일생일대의 결단,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지지와 격려입니다. 문단 내에서 그녀의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고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지켜지기를, 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1.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조혜영 시인이 시집 발간 이후 정말 오랜만에 연락했습니다. 시집을 보내줄 주소를 요청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절박했을까요? 저는 조혜영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가 조혜영 시인의 ‘이 한 사람’이 되자고 제안하기 위해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2.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조혜영 시인이 고발한 미투 사건 성격 규정

 

“석바위 사거리 수(水)다방에서/하룻밤만 자주면 문단에 데뷔시켜주겠다며/성 상납을 요구하던 사람/유명한 문예지에 작품을 실어주고/등단시켜 시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돈 2백만 원을 요구한 유명했던 노동 시인//그 유명했던 시인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여전히 그를 기억하고/그의 문학을 연구하고/그의 문학상을 만들어 후배를 양성하고/양지바른 공원에 시비를 세워/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된다/꽃다발을 들고 시비 앞에 줄지어 서서/활짝 웃는 많은 문인을 본다//그를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가리지 않고/그의 시비 앞에 모여 묵념하고/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을 칭하며/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그의 시로 만든 노동가를 목청껏 부른다/그의 시와 문학을 연구하는/새파란 젊은 대학원생도/그의 시비 앞에 머리를 숙인다//나는 그의 시비 앞에 차마 침을 뱉을 수 없어/나는 그의 사후 미투를 한다/나는 그의 기일마다 유별나게 흥분을 감추지 못해/나는 해마다 그를 고발한다.”(조혜영, 「미투」, 『그 길이 불편하다』, 푸른사상, pp. 66-67)

 

아프고 아픈 시입니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운명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영근 시인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지만,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시’로 기록한 조혜영 시인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열린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 「미투」를 읽은 저녁, 마음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뒤척이며 조혜영 시인이 겪었을 고통의 뿌리를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성적 언동으로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여성가족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 2021.7.)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불쾌한 성적인 언사, 몸짓, 신체적 접촉, 추행, 강간 등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며, 법적으로 예시된 이외에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1. 개인의 성적 자율권 및 성정체성을 침해하는 모든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환경적 폭력행위. 2. 성적 호의를 조건으로 타인의 경력, 급여, 보직, 고용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타 일방적으로 만남이나 교제를 강요하는 행위.”(「민주노총 성폭력, 폭언, 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

 

문단에 데뷔시켜준다고 하룻밤 잠자리를 요구하다니요. 유명 문예지에 등단시켜준다고 금품을 요구하다니요. 고 박영근 시인은 문단 내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조혜영 시인의 의사에 반하는 하룻밤 잠자리를 요구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습니다. 국가기구인 여성가족부에서도, 제가 속한 민주노총에서도 박영근 시인이 행한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 즉 성폭력’이라고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작가회의의 성폭력 규정은 모르지만, 한국작가회의가 시민사회의 일부라면, 국가기구도 인정하는 성폭력 개념을 부정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조혜영 시인이 시 「미투」에서 고발한 사건의 성격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러한 호명은 피해 생존자 삶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폭력 가해자가 오해의 여지 없이[!] 우리가 아는 박영근 시인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박영근 시인을 아는 사람 중 누구는 “그게 무슨 성폭력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고 성폭력은 인정하나 사건명에서 박영근 시인의 이름은 빼자고, 시끄럽게 하지 말고 문단 내에서 조용히 마무리하자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거나 머뭇거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죽은 박영근 시인이 저지른 잘못을 살아 있는 우리가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박영근 시인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떠넘겼듯이 우리도 다음 세대의 후배들에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떠넘겨서야 되겠습니까? 사건의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평가하며 피해 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사려 깊게 함으로써, 기만과 허위의 우상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박영근 시인을 문학 앞에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몰랐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앞에, 고발 이전의 고통보다 고발 이후에 더 큰 고통을 맞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조혜영 시인은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립니다. 자신에게 성폭력을 행한 자가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칭송되는 그 기만과 허위가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어떤 일이든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봉책이 아니라 해결의 수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론의 무대에 서는 출발점. 조혜영 시인의 용기 있는 결단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심연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이라는 명료한 규정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수단을 내와야 합니다.

 

3. 더듬더듬 해답을 찾아가는 몸짓을 보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저는 여성들이 자신의 상처와 피해를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시기, 이 땅에 성폭력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피해 생존자와 작은 공동체들의 고통스럽고 끈질긴 투쟁으로 이 땅에 성폭력 개념이 구성되고 확장해온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살고 투쟁하며 시를 써오는 동안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고통을 제 안에 들여 앓음으로써 제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은 반혁명이었던, 정치적 기형의 삶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더 인간다워질 수 있었습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은 과거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뒤엉켜 있습니다. 박영근 시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원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성폭력 사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조혜영 시인도 살기 위해서 잊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덧나고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 「미투」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고 그의 문학상을 만들어 후배들을 양성하고 양지바른 공원에 시비를 세워 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꽃다발을 들고 시비 앞에 줄지어 서서 활짝 웃고 그의 시비 앞에 묵념하고 그의 시로 만든 노동가를 목청껏 부르며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박영근 시인을 칭송하는 것이 그녀가 보기엔 기만과 허위였기 때문입니다. 그 기만과 허위를 매년 목격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통을 헤아리는 자리에 문학은 있었고,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여전히 문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덧난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그녀의 고통을 헤아리고 사려 깊게 배려하는 것입니다. 시인인 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함으로써 그녀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혜영 시인의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세상을 보는 시선이, 참 순정한 사람이구나. 박영근 시인이 훼손한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살아내기 위해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치르고 있구나.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조혜영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시인 조성웅의 명예도 회복시키려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참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조혜영 시인에게 곁을 내주면서 맞이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반성폭력 운동에서 경험했던, 피해 생존자를 향한 가혹하고 잔인한 말과 행동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미 부끄러움조차 사라진 시대에 어떤 말과 행동이 비수로 날아올까 긴장됩니다.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었을 때, 누구나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가해자들이 믿고 신뢰하던 대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격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피해 생존자의 상처보다 자기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피해 생존자의 고통보다 조직의 안위가 먼저였습니다. 예외 없이 가해자 살리기 호위무사들이 등장하고 피해 생존자에 대한 체계적인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난의 목적은 단 하나, 피해 생존자를 고립시키고 지쳐 쓰러져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자 투쟁 앞에 피해 생존자의 고통은 침묵하고 참아야 하는 것으로 강제되었고, 조직 방어 논리 앞에 피해 생존자의 외침은 빠르게 축출되어야 했습니다.

 

예상하건대, “윤석열을 탄핵해야 하는 엄중한 정세에 조·중·동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짐짓 문단을 걱정하는 듯한 자들의 말을 경계합니다.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삭제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단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녕, 우리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고 성찰하여 극복하는 수단을 함께 찾음으로써 적들의 공격과 조롱에 맞설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이 자본주의와 다르게 살기 시작함으로써 적들을 부끄럽게 하고 두렵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아, 정말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30년이 넘는 지난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로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을 과신하거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규정은 만능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종합해 피해 생존자의 치유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미완의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생존자의 시간에 밀착해 섬세하게 돌보지 않으면 정무적이고 사무적인 사건 처리 과정, 치워야 할 물건처럼 서둘러 치워버리는 형식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시간과 분리되어 그녀의 일렁이는 다층적인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고 피해 생존자의 고립감은 깊어집니다. 집행 단위와 피해 생존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고 서로 상처를 더하기도 합니다. 저는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에 따라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건 처리 과정을 다 밟았다고, “자 이제 다 치유됐습니까?”라고 물을까 봐 겁이 납니다. 치유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해 생존자가 관계망 내에서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전지대,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구성되어야만 치유는 지속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공동체는 관계의 바닥을 뒤집어엎는 집단적 성찰을 통해서만 오겠지요. 훈육된 습성을 끊어내기 위한 고통스러운 투쟁의 단계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드물고 귀한 관계론이겠지요. 쉽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조혜영 시인의 치유를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공론화 이후 문단 내에서 작지만 귀한 공동체가 구성될 수 있을까요? 저는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 속해본 적이 없고, 또 조혜영 시인이 거주하는 인천 지역에서의 관계망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요?

 

저도 정답을 모릅니다. 다만 피해 생존자의 곁에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듬더듬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더듬더듬 해답을 찾아가는 몸짓을 보고 싶습니다. 알았으니 미안하고 몰라서 더 미안하다고 조혜영 시인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문자가 아닌 우리가 촉감하는 ‘시’가 되고 싶습니다.

 

올해는 김남주 시인 30주기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제게 “혁명하는 사람, 그가 시인”(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창작과비평사, 1995, p. 204)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젊은 날, 이 가르침을 따라 살았습니다.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지만, 조혜영 시인의 곁을 지키는 것이 제가 지금 행하고 있는 하나의 혁명입니다.

 

4. 우리들의 치유 보고대회

 

“언제 시골 가면 제가 사찰 요리 잘하고 좋아하니 우리 집에서 밥 한번 대접할게요.”

 

조혜영 시인이 말하는 ‘시골’은 우리 집과 지척이지요. 한 8년 전인가요? 조혜영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는데 집으로 초대해 강원도식 막장[된장찌개]으로 차려진 밥상을 내주었어요. 제게 조혜영 시인은 따뜻한 시골밥상 같은 분입니다.

 

조혜영 시인이 밥 한번 대접하는 자리, 전 치유 보고대회라고 부르고 싶어요. 사찰음식으로 정갈하게 차려진 치유 보고대회, 두런두런 맛나는 대화로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공론화 과정에서 조혜영 시인과 더 많은 이들이 우정으로 맺어져 초대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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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과제 : 피해자의 온전한 치유와 공동체적 해결을 위하여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온전한 치유를 위해 함께하는 이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작가 사회의 성평등 문화 실현을 위한 집단적 노력과 공동체적 해결을 촉구한다.

 

“이미 박영근기념사업회에서 입장문을 올린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것 아닌가?

 

조성웅 : 박영근기념사업회에서 진위 파악한다며 진흙탕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을 피하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념사업을 중단함으로써 조혜영 시인의 바닥없이 깊어지던 고통에 쉼표를 찍어줬잖아요. (기념사업 중단이) 고통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지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박영근 시인 사망 이후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억장 무너지는 마음과 고통이 치유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박영근기념사업회 입장문을 봤어요. 기념사업을 중단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데 사건에 관한 규정이나 평가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조혜영 시인의 고통을 헤아려보려 하고 사려 깊게 배려하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어 무척 아쉽습니다.”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2024년 9월 24일, 「오마이뉴스」)

 

<첨부> 한국작가회의 「성차별·성폭력 처리 및 예방에 관한 규정」

 

 

한국작가회의 「성차별·성폭력 처리 및 예방에 관한 규정」

 

(2018.7.14 이사회 승인)

 

한국작가회의는 사람 사이의 차별이 없는 존엄한 평등의 문화를 이뤄내고자 ‘성차별·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다. 이는 올바른 사건 해결을 통해 성별로 인한 억압과 차별을 해소함과 동시에 사건의 축소, 은폐, 왜곡의도를 척결하기 위한 한국작가회의의 조직 규율이다. 또한, 성 평등의식을 구성원 모두에게 자각시켜 성차별·성폭력을 예방하고자 하는 한국작가회의의 의지이다.

 

제1조 목적

 

이 규정은 본 조직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제반사항을 규정하며 성차별, 성폭력의 근절과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① 성차별이란 성별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행하여지는 차별, 배제, 제한을 말한다.

② 성폭력이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신체, 언어, 정신, 환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모두를 일컫는다.

③ 2차 가해란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직간접적인 또 다른 가해와 고통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포괄한다.

④ 대리인이란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대리하도록 선임한 자연인을 말한다.

 

제3조 적용 범위

 

본 규정은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피해자나 가해자, 어느 한쪽만 회원인 경우를 포함한다.

 

제4조 사건처리의 원칙

 

① 사건처리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1. 사건의 성립과 처리는 피해자의 구체적인 진술에 바탕을 둔다.

2. 사건의 처리 과정과 결론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

3. 피해자가 제2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4. 신고, 제소된 사건은 절차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한다.

② 사건의 처리는 공식적 해결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가해자의 실명, 처리결과, 조직의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제5조 피해자 권리 및 보호

 

① 사건의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

1. 대리인을 동반하거나 선임할 권리

2. 증인이나 참고인 등 특정인을 신청할 권리

3.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

4. 사건 해결의 전 과정과 결과에 대해 알 권리

5. 가해자 처리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권리

② 본 조직은 피해자의 보호 및 치유와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유관기관과 연계하여 상담, 치료 등을 지원한다.

 

제6조 사건의 성립

 

① 사건을 신고함과 동시에 성립된다. 단, 신고자의 신원과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사건은 피해자, 피해자의 동의를 받은 대리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신고할 수 있다.

 

제7조 적용시한

 

적용시한은 따로 두지 않는다.

 

제8조 임시조치

 

① 대책팀은 피해자의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 활동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② 대책팀은 피해자의 제1항과 같은 청구가 있었을 시 임시조치 여부를 신속히 결정하여야 한다.

③ 대책팀은 임시조치를 결정한 때에는 이를 피해자, 피해자 대리인, 윤리위원회에 통지해야 한다.

 

제9조 성폭력대책팀

 

① 구성

1. 평화인권위원회 내에 성폭력대책팀을 둔다.

2. 대책팀장은 평화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겸한다.

3. 팀원은 5인 이내로 구성하며 윤리위원회에서 정한다.

 

② 대책팀의 역할

1. 성차별·성폭력 상담 및 신고접수를 전담한다.

2.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가해자 조사 및 소명 절차를 밟는 등 공정한 활동을 한다.

3. 가해자가 소명에 응하지 않았을 시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4. 조사 도중 발생한 비용은 조직에 청구할 수 있다.

 

제10조 가해자에 대한 징계 및 조치

 

① 신고가 접수된 시점부터 징계가 결정될 때까지 해당 회원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는다.

② 대책팀은 조사가 마무리되면 윤리위원회에 그 내용을 회부한다.

③ 윤리위원회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방법을 심의한다.

1. 윤리위원회에는 성폭력대책팀장을 포함하고 성폭력 상담전문가 또는 교육이수자 등 외부 인사를 참여시킬 수 있다.

2. 성폭력대책팀과 윤리위원회는 사건 처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 관련인의 소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 회원과 조직은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3. 정관에 의거한 제명, 자격정지 외에 경고, 견책, 주의 등을 결정한다.

4. 가해자의 성평등 교육프로그램 이수 권고, 활동금지, 재가입 불가처분을 내릴 수 있다.

5. 가해자, 또는 회원이 2차 가해를 한 사실이 명백할 경우 제10조에 의거하여 처리한다.

6. 법적인 분쟁의 경우, ①항의 의거하여 탈퇴금지 및 회원자격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다.

④ 본 규정이 제정되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경우에도 1~6항의 조치를 적용할 수 있다.

⑤ 조사결과와 징계 결정 사실을 이사회에 보고한다.

 

제11조 공동해결

 

피해자나 또는 가해자 중 어느 한쪽이 회원이 아닌 경우, 사회적 해결을 위해 당사자의 소속집단과 공동해결의 원칙에 따라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제12조 예방

 

 

성폭력의 근절과 예방, 성평등 조직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성폭력 예방 및 성평등 교육을 회원 교육에 포함하여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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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7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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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7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4년 11월 30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 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국제노동자연합(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1889-1914),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1919-1928) ... 기회주의, 반(反)혁명 세력에 맞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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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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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축적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과 기후위기의 일상화는 자본에는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노동계급에는 고통과 죽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 부르주아지는 선거에 대한 환상과 민족주의를 내세워 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체제 유지와 전쟁에 동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레바논 인민 학살을 포함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 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 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해마다 기후위기 난민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제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겉으로는 녹색으로 포장하고 뒤로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적 관계 보존과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자본의 좌파에 맞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는 일관되게 혁명적 패전주의와 노동자국제주의를 방어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 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반(反)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편을 드는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 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민족)의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 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 국가'든 '억압 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反)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 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 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이다. 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이다. 그들의 실제 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의 대응과 올해 주요 국가에서 치러진 부르주아 선거를 다뤘다. 또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 자본주의 경제적 토대,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등 연재 기사와 코뮤니스트 혁명가 안톤 판네쿡 서평을 실었다. 그 외에도 현 정세에 참고할 만한 글과 흥미진진한 주제가 풍성하게 실렸다.

 

□ 특집,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에는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학생 시위 : 뒤섞인 신호’를 실었는데, 평화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혁명적 패전주의를 다루었다.

 

“평화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전쟁이 자본주의 체제에 본질적으로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본주의 내의 평화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계략을 숨기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노동계급을 호도한다. 그들이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평화는 용어상 모순이다. 대신, 전쟁에 대한 유일한 진정한 반대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오늘날 혁명적 패전주의는 동지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나요?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혁명가들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전면에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답변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적인 체제이며, 전쟁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세계와 자원을 재분할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사적 해결책을 선호합니다. 전쟁이 가져오는 자본의 파괴는 또한 체제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배계급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편익 동맹(alliances of convenience)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 프로젝트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국) 지배계급이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약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졸에 불과하며, 전시에는 자신의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도구로 이용하고, 전쟁 후에는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따라서 민족 해방, 민족의 자결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역사적 모순이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에 계급전쟁으로 맞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는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 코뮤니스트 정치에는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를 실었는데,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의 일상화와 기후위기의 배경과 지배계급의 행태와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체제 유지와 제국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민족주의, 기후위기를 통해 이윤추구의 새로운 방법을 구사하는 자본의 적나라한 모습과 왜 노동계급만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인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산할 뿐 인류의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역사는 전쟁이라는 자본가계급의 살인 기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일혁명의 위험 때문에 자본가계급이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이 계급전쟁을 벌일 위험에 처할 때만 전쟁 중단을 고려할 뿐이다. 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이 대대적인 계급투쟁을 즉시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계급투쟁의 확산과 발전만이 그러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적 긴장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와 비판으로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 신드룸과 박정희 동상을 잠재우기는커녕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과 향수만 자극했다. 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사관의 극복은 한국 민족주의가 아니라 코뮤니즘을 향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국제주의로 가능하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 국제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배계급이 부르주아 선거를 어떻게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환상을 심어주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북미 지역 노동조합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는 노동자 투쟁의 절실함과 볼리바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모든 선거는 위기이며, 자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가 된다. 부르주아지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고 있다”고 선언하며 우리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투표하지 않았으니 불평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공허한 반동적 활동(자본주의 선거에서 투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벌이고, 선거를 집단행동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대안이 있다.

해리스나 트럼프 모두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투표를 통해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는 대신, 누가 당선되든 일어나게 될 경제적 공격과 전쟁 준비에 맞서 스스로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 (‘미국 : 민주·공화 양당, 하나의 썩은 체제’, 「국제주의노동자그룹」)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이미 의문을 제기한 문제이다! ……… 프롤레타리아 여러분, 우리는 이 선거가 우릴 위하여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체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이 모든 것을 거부하자! 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적들에게 투표하지 말자, 그들은 모두 우리를 착취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국제주의혁명그룹」)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에는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부르주아지가 조직하는 방법’을 실었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 참가 이유와 「국제맑스주의경향」(IMT)에 대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비판과 포푤리즘에 대한 분석을 소개했다.

 

”자본주의의 전복과 새로운 코뮤니스트 세계의 토대 구축은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강령을 중심으로 계급을 통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의 과업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선전을 확산하는 것이며, 이는 나머지 노동계급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운동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신과 이러한 동기로 우리는 더 광범위한 계급 저항을 향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공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다. 이번 호에 보도된 프라하 국제 모임과 아레초에서 열린 소규모 모임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참석했다.”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더 오래되고 최근의 이 모든 예는 IMT의 국제주의가 사기이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다고 주장하는 구호가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IMT는 다른 모든 트로츠키주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모든 노동계급의 투쟁을 방해하는 반(反)혁명의 도구다. ……… 그러나 일단 '혁명적 패전주의'에 대한 강령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나면, 그들은 구체적 문제로 넘어가서, 실제로는 기존의 전쟁 전선에 참여하고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기 시작한다."[9]. 이는 트로츠키주의에 있어 정치적 입장보다 정치적 실천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실천은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동원에 끊임없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기사에서 CWO가 쓴 것처럼 ‘파산한 정치적 경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주의는 노동자 투쟁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영향을 받아 급진화하는 계급 내 소수를 통제하고 탈선시키는 부르주아지의 중요한 도구이며,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더 거대하고 정치화된 계급 대립으로 가는 길을 막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부활하는 IMT의 정책이다.”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혁명가에서는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을 조명했다. 안톤 판네쿡(1873-1960년)은 노동자 운동에서 엄청난 기복의 시대,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낸 혁명적 파고를 겪었다. 판네쿡이 그 사건들에 직접 참여한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노동계급 역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겪었던 판네쿡은 평생 맑스주의자로 남았고, 혁명적 변혁의 열쇠는 노동계급 대중의 계급의식 발전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전체적인 전망은 노동계급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의식을 획득한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네쿡은 다른 평의회주의자들과 다르다. 그리고 의식은 조직적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판네쿡은 평의회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지만, 혁명적 계급의식은 노동자들 사이의 논쟁과 토론 없이는 도달할 수 없으므로 그 과정에 기초한 “당”이라는 개념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위대한 시기는 당쟁의 소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여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하고 동지들을 계몽하기 위해 그 생각을 선전한다. 이러한 공통된 의견 그룹을 당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성격은 이전 세계의 정당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의회주의하에서 이 당들은 서로 다르고 상반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닌 기관이었다. 노동계급 운동에서는 이 당들은 계급을 선도하고, 그 대변자이자 대표로 활동하며, 지도와 지배를 열망하는 조직이었다. 이제 그들의 기능은 정신적 투쟁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실천적 행동을 위해 당이 필요하지 않다. 노동계급은 행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 …… 즉 평의회 조직을 만들었고, 행동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 자체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도 전체 노동자 자체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 비평’,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에서는 헤르만 호르터의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중 의회주의에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 헤르만 호르터는 서유럽과 러시아의 정치, 경제 상황은 다르며, 따라서 의회주의 전술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反)의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방어에 이어, 저는 동지의 의회주의 방어에 대해 자세히 답변하고자 합니다. 동지는 영국과 독일의 의회주의를 (36쪽부터 68쪽까지) 방어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러시아(그리고 극히 일부 다른 동유럽 국가)에만 유효하며, 서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바로 그 점이 동지의 실수입니다. 그것은 동지를 맑스주의자에서 기회주의 지도자로 전락시킵니다. 이에 따라 맑스주의자이자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의 급진적 지도자인 동지가 서유럽과 관련해서는 기회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동지의 전술이 여기서 받아들여진다면, 서유럽 전체를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점은 동지의 주장에 대한 답변에서 자세히 입증하겠습니다.” (헤르만 호르터,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 문화에서는 낯선 땅에서 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하는 소박한 청년의 일상을 소개한 ’나의 스무 살‘과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를 실었다. 조혜영 시인의 시 ’미투‘를 통해 고 박영근 시인이 행한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조성웅 시인이 박영근 작품상 반납에 대한 이유와 앞으로의 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은 조혜영 시인의 요청에 대한 제 화답입니다. 일생일대의 결단,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지지와 격려입니다. 문단 내에서 그녀의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고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지켜지기를, 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

저는 조혜영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가 조혜영 시인의 ‘이 한 사람’이 되자고 제안하기 위해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조성웅,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 코뮤니스트좌파 역사에서는 창립 45주년을 맞이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탄생 배경과 간략한 연표를 실었다.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자본축적의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 분석부터 지배계급의 반동적 전쟁과 여기에 맞서는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들의 원칙(노동자국제주의), 역사, 투쟁을 깊게 다루었다.

 

“미래는 노동자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안톤 판네쿡, 1907)

 

다시 한번 소개하는 안톤 판네쿡의 생애와 사상은 노동계급에 영감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독자와 지지자들의 격려와 다양한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한국-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반대!

자본가 정권 타도! 제국주의 전쟁 타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민족에 맞선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맞선 계급으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4년 11월 9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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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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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8개월이 넘었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학살도 1년이 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1만 명 넘게 사망했고, 양측의 군사 사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사망자가 42,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45%는 어린이였다.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2,000명 넘게 사망하고, 1만 명 가까이 다쳤다. 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러시아는 계속 공세를 유지하면서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체제-정권의 위기에 빠진 한국과 북한의 통치자들이 위기 모면의 수단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려고 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에 옮겨붙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 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길어졌다.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 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 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자본가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임금, 연금, 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 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자재 확보 경쟁은 분쟁의 핵심인데, 원자재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레바논 등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를 보여준다. 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이다.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자본가계급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국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희생당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그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념에 종속된 노동계급이 벌이는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과 관련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이용하는 이념은 ‘민주주의’, ‘국가-민족’ 방어 또는 ‘국의 수호 등 다양하게 포장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도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 자기 계급의 이익을 잊도록 세뇌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념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민족(해방)투쟁이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지지했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민족투쟁이 억압받는 민족 노동계급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제국주의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평상시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 시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계급의 적(敵)인 자본가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한다. 이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를 위한 이익이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 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중단하고, 계속 쇠퇴하고 있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지금 인류와 지구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 바로 코뮤니즘이다.
 
 
 
생존권 위협, 전쟁 위기에 맞서
노동계급의 반격! 자본가 정권 타도!
 
 
몰락하는 윤석열 정권의 러-우 전쟁 개입 반대!
 
윤석열 집권 2년 반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노동계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노조 탄압, 부자 감세, 대기업 규제 완화, 민영화 추진, 복지 축소 등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뿐인가. 물가 폭등, 실질임금 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생활 수준은 계속 악화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정 대란 등으로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미, 일 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개입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반(反)노동, 친(親)자본, 친(親)제국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권이 임기 절반을 앞두고 가족과 본인에 대한 끝없는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섰다.
 
선택지가 없는 윤석열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처럼, 북한의 파병설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 개입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북한군 파병설과 윤석열 정권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파병-무기 지원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양측의 정권이 개입하려는 전쟁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희생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모든 군사동맹은 무슨 명분이든 지배계급을 위한 동맹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질서를 위한 동맹일 뿐이며,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이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떠한 군사개입(파병, 무기 지원)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살상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파병된다면 유럽의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군인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량 살상무기는 러시아 노동계급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의 확장과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양측의 노동계급에 큰 고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의 반격! 자본가 정권 타도!
 
그동안 자본가 독재의 폭주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노동자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윤석열 정권은 스스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퇴진' 이후에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노동자와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몬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키는 일은 노동계급의 당연한 과제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단지 부패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현재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더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자본가 정권이 강요한 모든 굴욕과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야권연대, 조합주의,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자본가 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위기, 전쟁 위기,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기에 노동계급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4년 11월 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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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4년 20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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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4년 20호
 
 
차례
 
 「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 
 
□ 특집,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 학생 시위 : 뒤섞인 신호 
 
□ 국제
▸ 미국 : 민주·공화 양당, 하나의 썩은 체제 
▸ 영국 : 노동당이 이겼지만, 노동계급의 승리가 아니다 
▸ 프랑스 :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 볼리바르 '사회주의'의 허세 
▸ 전투적 노동절이 필요한 노동계급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
▸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 부르주아지가 조직하는 방법 
 
□ 혁명가
▸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 : 비평 
▸ 계급투쟁에 관한 5가지 테제 - 안톤 판네쿡 
 
□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창립 45주년 
 
□ 이론
▸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4부) 
▸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5부) 
 
□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
▸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3) 
 
□ 문화 
▸ 나의 스무살 
▸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 올리비에를 추모하며  
▸ 올리비에 동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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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 바로 코뮤니즘이다.
 
 
□ 가격 :  2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20호는 2024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배포/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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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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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8개월이 넘었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학살도 1년이 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1만 명 넘게 사망했고, 양측의 군사 사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사망자가 42,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45%는 어린이였고, 거주자의 90%가량인 190만 명이 피란민으로 내몰렸다.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2,000명 넘게 사망하고, 1만 명 가까이 다쳤다. 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러시아는 계속 공세를 유지하면서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체제-정권의 위기에 빠진 한국과 북한의 통치자들이 위기 모면의 수단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려고 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에 옮겨붙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은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적 갈등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벌어진 두 전쟁은 수많은 분쟁 지역 중 일부가 터졌을 뿐이며, 또 다른 분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전쟁은 특히, 어느 쪽도 타협할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분쟁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러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적(敵)-경쟁국의 완전한 패배로만 끝날 수 있는데, 주로 경제적 고갈로 인해 잠시 멈췄다가 언젠가 다시 발발할 뿐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 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진다. 기존 자본과 비교해 잉여가치의 양이 감소할수록 이 쟁탈전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결국 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1914~1918년과 1939~1945년에는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이 있었고, 그 후로도 전쟁은 거의 모든 대륙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길어졌다. 이에 따라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 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 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자본가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임금, 연금, 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 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자재 확보 경쟁은 분쟁의 핵심인데, 원자재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국제 자본가계급은 점점 더 일반화되는 제국주의 분쟁의 각본을 쓰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 결과 제국주의 경쟁, 특히 세계 주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전쟁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끔찍한 잔인함을 초래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자'에게는 시장 경쟁자를 제거하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으며, 이는 구조적 위기에 처한 현대 경제의 생산 요구에 유용하다. 이는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 또한 이윤율을 높이려는 시도이며, 결과적으로 자본 자산과 가치의 파괴를 통해 축적 주기를 새롭게 시작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우크라이나에서 중동과 홍해, 콩고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무력 분쟁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 노동계급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파괴와 죽음, 전례 없는 잔인한 야만으로 가득 찬 미래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레바논 등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 미리 보여준다. 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자본가계급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수단과 국가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희생당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는 전쟁, 민족(해방) 투쟁의 성격

 

1914년 민족주의라는 바이러스는 1차 세계대전의 학살로 이어졌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도 민족주의에 감염되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결의를 포기했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학살에 나서게 부추기고 파업권을 포기할 구실을 찾았다. 소수의 국제주의자만이 전쟁에 반대했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의 우리처럼 조롱을 받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라”는 레닌의 요구가 전쟁 반대 투쟁을 사회주의 투쟁으로 만들겠다는 침머발트 좌파의 결의안에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그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념에 종속된 노동계급이 벌이는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과 관련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이용하는 이념은 ‘민주주의’, ‘국가-민족’ 방어 또는 ‘국의 수호 등 다양하게 포장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도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 자기 계급의 이익을 잊도록 설득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념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계급의 민족투쟁이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코뮤니스트들이 지지했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이러한 민족투쟁이 자국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학살하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투쟁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 민족투쟁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반(反)혁명적인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 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반(反)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편을 드는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 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민족)의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 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억압받는 국가'든 '억압 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反)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 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것은 동등하지 않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하위 파트너 또는 강대국 블록의 하위 구성원으로서 참여한다. 따라서 모든 국가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소국의 경우 이러한 야망을 사실상 실현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근간은 잉여가치를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에 이전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이전이 모든 국가에 혜택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의 주요 수혜자이자 지배자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이다. 여기서 주변국(군소 강대국)의 역할은 강대국의 하수인 역할이다. 이들의 역할은 주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가 이들을 착취하는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으로 원활하게 이전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속한 지역에서 자본의 지배가 위협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지배력과 그로 인한 특권은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으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지만, 신흥 강대국의 도전이 체제 전체의 작동 방식을 바꾸지는 않는다. 20세기에 보았듯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주도권은 바뀌었지만, 세계 체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 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이다. 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이다. 그들의 실제 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 베트남의 유명한 해방 투쟁은 실제로 여러 국가의 지위를 미 제국주의의 고객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고객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 최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국가들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민족(해방)투쟁은 억압받는 민족 노동계급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투쟁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 그와 더불어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한다거나 혁명적 국제주의의 부활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어떤 구실이나 명분으로도 전쟁에 참여해서 전쟁에 맞설 수는 없다. 반대로 국제주의자의 첫 번째 임무는 민족 자본가계급과 국제 제국주의의 수많은 촉수로부터 노동계급을 해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적 대안을 옹호해야 한다.

 

한국과 북한 정권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대해서도 노동계급은 양측 모두를 거부해야 한다. 북한군 파병설과 윤석열 정권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한국과 북한의 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파병-무기 지원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양측의 정권이 개입하려는 전쟁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희생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모든 군사동맹은 무슨 명분이든 지배계급을 위한 동맹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질서를 위한 동맹일 뿐이며,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원리이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떠한 군사개입(파병, 무기 지원)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살상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파병된다면 유럽의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군인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량 살상무기는 러시아 노동계급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의 확장과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양측의 노동계급에 큰 고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산할 뿐 인류의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역사는 전쟁이라는 자본가계급의 살인 기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일혁명의 위험 때문에 자본가계급이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이 계급전쟁을 벌일 위험에 처할 때만 전쟁 중단을 고려할 뿐이다. 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이 대대적인 계급투쟁을 즉시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계급투쟁의 확산과 발전만이 그러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적 긴장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평화의 시대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의 시대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 계급의 적(敵)인 자본가계급의 이익이 아닌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를 위한 이익이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중단했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 바로 코뮤니즘이다.

 

한국-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반대!

자본가 정권 타도! 제국주의 전쟁 타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4년 11월 5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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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레닌과 레닌주의

레닌과 레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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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혁명가들이 살아 있는 동안, 억압하는 계급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고, 가장 야만적인 악, 가장 격렬하게 증오하고 가장 파렴치한 거짓말과 비방 캠페인으로 그들의 이론을 받아 들였다. 그들의 죽음 이후, 그들을 해가 없는 상징으로 바꾸고, 말하자면 신성시하고, 억압받는 계급의 ‘위로’를 위해 그리고 후자를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거룩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혁명 이론의 실체를 빼앗고 혁명적인 예리함을 무디게 하고 저속하게 만든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이러한 도용에 동의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이론의 혁명적 측면, 즉 혁명적 영혼을 생략하거나 모호하게 하거나 왜곡한다.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수용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찬양한다.” (레닌, 「국가와 혁명」, 1917년)

 

레닌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어 모스크바에 공개 전시된 지 100년이 지났는데, 이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레닌의 진정한 공헌을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것과 더불어 '붉은' 부르주아지의 기괴한 제스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러시아는 더는 레닌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제국 붕괴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 구(舊)동구권의 많은 국가에서는 '탈(脫)코뮤니즘화'의 목적으로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 따라서 레닌 서거 100주년은 큰 틀에서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기와 전쟁의 세계에서 '코뮤니즘' 사상은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지난 수십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따라서 자본주의 너머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애매모호한 기념일은 '코뮤니즘'이 라는 개념과 함께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다시 돌아볼 기회이다.

 

레닌, 집단적 조직가

 

1870년 레닌은 오늘날 상류층 가정으로 묘사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yich Ulyanov)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노 출신이었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 역시 교사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자녀를 양육하면서 보냈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두 형제는 유아기에 사망했다. 자유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부모의 설득에도 자녀 중 다섯 명은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Aleksandr Ulyanov)는 대학 재학 중 나로드나야 볼랴(Narodnaya Volya)에 가입했는데, 암살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1887년 차르 당국에 의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이 레닌이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 2년 동안 지역 도서관을 뒤져 급진적인 서적을 찾다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저작과 칼 맑스의 『자본』을 접하게 되었고, 곧 나로드냐와 맑스주의 연구 서클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은 제국 전역에 퍼져 있는 혁명 세포와 연구 서클이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었다. 레닌은 특히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 Plekhanov)와 베라 자술리치(Vera Zasulich) 등이 주도한 '노동해방' 그룹의 맑스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는 1895년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 연맹을 설립했고, 곧 체포되었다.

 

감옥과 망명지에서 그는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나로드닉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 경제 문제를 연구했다(사회주의혁명당(SR)이 창당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됨). 레닌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러시아에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존재한다.

• 더 많은 수의 농민이 아닌 노동계급이 미래의 혁명에서 주도 세력이 될 것이다.

• 이 혁명은 사회주의(계급제 파괴를 목표로 한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와 민주주의(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절대주의와 투쟁) 과제를 모두 결합하게 될 것이다.

•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혁명가들은 이후 과제에 맞서기 위해 하나의 통합된 정당으로 뭉쳐야 했다.

 

사회주의 운동 통일을 레닌 홀로 추진한 것은 아니었으며, 1898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 제1차 대회가 민스크에서 열렸다. 그러나 경찰의 탄압과 내부 다툼으로 인해 새로운 RSDLP는 주로 이름만 존재했다. 레닌의 수정주의와 경제주의에 대한 비난, 이스크라를 중앙당 기관지로 만들려는 시도, 1902년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레닌은 러시아에서 부상하는 계급 운동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적 일관성을 갖춘 당을 건설하기 위해 직업 혁명가들로 구성된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조직을 주장했다. 이러한 당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레닌은 동맹 중 일부와 결별하게 되었고, 1903년 제2차 RSDLP 대회에서는 당원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사소한 정의 차이로 인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라는 두 당파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1905년 혁명에서 드러난 실질적인 정치적 차이가 있었다.

 

레닌, 혁명적 국제주의자

 

1905년 사건은 정교회 사제에서 경찰 스파이로 변신한 가퐁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평화 시위가 차르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려는 의도로 별다른 생각 없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소총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학살 사건은 러시아 제국 전역 대중의 분노를 일으켜 시위, 파업, 봉기, 그리고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의 창설을 촉발했다. 1905년은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조직에 불을 지피는 시기였다.

 

레닌은 1905년 혁명이 발발했을 때 망명 중이었지만, 1789년, 1848년, 1871년 혁명을 연구하며 통찰력을 얻기 위해 사건을 면밀히 추적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거리와 공장에서 볼셰비키 동지들에게 파업을 연장하고, 노동자들이 무장할 것을, 그리고 군인들이 정부에 대항할 것을 촉구했다. 차르가 두마(의회)의 설립과 언론 및 결사의 자유를 약속하는 10월 선언을 선포한 후 레닌은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당이 새롭게 부상하는 노동계급 요소에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민주적 중앙집권주의를 기반으로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으며, 모든 상급 기관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책임을 지며 소환될 수 있도록 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같은 당이었지만, 두마 선거를 통해 분열의 깊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볼셰비키가 봉기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수립을 요구했지만, 플레하노프와 파벨 악셀로드 같은 멘셰비키 지도자들은 바로 이때 입헌민주당이나 카데트(Kadets)와 같은 부르주아지의 진보적 요소와 의회 연정을 제안하고 있었다.

 

이 혁명적 열기의 시기에 볼셰비키는 역동적인 조직이 되었고, 1907년에는 4만 명이 넘는 당원을 확보했으며, 그중 대다수가 노동자였다. 레닌은 1902년 악명 높은 팸플릿에서 공식화한 전술이 정치적, 조직적 일관성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차르가 모든 자유주의 개혁을 되돌리면서 촉발된 반(反)혁명 시기는 새로운 문제도 생겨났다.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분파주의가 더욱 심해졌다. 레닌은 다시 망명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당 조직(악셀로드와 멘셰비키 청산파 반대), 맑스주의 정통성(알렉산더 보그다노프와 볼셰비키 사이에서 맑스주의 영향력 반대), 민족의 자결권(폴란드, 독일, 러시아 당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녀의 추종자 반대) 논쟁에 참여하게 된다.

 

러시아에서 점진적으로 부활하던 노동계급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혼란에 빠졌다. 레닌의 관심은 이제 국제무대로 옮겨져 제2 인터내셔널 붕괴와 배신의 원인을 파악하고 자본주의 제국주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했다. 침머발트와 키엔탈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고, 혁명가들이 제3 인터내셔널로 재결집할 수 있도록 투쟁했다. 2월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자신의 관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레닌은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다시 생겨나고 있는 소비에트가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가능하게 하고, 더 발전된 서구 혁명과 연대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봉기해야 한다는 그의 요구는 처음에는 당내 일부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볼셰비키 대중은 이를 열렬히 받아들였다. 볼셰비키는 당원 수가 급증하여 당시 약 20만 명으로 늘어났고, '소비에트에 모든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차 운동 내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10월 혁명의 발발은 전 세계에 혁명의 물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레닌, 정부의 수반

 

소란스러운 절차 끝에 「제2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회의」는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새로운 중앙집행위원회(VTsIK)를 선출했으며, 중앙 집행위원회에 인민위원회(소브나르콤)를 구성하는 임무를 맡겼다. 레닌은 이 새로운 기구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 코뮤니스트 당으로 재조직하고 제3 인터내셔널 창당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10월 이후 6개월 동안 소비에트 원칙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노동자와 농민은 착취와 억압의 체제를 뒤집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례인 파리 코뮌은 72일 동안만 지속하다가 잔인하게 진압되었기 때문에 본받아야 할 청사진이 없었다. 그러나 초기의 혁명적 열정이 객관적 현실을 감출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물려받은 러시아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수년간의 전쟁과 혁명으로 경제는 엉망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실패하게 되면서 제국주의의 개입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1918년 3월에 체결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중요한 최초의 후퇴였다. 레닌은 페트로그라드 진격을 불과 몇 주 앞둔 독일군의 진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이 결정은 당내에서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소비에트 권력을 지지하는 좌파 사회혁명당(제2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소비에트 권력이 채택된 후에야 모당과 분열했다)과의 갈등을 야기했다. 좌파 사회혁명당은 소브나르콤에서 철수하고 독일과의 전쟁 재개를 목표로 봉기를 일으켰다. 레닌의 팸플릿 「소비에트 정부의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이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여 이제 "움직이고, 후퇴하고, 기다리고, 천천히 건설하고, 무자비하게 닦달하고, 엄격하게 규율하고, 느슨함을 분쇄"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1918년 8월, 레닌은 공장 대회에서 연설한 후 최근 해산된 제헌의회 지지자가 쏜 총에 맞았다. 레닌이 거의 죽을 뻔한 상황에서 소브나르콤은 '백색 테러'와 '적색 테러'에 맞서기로 했다.

 

독일과의 평화조약으로 인해 러시아혁명의 고립이 다른 곳의 혁명으로 해소될 때까지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희망은 얼마 가지 못했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 북부에 대한 연합군의 개입, 콜차크(Kolchak), 랑겔(Wrangel), 데니킨(Denikin)의 백군 정복은 모두 길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1920년까지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주요 내부 위협이 패배하면서 새로운 '평화 건설'에 대한 희망이 잠시 생겨났지만,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공세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다. 이 시기에 소비에트 러시아는 전직 차르 관리들이 이끄는 징집병으로 적군을 구성하고, 체카가 경쟁자 정치 세력을 탄압하고, 산업계에 1인 경영을 도입했으며, 농촌에 곡물 징수를 시행하는 등 포위망을 구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한편 새로운 제3 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외교의 이해관계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고 있었다. 러시아 밖에서 혁명이 실패하자 서방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동방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당 내부에서는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다양한 반대파가 등장했다(『코뮌주의자』, 민주적 중앙주의 그룹, 군부 반대파, 노동자 반대파, 노동자 그룹). 이에 대해 레닌은 혁명가는 전진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후퇴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의 제안 중 일부를 수용하려 했지만, 이러한 그룹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당 지도부의 일부 과잉 행동(보기: 노동의 군사화에 대한 트로츠키, 그루지야에 대한 스탈린)에도 반대했다. 결국, 엄청난 역경을 딛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존립은 보장되었지만, 소비에트 성격을 점진적으로 상실하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전쟁과 억압 상황은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약화했다. 지역 소비에트는 회의를 열지 않았고, 회의를 연다 해도 주로 위에서 내려온 결정에 고무도장을 찍는 수준이었다. 소브나르콤은 소비에트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기관이 아니라 소비에트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되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봉기는 이러한 부분의 증가로 인해 나타난 하나의 징후였다. 이 비극적인 진압 이후 레닌은 또 다른 필수적 후퇴로 간주하는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했다. 전쟁 경제를 시장에 개방하는 것은 수년간의 혼란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해결하고 노동계급 기반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레닌의 마지막 저서에는 혁명의 진전 부족과 혁명이 만들어낸 제도의 부적절함에 대한 실망감이 담겨 있다. 그는 관료주의의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 더 많은 노동자를 체제 운영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양한 행정 개혁을 제안했다. 하지만 1922년 뇌졸중으로 두 차례 쓰러진 레닌은 전신이 마비되었다. 레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던 국가 기관의 가택 연금에 가까운 강도 높은 감시 아래서 그는 비서에게 유언을 남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923년 3월 세 번째 뇌졸중으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1924년 1월 21일 혼수상태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레닌주의

 

여기에 요약된 레닌의 전기는 혁명의 물결에 올라탔지만, 혁명이 무너지면서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그리고 개인으로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는 러시아혁명이 관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레닌이 사망할 무렵 소비에트 권력이 당 국가로 전환된 후, 누가 당을 이끌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구어체로 사용되었다면, 이제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1924)와 지노비예프의 『레닌주의 연구 입문』(1925) 같은 팸플릿에서 경쟁적으로 해석이 등장하면서 공식 이데올로기로 만들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1923년 3월에는 당 안팎에서 '레닌주의'를 홍보하기 위해 카메네프가 이끄는 레닌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 3인방은 이른바 '레닌 레비'를 통해 트로츠키에 대항하는 분파 투쟁에서 조종하기 쉬운 약 50만 명의 경험이 부족한 당원들을 당에 대거 끌어들였다. 1924년 레닌이 완전히 불참하게 되는 첫 번째 대회인 제3 인터내셔널 제5차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우익의 위험"과 "극좌의 일탈"에 맞서 "맑스-레닌주의"의 정신으로 제3 인터내셔널의 "볼셰비키화"를 요구했다.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아마데오 보르디가, 헤르만 호르터, 안톤 판네쿡과 같은 인물에 대해 「코뮤니스트당의 볼셰비키 화에 관한 테제」(192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정치 지도자들이 레닌주의에 가까울수록 레닌주의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서 그들의 견해는 더 위험하다." 1926년 모스크바에 레닌 학교가 설립되어 전 세계의 당 간부들에게 '볼셰비키화' 기술을 가르쳤다.

 

"볼셰비키화는 ... 맑스-레닌주의(즉, 제국주의 시대와 프롤레타리아혁명 시대 맑스주의)가 마침내 이념적으로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 레닌의 죽음은 러시아코뮤니스트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모든 부문에서 맑스-레닌주의 이론의 선전에 큰 자극을 주어야 한다." (1924년 7월, '코민테른과 지부의 선전 활동에 관한 제5차 코민테른 대회 테제')

 

모스크바의 책략과 추방을 통해 제3 인터내셔널 정당들은 모스크바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변모했다. 1928년 스탈린은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5개년 계획 도입과 함께 그의 '일국 사회주의' 이론이 국가 정책이 되었다. 그는 1930년대 대숙청을 통해 자신의 정적과 옛 동맹들까지 물리적으로 제거하며 쿠데타를 성공시켰고, 그 중에는 옛 볼셰비키도 많았다.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는 선전과 군사력을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특히 국가 통제, 집단화, 산업화가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저개발 지역(주로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모스크바 지배계급은 공식적으로 '탈 스탈린화'와 '레닌주의로의 회귀'를 통해 면죄부를 받으려 했지만, 중국과 알바니아 같은 곳에서는 이를 '수정주의'라고 비난했다. 어느 쪽이든, 동서양에서 공식적으로, 그 이후로 다양한 '인민 공화국'과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레닌의 유산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해석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스탈린주의자와 마오주의자뿐만 아니라 많은 아나키스트와 평의회주의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다.

 

그러나 레닌의 러시아와 스탈린의 러시아를 항상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추방된 트로츠키와 그의 추종자들이지만, 이들은 스탈린주의에서 테르미도르주의적 반동만 보았을 뿐 반(反)혁명은 보지 못했다. 덜 알려졌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선배들이다.

 

우리의 '레닌주의'와 그들의 레닌주의

 

우리의 경향은 종종 너무 '레닌주의적'이거나 충분히 '레닌주의적이지 않다'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늘날 우리는 명확성보다는 혼란을 일으키는 이 딱지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혁명이 고립된 상황에서 레닌이 옹호한 타협은 레닌을 비방하는 자들과 그의 선배들이 '레닌주의'라는 이름으로 가장 간절히 호소하는 타협이다. 후자는 타협이 객관적 현실에 의해 강제될 수 있다는 사실과 타협을 출발점으로 삼는 정치 강령을 혼동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북부 이탈리아의 공장에서 계급투쟁이 되살아나던 시기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을 설립한 우리 선배들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다르게 보았다.

 

"우리를 가장 매료시키고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중요한 인물인 레닌은, 전술가 레닌이 아니라,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이끌면서 다가올 새로운 혁명적 물결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사나운 적인 부르주아 세계의 함정 사이를 능숙하게 움직였던 전술가 레닌이다. 또한, 러시아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자본주의 세력과의 타협, 즉 그가 항상 고통스러운 후퇴, 혁명의 행진에서 중단을 고려했던 기발하고 매우 위험한 편법인 신경제(NEP)의 레닌도 아니다. 레닌, 우리의 레닌, 오늘날의 레닌은 4월 테제와 10월 봉기의 레닌이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이론가, 정치가, 지도자로서 그의 삶에서 바로 이 순간이다." (레닌 오기(Lenin Oggi), 프로메테오(Prometeo), 1944년 2월 1일)

 

"우리" 레닌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것은 또한 그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토대를 구축하는 요점을 보여준다.

 

• 당: 레닌은 계급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볼셰비키는 종종 동질적이고 독단적인 정당으로 묘사해 왔지만, 이렇게 묘사된 당은 스탈린주의 신화다. 볼셰비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항상 대응하며 발전하였다.

• 소비에트: 이미 1905년에 레닌은 당과 소비에트가 다가오는 혁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1917년에 이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레닌은 최선을 다해 소비에트를 "노동자 국가"로 만든 것이 이러한 소비에트 권력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다.

• 국제주의: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의미를 이해하고, 노동자 운동 내에서 쇼비니즘, 민족주의, 사회애국주의 경향에 대항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레닌은 영향력 있는 당 지도자가 되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당의 일원이었다. 그는 비판에 직면했고, 때때로 자신이 소수임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1906년 볼셰비키에 가입한 젊은 투사 가브릴 미아스니코프(Gavril Miasnikov)는 창당부터 1921년까지 당 활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볼셰비키는 비판과 반(反)비판,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든 우상을 타도하라! 대회, 회의, 지방 또는 중앙위원회에서 비판을 허용했다. 오히려! 볼셰비키는 소수가 당 기구에 대항하여 글을 출판할 수 있는 포괄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보호할 용기가 있었다. 따라서 모든 허풍, 모든 가십과 모든 추문에서 벗어나고 분명히 하기 위해 그것을 신념을 견지하는 투쟁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배치하기 위해 투쟁을 강화하려고 했다. … 1905년과 1917년 사이에, 볼셰비키의 이러한 관행은 혹독한 세 번의 혁명 과정을 통과했다. 당의 내부 구조는 혁명에서 살아남은 세력에 제대로 계승되었고, 이것은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로 이어졌다.” (미아스니코프, 1930년 최근의 속임수)

 

10월 혁명의 전제는 언제나 러시아 국경 밖에서 혁명을 비교적 빨리 확대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혁명 요새는 아래에서 보여주듯이 다른 곳의 노동계급에 영감을 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소비에트 권력은 관료제, 경찰, 정규 군대가 없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다. ... 러시아에서는 거의 시작하지 않았고 잘못 시작되었다. ... 우리는 유럽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떻게 지향하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줘야 하며, 이를 통해 유럽 노동자들은 사회주의를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가치 있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며, 러시아가 잘못하고 있다면 우리 유럽은 더 잘해야 한다. ... 우리는 유럽 노동자들이 그 길에 들어서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하되 더 잘할 것이고, 무게 중심은 형식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조건으로 옮겨갈 것이다." (레닌, 1918년 3월 8일, 강령 검토 및 당명 변경에 관한 보고서)

 

러시아혁명의 비극은 이러한 도움이 절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코뮤니스트당, 제3 인터내셔널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스스로 점점 더 비상시적이고 임시방편적 성격의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볼셰비키는 진정한 혁명 정당이 가능한 역사의 한계 내에서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기적을 이루어 낼 수는 없다. 세계대전으로 지친, 제국주의에 목이 졸리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 배신당한, 고립된 땅에서 모범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기적이 될 것이다. … 그런 점에서 그들의 혁명은 정치권력 정복과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실행하면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선두에서 행진하고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공헌하였으며, 세계 전체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러시아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모든 곳의 미래는 "볼셰비즘"을 비껴갈 수 없다.” (룩셈부르크, 1918년 러시아혁명)

 

혁명 과정 퇴보의 씨앗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1918년 3월까지 볼셰비키는 소브나르콤에서 대표되는 유일한 정당이었고, 그 다음 몇 년 동안 지역 소비에트가 공동화했지만, (때로는 선거의 게리맨더링을 통해) VTSIK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했다. 사실상, 볼셰비키는 유일한 통치 정당이 되었고 점점 더 당과 국가의 구별이 사라졌다. 1922년에 레닌은 당 기구가 정부 기구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그가 제안한 개선책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너무 늦었다. 단지 소비에트 권력 부활만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지만, 그것은 혁명 물결의 부활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고안되었다(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계급 전체가 아니라 그 전위, 즉 당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트로츠키는 그 후에 소비에트를 '노동자 국가'로 만든 것은 국유화된 재산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편, 내전 기간 정당 민주주의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1921년 3월 분파 금지령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분파가 즉시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 정치국과 당 사무국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당 대회와 중앙위원회의 권위를 약화했다. 이에 따라 권력은 본질적으로 스탈린과 그 분파의 손에 집중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미래의 인터내셔널은 기다리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집단적 권력기관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전체 노동계급이다. 인터내셔널은 더 광범위한 운동 지침이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의미에서 집단적 권력기관 내에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볼셰비키처럼 그 기관을 대신하거나 그 안에 녹아들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 운명을 혁명적 보루에 묶어두는 것을 의미하며, 혁명적 보루가 자본주의 세력에 굴복하게 되면 세계 혁명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논쟁은 레닌이 민족 자결권을 옹호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종종 추상적으로 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 자결권이 반동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반대했으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억압 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이 분리 독립권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평등권과 국제 노동계급 연대의 인정은 사실상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한 위선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피억압 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 노동자와 억압 민족 노동자의 단결과 통합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국 부르주아지의 동맹자가 될 것이다."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의 자결권』, 1915)

 

두 번째 조건은 이른바 많은 '레닌주의자'들이 종종 잊어버리는데, 이들은 타락한 제3 인터내셔널의 '통일 전선'과 '인민 전선' 개념을 받아들여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레닌 시대부터 모든 민족 전쟁이 제국주의 경쟁과 필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보아왔다. 레닌이 제국주의 시대에도 민족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족 전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면, 자본주의 발전은 룩셈부르크와 그의 동지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자유로운 제국주의 시대에는 더는 민족 전쟁이 있을 수 없다. 국익은 노동 대중을 속여 그들의 숙적인 제국주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 지배계급이 강대국들의 부속물이자 부속품에 불과한,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게임에서 졸에 불과하다. 그들도 노동 대중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에 도구로 악용되고 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자본주의 이익에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룩셈부르크, 양자택일, 1916)

 

우리가 항상 반복하듯이, 러시아혁명은 모방할 모델이 아니라 배워야 할 하나의 교훈이다. 혁명이 결국 탄생시킨 당 국가는 오늘날까지 노동계급 운동이 회복하지 못한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반(反)혁명에 직면하여 레닌을 포함하여 혁명에 참여한 사람 중 그 진정성을 온전히 지켜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윤의 이해관계로 병든 지구에서 또다시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레닌이 오늘날 남긴 최고의 유산은 그가 러시아 밖의 노동자와 혁명가들에 바랬던 바와 같이 미래 세대가 "더 잘 해 내는" 것이다.

 

다이즈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2월

 

<출처> 「혁명적 전망」 23호, 2024년 1월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1-21/lenin-and-len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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