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photo_2019-01-03_14-14-27.jpg

이 글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직후, 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 동지들이 작성한 간략한 논평이다.

 

 

6월 13일 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다. 테헤란을 비롯한 7개 도시가 집중 폭격을 받았고, 공격의 진짜 목표였던 핵 시설 6곳이 공격받았다. 6월 18일 현재, 이란의 사망자 수는 224명으로 증가했고 부상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에서는 24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편집자) 희생자 중에는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살라미(Salami), 군 총사령관 바게리(Bagheri),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소속 과학자 2명이 포함된다. 현재 명확히 드러난 바로는, 공격받은 인명 및 전략적 목표물은 이미 오래전에 파악됐다.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필수적인" 대응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될 실질적인 전쟁 행위였다.

 

이스라엘의 이번 계획은 이스라엘 방위군이 테헤란과 연계된 모든 세력, 즉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의 알라위트(Alawite) 정부, 그리고 이라크 내 다른 세력들을 모두 차단한 후에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전 군사 작전에서 이란의 방어 시스템을 파괴했다. 이란의 추가적인 약화는 제재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공격을 감행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공격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지만, 평소처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다"라고 인정했다.(1) 네타냐후는 영상 성명을 통해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시인했다.(2)

 

그리고 6월 21일, 미국은 이란 지하 핵시설 포르도(fordo) 등 3곳을 직접 폭격했다. 1979년 이후 계속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이란을 상대로 미국이 본토의 주요 시설을 직접 타격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전쟁 행위로 간주한다. 트럼프는 이날 밤 10시 백악관에서 한 대국민 담화에서 "오늘 밤 나는 전 세계에 이 공격이 눈부신 군사적 성공이었다고 보고할 수 있다"라며 "이란의 주요 핵농축 시설은 완전히, 철저하게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에 이란은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위험한 전쟁을 시작했다”며 미국의 공격이 “영원히 지속할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복을 다짐했다. 이란 외교부는 22일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가 “극악무도한 범죄로 인한 심각한 결과와 끔찍한 영향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은 미국이 자국 영토를 직접 공격하면 중동의 미군 기지를 정조준하겠다고 거듭 경고해 왔다. 이날 이란은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응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Ben Gurion) 국제공항을 비롯해 생물학 연구 센터, 군수기지, 지휘통제 센터들을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자국 중부와 북부를 향해 날아온 이란발 미사일 약 20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이스라엘과 미국의 제국주의 연합은 가자지구 전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세력 균형을 재정립하기 위한 계획에 따라 더욱 압박을 가해왔다. 트럼프가 이란을 약화시키고 핵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며, 그와 연관된 러시아와 중국 동맹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이 치명적인 적(敵)의 심장부를 공격하도록 허용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테헤란으로부터 드론 무기를 공급받고, 중국은 석유의 90%를 이란에서 수입하며, 또한 이란은 러시아, 중국과 함께 동방 제국주의 3인방 중 세 번째 구성원이다. 이스라엘의 움직임이 트럼프와 협의한 것이며, 미래 제국주의 관계에 대한 영향도 평가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평화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전쟁 발발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관세와 대미 수출에 관한 협정 초안 또한 파기 직전이다.

 

네타냐후는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아야톨라 정권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핵 협상을 타결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중동 위기의 중심에 서 있다.

 

이란, 러시아, 중국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홍해 입구에 군함을 주둔시키며, 주요 국제 해상무역로 중 하나인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에 확실히 대응할 것이며(이란은 수백 발의 로켓과 드론을 발사하며 이스라엘에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브릭스(이란 외에도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가 포함)를 포함한 전체 지정학적 지역을 더욱 확대할 위험이 있다.

 

이스라엘이 서구의 거의 완전한 침묵 속에서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대만 해협에서 대규모 해군 병력을 동원해 대치하고 있다. 러시아가 키예프(키이우)로부터 최대한 많은 영토를 빼앗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공격하는 가운데, 미국은 파나마와 그린란드 침공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국방부가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계획을 갖추도록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는 하원 청문회에서 답변하며, “도널드 트럼프가 확장주의 목표를 거듭 표명해 온 파나마와 그린란드 침공을 포함한 군사 행동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3)

 

제국주의 긴장 상황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분쟁에 휘말린 지역은 확대되고, 경제적 이익은 더욱 중요해지며, 관세, 전쟁 자금 조달 및 재융자 문제에 대한 갈등은 유럽을 포함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평화주의적 거짓말은 진행 중인 전쟁의 야만성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근간이 되는 경제 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투자하는 유일한 분야는 군수 산업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사회 보장을 축소하고, 임금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며, 연금과 의료비 지출을 억제해야 하는 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해, 이 위기 속의 경제는 경제 영역, 원자재, 에너지 자원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 도구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무역로를 장악하고, 바다와 하늘, 그리고 우주까지 장악해야 한다. 재건을 위해서는 파괴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피비린내 나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계속해서 유순한 세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세계 노동자들은 언제쯤 들고일어나 제국주의 이익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비인간적인 학살을 멈추게 할 것인가? 이 학살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민족주의라는 익숙한 낡은 이념, 즉 “공동의 선”을 위한 국가 경제적 이익 수호라는 이념 뒤에, 어떤 신의 이름이나 국가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념 뒤에 숨어있다. 노동계급은 언제쯤 자본의 이해관계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할 것인가? 언제쯤 자신들을 옭아매는 부르주아의 그물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혁명 정당을 정치적, 전략적으로 조직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쯤 자본주의 야만의 사회적 모순이 폭발할 것인가?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자연적으로, 이상주의적 메커니즘을 통해, 또는 "신의 뜻"에 의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언제"가 실현되려면, 비록 그것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지금 당장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fd

코뮤니스트투사(Battaglia Comunista)

2025년 6월 14일

 

<주>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tch_3_Avash_30.jpg

(1) https://www.foxnews.com/world/trump-aware-israel-strikes-iran-beforehand-says-were-no-surprises

(2) https://lespresso.it/c/mondo/2025/6/13/israele-iran-attacco-siti-nucleari-ultime-notizie-morti/54957

(3) https://www.adnkronos.com/internazionale/esteri/usa-capo-del-pentagono-invasione-di-panama-e-groenlandia-abbiamo-i-piani-pronti_1HOIqyHyxIgc4UYLYu8gJq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6-18/israel-s-attack-on-iran-some-initial-thought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스라엘-이란 전쟁: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전쟁을!

이스라엘-이란 전쟁: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전쟁을!

 

photo_2019-01-10_13-51-11.jpg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종결시키고 가자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며 평화의 인물로 자신을 내세웠다. 그는 심지어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다시 권력을 잡은 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는 전면적인 대량 학살의 현장이 되었다. 동시에 아프리카의 군사적 긴장,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갈등,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면전이 발생했다. 이제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쇠퇴와 그 생존 방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년, 이라크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기습 공격을 받아 그해 9월 22일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육해공 동시 공격은 이란을 곤경에 빠뜨렸다. 40년 이상이 지난 2025년 6월 12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이 작전은 모사드 요원들의 사회기반시설 파괴, 이란 영토 내에서의 드론 발사, 국경 안팎에서의 미사일 공격,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투기의 직접 공습이 포함되었다. 현재까지 이 작전은 진행 중이다.

 

이슬람 공화국의 범죄자들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오판했으며, 협상이 공식적으로 결렬되지 않는 한 군사 공격의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맥락에서 협상이 실제로 공격 준비를 위한 위장 수단이었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 문제를 강조했다:

 

“반전(反轉), 미국 외교가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을 위한 위장 수단으로 활용되었다.”[1]

 

작전 시작 전, 미국 당국은 이스라엘의 잠재적 공격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공중 급유 지원조차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표면상 이러한 입장은 이슬람 부르주아지에 대한 일종의 선의로 보였다. 그러나 공격 이후, 해당 작전이 미국과의 ‘완전하고 광범위한 협조’ 아래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총리도 사전에 통보받았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서구) 민주주의 갱단의 선전과 허세를 제쳐두더라도, 이스라엘과 이란이라는 두 범죄 국가 사이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다. 두 국가 모두 이념적이며, 종교가 권력 구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국가 모두 오랜 억압과 학살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수천 명의 정치범을 가두거나 현재도 수감 중이며, 자국민과 타국민에 대한 조직적인 범죄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목록은 쉽게 더 확장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전쟁광들은 공격 시점을 설명하며, 이란이 현재 가장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헤즈볼라를 비롯한 이란의 대리 세력이 약화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편, 범죄적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나토(NATO)까지 이스라엘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동맹국들은 정밀한 정보와 작전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 공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인권 보호’, ‘인간 존엄성 수호’,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구호를 내세워 전쟁을 정당화해 왔다. 가자지구에서 진행 중인 집단학살과 이러한 잔혹 행위를 지지하는 민주주의 전쟁광들의 행태를 볼 때, ‘인권 보호’라는 개념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특히 치명적인 작전을 정당화하고 지지하기 위해 ‘자위권’을 내세운다. 미국 주요 동맹국 중에서는 일본만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공식적으로 규탄했다. 마찬가지로 이란의 주변 국가 중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공격을 규탄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목표가 단순히 이란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권 교체, 즉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는 우호적인 정부로의 교체이기 때문에 이 전쟁은 "필요한 한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이란 정권이 시리아에서처럼 점차 약화하여 결국 붕괴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쟁 범죄자 네타냐후는 ‘이란의 자랑스러운 국민’에게 “우리의 작전이 여러분의 자유로 가는 길을 열기를 바란다”라고 주장하며, 현 이란 정부를 ‘사악하고 억압적인 정권’이라고 묘사했다.

 

평화를 사랑하든 본질적으로 호전적이든, 민주주의 국가든 독재 국가든, 모든 국가는 결국 제국주의 전쟁에서 노동계급을 총알받이로 희생시키며 전쟁 범죄에 공모한다. 민주주의 갱단의 수사와는 달리, 이스라엘 정부는 부패한 이슬람 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추구하며, 민주주의 갱단에 의해 정보, 보안, 군사 등 최신 기술로 무장되어 제국주의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활용된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는 범죄를 더 효과적이고 쉽게 저지르도록 지원받고 있다.

 

이란의 서방 친화적 야당은 이념적 차이를 불문하고(자본의 우파든 좌파든) 긴장 고조를 희망의 빛으로 여기며, 군사 공격으로 이슬람 범죄자들을 전복하고 자신들이 정치 무대에 진출할 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 왔다. 이 세력들은 광범위한 선전 자원을 활용하며 서방 정부, 이스라엘, 특정 아랍 국가들로부터 제국주의적 이익에 부합하는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서방의 선전기구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란 내 여론을 관리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긴축 조치로 인해 폐쇄되었던 일부 언론 매체(보기를 들어 3월 15일에 방송을 중단했던 ‘미국의 소리’ 등)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여기서 우리는 외세의 공습을 통해 이슬람 공화국의 전복을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1차 걸프 전쟁 이후의 이라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었음에도 이라크의 지배 구조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역사적 경험은 외세의 공격이, 설령 겉보기에 혁명적인 세력에 의한 공격일지라도,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1920년 적군(Red Army)의 폴란드 진격이 있는데, 이 사건은 폴란드 노동계급이 사회 혁명을 추구하기보다는 국가 부르주아지에 의존하게 했다.

 

이스라엘이 이슬람 공화국을 기습 공격해 호세인 살라미(Hossein Salami)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포함한 수십 명의 군사 지휘관을 살해한 뒤, 새로운 사령관 모하메드 팍푸르(Mohammad Pakpour)는 “이스라엘에 지옥의 문이 곧 열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함께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의 벽화에도 히브리어로 된 메시지가 표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잔해 아래로 피난하라!”였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듯이, 각 제국주의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이는 이란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테헤란과 모스크바 사이의 30년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을 공급하며 러시아를 지원해 왔지만, 모스크바는 이란의 핵심적 필요, 특히 이슬람 공화국의 심각한 약점으로 남아 있는 방공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이슬람 부르주아지 내부에서도 반복적으로 불만을 일으켜 왔다. 제국주의적 이익의 관점에서 러시아는 이란이 강하고 독립적인 동맹국이 아니라 약하고 의존적이며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러시아는 S-300 방공 시스템을 뒤늦게 구식 버전으로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터키에 더 발전된 S-400 시스템을 이전하면서도 여전히 이란에는 인도를 거부했다. 더욱이 약속된 Su-35 전투기 인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란은 자체 방공 시스템인 Bavar-373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S-300과 유사한 성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스라엘은 공격의 초기 단계에서 근접 파괴 공작, 사이버 공격, 정밀 타격을 통해 이란 서부 지역의 방공 시스템을 무력화하거나 약화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슬람 부르주아지 역시 매일 밤 여러 차례 드론과 특히 미사일을 포함한 공격을 수행하고 있다. 이전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동맹국들, 특히 미국, 영국, 요르단 및 기타 국가들이 이란 미사일의 요격과 무력화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일부 나토 회원국들은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막후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4월과 10월에 발생한 사례와 유사하게 영국 전투기 파견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확인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는 미국이 이 공격에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받자, 언급을 거부했다.

 

이스라엘 대통령 대변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Rafael Grossi)가 이츠하크 헤르초크(Isaac Herzog) 대통령에게 이란의 나탄즈(Natanz) 핵 시설이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통보했다고 발표했다.[2]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IAEA 사무총장은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한쪽 당사자에게만 보고하는 것일까? 이것은 IAEA가 ‘도둑들의 소굴’(유엔)과 마찬가지로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이슬람 부르주아지에 이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투이다. 이란의 대응은 매일 계속되고 있지만, 이슬람 부르주아지가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면,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방어에 나설 것이다.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미국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테헤란의 보복 공격에 대응해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군사 기지가 표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초기 공격 이후, 트럼프는 이슬람 부르주아지에 다시 한번 갱단의 언어를[3] 사용하며 핵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를 촉구하고 경고했다. "이미 계획 중인 다음 공격은 훨씬 더 무자비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그들에게 미국이 세계 어디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군사 장비를 생산하며, 이스라엘은 이미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으며 더 많은 것이 곧 공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4]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행동에서의 잔혹함과 함께 생각과 감정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야만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피의 학살이 벌어지는 것뿐 아니라, 그 학살을 자랑스러운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범죄자 트럼프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생생히 구현했다. 그는 미국 군사 장비의 더 큰 치명성과 파괴력을 자랑스럽게 언급하며, ‘훌륭한 미국 장비’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요일이 이스라엘에 "위대한 날"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쟁광은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지역 전쟁 발발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쟁 상황은 사회에 경찰국가의 분위기를 강화하고, 전쟁 선전을 통해 노동계급을 오염시킨다. 따라서 이는 노동계급이 조직화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명백한 탄압의 길을 열어준다. 역사적 기억을 되돌아보면, 1979년 사건(이른바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남은 마지막 계급투쟁의 불꽃은 반동적인 이란-이라크 전쟁의 시작과 함께 진압되었다. 그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재 이 시점에서 군사 당국은 의심스러운 활동을 신고하기 위한 특별신고 번호를 발령했다.

 

1차 세계대전의 구체적인 상황을 모든 전쟁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전쟁 말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노동자 파업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노동계급의 세계적 투쟁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전쟁 시기와 달리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의 시위 확대를 위한 필수적인 물질적 기반을 제공할 뿐 아니라, 더욱 심화한 계급투쟁이 발생할 조건을 창출한다. 전쟁 시기, 국제주의자들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며, 이러한 분쟁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그 물질적 기반을 대중에게 폭로하고, 모든 대립이 노동계급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전쟁에 참여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며, 어디에 있든 진짜 적(敵)은 국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정밀 공격을 통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무력화하거나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정치·군사 지도부를 제거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선전일 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사우스 파르스(South Pars) 가스전, 보루제르드(Borujerd)의 파르다 모터스(Farda Motors) 자동차 공장, 로레스탄(Lorestan)의 아슈타리안(Ashtarian) 기계 공장 등 민간 시설을 공격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란의 다른 계급 동료들과 비교할 때 이스라엘 노동계급은 민족주의와 종교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노동계급이 투쟁의 역사를 쌓지 못하게 했으며, 이스라엘 부르주아지가 그들을 전쟁에 쉽게 동원할 수 있게 했다. 반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란 노동계급은 이스라엘의 노동계급보다 투쟁의 전통이 훨씬 강하다. 특히 중동에서 가장 전투적인 프롤레타리아 부대 중 하나가 이란에 속해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많은 자랑스러운 전투를 기록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 전쟁은 이란 노동계급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투쟁을 계속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은 전쟁을 부추기는 지도자들의 결정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역사 속 특정 조건의 산물이며, 이러한 긴장은 미래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이전에 상세히 보여주었듯이 이슬람 부르주아지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무관하다. 이란은 지역 강자의 역할을 주장하지만,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그런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러시아의 동맹국인 이란을 약화하는 것은 러시아 자체를 약화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전략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이란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것은 중국의 진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주의자들(코뮤니스트좌파)의 어깨에는 여전히 무거운 책임이 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이러한 전쟁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폭로하며, 그 물질적 토대를 대중, 특히 노동계급의 의식 속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 모든 분쟁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반(反)한다는 것을 강력히 선포해야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 전쟁의 결과는 중동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적인 군국주의 체제이며, 이 전쟁이 전 세계 노동계급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쟁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쇠퇴하는 추세를 반영한다.

 

역사는 전쟁이라는 부르주아 학살 기계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르주아가 휴전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일혁명의 위험이었다. 이는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전쟁 범죄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전쟁을 준비할 위험이 있을 때만 분쟁을 자제한다. 오늘날 전 세계 노동계급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지만, 계급투쟁의 발전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러한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쟁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삶의 방식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잔혹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할 뿐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 전쟁광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 전쟁광들의 평화는 연막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평화 안에서는 전쟁의 불길만이 번질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방어할 조국이 없고, 그들의 투쟁은 국경을 넘어 국제적 규모로 발전해야 하므로, 노동자들의 계급전쟁만이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오직 세계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전쟁을 자본주의에 맞선 전쟁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 전쟁의 물질적 기반을 없애고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제국주의 전쟁을 타도하라!

노동자-자본가 사이의 계급전쟁 만세!

 

2025년 6월 15일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주>

[1] https://www.wsj.com/world/middle-east/in-twist-u-s-diplomacy-served-as-cover-for-israeli-surprise-attack-c79b2206

[2] https://www.radiofarda.com/a/isarel-iran-attacks-iran-facilities/33441705/lbl0lbi413475.html

[3] 거래인가, 공격인가? 부르주아지의 전략은 도적질이다.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deal-or-attack-banditry-as-the-strategy-of-the-bourgeoisie/

[4] https://time.com/7293906/trump-warning-iran-israel-strikes-death-destruction/

 

 

 

<출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강제 추방과 제국주의에 맞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강제 추방과 제국주의에 맞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photo_2019-01-08_12-29-21.jpg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 DHS(미국 국토안보부), 국경 순찰대의 잔인한 추방에 맞선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와 다른 곳의 거리에서 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의 투쟁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누가 우리의 친구인지, 그리고 이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 미국 정부가 인종차별주의, 국수주의로 돌아선 것은 전 세계적인 이윤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세계적 질주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조건 악화, 임금 삭감, 사회 복지 삭감으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분열시키고 우리 계급의 한 부문을 위협함으로써 계급의 투쟁성을 저해하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이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가는 동안 국내에서는 비참함을 견뎌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직시하자! 이것은 단지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민주당은 이주 노동자 납치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레이큰 라일리 법안(Laken Riley act, 불법 체류자의 의무 구금을 확대하는 법안)은 양당의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오바마와 바이든은 여전히 추방 건수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반동적인 국경 및 이민 정책에서 구분되지 않으며, 트럼프의 과도한 무모함은 민주당이 중간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억압적인 국가 기구를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든, 투옥되거나 추방당하는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처럼 우리의 분노를 민주당 지지로 돌려서는 안 된다.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의 투쟁은 지배계급의 모든 정당과 노동계급의 모든 분열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향한 공격은 모든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모든 노동자는 ICE의 급습에 맞서 자신과 이웃, 동료를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역 행동위원회와 직장 투쟁에서부터 대규모 시위에 이르기까지,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싸워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의 착취당하는 노동이 없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멈출 것이다. 투표소가 아닌 일터와 거리에서 투쟁해야 한다! 외국인 혐오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곳, 바로 그들의 이윤을 공격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체제가 우리 계급의 형제자매들을 추방하는 것을 막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는 체제를 전복하고 모든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하여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잔혹한 국가 탄압의 악몽을 마침내 끝내야 한다. 우리의 투쟁은 국제적이며, 노동자들은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곳에서 우리의 노동을 분열시키고 착취하는 국제 지배계급에 맞서 원칙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자본주의를 전복한 세상에서만 모든 노동자가 학대, 성희롱, 임금 착취, 차별 또는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노동계급 전체가 지배계급에 맞서 함께 투쟁하고,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세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가올 투쟁에서 전체 계급에 혁명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조직을 건설하여야 한다.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은 노동계급의 미래 정당을 건설하고 자본주의를 전복하여 노동자평의회로 구성된 세계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혁명적 노동계급 정치 조직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미국 지부이다.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
Monday, June 16, 2025
 
 
<출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성명] 6.3 부르주아 대선 : 선거 이후에도 계급투쟁이 대안이다!

6.3 부르주아 대선 : 선거 이후에도 계급투쟁이 대안이다!

 

 

또 한 편의 부르주아 서커스 쇼가 끝났다. 이번에는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어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

 

12.3 친위쿠데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모순이 드러났지만, 보수 양당의 후보는 90% 이상의 표를 얻었다, 중도 보수 이재명은 4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극우 김문수도 41.2%를 득표했다. 투표자의 다수는 ‘내란 종식’을 이유로 이재명에게 투표했고, 김문수에게는 ‘도덕성’을 이유로 투표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노동계급의 투쟁과 이슈는 선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12.3 친위쿠데타 이후 대중투쟁이 거리와 광장에서 이어졌지만,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총파업 투쟁을 벌이지 못했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부르주아 민주대연합(광장연합정치)에 흡수되어 이재명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복무했다.

 

이번 정권교체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윤석열 정권의 실책과 파탄의 결과일 뿐, 이재명이 잘했거나 민주대연합의 특별한 성과가 아니다. 김문수는 윤석열 세력과 단절하지 않고, 후보 교체 논란까지 겪었음에도 많은 표를 얻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이명박-박근혜의 충실한 계승자답게 극우 반공주의, 반(反)노동 행보로 일관했다. 또 다른 극우 이준석은 갈라치기 선수답게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 등 차별의 정치로 일관했고, TV 토론에서의 성폭력 발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10% 득표에 실패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노동자, 빈민, 청년층은 생계비 위기, 가계부채 급증, 빈부 격차 심화, 청년실업률 상승 등 최악의 조건에도 극우 보수세력에 투표했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가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공격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정치세력 사이의 경쟁과 권력 투쟁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극우세력(이른바 내란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정치의 한 축인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토대, 즉 부르주아 정치-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러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권영국과 같은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선거 자체에 대한 본질을 폭로하고 그것을 타파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노동자가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체제를 전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뜬구름 잡는 환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물질적 관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선출한 사람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구를 만들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사회(코뮤니즘)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우고 있는가?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가?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좌파’ 정당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음을 반성하고 있는가? (...)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코뮤니스트」 창간호, 2012년)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은 객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좌우를 아우르는 부르주아 정치의 통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왼쪽에서는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광장연합정치’세력을 포섭했고, 오른쪽에서는 ‘국민 대통합’, ‘성장과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친(親)자본 보수우파를 더 넓게 끌어들였다. 이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주권자의 이름’으로 모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데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재명은 통합정부, 실용정부를 표방하면서 취임했는데,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국민통합'과 '국익 중심'을 내세웠다. 이는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쓰겠다"라는 말처럼, 이전 자본가 정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이재명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새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적인 거짓말로, 부르주아 독재-계급 적대 사회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가리고 국가의 역할을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공세이다. 그리고 '국익 중심'의 의미도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중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은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을 위해 이윤추구의 자유-착취의 극대화를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이다. 물론 이재명은 윤석열처럼 세련되지 못한 폭압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고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 등 당근 정책도 펼 것이다. 그러나 다음은 "짐작조차 힘들 땀과 눈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즉, 각종 ‘위기 극복’(경제 위기, 정치 위기, 무역 전쟁/관세 전쟁, 안보 위기, 기후 위기 등)을 위한 노동계급의 희생과 양보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 운동 다수파가 이재명과의 약속에 넘어간 것은, 자본가 정권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이며, 이는 앞으로의 노동자 투쟁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선거 시기 전·현직 노동자 대표(관료)들이 자본가정당에 입당하거나 지지하는 일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의 고정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며, 노동조합이 국가기구(체제 수호 세력)로 포섭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노동자 운동 다수파가 ‘내란 종식, 정권교체, 사회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자본가 정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시적 연합을 넘어 이미 그들의 ‘운동 노선’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우리는 이들을 ‘자본의 좌파’로 규정한다) 따라서 앞으로 노동자 운동과 계급투쟁의 미래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들 ‘자본의 좌파’와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 시기만 되면 노동자 운동은 깊은 나락에 빠져든다. 우리가 실망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선거 자체를 거부하며 계급투쟁을 이끌 노동계급 정치의 부재이다. 그로 인해 계급투쟁의 새로운 세대마저 부르주아 정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이 경쟁하는 선거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 영역에서 계급으로 투쟁해야만,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에 나서는 일이다,

 

선거는 짧고 자본주의 위기는 길다. 선거 전에도 선거 후에도, 자본주의와 자본가 정권은 노동계급에 점점 더 악화하는 생활 수준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제대로 준비해 싸워야 한다. 자본가 정권이 부과하는 모든 양보와 희생(긴축, 삭감, 노동조건 악화, 생활 수준 하락)을 받아들이지 말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자본가 정권에 포섭된 민족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 노동조합을 넘어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총회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해야 한다.

 

모든 선거가 그랬듯이 이번 선거도 노동계급과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에게 최악의 선거였다. 착취와 차별의 정치, 전쟁과 야만의 정치, 혐오와 배제의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노동자 민주주의’로 대체해야 한다.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선거 이후에도 계급투쟁이 대안이다!

 

2025년 6월 12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2bb32d80c8526e7502e02b4620051343.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거 만평]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21호]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photo_2019-01-16_01-19-40.jpg

 

"반(反)파시즘은 파시즘 최악의 산물이다." [1]

 

미국에서 트럼프 재선과 다른 나라들에서 포퓰리즘과 극우 운동의 부상은 파시즘 위협과 극우 이데올로기 확산을 다시 한번 부각했다. 민주주의자들과 좌파들은, 포퓰리즘 출현과 확산은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들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독재자들이 부상하게 됨에 따른 결과로 본다. 우리 관점은, 파시즘은 노동계급이 역사적으로 실패함에 따른 결과이다. 비록 파시즘이 현재 세계 자본주의 의제에 올라와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다. 공화당 내부를 포함한 미국 지배계급의 상당수 구성원도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생각한다. 카말라 해리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지칭하며 "(많은 사람이) 독재자를 존경하는 것과 미국에는 파시스트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라고 말했다.[2] 또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언급했다.[3] 그러나 아마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공화당원으로 국토안보부 장관을 역임하고 나중에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 동안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한 은퇴한 미 해병대 장군 존 켈리의 성명일 것이다. 존 켈리는 트럼프가 그 기간 히틀러를 찬양했다고 주장한다. 파시즘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적용함으로써, 켈리는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간주한다.[4] 이 모든 경우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파시즘을 독재자의 개인적 특성으로 환원시키는 것인데, 사실 이 현상은 자본주의적 변혁의 특정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재와 민주주의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상부구조이며, 자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러한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다. 역사적, 경제적 필요성에 대응하여 자본주의는 때로는 민주주의로, 때로는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의 심장부였던 1930년대 상황은 독일 자본이 민주주의 형태를 채택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에 이르러 자본은 독재 필요성을 인식하고 독재 형태를 받아들였다. 1940년대 이후 상황은 다시 한번 바뀌었고, 자본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자본의 우파와 좌파 진영이 대중을 오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중요한 점은 파시즘이 억압과 무력을 통해서만 자기 지배력을 확립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지지자들은―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칠레, 또는 다른 곳에서―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와 자본주의 독재를 위한 조건 창출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종종 좌익 세력과 반(反)노동자 노조의 지원을 받아 민주주의적 메커니즘을 먼저 활용했다. 일단 프롤레타리아트가 약화하고 패배하자, 자본은 쉽게 독재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자본은 자신의 잔인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패배를 통해서만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민주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그 이후의 1920년대 스탈린주의 동안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압함으로써, 그리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분쇄함으로써, 파시즘의 부상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의 심장부인 독일에서 독일혁명이 진압되는 동안 약 20,000명의 노동자와 혁명가가 나치즘 부상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패배로 기록된 이러한 학살이 없었다면 나치즘의 출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922년, 나치즘이 독일에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코뮤니스트도 혁명가도 아니었고 오히려 바이마르에 세워진 부르주아 공화국의 지지자였던 에밀 율리우스 굼벨(Emil Julius Gumbel)은 조직적 학살을 폭로한 '정치적 살인의 4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5] 굼벨의 설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데올로그와 언론인이 먼저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론을 형성한 후 억압적인 국가 기구가 그러한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실행했다는 그의 관찰이다.

 

트로츠키주의자, 스탈린주의자, 아나키스트, 민주주의자들의 기만적인 이야기와는 반대로, 잔인함과 야만성은 파시즘과 파시스트 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폭력이 체계화되고, 기계화되며, 산업화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내재한다. 민주적 부르주아지는 파시스트들 못지않게 범죄적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함부르크와 드레스덴의 무자비한 폭격, 민주주의 정권과 스탈린주의자들이 자행한 국가 테러는 파시즘의 만행 못지않게 야만적이었다. 가자지구의 완전한 파괴와 수만 명의 학살은 미국과 유럽 민주주의자들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른바 문명화되고 민주적인 영국과 미국 정부에 의해 학살된 흑인의 수는 나치 치하의 유대인 희생자 수에 필적한다.

 

파시즘과 반(反)파시즘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척하지만, 공통 기원을 공유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반(反)파시즘은 자본주의의 민주적 제도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의 민주적 국가를 강화하고, 다시 노동계급을 반(反)파시즘 이데올로기로 중독시킨다. 반(反)파시즘 이론은 노동계급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제2차 제국주의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사용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도구 중 하나였다.

 

아나키스트,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과는 달리, 스페인 사건들(1936-1939) 동안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스페인 공화국의 방어 전쟁에 불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페인 전쟁이 내전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희생된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 전쟁은 스탈린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에게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투쟁할 기회를 제공했고, 영국, 러시아, 미국의 제국주의 동맹 하에서 애국적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코뮤니스트좌파는 반(反)파시즘이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공식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입장의 혼란과 노동계급의 결정적인 패배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자본의 다양한 분파들, 특히 자본 좌파의 좌익 정치기구들은 네오나치와 네오파시스트들을 단순한 범죄 조직으로 축소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테러리즘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일반 범죄 조직의 범죄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네오 파시스트 분파의 범죄 행위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야만성과 별개의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시에 그들은 민주적 자본 기관들이 그러한 집단들을 불법으로 선언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러한 폭력 행위와 범죄 조직 자체를 만들어내는 데 수행하는 역할을 무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궁극적으로 자본법에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가가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 테러리즘이 자본주의 내부에 내재한 위기와 내부 경쟁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깡패 민주주의자로부터 이란, 터키, 러시아, 그리고 다른 나라의 야만적 부르주아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집단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연루되어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존재는 그러한 집단의 존재에 기초를 제공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의 압력집단은 각 나라의 정치구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이란에서는 사복 남성[6]과 안사르 헤즈볼라와 같은 집단이 비공식적 억압 수단으로 활동하는 반면, 터키에서는 보즈쿠르틀라(회색 늑대)가 비슷한 역할을 하며, 러시아에서는 나시스트나 코사크와 같은 극단주의 민족주의자들이 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집단이 종종 애국적인 민주주의자, 신나치 또는 파시스트로 분류된다. 사복 남성과 안사르 헤즈볼라와 같은 집단이 이슬람 공화국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터키의 회색 늑대들은 터키의 부르주아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나시스트나 코사크는 러시아 국가의 지원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적 부르주아지(자본주의의 야만성)의 존재 없이는 신나치 집단이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고, 계급 제도이며, 민주적이고 의회적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의 민주적 독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를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지원도 실제로 노동자에 대항하여 자본의 계급전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급진적 형태일지라도, 반(反)파시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만 이바지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자본의 좌파 정치기구는 반(反)파시즘이라는 미명 아래 혼란을 조성함으로써, 실제로는 자본주의라는 지속적이고 완고한 파시즘을 보존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파시즘과 포퓰리즘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퓰리즘 부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대도시 자본주의에서 주변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뚜렷하다. 사실, 유럽의 포퓰리즘은 미국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널리 퍼져 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포퓰리즘은 주변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계속 확장하고 있다.

 

세계 노동계급은 아직 결정적인 역사적 패배에 직면하지 않았다. 따라서 포퓰리즘 부상은 그 자체의 위기에 대한 자본의 반응과 노동계급이 세계 무대에서 이전의 위치에서 후퇴하는 것을 모두 반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동계급이 각성하고 투쟁에 다시 참여하는 징후를 보였지만, 전지구적 수준에서의 계급투쟁은 대체로 방어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노동계급은 스탈린주의 패배를 촉진한 선전 캠페인 이후 아직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의 배후에 있는 주요 요인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한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쇠퇴였다 - 이 구성물은 자본의 국가와 비(非)국가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활발하게 형성되고 유지된다.

 

포퓰리즘 부상은 노동계급 투쟁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실업 원인으로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사회 문제의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돌린다. 코뮤니스트당의 정책은 이주민 추방을 우선시하는 한편, 노동자들에게 국가를 수호하고 국가 자본에 동조할 것을 촉구한다. 이 전략은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며, 계급 연대를 허약하게 한다. 노동계급은 이러한 도전에 맞서고, 이러한 분열적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부르주아지의 공격에 맞서 계급적 단결을 보존하고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

 

트럼프의 포퓰리즘 전략 중 하나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잃어버린 미국 고용 기회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이었는데, 그는 이 약속을 계속 내걸고 있다. 일부 반(反)노동자 노동조합들도 이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첫 번째 임기 동안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외국 상품과 투자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이주노동자를 추방함으로써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려고 노력했다. 그는 실업이 단순히 이주나 해외 이주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임에도 이주노동자의 존재와 산업의 외주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 동안의 관세 정책은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데 제한적인 효과를 얻었다. 일부 산업은 이러한 조치의 혜택을 받았지만, 경제의 다른 많은 부문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 기간에 실업률이 하락한 것은 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의 광범위한 경제 성장에 의해 주도된 것이지 전적으로 트럼프의 무역 정책 덕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트럼프는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소개하면서 중동에 평화를 가져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7]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적 긴장의 고조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트럼프가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한 인물이며 그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첫째로 이러한 긴장이 쇠퇴하는 자본주의 산물이고, 둘째, 자본주의 쇠퇴기에 그러한 긴장이 더 파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주의적 긴장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겠지만, 부르주아지는 단결해서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며, 노동계급의 내부 분열을 획책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 진영 내부의 위기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잠재적 해결책으로서 포퓰리즘 경향의 출현을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의 부상은 노동계급이 이전의 위치에서 후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反)파시즘은 노동계급을 오염시키는 데 사용되는 가장 치명적인 독극물 중 하나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그 권력을 회복하는 데만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국제주의자들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계급투쟁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독립성을 방어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여, 노동계급의 응답은 자신의 계급적 입장에서, 그리고 자신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구를 통해 나와야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노동계급의 투쟁은 자신의 생활 수준을 방어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부르주아지 정책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이 투쟁이 진전됨에 따라,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전지구적 노동계급만이 국제주의적 투쟁을 통해, 그리고 코뮤니즘 혁명의 형태로 자신의 요구를 표현함으로써 이 악순환에 마침표를 찍고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2025년 2월 11일

 

<주>

[1] 보르디가

[2] NPR이다.

[3] NBC 뉴스.

[4] NBC 뉴스.

[5] Vier Jahre politischer Mord.

[6] 이란에서 사복 남성은 종종 보안 기관과 제휴하는 비공식 군대를 말하며, 제복 없이 활동하고 시위를 진압하고 모임을 통제하며 정부 압력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7]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도널드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에 대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 상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나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들은 결코 나에게 그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decisive-choice-its-not-democracy-or-fascism-but-socialism-or-barbaris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상]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 대선에서 노동계급은
선거에 이용당하지 말고, 생존권을 위한 파업을 준비하자.
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연대하고 행동하자!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노래  : 우창수,  영상 : RAN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21호] 위기의 대학들: 싸움이 시작된다

위기의 대학들: 싸움이 시작된다

 

 

모든 면에서, 고등 교육은 침몰하는 선박이다. 정부 지원 축소와 외국 유학생의 감소로 심각한 재정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약 80%의 대학이 곧 적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미 많은 대학이 폐강, 급식 서비스 축소, 근무 패턴 변경, 학내 서비스의 외주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대학 노동자는 실제 임금의 삭감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 예상된다. 언제나처럼 대학의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들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다.

 

과거 패배로부터의 교훈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고등 교육 영역에서 투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10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 시작된 학생 시위와 점거 투쟁, 2018년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파업이 있었지만, 우리의 임금과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계급 사이의 세력 균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학생, 교수, 대학 직원 사이의 연대는 불충분했다. 과거 패배는 부문과 노조에 따라 분열된 상태를 유지하는 한, 자본가가 정한 조건에 따라 패배하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산업의 쇠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1984년의 광부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투쟁의 자기 조직화를 통해 고립을 극복해야 한다.

 

ㆍ대중 총회(집회) - 모든 학생과 노동자에게 열려있는 대중 총회는 진정한 운동을 만들고 대학 문을 넘어서 투쟁을 확장할 수 있게 한다.

ㆍ파업 위원회 - 투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대표하는 파업 위원회를 조직해 함께 투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등 교육의 위기만이 아니다.

 

고등 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50년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결과에서 살아가고 있다. 끝없는 이윤 추구로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는 극복할 수 없는 걸림돌을 마주 보고 있다. 기업들 사이의 그리고 국가들 사이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과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교육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태도이다. 정치인들은 차라리 전쟁에 투자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고등 교육 위기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 교육은 이윤 동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자본주의 지평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의 운동은 더 넓은 사회적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계급과 사회 불평등, 국가와 전쟁, 국가와 국경이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이곳에서 조직할 필요가 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하자!

부문을 넘어 단결 투쟁!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5년 2월

옮긴이│한형성

 

 photo_2019-01-04_15-43-58.jpg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3-04/universities-in-crisis-the-fight-is-on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21호] 도끼 -투표에 대하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끼

 

-투표에 대하여

 

 

 

 

스스로 도끼가 되기 전까지

믿으라 주절 되는

놈, 믿지마라

믿었던 그 놈은

늘 네 발등만 찍었을 뿐

믿지 말고

속지 말고

찍지 마라

믿지 말고

속지 말고

스스로 도끼가 되어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직접

무자비하게 찍어버려라

 

詩 │ 신경현

 

약력

신경현 │ 197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 『따뜻한 밥』, 『당부』가 있다.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21호] 그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

photo_2019-01-02_12-08-52 (2).jpg
 
그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

 

 

망설이지 마

첫 걸음이 전부야

 

막막한 생존의 한파 속

씨앗을 품은 언 땅처럼

여리지만 끈질지게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

 

간절한 것은 파동으로 온다지

 

손바닥을 펼거야

손금을 따라

심장 박동 소리가

심장 박동 소리가

 

믿을 수 없이 따뜻하네

이 온기를 따라 한 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포기할 수 없는 긍정의 힘

그대에게 가는 길은 치유 같아

 

삶의 체온이 회복되고 있어

 

보폭을 맞추고

꽃피는 심장처럼 웃을 거야

 

옵티칼 불타 버려진 공장 위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

 

구조신호가 아니야

인간이 인간에게 취할 수 있는 지극한 예의,

다른 세계의 첫 문장이야

 

망설이지 마

첫 걸음이 전부야

 

보폭을 맞추고

꽃피는 심장처럼 웃을 거야

빨∶주∶노∶초∶파∶남∶보

모두가 존엄한 삶이야

 

 

詩 │ 조성웅

 

약력

조성웅 │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물으면서 전진한다』, 『식물성 투쟁의지』, 『중심은 비어 있었다』가 있다.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photo_2019-01-02_12-08-52.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