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4강>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4강>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4년 7월 20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침머발트 선언문(1915년)

침머발트 선언문(1915년)

 

 photo_2019-01-11_13-51-51.jpg

 

유럽의 노동자여!

 

1년 이상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 전장에는 수백만 구의 시체가 널려 있고, 수백만 명이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유럽은 거대한 도살장과 같다. 여러 세대에 걸친 노동으로 이룩한 문명 전체가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자부심이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야만이 승리하여 이를 자축하고 있다.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한 진실과 관계없이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전쟁이 각국의 자본가계급이 전 세계의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착취하여 이윤에 대한 탐욕을 채우려는 제국주의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나 정치적으로 약한 국가는 강대국에 예속하고, 강대국은 전쟁을 이용해 자신들의 착취적 이익에 따라 유혈과 철권으로 세계 지도를 다시 만들려고 한다. 벨기에, 폴란드, 발칸 반도 국가, 아르메니아와 같은 민족과 국가 전체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분할되어 병합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전쟁의 원동력이 완전히 악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 세계 재앙의 본질을 대중의 인식에서 감춰왔던 장막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민중이 흘린 피에서 전쟁 수익이라는 붉은 금을 만들어 내는 모든 국가의 자본가들은, 이 전쟁이 조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거짓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함께 자국민의 자유를 파괴의 현장에 묻어버리고 있다. 승자와 패자 모두,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짓누를 새로운 족쇄, 새로운 사슬, 새로운 짐이 생겨나고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생활 수준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빈곤과 궁핍, 실업과 인플레이션, 영양실조와 전염병이 발생했다. 전쟁 비용을 지불하는데 사회 개혁의 성과를 훼손하고 모든 진전을 방해하며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진하게 할 것이다.

 

지적, 도덕적 황폐화, 경제적 재앙, 정치적 반작용 등 국가 사이의 끔찍한 분쟁이 불러온 폐해다.

 

따라서 전쟁은 노동 대중의 이익, 역사적 발전의 환경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동의 존재라는 인간의 첫 번째 조건과도 화해 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세력, 손에 운명을 쥐고 있는 국가, 군주제 및 공화당 정부, 비밀 외교, 방대한 사용자 조직, 중산층 정당, 자본주의 언론, 교회, 이 모든 세력은 그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사회 질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착취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멸시받던 여러분은 전쟁 발발 당시 형제이자 동지로서 인정받다가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제 군국주의가 여러분을 손상하고, 상처입히고, 타락시키고, 파괴했을 때, 지배자들은 여러분에게 이익, 목표, 이상을 포기할 것을, 한마디로 "국가 휴전"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여러분은 자신의 견해, 감정, 고통을 표현할 수 없으며, 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투쟁할 수 없다. 언론은 재갈을 물리고, 정치적 권리와 자유는 짓밟히고 있다. 이처럼 철권통치를 하는 군부 독재 정권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유럽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으며, 감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노동계급은 군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해 왔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내 및 국제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제국주의 결과로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해가는 전쟁의 위협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슈투트가르트, 코펜하겐, 바젤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길을 결정하는 데 참여했던 우리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계급 조직은 전쟁 발발 이후 그에 따른 의무를 무시했다. 그들의 대표들은 노동자에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에 해당하는 노동계급 투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들은 전쟁을 계속한 지배계급의 공로를 인정하는 투표를 했다. 그들은 매우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그들의 정부에 의지했다. 그들은 언론과 특사를 통해 각국 정부 정책에 대한 중립국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국가의 휴전 준수를 위해 사회주의 장관들을 정부에 인질로 바쳤으며, 따라서 이 전쟁과 그 목표, 방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당들이 개별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모든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을 대표했던 「국제사회주의서기국」(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도 실패했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이, 비록 그 일부가 제1차 세계대전의 국가적 공황에 희생되지 않았거나 공황을 극복하고 일어선 곳에서도, 국가 학살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지금도 모든 나라에서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동시에 벌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함께 만났다, 우리는 사회주의당, 노동조합 또는 그 소수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을 대표한다. 착취계급과의 국가적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계급 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서 있다. 우리는 국제 관계의 끊어진 유대를 새롭게 연결하고 노동계급을 재조직하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모였다.

 

이 투쟁은 또한 자유, 형제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우리의 임무는 합병이나 전쟁 배상금이 없는 즉,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러한 평화는 국가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사상이 척결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점령당한 국가에 대한 강제 편입이 없어야 한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합병은 안 되며, 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더욱 견딜 수 없는 강제적 경제 결합도 용납될 수 없다.

 

조직 노동자들이여!

 

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당신은 지배계급에 봉사하기 위해 에너지, 용기, 용감함을 발휘했다. 이제 자신의 대의를 위해, 사회주의의 신성한 목표를 위해, 피억압 국가와 노예 계급의 구원을 위해, 화해할 수 없는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여러분의 임무다.

 

모든 힘을 다해 이러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교전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이다. 피비린내 나는 야만과의 싸움에서 모든 효과적인 수단으로 형제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립국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다.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시급하고, 이보다 더 귀중하며, 이보다 더 숭고한 임무는 없었으며, 공동으로 이를 완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국가 사이 평화 구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너무 크지 않으며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니다.

 

일하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와 아버지! 홀어미와 고아! 다친 사람과 장애인!

 

전쟁으로 인해 또는 전쟁의 결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외친다. 국경 너머, 연기가 자욱한 전장 너머, 황폐해진 도시와 마을에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 의 이름으로

 

■독일 대표단: 조지 르데부르(George Ledebour), 아돌프 호프만(Adolph Hoffman)

■프랑스 대표단 : A. 부르데론(A. Bourderon), A. 메르하임(A. Merrheim)

■이탈리아 대표단 : G.E. 모딜리아니(G.E. Modigliani), 콘사니노 라자리(Consanino Lazzari)

■러시아 대표단: N. 레닌(N. Lenin), 폴 액셀로드(Paul Axelrod), M. 보브로프(M. Bobrov)

■폴란드 대표단: 세인트 라핀스키(St. Lapinski), A. 바르샤바키(A. Warski), Cz. (야곱) 하네키(Cz. (Jacob) Hanecki)

■사회주의 연맹: (루마니아 대표단) G. 라코프스키(G. Rakovsky) (불가리아 대표단) 바실 콜라로프(Vasil Kolarov)

■스웨덴 및 노르웨이 대표단: Z. 호글룬드(Z. Hoglund), 투레 네르만(Ture Nerman)

■네덜란드 대표단: H. 롤랜드 홀스트(H. Roland Holst)

■스위스 대표단: 로버트 그림(Robert Grimm)

 

1915년 9월

 

 

1915년 9월 스위스에서 침머발트(전쟁 반대) 회의가 열렸다. 비록 42명의 대표만이 참석했지만(트로츠키에 따르면 4명의 지도자가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이 회의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인, 제3 인터내셔널의 토대를 마련했다.

 

 

좌파의 선언

 

서명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은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선언문에는 공개적인 기회주의나 급진적 문구 속에 숨어 있는 기회주의, 즉 인터내셔널 붕괴의 주요 원인뿐만 아니라 그 붕괴를 지속하려는 기회주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선언문에는 전쟁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 언론과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직면하게 한 과제에 관해 분명한 맑스주의적 입장을 계속 옹호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선언문을 투쟁에 관한 요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한다. 그리고 투쟁에서 우리는 인터내셔널의 다른 부문과 함께 나란히 행진하기를 열망한다. 우리는 이번 선언문을 공식 절차에 포함할 것을 요청한다.

 

■서명: N. 레닌(N. Lenin), G. 지노비예프(G. Zinoviev), 라덱(,Radek) 네르만(Nerman) 호글룬드(Hoglund), 윈터(Winter)

 

 

 

<관련 글> 침머발트 좌파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까지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4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헤르만 호르터 (Herman Gorter)

 

 

나는 이 편지를 러시아의 바르샤바로의 승리의 진격 동안에 썼다는 것을 레닌 동지와 여러분, 그리고 독자에게 밝힌다. 또한, 나는 여러분과 독자들에게 많은 반복에 대하여 사과하고 싶다. 대부분 국가에서 ‘좌파’의 전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목 차

 

1. 소개

2. 노동조합의 문제

3. 의회주의

4.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5. 결론

 

 photo_2019-01-09_14-21-06.jpg

 

1장. 소개

 

사랑하는 레닌 동지!

 

나는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습니다. 동지의 다른 많은 저작에서처럼 소책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확실히 많은 다른 동지들처럼,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역시 확실하게 서식하던 이러한 「유아적 무질서」의 많은 흔적과 많은 싹이 고쳐졌고, 확실하게 더 고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동지가 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머릿속에 야기된 혼동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완전히 옳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혁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매우 다르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동지의 문서는 나에게, 즉 과거보다 더 많이, 전술의 모든 문제에서 그리고 혁명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출현하는 것 같은 현실, 실제적인 계급관계에 의존한다는 나의 판단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을 때,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동지가 비판한 ‘좌익’을 더는 지지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리고 「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이나 영국의 야당을 위하여 더는 기사를 쓰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 이를 거절해야 했습니다.

 

잘못된 근거

 

이러한 내 입장은 모순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레닌 동지, 모순은 소책자의 출발점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지가 믿는 것처럼, 러시아와 서유럽 혁명의 일치성에 대하여, 서유럽 혁명의 조건들, 말하자면 계급관계에 대하여 올바르지 않게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동지는 좌파, 반대파가 성장하는 토대를 잘못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지의 출발점을 수용한다면 소책자는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을 거부하면, 모든 소책자는 오류입니다. 모든 동지의 옳지 않은, 부분적으로 옳지 않고, 부분적으로 확실히 완전히 오류인, 판단은 특히 독일과 영국의 좌파운동에 대한 비난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위의 좌파운동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알고 있듯이, 모든 점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확실하게 방어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나는 동지의 저술에 대해 좌파 방어를 위해 대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좌파에 대한 방어는 좌파가 생성된 토대를 보여주고, 여기 서유럽에서, 그리고 현 단계에서 그들의 정당함과 우수성을 증명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특히 러시아에서 서유럽의 혁명에 대하여 지배적인 왜곡된 생각을 극복하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서유럽에서의 전술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전술도 서유럽 혁명에 의존하고 있어서 위에서 말한 양자 모두 중요합니다. 이러한 내 생각을 모스크바 회의에 참여해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반박

 

우선 동지들과 독자의 판단을 기만할 수도 있는 동지의 두 가지 소견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동지는 독일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지도자 독재', '대중 독재', '위로부터 또는 아래로부터' 등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소리를 하며 비웃고 조롱합니다. 위의 서술에 대하여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지의 조롱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서유럽에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많습니다. 서유럽에는 여전히 많은 나라에 제2 인터내셔널 유형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전히 올바른 지도자, 대중을 지배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 지도자를 찾고 있으며, 이러한 지도자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이 아래로부터, 즉 대중 자신의 독재를 통해 집행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나에게 등산 안내자가 있는데, 나를 절벽으로 안내한다면, 오히려 등산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지도자를 찾게 되면 우리는 지도자를 더는 찾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대중 위에서 지배하지 않고, 대중을 배반하지 않는 지도자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독일과 영국의 좌파는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계급과 대중을 아우르는 하나로 통합된 전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두 번째 설명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 우리는 동지의 이러한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육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중, 정당, 노동조합이 내부적으로 가장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 집중화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있을 때까지는 우리는 그들이 옳다고 믿습니다. 코뮤니즘 실현에 가장 근접한 두 나라 독일과 영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이러한 투쟁은 동지의 비웃음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동지는 우리를 조롱함으로써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 요소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동맹」과 영국사회주의당,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의 코뮤니스트당 내 요소들이 대중과 지도자에 대한 모든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무의미하고 유치하다’라고 강요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구를 통해 그들은 지도자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을 피하고 또 피하고 싶어 합니다. 강철같은 규율과 중앙집중이라는 문구를 통해 그들은 반대파를 짓밟습니다. 그리고 동지는 이러한 기회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동지. 서유럽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 단계에서는 지배자보다 투사를 격려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동지의 소책자에 동의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와 서유럽의 다른 점

 

거의 모든 글이 우리가 감탄과 찬사를 하게 한 동지의 팸플릿, 소책자 그리고 서적을 읽으면서 우리 서유럽의 맑스주의자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더 자세한 설명을 찾으려고 애썼으며, 이런 설명을 찾지 못하면 마지못해, 그러나 의구심을 갖고 그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에 대한 동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주, 아주 흔하게 발생합니다. 그리고 동지는 항상 이 두 범주를 전 세계의 혁명적 요소로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읽은 그 어디에서도 러시아(및 동유럽의 다른 몇몇 국가)와 서유럽(즉,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국가, 심지어 이탈리아까지)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에 대한 명확하고 솔직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주의와 의회주의 전술에 대한 동지의 개념과 서유럽의 이른바 좌파 전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주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지도 나만큼이나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동지의 글을 읽고 판단하건대 서유럽 전술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서유럽 전술에 대한 귀하의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러한 동지의 문구가 모든 코뮤니스트당, 맑스주의자들조차도 아무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모든 코뮤니스트 신문, 잡지 및 소책자와 모든 대중 집회를 통해 판단하게 되면 서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의 봉기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와 서유럽의 커다란 차이점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판단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빈농의 많은 도움으로 러시아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의 우리도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서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으며, 전체 전술은 이러한 표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빈농이 결정적인 요소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사실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혁명적 요소로서 빈농의 중요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작아지게 됩니다. 아시아, 중국,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면 이 계급이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실제로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며, 폴란드와 남동부 및 중부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여전히 혁명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이 계급의 태도는 혁명에 대해 더욱 적대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약 700만에서 800만 명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농의 수는 약 2,5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수치 오류를 용서 바랍니다. 이 편지는 모든 속도로 발송되어야 하므로 기억에서 인용해야 합니다) 케렌스키가 빈농에게 토지를 주는 데 실패했을 때,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머지않아, 동지를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언급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그런 종류의 조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종종 끔찍하지만, 러시아만큼 비참하지는 않습니다. 빈농은 농부나 소유자로서 얼마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교통수단 덕분에 종종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생활은 다소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전쟁 중에는 물론 전쟁 이후에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식료품 수입은 매우 제한적인 필수품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지원을 받습니다. 자본주의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자본주의는 이들을 유지할 것입니다. 동지의 나라에서 빈농의 상황은 매우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동지와 함께 빈농은 정치적, 혁명적 강령을 갖고 있었고, 사회 혁명가들과 함께 정치적, 혁명적 정당을 조직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빈농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에는 분할해야 할 엄청난 양의 토지, 대규모 영지, 왕실 토지, 국유지, 수도원이 소유한 영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의 코뮤니스트는 빈농에게 무엇을 제공하여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농민에게 제공할 것이 없다

 

독일은 전쟁 전 400만에서 500만 명의 빈농(최대 2헥타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규모 산업(100헥타르 이상)에 고용된 인원은 800~90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코뮤니스트가 이 모든 것을 분배한다면 빈농은 여전히 빈농으로 남게 될 것이고 700만 또는 800만 명의 현장 노동자 역시 자신의 몫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규모 산업2)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분배할 수도 없습니다.

 

이 수치는 서유럽에는 빈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보여주며, 따라서 보조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 수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코뮤니스트는, 몇몇 상대적인 작은 토지를 제외하면, 빈농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소농민의 토지는 확실하게 소유권을 몰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400~500만 명의 빈농도 매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두 스칸디나비아 국가3)도 유사합니다. 서유럽 대부분 지역은 중소농민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10~20만 명 정도의 빈농이 있는 영국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빈농이 코뮤니즘 아래에서 소작료나 저당 이자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 역시 그들을 견인할 수 없습니다. 빈농은 코뮤니즘에서 내전, 시장의 소멸과 황폐화를 보고 있습니다. 서유럽에서의 빈농은, 지금 독일의 위기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위기, 즉 지금까지 존재하였던 모든 끔찍함을 넘어서는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한 자본주의 편에 설 것입니다.4)

 

산업노동자는 홀로 서 있다

 

서유럽 노동자는 모두 홀로 서 있습니다. 중하위 계급의 극히 일부만이 그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마도, 레닌 동지는 러시아도 역시 같은 경우라고 말할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도 역시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 후에야 비로소 빈농이 결합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레닌 동지는 농민이 확실하게 그리고 빠르게 동지 편에 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케렌스키가 농민에게 토지를 제공할 의사도 제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농민이 케렌스키를 더 오랫동안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지는 바로 몇 달 후에 농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 수 있는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마법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서유럽 전역의 빈농이 당분간 자본주의의 편에 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독일에서는 지원받을 수 있는 빈농이 많지 않지만, 동지는 아직 부르주아지 편에 서 있는 수백 만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독일에서 러시아 빈농의 위치를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게 될 것이고, 지원하러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도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엄청난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 농민은 자본주의가 패배한 후에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했지만, 아직 자본주의 편에 서 있는 독일 노동자들이 코뮤니스트 대열에 합류하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혁명은 오랜 세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에 참담했으며 승리 후에도 지금도 참담합니다. 그러나 실제 혁명 당시에는 쉬웠고 이것은 농민들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혁명은 쉬웠고, 이후에도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혁명의 도래는 끔찍할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어떤 혁명보다 더 끔찍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지의 나라에서는 봉건주의, 중세, 심지어 야만과 마찬가지로 약하고 겨우 뿌리를 내린 자본주의였지만, 여기 서구에서는 강하고 널리 조직되어 뿌리를 깊이 내렸고, 얕고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계층을 제외하고는 항상 가장 강한 편에 서는 농민뿐만 아니라 중하층 역시 마지막까지 자본주의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빈농의 도움 덕분에 승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기, 서유럽, 그리고 세계의 곳곳에서는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유럽에서 노동자가 홀로 서 있다는 것도 러시아에서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홀로 서 있다

 

바로 이것이 완전히 진실이며, 우리의 전술은 이러한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전술은 오류이며 프롤레타리아트를 끔찍한 패배로 이끌 것입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아무런 강령도 없고 땅을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뮤니즘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사실임이 현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문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서유럽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적이며, 따라서 농민이 코뮤니즘을 지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빈농이 코뮤니즘을 얻을 수 있는 지역적 여건이 조성된 다른 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혁명의 시기에 우리 편에 서는 빈농이 없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빈농에게 지속적인 선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술은 혁명의 시작과 진행 과정에서 채택되어야 합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일반적 추세, 즉 일반적 경향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술은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5)

 

이로부터 우선 서유럽에서 진정한 혁명, 즉 자본주의의 전복과 코뮤니즘 수립 및 영구적 제도는 당분간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충분히 강한 나라, 즉 빈농의 도움이 불가능한 독일, 영국, 이탈리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선전, 조직화, 투쟁을 통해서만 혁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독일, 영국 등 큰 나라에서는 혁명을 통해 경제 상황이 크게 흔들리고 부르주아지가 충분히 약해졌을 때만 혁명 자체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러시아 군대의 도움, 인도의 봉기, 끔찍한 위기 등)에 우리 전술을 기반으로 할 수 없다는 데 당신도 동의할 것입니다.

 

동지, 빈농의 중요성에 관한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귀하의 첫 번째 큰 실수이며, 모스크바 집행부와 인터내셔널 집행부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전술과 관련하여서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다는 사실, 즉 다른 계급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우선 대중에 대한 요구가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혁명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지도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작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대중, 프롤레타리아는 전쟁 중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눈앞에서 농민이 곧 자기편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 프롤레타리아는 먼저 독일 전체 자본주의 및 모든 계급이 반대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이미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실제 노동자 수는 7,000만 인구 중 1,900만~ 2,000만 명에 달했지만, 그들은 다른 모든 계급에 맞서 홀로 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6) 그들은 러시아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자본주의에 맞서고 있으며, 그들은 비무장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독일 프롤레타리아, 모든 개인에게 혁명은 러시아에서 필요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와 희생정신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독일의 경제적 계급관계의 결과이지 혁명적 낭만주의자나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온 이론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전체 계급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혁명에 투신하지 않으면 혁명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술을 결정할 때 외부의 힘, 보기를 들어 러시아의 도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에 당신은 다시 한번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거의 무장하지 않은 채 홀로, 도움 없이, 밀접하게 결합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독일의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의식적인 투사,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모든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대다수가 의식 있고 확고한 투사로, 진정한 코뮤니스트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절대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상대적 의미에서도 훨씬 더 위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어떤 지식인이나 시인의 꿈이나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계급의 의미가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지도자의 의미는 작아집니다. 이는 최고의 지도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에 비해 지도자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인구 1억 6천만 명의 나라에서 700~800만 명의 도움으로 승리해야 했던 동지의 경우에 지도자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게 컸을 겁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술의 문제입니다. 동지, 동지가 했던 것처럼, 그토록 방대한 땅에서 적은 병력으로, 그러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자의 전술이 필수적입니다. 동지가 소수의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빈농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동지의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어떤가요? 아무리 영리한 전술을 구사하고 명석하고 천재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항하는 냉혹한 계급 적대감이 존재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힘과 수적 우위를 통해 스스로 판도를 뒤집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힘, 수, 규모를 통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적이 매우 폭력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보다 훨씬 더 잘 조직되었기 때문에,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은 특별히 자신들의 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다윗이 골리앗을 반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소유 계급에 반대했습니다. 다윗은 작았지만, 아주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영국,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거인이 다른 거인을 상대하듯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힘이 문제입니다. 육체의 힘, 그리고 특별히 정신력의 문제입니다.

 

레닌 동지, 독일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모두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 혁명이 애초에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고 웅장한 일이며, 코뮤니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독일 상황은 서유럽 어느 곳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홀로 서 있으므로 전체 서유럽과 비슷합니다.

 

대중 및 노동자 혁명, 세계 최초로 노동자 대중만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대중만의 혁명은 그것이 좋거나 아름답거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경제 및 계급관계가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

 

 

요컨대, 문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읽기 위해 서유럽과 러시아혁명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비교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영국령 인도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전체 인구의 0.5%만이 산업 프롤레타리아이며 80%가 소농이라고 가정할 때, 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으로 연합한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잘 훈련된 프롤레타리아의 주도 아래 혁명이 일어나야 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중국이나 인도 노동자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통해 승리했으니 이제 동지들도 혁명을 위해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러시아 노동자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러분의 나라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인구의 절반은 아니지만 3%가 산업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여러분의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해서 우리는 동지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러시아와 서유럽의 차이로부터 이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1. 만약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 또는 당신을 추종하는 서유럽, 스파르타쿠스동맹의 기회주의적 코뮤니스트 또는 영국 코뮤니스트당이 지도자냐 대중이냐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동지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오류입니다.

 

 

2. 동지가 우리에게 말할 때 "지도자 와 대중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이 우리와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3. 코뮤니스트당에 강철같이 강한 규율과 절대적으로 군사화된 중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집중을 추구하고 있어서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동지와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4.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보기를 들면, 코르닐로프 공격이나 다른 사건 이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했다거나, 이러저러한 시기에 의회에 진출했다거나, 노동조합에 남았다거나, 그러므로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도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 모든 것은 전혀 의미가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적용될 필요도 없고, 적용될 수도 없습니다. 투쟁과 혁명에서 서유럽 계급관계는 러시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5. 러시아에서 훌륭했던 전술, 보기를 들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기서 빈농이 곧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할 것이라는 확신,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지 않다는 확신에 기초한 전술을 우리에게 강요하려 할 때, 동지가 규정하고 그것에 따르는 전술은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파멸과 아주 끔찍한 패배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6.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 또는 스파르타쿠스동맹 중앙위원회나 BSP와 같은 서유럽 기회주의 세력이 우리에게 기회주의 전술(기회주의는 항상 프롤레타리아트를 배반하는 외부 요소의 지원을 구한다)을 따르도록 강요하려 한다면, 동지의 잘못입니다.

 

서유럽에서 전술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기반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홀로 서 있고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 대중의 중요성이 더 크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독일에 있을 때 라덱(Radek), 모스크바 집행부도, 동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동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 독일 코뮤니스트당, 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8)의 코뮤니스트당, 모스크바가 임명한 암스테르담 위원회의 대다수 전술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초 위에 그들은 무엇보다도 대중 전체와 개인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혁명적 투사가 될 수 있도록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교육하고, (이론만이 아니라 특히 실천을 통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렸으며, 외국의 도움이나 지도자에게 거의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볼프하임(Wolffheim)과 라우펜베르크(Laufenberg)와 같이 운동의 첫 단계에서 불가피한 사적인 발언, 사소한 문제 및 변명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정당과 동지들이 취한 견해는 매우 올바르며 동지의 반대는 전적으로 오류입니다.9)

 

만약 동유럽에서부터 서부로 이동하면,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경제적인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경제적 경계는 발트해 연안에서 지중해까지, 단치히(Danzig)에서 베니스(Venice)까지 이어집니다. 이 선은 두 세계를 서로 분리합니다. 이 선의 서쪽은 산업, 상업 및 금융자본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최고로 발달한 은행자본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

 

농업 자본조차도 이러한 자본의 지배를 받거나 결합하도록 강요받습니다. 이 자본은 매우 잘 조직화하여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국가 정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제적 경계선의 동쪽은 집적화된 산업- 상업- 운송 그리고 은행자본의 엄청난 발전도 이들의 패권도, 이것의 결과인 견고한 근대국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쪽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이 동쪽의 전술과 같다면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

 

1) 보기를 들어, 『국가와 혁명』에서 동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67쪽) "농민이 존재하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대다수 농민은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으며, 따라서 '값싼' 정부 전복을 갈망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것을 실행에 옮길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이 코뮤니즘을 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모스크바 농업 테제도 이를 인정한다.

3) 나는 스웨덴과 스페인에 대한 통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

4) 나는 「세계혁명」이라는 소책자에서 러시아와 서유럽의 이러한 차이점을 강조했다. 독일혁명의 전개는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매우 낙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빈농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5) 동지는 소인배들처럼 상대의 주장을 너무 단정적으로 받아들여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한 나의 발언은 후자를 위한 것입니다.

6) 물론 전쟁 전 수치를 사용해야 했고, 마지막 인구 조사(1,909년) 이후 프롤레타리아의 증가를 그 이전 수치에 비례하도록 했다.

7) 나는 이 다른 숫자 관계(독일은 2천 만에서 7천 만!)를 통해 대중과 지도자의 중요성, 대중과 당, 지도자 사이의 관계, 그리고 혁명의 과정과 마무리 단계에서도 러시아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8) 적어도 지금까지는.

9) 이 논쟁에서 대부분 반대파의 공적인 목소리가 아닌 사적인 목소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gorter/1920/open-letter.htm

 

 photo_2019-01-09_15-06-51.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9호]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photo_2019-01-08_13-41-38.jpg  

지난 4월 10일은 부르주아 총선일이었다. 이날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거부하는 이들이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를 열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부문과 연령대의 동지들이 참여하여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서는 진정한 노동계급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류가 심각하게 경험한 감염병 대유행, 기후위기, 생태파괴, 일반화된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은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심화하였고, 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대유행에 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장기간 지속해 온 위기 속에서 격렬해지는 제국주의 대립과 이윤추구 경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며.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세계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제국주의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좌파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 내부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 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에 ‘노동자’ 이름을 팔아 참여해 선거 환상을 퍼트려 왔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냐 혁명이냐’라는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혁명적 의도와 관계없이 단지 죽어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분들과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코뮤니스트 정치'를 소개하고, 자본주의 쇠퇴와 전쟁의 시대! 코뮤니스트 혁명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제안)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는 위와 같은 취지로 개최했고, 이날은 특별히 선거 당일이었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강좌를 시작했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노동자 정당 집권인가, 노동계급이 직접 통제하는 노동자평의회-자기 권력인가.

 

노동자 투쟁을 약화하고 부르주아 정치에 의탁하는 진보좌파 정치인가,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과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인가,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개혁하는 체제 전환인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착취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코뮤니스트혁명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에서부터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과 코뮤니스트혁명’을 이해해야 한다. 첫 강좌에서는 근본적 질문으로 “코뮤니즘 :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가능한가”와 구체적 실천으로 “코뮤니즘을 향한 투쟁,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해 연속으로 강좌를 진행했다. 강좌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코뮤니즘: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가능한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연설할 때마다 자유, 평화, 번영을 외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미래는 거꾸로 착취, 전쟁, 쇠퇴와 종말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사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먼저 자기 입장과 나는 누구인가를 밝히고 말을 시작해야 한다. 알기 쉬운 정치이념으로 보수주의, 자유주의, 발본주의(맑스주의)로 구분한다면 나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 구도를 거부하는 발본주의자다. 이 설명은 인류 역사를 설명하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유를 외치는 윤석열은 어떤 자유인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무엇을 향한 자유인가? 따져야 한다.

 

제목을 뒤집어 보면 ‘평등해야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가 된다. 인류의 역사가 계급사회의 역사였기 때문에 계급 사이의 불평등과 투쟁은 필연적이었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한 맑스의 사상이론과 혁명적 실천을 아는 길이 배움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세철)

 

“여전히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反)혁명적 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 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과제, 계급투쟁(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과정 일 수밖에 없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하려면 코뮤니즘과 코뮤니스트혁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과정과 노동계급 자기 권력에 관해 이해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구분하고, 혁명을 주도할 계급조직인 혁명당과 노동자평의회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반(反)코뮤니즘에 맞서 사상투쟁을 하면서 계급의식과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코뮤니스트 정치는 위와 같이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밝히고, 노동자 운동의 당면문제를 해결하면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투쟁의 정치이다.” (이형로)

 

많이 늦었지만, 세계혁명, 국제주의, 코뮤니즘, 맑스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눌 강좌와 토론이 시작되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자본의 좌파에 맞선 사상투쟁,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혁명적 실천이 절실한 시기에 [코뮤니스트 강좌]가 계급투쟁의 새로운 주체들에 기준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강좌는 5월 15일에 “자본주의 위기와 대안 사회”라는 주제로 열린다.

 

 

 

▶강좌 신청 및 문의 :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  communistleft@gmail.com (이메일)

 

photo_2019-01-08_13-42-09.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9호] 의과대학 증원 찬반의 허구

의과대학 증원 찬반의 허구

자본의 이익 수단이 아닌 노동자·인민의 필요에 의한 의료

 photo_2019-01-16_13-50-49.jpg

 

1. 들어가며

 

윤석열 정권은 지난 2월 공공의료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총선용으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의대 증원’안 발표 이후 의사 집단과 정부 사이 강경한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로 다가왔다. 총선에서 참패한 윤정권은 증원 규모를 절반 수준까지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의사 집단은 원점 재검토 혹은 1년 유예 등을 주장하며 기존 태도를 고수했다.

 

정부는 의사 수만 늘리면 필수 의료, 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의사 집단은 대학교수,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맞서고 있다.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역·과목별 불균형은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인력 배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윤이 지배하는 의료시장에서 의료수가 인상은 이미 실패했지만, 결국 건강보험 의료수가 인상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정권과 의사 집단은 명목상 공공의 건강권을 운운하지만, 기득권 유지가 핵심이다.

 

의사 수 부족은 총인원 부족도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 법칙에 충실한 의료시장도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공공 의료체계 확립이다. 그 주장에 따르면 시장 질서에 기반을 둔 의료공급체계에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의료자본의 이윤만을 늘릴 뿐이라서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시장 경쟁 질서, 의료산업에서의 영리 추구 행위를 그대로 두고서는 의료인력의 합리적·계획적 배치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전면적 공공 의료체계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저출생으로 지방 소멸이 현실화한 한국에서 각종 의료공백은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여론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이는 의사 수 부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필수 의료부문과 지역에서 의사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마저도 자본주의 이윤추구 대상이며, 자본주의 시장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의료시장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안은 이윤추구 수단이 아닌 오로지 노동자·인민의 건강이 유일한 치료의 목적이 되는 의료행위이다. 이것은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며,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에서는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 없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노동자·인민의 건강권 투쟁은 생명과 건강마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는 의료시장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폭로하고, 공공의료 강화뿐 아니라 무상 공공의료를 위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근본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2. 의대 증원 찬반 속에 감춰진 쟁점

 

의대 증원은 지역 사이, 의료의 종류, 기관별 의료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자·인민의 의료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총선 표심, 의사 집단은 기득권 지키기로 흘러가면서 시장 법칙에 매몰된 보건의료의 실태를 교묘히 숨기고 있다.

 

① 이윤 중심의 의료시장과 공공의료 붕괴

 

한국의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2년 말 기준 전체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기관은 5.2%에 불과하며, 병상 수, 의사 인력도 모두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심지어 민간보험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21.3%와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지난 팬데믹 당시 5.2%에 불과한 공공의료기관이 감염병 전담병원을 담당하고 입원환자의 81.7%를 진료했다.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공공의료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제대로 지켜지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윤석열 정권집권 후 보건의료 부문에서‘공공’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지방 의료원에 6개월의 회복기 손실보상금 외에 아무런 지원 조치도 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 설립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와 실손보험 확대를 야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 의료영리 플랫폼을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추진, 건강관리를 산업화하는‘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시범사업', 개인 건강정보와 보건의료 데이터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플랫폼’,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 폐지 등 보건의료 영리화를 위한 정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②자본의 위기가 증가할수록 보건의료의 영리화는 가속화된다

 

팬데믹 상황에서 보았듯이 보건의료의 붕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보건의료를 인민의 건강권이 아니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삼아온 자본의 논리 때문이다. 보건의료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산물이며 팬데믹은 단지 그러한 상황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의대 증원은 보건의료 영리화 정책의 일부이다. 수도권에서만 8~9개 대학병원이 2027년~2028년 개원을 목표로 500~1,000병상 규모의 총 10개소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도 대학병원들이 500~1,5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광주과학기술원 등에서는 바이오·헬스산업에 필요한 의과학자들을 위한 의과대학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의대 증원이 필수 의료, 지역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 시장화, 바이오·헬스산업 등의 이윤 증대를 위한 인력 공급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윤석열 정권은 앞에서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의대 증원을 주장하지만, 뒤에서는 그 어떤 정권보다도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환자 정보를 민간 의료 보험사에 넘겨 상품화할 길을 터주기 위해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절대다수의 환자를 맡은 공공의료기관은 적자로 고사 직전인데도 예산을 터무니없이 삭감했지만, 민간재벌 대형병원에는 온갖 구실을 붙여서 매년 수천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3. 자본주의에서 공공의료의 한계를 넘어서

 

자본주의에서는 건강과 생명마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비롯한 모든 의료행위도 예외가 없다. 윤석열 정권 이전 민주당 정권에서도, 다른 나라 정부에서도, 세계 지배계급의 국제기구에서도 건강은 시장이고 돈벌이 수단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는가? 바로 자본주의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모든 국가 야망의 무게, 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쟁을 반영하며, 분산되고 혼란스러운 방법으로만 이루어지는 보편화한 경쟁, 이윤의 법칙을 통해서만 사회가 기능하도록 한다. 같은 방법으로 자본주의는 보건의료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예방 수단과 연구 예산을 저지하고, 지연시키고, 방해하고, 중지해왔다: 효과적인 백신 발견에 필수 불가결한 자원 집중, 그리고 정보 공유에 대해 자본주의 기능과 그 법칙은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OECD 국가에서는 의료시장을 규제한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규제는 크게 보면 자본의 일반적 이익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의사들이 국가규제에 저항한다고 의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과 의사에 대한 직접적 지배로 전환된다. 미국은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보험사와 기업이 의료를 규제하기 위해 나서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학병원들이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 성장하고 삼성·현대 등 재벌까지 의료 ‘산업’에 뛰어들 정도로 자본 축적이 고도화되었다. 그런데도 이들 병원은 소수의 전문의만 고용한 채 전체 인력의 40% 가까이 임시직인 전공의로 유지해 인건비를 절약해 왔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의료자본과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 비용을 절약한 정부와 일부 의사에게 돌아갔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에서 공공의료 확충은 국가와 자본이 존재하는 이윤 중심의 의료체계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공공의료 확충은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자본은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겼듯이, 건강과 생명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의료영리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공공의료 확충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진실은 의료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 집단 사이 대립이다. 이 대립에서 노동자·인민은 누구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인민의 건강권에 기반을 둔 실질적인 공공의료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과 환자의 건강권 투쟁은 자본주의와 착취기반에 대한 도전이자 자신들의 기득권에만 혈안이 된 의사 집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4. 나오며

 

현시점에서 시급하고 절실한 공공의료 강화 투쟁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상 공공의료의 실현이다. 그것은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노동자·인민의 필요에 의한 의료, 건강을 우선하는 의료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인류와 지구를 괴롭히는 수많은 고통에서 모두를 벗어나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기적의 치료법이 아니다. 코뮤니스트 치료법은 다르게 작동한다. 그것은 인류를 이윤 노예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우선 자유롭게 연합한 인간이 더는 소수의 이윤을 위해 생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한다면, 질병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방법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관심사가 이윤추구에서 인간의 행복으로 바뀐다면, 지금과 같은 유해한 생산은 즉시 중단되고,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훨씬 많은 자원이 사용될 것이다. 코뮤니즘 아래에서 인류는 자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이고, 모든 결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GDP, 제국주의 권력 다툼, 경제 성장 따위에 대해서는 더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치료제가 근본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와 사회관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물든 낡은 사고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지구와 인류는 자본주의 질병으로 인해 너무 심각하게 병들었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건의료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의료체계 반대!

이윤추구가 아닌 노동자·인민 건강을 위한 무상의료로!

건강과 생명을 위한 의료는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다!

 

 

2024년 4월 25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 윤태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9호]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photo_2019-01-12_03-38-07.jpg

 

또 하나의 부르주아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 결과는 부르주아 정치 관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패배-야권의 승리이지만, 노동계급 입장에서는 누가 이기든 기대할 게 전혀 없는 '자본주의 승리'이다.

 

지난 수십 년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도 노동자 투쟁과 자기조직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는 투표를 통한 '정권 심판론'에 갇혔다. 윤석열 집권 2년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물가 폭등, 실질임금 하락, 노동조합 탄압, 복지 후퇴로 생활 조건이 계속 악화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총선용으로 기획된 의대 증원 카드의 실패 등으로 안전한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은 노동자 투쟁-반격의 수준에 따라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면서 계급투쟁 부활과 정체성 회복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선거는 철저하게 계급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하고 지배 권력을 재편하는 목적에 맞게 작동했고, 노동계급의 분노는 또 다른 부르주아 분파를 지지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총선에서 두 번 연속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이끌던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었다. 이들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보수주의가 기반을 두고 있는 부르주아지에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비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노동’을 꾸준히 유지한 자본가 정권이었다.

 

선거 이후 자본가 정권의 경찰은 한국옵티칼 결의대회서 금속노조 조합원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17명을 연행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서 국가 폭력을 행사하는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부르주아 선거는 착취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일상의 계급투쟁에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본질에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이미 오래전 파산한 진보좌파 정치세력을 부르주아 정치에 더욱더 종속하게 하였다. 그동안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서 자본의 좌파 역할을 하던 정의당이 몰락하고, 그들을 대신해 민족주의-조합주의 정치세력인 진보당이 민주당과 손잡고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태생적으로 의회주의가 지배하는 노동당은 원칙 없는 후보 전술로 노동자 운동 내부에 선거주의만을 강화했다. 후보를 내세워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투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조급성이 후보 중심의 전술을 강제하고, 위로부터의 공동전선, 심지어 부르주아 세력과의 선거연합(위성정당을 반대한 정의당도 부르주아 정당)을 허용하고, 결국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며 표를 구걸하는 선거주의로 귀결되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코뮤니스트 정치를 전면화해야 함에도, 다시 과거를 반복하며, 부르주아 시민단체 수준의 요구를 공약이라고 내걸고, 노동자 투쟁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개입이야말로, 노동계급 정치를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키는 행위이다.

 

선거 이후 이른바 진보좌파, 사회주의 단체 대부분은 선거 득표 분석, 선거용 이합집산 비판, (아전인수식) 정권심판론 분석, 진보정당 및 노동자 정치세력화 몰락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선거주의 폐해와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에 대해서는 반성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인 지금은 부르주아 선거제도(민주주의)가 노동자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으로 고착화하여 체제 위기 극복의 필수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거부하고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는 관점에서 선거에 접근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노동계급을 속인 낡은 ‘선거주의’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낡은 운동과의 단절 속에서만 새로운 운동과 주체를 창출할 수 있다.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 쇼는 끝났다. 선거는 짧지만, 자본주의 위기는 길고 더욱 깊어지고 있다. 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계급투쟁을 이끌 노동계급 정치의 부재이다. 노동자들은 '정권심판'의 환상을 넘어서야 한다. 노동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투표나 야권연대를 통해 얻을 수 없다.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투쟁 없이 정권심판 열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선거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에 청원하는 곳이 아니라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선거주의, 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노총의 정치·총선방침을 근본적으로 반대해왔다. 진정한 노동계급 정치를 위해 선거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 노동자 민주주의 실현, 계급적 연대 강화를 통한 노동계급 자기조직화를 호소해 왔다. 선거 이전에도, 선거 이후에도 노동계급의 과제는 변함없다.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자본가계급의 공격을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본권과 생존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재의 모든 위기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경제위기, 전쟁과 학살, 생태 파괴,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위기 전가-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2024년 4월 25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이형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photo_2019-01-11_18-19-58.jpg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photo_2019-01-04_11-34-16.jpg

 

「코뮤니스트」를 읽을 때마다 항상 국내에서는 알기 힘든 코뮤니스트 관점에서의 국내 및 국제 정세, 코뮤니즘 이론, 그리고 코뮤니스트 운동사 등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또, 가끔 현실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로 인한 여러 사회 문제점으로 허무주의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코뮤니스트를 읽으면 해결점을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참 좋더군요.

 

앞으로도 10년을 넘어 수십 년간 계속될 「코뮤니스트」!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독자 Николай Ра

 

  photo_2019-01-04_11-26-07.jpg

 

자본주의란 본래 더럽고 부패한 탐욕의 부산물이다.

 

먹고사는 문제와 복지사회를 거론하며 경제가 어쩌고, 정치가 저쩌고 떠들고 있지만, 자본주의 부패에 찌든 정치인, 자본가, 언론인, 학자 등 썩은 내가 진동하는 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진보니, 보수니, 거짓 선동을 앞세워 수많은 무산자계급을 현혹하고 기만하고 있을 뿐, 그들은 자신들 탐욕의 배만 채우려 오늘도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들이 더럽히고 오염시키고 있는 어둡고 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낼 정화수가 절실히 요구되지만, 그 많던 노동자 정치조직이나 노동조합, 진보 정당들도 하나같이 자본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혁명의 기운을 외면하고 진보니, 민생이니 망상에 빠져 배반의 길을 쫓고 있다

 

반동의 물결이 넘쳐 혁명의 길이 요원한 듯 보이지만, 백여 년 전 암흑시대에도 수많은 코뮤니스트는, 끊임없이 봉기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계급 없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자 꿈을 꾸며 투쟁해왔다.

 

반동 주류 언론에 맞서 지하 전단을 만들어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부르짖고 혁명을 전파했다.

 

백 년이 훨씬 더 지나고 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혁명은 절대 선이다.

 

빈곤과 가난과 차별, 불평등한 사회모순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다 코뮤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창간 11년을 맞는 「코뮤니스트」, 비록 주류 언론매체에는 단 1초도 등장하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에서만 11년 긴 세월을 노동자평의회와 코뮤니스트좌파 이론을 알리고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내가 그들 코뮤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다.

 

함께 행동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지면으로나마 코뮤니스트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 독자 김운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행동주의 반대

행동주의 반대

 photo_2019-01-03_10-31-08.jpg

 

최근의 다양한 운동에서 이른바 "엉망진창"에 대한 참고 사항1)

 

1) 행동주의는 활동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더 정확하게는 혁명적 관점의 부족을 보완하고 위장하기 위한 자발적인 활동의 발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즉각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즉각적인 행동을 목표로 하거나, 실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수정'하기 위한 성찰을 희생하면서까지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다.

 

“운동 최악의 퇴행 에피소드의 뿌리에 있는 일반적인 일탈은 '정치적 존재'를 나아가야 할 길을 제기하는 운동 활동에 뛰어들게 하는 원칙의 명확성과 연속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글을 참조하고 이전 경험을 통해 '멈추고 결정'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계속 행동하라."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1952, p.7, "행동주의에 대한 잘못된 의지")

 

이러한 우회는 곧 움직이거나 소음을 내거나 폭력적인 모든 것에 대한 사과로 해석된다. 이는 통합된 스펙터클의 ‘영원한 현재’가 악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Debord) 이것은 양과 같은 군중을 연출하고 무력감을 분노로 배가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보완 요소이다. 평화주의와 사교적 행렬의 꼬리 또는 선두에서 제한된 공간을 '화려한 반전, 다소 '군사주의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형태의 '대결'에 바치는 순간이다.2)

 

물론 이 두 가지 현실은 대체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정치를 구경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계획된 정치적 패배의 보다 '정력적인' 변형을 제공한다.

 

2) 역사적 목적에 관한 관심을 두지 않고 행동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짧은 기간만 뉴스 장면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이는 역시 당면주의이다. ‘승리’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일시적이며, 그 핵심은 부르주아지에 대해서 필요한 노동계급의 통일이며, 위태로운 본질적 정치 문제와는 결코 관련이 없다. ‘패배’가 있다면, 의지 부족이나 ‘불균형적인’ 억압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는 일, 가치, 국가의 중심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적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당대의 순간적인 이익에 직면하여 주요 관점을 망각하는 것, 궁극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간적인 성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현재를 위해 운동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정직한' 의도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이며 항상 기회주의가 될 것이며, 아마도 가장 위험한 것은 '정직한' 기회주의일 것이다."3) (F. 엥겔스: 1891년 사회민주주의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

 

3) 이런 의미에서 행동주의는 정치적 기회주의의 특정 형태일 뿐이다. 기회주의는 합법성과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지형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근육질의 모습으로 의회 외 분야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것은 자본의 지형과 개혁에 대한 반대 경쟁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정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수정주의자의 일탈은 매우 결정론적이지 않고 활동적이었다. 보기를 들어 베른슈타인은 진화론, 개혁주의자, 율법주의자였다. 당장은 달성할 수 없는 혁명적 목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적 궤적의 빛나는 비전에 눈을 감고 즉각적인 결과가 전부라고 말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 축소된 즉각적인 목표를 제안하며 그러한 결과를 의지로 모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였다. 소렐 학파의 폭력 당파인 신디케이트 주의자들도 같은 말을 했고 같은 방식으로 결말에 이르렀다. 전자는 의회 채널을 통해 입법 조처를 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였고, 후자는 회사와 부문의 승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둘 다 역사적 과제에 등을 돌렸다." (「불변성」(Invariance) N°3 : 밀라노 회의, 이미 인용됨)

 

4) 이러한 운동 성격의 가장 눈에 띄는 순응주의적 특징 중 하나는 이 운동이 모두 민주적 정당화의 틀, 즉 노동조합 및 기타 단체의 경우 거리의 '대중적' 정당화, 또는 극좌/극우 정당의 경우 의회의 정당화라는 틀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러한 운동은 항상 민주주의의 틀, 즉 자본과 그 대리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엄청나게 폭력적인 순간에도 노동조합은 이러한 운동의 통제권을 잃은 적이 없으며, 이는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독립 조직, 심지어 소수 조직조차도 완전히 부재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자본과 자본의 여러 이데올로기적 주체 중 하나 또는 다른 형태에 포섭되지 않고는 결코 그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 최근 연금 개혁 반대 운동에서 국가를 마비시키지 않은 선택적 봉쇄와 부문별 파업(일부 주요 도시의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과 같이 약한 노동자 대표단은 부문별로 행진한다. 이러한 운동의 계급 구성은 중개 구조에 의해 원자화된 개인들의 합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을 '국민'으로 정의하는 유순한 대중을 구성한다.4)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 있었던 이른바 '노란 조끼 운동(Gilets Jaune movement)'에서도 이미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특정 형태의 시위와 단편적인 반대(교통 서클 점거 및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반복적인 등반)가 이러한 유형의 '운동'의 본질과 정치적 의미를 가리고 위장하는 데 일조했다. 계급 사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특히 이러한 시위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부분에서 극우 정체성주의 및 파시스트 세력과의 입증된 허점이 특징이다.5) 그러나 전반적인 정치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푸자드주의’(poujadism)6)과 유사한 공정한 국가(이 경우 연료에 대한 세금 인하)를 요구하는 ‘소부르주아’, 인민 투표 운동의 의미로 남아있다.

 

‘연금 반대 운동’으로 돌아가서,7) 그 ‘엉망진창’ 또는 ‘황색화’는 노조의 헤게모니적 힘과 계획된 패배에 대한 좌절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노조의 평화주의 외관만큼이나 반(反)혁명적인 노조의 어두운 면이다.

 

5) 행동주의는 또한 ‘전투성’의 병리 현상이다. 반(反)혁명의 시간성을 선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전투적’으로 희생적인 사람은 편법으로, 즉각적이지만 헛된 희망으로, 무엇보다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도 오늘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물론적 비판의 무기에 대해 성찰하고 적용하지 못한 채 동요하기만 한다. 반反)혁명의 장기적인 관점을 상실한 이 '전투 세력'은 부서진 상점 창문 몇 개와 불에 탄 쓰레기통(모두 체제에서 정당하게 보험에 가입된 것)이 혁명을 예고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코뮤니스트 강령의 전파로 나아가는 어렵고 긴 노정을 막기 위한 사회 평화의 역풍, 조잡한 혁명의 예방 및 카타르시스적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행동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못’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노동운동을 괴롭히는 모든 ‘못’과 집착의 온상이다. 그러나 행동주의의 유행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 이론은 실제로는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의 민감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 행동가적 가식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투쟁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항상 반反)혁명의 승리가 그 특징이었던 때 이러한 현상이 가장 강렬했다. ‘코뮌의 블랑키스트 이민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발췌하여 1874년 데어 볼크슈타트(Der Volksstaat)에 게재된 엥겔스의 한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혁명이나 반反)혁명이 실패한 후 해외로 도망친 이민자들은 열렬하게 활동한다. 다양한 색조의 정치 단체가 설립되어 각각 운동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반역죄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필멸의 죄를 비난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고국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조직하고, 음모를 꾸미고, 전단과 신문을 발행하고,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다시 하게 될 것이고, 승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맹세하며, 이를 예상하여 미리 정부 직책을 나누고 있다. 물론 환멸 뒤에는 환멸이 따르고, 이러한 좌절은 그들이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우연한 실수 때문이므로 상호 비난이 쌓이고 일반적인 난투극으로 끝이 난다."8) (A. 보르디가, 「코뮤니스트 투사」 6호, 1952년 3월 20일~4월 3일)

 

6) 행동주의는 따라서 자본의 극단적 좌파로서 좌파주의의 해체/재구성의 본질적 측면이다. "극좌"와 같은 최상급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9) 기본적으로 ‘극좌’로 정의되는 정치 운동을 불신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충돌의 미디어 이미지를 더욱 ‘무서운’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며, 실제로는 이념적이고 억압적인 실제 국가 테러리즘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초점은 국가(또는 국가 원수 개인에 대한)에 대한 ‘복수’와 이상주의적 반대의 필요성을 강화하여 일부 활동가들이 새롭게 ‘무장한 개혁주의’, 심지어 ‘녹색’으로의 일탈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특정 형태의 시위가 화려하게 굳어지는 이러한 과정은 실제 정치적 이해관계, 즉 전쟁으로 향하는 과정,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 임금 하락, 소외된 노동에 대한 거부, ... 그리고 다가올 기타 ‘자연적’ 및 건강 재난에 대한 공포심과 위장을 강화한다.

 

부르주아지가 제안한 또 다른 관점은 선거 마감일에 대한 관점인데,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오도하고 속이는 주기적 성향을 충분히 입증한 바 있다.

 

"의회는 자본주의 체제에 특유한 정치적 대표의 형태이다. 의회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맑스주의 코뮤니스트의 원칙적인 비판은 전체 국가 정부 기구가 지배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한 방어위원회가 되는 것을 투표권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권리는 국가의 대표 기관에 대한 선거에서 사회 계층의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지만, 그런데도 후자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투쟁의 역사적 도구로 조직된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관한 테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1920년, 각주 10)

 

2023년 7월 5일

Matériaux Critiques

 https://81b6bb22-93ff-445e-9132-db9118c0c19f.filesusr.com/ugd/ca292a_8f1c247f6b034aadb849db0c7dea2aef.pdf

 

 

<주>

 

1)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다양한 ‘운동’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통된 일탈주의적 실체, 즉 행동주의를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유사한 급진성과 현재의 반(反)혁명 노선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보도에 다시 한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것이 혁명적 집단과 동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과장된 허세이며, ‘이미지가 매개하는 사회적 관계’(Debord)로서의 구경거리의 일부이자 구색이며, 확고한 정치적 관점에 대한 암시를 선제적으로 무장 해제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믿는다. 과장된 묘사와 터무니없는 수식어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신비주의이며, 사소하고 진부한 현실에 무지하지 않았던 작가에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2) 우리는 여기서 직접 행동, 사보타주, 피켓 라인 무장 등 노동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해방 프로젝트를 의식하는 독립적인 계급 운동에 봉사하는 수단에 해당한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사례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시기에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내용과 급진적 행동 양식이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은 우리의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La soumission du procès de travail au procès de valorisation au travers de l' exemple du mouvement ouvrier américain (1887 – 1920)’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 monsite/archives

 

3) 맑스, 엥겔스 : 사회주의 강령, 74쪽, 스파르타쿠스, 파리, 1971

 

4) 이 질문에 대해서는 「중요 자료」(Matériaux Critiques) N°1 2020년 4월호 및 웹사이트에 있는 본문을 참조하시오. ‘프롤레타리아트 대 민중’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

 

5)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독자들은 S. Boulouque의 책을 참조하라. ‘노란 조끼를 입은 거짓말’, Serge Safran éditeur, Paris, 2019; 잡지: ‘조국도 국경도 없다’ N° 60-61, ‘노란 조끼와 혼란스러운 정치’, 2018.

 

6)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은 1950년대에 참여했던 푸자디스트 운동과 ‘노란 조끼’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했지만, 후자는 공통된 점을 제외하면 지도자도 없고 ‘표어’도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에 대한 ‘적개심’ 사이트 :

https://www.lefigaro.fr/flash-actu/2019/01/10/97001-20190110FILWWW00239-gilets-jaunes-des-similarity-with-poujadism-jean-marie-le-pen.php

 

7) 우리는 이미 2023년 3월 2일 입장문에서 이러한 계획된 패배에 대한 분석을 다루었다: ‘연금: 노동조합의 승리, 프롤레타리아의 패배’

https://materiauxcritiques.wixsite.com/monsite/textesritiques

 

8) 웹사이트: https://www.pcint.org/03_LP/512/512_activisme-1.htm

 

9) 물론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 초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혁명에 대한 혁명적 반대에서 비롯된 역사적 ‘극좌파’(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이탈리아 좌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07/05/against-activis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데이먼 동지의 활동

 photo_2019-01-14_14-44-20.jpg

데이먼 동지 사망 직후인 1979년 10월 16일

공개 시위 당시 작성된 보고서의 글

 

 

동지들,

 

우리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Pcint)을 대표하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를 대표하여 데이먼 동지의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노라토 데이먼은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의 정치 투쟁 역사에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다른 그룹과 흐름의 존재에 대한 언급에 더해 해외에서 제공된 언급은 데이먼 동지의 업적의 가치와 위상을 입증한다.

 

이 위대한 인물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노라토의 교훈과 모범에 충실한 노동자 운동과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과 관련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에 직면한 제2차 인터내셔널의 수치스러운 종말에 대해 논의한다.

 

자본의 무한한 개혁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환상은 당시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내에서 기회주의와 수정주의의 대열을 확대했으며, 바로 이 기회주의가 그 틀을 부식시켰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해 항복한 바로 그 정당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계급적 내용을 모두 빼앗아 갔다.

 

또한, 제2 인터내셔널 내 러시아에서 레닌의 투쟁은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이 노동계급의 혁명 과정 첫 단계이자 유일한 단계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인, 볼셰비키(RSDLP)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평의회에 기초하여 설립된 최초 노동자 국가 창조는 계급의 권력을 주장한다.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및 인터내셔널 경험에서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힘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더욱 완전하게 정당들이 투항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탈리아 사회당(PSI)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방해하지도 않는’ 신비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왜 그랬을까? 사회주의자 라자리(Lazzari)가 속임수의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PSI 내부에 방법과 맑스주의 원칙의 올바른 적용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방향에 충실한, 혁명적인 행동의 흐름이 퇴보하였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국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부르주아지의 권력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

 

동지 여러분, 그의 모든 젊은 정신에 몰두한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아직 특정 형태의 선험적 기권주의로 나뉘지는 않았지만, PSI의 좌파 분파인 기권주의자 분파를 지지하는 오노라토 데이먼 동지를 만나게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불복종을 선동한 혐의로 1919년 감옥에 갇힌 것이 성원으로서 그의 활동 특징이다.

 

1919년 전쟁이 발발하자 제3 인터내셔널은 거의 레닌 동지의 강권에 의해 구성되었다. 혁명가들이 사회민주주의와 결별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의 형성 과정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이 자극이 운동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지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2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그들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보다는 다른 나라 코뮤니스트 세력 내부의 자주성과 성숙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쉽게 이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PSI의 좌파 세력은 이미 그들 자신을 사회민주주의 기회주의라는 이념적, 정치와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볼로냐 대회에서 이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데이먼이 볼로냐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인터내셔널의 가능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명적 가르침의 귀중한 글꼴인 문서에 우리를 위해 기록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행동 전망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볼로냐에서 이미 최종적으로 단절을 한 것이 이미 잘못이 아닌 것처럼 논의된다. 정말로 오류였나? 이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혁명가들이 미래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혁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반영하여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어본다.

 

"이 사실에 직면하여 인터내셔널 내에서 우리 자신을 격렬하게 배치하는 심각한 정치세력을 현명하게 제거함으로써, 이 나라에서 혁명을 위한 투쟁을 유일하게 보장할 정당으로서 기능하는 분파와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결정적으로 상실한 사회당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제약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사회당과 결별했다. 적절한 결단력과 적시성을 가지고 이 수준에서 일하지 않고, 필요한 역사적 순간에 당 건설을 하지 못했거나, 너무 늦어서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전면 후퇴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오노라토 데이먼)

 

볼로냐 이후, 분파는 이몰라(Imola)에서 다시 만났다.(1920년 11월 28일) 그곳에서 그들은 리보르노(Livorno)에서 열리게 될 대회(1921년 1월 21일)에서 분열을 준비했다. 리보르노에서 데이먼이 고수했던 분파와 「신질서」(Ordine Nuovo)의 설립이 당으로 함께 흘러 들어갔다. 보르디가 좌파의 지시를 받은 젊은 코뮤니스트당은 그들 자신의 개선된 투쟁을 수행했다. 톨리아티(Togliatti)와 베를링게르(Berlinguer)의 권력기구의 호모큘러스가 혁명적 역할을 포기한 것은 바로 이 당이었다. 그 기간 데이먼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talia)의 대리인이자 중앙 연합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는 토스카나(Tuscany)에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었는데, 피스토이아(Pistoia)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총상을 입었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완전히 후퇴했음을 알 수 있다. 레닌이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끌어내며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 러시아혁명은 오히려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 노동자 국가에 있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굶주림과 내전의 폐허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이와 같은 보복 뒤에는 아직 원칙의 차원이 아니었던 첫 번째 항복이 있었다. 러시아 동지들은 경제 조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되었고, 자급자족의 대가로 가장 혁명적인 정당에서도 항상 존재하는 기회주의적 자극을 증가시켰다.

 

이탈리아 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에서도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럽이나 동양에서 승리한 혁명만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혁명 과정의 위험 징후를 경고했다.

 

오노라토의 말을 인용한다.

 

"1924~25년은 노동자 운동의 내적 발전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이탈리아 좌파에게 부과된 추방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부는 더 유연하고 타협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형성 단계에서도 좌파와 함께 존재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람시 동지의 작업과 사상과 관련시키지 않고는 정확하고 책임감 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신화화되고 이론화된 그람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관점에서 관찰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살았던 우리와 같은 인간 그람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람시가 진정한 혁명 정당의 요구가 아니라 러시아 국가의 요구, 비록 그것이 노동자 국가의 요구라 할지라도 우발적인 정치에 당을 종속시켰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데이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당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따라서 인터내셔널의 집행부를 위해 당시의 문제는 우파의 공간을 확보하고 당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당의 정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당을 지배하고 있던 좌파의 흐름이 원하는 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3 인터내셔널주의 분파와 사회주의당의 핵심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통해, 결과적으로 당을 통해 이상적인 지점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에는 좌파가 침묵할 수 없었던 그람시 센터(Gramscian Center)의 정확한 정책이 부합했다. 1924년 코모(Como) 회의에서 좌파가 당의 다수파로 부상한 것은 1924년이었다. 인터내셔널이 부과한 새로운 당 중심과 당의 구성 노선이 그 순간 혁명적 정책의 필요성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체질은 건강했다. 그람시의 미묘한 지능으로 해석되는 장치가 지배했다. 이 기구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따라서 이 기구는 이름 없는 신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덧없는 조직, 거의 항상 특권의 연막 뒤에 숨겨져 있는 조직, 정치 활동의 기업의 모습을 취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모습이다. 문어처럼 촉수를 뻗어 전파되고 그것을 특징짓고 당의 나머지 조직과 구별되는 고유한 삶의 방식을 취한다.”

 

공동전선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자살, 근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아벤티네(Aventine) 양도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너무 늦게 해결되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은 책임감 있는 동지들 때문에 충분한 징후가 감지되었다. 이 시기에 데이먼과 그람시 사이에 아벤티네 양도 문제에 대한 단결의 논조와 마테오티(Matteotti) 사건과 그람시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당이 패배할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논쟁이 있었다.

 

데이먼, 레포시(Repossi), 포르티차리(Fortichiari)와 함께 "아직 구해야 할 것을 구하는 정확한 임무를 가지고" 인테사(Intesa) 위원회를 설립했다. 인테사 위원회는 역사적 순환의 새로운 문제, 즉 노동계급에 가장 쓰라린 패배와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문제에 대한 정교화와 정치적 투쟁의 중심지로서 인터내셔널의 반대 세력으로서 이탈리아 좌파가 탄생한 것이다.

 

보르디가는 이미 구성된 인테사 위원회를 고수하여 PCd'I의 내부 정치 투쟁에 최대한의 마지막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는 1966년 PCI 문서의 변형과 명예 훼손에 대해 명확히 하려고 했다.

 

"인테사 위원회의 강령은 밀라노에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동지들이 인테사 위원회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보급된 문서의 주요 부분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르디가는 알지 못한 가운데 예외적으로 소수 동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들을 지탱해 준 사람들의 개인적인 변덕에서 인테사 위원회의 경험은 그들이 아직 갖지 못한 의식에 가장 중요하다. 오노라토는 사후에 나온 그람시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저작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나왔다.

 

"인테사 위원회가 내린 경고는 인터내셔널 정치의 볼셰비키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구조적, 이념적, 정치적 타락, 스탈린주의의 종속적 각인, 소비에트 국가가 제국주의 대열에 진입하는 과정의 시작을 특징짓는 관점에 대해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직접 이 문제를 처리했다는 것은 그 경험의 절정, 당과 인터내셔널에서 다시 토론하려는 시도, 인터내셔널의 위선적 복수를 차단하는 데 있어 그 순간의 중심 문제에 의해 입증된다. 움베르트 드로즈(Umbert Droz)가 모스크바에서 시작한 이탈리아의 쇠퇴는 그 자신이 회고했듯이 인터내셔널과 그 정당 내에서 동일한 주제와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대가로 위원회의 해산 명령을 했다.

 

수년간의 투쟁을 위해 당의 위임을 받고 계급당의 쇄신 능력을 신뢰하는 동지들에게 이것은 큰 부담이었다. 스탈린은 1926년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보르디가에 응답함으로써 모든 의심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코민테른의 정책은 의존 관계에서 모스크바에 위임되어 러시아 국가의 방어, 이른바 "안정화" 전술로 축소되었으며, 구두 선언에서도 이것은 추상화되고 국제 혁명에 관한 이야기와 분리되었다. 런던에서 악명 높은 영-러 위원회가 출범하는 동안 그들은 예외적인 법률을 통과시켰다. 파시즘은 결정적으로 승리했고 코뮤니스트는 감옥에 갔고 그들과 함께 데이먼은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PCd'I는 볼셰비키화를 겪고 있었고 이로 따라 좌파가 소외되었다. 리오네(Lione) 의회는 스프리아노(Spriano)와 같은 코뮤니스트 역사가조차도 숨길 수 없는 사기이다. 우리는 이미 조직에 대한 오노라토의 판단을 느꼈고, 리옹에서 당의 시체를 대체한 것은 바로 이 조직이다. 우리는 여전히 센터 측의 모든 기능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람시 아래에서 (1925년 인테사 위원회의) 나폴리에 참여했던 당의 사무국원들이 소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행정적 딜레마는 자신에게 돈을 지급하는 정당의 정책을 계속 따르고 옹호하거나 해고되는 것이다. 이 "매춘"("puttano")의 밑바닥에는 마치 당내 혁명 세력이 협상의 보상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수치스럽게 항복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효과적인 딜레마"이다.”

 

리오네의 승리와 함께 좌파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상대적으로 느린 작업은 새로운 자극과 냉혹함을 가져왔다. 데이먼 동지는 1933년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같은 해 말 다시 수감되었고, 파시스트 신문을 통해서 PCd'I에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도 당과의 화해 목표는 모든 가능성의 범위 밖에 있었고 반대였다. 좌파에 몸담은 지 몇 년밖에 안 된 동지들이 모두 자신의 안락한 지위를 희생하면서까지 저항할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노라토 데이먼과 다른 사람들은 저항했다. 맑스주의를 확고히 고수하고 역사에 대한 완벽한 시각을 유지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미 중국의 에피소드 그리고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세계대전에 묶여 있다는 힘의 증거로 다시 나타났다. 포괄적 혁명은 모든 볼셰비키 구(舊)경비대에 대한 스탈린주의 숙청과 함께 러시아 상황에 의해 가속화되었습니다. 요컨대, 비극적 경험의 축적은 엄격한 계급 노선을 따라 수행된 분석의 필요성을 남겨 두었다.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었나? 다른 모든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그 세력에 대한 설명을 재개했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가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재건되면서 1919~1922년 내전에서 물려받은 다른 전선과의 대립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고 부유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제국주의 중심부로 떠오르는 문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이탈리아 좌파의 내부 중심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그는 스페인 전쟁 대신에 이미 분명하게 다음과 같은 세력이 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중도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 즉 국가 자본주의, 즉 구(舊)소련의 노예에 불과하다.”

 

데이먼이 감옥에 갇혀 있던 몇 년 동안에도 스페인 내전 기간과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처음에는 감옥에서, 그다음에는 망명지에서). 혁명적 강령을 재건하기 위한 교훈을 도출하기 위해 계급에 부담을 준 사건들을 조사하고 비판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였으며, 조직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외부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유지한 것도 감옥에서였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데이먼 동지가 그랬던 것처럼, 코뮤니스트 방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부르주아 언론과 파시스트 언론의 검열을 통과한 저널을 읽는 것만으로도 맑스주의자들은 사건에 발맞추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맑스주의자들은 더는 의구심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1915년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에 대해 일관되고 적극적인 반대, 전쟁을 적과 모든 배신자 세력과의 전면적인 정치적 갈등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1943년 북쪽에서 훌륭한 계급 봉기가 촉발되었고 당은 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운영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날 오노라토와 함께 1921년의 지연을 비판하기 위해 현재 행동하는 세력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듯이 (데이먼 실제로 최고의 공헌을 한 것처럼) 우리는 1943년에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 당은 데이먼이 감옥에 있을 때 그리고 감옥 안에서 만들어졌다. 데이먼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첫 번째 전단을 배포했을 때 망명 중이었고, 모두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기관지인 「프로메테오」의 첫 번째 시리즈가 출판되었다.

 

1943년 12월 1일 자에서 우리는 전쟁과 혁명에 반대하는 당의 계급에 기반을 둔 혁명적 성격을 독특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인 '우리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러시아'라는 제목의 주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당이었으며 다른 모든 당보다 부르주아 전선에 맞서 당으로서 행동했다. 이에 1945년 톨리아티와 PCI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지도자들을 방해자로 게슈타포 요원이라는 냉혹한 낙인을 찍어 CLN에 청원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노라토 데이먼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되었다.

 

데이먼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명도 혁명가로서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지 않았다.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은 우리 당이 견뎌낸 부르주아 재건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계속되었다.

 

당의 창립부터 오늘날까지 다른 투쟁과 문제들, 무엇보다도 1952년의 분열이 데이먼을 참여시켰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에서 정치조직을 쇄신하는 투쟁에 대한 그의 공헌은 헛되지 않았다.

 

그 순간에 오노라토의 모습이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자본 축적의 새로운 위기는 이 위기에 특정 맑스주의, 즉 해체된 지식인(intellettuali allo sbando),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의 맑스주의가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이 위기를 예견하고 조사한 혁명가들의 맑스스주의가 아니라 오늘날 당(Pcint)과 오노라토의 교훈 속에서 지속하는 바로 이 맑스주의이다. 그 잔해는 영원히 무의식적인 희생자가 될 수 없으며, 미래의 유일한 기준점은 코뮤니스트좌파, 국제 프롤레타리아당이 될 것이다.

 

오노라토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당의 쇄신을 위한 기본적 및 조직적 정책을 유지하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기 위해 간부를 양성하고 활동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오노라토 데이먼과 같은 동지들의 투쟁을 통해 형성된 성원으로서 우리는 그의 교훈을 함께 실천할 것을 맹세한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1999-11-01/the-work-of-comrade-damen-in-the-communist-movemen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