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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29
    망중한?(3)
    hongsili
  2. 2008/04/07
    [식코] 감상문 두 편(1)
    hongsili
  3. 2008/03/24
    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9)
    hongsili
  4. 2008/03/23
    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10)
    hongsili
  5. 2008/03/15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8)
    hongsili
  6. 2008/03/03
    코난, 비폭력대화, 오락(?) 영화(3)
    hongsili
  7. 2008/02/16
    sweetpea 공연(5)
    hongsili
  8. 2008/01/29
    [거절하지 못할 제안](2)
    hongsili
  9. 2008/01/27
    책 둘, 영화 둘(1)
    hongsili
  10. 2007/12/28
    반 고흐전 유감(6)
    hongsili

심각한 책과 그렇지 않은 영화

하도 오래 전에 읽고 본 것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래도 메모해둔 것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1. 제롬캐시러 지음, 최보문 옮김 [더러운 손의 의사들] 양문 2008

 

기억해둘 문장... 187쪽.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밀려나가고, 그 자리에 대학병원 의사와 지역사회에서 진료하는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이 들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다. 278쪽. 왜 기자를 위한 지침이 의사의 경우보다 더 엄격해야 하는가? 의사가 사회에 한 서약은 리포트의 윤리보다 의미도 적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자본 침투가 보건의료계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이나, 자본 침투가 가져올 부정적 결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심각한 듯 하다.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과연 어떤 답변들을 가져올지, 살짝 걱정도 된다.

 



#2.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죽음의 밥상] 산책자 2008

우리가 무언가를 '이상할만큼' 싸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통해 생산/유통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 비용을 다른 누군가에게 (대개는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나 주변의 주민들, 그리고 국가보조금 지급의 원천이 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들) 전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완전 동의. 하지만, 그래도 wholefoods 의 식품 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이들을 살짝 나무라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움.다른 데 쓸 돈은 있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윤리적 소비를 할 돈은 없냐? 지금 식품값이 지나치게 저평가 되어 있다구.... 이렇게 읽혀짐... 근데, 과연 그럴까? wholefoods 에 안 가는 (혹은 못 가는) 사람들이, 과연 다른 곳에는 낭비적 지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식품 값에만 그리 인색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어째, 그건 아닌거 같다. 예전에 미국 머무르던 시절, 이런 기사와 영상들을 몇 번 보았기에 그닥 새로운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당혹스러운 사실들.... 송아지 고기의 선홍빛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인 빈혈 상태를 만들고, 혹시라도 송아지가 우리의 철봉을 본능적으로 핥을까봐 나무 우리에 가두어둔다거나, 마블링을 선호하는 한국과 일본 소비자를 위해 호주에서도 이들 국가로 수출하는 소들은 특별히 더 가둬두고 '곡물'을 먹여댄다는... ㅡ.ㅡ (운동 안하고, 풀보다 곡물 먹어야 마블링이 더 좋다는군) 윤리적 소비가 무엇인가에 대해 결코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줌. (근데 답이 없쓰... ㅜ.ㅜ) 이를테면, 로컬푸드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에 동의하지만,사회적/개인적 비용을 계산하여 가장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님.... 물론 이 책이 시스템 속에서 작은 개인들의 저항/변화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사회'의 책임, 개인들의 '제한된 선택'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려웠음. 특히 '비만의 윤리학'이라는 장에서, 노골적으로 개인의 방만한 식습관으로 야기된 비만이 결국 건강보험 재정에 얼마나 누를 끼치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지적하는 부분은 건강행태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만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리버럴의 논리와 완전 동일.... 물론 인간이라는 주체가 사회의 영향만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도 아니지만, 사회적 환경이라는 배경 없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완전 이성적 존재가 아님을 인정한다면 과도한 논리전개 아닐까? 채식에 대해서 생애 두 번째로 진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으나... 그저, '가급적'의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시 결의를 다지는 수준에서 마무리... ㅜ.ㅜ

#3. [페르세폴리스] - 뱅상 파로노,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 2007

무슨 말이 필요하리....... 긍정의 힘!!! 세상은 그렇게 살아간다!

#4. [인디아나 존스 4편]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08

튼튼함 부문의 바지 지존이 엑스맨 3편의 울버린 것이었다면, 때 안타기 부문의 바지 지존은 당연 인디 박사의 카고 바지라 할 수 있다. 흙바닥에 뒹굴고 모래무덤에 빠져도, 먼지 한 톨 안 묻어 있다. 나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대세는 하이브리드! 이번 편은 엑스파일 시리즈의 프리퀄 정도 되어 주시겠다! 나중에 멀더 아버지의 회상 장면에 인디 박사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라라 크로포드와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조우하는 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만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못 만날 인물 혹은 괴물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더랬다. (심지어 2편도 나왔으니...) 그리고, 아마 5편에서는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 (숀 코네리)가 살아나서 인디 박사, 그 아들내미 이렇게 3대가 한번 같이 출동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죽은 사람 살려내기가 헐리우드 전문이잖아... 참, 소련 출신 과학자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은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의 이미지가 하도 강하게 남아, 사투리 강한 우크라이나식(?) 영어 발음이 요정 언어처럼 들리는 괴이한 현상을 체험했다. 요정을 데려다 저런 나쁜 과학자로 변신시키다니.. 어찌나 섭섭하던지 ㅎㅎㅎ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인디 박사... 반가웠어요.... 연로하신 몸으로 이리저리 고생하는 걸 보니 쪼금 마음이 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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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지난 3주 동안 틈틈이 즐겼던(?) 꺼리들... 0. 정민 [미쳐야 미친다] 푸른역사 2004

 

 

옴니버스 소품들이라 화장실에 가져다놓았던 책. 1부(벽에 들린 사람들)와 2부 (맛난 만남)의 일부 (이를테면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음. 그런데... 일 개인들이 시대의 지배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한 양반네들의 풍류와 멋이 마냥 즐기기엔 불편했다. 이를테면 빗길에 가마를 타고 산행에 나서려면 누군가는 그 가마를 메야 하고, 한밤의 급작스런 음주가무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술상을 차려야 한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세검정 정자에서 급류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동동거리며 빗속에 음식상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반상 구조가 지배적 질서라고는 하지만, 이 풍류와 멋을 아는 나름 진보적 양반네들은 마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러려니 하면 다 괜찮은 걸까? (책 내용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이런 정서 때문에 사실 몰입이 좀 힘들었음 ㅜ.ㅜ)


0.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 2007 (개정판)

논쟁을 부정하는 사회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대체로' 바람직하겠지만, "논쟁용" 문제제기가 가진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115쪽, 한국사회의 재벌 편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말하자면, 내가 노동자 편이라서 이런 건 아니다)노조도 문제라는 논리를 펴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시장질서에 경직성을 가져오는 일종의 권력? 한국 사회에서? 노조 조직률이 겨우 10%를 넘는 사회에서? 한편, 사람들이 흔히 제기하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 제기되는 논거들이 조금씩 핵심을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에서 제기한 번역투 문장 비판에 대한 반비판이 그렇다. 어차피 우리(?)의 근대학문이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저자의 논거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번역투'를 비판하는 건 말같지 않은 외계어스러움 때문 아닌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에서 오는 생경함이 일부 더해지긴 했겠지만, 내가 번역투 문장을 싫어하는 경우는 대개 그것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맥락이 다르고, 표현법이 다른 외국어를 완벽하게 1:1로 조응시켜 번역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 하지만 번역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읽히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어 사용자들 (더구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뭉뚱그려 번역투에 대한 비판을 한국어 순결주의로 몰아간 것은 못내 불만이다. 영어 공용화론도 그렇다. 영어를 계속 이렇게 (공용화시키지 않고) 비공식적 영역에 남겨놓았을 때, 소수의 특권층이 전유하게 되어 정보 격차와 결국은 계급 영속화를 낳게 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학문이나 문화를 체득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나? 영어를 공용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배우게 된다면, 계급/계층 간의 학력 격차, 정보 격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지위재로서의 독특한 위치, 실질적인 실생활 필요도에 대한 구체적 평가, 공교육을 통해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사교육과 해외 체류 경험 등에 대해, 과연 저자는 의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이 부분 읽으면서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ㅜ.ㅜ 그래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들은 있었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빈정거림... ㅎㅎ "자신의 주견이 없는 사람들,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도피처로서, 유예된 결정의 명분으로서 늘상 내세우는 그 '새로운 모델'에 이제 신물이 난다 (신비롭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새로운 모델'이 언제쯤 나오려나. 그걸 탐색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와주어야 할텐데. 하긴 그게 안 나와야 이 사람들이 계속 바쁜 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 진보의 재구성이니 노동자 정치세력화니, 반대할 일을 없으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각론 없는 총론 타령에 살짝 어이가 없었는데, 이 부분은 읽자니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 ㅎㅎ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제기한 '국어', '국사'에 대한 비판에도 물론 적극 동의한다. 학회 논문 사독을 맡을 때, '우리 나라'라는 표현이 나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도대체 우리 나라가 어디인가??? 이 한국 사회 거주자들이 아직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냐는 말이다.... 고종석은, 자유주의자로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은 좀 안 쓰면 좋겠다. 정운영 선생과 달리, 자연스런 공감이 아닌 설득에 나서는 순간, 그의 아름다운 필력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0.BBC [Planet Earth] KBS 미디어 2007

정말 장대했노라.... 광활한 풍광과 자연의 섭리 앞에서 숙연해짐과 더불어, 도대체...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음.. ㅡ.ㅡ 생명체들의, 삶에의 고귀한 투쟁을 폄훼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으나, 인간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남아서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고, 그 새끼는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해 살아가고.... 살아 있음으로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는 것. 혹은 오로지 삶의 목표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냐만...)란 생존하여 후손을 남기는 것.... 과연 인간이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솔직하게 자연 다큐가 펼쳐진다. 그것이 내가 이 다큐 시리즈를 보면서 경외와 좌절을 한꺼번에 느꼈던 이유... 0. 모건 스펄록 [Supersize Me] 2007

아, 진짜 이렇게 자막 후진 영화 오랜만에 보았음 ㅡ.ㅡ 학생들 실습 시간에 보여주려고 미리 본 건데...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나 시간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타겟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의 장점은 있으나, 전반적인 경향성에 대한 논의보다 맥도널드라는 '특수'사례에 집중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마도 이게 미국식 다큐 제작 방식인 것 같다. 생생하고 발랄하면서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배후의 거대한 질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우쨌든 불과 한 달 만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거에 나도 나름 충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아까 엘리베이터서 나던 고소한 닭튀김 냄새에 잠시 정신이 어질~ 본능을 거스르긴 어렵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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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감상문 두 편

내 평생, 영화 하나 보고 감상문 두 개 쓰긴 첨일세... ㅡ.ㅡ 미디어 충청 원고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거짓말처럼 보건의료단체연합의 P 부장님이 전화를 하셔서리... 이미 쓰고 있는 중이라는데도 무조건 또 쓰라니... 그 놈의 대의명분이 뭔지 참... ㅜ.ㅜ 두 개를 다 읽어본 독자라면, 내가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라도 앓고 있는 줄 알게야... 뭐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영화를 보고, 공감을 해 준다면 그냥 감내해야지...ㅡ.ㅡ 0. "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프레시안 2008. 4. 7) 앞선 필자들의 ‘식코’ 감상문들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야 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한편 90년대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전쟁 후 본격적인 ‘영리산업’이 되어버린 보건의료 체계 속에서 고뇌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닥터 솔로몬(Solomon)의 딜레마』(미국 PBS 제작, 2000년)에 잘 그려져 있다. 보스턴의 토박이 솔로몬은 나비넥타이와 깨끗한 흰 가운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이다. 환자들의 평판도 좋아 지역 100대 명의(名醫) 목록에도 빠지지 않는 그였지만, ‘케어그룹(CareGroup)’에 속하고 나서 곤혹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부인과 암이 발견되어 상급 병원으로 의뢰가 필요했던 그의 환자는 ‘케어그룹’에 속하지 않은 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다. 안 될 일이다. 보험회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병원은 안 된다고 솔로몬이 이야기하자, 환자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돈 때문에 저를 그리로 보낼 수 없다는 거죠?” 솔로몬은 “네, 그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14년 된 단골 환자와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렸다. 또 다른 의사, 케어그룹의 진료부장인 닥터 사알(Saal)은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의사가 직접 경영진이 되니 든든하다고 좋아하던 동료 의사들이, 이제는 자기를 예전의 보험회사 직원 보듯이 하며 “도대체 그 일을 왜 하고 있냐?”며 비아냥댄다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픈 이들과 그들 가족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만 밝히던 보험회사의 행태를 스스로 반복하고 싶은 의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캐나다 혹은 쿠바 사람들에 비해 원래 ‘못된’ 사람들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착한 아들딸이고 존경받는 부모이며 따뜻한 이웃이자 동료인 이들이 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자, 이제 오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이웃 환자가 어느 날 병원비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이 있는가? 눈물로 애원하는 환자 가족들에게, 약관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릴 자신이 있는가? 단골 환자의 눈을 마주하면서, 계약 조건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내 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료 의사에게 돈! 돈! 돈! 채근할 자신이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나 체계가,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혹은 천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나 체계를 선택하고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이었던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그런 괴물은 되지 말자. 무엇을 위해 우리가 그렇게 변해야 하는가?


수다스러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가 드디어 개봉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미국의 황당한 의료보험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국만의 비극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경험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병원비를 이유로 환자를 내다 버리고, 일하다 잘린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여야 할지 가격표에 따라 골라야 한다니 말이다. 나 또한 감독 특유의 선정적인 연출 때문에 ‘허걱!’ 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미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엄연한 사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국, 캐나다, 프랑스,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를 지상천국처럼 그린 것은 매우 못마땅하다. 캐나다의 기나긴 대기자 명단 문제는 캐나다 좌파들도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이며, 외국인들이 쿠바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한다. 더구나 미국의 오래된 봉쇄정책 때문에 건물과 장비는 낡았고 의약품은 풍족하지 못하다. 지구 상 어디에도 완벽한 보건의료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마다 나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미국의 문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 몇 가지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자. 가난한 쿠바와 비교당하는 것에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 소위 선진국이라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려 한다. 미국이 연간 보건의료비에 쓰는 돈은 약 1조 7천억 달러, 국민 1인당 평균 6,037 달러 (약 600만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2%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OECD 29개국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평균 2,515 달러에 불과하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7% 밖에 안 된다 (2004년 기준).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데 과연 그 성적은 어떨까?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은 약 4천 6백만 명(전체 국민의 약 16%)으로 대한민국 총 인구와 비슷하다 (미국 보건부 2005). 국가 간 건강 수준 비교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 중 하나인 영아 사망률 (출생아 1천 명 중 만 1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영아의 수)을 살펴보면, OECD 평균이 6.1명인데 비해 미국은 7.0명으로 30개국 중 25등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뒤에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멕시코, 터키가 있다 (2002년 기준, OECD Health Data 2007).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물론 건강 수준이 보건의료체계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이 이 지경에 된 데에는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소리다. 오히려 참신함과 기발함에서라면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본받아 보건의료 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우리네 ‘참여’ 정부와 그 뒤를 이은 ‘섬기는’ 정부가 단연 앞선다. 그나마 취약한 건강보험 제도를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더욱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어차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기 힘드니 사보험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그 깜찍한 발상 말이다. 그 분들은 미국의 모습이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표준이라는 신심(信心)을 갖고 계신 게 틀림없다.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시장과 미국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신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나 되는데도 의료보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나, 보험료 부담 때문에 국제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불만, 그 보수적이라는 미국 의사들조차 과반 수 이상이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지한다는 소식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얼마 전에 개봉했던 또 다른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추억의 바가지 머리를 한 살인마가 등장한다. 희생자들은 이유 없는 자신들의 죽음 앞에서 살인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You don't have to do this!)” 영화 『식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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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

지난 토욜 오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의 키워드는 불안과 공포, 고착화, 분리,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월소득 5백만원에 자산이 10억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명백히 '부유층'에, 그것도 상위 몇 %에 들어갈 부유층이다. 사회학 전공 교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한 이 통큰 답변의 근원은, 불안과 공포라 할 수 있다. 아무런 보호 수단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를 보여준다. 거꾸로 보자면, 이 정도가 안 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삶은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지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금욜 저녁 자리에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긴 네이버에 올라온 글 중에는 대운하 건설과 건강보험 민영화 중 그래도 뭘 고를래? 하는 질문이 있단다 (ㅡ.ㅡ).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혜택도 적은 의료보험 차라리 없애고 민영으로 하지... 이랬던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절대로 이런 소리 안 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또한, 삶의 일상적 공포 때문 아닌가 싶다. 최근 읽은 책들과 영화 또한 이런 진실을 무지막지하게(ㅜ.ㅜ) 상기시킨다.


0.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경제학 분야에서 코호트분석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도 상당히 대중적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삶에 대한 연민의 한숨과, 다행히도(!) 나는 비껴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외/학원과 교복 없는 중고시절을 보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나기는 했지만 최소한 본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여지는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중학생인 정이나 담이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다른 이의 비극적 미래를 엿보는 예언자가 슬픈 것처럼 말이다. 이 속 깊은 장난꾸러기 여자애들은 결코 사회가 미리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울타리는, 부모의 가방끈 길이와 지갑의 두께로 넘는 것이지, 아이들의 품성이나 재능,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비문이 넘쳐났고 중언부언인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ㅜ.ㅜ) 저자들의 빛나는 문제의식 덕에 그냥 덮어주기로 했다. 0. 강수돌 저, [일중독 벗어나기] 메이데이 2007 어째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ㅜ.ㅜ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그대로 제본해서 책으로 낸 것 같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편집자의 문제 아닐까 싶네... 이 책은, 일중독에 대한 임상적/사회학적 진단에서부터 원인,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방면에 걸쳐 제시하고 있으나 다소 미시적인 접근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들의 변화가 모여서 큰 흐름을 일구어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엔돌핀 때문에 일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일을 '부여잡는' 것이라면, 그래도 과연 여기 제시된 처방이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결과'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우석훈의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개미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조금 늦게 떨어지기 위해 일 벌레가 되는 수밖에... 0.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There will be blood] 2008 공포영화가 따로 없더라.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현신. 그 자신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와 눈물이 넘쳐나는구나. 황량한 사막, 그 사막의 가시나무 같은 주인공, 황혼이 지나버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유정.... 뭐 하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게 없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0. Neil Gaiman [American Gods] William Morrow 2001 있는 그대로 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old gods 들이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발악하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옛것에 대한 고답적 향수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들조차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오늘날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읽힐 수도 있겠다. 아무도 숭배해주는 이 없는 Jinn 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 우는 장면은 정말 대책 없다... 이 사회,전통적인 신들은 더이상 필요 없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 이제 TV의 신, net의 신, mobile 의 신 등이 예전의 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old gods vs. new gods 사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 (물론 그 뒤에는 또다른 음모가 있긴 했지만...) 참으로 슬프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없다. 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 등의 신화적 아이콘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물론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배경 지식이 충분했더라면 백배는 더 즐겼을 것 같다. --------------------------------------------- 토욜 저녁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당분간 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무언가를 보고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메말라 버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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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지난 1년여 간, 여러 샘들과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선생님께서 추천사도 써주셨어요 .

뿌듯합니다 (^^)

 

근데 책 값이 좀 비쌉니다.

제발 소프트커버로 해서 책 가격을 낮춰달라는 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려 22000원의 양장본으로 제작한 출판사의 소신... ㅜ.ㅜ

대학 구내 서점에서는 16000원의 '학생판'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 아닌 사람은 어쩌라구... )

 

옮긴이의 말과 목차는 아래에 소개합니다. 

많이들 읽고 '공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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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
(부제) 생산의 지점 (원제: The Point of Production )

*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 김명희·김용규·김인아·김현주·이화평·임준·정최경희·주영수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008-03-15 발행 / 신국판 / 양장 / 272면 / 22,000원
* ISBN 978-89-460-5018-1 93510
* 분야 : 경제학, 사회복지학, 보건의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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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자들은 2006년 말부터 ‘취약 노동자를 위한 건강증진사업 개발’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왔다. 연구사업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오늘날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거시적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국내외 서적은 매우 드물었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0년 전, 미국에서였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그에 대한 논의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유효했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한편으로 신기해했고, 한편으로 절망했다. 일부 내용들은 ‘미국’이라고 쓰인 주어나 목적어를 ‘한국’으로 바꾼다 해도 한국 독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지적(知的) 경험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우리가 발 딛은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출판된 소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전문서적은 특정한 유해물질이나 유해환경, 이에 대한 의학적·공학적·행정적 해결방안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명료하고 구체적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살과 피를 가진, 노동의 피로와 보람에 울고 웃는 ‘인간’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을 생겨나게 만든, 혹은 그러한 유해요인의 예방과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현재의 안전보건, 산재보상 제도가 진화하는 데 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 전문가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다룬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레벤스타인, 우딩 교수의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정리해낼 만큼 학문적 내공을 아직 쌓지 못했다면, 번역 작업이 우리에게나 독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지만, 번역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 사회적 맥락에 대해 지식이 충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용어와 개념이 가진 정치성·역사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인 ‘occupational health’조차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다루는 이 학문 분야는 ‘산업의학’ 혹은 ‘산업보건’이라 불려왔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학 전문의’ 등의 명칭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일군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그동안 의식적으로 ‘산업’보건 대신 ‘노동’보건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고, 노동자건강 문제를 ‘산업’에 부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쓸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산업보건’과 전복적 의의를 가진 ‘노동보건’……. 논란 끝에 우리는 싱겁게도(!) 원문 표현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그대로 ‘직업안전보건’이라고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산업’도 ‘노동’도 아닌 중립적인 이 용어조차 ‘산업보건/의학’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는 낯설다. 직업안전보건법, 직업안전공단……. 우리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한국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얼마나 자본 편향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용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산재보험’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원문은 ‘worker’s compensation’, 직역하자면 ‘노동자 보상’이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노동자 보상’이적절한 표현이지만 이 용어를 썼을 때 이를 기존의 ‘산재보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우려되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소한 표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개념의 혼란을 피하고자 할 수 없이 기존의 ‘산재보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채택했다. 근로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되찾아온 것처럼, 이들 용어 또한 현실의 투쟁 속에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840년대에 출판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그려진 영국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전태일 평전" 속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다시 2000년대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여공’들의 외침이,1990년대 전화교환원, 그리고 2007년 대형할인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유해요인의 종류와 숫자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하고(그것이 물건이든, 서비스이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기술의 도입과 활용, 산재보상제도의 탄생과 발전, 규제와 규제 기구의 진화, 이 모든 것은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수반하는) 정치적 과정이고,이는 작업장 유해인자의 분포, 그것들의 관리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장의 개별 위험요인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요인의 분포와 관리방식을 결정하는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주체·권력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다.


우리는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별 사업장으로 국한되거나 기술자·전문가들에 의해 전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기업의 책임성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기업(집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법과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동자 건강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듯,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과 너무비슷해서 놀랍고 우울하다고 썼다. 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도 생명은 지속되는 법이다. 자본이 세계화된다면 노동도 세계화되고, 착취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투쟁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의 역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 또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이 책이 깊은 통찰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역자들 스스로 내공 부족을 탓하며 대안으로서 번역을 선택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유사하다 해도, 한국 사회 고유의 맥락과 역사성에서 유래한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각 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한국적 정황이나 사례를 옮긴이의 보론으로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실천적인 논쟁과 모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자들이 노동자 건강 문제의 역사성·정치성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미시적 해결책들과 결합할 수 있는 거시적 이론·정책을 논의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이 번역서는 나무들의 희생을 넘어서는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오역과 비문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역자들의 책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2008. 2. 옮긴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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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서론

1. 생산의 지점|2. 노동환경의 정치경제|3. 결론

 

제2장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1. 노동환경의 이론|2. 질환과 손상의 생산|3. 직업성 질환의 인식|4. 질환과 손상의 관리|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사회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제3장 기술과 노동환경

1. 기술이란 무엇인가|2. 관점 1: 기술 결정론|3. 관점 2: 정치성과 권력으로서의 기술|4. 기술적 선택|5. 기술과 노동자|6. 세계 경제시대의 노동과 기술|7. 적은 시간, 많은 일|8. 결론|옮긴이 보론_기술과 노동환경: 한국의 현실

 

제4장 노동환경의 사회적·정치적 맥락

1. 이념|2. 경영이론과 작업 구조|3. 권력의 분포|4. 인종주의의 영향|5. 성차별주의의 영향|6. 직업보건의 미시 맥락: 노동자-경영진의 관계|7. 조직된 노동|8. 결론|옮긴이 보론_21세기 한국의 작업장

 

제5장 규제의 정치성

1. 노동환경과 규제의 정치성|2. 1980년대의 사회적 규제: 직업안전보건청의 붕괴|3. 1990년대의 직업안전보건청|4. 정치적 함의|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의 규제완화

 

제6장 산재보상의 정치성

1. 산재보상제도|2. 역사적 동맹: 꾀병 환자, 악덕 변호사, 돌팔이 의사|3. 희생자의 조직화|4.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산재보험의 현황과 과제

 

제7장 직업보건과학의 정치성

1. 직업보건 전문가의 사회적 위치|2. 전문주의의 정치성과 국가|3. 구좌파와 신좌파|4. 새로운 전문가|5. 학술 연구와 사기업 부문|6. 연구 계약|7. 학술 자문위원회|8. 직업보건 연구에서 노동자 권리 |옮긴이 보론_한국 노동안전보건에서 전문가의 역할

 

제8장 노동,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

1. 자본주의의 승리|2. 기본으로 돌아가자: 생산과 고통|3. 민주주의가 답인가?|4.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적 건강을 위한 운동의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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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저께, 대전에서 곧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바다소녀의 경고에 서둘러 심야영화를 보았음. 야간 대학원 강의하고 오밤중에 영화보는 건 쉬운 일이 아녀... ㅜ.ㅜ 코앤 형제... 역시 역시 역시.... 관객들이 (아니면 내가) 그닥 주인공스럽지도 않은 르웰린에게 이입하는 이유는, 그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고, 그래서 결국 이 모든 사단이 벌어졌기 때문... 간절히 물을 원하던, 사막 한 가운데 총상을 입은 멕시코 마약 딜러... 어찌 보면 아무 상관 없는 그의 모습 때문에 잠을 뒤척이다 결국 그 곳으로 물 한 통 받아들고 돌아갔다는 사실... 그 한 조각, 겨우 한 조각 양심이 저런 파국을 초래하는구나.... FBI 도 울고갈 과학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냉혹한 킬러 안톤쉬거의 모습보다 무서웠던 것은, 르웰린과 쉬거가 총상을 가리기 위해 셔츠를 사들였던 아이들의 대화... 아이들... 정말 피도 눈물도... 톰으로 분한 토미 리 존스는 세상이 너무나 변했음을, 너무도 삭막하게 변했음을 한탄하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지만, 이렇게 변한 사회가 노인에게만 힘든 건 아니다. 적막하고 황량한, 막 나가는 그 텍사스 사막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펼쳐져 있다. 안톤 쉬거의 엽기적 행각은 일가족 몰살이나 어린이 토막살해를 자행하는 한국사회보다 특별히 더 잔인하거나 황당하지 않다.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학생을 보지 못했다는 당국자의 말은 과연 쉬거의 행동보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고 나오는데 정말 무서워 죽겠더라. 이 세상이... * IMDB 에서 배우 프로필 찾아보고 깜놀! 안톤 쉬거 역의 배우... 너무 멀쩡하게 생긴 거야... 그 단발머리, 그 기묘한 표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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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비폭력대화, 오락(?) 영화

흥미롭게 빠져들었던 책인데, 기록 안 해두면 또 까먹는다.

 

0. 강양구 저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프레시안 2007

 

 

예전에 강릉 출장 다녀오던 날, 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리고 커피가 맛나던 그 다방에 앉아 다 읽어치운 책. 고종석 류의 감칠맛 나는 문장이야 없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정확하고 쉬운 표현으로 전달해낸 점을 높이 평가.

 

목가적 낭만주의로 경도되지 않으면서, 문제 혹은 해결책이 가진 맥락과 그로부터 비롯된 가능성들을 꼼꼼하게 짚어주었다고 생각됨. 이를테면 바이오 연료 문제 - 브라질 출장 갔을 때 매연 하나 없는 에탄올 차량과 사탕수수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 사탕수수 밭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가리고 온 도시에 화산재처럼 내리던) 시커먼 연기와 잿가루, 그리고 식량 문제.. 설명하기 쉽지 않았던 이 복잡성을 쉽고도 조리있게 풀어내고 있음. 

 

무엇보다 장점은 책이 가볍고 한 손에 꼭 들어온다는 점 (저자가 들으면 기분나쁘겠다 ㅡ.ㅡ  이걸 칭찬이라고....)

놀라웠던 점은, 이제 중 3에 올라가는 연정이가 이 제목을 보고 '코난? 명탐정 코난?' 하길래, 내가 '아니, 미래소년 코난!' 했더니 못 알아듣더라는... ㅡ.ㅡ

어떻게 우리의 미래소년 코난을 모를 수 있어? 왕 섭섭했음.

 



0. 마셜 로젠버그 저,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 대화] 바오 2003

 

 

"장난하나? 좀 재수로세!"로 시작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호기심과 반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작은 열망을 느낄 수 있었음.

 

물론 비폭력 대화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 

현실의 인식과 소통 방법을 바꾸는 것이 현실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닌 바, 개인들 사이의 깊은 연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는 있겠으나 자칫 '일체 유심조요~'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 + 비폭력대화를 지속하려는 노력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  또다른 '감정노동'의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

 

우쨌든, 나처럼 문제해결 지향적 대화가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이들은 깊이 되새겨볼만한 책이로다. 안부 전화한 이들한테 '근데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어?"라고 묻는 건 이제 좀 그만 하자... ㅡ.ㅡ 

 

0.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2007

 

 

제목을 어째 저렇게.. 그냥 '고아원'하면 될 것을... ㅜ.ㅜ

아 씨,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지지난 주에 연정이 데리고 갔다가 둘이 후덜덜...

뻔히 짐작가는 내용인데 왜 그리 오싹오싹하던지...

어쨌든 상당히 짜임새도 있고, 나름 울컥하는 감동도 있음.

가족과 함께(?) 볼만한 영화.... 참, 영화 보는 내내 만화 [몬스터]가 떠올랐음.

 

0. 덕 라이먼 감독 [점퍼] 2008

 

 

지난 일욜에 건물 공사 때문에 정전된다고 해서 나갔다가 본 영화.

이 영화 보면서 진짜 심각하게 '자원의 낭비적 활용'에 대해 고민했음.

하다못해 권선징악의 수사학이나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로지 개인의 욕구만을 위해 초능력이 쓰이고 (어쩌면 현실적!) 그걸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물량을 동원한 세계 곳곳에서의 촬영....

주인공 애들 즐기는 통에, 무고한 시민들 죽고 자동차 뻥뻥 날아다니고 문화재는 막 파괴되고....  아무리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라는 것이 즐기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렇게 아무런 이유없이 돈 쓰는 영화는 보다보다 첨 봤음. ㅡ.ㅡ 

그래서 더욱 헷갈림.  먼지만큼의 감동이라도 주고,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이라도 이야기했다면 마음이 덜 불편했을까???  우쨌든 영화를 보고 '죄책감'이 드는 건 예상치 못했었음. 

 

참,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그나마 스타워즈 때보다 연기력이 아주 쪼금 나아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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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pea 공연

 

진정 오랜만에 콘서트...

마지막으로 갔던 게 안치환 공연이었나??? 하도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

 

가는 발걸음도 설레고 (사실 지하철 반대방향으로 타서 밥 먹을 시간 없을까봐 엄청 후달렸음).. 객석 불이 꺼지고 아직 무대가 조용할 때의 그 긴장감도 좋고...

 

 

스위트피는 물론 델리스파이스도 사실, 음반만 계속 들었지 얼굴을 본 것은 처음...

퀭한 그 눈... 가위손 에드워드 필....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 흐르는 보컬과 썰렁한 멘트, 음악에 대한 열정이 물씬 묻어나는 기타와 탬버린 연주... (기괴한 분위기의 연주 몸짓과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차우차우 가사...꼭 그분이 오실 것 같아 불안했음 ㅎㅎ)

 

진정,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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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할 제안]

Sweetpea의 오랜만의 신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잖아!!!

완전 버닝...

 

 

미니디스크의 '떠나가지 마' 변주곡들, 좋아 죽겠음...

심지어 간만에 콘서트 나들이 예정!

 

루시드폴의 [국경의 밤] 도 그렇고,

이들 앨범이 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다는 건 작은 희소식...

 

고비사막처럼 메마른 가슴에 음악으로 단비를 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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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둘, 영화 둘

이제 기록 없이는 기억도 없다 ㅜ.ㅜ

 

 



0. 팀버튼 감독 [스위니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

 

 

내 평생 변태 소리 두 번 들어왔는데,

첫번째. 조관우 노래 좋다고 했을 때 (ㅡ.ㅡ)

두번째는, 조니뎁이 (한국에서 그닥 유명세를 타기 전) 잘 생겼다고 이야기했을 때...

억울해. 나의 고상한(!) 취향이 변태취급 받았던 걸 생각하면!

 

어우... 스위니토드, 멋지삼!!!!

가위손 에드워드와  할로윈의 악동 해골잭을 합쳐놓은 듯하면서도 간난신고의 연륜이 살짝이 묻어나는 그 퀭한 눈! 눈! 눈!

빅피쉬,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렛 공장 등 최근 어울리지 않게 '착한' 영화를 찍어댔던 팀버튼이 이제야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구나 싶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아무리 연기라지만 자기 부인 (헬레나 본햄카터)이 오븐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연출하는 감독이, 과연 팀버튼 말고 또 있을까? ㅎㅎㅎ

팀버튼, 조니뎁... 무병장수하여 영화 많이 만들어주셈!!!

 

 

0. 마이클베이 감독 [아일랜드] 2005

 

 

부모님 댁에 갔다가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걸 우연히 봤음.

참 많은 스토리를 여기저기서 가져다 썼으나,

리플리컨트들의 도주와 삶의 열망이 기본이라는 점에서 블레이드러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엄청난 액션에도 불구하고 그 아우라는 도저히... ㅡ.ㅡ

도대체 링컨 (이완 맥그리거)과 조던 (스칼렛 요한슨)은 복제인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네이비씰... 아니면 좀비 ㅜ.ㅜ

SF 영화의 묘미는 나름 철저한 과학적 개연성인데, 허술하기는 또 이루 말할수 없다.

결국은 액션을 위한 SF 껍데기 활용이라고나 할까?  에잉...  

 

 

0. 은희경 [마이너리그] 창비 2001

 

 

출장 중에 빌려 읽음.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왜 여성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음. 여성 작가이니 여성의 이야기만 써야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굳이 남성들을 화자로 삼아 여성들을 스테레오타입화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여기 그려진대로 여학생들이 순결하지도, 그렇다고 모두 새침대기에 내숭쟁이가 아니었음은 작가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말이다.

만일 이문구나 성석제의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공감이 컸을텐데...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도 읽는 내내 맘 한구석이 찜찜한은 어쩔 수 없었다.

복도에서는 신발주머니가 날아다니고, 교실바닥에서는 황당무계한 씨름판이 벌어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대걸레 타작소리가 울려퍼지던 여자중고등학교의 '생생한' 현실은 어디 있냐구... 

그 시절, 비루한 일상 속에서 '만수산 4인방'들처럼 (어이없고) 원대한 바깥을 꿈꾸던 마이너리그의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

 

 

0. 김병권 등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시대의 창 2007

 

 

보건의료 진보포럼 강의 준비하느라 읽게 됨.

원래는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뜨다]를 neoscrum 에게 빌렸는데 그가 알려주길 문장의 80%가 '차베스'로 시작된다는 거다. 그래서 출장 전에 이 책을 다시 급 주문하여 들고 갔음. 책의 내용은 대부분 venezuelanalysis.com 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대만큼 심층적인 분석은 담겨 있지 않았다. 새사연의 두 번째 신서인데 약간 실망.... 볼리바리안 혁명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까지 다시 한번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한국사회에서의 함의도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잘못된 용어나 기술도 발견... 이를테면 barrio adentro 를 단순한 무상의료 프로그램으로 바라보거나, 의료보험 개혁 쯤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었음...

그래도 볼리바리안 혁명의 연대기나 배경지식을 짧은 시간에 익히기에는 큰 나무람이 없는 개론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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