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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최근 읽은 책 두 권...
요즘 정말 책 안 읽는다.. ㅡ.ㅡ
핑게를 대자면,
번역 작업을 하는게 있는데, 페이지가 뚫어져라 들여다보니라 다른 책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ㅜ.ㅜ (백만가지 핑게...)
0. 최장집 지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 (후마니타스 2001)
지지부진 오래도 읽었다. ㅡ.ㅡ
이 분야에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이 책만큼 우리 사회에 직면한 문제, 말하자면 현재 우리사회의 고유한 의제에 대해 이만큼 일목요연하게 답을 하려고,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저작은 별로 없지 않았나 싶다. 소위 전문가의 이름으로 개인적 인상비평과 소회(?)를 정리한 책들이야 적지 않지만...
현실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이론적으로 차근차근 정리해가려는 자세는 꼭 배워야 되는데... (근데, 나는 이게 잘 안 된다 ㅜ.ㅜ)
내용을 돌아보자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런저런 궁금증과 스스로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많이 가지런해진 느낌...
예전에 본 why we fight 라는 다큐에 보면, 찰머스 존스가 미국사회가 가진 위기의 본질은 시장에 의한 민주주의 지배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특성으로 선출되지 않은 (대표성 없는) 관료와 전문가 (다양한 싱크탱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의사결정들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선출된 정치인이라고 해도, 본질상 다름이 없는 양당체제의 주고받기 정권 장악.... 제국주의적 군사행동을 벌인 거는 민주/공화 집권 사이에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이 책을 빌자면, 현재의 한국 상황도 (거칠지만) 대략 비슷하게 진단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잘못 끼워진 첫단추,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ㅡ.ㅡ
헐크처럼 우두둑 ~~~???
0. 더글라스 다우드 외 지음, 류동민 옮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 카를 마르크스에서 아마르티아 센까지 (필맥 2007)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이 진짜 웃긴다. 제본이 잘못되서 겉표지가 본편보다 짧아...
나 원 이런 황당한.... ㅡ.ㅡ
이 책은 강유원 블로그에 누가 소개한 걸 보고 알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
* 이 책은 주류 경제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소위 이단적 비주류 경제학에 대해, 경제학자 혹은 학파를 중심으로 (내용보다는) 함의를 소개하고 있는데...
역자 후기에 보니까 놀랍게도, 마르크스나 그람시는 그렇다 치고, 심지어 제도주의나 포스트 케인지언, 아마티야 센의 후생경제학 등도 웬만한 대학 정규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네??? 진짜???
* 책의 본 내용에 관해서라면, 전체 큰 지도를 보여주고 주소를 갈쳐줌으로써 맥락을 이해하도록 한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다른 책(이를테면 요즘 번역하는 책)에서 베블런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주요한 문제의식이 당시 어떤 의미를 가졌던 건지, 그리고, 도대체 진실이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당과 관련한 그람시의 오락가락 견해 변천사.... 물론 이들의 저작을 연대기적으로 꼼꼼하게 읽는 사람이라면야 이게 뭐 장점인가 하겠지만 나같이 주워듣기만 하고 정작 내용을 잘 모르는 이들한테는 주소찾아주기가 어찌나 소중한지....
그리고 이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기존 주류 학문에 대한 끈질기게(!) 비판적 태도, 지적 성실함, 그리고 이론적/담론 투쟁의 방식들...
* 여기 소개된 다양한 대가들의 견해를 몇 마디로 정리하는 게 어불성설이겠지만, 나름 요약하자면, 경제학에서 '역사성, 현실정합성의 복원',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체의 발견 혹은 인정'이 주제가 아닐까 싶다. (맞아???) 그리고, 이건 비단 경제학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나름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는 보건학 분야 또한, 특히 연구방법론상의 정교함을 강조하는 역학 분야에서 이런 문제는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몇몇 구절들을 인용해보자...
17쪽- "경제 이론은 이러한 속임수에 '다른 조건들이 일정하다면 (ceteris paribus) '라는 그럴듯한 말로 권위를 부여한다. 여기서 '다른 조건들'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필요하게 되면 그것들을 다시 불러들여 분석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혹시 그 때가 실제로 온다 하더라도 그 때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아마도 '다른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잊어버렸을 것이다"
33쪽 - "내가 너에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어떤 것을 네가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 간청이나 굴욕으로 생각된다면, '그래서 그것이 수치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는 이 사회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르크스는 묻는다. 너의 필요가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활동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보다 '내게 권력의 원천이 되는 것'은 왜일까? '(너의 필요가) 나의 생산을 장악할 힘을 너에게 주는 수단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너를 장악할 힘을 내게 주는 수단이 된다'
81쪽 - "기존의 제도들은 '상식'과 '현상', 즉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이 받아들여지는가를 묘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베블런의 현상 분석은 양식(good sense)을 제시했지만, 그것에 관한 상식(common sense)과는 관계가 없다"
131쪽 - "물론 신고전파 경제학의 주된 매력은 높은 추상 수준에 있는데, 이것은 퍼즐 풀기를 즐기는 이들로 하여금 정교한, 또는 그리 정교하지도 않은 가설적 문제상황을 설정한 다음에 각 문제의 주어진 전제 하에서 필연적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해준다. 특저한 정책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지적 추구는 상대적으로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절망적이리만치 비생산적이다. 학계 내에서 경력관리를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학술논문을 발표한다는 의미 외에는 이러한 값비싼 연습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이가 거의 없다. 물론 언젠가 존 케네디 갈브레이스가 말했듯이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데는 지극히 유용하다'
* 한편, 제도주의나 포스트케인지언에 관한 부분은 본 내용 그 자체보다,
연구자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담론을 조직해나갔는지 보여준 부분이 훨씬 흥미진진했다. 제도주의 성향의 연구자들이) 자유방임 이론에 분개하여 1885년에 설립된 미국경제학회가 역설적이게도 가치중립성에 목숨 건 전문학회로 이어진 이야기나, 급진적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파란만장한 이력들... 포스트케인지언들이 12년에 걸쳐 매년 3회씩 세미나와 학술대회들 개최하고 10년간 컨퍼런스를 지속하면서 연구자 공동체를 성장시킨 사실 등은 그저 놀라움...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지적 성실함, 집요함/끈기...
* 공부하는 이들의 자세에 대해서 베블런과 그람시는 엄청 뽀대나는 말을 남겼다.
59쪽 - "'지적 평화를 교란시키는 자'라는 표현은 베블린이 칭찬의 의미로 자주 사용하던 것이다. 그는 '지적 평화를 교란시키는 것'이 지식인 본래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88쪽 - "나의 모든 지적 형셩은 논쟁적 성격을 갖는 것이며, 따라서 내가 사심없이 생각하거나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람시)
.
* 아마티야 센에 관한 챕터는 무진장 관심을 갖고 시작했으나, 당최 뭔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ㅡ.ㅡ
다만, 그의 이론적 작업이 마치 Foundation 에서 Harry Seldon 이 했던 psychohistory 처럼 보였다는 짧은 감상.... (수준 미달 독자 때문에 센이 고생한다 ㅡ.ㅡ) 하긴, 예전에 미국 있을 때, 친구 하나가 센의 경제학 개론 강의를 청강했는데 기대(?)와 달리 칠판 가득 수식만 잔뜩 써서 중도 포기한 일도 있었더랬다. ..
그나저나, 나는 센이 워낙 유명하고 심지어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완전 주류임에 의심치 않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다소 충격이었다.
254쪽- "센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음 날 로버트 폴락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기명 칼럼을 통해 스웨덴 한림원이 '얼빠진 견해'를 가진 '기성 좌파'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불평했다" (이랬던 것이다 ㅜ.ㅜ)
우쨌든, "'경제발전의 목표는 사람들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센의 주장이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목표는 경제적 자유의 극대화'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말 만큼이나 모호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또한 센에 의해 가져온 변화 (GDP 만으로 발전을 평가하지 않고 인간개발을 양적으로 측정하고자 한다거나, 젠더 이슈, 불평등의 문제를 부각시킨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현재 건강 불평등과 관련한 주요한 이론적 배경은 롤즈의 정의론에 기반한 센의 '잠재력' 개념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이거 잡고 고생하기보다는 나중에 전공한 사람 찾아서 물어보는게 빠르겠다. (뭐든지 날로 먹으려는... )
* 참....그리고 또 놀라운 건, 여기 소개된 많은 저작들이 국내에 번역조차 있지 않다는 점. 뭐 강의 개설도 안 된다는데 어쩜 당연한거겠지. 하긴, 밀턴 프리드먼의 책도 최근에야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
좌나 우나 학문적으로 게으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최근 한 달 동안 이런저런 영화들을 적잖이 보았더랬다.
기록이나 해 두자.
0.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
정이, 담이를 데리고 보았는데 초딩인 담이는 그닥 재밌어하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1, 2 편에 등장했던 신기한 동물들이나 아기자기한 마법들은 등장하지 않았고, 질풍노도기에 들어선 청소년 마법사(?)들의 갈등과 고민은 나름 심오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해리를 맡은 래드클리프의 연기력은 도대체 왜 이리 안 느는지 모르겠다. 론과 헤르미온느 역의 두 아역은 쑥쑥 성장하는 거 같은데 말이지....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장난꾸러기 위즐리 형제의 자퇴! 오, 자유로운 영혼들 ㅎㅎ
헌즈 다이어리에도 지적된 바 있지만, 마법사 세계의 모든 일들은 학사일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거 같다. 악당의 암약도, 엄청난 전투도 모두 학생들의 학기 중에만 일어난다. 월매나 좋을까?
0. 트랜스포머 (마이클 베이 감독)
일곱 살 남자 아이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재밌을 영화!
듣자 하니 둘째조카 우재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완전 발광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더란다 ㅎㅎㅎ
뭐 비주얼이야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데, 8세 이상의 눈으로 본다면 상당히 거슬리는 엉성한 플롯과 대사들이 나에게 아주 큰 웃음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디셉티콘 리더가 냉동 상태에서 해동되자마자 내뱉은 첫 마디 '아임 메가트론'.... 저거 뭐냐 싶더라니까 ㅎㅎㅎㅎㅎ
비주얼에 신경 쓰면 반드시 플롯은 엉성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다.
0. 디센트 (닐 마샬 감독)
호러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유혈낭자 슬래쉬 류는 별로 안 좋아한다. (고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스크림 1,2,3편을 다 보았구나 헉.)
이 영화는, 완전 슬래쉬 무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일듯 안 보일 듯 철저한 심리호러는 아니다. 어쨌든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여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굳이 거창하게 해석하자면 내면의 트라우마, 생존의 본능과 이기주의, 감추어진 잔혹성 등이 차례로 폭발하면서 세상에 정말 두려운 건 뭘까 생각해보는 영화???
동굴 속에는 사람 잡아먹는 골룸들이 떼로 서식하고, 이들의 공격에 맞서 평범한 중산층 아줌마들은 에일리언 시리즈의 리플리를 능가하는 특전사요원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욕구와 불신, 배신감 속에서 점점 사악해진다. 나중에는 골룸 괴물보다 이 아줌마들이 더 무서워서 후덜덜.....
하긴, 첫 장면...
탐사하기로 한 동굴 입구만 보고도 입이 쩍 벌어졌다. ㅜ.ㅜ
0. 플루토에서 아침을 (닐 조던 감독)
슬프면서도 유쾌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영화를 보던 날은 오로지 좋은 감정만이 가득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것은 딱 질색이라는 키튼의 말과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은, 싫어도 심각할 수밖에 없었던 또다른 이들의 삶에 가해지는 또다른 방식의 폭력이 아닐까 싶었던 거다.
키튼 역을 맡은 배우는 [보리밭은 흔드는 바람]에서 의대지망생 남동생 역을 맡았던 킬이언 머피.... 찾아보니 플루토가 오히려 먼저 찍은 작품이구나...우째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겨...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이성애자 여성의 진정한 친구는 게이 남성 뿐이라는 설정은 나름 식상했다. 파니핑크와 오르페오 이후 이러한 관계들이 은근 영화 속에서 반복 변주되는 거 같다. 현실도 그래??? 게이 남성들은 죄다 보살이라도 된단 말이냐?
왜 굳이 플루토를 '명왕성'이라고 번역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니, 플루토하면 만화주인공 강아지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랬더군. 말하자면, 명왕성으로 상징되는 우주의 끝에서 아침을...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나름 심각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에서 엉뚱하게도 히치하이커 시리즈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가 떠올랐음. 나 미쳤어.
0.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관객을 보고, 혹시 영화에 감동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면 제작진들 모두 치료 받아야 함. 아니, 치료 정도가 아니라 관객들의 아픈 기억과 역사의식을 '악용'하고 '착취'했다는 점에서 징벌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내가 저따위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억울했다.
영화는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의 종합선물셋트. 여기에 플롯의 엉성함까지 더해졌으니... 연기 잘하는 배우 데려다가 바보 만들고... (김상경 불쌍해!)
정말, 정말 너무들 하더라...... ㅜ.ㅜ
진실이 궁금하다.
원래 이렇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역량 부족 때문에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던 걸까?
- 2001년, Richard Kelly 감독 (Director's Cut) -
틀림없이 내가 좋아할 거라며 Matthew가 추천해주었던 영화..
영국에서는 좀 흥행이 되었다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다는데,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 ㅡ.ㅡ
오랜만에 이토록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Sci-Fi 를 만나다니...
80년대 후반 미국사회의 숨막히는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 관계와 소통, 희생과 구원,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과 기로에 대한 메타포의 도가니라고나 할까....
(앗,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본 영화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구원'을 다루고 있구나. 거미인간, 밀양, 그리고 도니다코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일이로세?)
영화를 보면서 웬지 David Lynch 의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들 생각하는지, 그와 비교를 많이 하고 있었다. Lynch 영화 중 가장 최근에 본 게 (그래도 아마 2년전인 듯한데) Mulholland Drive 인데, 전개 방식 (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의 전개... 물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시간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 기묘하고 서늘한, 아니, 건조한 그 분위기....
당시, 이 영화를 보고 Naomi Watts에게 깜짝 놀랐었는데, 도니 다코에서는 파릇파릇한 Jake Gyllenhaal 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 저 때만 해도 느끼하지 않았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 영화는 두고두고 다시 볼만한 작품...
거대 토끼 프랭크의 기괴한 모습.. 완전 내 취향이얏!
예전에 웹 상에 연재 중일 때, 기다림에 지쳐(ㅡ.ㅡ) 보기를 포기했었다.
아예 시작을 안 하면 모를까, 기다리는 거 질색....
생각해보니, 만화방 다니던 시절에도 완간되지 않은 거는 안 보고 꾹 참았다 나중에 원 샷. '몬스터' 때 마음 고생 심했었고, '20세기 소년들'은 시작한 걸 엄청 후회했더랬다.
어쨌든....
포기하고 있자니, 예상대로 책이 나오는구나...
냉큼 세 권을 이어서 읽어버렸다.
*****
내가 '광주'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거 같은데, 성당 마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고 김승훈 신부님이 우리 성당 주임신부였음) 사진전을 했었고, 사진집(?) 같은 걸 신자들에게 빌려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현실감이 없어서, 그저 어디 먼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 전학 온 친구 한 명이 청소 시간에 광주 이야기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임산부 배를 찔렀다는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신문에 한 글자도 안 날 수가 있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가만히 있었겠냐구?"라며 내가 따졌던 거다 ㅡ.ㅡ
나는 초딩 고학년 시절부터 신문 열심히 읽던 나름 유소년 인텔리... 이멜다의 구두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었다.
그랬다..........
광주에는 대학 1학년 때 첨 가봤다.
친구들이랑 방학 때 광주 사는 선배형한테 놀러갔는데,
전남대에 가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오월대'는 진짜 교내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고,
잔뜩 긴장하고 찾은 금남로는 지하철 공사 때문에 온통 파헤쳐저 그냥 정신만 없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광주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공사는 참 오래도 하더라. 사람들 말로는, 데모하는 거 막으려고 일부러 공사를 오래 한다는.. ㅡ.ㅡ
한 번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망월동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묘역까지 들어가는 버스 편이 없어서, 한참을 걸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았던건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가겟집 할아버지가 고개 넘으면 바로 있다고 해서.... ㅜ.ㅜ)
그 때, 묘역 입구에는 전두환이 세웠다는 기념비가 누워있었고, 사람들은 자근자근 밟아주고 지나갔다. 우리도 일부러 오며가며 계속 밟았다.
생각보다, 아주아주 초라했다.....
새단장을 한 이후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다녀온 친구 말로는, 눈 버린다고 했다. ㅜ.ㅜ
*****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일들도, 의외로 쉽게 잊혀진다.
친구한테 나름 큰 돈을 빌려주면서, 까먹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액수 따윈 적어놓지 않았었다. 적어놓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랬던 것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까먹는다.... ㅡ.ㅡ
하물며...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우리 동네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인 다음에야...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요새 대학생들 한심하다고, 어떻게 광주도 모르냐고 한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게 왜 한심한가? 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알아서 혼자 인터넷 검색해서, 혼자 책 읽어서 알게 되었나?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모른다면, 그건 우리 잘못이다.
그래서... 강풀의 투박한 (?) 시도는 소중하다.
*****
누군가의 악행을 보면, '저 사람 진짜 나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거야, 저이라고 왜 갈등이 없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임철우의 '붉은 방'은 어린 시절, 꽤나 충격이었다. 고문 형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족애가 있고, 일상의 피곤함이 있었다니... 그들도 인간이었어!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달라져갔다.
'갈등? 타인의 고통 따위가 저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있을 리가 없어'
강풀의 '26년'이 슬픈 건,
만화 속 주인공들이 상처를 입어서, 혹은 거사에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 바깥에서 가해의 최고 책임자들이 여전히 자알~ 살고 있다는 것.
이런 책 쯤이야!!!
세상에는 '진짜 나쁜 놈'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단죄가 안 되니까, 만화책 속에서, 광주의 아이들이 직접 총들고 칼들고, 사제폭탄 들고 나서는 거다.... ㅡ.ㅡ
*****
문득, 광주에 가서 구 묘역을 다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차편이 없어서 한 시간 넘게 허덕이며 땡볕 도로를 걷던 학생이 자가용 끌고 가게 생겼으니,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고 해야겠지?
살기 좋아진 만큼, 진실도 잊혀지고 있다. ㅜ.ㅜ
포스팅하는데 시간 엄청 걸리네요. ㅡ.ㅡ
집에 책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 학교에 있거나 서울 부모님 댁에 있고...
그리고 다른 집들에... ㅡ.ㅡ
책 빌려가서 안 돌려주는 인간들이 하도 많은지라...
(이 포스팅 보면 자수하시오)
책장 위의 그림은 왼쪽부터 멕시코 작가, 쿠바 작가 (제목은 "생각하는 고양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에곤 실레 작품입니다.
*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감기 때문에, 그리고 밀린 일 때문에 그닥 평안치는 않습니다. ㅡ.ㅡ
그러나 이런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입니다.
첫 질문에 너무 까칠하게 답한 거 같네요... 사실은 평안해요...
*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좋아한다고 믿고 있어요.
*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취미가 독서인 사람의 나름 비애가 있죠.
예전에 공지영의 소설에 나왔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인간에 대한 예의였던가?),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는 이들, 취미란에 독서밖에 쓸 게 없는 사람들이 있죠.
뭐 그림을 그릴 줄 아나, 악기를 하나 다룰 줄 아나, 가장 돈 안들고 효용이 큰 (말하자면 비용-편익이 가장 큰) 취미가 아마 독서 아닐까 싶네요.
뭐 그렇다고 책을 좋아하게 된 걸 후회한다거나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예요.
*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굉장히 불규칙해요.
한 권 끝나면 한 권, 이렇게 차근차근 읽는게 아니라, 화장실용, 출퇴근용, 잠자리용, 업무/학습용을 따로 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답니다.
물론 필이 꽂혔을 때 (주로 시리즈물)는 다른 거 작파하고 몰아서 읽기도 하죠. (심지어 업무 중에도 틈틈히...)
뭐 따져보면 적을 때는 두 세권에서 많을 때는 열 권... 평균 네 다섯권 정도 되는 거 같네요. 한번 통계를 내봐야겠군요
*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주로 읽는" 책은 없고 "절대 안 읽는" 책은 있습니다. 경영처세술, 말랑말랑 에세이, 그림책 아니면서도 글씨보다 여백과 그림이 많거나 폰트 사이즈 12 이상인 책들 말이죠.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읽는 편인데, 뭐 광범위하게 인문/사회/자연 교양(?) 서적들이라 총칭할 수 있을 거 같고, 픽션 종류는 주로 영문 SF 들을 읽는 편이예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소설, 특히 한국현대소설들을 무진장 좋아했는데... 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시들해졌어요. 성석제 소설만이 제 선호목록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한 마디?
너무 하심!
음... "무한우주"라고 정의해볼까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그 경계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없는 팽창... (여긴 이견이 존재하죠 ㅎㅎ)
*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또 한 마디...
이 문답놀이를 첨 만드신 분의 취향 참 독특하셔...
이번에는 그럼 '우주여행' 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ㅎㅎㅎ
진심으로, 저에게는 독서가 미지의 세계를 열어주고 보여주는 (우주)여행이나 다름 없습니다.
*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 요새 대학 논술 문제들 보니까 학생들 독서량이 엄청난 것 같던데 (엄청나야 쓸 수 있을 거 같던데), 아닌가봐요?
독서율 낮은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단기간 내에 직접적인 편익을 발생시키지 않고, 그에 비해 여흥의 기능을 갖는 경쟁상품이 눈부시게 증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각종 처세술이나 학습 관련 책들 판매량이 엄청난데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잘 안 팔리는 현상은 전자에, 각종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부흥은 후자에 해당하겠지요.
지하철에서도 책보다는 휴대전화로 게임하거나 DMB 보거나, 그도 아니면 차량 내부에 달린 TV 광고 보는 사람들 만나기가 더 쉽죠.
*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아, 이 분 취향 참...어떻게 '하나만' 추천합니까!!!
음.... 그래도 꼭 하나면 추천해야 한다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추천해야겠네요.
*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론 제가 감동받았거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이야기하라면 주저리주저리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추천'을 하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죠. 예전에 이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저자 서문만을 읽고도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니,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등 여러 종의 역사책을 읽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충격과 놀라움은 있었지만, 이 책만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얻는 감동은 상당히 특별합니다. 고구려 삼족오 문양을 보고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분들도 있다지만, 많~이 다릅니다...
인간의 위대함, 저항의 아름다움,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자기성찰...
아마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그저 멀리 떨어진 지구반대편 나라의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색다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줄 거예요.
영어 장문독해가 가능하신 분들이라면, 영어 서적을 읽는 것도 강추하고 싶어요.
하워드 진 할배의 쉬우면서도 담백한 글쓰기는 정말 우리 (저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책이 아니면 뭐죠?
제가 책을 '우주'라고 정의했다는 점에서 만화책은 그 중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은하계나 성단 쯤이 아닐까 싶네요.
어린 시절 만화책이 저에게 주었던 영감이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해요.
아기공룡둘리, 오달자의 봄을 비롯하야, 제 7구단, 오 한강, 고독한 기타맨, 대머리 감독님, 비트, 슈퍼보드, 추혼 시리즈 등등등... 제 아이디인 "홍실이"도 김수정씨의 연재만화 주인공 중 한 명 입니다.
아마 가장 최근에 읽은 만화책은 John Sacco 의 [Palestine] 인 거 같은데... 그 감동도 대단했죠....
*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음... 문학이라면 픽션???
그렇다면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해야겠네요. 아까 언급한 대로 한번에 세네가지 책을 함께 읽는데 출퇴근길은 소설 종류를 많이 읽습니다.
'시'는 잘 안 읽는 편이예요. 정서가 메말라서인지... ㅡ.ㅡ
'수필'은 심지어 정서적 거부감까지 있습니다. 아마도 정규교과에서 배웠던 수필들이 영 그래서... 물론 좋은 것들도 있었지만, 피천득 류의 수필에 완전 학을 떼었다고나 해야할까요.
*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비문학'이라는 표현은 마치 '일회용' 혹은 '철저히 유흥용' 문학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폄훼의 의미가 담겨있는 거 같네요.
근데, 문학이라는게 근본적으로 정서적 감흥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야, 굳이 이런 구분이 필요한가 모르겠네요. 오히려 각종 처세술 ("@@살에 해야 할 모든 것" 류) 책이 본래 의미로서의 '소비 문학'에 들어맞지 않을까요?
'판타지'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들을 폄훼하는 건 부당해요.
*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번역서를 두 권 낸 적이 있고, 여러 명이 쓴 책의 공동저자로 한 챕터를 쓴 적이 있어요.
*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며칠간 뿌듯했습니다. ㅎㅎ
(근데, 한편으로는 불안함과 부끄러움도 같이 자라더군요. 혹시 틀린 부분은 없을까, 왜 이렇게밖에 못 했을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 자기 사진 들여다보기 민망한 감정...ㅡ.ㅡ)
*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예전에는 정운영,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꼭 사서 읽고, 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씨의 책도 꼬박꼬박 샀더랬습니다. (에셔님과 많이 겹치는군요!) 리영희 교수님의 책도 뒤늦게 재미를 붙였구요... 미국에 2년 동안 살면서, 이런 분들의 책이랑 소원해졌네요...
그런데, 그러고보니 이 분들을 '작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네요.
의미를 축소하여, 픽션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칭한다면, 불멸의 소설을 쓴 조세희 씨와 껄렁함이 특기인 성석제, 그리고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저자인 더글라스 아담스를 좋아합니다. SF 에 본격적인 맛을 알게 해준 아시모프에게는 '애증'이 있죠. 작품이 영 고르지가 못해서...아, 기호학자로서는 도통 모르겠고 소설가로서의 움베르토 에코도 좋아요.
*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작가에게 무슨 부탁이... 그저 좋은 책 앞으로 많이 써달라는...
특히, 조세희 작가님... 많은 이들이 목 빼고 있습니다.
*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어허... 참.. 어렵다.
요즘 불질 뜸한 후배 냐후,
방문이벤트로 성석제 책을 보내주신 적이 있는 산오리님
진지한 블로거 사회와 의료님
나를 '모시고' 다닌다고 스스로 믿는 야옹이,
이거 아니라도 책 이야기 자주 쓰시는 새벽길님...
시작은 몇 달 전에 해놓고 읽다 말다 지지부진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진도가 느렸던 건, 금융/통화/무역 부분이 지겨워서... (지겹다기보다 당최 뭔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가서리... ㅡ.ㅡ)
바로 이 판본, 40주년 기념판 (2002년)을 읽었다. 아마도 50주년 기념판에는 세상을 떠난 그의 업적을 돌아보고 추모하는 거창한 논문이 하나가 덧붙여질 것이 틀림없다.
몇 가지 감상(?)을 정리해보자.
* 진정한 이상주의자, 그 이름 리버럴
사실 미국사회에서 "리버럴"이라 하면, 정치적으로 민주당 성향의, 다소 진보적인(???) 개인주의자 쯤으로 해석된다. 프리드먼은 정색을 하고, 그 리버럴이 이 리버럴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사심 없이 (사심은 또 뭐냐?) 이 책을 읽노라면, 진정한 리버럴들이 얼마나 인간적이면서 합리적인지 깜짝 놀라게 된다.
이를테면, 도심 슬럼을 극복하기 위한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역설적으로 빈곤층들을 게토화시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랄한 논평,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우선정책 (affirmative action)이 오히려 차별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안녕이라는 가치의 반복적 강조를 듣다보면 그가 자본주의교의 냉혈한 광신도는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이룩할 수 있는 인간의 안녕이다. 안녕과 효용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시장'의 원활한 작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데, 바로 여기!
그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할 인간의 고통은 과연 어데 있는 거냐? 예컨데,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인위적인 정부 개입을 배제한 채 순수한 시장만으로 다시금 균형점을 찾아가도록 방치해둔다면 (실제 '정상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은 어쩌란 말이냐??? 실제로 칠레에서 프리드먼이 했던 정책 자문의 결과는 가혹한 것이었으니, 경제지표는 정상으로 돌아왔을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죽어나간 이들이 얼마며,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 이들은 또 얼마였던가?
또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즉 '자유로운 경쟁이 제대로 작동한다면'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시장은 시장 그 자체의 힘보다 정치권력을 통해서 확대되어 왔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완전 경쟁의 노동시장에서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거래를 맺는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닌가? 이는 이미 농노가 "해방"되어 자유롭게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었던 그 순수한 자본주의 시기에도 불가능했던 일들이며, 앞으로도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좌파적 혹은 사회주의적 지향이 "이상주의적"이라고, 혹은 비현실적이라고 비난/비판들을 하지만, 내 생각에, 진정한 이상주의자는 바로 그들,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위험한 것은 악한 본성 혹은 악의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총 효용과 인간 복리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선한 의지(선하기는 한가?)와 더불어 존재하는 바로 이 맥락 무시, 역사성 무시의 이상주의가 아닐까 싶다.
* 한국의 리버럴
프리드먼의 자신감과 신념은 섬찟함이 느껴질만큼 대단했다. 그는 끊임없이 본인이 리버럴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면서, 가장 어렵고 논쟁이 될만한 주제들을 통해 시장주의를 강조한다. 소위 liberal-by-the-belief 라기보다 liberal-by-the-conviction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특정직업의 자격증 제도가 어떻게 개인들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을 차단하면서 비효율성과 해악을 가져오는지 논증하면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 할 수 있는 '의사 면허증'을 사례로 들고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의 자격증이 실제 기술적 우위보다는 담합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의료서비스에서 최소한의 기술표준과 질을 보장하는 것은 반드시 '면허'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의사들 보면 펄쩍 뛸 만한 대담한 주장이자,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는 단호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자국내 보호 정책, 이를테면 농업 보조금이나 국내 통화 정책이 어떻게 국제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며 다른 나라 민중들의 효용을 감소시키는지 지적하는 부분을 보면 'You Win!'이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자칭 타칭 한국의 리버럴들은 과연 어떠한가?
최소한 '진정한' 리버럴이라면 한미 FTA 에 반대해야 한다. WTO체제 안에서 두 국가들 사이의 독점적인 자유무역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또다른 '규제' 아닌가 말이다.
복거일 류의 영어공용화론 또한 '국가경쟁력' 운운 하며 교육과정에 개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근본사상에 멀어져있기는 마찬가지다. 진정 자유주의자라면 '국가경쟁력'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시장이야말로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해서도 안 될) 진정한 이상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집합체로서의 국가경쟁력 운운하는게 과연 적절한 태도인지 의심스럽다.
사실, 국내 (소위) 자유주의자들의 책은 읽은게 별로 없다. 복거일의 옛 소설이나 황당 칼럼, 고종석의 칼럼 정도가 고작인데, 고종석과 복거일을 같은 자유주의자로 취급하는 건 고종석에게 지나친 결례가 될 거 같다 (나는 고종석의 글, 특히 한겨레 기자 시절 글들을 매우 좋아했으며,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은 다른 의미에서 매우 존중한다) 공병호의 글을 한 번 읽어봄직 하겠으나 간접적으로 접하는 글들을 보면, 다른 읽을 책들도 많은데 굳이 꼭 그의 책을 읽어야 하나 회의가 든다. (판매 부수 올려주기도 싫고..)
일단, 내용의 동의 여부를 떠나, 프리드먼이 보여준 내적 일관성과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 과단성만큼은 존경할만하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꼭 배워야 할 덕목이다. (좌파도 배우면 좋지 뭐)
* 역사 속의 리버럴....
역사 속에서 리버럴, 초기 부르조아의 가치관이 진보적이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강유원의 '공산당 선언' 강해에 보면 '부르주아, 멋지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그들만큼 세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 이들이 일찍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리버럴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념적 지향인가 하는 것은, 이론의 본원적 특성에 있다기보다 현실과의 정합성에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자유를 선언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권 (political & civil right) 중심의 인권 개념이 '사회권' (cultural, economic, and social right) 으로 옮겨가게 된 것 아니겠나? 한편, 경제학자 아마티야 센은 평등의 문제를 '무엇의 평등인가' 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자유주의 또한 이러한 방식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자유주의자들이 평등보다는 자유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결국 '경제적 기회의 평등'이라는, 또다른 장에서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좀더 큰 고민이 자라나게 되었으니....
도대체, 보건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공공성이 무엇인지, 국가 통제의 방안들을 어떻게, 어디까지 정당화해야 할지 미궁 속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프리드먼은, 현재의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책이 쓰인 60년대) 외부로부터의 위협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산주의 ㅡ.ㅡ) 뿐 아니라, 내부의 균열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선의에서 비롯된 정부 개입/규제 도입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공중보건이 처한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사회권, 특히 건강권의 '실질적' 보장이라는 선의에서 비롯된 공공의 개입을 어디까지 합리화시킬 수 있으며, 그 공공의 개입이라는 것이 곧바로 '국가의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사실은, 내 머리 속에서 문제가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아 뭐라 쓰기도 힘들다 ㅡ.ㅡ
아, 오랜만에 긴 포스팅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블로그에 일필휘지(?)로 고민들을 일목요연하게 쓰기란 역시 미션 임파서블이로구나.....
아 참..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도대체, 논쟁의 근원이 되는 오리지널을 읽지 않은 채 남들이 인용하고 전하는 이야기만을 통해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말이다... 우리편(?)의 글, 우리 업계의 이야기만 읽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또 있겠나....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편, 우리 업계 글들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ㅡ.ㅡ)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진정한 리버럴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또다른 고민의 거리를 안겨 주었다는 점에서 주저없이 '좋은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물론, 중간에 속터지는 부분 다수 있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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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나무와 숲' 님이 추천해준 라이트 밀즈의 "sociological imagination'이다. 첨에 이 책 소개해주면서 라이트 밀즈 모르냐고 물어볼 때 금시초문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알고 보니 '들어라 양키들아', '파워 엘리트' 쓴 그 라이트 밀즈였더라 ㅎㅎㅎ 아이고, 한심해라...
실명 언급 박력 논쟁... 멋지다. ㅎㅎㅎ
역시 기인....
앗, 이것도 보니까 40주년 기념판....이야.. 40년이 지나고도 꾸준히 인쇄되고 읽히는 책들을 쓰는 사람들... 부럽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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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있는 책...
미국에 있는 동안 출판되었는데, 사회과학서적으로는 드물게도 5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고픈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는 한가보다....
마감이 임박하면 또 뭔가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이 영화이야기들을 해야 하는 걸까? ㅡ.ㅡ
* The Animatrix (2003) - Peter Chung 등등등
1. Final Flight of the Osiris
2. The Second Renaissance Part I
3. A Detective Story
4. Kid's Story
5. Program
6. The Second Renaissance Part II
7. Matriculated
8. Beyond
9. World Record
2003년도 발표되었을 당시, 몇 편은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야 나머지 편들과 함께 이전 것들을 다시 DVD도 보게 되었는데... 크고 선명한 화면이 좋기는 하더만!!! 비주얼은 그야말로 극한에 이른 듯하고, 예정된 파국의 전사가 갖는 그 음울하고 필사적인 플롯들도 다들 훌륭해보였다.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이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매트릭스의 탄생을 이야기한 "세컨드 르네상스 1부"와 종이 만화의 비주얼을 그대로 가져온 음울 덩어리 "형사 이야기", 일본 애니를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 그리고 가장 슬픈 이야기 "Maticulated" 등등이 훨씬 좋았다.
써놓고 보니 대부분 좋았다는 이야기로구나. 테크닉도 훌륭하고, 그 테크닉을 공허하지 않도록 만들어줄 이야기마저 훌륭했으니 가슴에는 슬픔이 차올라도, 머리 속에는 뿌듯함이 솟아오르더라. 워쇼스키 형제 (듣자하니 성전환수술 덕분에 이제 남매라고 하던데?) 대단해!
* Avalon (2000, 오사이 마모루)
오사이 마모루의 전작 공각기동대의 경우, 매트릭스를 보고 난 후 보았기 때문에 비주얼과 상상력의 충격은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크지 않았었다. 그저, 아 저 장면이 매트릭스에서 오마주했던 장면이구나 정도... Avalon 은 원래 극장에서 보려다 놓치고 VTR 로 보았었는데, 당시 "이제 비주얼은 끝에 도달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물론 그 이후 애니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이 나오기는 했다만.. ㅡ.ㅡ
허나, 이 작품을 보고 잊지 못한 건 그 강력한 비주얼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마치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머리 속에서 음악들이 떠나지를 않는 거였다. DVD 를 느즈막히 다시 구입한 것도 OST 음반을 구할 길이 없는지라, 꿩대신 닭 심정으로...
사실 게임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멀리는 "트론"에서부터, "Nirvana", "Existence" 등등,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여러 편이다. 게임은 아니지만 가상현실이라는 점에서 "매트릭스"도 이 계보에 들 것이고... 글쎄.. 이 중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Nirvana 가 가장 애틋(?) 했다고 할까? 반복되는 가상현실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며 애절한 표정을 짓던 그 아자씨(디에고 아바딴뚜로)의 모습은 좀처럼 잊혀져지 않는다. Avalon 에서 주인공 Ash 와 친구 Murphy의 총격씬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애절하고, 그 배경에서 울려펴지는 아바론의 성가는 매혹 그 자체... special class A 를 깨뜨린 그들은 과연 Avalon 에 도달한 것일까????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5, 가스 제닝스)
젠장, 극장에서 봤으면 완전 열받았을 뻔했다. 아서 덴트와 포드가 만나는 첫 장면부터 시작하여 줄줄이 어색 그 자체였는데, 아마도 예전에 BBC 시리즈 일부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연기력이나 연출이 후져서인거 같기도 하다. 괴이하다. 괴이해. 이게 그리도 높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더란 말이냐... 영화는 책의 1,2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버무려놓았는데, 도대체가 책이나 TV 시리즈의 그 황당무계하고 까칠한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어 보는 내내 한숨이 절로... 기술과 자금력은 진보했으나, 상상력은 퇴보했도다!!!
그리고 사족인디.. 영어자막으로 봐서 번역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단 제목부터 맘에 안 든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은하계 가이드" 정도로 하면 되지 않았을까? 이게 론리플래닛의 패러디인 점을 감안한다면, '배낭족을 위한 유럽 가이드" 이런 식으로... 은하수(milky way)와 은하계(galaxy)는 영 다른 느낌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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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최장집 교수 책은 나름 감명깊게 봤지요. 재작년 다리가 아파서 한 두달 집에 있으면서 제일 재미있게 보고 정리를 했지요. 그 개정판에 딸린 후기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두번째 다우드의 책은 서점에서 보다가 때려치웠습니다. 신제도주의에 대해 좀 있나 하고 봤더니 별 내용이 없어서요. 그람시야 평전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티아 센은 책이 몇 권 번역되어 있어요.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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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읽은 거는 개정판이예요. 머리말에 보니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거 같더군요. 다우드 책에는 신제도주의를 '무비판적 제도주의'로, 구제도주의를 '비판적 제도주의'라 하면서 구제도주의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니 당근 기대에 못 미쳤겠죠 (^^)그나마 센이나 프리드먼 책 정도가 나름 번역이 되어 있는 거 같더라구요. 옛 버전들이 대개 품절 내지는 절판이기는 하지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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