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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 SF 두 권

읽은지는 꽤 지났는데,

어제 오늘 미친듯이 강의자료, 회의자료, 원고 하나 해치우고, 하얗게 타버린 뇌의 혈색 좀 되찾아볼까 하여 때지난 독후감..

 

하나는 더글라스 아담스의 [The long dark tea-time of the soul]  다른 하나는 올라프 스태플든의 [스타메이커]...  진지함과 재미의 강도에서 양 극단에 위치한 작품들이랄까........... ㅡ.ㅡ

 

#1. Douglas Adams [ The long dark tea-time of the soul]

 

 

한국어로 번역하면 [영혼의 길고 어두운 티타임] 이라고나 할까 ㅎㅎㅎ

제목만 달랑 한 줄 옮기고 나서 'ㅎㅎㅎ'라니 무슨 주책인가? 그냥 더글라스 아담스의 말투만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쩌라구....

 

Holistic Detenctive Agency (전인적 사설탐정 사무소) 를 운영하는 Dirk Gently 의 모험담 제 2탄 되시겠다. 전작 [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 는 최근 한국에서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아무래도 용어 holistic 은 성스럽다보다 전인적이라고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우주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 총체성에 기반한 과학 수사 (?)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겠으나, 신들의 제왕 오딘 (북유럽 신화에서 제우스에 해당하는 왕초)과 좀 덜 떨어진 그 아들 '번개의 신' 사이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부자 갈등, 그리고 이 초현실적 부자갈등의 배경이 되고 있는 현대 사회 불멸의 신들의 무용성 (ㅜ.ㅜ),  이 사건에 어쩌다보니 휩쓸리게 된 한 미국 아가씨와 젠틀리 탐정의 '죽도록 고생'이 메인 플롯을 이루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닐 게이먼의 American Gods 와 살짝 비슷하기도 하네?)

 

아담스의 전작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해괴한 언어구사와 얼토당토않은 상상력, 기기묘묘한 상황해석 능력에 유쾌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제일 골 때리는 장면 중 하나는 열쇄구멍을 사이에 두고 독수리와 젠틀리가 눈 마주치던 장면... ㅎㅎㅎㅎㅎㅎ 이건 정말 읽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흠.... 이제 보니 아담스가 냈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히치하이커 2부와 3부,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들이다.

근데 많이 안타깝다...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2. 올라프 스태픈든 [스타메이커 Star maker]  오멜라스 2009

 

 

국내외에서 평은 엄청나게 (!) 좋으나, 읽으면서 엄청 괴로웠다.

스케일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다룰만큼 시공간적으로 장대하고, 존재의 의미와 종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깊이 또한 대단한 것이었으나....

문제는 너무너무 재미가 없다는 거다 ㅜ.ㅜ

플롯도 없고 구체적인 사건도 없이 우주를 '개괄'하는 사변만 창궐하다보니 책 전체가 '서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이면 본격적 이야기가 전개되려나, 이번 장만 지나면 뭐가 시작되려나... 그렇게 기다리며 마지막 장까지 덮고나니 안습...... .ㅡ.ㅡ

 

도대체 '세계과학소설 사상 10대명작'이라는 타이틀은 누가 갖다 붙인겨???

책 말미에 SF 칼럼니스트가 친절한 해제를 통해 과학소설 (혹은 사변소설) 계에서 이 작품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상찬하였으나, 글쎄다....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

공부하려고 소설 읽는 것은 아니잖아....

그게 꼭 잔재미일 필요는 없지만 감성적 울림과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작품을 '의의' 생각하며 애써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문학적 식견이 짧아서일수도 있지만, 벌거벗은 임금님 옷맵시 찬양하듯 부화뇌동하고 싶지는 않음...

세상에 진지하고 차분하기로 말하면야 램의 [솔라리스]만한 것이 있을까마는 그 때에 느꼈던 묵직한 '이성적' 감동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듯!!! 

 

이 책이 우주의 처음과 끝,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지만,

앞서 언급한 더글라스 아담스의 책들은 그 모든 것을 더구나 '재미있게' 담아내고 있다.

 

뭐 취향의 문제이기는 한데, 두 책을 함께 놓고 보니 더글라스 아담스가 더욱 그리워(?)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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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을 다룬 영화들

매트릭스가 워낙 인기를 얻고 난 지라, 가상 현실과 현실을 넘나드는 것 쯤이야 SF 영화에서 이제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 듯 하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트론]을 다시 보면서, 이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상큼한 발상이자 특수효과였나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봐도 어찌나 포스트 모던한지....

 

 

Steven Lisberger  감독 (1982년)

 

8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전자오락기에 대한 로망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ㅎㅎ

오빠와 나의 보물 1호였던 스타워즈 게임기 생각도 났다... 정말 미친 듯히 하고 놀았는디...

'유저'에 대한 충성심으로 몸부림치는 프로그램들의 행태를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보안을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고, 권위적 감시체계를 유지하는 master control program 과 시스템 소유자에 대해 저항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기왕에 생각난 거, 가상현실 - 특히 게임과 현실을 넘나드는 영화들 중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몇 편을 정리해본다. David Cronenberg 감독의 1983년 작 Videodrome 도 그 기괴함과 창조성에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일단 '게임'과 직접 관련성은 낮으니까 제외....  Paul Verhoeven 감독의 1990년 작 Total Recall 도 역시 '게임'은 아니라는 점에서 제외... 이 영화도 참 명작인데.... 물론 필립 K 딕이라는 원작자의 힘이 큰 역할을 했지만서도....  역시 필립 K.딕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A Scanner Darkly (Richard Linklater 감독, 2006년 작)도 이런 류로 분류되지만 명백하게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움...

참, 1983년 작  War Games 도 관련은 있는데, 게임인 줄 알고 들어간 소프트웨어가 실제 전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가상현실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이렇게 저렇게 빼고 나서 남는 영화들이란.... 그리고 영화 제목은 다 게임 제목....

 

#1.  Gabriel Salvatore 감독 (1997년) [Nirvana]

 

 

 

 

[지중해]와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처럼 아름다운 (?) 영화를 만든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이 만들었다는게 좀 쌩뚱맞게 느껴지는 영화.... 평은 그닥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게임 속에서 매일 똑같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게 지겹다며 자기를 영원히 소멸시켜달라고 개발자에게 호소하는 게임속 주인공 (살바토레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후덕한 디에고 아자씨!)의 절절한 모습만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특수효과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았었다.

 

#2. David Cronenberg 감독 (1999년) [eXistenZ]

 

 

 

 

가상현실이라기보다, 신체에 직접 게임포트를 연결한 이들이 겪게 되는 기괴한 상황을 그린 영화. 기계와 생체의 하이브리드.... 데이빗 크로넨버그 특유의 스멀스멀... 불쾌한 느낌과 극단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 하지만 몰입도은 최고...  

이 감독의 영화들이 하도 기괴한지라, 그나마 초현실적 상황을 다뤘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받아들이기 쉬웠던 작품이라고나 할까.... ㅡ.ㅡ  83년의 비디오드롬에서 받았던 충격에 비하면 이 영화는 순한 양!

 

#3. 오사이 마모루 감독 (2000년) [Avalon]

 

 

 

 

이 영화도 그닥 평판이 좋지는 않았으나 (심지어 흥행에서도 실패), 화면의 전체적인 톤과 음악(!!!) 때문에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영화....  설령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미지의 클래스에 도달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의 열망이 절절하게 전달된다. 

아바론 (원래 아더왕의 검이 벼려지고, 또 그가 상처를 회복한다는 그 곳)에서 울려퍼지는 음악...

오사이 마모루는 여성 전사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나보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여성 전사는 중국무협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체...  반지의 제왕 같은 서구적 신화 서사에서 여성 전사가 극도로 드물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  이건 어찌 해석해야 하는거지???

 

뭐 어쨌든 영화의 특수효과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플롯과 아이디어라는 것을 20년도 더 된 영화 트론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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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주의가 아니라 무강권주의!

사놓은지는 꽤 된거 같은데 이제서야 읽는다.

어쨌든 책은 사놓으면 읽는다 ㅎㅎ

 

하승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그린비 2006

 

 

#1.

'아나키즘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한 고전'이라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해설서 혹은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과 비슷한 류(?)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강유원의 책이 공산당선언 본문의 해석에 주로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이 책은 아나키즘의 진화, 그리고 [상호부조론]의 맥락을 설명하는데 좀더 집중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영향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부조론]에 대한 주해서라기보다, 아나키즘 사상의 핵과 역사 일반을 설명하는 아나키즘 입문서라고 보는게 더 적당할 듯 싶다.

 

#2. 어원

아나키즘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 anarchos 는 '지도자가 없는', '선장이 없는 배의 선원들'을 뜻한다고 한다. 이건 무질서라기보다, 누구도 선장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생명력 넘치는 혼돈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테러리즘, 혹은 아시아권에서 통용되는 한자어 '무정부주의'는 상당한 악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극에서는 '무정부주의'가 갖는 부정적 성격 (더구나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저항속에서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열망이 높았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본다면!)을 바꾸기 위해 '무강권주의'라고 쓰려 했지만,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고.... ㅡ.ㅡ 무강권주의.... 좋은데.....

 

#3. 좌파 내의 갈등

아나키스트들과 마르크스주의 (혹은 마-레 주의)의 충돌은 투쟁방법을 둘러싼 '기술적' 차이라기보다, 어떤 혁명을 원하는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PT 독재와 코뮨주의는 화해하기 어려웠고, 이를테면 파리코뮌의 실패(?)를 둘러싼 해석도 달랐다. 갈등은 사상투쟁에서 끝나지 않았고, 한쪽 (아나키)에 엄청난 실질적 손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스페인내전에서 한편으로는 프랑코 독재와 다른 한편으로는 모스크바의 패권주의적 스탈린주의자들과 싸워야했던 아나키들의 모습은 조지오웰의 [까딸로니아 찬가]에 잘 그려져 있다.

다가올 사회가 민주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런 사회로 가능 방법도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혁명을 일으키는 방법이 혁명 이후에 세워질 사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크로포트킨의 지적에는 완전 동의...

사실, PT 독재 혹은 코뮨주의의 선택을 결정짓는 것은, 민중의 역량에 대한 신뢰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결정이 쉽지는 않다. PT 독재를 주창하는 이들이라고 해서 민중 스스로의 통치라는 원칙 자체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4. 상호부조의 본성과 아나키 윤리.....

사물은 대개 여러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한편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깨어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적자생존'의 설명이론으로 현존의 계급갈등을 합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도 해당한다. 

그동안 나는 생각해왔었다. 적자생존이 자연의 논리이고, 인간해방이라는 것은 이 자연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적자생존이라는 짐승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해방이라 생각했기에 목가적 생태주의 (자연으로 돌아가자!!!)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크로포트킨의 논리에 의하면 적자생존만이 자연계 질서는 아니다. 개체 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집단수준에서 상호부조하는 경우 생존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며, 인간사회에서도 그러하다.

서로 돕고 연대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 중 하나.....

 

#5.국가의 역할

크로포트킨은 지적한다. 근대 국가가 발달해가면서 시민들이 서로에게 해야 할 의무를 국가가 대신하게 되었다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적이다. 점차로 상호부조보다는 일방적 '시혜'를 강조하고,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비동등성을 가정하는..... (이러한 비판은 불교적 세계관과 상당히 유사함!!!)  우리가 현실속에서 복지 '국가', 민주적 '정부'의 역할을 강조할 때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민중적 참여와 상호연대없는 정부(?)의 일방적 서비스 제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나...

 

#6. 아나키...

기독교에도 분파가 여러개 있고, 마르크스주의에도 그러하듯, 아나키즘에도 여러 분파가 존재하며, 크로포트킨의 아나코-코뮨주의는 그 중 하나....

하워드 진 할배가 60-70년대를 거치면서 자신이 아나키즘에 경도되었다 했고, 그래서 엠마 골드만의 생을 다룬 [Emma]라는 희곡을 집필하기도 했다.  [Marx in Soho]에서 바쿠닌을 그렇게 친근하게 그려낸 것도 '사심'이 있기 때문일터 ㅎㅎ 나도 미국에 있는 동안 아나키즘에 관심이 생겨 Alexander Berkman 의 책이랑 Emma Goldman 의 자서전 등을 사두기는 했는데 아직  손을 대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금 관심 폭주.....

우선 크로포트킨의 책을 읽어봐야 할까???

 

요즘, 부쩍...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후딱 읽기 - 하영식 [남미인권기행] 레디앙 2009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기사를 거의 하나도 안 고치고 묶어서 낸 것 같다.

실망.... ㅡ.ㅡ

그리고 연재되었을 당시도 생각했던 건데, 성찰의 깊이나 글쓰기가 2% 부족한 듯....

딱히 뭐라 지적하기는 어려운데, 남미 관련 글을 많이 쓰는 이들 중 박정훈 씨의 글에 비해서는 내공이 부족한 듯 싶고, 김영길 씨에 비해서는 생동감이 좀 떨어진다. 분쟁 전문 기자인 정문태씨의 글에 비해서도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해보임... ㅜ.ㅜ (근데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힘드네.. 이거 인신공격인가???)

 

동어 반복이나 어색한 문장들도 눈에 띄는데, 이건 전적으로 편집/출판사 잘못이라 생각한다. (레디앙의 전작 [88만원 세대]에서도 비문이 와장창....)

절절한 현실과 글쓴이의 수고로움에 비해 특징들이 잘 드러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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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신은 좀 낫잖아 - 영화 [레인]

어제, 실로 오랫만에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레인 (Let it rain)...

 

 

전작 [타인의 취향] 이나 [룩앳미]에서 보여주었던 감독 특유의 썰렁하면서도 세심하고 통찰력 있는 유머는 사그라들지 않아 있었다.

프랑스의 우디알렌이니 어쩌니 하는 칭찬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영화가 '나의 취향''인 것만은 분명하다.

 

#1.

 

가족, 일, 연애..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사정이 좀 낫잖아.... (그러니까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줘!)

직업정치인을 꿈꾸는 인텔리페미니스트, 재능은 있지만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좀처럼 제한된 알제리 출신 이주 청년, 능력이 있는 것도 같으나 하는 일마다 엉망이 되어버리는 이혼남 다큐 감독, 무능한 남편과 드센 언니 사이에서 항상 주눅들어 있는 전업주부 여동생....   이들은 각자 조금씩 사회적으로 결핍되어 있고, 스스로를 피해자, 희생자로 여기고 있다. 성별에서, 인종에서, 사회적 지위에서... 그리고 그건 모두 사실이기도 하다. 권력 관계는 복잡하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은, 이 집의 가정부 할머니.... (ㅡ.ㅡ)

이주 노동자 인데다, 헛간에서 생활하고, 주인집의 생활고 때문에 월급이 몇 달째 밀려 있으며, 폭력 남편은 아직도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불행의 스토리라면야 팔만대장경을 쓰고도 남을 분이다........ 

 

세상에 자신의 고통이 가장 커 보이는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연민과 염치를 겸비하면, 좀더 성숙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2.

 

정치 진출을 꿈꾸는 페미니스트는,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성토 (마치 지금의 사회문제가 그녀 탓이기라도 한 것처럼)에 둘러싸여 갈등한다. 열심히 일하고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이런 것이라면 과연 정치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대사가 정확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럴 바에야 그냥 까페에서 정치 이야기나 하며 살아가는 도시특권층으로 남아버릴까?'라고 내뱉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작금의 정치란 고귀한 이상을 꿈꾸는 존재들이 발을 담그기에 너무나 더러운 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더러운 것이 우리 삶의 너무나 큰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에 술자리 안주거리로만 놔둘수는 없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3.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모두들,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는 갈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금 내리는 비도,

너덜너덜해지도록 지친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치유하는 그런 비가 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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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할배의 강연

 

Edward W. Said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The 1993 Reith Lectures ] Vintage 1994

 

 

이 책 사실, 몇 년 전에 번역서로 읽다가 황당하고 난해한 번역에 식겁해서 집어던진 기억이 있다.

알라딘 리뷰로 찾아보니 비슷한 불만들이 속출하고 있는 걸로 보아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훌륭하신 리뷰어들이 원래 사이드의 글 자체는 난해하지 않다고 (그래서 번역서보다 이해하기 훨씬 쉽다) 평한 것과 달리, 사이드의 글 자체도 쉽지는 않다. 문장이 길기도 하고, 추상적 단어들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한 사례들 자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꼭 다시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들고 다니던 책을 고르던 중 적절한 두께로 인해 손에 걸려들었다 ㅎㅎ

 

1.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Benda의 초(!) 엘리트주의 혹은 선지자적 관점의 지식인론 (소위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과 Gramsci 의 유기적 지식인론을 비교하며  지식인의 '소명 (vocation) 강조!!!

"지식인"이니, '소명'이니 하는 용어들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지만, '말할 기회'를 가진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런 말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여전하다는 지적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There is no such things as a private intellectual, since the moments you set down words and then publish them you have entered the public world... My argument is that intellectuals are individuals with a vocation for the art of representing...."   

 

"This is till true, I believe, despite the often repeated charge that 'grand narratives of emancipation and enlightment' as the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er Lyotards calls such heroic ambitions associated with the previous 'modern' age, are pronounced as no longer having any currency in the era of postmodernism....... For in fact (!!!) governments still manifestly oppress people, grave miscarriages of justice still occur, the co-optation and inclusion of intellectuals by power can still effectively quieten their voices, and the deviation of intellectuals from their vocation is still very often the case...."

 

"Knowing how to use language well and knowing when to intervene in language are two essential features of intellectual activity"

 

"Yet it's not that simple a role, and therefore cannot be easily dismissed as just so much romantic idealism. At bottom, the intellectual, in my sense of the word, is neither a pacifier nor a consensus builder, but someone whose whole being is staked on a critical sense, a sense of being unwilling to accept easy formulas or ready-made cliches, or the smooth, ever-so-accomodating confirmation of what the powerful or conventional have to say, and what they do....This is not always a matter of being a critic of government policy, but rather of thinking of the intellectual vocation as maintaining a state of constant alertness, of a perpetual willingness not to let half-truths or recieved ideas steer one along...."  

 

 

2. Holding Nationa and Traditions at bay

 

디아스포라 지식인이라고 해서 모두 이런 류의 성찰적 자의식을 갖는 건 아니다. 내가 뭐 누구를 품평할만한 내공을 쌓은 것도 아니고, 더구나 사이드 할배한테 이런말할 처지는 더욱더 아니지만.. ㅎㅎ

어쨌든, 한국 상황에 대해 해외에 직접 글을 쓰거나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실은 '일반화', '경험의 공유'를 강조한 사이드 할배나 레빈스 할배들의 영향 덕이라 할 수 있다.  

 

"To this terribly important task of representing the collective suffering of your own people, testifying to its travails, reasserting its enduring presence, reinforcing its memory, there must be added something else, which only an intellectual, I believe, has the obligation to fulfull..... For the intellectual the task, i believe, is explicitly to universalize the crisis, to give greater human scope to what a particular race or nation suffered, to associate that experience with the suffering of others."

 

 

3. Intellectual Exile; Expatriates and Marginals

 

할배도 지적했다시피 국외자, 추방자, 혹은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성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단순히 가방끈 긴 자가 아니라, 성찰 가능한 자를 우리는 지식인으로 재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 사실 intellectual 을 지식인으로 번역하는게 맞나 모르겠네? 지성인?

 

"Because the exile sees things both interms of what has been left behind and what is actual here and now, there is a double perspective that never sees things in isolate....

A second advantage to what in efect is the exile standpoint for an intellectual is that you tend to see things not simply as they are, but as they have come to e that way. Look at situation as contingent, nor as inevitable, look at them as the result of a series of historical choices made by men and women, as facts of society made by human beings and not as natural or god-given, therefore unchangeable, permanent, irreversible."

 

"The exilic intellectual does not respond to the logic of the conventional but to the audacity of daring, and to representing change, to moving on, not standing still."

 

 

4. Professionals and Amateurs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장이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도 많이 나고...

정치적 억압이나 물리적 폭력만이 지식인을 순치시키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 사회 소위 '전문주의(professionalism)'의 압력... 첫째, 전문화 (막스 베버가 그리도 강조하던!!!), 둘째, 전문성과 인증된 자격에 대한 숭배 (촘스키 같은 분은 역사학 학위가 없어서 주류 학계에서 비난당한다!), 셋째, 권력 혹은 직접 고용한 이를 향한 불가피한 편향...

이 부분은 절대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곤혹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할배는 지식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아마추어리즘'을 이야기한다.

 

"These I shall collect under the name of amateurism, literally, an activity that is fueled by care and affection rather than by profit and selfish, narrow specialization"

 

"Every intellect5ual has an audience and a constituency. The issue is whether that audience is there to be satisfied, and hence a client to be kept happy, or whether it is there to be challenged, and hence stirred into outright opposition or mobilized into greater democratic participation in the society..."

 

 

5. Speaking Truth to Power

 

아마추어리즘을 선택한다는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불확실한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One of the shabbiest of all intellectual gambits is to pontificate about abuses in someone else's society and to excuse exactly the same practicies in one own."

 

"What we must be able to say instead is that intellectuals are not professionals denatured by their fawning service to an extremely flawed power, but - to repeat - are intellectuals with an alternative and more principled stand that enables them in effect to speak the truth to power."

 

"Nothing in my view is more reprehensible than those habits of mind in the intellectual that induce avoidance, that characteristic turning awya from a difficult and principled position which you know to be the right one, but which you decide not to take. You do not want to appear too political; you are afraid of seeming controversial; you need the approval of a boss or an authority figure; you want to keep a reputation for being balanced, objective, moderate..."

 

"Yes, the intellectual's voice is lonely, but it has resonance only because it associates itself freely with the reality of a movement, the aspiration of a people, the common pursuit of a shared ideal."

 

 

6. Gods That Always Fail

 

변절(?)한 지식인들을 다룬 동명의 책을 비판하며 소위 지식인의 전향과 변절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정황에 따라 사상적 널뛰기를 한 아랍 출신 지식인 친구(?) 사례를 이야기하며,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이 없었노라는 술회는 참 슬프다. 전향하고 변절하는 이들도 매 순간 진심일 것이었을 거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사이드 할배가, 스스로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지식인이 어떠한 정치적 절대명제 (그는 political god이라고 표현) 편에도 속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한 부분은 고심해볼 만하다. 물론, 이것이 더러운 현실에 발을 담그지 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신앙과 종교나 다름없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싶다.. 도그마에 빠지는 순간, 또다른 도그마로 빠지고, 이전의 도그마를 누구보다 격렬하게 비난하고 배척하는 현상은 낯익지 않은가....

 

"The morality an principles of an intellectual should not constitute a sort of sealed gearbox that drives thought and action in one direction and is powered by an engine with only one fuel source. The intellectual has to walk around, has to have the space in which to stand and talk back authority, since unquestioning subservience to authority in today's world is one of the greatest threats to an active, and moral, intellectual life."

 

"The hardest aspect of being an intellectual is to represent what you profess through your work and interventions, without hardening into an institution or a kind of automaton acting at the behest of a system or method.... But the only way of ever achieving it is to keep reminding yourself that as an intellectual you are the one who can choose between actively representing the truth to the best of your ability and passively allowing a patron or an authority to direct you. For the secular intellectual, those gods always fail."

 

* 강연을 직접 들었으면 무척 재미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ㅎㅎ

그리고, 여전히.... 연로하신 나이에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초소를 향해 직접 짱돌을 던졌을 그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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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진실 [노동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노동의 종말] 민음사 2005년 (개정판)

 

 

아마도 이 책이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리프킨의 책은 원제와 무관하게 각종 종말 ("육식의 종말" - beyond beef, "소유의 종말" - the age of access)을 이름표로 달게 된 것 같다. 이건 홉스봄의 제국/혁명/극단의 시대 3부작이 인기를 끌며 자서전격인 'interesting times'마저 [미완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일게다. 전작의 명성에 묻어가는 출판계 관행..... ㅡ.ㅡ

 

눈부신 생산력의 향상 속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의 양이 줄어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앙드레 고르 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진단을 하고 있다. 앙드레 고르가 지긋지긋한 노동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했다면, 리프킨은 그 높아진 생산력을 감당할 수 있는 구매력의 쇠퇴로부터 비롯되는 딜레마와 잉여노동 (아니, 잉여인간)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예상보다 책이 두꺼워서 깜딱 놀랐다.  생산, 노동의 문제만 다룬 줄 알았는데, 문화적/사회적 함의와 역사적 고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망라'하고 있었다. 논문이 아닌 책의 장점이다.

 

초판이 처음 출판된 것이 1996년이라니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아마 97년쯤, 포레스테의 [경제적 공포]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처음 접했고, 당시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오랜동안 나몰라라 하다가 최근 노동/고용과 관련된 건강문제를 고민하며 다시 관심을....

 

책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신기한 내용들도 무진장 많다 (특히 농업 부문의 자동화, 기계화!) 

그런데 전체 본문을 다 읽고 나면, '도대체 우짜면 좋다는 말인가' 절로 탄식이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10년간 고민을 발전시켜, 40여쪽에 이르는 개정판 서문을 추가했다.

더더욱 암울해진 현실과 (미국의 경기하락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기술하고 있다.

- 수소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소위 녹색 에너지, 환경 관련 일자리)

- 노동 시간의 단축과 일자리 공유

- 제 3섹터에서의 일자리, 사회적 자산의 창출

- 유사 통화 (이를테면 대안화폐)의 활용

이는 본문 제 5부에서 제시했던 소위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계약과 사회적 경제 논의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논거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만한데...

이러한 변화를 추동할 '주체'와 '정치성'의 문제가 분명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단적으로 이런 거다.

마지막 단락.....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의 여부는 문명화가 제 3차 산업혁명의 바퀴를 따라갈 후기 시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도대체 "우리"란 누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해관계??? 

 

대안들이 대단히 기술적(!)이고, 건조하게 나열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미국적!!!),

노동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슬프지만 진실'을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성장이데올로기, 생산력 중심주의의 환상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온 용어 이야기 중 기록해두려다 까먹었던 것!

 

consume - 최초의 소비라는 단어는 소모하다, 박탈하다는 뜻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핵 같은 '소모성 질환'을 cunsumption disorder 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옛날 결핵 문헌에서 이런 표현을 발견하고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ㅜ.ㅜ) 하지만 이러한 소비가 20세기를 지나며 어느 덧 악덕에서 미덕으로 전환되었다는 아이러니.... .

 

worn-out, break-down, overload, burn-out, shut-down 같은 표현들이 사실을 기계들한테나 쓰던 용어들이었는데, 노동자 스스로의 피로나 지침, 과부하 등을 나타내고자 할 때도 쓰게 되었다는 사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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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최초의 경전 - [숫타니파타]

 

법정 옮김, 이레 출판사 1999

 

 

수많은 불교 경전 중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라고 한다.

글이 없던 시절, 부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함께 암송하여 전승하였고, 따라서 외기 쉽도록 운문 형태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렴'도 있다...

 

불경을 읽으면서, 이제 'so cool' 을 지나 'too cool'로 가고 있다고 친구들이 비난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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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73.

야차여, 듣거라.

번뇌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번뇌를 버릴 수 있다.

그들은 건너기 어렵고, 아직 아무도 건넌 사람이 없는 이 거센 흐름을 건너서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는 일이 없다.

 

462.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704.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 깨끗해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851. (죽음이 오기 전에)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감각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어떤 견해에도 이끌리는 일이 없다.

 

944.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

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잡아끄는 것에 붙잡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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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작품 두 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로 둘리세대를 경악과 슬픔의 늪에 빠뜨렸던 그 작가...

 

#1. 최규석 [100도씨 -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창비 2009

 

 

강풀의 [26년]이 그러했듯, 한국 현대사의 잊지 못할 한 장을 기록한 만화....

중고등학생 역사 시간의 부교재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이후 '촛불' 상황을 보완해서 대중서로 다시 낸 것이란다.

 

장기수 한 분이,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티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 두면 너무 아깝잖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심정으로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재능과 진정성 덕택이다.

 

 

#2. 최규석 [대한민국 원주민] 창비 2008

 

 

책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소설에서 성탄절에 유치원생들이 연극을 하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조차 텔레비전에서나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듣고 보았던 어색한 풍습이 그 까마득한 시절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내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란 그 또래의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어째서, 농활을 가고 노동현장에 투신할 만큼 그러한 이웃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세대들이 어째서 내 누이들을 신기해하는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들이 본 것은 농민이고 노동자일 뿐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누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의 외로움이고 모든 '원주민'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들이 제 이야기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충격받을 일 중 하나가, 내 또래, 심지어 지방 출신의 윗학번 선배들 중에서도 '유치원'을 나온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까지 내 주변에 '유치원 출신'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지만 말이다....

농활 때문에 과외를 당겨서 하느라 준비 모임에 제대로 참가를 못한 나에게 (방학 때는 과외를 세 탕씩 뛰었다!), '너네 집이 그렇게 가난하냐? 과외를 꼭 그렇게 해야 하냐?"던 한 선배의 짜증은 아직도 인생의 트라우마.... ㅡ.ㅡ

 

원... 주... 민.... 현존하지만 회고되는 존재...

그림은 아름답고 진정성과 재치는 넘쳐났다.

나이가 경험의 깊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젊은 이 작가의 '나이답지 않은' 사려깊은 시선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내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들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로 놀림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은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것을 나는 인간의 '염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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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 서경식...

요사이 전공책이나 논문들은 통 읽을 시간이 없는데 틈틈이 읽는 다른 분야 책들이 훨씬 압도적인듯하다. 책상에 정좌하고 읽는 것보다 오가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게 더 효율적이란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공부도 길바닥을 오가면서? ㅡ.ㅡ

 

#1.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정혜용 옮김 [에콜로지카] 생각의 나무 2008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생각의나무, 2008

 

데이비드 하비의 책을 읽는 동안 해미가 적극 추천했던 책이다.

 

*

머릿말처럼 쓰여진 인터뷰글에서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결국 고르의 핵심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노동의 재구성, 성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즉, "탈성장은 살아남으려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탈성장에는 다른 경제, 다른 생활 방식,다른 문명, 다른 사회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생산만이 부가 되고 (자발적인 물물교환이나 생태적 노력들은 국민총생산에 포함되지 못함)과 파괴가 부의 원천으로 나타나는 현실이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지적에는 백퍼센트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에콜로지카'를 상상하지 않고는 이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

 

*

고르의 '생계수당' 요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것이다. 즉, '인간의 활동을 고용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이고, 이러한 무조건적 사회수당은 오늘날 한국 사회 '기본소득' 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생계수당을 재분배 논리안에 위치시켜서는 안 되고, 자본과 노동에 바탕을 부를 급진적으로 넘어셔야 한다는 지적에 매우 공감... 하지만, (내가 현재 '기본소득' 의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사회의 기본소득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다. 그 논의의 적절성을 떠나, 일단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게 어떤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질지 백만볼트의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나 '근로윤리'에 깊이 천착해서일 수도 있다. 일이라는게 과연 생계만을 위한 것인가...

 

*

이 책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노동과 성장 담론을 '어떻게' 재구성 하느냐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자본주의가 가속화될수록 그리고 기술진보와 지식정보 사회의 도래에 따라 노동의 필요는 점차 줄어들고,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최소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의지에 따라 우아하게 보낼 수 있는 물질적 토대로 작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적대적 공존의 토대 - 노동자는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필요로 하고,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 에서 노동의 힘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자리가 이제 사라져가는 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인간해방과 새로운 노동 구성의 토대임이 분명하지만 (노역으로부터의 해방...), 분명 현실의 전선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힘의 약화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책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

또한 생산의 주요한 힘과 지대에서 취하는 이익의 주요한 힘이 차츰 공공영역으로 떨어지고 무상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생산수단의 사유화, 공급의 독점이 차츰 불가능해진다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퇴장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바는, 자본이 소비에 대해 행사하는 장악력으로부터, 또 생산수단의 독점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된다' 는 지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해석이다. 일부 해커들의 활동이 나, 소규모 자치생산의 경험들이 너무 과도하게 해석된 것이 아닌가 싶다.

 

*

"자본주의 체제를 반박한다는 것이 가구단위나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 경제로의 회귀도,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통합적이며 계획적인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삶에 있어서 그 일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해야만 하는 것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의 영역을,그러니까 집단의 활동이든 개인의 활동이든 간에 그 자체로 목적인 독자적 활동들의 영역을 '최대로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의 영역만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아... 근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통찰력으로 가득 찼던 Le Guin 의 'Dispossessed'에 보면 이상으로 건설했던 계획경제 사회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생산력의 발전수준으로 볼 때,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Anarres의 그 척박함과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수요와 필요'를 조정하고 충당하기 위한 중앙기구의 설립이 그닥 효율적이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

의문과 고민거리를 잔뜩 던져준 채, 뭔가 분명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다른 책을 읽어볼까했더니 국내에 번역된 다른 글이 아직 없다 (D에게 보낸 편지 말고). 어쨌든 이 글들이 쓰여진 것은 1970년대부터였으니, 하여간 할배의 통찰력은 대단한 것 같다. 어여 다른 책들도 나왔으면 좋겠네.. 답을 주셔야죠!!!



#2.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철수와 영희 200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

 

 

가끔씩 언론에 실린 짧은 글만 읽다가 처음으로 그의 '책'을 읽어보았다.

 

* 이 분 까칠하시다... 그리고 내공이... 이건, 삶의 신산함과 뿌리뽑힘을 당해본 사람만이, 그리고 그로부터 분노와 원한만이 아닌 통찰력을 얻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내공이 아닌가 싶다.

 

* 민족과 국가, 그리고 소수자,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예리하고도 냉정하며, '민감'하다. 국가의 국민이 '스스로 원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여러가지 권리만 누리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지적에 많이 공감한다. 물론 그것이 책임있는 분명한 행위자에 대한 면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누구인가?" 그렇다. 나도 항상 궁금했던 것... 논문이고 신문기사고, 칼럼이고, '우리'라고 표현된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었다. ㅎㅎ

 

* '생명이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라는 장은 특히 많이 공감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살한다. 이를테면 프리모 레비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이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 자신이 부조리하게 얻게 된 생명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관찰되는 자살의 사회적 불평등을 '용인'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 또, 루쉰을 이야기하며 무조건적인 '희망' 고문보다는 차라리 현실을 대면하는 비관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참 인상적이었다. 루쉰의 이야기 "그렇다. 나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도 희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희망은 앞날에 속하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는 내 증명으로 희망이 있다는 그를 설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저자는 마지막 인터뷰 글에서 한국판 '시라케'를 무척이나 걱정하며 비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소위 진보주의자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 반동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시라케... 저자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것같다. 워낙 다이나믹 코리아니까 사실,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만, 그렇다고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솔직한 비관주의자'가 되어 고통과 기억에 기반한 연대를 구축해나가는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3.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청춘의 사신] 창작과 비평사 2002

 

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창비(창작과비평사), 2002

 

저자의 두번째 서양 미술 기행이다. 아마도 신문에 연재했던 것이라 그렇겠지만, 각 편마다 분량이 지나치게 짧아 많이 아쉽다. 더구나 소개된 그림에 대한 도판이 모두 실린게 아니라, 충분히 저자와 '공감'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라는 특정 시점에서 시대와 혹은 자아와 온몸으로 싸웠던 미술가들의 이야기는 일부 새롭기도 하고, 혹은 알고있었지만 여전히 숙연해지기도 하고... 오래된 책이지만 윤범모의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를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고민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듯... (물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노버트 린튼의 [20세기의 미술]도 매우 훌륭했지만, 감흥의 영역은 약간 다른 듯...)

이 책에서 표지그림이자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곤 쉴레의 [소녀와 죽음]은 나도 액자로 가지고 있는 애장품이다. 악착같이 죽음을 붙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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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몇 구절

잊을만하면 한번씩 돌아오는 근원미상 번뇌의 시즌이 길어지고 있다.

설명하려 들면야, 몇 가지 이런저런 이유들을 댈 수 있겠지만, 글쎄다...

그토록 열망하던 부동의 평정심과 통찰력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말로 '열반'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무릎도 팍 꺾이고... 내가 감히 이룰 수 없는 열망이로구나...

어느 구절 하나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몇 구절들을 남겨둔다. 그리고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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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르바나 (Nirvana, 열반) - 깨달은 상태, 혹은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

43.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고 연인과 친구들의 사랑이, 제 아무리 깊고 넓다 하더라도 올바른 내 마음이 내게 주는 사랑은 이보다 더 깊고 큰 것이 없나니...

179. 깨달은 이는 모든걸 정복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완벽한 승리는 얻지 못했나니 그는 드디어 무한을 정복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를 아, 아, 무엇으로 유혹할 수 있겠는가.

210.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라. 미움으로부터도 벗어나라. 사랑의 끝은 고통이요. 미움의 끝 또한 고통인 것을...

235. 그대 삶의 나무에서 낙엽은 지고 있다. 죽음의 사자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이제 머나먼 길을 가야 하나니 그러나 아직 길 떠날 준비도 되지 않았구나.

251. 욕망보다 더 뜨거운 불길은 없고 증오보다 더 질긴 밧줄은 없다. 어리석음보다 더 단단한 그물은 없고 탐욕보다 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없다.

285. 가을 연못에 들어가 시든 연꽃을 꺾듯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꺾어버려라. 그리고는 저 니르바나의 길을 향해서 오직 한마음으로 걸어가거라.

305. 홀로 명상을 하며 홀로 누워라 오직 홀로 걸으며 열심히 수행하라. 그대 스스로 그대 자신을 다스리며 이 모든 집착에서 멀리 벗어나 오직 혼자가 되어 살아 가거라.

380. 그대의 스승은 그대 자신이요. 그대 자신이 바로 그대 자신의 피난처이니 저 마부가 말을 길들이듯 그대는 그대 자신을 길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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