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좋지, 뭐 문제될 거 있겠어?"
오늘은 내가 사는 대추리 옆집에 퇴비화장실(일명 생태화장실이라고도 한다)를 만든 첫날이다.
내가 보아온 생태화장실 대부분은 몇 명이 달라붙어서 공사를 해야만 하는 그런 일종의 건축구조물이었다.
화장실 건물을 새로 짓고, 땅을 깊이 파고, 나무를 잘라 치수에 맞게 못질을 하는 등...
이것이 솔직히 내겐 부담이었다.
'똥살리기 땅살리기'를 읽은 후 당장 실천하고 싶었지만 공구리도 쳐야 하지 않을까, 대패질도 해야 하지 않을까, 설계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때문에, 그저 결국 언젠가 때가 오겠지 기다리고만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서울에서 살면서는 생태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도시에서 왕겨나 톱밥(합판에서 나온 것이 아닌)이나 짚은 구하기가 힘들었고, 퇴비장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시골에서라면 무한정 구할 수 있는 짚과 왕겨 같은 것도 사야한다는 사실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생태적으로 똥을 싸고 그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오래된 순환에 참여해야 한드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난 이런 궁금증을 키웠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태적으로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조건에서 사는가가 중요할 뿐 게으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게으르다는 것 역시 상대적인 것이니까.
대추리에는 생태화장실을 당장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재들이 널려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훌륭한 재료가 되는 법이다.
나는 생태화장실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도 마을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거의 모두 거저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필요한 예산은 0원이다.
그저 두 눈에 불을 켜고 마을을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깐.
마을 사람들은 인분퇴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먼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의견을 듣고 싶었다.
마침 어제 나비에게서 연락을 받고 4반뜸에서 도두2리로 내려가는 길목,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가보았다.
마을 분들이 모여계셨는데, 부침개를 만들어 모인 사람들이 점심으로 나눠 먹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였다.
퇴비를 만들겠다고 물어보니, 다들 찬성하신다.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만들어보자.
그런데 대추리, 도두리에 친환경농사를 짓는 분들이 계셨던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료 한 포대에 1,500원이라고 하니 그런 화학비료를 돈 주고 사는 것보다 퇴비가 더 좋다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게다가 텃밭도 많으니 그런 곳에 뿌려주어도 좋을 것이다.
이 세상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말고는 버릴 것이 없다.
지뢰와 대포, 전투기와 총들도 모두 녹이면 훌륭한 자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똥도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똥이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직접 실험해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석유쟁탈전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이 지구를 망치고 있는가.
석유, 물과 같은 부족한 자원을 힘으로 빼앗기 위해 국가들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 민중들로부터 세금을 빼앗아간다.
전쟁과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평화마을 대추리, 도두리라면 생태화장실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똥과 탄소질 재료(짚, 왕겨, 마른풀 등)가 들어갈 20리터들이 통을 두 개 구하고, 퇴비장으로 만들 곳을 정해 폐허처럼 보이는 그곳을 청소하고 꾸며서 새롭게 단장한다.
비국가해방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부여받은 아나키스트의 삶이다.
이곳을 가꾼다.
그래서 더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국가폭력을 막아내고 자립의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밭을 가꾼다.
마을에 생기가 돈다.
근사하다.
20리터 통에 변기뚜껑을 올려놓았다.
마을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왕겨와 짚을 긁어모아서 역시 마을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40kg짜리 쌀포대에 가득 담아왔다.
그래. 우리쌀로 식량자급이요, 벼농사로 환경보전이다.
얼씨구~
속을 들여다보자.
왕겨와 짚이 가득 들어있다.
먼저 20리터 이상의 통을 구하고 변기를 얹는다.
그런 다음 통 속에 짚과 왕겨를 잘 넣어준다.
짚의 냄새는 제법 향긋하다.
가끔 뭔가 맡고 싶을 때 짚의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안정이 되어 좋다.
이렇게 짚과 왕겨로 덮어준 위에 똥을 누고 오줌을 눈다.
그리고 '명상'이 끝나면 다음과 같이 왕겨를 잘 덮어주면 끝~!
더이상 깨끗한 물을 똥, 오줌을 버리기 위해 같이 버릴 필요가 없다.
명상이 끝나면 다음과 같이 변기뚜껑을 덮어주면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된다.
내 계산으로는 20리터들이 통을 혼자서 채우는데 한 2주일 정도 또는 그 이상 걸리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쌓인 퇴비화 변기는 밖에 만들어 둔 퇴비장으로 들고 나가 짚 위에 뿌려주고, 다시 왕겨 같은 것으로 잘 덮어주면 된다.
이제 열이 나면서 발효가 되어 병원균들이 죽고 훌륭한 거름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렇게 만든 거름은 밭에 뿌려주면 된다.
퇴비화 변기를 사용하면서, 일을 마친 후에는 뒷물통을 사용해 닦아내고, 대안생리대까지 사용할 경우 화장실에서 물과 일회용 휴지는 다시는 필요없게 된다.
이렇게 절약한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자세한 통계자료는 '똥살리기 땅살리기'에 다 나온다.
벌써부터 자연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