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모두들!꼬뮨 현장에서 2006/09/14 22:52 오랜만에 한 열두시간 푹 잤네요.
2박3일간 거의 잠을 못자고 마을과 내가 사는 집 지키는 일에 힘을 쏟았더니 정작 어제 저놈들이 마을을 부수러 들어왔을 때에는 너무 졸려서 혼났어요.
그래도 우리가 지키려던 곳을 거의 다 지켜내서 마음만은 기뻤답니다.
전경과 용역들이 모두 물러가고 한 오후 다섯시쯤 되었는데 저 멀리서 풍물 소리가 신나게 들리는 것이에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건 정말 신나서 치는 소리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쇠치배가 누구인지 풍물가락이 단순하면서도 정말 신나는 것이었어요.
대추리 구멍가게 앞에서 마을 분들이 신명나게 풍물을 치는데, 역시 상쇠는, 그러면 그렇지, 송단장님이더군요.
뉴스에 보면 빈집들이 대부분 철거되었다고, 마치 마을이 폐허라도 된 것인양 보도가 되지만, 실제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결의가 대단히 높습니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그래요.
11일과 12일 밤을 모두 평화전망대에서 꼴딱 새면서 저놈들이 행여나 쳐들어오지 않나 규찰을 서는데, 솔직히 그때는 두렵기도 하고 그랬어요.
새까만 어두움 속에 철조망 안에서 왔다갔다하는 군용차량의 불빛이 깜빡거리기만 해도 바짝 긴장이 되더군요.
그런데 13일 새벽에 저놈들이 실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는 두렵지도, 떨리지도 않더군요.
특히 저놈들이 지킴이들이 사는 집까지 때려 부수는 모습을 보면서는 '내가 여기서 연행되고 구속이 되든 꼭 지키겠다'는 결의가 샘솟더군요.
국방부는 언론에 발표한 것과는 달리, 지킴이들이 살고 있는 생가도 막무가내로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든 살지 않든 저들의 눈에는 그저 철거대상의 빈 건물로만 보이는 것일까요?
나는 4반쪽에서 벌어지는 저들의 파괴작업을 막느라고 온힘을 쏟으면서 인권활동가들이 지키고 있던 평화전망대 쪽에는 가보지도 못했어요.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분상으로는 이미 오후 5시가 된 것 같더군요.
태어나 지난 5월 4일이 가장 길게 느껴진 날이었다면 9월 13일은 두번째로 길게 느껴진 날이었어요.
어제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다 그렇게 느꼈더군요.
저놈들이 들소리 방송국을 부술려고 달려 들었어요.
전투경찰들이 겹겹이 포위를 하고 있고, 용역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명령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마치 '매트릭스 원'에서 네오가 모피어스를 구해내려고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내가 막아야 한다. 들소리 방송국이 무너지면 안 돼. 그리고 난 할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곁에 있던 송사장님께
'경찰들 사이로 빈틈이 보입니다. 잘하면 방송국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들어가서 막아볼께요.'
했어요.
그랬더니 담은 넘어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집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다면서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우리의 예지와 하연은 정말이지 온몸으로 저항을 하더군요.
용역들이 주춤거렸어요.
그러고 있는데 마침 경찰들이 다른 집을 부수러 이동하는 사이에 틈이 났고, 사람들이 빼꼼히 열린 대문으로 밀물처럼 쏟아져들어가 방송국 문을 부여잡고 '여기는 못내준다'면서 필사적으로 막아냈어요.
용역들이 마구 달려드는데, 끝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리고는 4반쪽에 있다가 평화전망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3반에 있는 불판집 걱정이 솟아났습니다.
포크레인이 인권지킴이네 집을 부쉈다면 다음 철거대상은 어디가 될까요?
두려웠습니다.
저들은 지킴이들이 사는 집까지 모조리 부술 기세였기에 평화전망대에서 가장 가까운 지킴이 집인, 내가 사는 불판집이 저들의 다음 공격목표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비장해졌습니다.
실제로 저는 당장 맞아죽더라도 불판집만큼은 내줄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은 침착해졌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니까 정말이지 두려운 마음도 싹 가지고 마음은 차분해지고 잔잔해지더군요.
'내가 살아온 땅에서 죽고 싶다'는 마을분들의 생각이 온몸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경찰이 방패를 들고 철저히 막는다고, 누군가 불판집 쪽으로는 가지 못한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었어요.
하지만 대추리, 도두리에 몇 달을 살다보면 뒷골목까지 훤하게 알게 된답니다.
경찰은 큰길만을 막고 있지요.
뒤로 들어가는 길은 휑하니 뚫려 있어요.
저는 뒷골목을 돌아서 불판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곤 마루에 누웠어요.
누워서 일부러 일상을 사는 것처럼 포도도 따먹고, 커피도 타먹고, 음악도 듣고 하면서 지내야지, 그러다가 용역들이 들어오면 테이블 밑에 기어들어가든가, 텐트 속에 들어가든가, 아니면 화장실에 만들어 놓은 퇴비변기를 끼얹으면서라도 저항해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누워있자니 잠이 스르르 들어버렸습니다.
잠이 들면서 '이렇게 죽으면 참 행복하겠다' 싶었어요.
한 세시간을 잔 모양입니다.
밖에서 계속 들리는 경찰들의 구호소리에 깊이 자지는 못했어요.
깨어보니 경찰들이 물러가고 있더군요.
다행히 내가 사는 집은 부수지 않을 모양인가 보다 여기고 자전거를 타고 1반쪽으로 나갔습니다.
1반쪽도 부서진 집들이 있었지만 지킴이들이 옥상 위에 올라가 저항하고 있는 집들은 부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더운 날 옥상에 올라가 열시간 이상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이윽고 대추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황형사 집 앞에서 천주교 미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집 위에는 우리 두 명의 멋진 인권활동가 친구들이 옥상 위에 올라가서 지키고 있었구요.
경찰들은 회유와 협박을 하면서 인권활동가들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절실했던 하루였어요.
결국 우리들은 풍물을 치고, 저녁밥을 함께 먹고, 촛불을 함께 밝히면서 지난하고도 고단했던 며칠간의 비상상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함께 걱정해준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격려해준 친구들, 언제나 마음만은 함께 이곳에 남겨두고 있는 친구들, 평화를 위해 함께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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