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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할 수 없는 맛 : 청자골종가집

 

한정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최고라 할 수 있다. 강진의 [청자골종가집] 얘기다. 메뉴판에는 한상에 얼마짜리가 있다는 안내만 있으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얼마짜리 상 주세요'하면 주문은 끝이다. 고민하지 말고 주는 대로 열심히 맛있게 먹으면 [청자골종가집]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정말 '열심히' 먹어야 한다.

 

당에서 오래 함께 일한 김정진 변호사는 한 때 군복무를 장흥에서 공익법무관으로 지냈다. 이곳에서 공익법무관 일을 할 때 그 지역의 판검사나 지자체에서 한자리 한 양반들이 몇 번 데리고 갔던 모양이다. 지난 해 여름 휴가 때 몇이서 남도 여행을 했었는데 김정진 변호사가 [청자골종가집]을 그 동네 최고 맛집이라며 소개를 했었다. 지난 여름 이 음식점의 한정식을 먹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 남도 맛기행에서도 찾게 되었다.

 

 

이 집은 내오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그만큼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난 여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식사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밥상은 없고 방석만 있어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어찌하려고 밥상이 없을까. 앉아서 기다리면 아주머니 두 분이 큼지막한 차려진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 이 상을 첫상이라고 보면 된다. 끝이 아니다. 사진은 우중충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화려함에 일단 압도되는 게 있다. 카리스마 있는 음식!

 

육회, 회, 전복, 조개 등 불로 읽히지 않은 것들이 먼저 나온다. 사진 오른쪽 아래 기다란 접시에 놓이 노란 빛깔 음식은 계란말이가 아니다. 떡고물이 속으로 들어간 떡을 썰어놓았다. 가운데보다 약간 왼쪽 맨 위에 작은 그릇에 담긴 주홍빛 길다란 음식은 농어알을 살짝 말려서 얇게 썰어 놓은 거란다. 이 지방에서 나는 싱싱한 음식이 가득하다.

 

@ 삼합과 전복, 키조개 관자와 육회. 정신없이 먹어야 했으므로 사진기가 흔들리든 말든.

 

삼합과 함께 나오는 묵은지는 3년이 된 거라는 얘기도 있는데 직접 물어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키조개 관자 회는 내게는 큰 별미였다. 육회는 채 썰듯이 하지 않고 얇고 넓적하게 썰었는데 질기지도 않고 비리지도 않았다. 약간의 양념맛만 있었지 생고기맛 그대로였다.

 

이 상 한판을 다 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큰 접시 몇 개만 먹고 치우기에는 작은 접시에 담긴 음식 아깝기 때문이다. 이 집의 장점 중에 하나는 작은 그릇에 나오는 반찬 하나도 맛있다는 데 있다. 구색맞추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첫 상은 술안주로 먹으며 수다떠는 상이란다. 일행은 모두 먹기 위해 왔으므로 열심히 해치웠다. 아주머니가 가끔 방을 들여다보며 식사 속도를 확인하다. 대략 많이들 먹었다 싶으면 익힌 음식이 또 나온다.

 

@ 갈비찜, 전, 광어탕수육, 낙지. 여전히 먹느라 사진기는 흔들린다.

 

이것들 말고도 몇 가지다 더 나왔는데 먹느라 찍은 건 이것 뿐이다. 나는 갈비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집 갈비찜은 질기지도 않고 살살 잘 넘어갔다. 짜지도 않고. 특이한 건 광어탕수육인데, 광어 뼈만 요령것 발라내고 살점만 통째로 튀겼다. 익힐 때 결을 내서 먹기도 편하다.

 

내어온 음식이 바닥이 나거나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게 되면 마지막 '식사 상'이 나온다. 그 전에 매생이국이 먼저 나오는데, 난 매생이국을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었으니 살짝 술기운은 달래기 위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매생이국을 훌훌 마실 때가 되면 심호흡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먹을 게 더 나오는데 이미 배는 꽉 찼을 테니까.

 

@ 마지막 상. 물론 이 다음엔 과일과 수정과가 나온다. 매생이국과 굴비.

 

쌀밥도 나오지만 찰밥도 함께 나온다. 밥반찬으로 젓갈이 맛있다. 굴비는 아주머니가 직접 찢어주는 친절함을 베푸신다. 왼쪽 위에 있는 김이 아주 일품인데 서울에서 이런 맛의 김은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밥반찬의 맛과 찰밥 때문에 배가 불러도 자꾸만 자꾸만 손이 가는 마지막 상이다.

 

아, 이렇게 보니 사진발이 약한 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청자골종가집]은 강진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다. 주변이 조용한 한옥집이라 저녁 식사 분위기 또한 음식맛 만큼이나 좋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잘 가꾸어 놓은 정원으로 나오면 하늘의 별도 반짝인다.

 

@ 이번에 저녁식사를 한 방은 '죽실'이다. 이런 온돌방이 여러 개 있다.

 

 

[청자골종가집]의 장점은 재료의 싱싱함에 있다. 타지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싱싱한 음식을 한 데 모아놓았다.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요리 솜씨도 좋다. 음식마다의 경중이 있다기 보다는 리듬이 있다. 겻가지 음식도 폄하할 게 아니다. 그리고 푸짐하다. 먹을 게 많이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이 집이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4인상 이상만 팔기 때문에 2이 간다면 두 배 값으로 먹어야 한다. 물론 양은 4인상과 같이 나오지만 남겨야 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진다. 이번 일행은 셋이었는데 하나같이 먹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대충 다 먹기는 했다.

 

또 하나는 절대비용에 있어서 싸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상은 4인 16만원 상이다. 1인당 4만원짜리 코스 요리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는 해도 가격 대 질로 보면 대도시, 특히 서울의 어느 한정식과 비교해도 비싸지 않으며 오히려 싸다 할 수 있다. 물론 먹는 데 큰 돈을 쓰는 게 부담스럼 이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4인 8만원, 12만원 상도 있는데 어느 음식이 빠지는지는 모르겠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한 번 쯤 질러보고 싶다면 방문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방문하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멀리까지 가게 되는 날이 주말이라면 더욱 일찍 해야 할 지 모르겠다. 8시 30분 정도까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 같으니 저녁 7시 정도까지는 가서 천천히 웃고 떠들며 잔치 분위기를 내는 식사는 어떨지.

 

- [청자골종가집] : 061-433-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