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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 에 관련된 글.
아래의 글은 야스피스가 월간 <금비>에 쓴 원고이다.
수다 중 '문'이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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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한 봉다리]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영화를 보면서 그가 생각났다. 몇해 전 ‘성적 소수자’를 취재할 무렵 ‘르포’를 맡았던 나는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 지도를 인터넷에서 찾아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의 도움을 얻어 처음으로 소개 받은 게이가 그였다.
- 강 : 남자가 보기에 여자들이 웃길 것 같아. 캐시가 에니스한테 “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남자도 그럴 것 같아. “나도 그런데….” 이혼한 다음에도 추수감사절 날 초대해서 칠면조 먹이고, 옛날 얘기 꺼내고 말이야.
- 문 : 알마가 불쌍해.
- 강 : 연애의 대상만 다를 뿐이지 연애의 코드를 잘 따라간 영화야. 기다리는 사랑은 너무 슬퍼. 애인한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웃음)
- 조 : 산에 들어갔을 때 둘이 사랑에 빠지기 전에 뭔가 복선이 안 깔려있었던 것 같아. 너무 충동적이었던 거 아냐?
- 강 : 원래 충동적인 거야. 사는 얘기 나누고 서로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 조 : 굉장히 충동적이었어. 운명적 만남이라면 뭔가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좀 당황스럽더라구.
- 문 : 그러니까 사랑이지. 운명적 사랑? 어떻게 사랑이 운명적일 수가 있어? 게이가 둘 있다고 해서 연애를 한 게 아니야. 한 순간에 필이 꽂힌 거지.
- 조 : 잭은 충동적으로 시도했어. 에니스는 처음에 놀라고 당황하다가 순식간에….
- 강 : 이해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라 영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조 : 에니스가 어렸을 적에 마을에 있던 게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거를 봤잖아. 그런 공포 때문에 에니스를 뿌리칠 수밖에 없었지.
- 문 : 그러고 보내니까 이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지. 만약 가정을 꾸리지 않고 연애를 했다면 헤어졌을 거야.
- 강 : 근데 남자들끼리지만 둘 사이에 사회적 관계가 설정되지 않아? 한 명은 식사 준비하고 천막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밖에서 양떼를 몰고 말이야.
- 조 : 둘한테 성역할의 구분이 있었어. 중간에 서로 역할을 바꾸는데 성역할에 따라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지지.
- 문 : 잭이 여성적이야.
- 강 : 감정이 풍부하게 나오잖아.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고 에니스가 난감해 하며 돌려보내니까 울면서 가잖아. 그나저나 배경이 너무 예뻐.
- 조 : 사랑에 빠지려면 그런 데 있어야 하나.(웃음) 에니스가 잭의 제안을 거절했던 거는 어떤 것 때문일까.
- 강 : 뭔가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잖아. 성장배경에도 나오고 부모가 일찍 죽고 어렸을 때 형과 누나가 결혼해서 떠나고….
- 문 : 그렇게 가족한테 버림을 당하니까 자기는 가족을 못 버리는 거지.
- 강 : 확신도 없을 거고. 외로움에 너무 익숙해져서 딸이 같이 살자고 해도 못 산다고 하잖아.
- 조 : 둘한테 직접적인 억압을 없었던 거잖아.
- 강 : 심리적 억압이었지. 근데 이게 숙명적인 사랑일까.
- 문 : 숙명이나 운명? 그런 건 다 환상이야. 당사자에겐 어쩔 수 없는 거야. 솟구쳐 나오는 감정….
- 강 : 나도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영화에서는 ‘사슬’이라고 나오지. 어쩔 수 없는 그런 거.
- 조 : 오지게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엮이는 거지.
- 강 : 결혼식장에 가면 각 커플마다 정말 험난 파도를 넘고 그런 우여곡절이 있어. 근데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면 일상의 감정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하지만 잭과 에니스는 그게 아니니까 더 애틋하게 되는 거야.
- 문 : 너무 슬프잖아.
- 일동 : 그래.
- 문 : 잭이 에니스한테 같이 살자고 했던 거랑 (이성애자인) 내가 어떤 여자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 거와는 달라. 잭이 죽고 나서야 에니스는 맹세한 거지. 잭이 자기 셔츠 안에 에니스의 셔츠를 담아놓았던 것처럼 평생 자기 셔츠 안에 잭의 셔츠를 품고 살 것을 말이야.
다시 드는 생각. 동성애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이성애자들이 차마 느끼지 못하는 사무치는 감정에 복받쳤을 것 같다. 아니, 게이들의 사랑이 현실과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진 것을 보고 허탈해 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슬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취재원이었던 그가 다시 떠올랐고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엔딩 곡 “The Maker Makes”의 음률이 생생했다.
“이 사슬을 끊고 네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조물주는 또 다른 사슬을 만드네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너를 향한 사랑의 눈금을 더 높이 그으며
너를 잊지 않으려 애쓰네
하지만 조물주는 사랑의 벽을 높이네
슬픈 운명의 사랑이여
오 주여, 저는 압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이 제게 어떠한 행복을 주었는지
만족하고 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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