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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

 

이 글은 전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지난 3월 5일에 막을 내렸고, 나는 가지 못했다. 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고민 중이다. 다른 심각한 고민들도 있지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니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무엇'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무엇'이란 꼭 '직업'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과 돈벌이가 일치하는 삶이 곧,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내게 그런 복이 올까는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고민하는 건 '돈벌이'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민주노동당직을 사직한 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잘 된 일이 될 것 같다. 아직 민주노동당과 심리적 이별은 하지 못해 헤매고는 있으나 이것도 어떻게든 정리될 것도 같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잘 그만두었다'를 여전히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하던 일을 그만 두어버리고 나니 앞으로 할 일이 잡히질 않는 나의 상황에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한동안 나의 자아를 잠식한 존재가 아닌였던가. 나에게서 민주노동당을 떼어 내려 하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이런 상황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큰 혼란이다. 이 혼란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는 싶지만 자꾸 회피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기대하는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독 중 하나가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 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아내는 것도 힘들어한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2월 경에 지나가는 길에서 광고를 보고 알게 되었다. 3월 5일까지였으니 시간을 내서 가고자 했지만 이래저래 시간이 맞질 않았다. 정신 바짝차리고 꼭 봐야겠다고 맘을 굳게 먹었다면 시간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나의 의지란, 가는 한숨에도 날라가 버리는 가벼움을 몸뚱아리로 가지고 있다.

 

마티스 등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렬이 든 어느날이었다. 혼자 집에 있었다. 왜 보고 싶어 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때 그림을 배웠었고 계속 그리고 싶어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때, 그림을 그리던 시절과 그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그림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헌책방에서 그림책을 샀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책들.

 

지금도 나의 책 무더기 속에는 마티스의 작품집이 있다. 최고로 유명하고 높이 평가받는 작품들만 엑기스로 모아놓은 컬렉션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작품집이다. 그러니까, 한 때는 이런 작품집을 모으고, 인쇄된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문득, 예전에 이러고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마티스의 작품집과 그 주변에 꼽혀 있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집을 보면서 행복해 했었다. 그래, 행.복. 그 기억이 살아나자 난 너무 슬퍼졌다. 난 지금 행복하지가 않다. 무엇을 하고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불행 속에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행복을 잊고 살 정도로 생활은 팍팍할 따름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날 울었다. 집에서 혼자 울었다. 소금기 꽤나 빠지도록 울었다.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으니 땀보다도 짠 눈물이었을 것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나에게 이런 의미가 되었다. '가보지도 못한 곳, 그래서 더 선망하게 된 곳'. 마티스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될 날은 언젠가 올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마티스만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나 스스로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면 가야겠다. 중요한 건 보는 게 아니다. 보고 있는 내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는지를 깊이 알아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림에 강한 반응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살까? 예전의 꿈과 의지를 찾을 수 있을까? 꼭 그 길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예전의 꿈과 의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는 듯하다. 내 인생은 길 것이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가 정작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아보기를 회피한다면 죽을 때까지 떠돌이 마음을 간직한 채 불행하게 살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