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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 때려치우고 할 일 없이 놀아도 영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에 아픈 구석이 있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6년 가까이 일을 하다보니 사무실에 쌓인 내 물건들이 한 아름보다 더하다. 정리해야 한다. 내 컴퓨터가 한계에 다달았으니 업그레이드도 해야 한다. 맘 먹은 바가 있으니 자전거도 장만해야 한다. 오랜 동안 쓸고 닦지 못한 집안 구석구석도 손봐야 한다. 공부를 한다거나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차분히 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성찰하는 데에 게을러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시간의 여유란 할 일 없을 때 누리는 게 아니라 할 일을 느긋하게 할 때 누리는 것이다.
조금 전에 여의도 당사 근처에서 돌아왔다. 어제 오후 늦게 행인에게 빌려줄 책들이 있어서 들고 나가기는 했지만 애초에는 사무실 한 켠에 아직 남아있는 나의 자리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하루에 다 정리하지 못할 양이긴 하지만 하는 만큼이라도 해 두면 좋을 일이다.
낮에 집에서 몇몇과 채팅을 하고 이래저래 알아볼 것 알아본다고 서핑하다가 늦게 나갔다. 수다 좀 떨다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도 오래 앉아 먹고 나서는 새벽 1시가 다 되도록 당구를 쳤다. 이 시간이 재미없었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맛나는 삼겹살 배불리 먹고, 즐겁게 당구도 쳤으니 잘 논 것이다.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꿀꿀한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당구를 치는 게 훨씬 이롭다. 지금 내 처지에 노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뒤로 미루기'이다. 이 점이 나의 생활태도의 문제 중에 하나다. 이왕 제대로 푹 쉬기로 마음 먹었으니 해야 할 일을 천천히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당장 하지 않는 것은 하기가 싫어서이다. 하기 싫은 이유는 아마도 '회피'에 있는 듯하다. 단지 게으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 '회피'는 두려움이나 자신감 상실 등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사무실 내 책상과 책장을 정리해버림으로써 내가 6년 가까이 공들여 일한 일터에서 멀어지는 걸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당에서 일하는 걸 나는 영광으로 여겼다. 내 인생을 바쳐야 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어 떠나와 놓고선 여직 나의 마음은 기대고 있는 듯하다. 나의 짝꿍을 제외하면 당을 나의 전부로 여기고 있었으니, 당과의 인연을, 끈끈한 나의 일부가 아닌 객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심리적 이별이란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두려움이 내 마음 속 깊이 틀어 앉아 열심히 저항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픈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병원도 가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일을 핑계로 얼마나 오래 미루어 왔던가. 그토록 미루어 온 일을 지금도 미루고 있는 건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일 수 있다. 건강한 몸뚱이를 바라면서도 이를 위해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니.
빨래를 한다거나 설거지는 한다거나 하는 자잘한 일들에서 나는 작은 만족감을 얻는다. 집안일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런 일이라도 집에서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즉,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지금 나의 심리적인 상태로서는 자전거가 있어야 운동을 하게 될 것이고, 컴퓨터가 있어야 내가 바라는 적극적인 작업을 하게 될 것이고, 병을 치료해야 더 많은 의욕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나의 의지가 약하다. 의지가 약한 건 그 다음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두렵고 자신감을 갖지 못해 회피하는 나,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 지금의 내가 바로 위기가 아닌가 싶다. 놀더라도 내가 할 일을 회피하고 않고 놀아야 시간의 여유를 더욱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살 지가 고민이라 했다. 또 하나의 나의 고민은 회피하는 나 자신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나의 태도는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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