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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경험하게 되면 깨닫는 바가 있다. 그렇지만 같은 경험이라도 사람마다 깨닫는 바가 다르긴 한 걸 보면 경험했다고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쁜 경험'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게 말걸기의 평소 생각이다. 실패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험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한-미 FTA 체결 같은 것 말이다.
한-미 FTA를 적극 찬성하거나 추진한 인간들만 나락으로 떨어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자는 놈들만 그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리고, 핵무기 찬성하는 놈들만 핵폭발과 낙진과 방사능에 뒈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의 이치라는 게 그러하지 않으니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최악'이라고 여기는 것이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게 '최악'일 수는 있지만, 따져보자면 당장 그걸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지 않은가. '최악을 피하자'는 생각이 하나의 '이념'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조바심과 두려움을 부추기는 관념덩어리로서.
올 대선을 앞두고 결국 비판적 지지의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손호철이 '두려움의 동원정치'라고 했다. 말걸기는 비판적 지지의 전통은 '최악은 피하자' 이념과 큰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전통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운동권들의 주장이, 정치하는 자들의 주장의 일체가 '최악은 피하자'주의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다.
우파들은 '비판적 지지'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고 좌파들은 '우파가 잡으면 다 망해'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판적 지지'의 어떤 버전이든 그것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게 명확하다. 그리고 민주노총이고 민주노동당이고 간에 다 우파가 잡았지만 망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안돼!'라는 말은 자주 들었고 말걸기 또한 자주 뱉었던 말이긴 한데, 지나고 보면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다 살아지긴 한다. 상황, 처지가 나빠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싫다. 괴롭기도 하다. 그래도 결국은 살아갈 방법을 찾길 마련이다. 억울하게도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생기고 인간들은 더욱 이기적으로 변하고 세상은 뒤숭숭해져도 다 살아진다. 어떻게 보면 언제나 '최악'에 적응을 하면서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념적 지향, 가치 판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상황 변화가 살아가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변화에 예민한 '운동'이라는 것이, 그 예민함 때문에 오히려 조바심과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래서 판단을 흐리는 경우가 생기지는 않은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해관계든 이념이든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감정적 불만을 과대하게 이론적, 논리적으로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의 변화, 현실을 따져보는 비중은 줄어든다고나 할까. 그래서 단호하고 원론적으로 '쎈' 주장이 '좌파의 척도'가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블랙 코메디일 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따지면 이건 대단히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현실적'으로 파악해서 '현실적'인 변화의 경로를 찾아내서 현실로 만들고 있느냐가 좌파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물론 여기서 평등의 이념을 빼서는 안된다).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겪어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그냥 허무한 바람일 수 있다. 비판적 지지는 20년 동안 되풀이 되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을 팔고 있으니 겪는다고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선에서 '개혁적 후보'를 단일화하고 민주노동당도 이에 올인하면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도 분당될 가능성이 높은데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분당되면 좌파의 각 정파들이 자리 하나 더 먹을라고 아주 쌩지랄들을 할 텐데 우파 빼고 당 만들어 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게다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판적 지지파는 어차피 다시 좌파당 안으로 기어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조삼모사꼴이라는 걸 깨달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경험을 하고 나면 경험 전의 감정 상태를 돌아보게 되긴 한다. 너무 긴장했다거나 과도하게 걱정했다거나. 반면 지나치게 우습게 알았다거나.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 자기 감정 조절도 하게 되고, 예민함 때문에 생기는 조바심과 두려움도 조금씩은 떨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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