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2008/06/08 23:59 베껴쓰기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딜런 토머스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늙은 사람이라면 하루가 끝날 때일수록 불사르고, 몸부림을 쳐야지요.

빛의 소멸에 노하고, 노여워하세요.

 

현명한 자들도 마지막에 이르러 어둠이 마땅함을 앎에도,

자기네 말로써 번개를 일으키지 못한 까닭에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않아요.

 

선한 이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난 후 울부짖습니다.

작은 초록빛 만에서 춤추는 자기네의 덧없는 행적이 얼마나 환히 빛났을지...

빛의 소멸에 노하고, 노여워합니다.

 

거친 사나이들은 달아나는 해를 붙잡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배우지요. 너무 늦었음을. 해가 가도록 내버려두지 말 것을.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엄숙한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져, 눈멀게 하는 시선으로

먼 눈도 유성처럼 불타고 명랑할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의 소멸에 노하고, 노여워합니다.

 

그리고 당신 내 아버지, 그 슬픈 높이에서

이제 제발 맹렬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해 주세요.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빛의 소멸에 노하고, 노여워하세요.

 

 

 

작년 봄인가, 장기 휴가 내고 유럽 여행 중인 김경(<싸이는 싸이고, 김훈은 김훈이다>의 그 김경)에게 책 내자고 메일 보냈더니... 이미 딸린 출판사가 많아 어렵지만... 여행 중에 자기 글 좋아한다는 편지 받으니 기분 좋다며 읽던 시를 일부 적어 주었다. "그 굿나잇 속으로 온순히 가지 마십시오"라는 구절이 좋다고. 그래서 1975년에 초판 번역된 시집을 얼마 뒤엔가 샀는데... 번역이 옛 말투라 읽기가 좀 힘들어... 김경이 답장에 적어 준 그 감동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오고 맘은 여러 가지로 글루미했다. 이 어지러운 와중에 낮부터 블로그에 쓰기 창을 열었다 닫았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도 않았다. 저녁 나절 코엑스까지 가서 뮤지컬 공연을 봤지만, 기분이 별로 나아지질 않았다.

집에 와서... 결국 이 시를 골라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번역까지 고쳐 옮겨 놓는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찾고자 하는 궁극적인 순간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것에 도달하는 것임을.... 이 어지러운 와중에 한번 더 되새기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어서이다.

 

어제 오랜만에 집에 갔다가 데모 다닌다고 아버지께 꾸중들었다. 학생 시절이 아닌지라... 웃으면서 내 정치적 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고... 주눅들지 않고 말하긴 했지만.. 역시 자리가 불편한지라... 자러 갔다가 그냥 저녁만 먹고 집으로 왔다. 이명박 세대인 아버지는 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있고, 또 그 방식이 있는지라.... 그 정치적 선택을 뭐라 하거나 굳이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미 다 자란 자식과 소통하시는 방법을 새로이 고민하지 못하시는 게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

 

적어도 그게 내 우울의 시작은 아니다. 간만에 족욕을 하고 잠을 좀 푹 자면 나아지겠지. 오늘은 그 굿나잇 속으로 순순히 갈란다. 나는 늙지도 않고, 그다지 현명하다거나 착하거나 용감하지도 않으니까. 내일도 젊은 마음으로 일어나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선하게, 조금 더 용감해지려면... 오늘은 순순히 잠을 청하는 편이 낫겠다. 한동안 운동을 소홀히 했는데.... 내일부터 재개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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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8 23:59 2008/06/0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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