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의 설 연휴
화요일 오후 2시에 퇴근하여....
은행에 들러 명절비 입금하고(상여금 미리 당겨서 노트북 샀으니 얼른 입금)
병원 들러 침 맞고 시장 봐서 귀가.
마침 집에 있던 유진양과 떡볶이 해먹고 로맨스 소설 두 권쯤 다운받아 보고....
한밤중에 기무라 타쿠야의 <프라이드> 시청 시작.... 새벽 4시까지 5회 보고...
수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침 먹고, 설겆이 하고... 차 한잔 마시고
6회부터 11회까지 봐주시고... 세탁기 돌리며 샤워하고 빨래 널고 서울역 가서 기차 타고 시골행.
가자마자 신랑 골랐냐는 할머니 말씀(치매이신 할머니 1분마다 반복 재생..) 피해
방으로 도망가 <황금어장> 관람.... 취침..
드디여 설날 아침인 목요일
전에는 시골 가서 그런 적 없는데.. 모든 의욕 상실...
요리도 하기 싫고, 청소도 하기 싫고... 상 차리기도, 빗자루질도.. 입으로만 나불나불... 다 동생들 시키고...
보자마자 시집 안 가냐, 시집 안 갔냐, 내년엔 여기서 보지 말자....
구석에서 설겆이, 그리고 또 쓰러져서 자다가....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신다는 작은 엄마 말씀에
오후 네시 후닥닥 일어나 도망치듯 천안역 도착.
추위에 떨며 용산행 급행 지하철 기다려 타보니...
스트레스, 기름진 음식, 뜨거운 방바박에서 찬바람에 덜덜 떤 효과로 급체에 급두통...
겨우겨우 집에 도착해서 두통약 먹고, 토하고, 손 따고, 다시 두통약 먹고,...
유진의 조언대로 핫팩을 배에 올려놓고 겨우 한 숨 잠들다.
이번 가을은 나름 전환기로 잡아두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내년 설 연휴부터는 미리 다녀오고.... 달러 빚을 내서라도...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친구들과 전화로 공유하다.
금요일...
마땅히 재미있는 영화도, 외출할 의욕도 없이....
속은 여전히 아프고... 혼자 죽 끓여먹고, 고구마 쪄먹고...
설겆이 쌓아놓으며.... 딱히 보고 싶은 일드도 없이...
<프라이드> 덕분에 급 빠진.. 기무라 타쿠야 관련 정보나 탐색...
실생활과 상관없이 지나치게 많은 량의 로맨스 이미지를 충전하다 보니...
현실에 대한 무기력증이랄까...
평소 직장 생활 성실히 하는 나도 이런데....
진짜 은둔형 외톨이 되는 것 별로 어렵지 않겠구나라는 위기감.
해서.. 토요일...
귀찮다는 마음으로 오전에 가기로 한 병원도 빠진 채....
집에 저녁 먹으러 오라는 아버지 전화도 시큰둥하니 받아놓고...
겨우겨우 희연양과 미뤄둔 고흐전 관람하러 가보니
사람이 가득... 전시 관람은 포기. 3년간 소원해온 <유림>에서 냄비우동 먹기만 실현.
정동스타식스에 <라듸오데이즈> 보러 가니... 상영관 잡는 데 실패했는지 5시에나 시작한단다.
길 건너 커피 마시러 가는 길에 보니
미로스페이스에서 볼까 하던 <크.레.이.지> 상영...
2시간 후로 표 끊어놓고.... 일조각 1층에 있는 <커피스트>로 이동.
커피 마시며 이 사람 저 사람 집적집적 전화하기..
다들 어찌나 바쁘신지 전화 받는 사람 반도 안 되더군. 흑.
영화는 매력있었고... 이런 영화 보다 보면 확실히...
뭐랄까... '다른'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살아나면서 극장에 자주 가고 싶어진다.
영화 끝나자마자.... 구로 집 가자는 유진양 전화...
허둥지둥... 집으로 오다.. 끌려옴. 아.. 식이요법 할 것인데.....
가서... 엄마가 푹 고아놓으신 우족탕 마다하고...
신선한 김치와 나물에 비벼서 한 그릇 뚝딱..
그리고.... 엄마가 직접 만드신 인절미와 배.... 얌얌...
자고 가라는 아버지 뿌리치고 얼릉 유진양 차로 돌아와...
식이요법 준비로다... 설겆이 한 판, 냉장고 청소...
당분간 못 먹을 김치는 유진에게 양도.
신 김치와 고등어 한 토막 끓여 김치찌개...
더하기 멸치볶음까지... 냉장고 청소와 유진양에게 반찬 만들어주기....에다 우유 반 통까지 써비쓰로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티비를 뒤적뒤적...
개봉한 지 정말 얼마 안 되는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
내가 이걸 누구랑 봤더라? 근데 왜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잠깐 중간에 보는 데 갑자기 눈물이 아릴까? 오다기리 죠가 갑자기 결혼해서?
아니면.. 영화 볼 때는 그의 미모만 보였는데, 갑자기 영화 줄거리를 생각하니
뭔가 뭉클하고 답답한 거 같다.
여전히 철없이 보낸 이번 연휴 때문일까?
내 마음은 예전과 같은데... 아무것도 같을 수 없는...
결국 어떻게든 변해야 하는.... 그 느낌이 이 영화에서 와 닿는 걸까?
난 크레이지 보면서 뭔가 참 불편하더라... 기족이란 굴레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