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의도적일 수 있다
필립 퍼키스, <바닷길, 세인트 로렌스, 퀘벡>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를 만들 때 절대 내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가도록 분위기만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미리 계획하는 것보다 덜 의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의도적일 수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면, 내 안에 잠재된 것들까지 끌어내 더욱 역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보다 대략적인 계획 아래
구체적인 부분들을 자신의 본능, 직관, 감각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_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52쪽.
사람들마다 일을 하는 스타일이 다를 텐데, 일의 세부 요소를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면서 안에서 밖으로 구축해 나오는 사람(음, J차장?)이 있는가 하면, 일단 몇 가지 구획만 대강 그어놓곤 밖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사람(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이 있다. 장단점을 따질 필요는 전혀 없고, 어느 쪽이든 완성된 계획을 가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손을 떼도 구성물이 혼자 제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조심조심 균형을 맟추는지 다각적으로 확인을 하면서 나와야 한다거나 껍데기와 내부가 제대로 일치하는지 밀고 들어가 봐야(내 문제는 대체로 굴을 판다고 말만 하고 힘들다고 하다 만다는 데 있다) 완성물이 나온다는 거다. 어쨌든 조심조심이든, 들이박기든 자기 안에서 계속해서 뭔가를 꺼내서 맞춰 보다가 어느 순간... 되었다 싶을 때까지 가야 끝이 나온다는 거다. 되었다 싶은 순간을 아는 것... 원고를 다루는 일과 요리하다 간을 맞추는 일이 비슷하긴 한데... 둘 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재료의 특성과 품질, 신선도 등에 맞추는 게 제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