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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달'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펌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어지간하면 안하려는 입장이었는데...
반대로 '내 얘기'만을 써야지... 하는 강박도 웃긴 건 마찬가지인 듯해서...
당분간 '잘' 퍼오려는 노력을 해볼까 합니다.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봤을 것이라고 무작정 가정하는 것 보다, 중복되더라도 확인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포스팅을 안할 때, 헛걸음질 치신 분들께도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봐야 내가 퍼오는 건데.. 뭐 영 딴소리겠나 싶기도 하고...
요새는 블로그에 기록되지 않은 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따지고 보면 세상에 펌질 아닌 건 또 뭐가 있나 싶기도 하고...
뒷북이면 뒷북이라는 사실도 알아야겠고... ㅋㅋㅋ
암튼. 앞으로는 펌질이 좀 늘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_____^
아래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와이어드 뉴스 코리아'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와이어드 뉴스는 제가 가끔 조언을 구하곤 하는 선배가
우리나라 정보운동이 이런 걸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된 곳입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는데...
뭐 영어로 정보를 습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터라...
다음에서 번역해 놓은 거나 종종 볼 뿐이죠. (근데 번역이 좀 거시기할 때가 많아요.)
주로 정보기술과 관련된 뉴스를 다루는 곳임에도 은근히 정치적입니다.
아래같은 기사도 사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글이죠.
일단은 반가워서 퍼왔습니다만,
요새는 '프라이버시'라는 문제설정 자체에 대해서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어서 그런지
의문스러운 구절이 좀 있네요.
밑줄과 녹색 글씨는 제가 덧붙인 겁니다.
프라이버시의 영원한 가치
By Bruce Schneier 2006.5.21(일) 14:34
신원확인과 카메라, 데이터베이스, 데이터 마이닝, 그 밖의 전면적인 감시 수단에 찬성하는 사람들. 이들의 프라이버시 옹호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격은 바로 “잘못 한 게 없으면 왜 숨는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대답들이 존재한다. “잘못 한 게 없으면 나를 감시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정부가 잘못된 것에 대한 규정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정보를 악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부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이런 말들의 문제는, 프라이버시는 잘못을 숨기는 것과 관련된다는 전제를 일단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기본권으로서 주장하는 건 우리도 종종 써먹는 논법이기는 한데... 영 힘없어 보이지 않나요? 그냥 내 느낌인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속담 두 개를 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이다.
감시의 진가를 잘 알았던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장 정직한 사람이 쓴 여섯 줄짜리 글을 받는다면 나는 거기서 그를 교수형에 처할 구실을 발견할 것이다.” 누군가를 충분히 오래 감시하면 그를 체포할 구실 혹은 공갈할 구실을 찾을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배제될 경우 감시를 통해 얻은 정보가 오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몰래 엿보는 일, 마케터들에게 정보를 파는 일, 정적(政敵)을 감시하는 일. 이런 일들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설사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를 찾는 것은 의도적으로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비밀 일기를 쓰고, 혼자 샤워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밀 연인에게 편지를 쓴 다음 태워버리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오래전 헌법의 틀을 마련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미래를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프라이버시를 명백한 권리로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결함과 인간의 목적에 따르는 생득권이었다. 자기 집에 앉아서 감시를 당하는 것은 당연히 불합리한 일이었다. 어쨌든 감시는 당시의 신사들 사이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행위였다. 감시의 대상은 자유 시민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자신의 집은 자신이 통치했으며,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개념의 본질이다. 참... 이런 부분은 자유주의적인 프라이버시운동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자유의 본질이 '신사'들이 '자신의 집'을 '통치'하는 것이라니요. 근대적인 시민권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솔직히 표현하다니요. 자유시민과 범죄자를 간단하게 구분한 것도 거시기하구요. 그래서 오히려 앞에서 프라이버시를 생득권으로 주장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모든 면에서 관찰을 당하는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반발과 평가, 비난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만의 독특성을 도용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감시의 눈길에 속박되어, 우리가 남긴 양상들이 우리를 다시 어딘가에 연루시켜 놓을까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것은 현재 권력이 지극히 사적이며 결백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성을 잃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감시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반 동안, 갑자기 누가 엿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대화를 중단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물론 전화 대화에서 그랬을 확률이 가장 높지만, e-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교환 중, 혹은 공개적인 대화 중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저는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지금 미국 시민들이 느끼는 위협이 저 정도일까요? 대화의 주제는 테러리즘이나 정치, 아니면 이슬람이었을 것이며, 말이 새어나갈까 봐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가 자신의 망상을 비웃으며 대화를 재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태도와 말투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했을 때 겪게 될 자유의 상실이다. 구동독이나 사담 후세인 치하 이라크에서의 삶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침입자가 개인적이고 은밀한 삶을 들여다보도록 허용할 때 직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논쟁을 “보안이냐 프라이버시냐”의 문제로 잘못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이다. 정부당국의 부단한 감시로 인한 전제 정치는 물리적인 외세 공격의 위협으로 인한 전제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자유는 침입을 배제한 안보와, 이에 더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만 이뤄질 수 있다. 광범위한 경찰 감시는 경찰국가의 정의이다. 그러니 우리는 숨길 것이 없을 때에도 프라이버시를 옹호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에는 100% 동의하지만... 자유와 규제... 안보와 프라이버시... 뭔가 껄끄럽습니다.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설정은 정확히 자유주의적인 문제설정인데... 적은 너무나 명확한 것 같아요... 국가 또는 정부. 이들이 기업에 의한 감시에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요? 또... 안보는 필연적으로 군대를 호출하는 개념인 것 같은데... 과연 경찰과 군대는 얼마나 다르다는 것일까요? 흠...
그 지음이 맞긴 맞는데요...
죄, 패거리, 떼, 한숨...
어떤 분은 知音을 떠올리시기도 하는데...
솔직히 이름 지을 때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서...
지어놓고 꽤 맘에 들어했던 이름이긴 한데...
지금은 좀 더 부르기 좋고 가볍고 발랄한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기회에 바꿔볼까?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포털이용자운동입니다.
사실, '포털이용자'라는 자기규정이 적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감성으로는 '탈포털운동'이 더 맞는 것 같거든요. ^^;;;
아무튼 열심히 하네요.
도와주시죠? ^^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선생의 말투를 정확히 옮겼다.
문장도 너무 익숙하다.
내가 저 순간 저 교실에 있었나?
여러번을 읽은 탓에 생긴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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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신강 | hits :36 / date : 2005.11.12 00:2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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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 | 정운영 선생을 추억하며 [1] | 신강 | 2005.11.11 |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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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 | 2005.11.12 | 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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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 | 2005.11.12 | 29 |
트랙팩님의 [대추리에 평화를 ! 릴레이 선언] 에 관련된 글.
[경찰청 CCTV 관련 해명자료] 에 관련된 글.
하긴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국가가 저지른 불법과 폭력과 인권침해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5/4일 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대추분교 진압작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대추리에서 경찰은 마을 외곽에 경찰병력을 배치하여 주민들과 외지인의 출입을 제한하여 통행을 방해하고 있으며, 수배자를 잡는다면서 한밤중에 무단으로 가택을 침입하는가 하면, 사복경찰을 수시로 마을에 투입하여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상처입은 이곳에 CCTV 마저 설치되었다. 19일 경기경찰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세 대의 CCTV가 이미 설치되었으며, 앞으로 더 추가될 것이라고 한다. 기가 막히고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제 대추리와 도두리 사람들은 24시간 실시간 감시마저도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경찰에 의한 CCTV는 또 하나의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인권침해임을 밝히며, 이를 즉각 철거할 것을 요구한다.
경찰에 의한 감시 CCTV 설치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서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굳이 대추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국가기관에 의한 CCTV 설치는 그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CCTV를 설치하고 있는 국가기관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며,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이에 대해서 분명한 의견을 밝힌 바 있으므로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방범 CCTV로 수차례 문제가 되었던 서울 강남구청 등 다른 사례에 비해서도 대추리의 경우는 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만 분명히 하자. 대추리에 설치된 CCTV의 경우는 다른 공공기관 CCTV가 최소한으로 지키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 절차, CCTV 설치 공고, CCTV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정보 공개, 정보주체의 자기정보통제권 보장을 위한 대책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경찰은 이를 주민감시용이 아니라 ‘외부인의 출입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CCTV가 사람을 골라 찍는 기능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주민’과 ‘외부인’을 구분하는 것은 CCTV가 아니라 경찰이다. 게다가 그것은 5/4일 강제진압 때와 마찬가지로 ‘주민’과 ‘외부인’을 구별하는 비열한 언사에 불과하다. 대추리는 주민들만 드나들 수 있는 격리된 지역이란 말인가? 경찰이 원하는 것은 대추리와 도두리의 고립인가? 마을 입구에 설치되어 360도 회전되는 CCTV가 주민감시용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에 ‘주민’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CCTV에 포착된다고 하더라도 경찰은 가만 있을 거란 말인가?
또한 ‘외부인’은 감시해도 된단 말인가? 경찰의 사고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외부인은 범죄자고 범죄자는 외부인이다.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폭력이자 인권침해이면 지독한 무지와 비양심의 산물일 뿐이다.
또한 경찰은 ‘수용지역내에 무단 출입하여 철조망을 훼손하거나 군인을 폭행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 신속히 현장에 출동하여 초동조치를 취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보기에 대추리와 도두리는 그저 하나의 수용지역에 불과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추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추리는 대추리일 뿐이며 그/녀들의 하나뿐인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살아 있고, 대추리가 살아 있는 한 ‘수용지역’이라는 이유로 CCTV를 맘대로 설치할 수는 없다. 또한 경찰은 도대체 왜 군을 폭행하는 상황만을 우려하는가? 군과 경찰 자신이 자행하는 폭력과 인권침해의 현장에는 신속히 출동하여 초동조치를 할 생각은 없는가? 경찰의 임무가 언제부터 시민이 아닌 군을 보호하는 것이 되었는가?
재고의 여지가 없다. 경찰은 대추리/도두리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CCTV를 즉각 철거하라. 그리고 대추리/도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인권침해를 즉각 중단하라.
(단체 연명)
이상은 오늘 발표할 성명서입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요.
의견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아. 블로그 이름으로 연명하면 어떨라나? 안되나? 안되는 게 어딨어 다 되지. ㅋㅋㅋ
함 해봐야지... 연명하실 분은 덧글을 ^^)
그나저나 정말 CCTV 따러 갈까요?
突破, 늘 그랬듯이님의 [[신병현] 엘리트 중심의 노동운동을 넘어] 에 관련된 글.
리우스님의 [노동운동 새길 찾기1] 에도 관련된 글.
정말 동감되는 글입니다.
붉은 글씨는 제가 쓴 것입니다. 굵은 강조도 제가 했습니다.
(질문 - 울산노동뉴스)
새로운 대중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기풍과 전망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활동가들에 어떤 기풍과 전망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답변 - '문화연구 시월' 신병현 소장 )
중요한 몇 가지만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현장의 문제를 풀어가지 못하게 했던 인식의 장애들, 기존의 타율적인 사고틀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토론해보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서 자신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준 답은 진정한 답이 아닙니다. 단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활동가들은 현장의 문제를 잘 알면서도 자신의 언어가 아닌 지식인들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언어로 문제를 정리해서 풀어가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맞어 나도 이걸 잘 못해 ㅠ.ㅠ 그래야 동료들 간에 도움을 받고 줄 수 있습니다. 맞아. 정말 맞는 말이지. 노동자들의 힘은 같이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에게 철학은 필요치 않습니다. 철학은 지식인들의 지배를 위한 무기입니다. 실천과 노동자들이 삶과 이야기 속에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오타가 있는 듯한 문장이지만...하려는 말은 충분히 알겠고 정말 동감.
둘째로, 활동가들은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동료들이 잘 알도록 표현해야 합니다. 블로그 쓰라는 얘기인듯 ㅋㅋ 그리고 공장, 가족, 지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개발하고 수집하고 써내야 합니다. 동료들과 글쓰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블로그 쓰기 운동 시작합시당. ^^ 그래야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스스로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말만이 아닌 제대로 된 반성이 가능합니다. 글쓰기는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해주고, 스스로 차지하고 싶은 위치를 드러내어 주고 거기에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줍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을 줍니다. 블로거들은 충분히 동감할 듯. 블로그 쓰란 얘기 맞죠?
셋째로, 고전읽기를 비롯한 다양한 책읽기와 토론을 항상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리된 책 몇 권 읽어서는 부족합니다. 노자, 장자, 맑스, 레닌 등을 읽어낼 수 있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교육은 가족구성원들을 스스로 교육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료의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아. 정말 공부 좀 해야지. 같이 ㅠ.ㅠ 역시 이것도 임파워시킵니다. 즉,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넷째,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지성들을 노동자적 관점에서 올바르게 평가하고 그에 근거한 인간주의, 사회 생태주의적 실천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얘기는 많은 이들이 하고 있기에 생략합니다.
다섯째, 그동안 억압되었던 개별성을 공동체성과 더불어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동체성의 측면은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더 다양한 개인사를 담고, 축적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둘째와 일맥상통하는 얘기인 듯. 공동체성으로만 우리의 일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별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운동의 공간은 노조 사무실이나 활동가 조직 내부 또는 정파집단 내부로 축소되어 자족적이게 되거나, 전체주의적인 타락의 난맥상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양자의 통일로서 희망의 시ㆍ공간을 창출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통일, 희망, 시공간, 지속적인 노력... 역시 이 부분은 추상적인 말로 맺어지는 군요. 다르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는 듯 하고.. 암튼 노력은 중요하지...--;
여섯째, 열린 말하기 훈련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만남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블로그는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자신의 가족, 정파집단, 조직원, 친구들하고만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부자유의 상태로 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남은 노동자들에게 힘을 줍니다. 활동가들은 이를 조직활동을 통해 이미 터득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좁은 틀을 넘어서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타자들과 진정으로 만나서 인간적으로 말하는 법을 우리는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렇죠 ㅠ.ㅠ 비정규직과 만나 함께 하거나 여성, 이주노동자들, 다른 정파 조직원과 함께 하려면 더불어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 사이의 통역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누군가가 열어야 운동의 전망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실효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으려면 노동자문화운동, 새로운 노동자 정치양식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그것의 개발에 용기 있게 투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장과 지역과 가족을 시간, 화폐, 국가와 자본이 지배하는 죽은 노동의 장소가 아닌, 진정한 노동자 형상이 주도하는 생동성의 장소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상? 오탄가?
아무튼 여러 모로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울산노동뉴스와 글을 퍼오신 돌파(plus)님께 감사.
근데... 신병현 씨는 블로그를 안 쓰시는 것 같은데,
블로그라는 걸 알게 된다면 뭐라고 하실까.. 정말 궁금하네요.
지음님의 [평택 대추리에 주민감시 CCTV 설치] 에 관련된 글.
방금 경기경찰청 공보실로부터 받은 자료입니다.
팩스로 받은 자료를 그대로 올립니다.
역시 불법과 인권침해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자들다운 반응입니다.
곧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수용지역 CCTV 설치 관련 상황
o 경찰에서는 5.18~5.19 양일간 세집네 인근 곡각지점, 대추리 삼거리, 대추리 배수로 사무실 주변 등 3개 장소에 CCTV를 설치한 상태이고 현재까지 작동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o평택범대위에서는 주민감시를 위해 경찰이 CCTV를 설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o경찰이 CCTV를 설치한 것은
지난 5.5일과 같이 외부인이 수용지역내에 무단 출입하여 철조망을 훼손하거나 군인을 폭행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 신속히 현장에 출동하여 초동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인 출입 상황등을 신속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CCTV 설치는 부득이한 방편입니다.
o만약 주민감시를 위한 목적이었다면 대추리/도두리 마을 내에 설치했을 것이나, 이미 설치한 장소를 보더라도 외부인 출입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o경찰은 앞으로도 주민 사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용지역내 안전확보 등 치안관리를 위한 추가 CCTV 설치를 검토중이니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6.05.19 경기경찰청 공보실
아. 정말 심하다. 나쁜 것들.
범대위 홈페이지 사진
평택...
아직 늦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죠.
네이버에 까페가 개설됐어요.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평택서울대책위가 함께 합니다.
진짜 신기하네요.
다음 기사를 보고 알았는데요.
누구나 블로그에서 채팅창을 열 수 있다?
정말 채팅이되네요.
아래 클릭해보세요.
앞으로 매번 이거 열어놓고 블로깅할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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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보안 영역에서 되게 유명한 사람이던데. 이 사람이 쓴 [디지털 보안의 비밀과 거짓말] (나노미디어) 을 읽어보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보안에 대해 개념이 좀 서더군. 리차드 스톨만이 '자유'를 특히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미국인들에게는 '자유'가 근본적 권리로 매우 중요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 것 같아.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현재 보편적 인식도 아직 '자유주의적' 권리 개념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겠지. 지음의 맨 마지막 코멘트를 보니, 외부의 적(해커)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보안 전문가와 평화 운동이 조화를 이루는게 가능할지 궁금해지는군. ㅎㅎ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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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일형 코멘트의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ㅅ=그런데, '잘못이 없다면 왜 숨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무엇이 잘못이라는 것인가? 잘못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라는 역질문은 왜 가능하지 않는걸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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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 사람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제가 그렇다는 게 문제겠죠. '자유주의적 프라이버시권'이 문제라면... 그걸 계속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흠.역질문은 가능한데... 그 질문을 하는 순간... 그 사람하고 대화하는 건 대부분 중지된다는 게 문제지 않을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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