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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18
    [멋진 페미니스트가 되는 법] Best 7(9)
    지음
  2. 2006/03/28
    강유원, 포드캐스트, 직업(6)
    지음
  3. 2006/03/15
    노동할 권리와 노동시간단축
    지음
  4. 2006/03/13
    은행 수수료 줄이기(8)
    지음
  5. 2006/03/13
    노동과 소득의 분리에 반대한다.(7)
    지음
  6. 2006/01/05
    그대들의 위안을 위하여(6)
    지음
  7. 2006/01/03
    금연하려는 사람들에게(9)
    지음

[멋진 페미니스트가 되는 법] Best 7

너부리님의 [멋진 페미니스트가 되자] 에 관련된 글.


오. 멋져라.

수많은 멋진 방법들 중에서 내가 고른 Best 7.

메이데이 피켓 문구로 쓸까보다... ㅋㅋ 생각이 온통... ㅋㅋ

 

흠. 근데 골라 놓고 보니...

너무 내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군...

하튼 멋져.

 

너부리님 고마워요~!

 

* Lower Pain And Isolation (고통과 고립을 줄여라)

 

* Don't Agonize, Organize (괴로워하지 말고 조직화하라)

 

* Avoid Burnout (피로가 쌓임을 피하라)

 

* Invent New Herstory (새로운 여성의 역사를 발명하라)

 

* Think Humanarchy (인간적인 조직질서를 생각하라)

 

* Collect Fabulous Memories (멋진 기억들을 모아라)

 

* Be A Mover And A Shaker (세상을 움직이고 뒤흔드는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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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포드캐스트, 직업

['강유원의 포드캐스트. ' from 이정환닷컴!. ]을 보며 든 생각들.

1.
강유원의 포드캐스트는 사회운동과 관련된 유일한 포드캐스팅일 거에요.
저는 포드캐스팅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가끔씩 들었는데 나름대로 재밌어요.
사실 저야 내용보다는 기술과 형식에 관심을 갖고 듣고 있습니다만... --a
지금은 맑스의 '공산당선언 강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냥 다른 사람들 세미나하는 거 녹음해서 들으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좀 비슷한 느낌이네요.
포드캐스팅, 더 잘 써먹는 방법이 있을 텐데요...

2.
사실 강유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몰랐는데, 이정환닷컴의 글을 보니까... 재밌는 사람이네요.
1500p 짜리 '서양철학사'를 50번 읽었다는 얘기라던가,
날마다 저녁 9시부터 3시까지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얘기는..
한비야가 일주일에 서너시간 잔다는 얘기만큼이나 딴 세상 일처럼 들리니까 일단 넘어가고..--;

3.
내 관심을 끈 건....
"학회에 열심히 나가고, 학회지에 논문써서 그걸 들고 다니며 대학교수 채용에 응하는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한 판단.
그 판단 탓에 학문이나 글쓰기 대신에 웹마스터를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스피노자를 두고 한 '안경사 자격증' 얘기.

"평생 안경알을 갈면서 철학사에 한획을 그은 스피노자를 보라. 어느 대학 교수는 그런 스피노자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말로만 스피노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고 말해주고 싶다."

4.
한 때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유라면 딱 두가지. 그냥 '공부만' 하면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것과 '논문'을 한번 써보고 싶다... 라는 것.
근데 지금은 단지 그냥 '백수로 지내는 시간'과 멋진 블로그를 만들어 보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학교에 다니고, 교수 따라 다니면서, 그다지 원하지도 않는 공부와 글쓰기를 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말이다.

5.
강유원은 '건강한 지식인' 얘기를 했지만, 활동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시 길게 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나는 활동이 '직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경사 자격증'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시작할 수 있고, 그만뒀다가도 다시 할 수 있고, 시간 관리가 용이한 직업.
이런 직업이라면, 최소한의 보수라도 상관없을 텐데.
물론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한계가 뻔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그 방법을 찾고 싶다.

6.
뭐. 쉽지 않은 얘기라는 건 안다.
먹고 사는 거 보장되고, 일하고 싶을 때 하고 놀고 싶을 때 놀자는 거니까... 이건 뭐 거의 꼬뮨 아닌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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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할 권리와 노동시간단축

[노동과 소득의 분리에 반대한다.] 에 달린 답글들에 답하여 이어지는 글.

소득의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 또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소득과 노동이 분리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연관 속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것도 없이 지금도 얼마든지 있는 일입니다.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가족, 이웃, 국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꼭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업 상태에 빠져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소득은 보전해주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이것마저도 줄이자고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죠. 다시 말해서 실업자는 노동하지 않으니 소득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노동과 소득의 분리'라는 말이 의미가 있다면,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대로서 기능할 때일 것입니다. 노동하지는 않아도 그들은 '사회적 연관' 속에 있기 때문에 최소한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세금을 내는 부자들과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선의를 바라는 것보다는 "그들은 직접적으로 노동하지는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떳떳하긴 할 것입니다.

노동과 소득의 분리에 선한 취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할 권리를 지키기가 너무 어려워진 나머지 이를 일정정도 포기하고, 대신 소득을 얻을 권리만이라도 수호하자는 것이라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일 뿐더러 때로는 반동적이기도 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실업자도 소득을 얻을 권리가 있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노동할 권리가 있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모든 사람이 노동할 수는 없고, 실업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주 고전적인 대안이 있습니다. 바로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의 단축이죠. 다시 말해 노동시간은 줄어들지만 이와는 분리되어 소득은 줄어들어서는 안되며, 또한 누구도 노동할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소득은 노동시간과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노동과는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미류님이 "소득의 원천으로서의 노동을 강조할수록 자본주의의 임노동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하신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처럼 노동자에게는 이전보다 더 긴 초과 노동시간을, 실업자에게는 0의 노동시간을 강제하고 그 노동시간에 따라 소득을 분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노동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그와 연결된 소득을 얻는 한편, 노동에 얽매인 시간을 평등하고 지속적으로 감소시켜 가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지난 번 글에서 "'임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썼던 것은 확실히 잘 못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울얼거림님과 미류님이 '활동'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하신 지적은 정확합니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 '노동' 대신 '활동'으로 바꾼다면, 사실 제가 반대하고자 했던 '노동과 분리된 소득의 보장'과 비슷해져 버리는군요. 이점에서 실수와 모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울얼거림님이 블로그를 예로 드시는 것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중입니다. 포스팅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노동이라고 본다면, 그 노동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말입니다. 울얼거림님 말씀대로 포스트 하나당 얼마씩을 지급하는 방식도 이상하지만, 블로거라는 이유만으로 포스팅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다바리(newtimes)님이 언급하신 노동연계복지 또는 생산적복지에 대해서는 저는 반대합니다. 노동과 연결된 소득은 복지와는 무관한 것이니까요. 복지를 말하며 실업상태를 기정사실화 하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그것이 뭐 대단한 시혜인양 공공근로와 같은 불필요한 노동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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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수수료 줄이기

티코님의 [은행 수수료가 1등 먹었습니다] 에 관련된 글.

은행 수수료 정말 열받죠.

저는 은행 수수료 안 낸지 2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지금의 최저 소비 모드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한 적이 있었죠.
그 때 은행 수수료 없는 계좌들을 만들어 뒀었습니다.
국민은행, 제일은행, HSBC

세상에는 이런 것들을 아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은행을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 어느 지역의 어떤 지점에 가면 한시적으로 수수료 없는 상품을 판다는 정도까지 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은행직원들도 모르는 것을 직접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알아내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티코님의 글을 보고 요새는 어떻게 변했나 하고 찾아봤습니다.
그런 정책은 은행들마다 수시로 바뀌거든요.
그런데...  예전 그 사람들이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존경스러운 사람들입니다.

하튼, 국민은행은 이제 수수료 없는 계좌가 없어졌고,
제일은행은 없어졌다가 SC제일은행으로 바뀌면서 다시 생긴 모양입니다.
HSBC는 기본 예금액이 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랐네요.

결국 현재로서 은행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1. SC제일은행의 무통장 예금통장이 인터넷뱅킹이나 당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경우 수수료가 없습니다.
2. 은행 업무시간 외에 타행에서 현금인출을 할 때도 수수료를 안내려면, 어쩔 수 없이 HSBC나 시티은행 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각각 300만원과 100만원을 디폴트로 넣어둬야만 합니다.

써놓고 보니 전부 '외국계 은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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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소득의 분리에 반대한다.

웅얼거림님의 ["일 안해도 빵 먹을 권리 있다" - 한겨레] 에 관련된 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라는 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동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 없는 세상이라는 것도 동의.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

그렇지만, '노동과 소득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며,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사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의 불우이웃돕기도 정확히 '노동과 소득이 분리'된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이다.

'노동과 소득의 분리'가 '마을이나 종교 공동체의 시혜 대상에 머물렀던 빈민층'의 재탄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아도, 사회가 우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넌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먹고는 살아라. (저항하지 말고.)"

이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노동과 소득이 분리되는 순간, 노동은 없어진다. 소득이 없는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이 자본주의기 때문이다.  '노동과 소득의 분리'는 노동이 필요 없음을, 실업자가 쓸모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소득은 시혜에 불과하며 시혜는 강탈의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쓸모가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아니 각자의 쓸모를 서로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건 가라타니 고진에게 얼마전에 배웠다.)

 

다시 말해, '임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은 정확히 그러한 노동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노동은 임노동과는 다르며, 사회는 자본주의사회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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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위안을 위하여

글들을 읽다가 웃겨 쓰러지는 줄 알았다.

링크된 글들은 필독하셈.


썩은돼지님의 지독한 새해의 화장실 과 관련해서...

 

여섯 번 중에 적어도 한 두번은 내 책임이다. 내가 휴지를 바로 사 두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런 슬픔이 있었는지 몰랐다.

내가 사무실에서 큰 일은 잘 안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휴지를 쓰지 않는다. 한두 달 됐다.


나름님의 치질과의 대화 와 관련해서...

 

아. 정말 내 허파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웃기다.

나름님. 미소가 보내기 힘들면,

애정어린 손길로 살짝 어루만져주세요.


일찍이 돕헤드님이 얘기했던 것도 있다.

돕헤드님의 뒷물통을 만들었다

 

정토회에서는 이걸 생태운동 차원에서 하고 있다.

화장실 뒷물이야기

 

그리고 사실 지구 인구의 상당수는 이미, 손을 쓰고 있다.

 

뭐, 나는 집에서만 시험 삼아 해보다가 썩 괜찮길래 계속하게 됐다.

원래 손을 잘 안 씻었는데, 꼬박꼬박 손 씻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참고 : 화장실 이용자 10명 중 4명 손 안 씻어)

 

두 사람의 커밍아웃 성 글에 감화되어 저도 슬쩍 커밍아웃 해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무실에 비상시를 대비해서라도 뒷물통을 비치 해 둘까 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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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하려는 사람들에게

hof님의 [금연하려는 사람들에게.]을 보고 생각나서...

 

나는 지난 7월인가 8월인가에 담배를 끊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더 있어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담배 필 일은 없다.

그리고 나도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확신이 금연 둘째날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담배와 관련해서는.

지난 해 1월 1일을 시작으로 적어도 서너 번은 금연을 시도했고 또 실패했다.

길게는 1주일 정도까지도 갔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전혀 확신이 없었다.

사실 언젠가는 다시 피게 될 거라고 불안해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달랐다.

그냥 갑자기 담배가 전혀 피고 싶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금연보조제도 전혀 필요하지 않았고,

금단현상도 전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끊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다음의 글이 크게 도움이 됐다.

알렌 카의 'Stop Smoking'

책 한권 분량의 글이라서 좀 길지만 나는 한숨에 읽어내렸다.

위 글에서 내가 설득당한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1. 금연은 아주 쉽다.

2. 담배의 금단 증상이란 없다.

3. 담배는 전혀 맛있지 않다.

4. 담배는 어떤 경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5. 단 한 개피로 금연은 끝장난다.

 

뭐 몇가지를 더 열거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충 핵심은 위의 것이다.

뭐 다소 황당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힘들지 않다'라는 것을 설득당하다니!

'괴롭지 않다'라는 것을 설득당하다니!

'맛있지 않다'라는 것을 설득당하다니!  

그토록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고, 맛있어 하던 것을!

또 설득당했다고, 진짜로 그냥 끊어버리다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담배를 끊었다는 것이다.

이건 나 스스로가 연구 대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일단 이번 글의 핵심은 알랜 카의 글을 소개하는 것이었으니, 이 문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란다.)

 

그밖에 사족을 덧붙이자면, 내가 애초에 금연을 생각했던 이유 중에는 이런 것들도 있었다.

 

1. 돈을 아끼자.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담배값이 용돈의 30%에 육박하다니. 최저의 생활비로 적게 벌고 길게 버틴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크나큰 오점 중에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끊고 나서 그동안 핀 담배값을 계산해봤다. 무려 1000만원에 육박했다. 60까지만 핀다고 해도 3000만원! 알랜 카의 글에도 나오지만, 내가 이 다음에 피는 담배 한 개피의 가격이 3000만원이라고 생각해보라. 이거 압박 상당히 된다.

 

2. 이건 뭐 관계없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자전거를 더 잘 탈 수 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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